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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에 관한 잡문

필진 칼럼 2008/04/30 14:29 Posted by 우디79
매년 4월 말이면 영화판에서 알게 된 이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횟수가 부쩍 늘어난다. 용건의 대부분이 “이번에 전주 가십니까? 언제가고, 얼마나 머무십니까?”라는 질문이다. 다름 아닌 5월 초에 개막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참석여부를 묻는 것이다. 나 역시 만나는 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기 일쑤이고 상투적이긴 해도 이런 과정을 통해 전주영화제 일정의 윤곽을 잡고 동선을 그리게 된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상대방도 그러하듯이)영화제 기간 중 밤 스케줄을 짜기 위해서이다.

필자처럼 영화 글을 쓰는 사람의 경우 영화만 보기 위해 영화제에 참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영화인들과 평론가와 기자들이 각기 분야에서 서로 잊고 지냈던 이들의 안부를 묻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또는 다른 일거를 얻거나 사업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영화제에 모여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골목마다 술집마다 영화인들과 영화광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을 새우는 것은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의 밤 어디서나 목격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주 무대였던 해운대 횟집의 한산한 모습 위로 한국영화의 불황이 오버랩 되었던 것도 다 이런 까닭이다. 결국 짧은 체류기간 동안 영화도 보고 사람과의 만남도 소홀하지 않기 위해서는, 영화제 기간 동안 효율적인 시간 사용을 위해서는 상대의 스케줄을 사전에 아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아울러 고백하자면 매년 5월이면 습관적으로 전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으면서도 어떤 영화를 보겠다고 사전에 계획 세워 본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 있다고 질책하지 마시라.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영화 보는 것만큼이나 사람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분명히 그렇다.

사실 영화제의 열혈 관람객과 비교하면 필자의 경우는 일정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즉, 일반 관람객일수록 영화에 대한 집착도가 높을수록 일단위 시간단위로 빼곡하게 잡힌 일정과 카탈로그를 손에 쥐고 영화관 순례에 나서기 마련인데,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길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내가 아는 몇몇 영화광만 하더라도 하루에 3~4편은 기본이고 심야관람까지 도무지 눈이 쉴 틈을 주지 않는 이들이 대다수이다. 그러다 아침이면 퀭한 눈으로 다시금 영화관을 찾아 들어가는 그 놀라운 열정이라니! 게다가 바지런한 관객이라면 하루 일정을 마치기 무섭게 숙소에서 영화리뷰를 작성하거나 인상 깊게 본 영화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며 데워진 가슴을 유지하려 애쓸 것이다.

5월 전주의 밤하늘을 보기 위해 ‘영화의 거리’로 나가면, 영화관에서 보았던 낯익은 얼굴을 다시 만나는 묘한 설렘도 맛볼 수 있거니와 소위 각종 영화제를 통해 낯을 익힌 영화제페인들(영화제를 위해 돈을 모아 영화제 기간 내내 체류하면서 영화제를 즐기는 영화광들)끼리 조우하여 술잔을 나누는 일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전주영화제의 경우, 상영관이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 몰려있는 탓에 이동이 편하거니와 직선으로 뻗은 도로 안에서 움직이다보면 아는 얼굴을 부지기수로 만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결국 인사치레로 약속을 해놓고는 지키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요, 청한 사람이 오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는 것도 영화제이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밤에 한 잔 해야죠?”라는 빤한 말이 인사를 대신한다고 할지라도, 다음날 미처 만나지 못한 이들과 멋쩍은 재회의 눈인사를 나눌지라도 그리 흠되지 않는 것도 영화제가 선사하는 너그러움 중 하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영화제에 영화만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비단 필자 같은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영화가 좋다고 해도 먹을 것 먹고 즐겨야 하는 것은 기본 일 터. 어디에서 무엇을 먹어도 만족할 만한 음식이 지천에 널렸다는 것 또한 전주국제영화제가 방문객들에게 허락한 축복일 것이다. 특정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추억과 경험이 사람마다 제 각각일지라도, 그곳에 가는 목적이 천차만별이라 해도 향토의 맛 앞에서는 거의 한 목소리를 내기 마련인 것은, 몸으로 기억한 것은 쉽사리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 아니겠는가. 많은 이들이 전주하면 어김없이 전주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을 떠올릴 터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너무 알려져 있는데다 방방곡곡 원조를 표방한 음식점이 산재해있다 보니 전주의 맛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전주에 갈 때마다 찾는 곳은, 도청 근처의 ‘반야 돌솥밥집’과 성심여고 앞에 있는 ‘베테랑 분식’이다. 주머니 가벼운 영화제 관람객에게 이만한 먹거리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이니 9년을 변치 않고 이용해온, 정확하게는 1년에 한 번 먹어서 더욱 맛있는 칼국수 집이다. 절대로 홍보성 글이 아니다. 비단 전주 사람이 아니라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널리 알려진 집이라는 말이다. 물론 삼백집의 콩나물국밥 또한 기어이 한 술은 뜨고 와야 영화제를 무사히 마친 기분일 정도니 전주의 맛이 가진 매혹은 해운대의 펄떡거리는 횟감을 능가하고도 남지 않을까?

전주국제영화제가 첫발을 뗀지 아홉 해가 되었다. 디지털 영상시대를 예비하며 미래지향적 영화제를 표방했던 게 엊그제 일이다. 난생처음 전주를 방문하게 된 것도 영화제 때문이었다. 무수한 영화제를 다니면서도 유독 전주영화제에 마음이 가는 것은, 알찬 프로그래밍과 맛깔스런 음식과 너무 복잡스럽지도 너무 황량하지도 않은 전주의 모습에 기인한다. 혹자는 영화제가 너무 영화관객 위주로 움직인다고 하지만,(물론 맞는 측면도 있다)이미 한국에서의 영화제는 하나의 문화고 현상이며 축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형형색색 장식된 거리를 메운 인파들 속에서, 좋은 영화를 관람한 흥분된 얼굴에서, 힘들게 구한 영화표를 쥔 관객의 환희에 찬 얼굴에서 영화제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불면의 밤을 보낸 피곤함에도 아랑곳 않고 영화관으로 달려가는 영화광의 발걸음에서 영화제의 미래를 본다. 이 땅의 모든 영화제가 그렇듯이 전주국제영화제 역시 영화광들의 신나는 한판 놀이마당이다. 그러니 어찌 동참하여 놀아주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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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제에 가는 방법

    Tracked from 골룸에세이 2기  삭제

    이제 일주일 정도 후면 전주영화제다(5/1~5/9).우리나라에 몇몇 영화제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부산영화제, 그 외에 부천영화제, 전주영화제 등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국제영화제이고 이외에도 제천영화제, 여성영화제 등이 있다.영화제마다 느껴지는 저마다의 키워드가 있는데 대략 이렇다.부산영화제 : 주류영화, 대중성, 국내 최대의

    2008/04/30 16:04

강민영


 



세상 어느 나라든 모두 각자의 신화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인도(India)라는 대륙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작용한다. 인도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온전한 ‘신화’의 나라라 불린다. 인도의 신화는 인도인들의 삶 속에 가장 많이 뿌리내려져 있기에 그들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특색 때문에 인도라는 땅 바깥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볼리우드(Bollywood:인도의 봄베이 'Bombay’와 미국 할리우드 ‘Hollywood'의 복합-인도 영화 시장이 할리우드만큼 넓다는 것을 의미)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의 모든 예술은 궁극적으로 신화를 통해 살아 숨 쉬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도의 영화들은 대부분의 신화적 내용을 빌려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장르의 복합인 인도 영화들만큼이나 그들이 섬기는 신, 그리고 섬겼던 과거의 신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인도는 다채로운 역사의 시간들이 존재했고, 인도의 모태종교인 힌두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이다. 때문에 인도와 인도 영화를 보다 ‘맛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고대부터 인도인들이 믿어온 신화의 주인공들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과도 같다. 필자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생소한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 인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화 속 몇 가지 신들을 소개한다.


1. 그 모든 것의 시작,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

거의 대부분의 신화가 그렇듯, 인도의 신화도 우주의 원리를 통해 생성되었다. 힌두교도 삼위일체설을 믿고 있고 이 삼위일체는 각각 창조, 유지, 파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세 가지 기능은 사실상 통합된 하나의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인도 신화에서는 각각의 기능에 서로 다른 신의 모습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브라흐마는 가장 처음에 있는 ‘창조’를 담당하는 신이다.

브라흐마의 탄생은 스스로 일어난 것이었다. 누구도 그를 창조할 권리는 없었고 또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는 하늘과 땅을 만들며 태어났다. 브라흐마는 무(無)의 상태에 있던 우주를 해체하면서 본격적으로 생물들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브라흐마에 붙은 ‘창조’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그는 마땅히 현대에도 추앙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도는 순환의 논리를 중시하기에 일단 만들어지고 난 것에 대해서는 뒤를 돌아볼 만큼의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경전에 자주 등장하던 브라흐마는 차츰 그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30배가 넘는 거대한 면적인 인도 대륙은 수많은 신들의 사원을 가지고 있지만, 브라흐마의 사원은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푸시카르(Pushkar)라는 도시에서만 찾을 수 있다. 물론 이 곳은 인도의 가장 오래된 신을 섬기는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육식을 할 수 없는 성스러운 도시이다. 그러나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이미 지나간 것보다는 그것을 유지하며 해체시키는 행위가 중요하다’라고 믿고 있다.


2. 유지의 신 비쉬누(Vishnu)

브라흐마의 일이 끝나면 그 다음인 ‘유지’와 ‘파괴’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두 가지의 시간은 각각 브라흐마를 상대적으로 약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 중 ‘유지’에 해당하는 신이 바로 비쉬누이다. 그는 브라흐마와 반대로 고대 경전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다가 이후에 인정을 받게 되는 신이다. 비쉬누는 질서를 잡고 정의를 구축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때문에 다른 신들보다 선하고 부드러운 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정적인 존재의 비쉬누에서 창조의 생각을 가진 브라흐마가 탄생했다는 설도 있지만(바라하뿌라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창조에서 유지의 순서를 믿고 있다. 인도의 많은 신들은 악마와 악한 것에 축복을 내리고 도움을 받는 행위를 했지만, 유독 비쉬누만은 그런 행동을 지양했기에 많은 인도인들은 그가 ‘참된 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3. 인도에서 가장 대중적인 파괴의 신 쉬바(Shiva)

창조와 유지의 시간이 끝나면 남은 것은 ‘파괴’와 ‘재생’이다. 이것을 담당하는 신은 쉬바로, 그는 브라흐마나 비쉬누처럼 한 가지의 성격으로 존재하지 않는 신이다. 쉬바는 자비롭고 파괴적이며, 에로틱하지만 금욕을 중시하기도 하는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인도를 여행하면 거의 모든 곳에서 쉬바의 그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인도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신이다. 그 이유는 순환의 고리에 맞게 모든 것을 ‘재창조’할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쉬바가 맡음으로 새로운 형태의 삶이 만들어진다는 힌두 사상에 있다.

또한 인도인들에게 있어서 쉬바는 구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쉬바는 다른 신들과 달리 온몸이 새파란 색을 띄고 있는데 이것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세상이 창조되어지고 그에 준해 다양한 것들이 히말라야에서부터 악마와 선한 신들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대부분 인간이 살아가거나 자연의 존재를 위해 필요했던 깨끗한 물, 혹은 풍부한 나무들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세계를 녹여버릴 엄청난 양의 독이 발생했다. 생각하지 않은 일에 많은 신들은 당황했고, 독의 처리방법을 찾았으나 워낙 치명적이었기에 손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세상의 멸망을 보아야하므로 신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명상 중인 쉬바를 찾아갔다. 쉬바는 흐르고 있는 독을 버릴 곳을 찾다가 결국 한꺼번에 그것을 마셔버렸고, 쉬바의 몸에서 머무르던 독은 그의 몸을 파랗게 만들었다. 독의 성분 때문에 쉬바는 파랗게 변해버렸지만 그로 인해 세계는 다시 정상의 궤도에 들어왔고 비쉬누도 맡은 일을 원래대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파괴의 신은 ‘영웅’으로 기억되었고 많은 인도인들은 현재 그를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4. 예술의 여신 사라스와띠(Saraswati)와 풍요의 여신 락슈미(Lakshmi)

사라스와띠와 락슈미는 각각 브라흐마와 비쉬누의 배우자로 두 여신은 인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여신들이다. 사라스와띠와 락슈미는 아름다운 여신으로 묘사되어있고 가장 큰 굴레를 담당하는 배우자를 두었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많은 부분을 함께 공존하여 존재하고 있다. 사라스와띠는 브라흐마에서부터 태어난, 다시 말하면 브라흐마의 자식인 셈인데 브라흐마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배우자로 삼긴 했지만 사라스와띠는 처녀 신으로 남아있다(브라흐마의 문란한 행동에 대해서 쉬바가 벌을 내렸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브라흐마가 확실히 그녀를 배우자로 삼았는가에 대해서는 인도 내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사라스와띠로 인해 산스크리트(Sanskrit)가 창조되어졌고 그녀는 지혜의 여신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굉장한 숭배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인도의 모든 학자들은 연구나 혹은 발표에 앞서 그녀에 대한 숭배 절차부터 밟는다고 한다.

락슈미는 사라스와띠와 같은 위치에 있지만 인도에서 가장 인기 높은 여신이다. 그녀는 지혜를 상징하는 사라스와띠와는 반대로 현실적인 부와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락슈미는 힌두의 ‘결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상에 가장 부합되는 여신으로, 그녀의 배우자인 비쉬누의 내조에 힘을 쏟기로 유명하다. 락슈미는 코끼리를 데리고 다니는데 그녀는 늘 풍족하게 담겨진 금화와 활짝 핀 연꽃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이런 소재들을 통해 고대부터 지금까지 풍요의 여신으로 자리 잡은 락슈미는 비쉬누와 더불어 가장 바람직한 가정의 표본이 되기도 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인도인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5. 두 동물 신- 치유의 신 가네샤(Ganeaha), 봉사를 위해 존재하는 하누만(Hanuman)

풍요의 여신 락슈미는 코끼리와 항상 함께 했다. 쉬바의 첫 아들인 가네샤는 머리는 코끼리에 몸통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코끼리 신이다. 힌두에서 코끼리는 헌신적이고 정의를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남으로 묘사되어 락슈미의 코끼리와 가네샤는 모두 선한 이미지를 가진 동물(혹은 동물 신)이다. 가네샤는 풍요로운 금전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본래 그는 ‘치유’를 위해서 존재한다. 가네샤는 여행이나 새로운 사업, 혹은 새 집을 지을 때 숭배되어지는 신으로, 인도 상점들 대부분에서 가네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실제로 필자가 인도를 여행 할 때에도 여행자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신은 가네샤였다).

오동통한 몸에 코끼리 머리를 한 가네샤가 처음부터 동물의 형상을 하고 세상에 태어났던 것은 아니다. 이것에 관해서도 다른 신들의 탄생 신화처럼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 중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는 원래 가네샤의 머리를 떼어내고 코끼리를 이식했다는 것이다. 쉬바가 그의 배우자인 바르바띠 사이에서 낳게 된 가네샤는 아버지인 쉬바가 모르게 어머니 바르바띠와 함께 지내왔다. 어느 날 쉬바가 아내를 보러 사원으로 향했을 때, 사원을 지키던 가네샤는 자신의 아버지를 모르고 쉬바를 제지했다. 만물의 신 쉬바는 화가 나서 가네샤를 그 자리에서 베어버렸고, 소란을 듣고 달려온 바르바띠는 경악하며 쉬바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에 당황한 쉬바는 자신의 잘못을 수습하기 위해 고민을 하던 중 거대한 코끼리를 발견했고, 가네샤를 살리기 위해 쉬바는 코끼리의 머리를 그에게 붙여버렸다. 이런 유머러스한 탄생 때문인지 가네샤는 인도 신들 중 가장 거대하면서도 조그마한 쥐를 타고 다니는 등 익살스런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가네샤의 이런 행동들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힌두의 선한 사상과 인도인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어,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동물 신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누만은 가네샤보다는 하위 개념으로 주로 다른 신을 섬기는 봉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누만은 원숭이의 머리를 하고 있는 원숭이 신인데, 그에게 소원을 빌면 다른 어떤 신보다도 빨리 성취를 할 수 있다고 하여 하위 신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얻고 있는 신이다. 가네샤와 하누만, 두 동물신은 인도인들에게는 없어서 안 될 자연친화적 동물 신으로 존재하고 있다.


6. 신들의 화신(化神) 람(Ram)과 크리쉬나(Krishna)

힌두 사상에서 화신(化神)의 개념은 매우 높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원론을 믿는 힌두에서 화신이라는 존재는 또 다른 신의 모습으로, 신으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모습을 바꾸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화신 사상의 경우 위에서 말했던 모든 신들이 포함되는 것이지만 유지의 신인 비쉬누에게 편중되어있다. 우여곡절 많은 세상사를 유지하고 바로 잡기 위해서 비쉬누는 다양한 모습을 취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비쉬누의 화신 람과 크리쉬나는 각각 완벽한 남성적 인간과 여성적 인간을 뜻한다. 람은 강력하고 정열적이며 위엄을 잃지 않는 한 국가의 ‘왕’의 자질을 갖춘 남성이다(그에게서 일부다처제가 생겼다는 추측도 있다). 람은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다소 옳지 않은 면모도 보여주었던 화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도의 반 이상을 할당하고 있는 북인도 문화권에서는 굉장한 신임을 얻고 있다. 이에 반해 크리쉬나는 순종적인 사랑과 신성한 믿음을 가진 아름다움으로 묘사된다. 람이 파괴적인 성향의 남성이라면 크리쉬나는 온화하고 그것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성향의 여성성을 가진 화신으로 존재한다. 현재 인도의 비쉬누를 기리는 많은 의식에서 사실상 비쉬누보다 더 자주 말해지는 신이 바로 크리쉬나이다. 고대에는 본래 힌두의 작은 종파로 시작한 크리쉬나이지만, 그는 가장 인격화된 화신이라고 여겨져,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7.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파괴의 여신, 깔리(Kali)

깔리는 본래 쉬바의 배우자 중 하나이지만, 인도 신화에서 거의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를 굳히는 여신이다. 깔리는 두르가(Durga)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기도 하는데, 그녀의 ‘악함’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깔리는 전형적인 힌두의 팜므-파탈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모든 신, 특히 남신들을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신들이 온화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는 반면 깔리는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 주로 악마를 물리치는 강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깔리이지만 그녀의 파괴성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그녀를 찾아가곤 했다. 다른 여신들처럼 깔리는 가사를 돌보지도 않고 특출한 아름다움, 그리고 온화함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인도에서 깔리는, 전통 힌두 사상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자국 내의 여성 단체들의 지속적인 추종을 받아왔다.


8. 정화와 맺음의 상징, 강가(Ganga)

인도의 동부 바라나시(Varanasi)는 힌두교 7개 성지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이다. 인도 전역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갠지즈강이 흐르는 바라나시에서 여생을 끝내고 싶다는 이유로 이곳까지 찾아온다. 24시간 내내 갠지즈강에는 장작이 타오르고 많은 사람들이 재로 변해 강물에 던져진다. 이 성스러운 강을 총괄하는 신은 강가이다. 그녀는 그리 높지 않은 신으로 바라나시 곳곳에 조그마한 사당을 가지고 있는 정도이지만, 모든 힌두교인들의 삶의 맺음으로 존재한다. 강가는 바라나시를 흐르는 갠지즈강의 다른 이름이다. 때문에 그녀를 만나 그녀로 인해 윤회의 고리를 끊기 위해 늘 바라나시의 강가는 붐빈다.


다양한 신화, 그리고 신화에서 파생된 영화

인도에 처음 영화가 소개된 것은 1896년 봄베이(지금의 뭄바이)에서 상영된 뤼미에르의 영화였다. 수년 후 다다사헵 팔케(Dadasaheb Phalke)가 처음으로 <라자 하리샨드라>를 소개한 것이 인도인의 손으로 처음 만든 작품이었고, 이후 인도 영화는 상승세를 타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에서는 영화상영이나 제작이 성행하지 않았고 서구 사회에 ‘인도’라는 존재는 미지의 세계로 불러졌으므로 수많은 열강들이 인도를 찾았다.

하지만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당시의 인도는 문화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다. 인도는 영국과의 잦은 접촉으로 인해 영화의 기술적인 면들을 배울 수 있게 되었지만 한계는 존재했다. 영국의 식민 정치로 인해 인도는 영화나 기타 예술에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었다. 때문에 사람에서 신이 되는 줄거리를 가진 팔케의 <라자 하리샨드라>를 시작으로 인도 영화는 서구 열강의 눈을 피해 환상적이고 현실도피적인 ‘신화’의 세계에서 이야기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후에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 인도에서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50년대 인도가 낳은 세계적 거장인 사트야짓 레이(Satyajit Ray)의 등장은 인도 내에서 시네마의 운동을 일으켰다. 사트야짓 레이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도 영화의 ‘신화적 이야기’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인도의 가난과 냉정함, 그리고 노동 착취 등을 소재로 했다. 레이는 세계 영화사에 걸작으로 남는 <아푸 3부작>을 통해 인도 영화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었다. 레이가 추구하고 이룩해놓은 뉴 시네마는 인도 영화의 전혀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진품’들이었다. 그러나 레이의 영화는 오랜 시간 묵혀있던 인도의 신화적 사상을 토대로 한 영화들만큼 인도 서민들에게 ‘일상적 재미’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1970년대를 지나 80년대 인도 영화계의 침체기를 보내고 90년대 초반부터 인도에서는 본래의 상업 영화들을 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해서 ‘마살라(Masala-힌두어로 양념)’영화의 탄생이 이루어졌다.

로맨스, 액션, 악인 그리고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이 마살라 영화는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영화 안에 한꺼번에 녹아있다. 주로 마살라 영화에는 내러티브와는 관계없이 음악과 춤이 복잡스레 엮여진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 이 장면들은 대부분 앞뒤의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세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반 이상이 정신없는 ‘뮤지컬’ 형식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독특한 인도의 영화에서 그들이 살아왔던 땅에 대한 신화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소개한 사라스와띠와 같은 음악을 사랑하는 예술의 신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인도 신화 속 신들은 노래와 춤을 쉬지 않는다. 인도의 신들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며 자신을 알리고 표현한다. 힌두경전에 기록된 신들의 형형색색의 끊임없는 표현의 방식으로 볼 때, 지금까지 흘러온 인도의 영화들은 신들에 대한 일종의 ‘경배’와 같은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도 영화, 그러니까 마살라 영화의 전체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인도 신화는 기본적으로 ‘유쾌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힌두 사상이 명상과 참된 인간의 본질을 끌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주된 것이라면 그 이면에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단순한 진리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신화 속 인도의 이야기는 늘 권선징악의 형태로 존재한다. 누군가 죽거나 크게 아파도 결국에는 모든 것이 ‘정의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늘 선한 것이 승리하고 악한 것은 고개를 떨군다. 그러나 힌두에서는 ‘불의’도 처절한 응징을 받거나 그것에 상응하는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악한 것도 각자의 사정과 삶이 있으며 그것을 존중해주는 것도 일종의 ‘참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쉬누와 같은 극소수의 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힌두 신들은 악마와도 곧잘 어울리며 가끔씩 서로를 감싸주곤 한다. 이런 ‘모두가 즐겁다’는 정신은 인도 영화들의 줄거리를 가늠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고 마살라 영화에서는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소재이다.

쉬바신의 108가지 동작으로부터 시작해 전통 무용이 생겨났고 그에 대응하는 노래가 생겨났다. 그리고 노래는 어머니의 강인 ‘갠지즈’를 타고 흘러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박혔다. 필자는 인도에서 머무는 동안 다양한 영화들을 수집하면서 한 인도 친구에게 정치적으로 어둡거나 심오한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는 슬쩍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우리가 살면서 가장 기쁨을 누리는 수단이다. 굳이 그곳에서 우리의 일상과 똑같은 어두운 것을 발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도는 잘 짜여진 영화의 세트장이다. 그리고 인도 영화는 ‘진정한’ 판타지이다. 최근의 인도 영화 시장은 사트야짓 레이를 잇는 신예 감독들의 깊은 눈망울로 인해 조금씩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라는 대륙의 마살라 영화는, 늘 그랬던 것처럼 변해가는 인도와는 별개로 여전히 우리에게 영화의 판타지를 선물할 것이다. 인더스 문명이 있기 전부터 내려온 그들의 신화와 영화의 결합은 ‘살아있는 역사’나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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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균



 


예전에 무슨 바람이 들어서였는지 소설 비슷한 글을 아주 어설프게 써서 올렸던 적이 있었다. 인터넷 문학사이트에 연재를 해보려다 사람들 반응이 없어서 딸랑 1회 연재에 그치고 만 불발탄인지라 확실한 장르를 구분 짓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형편없는 글이었더랬다. 분명 머리 속에는 기가 막힌 로맨스 소설 한번 써내서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보겠다는 야심 찬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문자의 형태로 배출되어 나오니 영 허전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하긴, 처음부터 걸작을 마구 양산해내는 예술가가 어디 있을까? 제 아무리 위대한 천재에 대가라 할지라도 때로는 습작을 찍어내기도 하고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는 법이다. 그렇게 완성의 단계에 한발자국씩 다가서다가 성공작도 탄생하고 걸작도 만들어지게 되는 것일 터. 우리가 보아온 예술과 문화의 위대한 유산들은 결국 무수한 습작과 실패의 토대 위에서 이뤄진 것 아니겠는가? 만약에 내가 글쟁이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과거에 썼던 저 소설 비슷한 요상한 글도 완성을 향한 무수한 시도의 기록 중 하나로 나름의 가치를 지니게 될지 모를 일이다.


누구나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다. 바로 ‘지금’이 있어야 미래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온 과거 없이는 현재도 존재할 수 없다. 몇 백만 명의 관객동원, 수십,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해외 수출 및 판권계약들, 거기에 이름난 해외 영화제에서의 수상경력까지. 많은 이들이 현재, 혹은 비교적 근래에 거둬온 한국영화의 성과들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무심하다. 한국 영화는 너무도 빨리 과거의 유산들을 잃어버렸다. 오래된 고전들 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어느 중견감독의 데뷔작이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식으로 찾기 어렵게 된 영화 중에 박찬욱 감독의 초기작 두 편이 있다. 물론 그의 이름을 대중에 널리 알린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이지만 오직 성공작만이 예술가의 이력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 이후 TV 광고에 나와 ‘나는 나를 뛰어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그 감독의 다소 서툴렀던 초창기를 목도한다는 재미도 그렇거니와 대한민국 영화광 세대의 대변자가 어떻게 감독으로 단련되어 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써도 저 두 편의 영화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우리의 첫사랑이었다, [달은 해가 꾸는 꿈]

[달은 해가 꾸는 꿈]은 여러모로 민망한 습작 수준에 그치고 만 나의 유일무이한 소설을 연상시키는 영화이다. 내 글이 그러했듯 박찬욱의 데뷔작도 머리 속의 설계도는 옹골차나 그것을 매만지는 손길은 아직 덜 여물어 있었다.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에서처럼 화면을 꽉 채워 나가는 박찬욱의 스타일은 아직 태동되기 전이었고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처럼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정체성도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말 그대로, 멋진 영화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은 넘쳐 났으나 연출력은 영 서툴렀다. 마음만 앞설 뿐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도통 감을 못 잡는 첫사랑 같은 그런 영화였다고나 할까? 송승환을 제외한 배우들의 연기는 영 심심하기 그지 없었으며 플롯은 갈팡질팡 하는 데다 영상은 애매모호한 이미지들로 가득했다. 여기에 배우 따로, 성우 따로의 후시 녹음이 주는 그 어처구니 없는 느낌이라니.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 이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을 본다는 것은 거물이 되어버린 스타 감독이 만들어낸 품절 직전의 데뷔작을 본다는 감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좀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당시 인기 상종가였던 가수의 인기에 영합한 이승철 뮤직 드라마라 불러도 무방하다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조악한 영화이긴 해도 [달은 해가 꾸는 꿈]에는 데뷔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울컥하는 감정이 스며있다. 아직은 미미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적 정체성을 보완해 주는 것은 이때부터 남다른 기미를 보였던 그만의 간담 서늘한 유머감각과 필름 곳곳에 스며든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애정 고백이다.

피투성이가 된 무훈을 구하기 위해 형 하영이 애타게 병원을 찾는 순간에 뜬금 없이 가축병원을 소개해주는 장면은 박찬욱이란 감독의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볼 수 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데뷔작에서 느와르 풍의 B급 장르 영화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박찬욱은 특유의 비장미까지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가축병원의 침상에 누워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무훈의 입에서 "인생은 정말 잔인해, 평생 개처럼 살아온 나를 이런 데서 죽게 하다니"라는 대사를 흘리게 함으로써 "개처럼 살기 보단 영웅처럼 죽고 싶다"라는 카피로 대변되던 홍콩 느와르 적 비장미에 카운터 펀치를 꽂아버리는 것이다. 거장들이 대를 이어 작성한 컨벤션에는 경의를, 그러나 그들이 묘사한 역사에는 냉소를 (박찬욱 저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 비디오 드롬" 128페이지에서 인용) 보내고자 하는 신예다운 패기라고나 할까. 물론 [달은 해가 꾸는 꿈]은 날카로운 기억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상처뿐인 첫사랑에 불과한 작품이다. 기록적인 흥행참패와 비평적으로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데뷔작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 작품은 평생 단 한번뿐일지도 모를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는 첫사랑, 첫경험이기도 하다. 머리 속을 떠돌기만 하다 손끝을 떠나버린 이미지로써의 영화에 대한 무한한 연정. 그 잡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애틋함이 무훈과 하영 두 남자가 동시에 사랑한 은주라는 인물로 육화 되어 표현된다. 무훈의 장례식 이후 떠나버린 은주가 대중의 스타가 되었음이 하영의 나레이션을 통해 설명되는데 남몰래 그녀를 사랑했던 하영은 그저 은주의 이미지만 뒤쫓을 따름이다.

어느 어두운 극장 안. 무훈이 그러했듯 하영도 결코 오지 않을 여자를 기다린다. 스크린에 환영처럼 펼쳐지는 여인의 모습. 살포시 눈물 짓는 그녀. 끊임없이 복제를 거듭하는 허구의 이미지.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남몰래 바라보던 관음적 행위의 완성. 은근한 곁눈질과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던 여인은 마침내 스크린 위의 천사가 되어 사진작가 하영 앞에 재림하게 되는 것이다. 하영은 비로서 바라보기만 할 뿐 만질 수는 없었던 여자 은주를 껴안는다. 그리고 그녀의 이미지가 투사되는 스크린에 손을 대고 그녀를 느끼기 위해 애쓴다. 이때 영사실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하영의 얼굴 위로 나름대로 고뇌에 차서 데뷔작을 완성했을 신출내기 입봉 감독 박찬욱의 얼굴이 겹쳐진다. 당시의 그에게 있어 영화란 깨어지기 마련인 첫사랑, 결코 만질 수는 없었던 여인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이후에 만든 영화들에 비한다면야 민망하기 그지 없는 작품이지만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여과되지 않은 채로 터져 나오는 서투른 감정들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달은 해가 꾸는 꿈]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지 못했던 신출내기가 쏘아 보낸 수취불명의 연애 편지이다. 그것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진 못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처절했던 외침이었다.


PLAY IT AGAIN CHAN WOOK – [삼인조]

[달은 해가 꾸는 꿈]이 이제 막 데뷔작을 찍은 영화광 세대의 대변자로서 그 특유의 감수성을 보여준다면 [삼인조]는 영화라는 매체와 그 속에서 섭취한 자양분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선 세상을 투시해 나가려는 보다 적극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JSA]를 만들면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스타일을 버렸다고 했던 말한 바 있다. 그 말처럼 [삼인조]는 훗날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게 될 그의 취향과 영화적 자양분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 있는 작품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B급 무비 스타일, 주류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 들이 이 사회에 반기를 들고 벌이는 강탈과 일탈의 도주를 테마로 한 갱스터의 외피를 두른 것을 뜻한다. 외형적 형태뿐 아니라 캐릭터들 또한 장르의 스테레오 타입을 대변하는 인물들로, 총기류를 탈취해 달아난 하드보일드 똘마니, 김민종은 전형적인 사회부적응 갱스터이고 가정에서 무시당하고 경제적 능력 조차 없는 이경영의 나른한 표정과 미지근한 태도는 (화끈한 김민종과 대비되어 더욱 수동적으로 보이는) 어딘가 필름 느와르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근친상간으로 나은 아이에 대한 모성을 보인 다는 점에서 [차이나 타운]의 페이 더너웨이를 연상시키는 정선경은 역시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두 남자를 이용하는 필름 느와르의 팜므파탈이다.

여기에 [고래사냥], [세상 밖으로] 등에서 등장했던 두 남자와 한 여자가 팀을 이루는 설정, 결정적인 순간에 흘러나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흘러간 우리 가요, 영화광적인 감수성이 엿보이는 인용과 전복의 오마쥬들. 결국 [삼인조]는 영화광의 애정으로 1990년대 후반에 재구성한 장르 탐방기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에 비견될 혁명성과 파격성으로 치닫지는 못했지만 분명 [삼인조]에는 이야기꾼으로서 그리고 한국의 영화광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로서 박찬욱의 특색들이 잘 드러나 있다. 물론 감독이 의도한 B급 무비적인 분위기에 적합한 매력을 발산한 배우들 또한 인상적이다. 김민종은 단순 무식하지만 때로는 가련하기도 한 문이라는 캐릭터를 맡아 배우인생 최고의 호연을 보여주며 이경영의 지치고 허무적인 연기와 정선경의 당찬 모습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또 이 영화는 외형적인 면뿐 아니라 시대상을 드러내는 거울로써의 기능 또한 충실하다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영화가 IMF 직전 위기에 처한 일종의 유사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란 점에서 드러난다. 이들 세 인물은 하나같이 소외 당한 인물들이다.

안은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아내에게도 무시당하며 마리아는 아버지에게 강간당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문은 그나마 콩가루 같은 가정도 없는 고아이다. 가족의 의미가 퇴색되고 서서히 붕괴되는 시점에서 바로 그 붕괴에 의한 상처를 간직한 인물들이 다른 유대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해피 엔딩을 예감할 수도 있지만 감독은 이러한 기대감마저 깡그리 부숴놓음으로써 가속되는 시대의 불안감을 표출해내고 있다. 애초에 문의 억지로 인해 이루어진 유사가족, 그리고 그 내부에서조차 불신이 횡행하니 오래 존속될 리 만무하다. 결국 안은 유사가족이 아닌 혈연으로 연결된 부권의 행사를 위해 떠나가고 남겨진 인물들은 붕괴 속의 붕괴, 소외 속의 소외라는 이중고를 맞는다. 신앙과 믿음의 상징인 성당이 바로 이 배반의 장소로 활용되는 것은 이래서 의미심장하다. 이에 반해 배반 혹은 비극의 장소로 활용되곤 했던 창고/폐공장은 남은 이들이 재결속을 다진 다는 의미에서 차라리 행복하다. 그 상태로 남아있는 자들의 유대만으로 결속을 이어갈 수 있다면 다행이련만 애초에 이름부터(문, 안, 마리아) 정체불명이었던 이들이니만큼 알 수 없는 운명의 풍랑에 내던져 지는 것 또한 숙명일터. 아이큐 80에 걸맞지 않는 기발한 방법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문은 그가 여태껏 살아온 땅 위에 발 디디지도 못한 채 헬기 속에서 창공을 떠돌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두 남자를 이용해 아이를 되찾고 살아보려 했던 마리아는 다시 아이를 찾을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하게 된다.

그럼 이 유사가족을 붕괴시키고 부성애를 따라나선 안은 어떠한가? 우발적으로 결성되긴 했으되 나름의 신뢰가 있었던 유사가족을 붕괴시킨 그는 자신의 아내를 살해함으로써 친 가족마저 붕괴시킨다. 비록 자살을 기도하려는 순간에 그의 딸이 살아나긴 하지만 목에 줄을 건채 흔들리는 걸상에 몸을 의지한 위태로운 모습의 그가 딸을 제대로 지켜나가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안의 위태위태한 모습은 분명 [석양의 무법자]에서 목에 줄이 걸린 채 블론디를 외쳐 부르는 투코의 모습에서 따온 것일 터. 허나 그 용도는 판이하게 다르다. 구해줄 이는 없고 까딱 잘못하면 목에 건 줄에 의해 질식사할지도 모르는 이 위기의 순간이 1990년대를 살아가는 아웃사이더의 자화상, 더 나아가 IMF로 붕괴되어버릴 빈민층 가정의 모습이었다고 한다면 너무 비약이 심한 것일까? 그러나 영화는 시대와 결부되어 해석되기 마련이고 박찬욱 감독이 추종하던 B급 영화는 단순히 대중의 통속적 취향만 쫓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유하던 이들의 정서마저 대변하는 것이라 할 때 [삼인조]는 싸구려 문화들을 통해 싸구려 인생의 비애를 이야기한 훌륭한 케이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박찬욱 버전의 [비열한 거리]?


용만큼 개천도 중요하다.

누가 뭐라 했든 어차피 선택은 보는 이들의 몫이다. 특정 예술가의 전작을 꿰어야 할 의무 따윈 어느 누구에게도 없을뿐더러 그것이 의무처럼 되어서도 곤란하다. 어차피 예술은 취향과 선택이지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씩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대한민국의 문화 예술적 토양이 누군가의 발전적인 변화를 지켜보는 소소한 재미마저 앗아갈 만큼 척박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슈퍼 히어로의 기원만 되짚어 볼 일이 아니다. 유명 인물의 생가터만 보존 할 일도 아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자주하는데 왜 정작 용을 잉태시킨 개천은 무작정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그것이 훗날을 위해 닦여진 또 다른 길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가능성을 너무도 쉽게 저버리고 만다. 창대한 나중만큼 미약한 시작 또한 중요하다. [달은 해가 꾸는 꿈]과 [삼인조], 이 두 편의 영화는 분명 미약한 시작에 불과했던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지 않아 커다란 족적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지금, 혹은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 우리는 저 두 편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바로 이 영화들이 영화감독 박찬욱의 시작과 영화광 세대의 행동개시를 알리는 요람과도 같은 작품이었다고 말이다.


PS : 마치 '델마와 루이스'의 하비 키이텔처럼 이들 삼인조를 뒤쫓는 형사로 등장하는 장용, 그리고 불륜을 저지르는 안의 아내 역의 김부선 외에도 [삼인조]에는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이 깜짝 등장한다. 안이 색스폰을 팔러 간 낙원상가 악기상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류승완 감독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함께 등장한 그의 지기 박성빈이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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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진보신당 홍보대사로 활약했던 배우 김부선을 만나다


모든 실천은 분노에서 출발한다. 부당한 사회 현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 진보신당 홍보대사로 위촉돼 이번 총선에서 발로 뛴 배우 김부선도 다르지 않다. 그녀가 대마초 비범죄화를 부르짖고, 한미 FTA 반대 시위에 발 벗고 나섰던 것도 순전히 한국 사회에 대한 분노 탓이다.

이제는 '정치적'이란 수식이 낯설지 않은, '진보신당' 홍보대사였던 김부선을 총선 직후 만났다. 진보신당과 정치권, 방송사에 대해 논리정연하지는 않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분위기에서 왜 그녀가 진보신당 홍보대사직을 수락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체력이 달렸고, 돈이 달렸다... 돈, 정말 필요하더라"

섹시하고 화려한 이미지로 부각되어 온 김부선은 의외로 인터뷰 내내 비정규직임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었다. 실제로 '대마' 배우란 주홍글씨가 여전히 그녀의 발목을 붙잡아 수차례나 캐스팅이 좌절되며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던 경험도 털어놨다.

이제 '정치적'이란 수사를 거부하지 않는 김부선.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한국사회의 피해자임을 역설하고 있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벗어난 배우 김부선의 투쟁은 분명히 현재진행형이다.

다음은 김부선씨와 나눈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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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뒤풀이는 잘했나요.

"중앙당 갔다가 12시에 빠져나왔어요. 안 가려고 했는데 궁금해서 가보니까 아무도 없더라고요. 멋있게 우아하게 웃음 잃지않고 있다가 막판에 기자들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XX, 진보신당 노회찬 보좌관 나와서 무릎 꿇으라 그래' 그랬어요(웃음). 그랬더니 나한테 맞겠다 싶었는지 기자들이 카메라도 철수해서 가버리는 거예요(웃음). 너무 성질이 나는 거예요. 정말 전국으로 열심히 뛰었고 순수한 자원봉사였는데…."

- 자원봉사였어도 분명히 정당 활동이니까 힘든 점이 있었을 텐데요.

"상처요? 그보다 우선 체력이 달렸고, 돈이 달렸어요. 돈은 정말 필요하더라고. 마음 같아서는 빌릴 수만 있다면 500만원 정도만 있었으면 싶더라고요. 돈 하고 체력도 달리고….



거기다가 영화는 많은 스태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줄 알잖아요. 그런데 너무 늦게 시작한 신생 정당이다 보니까, 솔직히 조직이 과소평가도 되는 거예요. 애기들이 하는 일이 미숙하고 그런 것처럼, (진보신당이) 아마추어처럼 보이니까, 아주 이기적인 생각으로 난 아직도 가입을 안 했어요. 우리 연예인 자체가 열정적이고 일단 뛰어들면 퐁당 한다고, 순수하게…."

- 총선을 준비하며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총선 시작하면서 모든 걸 다 끊고 정치에 중독돼서 뉴스하고 인터넷 검색만 했어요. 그러니까 쏠쏠 알아오는 동시에 분노가 같이 와요. 시대의 부름 같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으니까 두려운 거예요. 마치 종교에 빠진 광신도처럼. 정치가 그런 중독이 있는 거 같아요. 또 유일한 공통점이 함성에 '뻑'이 간다는 거,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러니까 맛이 간 정치인들이 많은 거 같고, 현실을 모르고 환각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요."

"표 깎아먹지 않을까 하는 피해망상에 젖어 울기도 했다"

- 진보신당 홍보대사 직을 수락한 건 노회찬 의원과의 친분 때문이었나요.

"당연히 그쪽에서 먼저 전화가 왔어요. '도와주실 거죠?', 그래서 '저 감방 갔다 나오면서 말했잖아요'라고 답하면서 흔쾌히 수락을 했죠. 그게 고마웠던 게 결정적이지만 평소 노회찬 의원 활동이 두드러졌어요.

항상 거리에서 추울 때 (노 의원을) 만났었죠. FTA 문제나 스크린쿼터 축소 때요. 다른 국회의원들은 정당 눈치 보고 대중들 눈치 볼 때, 그 때 민노당 사람들하고 심상정·노회찬 의원은 거리에서 보이더라고요. 아, 좀 미안하잖아요. 그 때 영화인들이 밥그릇 문제 되니까 농민들에게까지 관심 갖는 건 당연해요. 저도 2년째 비정규직이고 거리로 뛰쳐나가니까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해가 되고 뭉쳐지는 거죠."

- 홍보 대사 활동을 자체 평가한다면?

"(진보신당 내에서도) 아직은 보수적인 사고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김부선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숨어있는 유권자들이 있거든요. 그 숨은 표를 꺼내야 했는데. 미혼모,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약물 중독자 같은 소수자들 말이에요. 한 집 건너 한 집 연결 안 되어 있는 집이 없을 거예요. 내 친구 딸·아들일 수도 있고. 근데 김부선이가 표를 깎아 먹지는 않을까 하는 엄청난 피해망상에 젖어서 이틀을 울기도 했어요. 결과가 좋다면야 상관없었겠지만. 끔찍한 것이…, 둘(노회찬·심상정 의원) 중 하나는 (당선될 줄) 알았거든요."

- 지방으로도 유세를 많이 다녔더라고요. 힘들진 않았나요?

"전 노회찬 의원밖에 모르고 시작한 거거든요. 또 사실 좀 전에 돈 얘기는, 비례대표 후보들조차 8일까지 명함이 없었대요. 조직 시스템 자체가 체계적이지 못했던 거죠. 제가 부산에서 그날 바로 제주도, 거기서 청주·광주까지 갔다 왔거든요. 이 사람들이 경험이 없으니까 여기 가라면 여기 가고, 저기 가라면 저기 가고…. 난 그저 노원에서 노회찬씨 얼굴마담이나 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런 게 좀 힘들었어요. 저만 느끼는 정서나 외로움이 있었죠."

- 아무래도 좀 더 스타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환경 탓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서운하지는 않았나요?

"그럼요. 저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고 유치하기 그지없고…. 그 쌈마이 4류 정치인 못지않은 5류더라고요. 의도하지 않게 문소리씨랑 함께 유세를 한 적 있어요. 처음이었거든요. 그리고 대중들이 그렇게 많은 자리에 (내가) 갈 기회도 없었고요. 시위 현장에 나가는 것이 꼭 무슨 거창한 정치의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외롭고, 제가 요구하는 이슈랑 맞으면 식구 같고 내 편 같고, 그런 게 있잖아요. 일정보다 일찍 가서 시장통에 숨어서 무슨 얘기하나 보고 있는데 심상정 의원이 불러요. (그 때) 문소리씨를 처음 봤는데…, 그 친구도 망설이다가 유세장에 나온 거에요.

(그 이후) 일말의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대한민국 배우들, 정치적인 사안에서 몸 납작하게 엎드리는 배우들을 밖으로 끌어들이고 싶어요. 그게 건강해지는 사회 아니겠어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죽어도 금기였잖아요. 자기랑 의견이 맞는 당에 가서 활발하게 알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수잔 서랜든, 얼마나 멋있어요. 제 모델이에요."

- '진보신당' 이름을 걸고 활동하면서 개인적인 의견과 배치가 되는 건 없었나요? 

"정치인들이 항상 반 박자가 늦어요. 감각이 이렇게 대중들보다 늦어서 되겠느냐 싶었죠. 제가 전북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와 만나서 홍보대사들끼리만이라도 만나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어요. 변영주·박찬욱 감독, 진중권 교수 등등 있잖아요. 근데 또 그런 여지가 없었었는데 이해해야죠. 시간이 불과 열흘밖에 없었잖아요. 그들이 우리를 잘 이용하지 못한 거죠. 판을 깔아주고 우리 길만 터주면 올인 했을 텐데. 그래서 상처받는 연예인들 많았을 거예요. (두 의원이) 떨어져서…(웃음)."

- 이렇게 정치적인 활동에 열심히 뛰어들게 된 계기는 뭔가요?

"헌법재판관 9명이 전원일치로 합헌 판결을 냈을 때, 전투력이 상승됐죠(김부선은 지난 2005년 대마초 관련 처벌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낸 바 있다). 어떻게 재판관이 모두가 똑같은 의견을 낼 수가 있어요, 공산당도 아니고. 제가 20년 동안 공권력에 억압과 감시를 받고 있는데. 기가 막힌 거죠. 사람들은 여기는 한국이다, 외국 가서 펴라고 하는데…. 그럼 전 여긴 지구다, 우린 지구인이다, 말하고 싶어요."

- 요즘 문화계 돌아가는 분위기는 어떻게 느끼세요?

"유인촌 장관이 자기네가 만들어 놓은 법은 안 지키고 문화예술인들 나가라고 할 게 아니에요. 자기 취향에 맞지 않다고 근거 없이 자르는, 그런 웃분들을 속아내는 게, 이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지금 한나라당 잡고 있는 감독협회 사람들이 다시 한몫해 보겠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죠."

"진짜 '쌈마이' 국회의원 역할 잘할 자신이 있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제 작품 얘기를 해 보죠. 그간 작품 활동이 뜸했던 이유가 드라마 촬영 직전까지 갔다가 퇴출당했다고 들었는데요.

"오늘날 한예슬을 탄생시킨 드라마 <환상의 커플>, 제가 희극 연기에 자신이 있어서 캐스팅이 된 뒤로 준비도 많이 했는데 윗선에서 잘랐대요. 대마초 피우는 배우라 이미지가 안 좋다는 거죠.

시청자들이 왜 저런 여자를 썼느냐는 말에 총대 메기 싫으니까 다른 방송국 가서 한 작품만 하고 오면 자기가 써주겠다고 했데요.

사실 <달자의 봄>이 치명적이었어요. 근데 웃기는 건 KBS에서는 <드라마 시티>에 출연해서 연기상 단막극 연기상 후보에도 올랐거든요. 그러니까 현장에서 뛰고 있는 감독들은 김부선 연기 좋다고 후보에도 올려줘도 높은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 대마초 핑계로 대는 거죠."

- 드라마는 막힌 상태라 영화 쪽만 바라보고 있는 건가요?

"아니죠. 한두 달 전에 MBC에서 또 연락이 왔어요. 시즌제 드라마에 출연해 달라고. 이번에도 출연결정까지 다 했다가, 기획한 국장이 저번 그 국장이라, 제가 죄송하다고 안 한다고 했어요. 그 사람 때문에 제가 자살까지 생각한 사람이고, 그 사람이 기획한 드라마 할 수 없다고 했죠. 당장 아쉬워도 그게 저예요. 계산을 못 하겠어요. 잠깐 숙이면 되는데…. 그건 옳지 않잖아요. 뭐 제가 <히트>에도 잠깐 나가고, <별순검>도 케이블 사상 최고의 시청률이 나왔거든요. 절망했다가 이제 분발해야겠다는 희망을 가졌어요."

- 그런 아픔을 이제는 연기로 풀어야 할 텐데요.

"조만간 영화인들의 창작 욕구가 불타오를 거예요. 이명박 대통령이 진중권씨가 하는 것처럼 개그 소재를 너무 많이 주기 때문에…. 정치 영화나 블랙 코미디가 많이 나올 거라고요. 그러면 진짜 '쌈마이' 국회의원 역할 잘할 자신이 있어요(웃음)."

- <별순검> 같이 좋은 작품으로 많이 활동해야겠어요.

"그게…, 우리는 '비정규직'이고 (생활이) 불안해요. 일이 없으니까 자꾸 불안한 거죠. 일만 계속 있으면 우울증 증세도 없어질 텐데…. 웃분들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전 대본 하나 받으면 산 속에 들어가서 대사 하나하나 파고들어요. 다 직업병이죠.

우리 딸이 뭐라고 하냐면, 완전 밑바닥 아줌마나 처량하고 한 많은 여인네를 연기해야 되는데 매번 마담이나 들어온다니까 '엄마가 섹시하고 예쁘니까 그렇지' 그래요. '엄마가 학교에 갔다오고 나서 과 선배들이 엄마가 몸매가 더 예쁘다 한다고, '엄마 대한민국 꽃미남 청춘스타 다 만나봤잖아' 그러면서…. 가만 생각해보니까 비록 영화 속이지만 제가 추레하면 같이 붙이질 않잖아요. 어떻게든 살아날 거예요. 작품은 또 때가 되면 할 수 있으니 초조하지 않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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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최근 <포비든 킹덤>의 홍보를 위해 베이징에서 기자 간담회를 연 성룡과 이연걸은 논란이 되고 있는 올림픽과 중국 관련한 질문에 대해 상반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성룡은 티벳사태와 관련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의견을 피력한 반면,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진 이연걸은 티벳 사태나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한 질문은 일절 받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S#2 <포비든 킹덤>의 일반 시사회장,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던 극장 안에 유독 한 쌍의 중년 부부가 눈에 띄었다. 그들 중 주위 시선을 아랑곳 않던 남편은 상영 시간 내내 부인에게 성룡과 이연걸의 '무협' 대결의 내용을 설명하기 바빴다. 아마도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던 그 중년 남성은 '외팔이' 왕우와 '브루스 리' 이소룡을 거쳐 '주먹코' 성룡과 '소림사' 이연걸로 이어지는 무협 스타들을 섭렵해왔던 전형적인 남성 팬이리라.

S#3 5월 초 개봉하는 <스피드 레이서>에서 조연을 맡은 '비' 정지훈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워쇼스키 콤비가 제작하는 <닌자 어세신>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됐음을 밝히며, 이 영화가 동양적(?)인 무협 영화에 가까울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한 메이저 스튜디오 드림웍스는 중국의 마스코트 팬더가 쿵푸를 배운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를 올 여름 대대적으로 전세계 배급한다. 잭 블랙, 안젤리나 졸리 등 특급 스타와 함께 구색에 맞춰 할리우드의 중화권 대표 배우 성룡, 루시 리우를 목소리 배우로 캐스팅했다.

<포비든 킹덤>을 반영하는 세 가지 장면

<포비든 킹덤>을 둘러싼 이 세 가지 장면은 꽤나 폭넓은 시각을 조망케 해준다. 우선 <포비든 킹덤>이 홍콩에서 출발, 전세계에 팬을 거느리게 된 두 액션스타를 내세우고 중국과 미국·한국 스탭들이 뭉친 다국적 스탭을 규합한 7000만 달러짜리 할리우드 영화라는 걸 염두에 두실 것.

먼저 성룡과 이연걸의 입장 차이는 개인의 정치·종교적 견해 차이일 뿐이다. 매일 같이 카드 광고에 등장해 베이징 올림픽을 홍보하는 성룡과 달라이 라마를 직접 만나기도 했던 불교 신자 이연걸의 영화 외적인 간극.

그랬거나 말거나 <포비든 킹덤>은 북미에서 4월 셋째주에 주말 2000만 달러를 거둬들이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이 티벳을 억압하거나 말거나, 성룡이 중국 홍보 대사를 자임하거나 말거나, 미국 관객들은 두 액션스타의 무협 영화에 기꺼이 90분과 입장료를 지불한 것이다.

고전 <서유기>를 차용한 <포비든 킹덤>은 비록 표피적이고 각색된 시각일지라도 중화권 문화의 첨병으로 기능할 것이다. 그것이 비단 <서유기>와 '무협' 액션, 두 액션 스타에 대한 관심에 불과할지 몰라도, 전세계 관객들이 보는 것은 일단 중국의 고비 사막과 둔황·우이산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다.

시기상으로 베이징 올림픽 공식 홍보영화처럼 보이는 이 작품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 당국일 것이다. 마치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랄까.

두번째, 무협 아이콘 성룡과 이연걸. 80·90년대에 성룡은 이소룡을 잇는 차세대 액션 아이콘이었고, 아시아를 주름잡는 흥행 보증수표였다. 중국에서 건너 온 이연걸은 중국 무술 대회 출신인 정통파로 <황비홍> 이후 '무협' 영화 대표배우로 자리 잡았다. 경극학교 출신인 성룡이 잘 짜여진 합과 아크로바틱한 코믹 액션을 장기로 삼았다면 이연걸은 선굵은 쿵푸를 장기로 삼아왔다.

중국 무협 영화의 계보를 잇는 두 배우의 '역사적'인 첫번째 조우는 잠자고 있던 전세계 옛 홍콩 무협영화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이며 마케팅의 초점이 여기에 맞춰져 있다. <포비든 킹덤>은 엄격한 외국영화 쿼터제를 적용하는 중국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이사·필리핀을 시작으로 한국과 홍콩에서 순차적으로 개봉한다. 한국과 동남아시아는 옛 홍콩 영화의 금맥과도 같은 시장이었음을 상기해보자.





마지막으로 할리우드의 무협코드에 대한 애정 공세. 원화평 무술 감독이 참여한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이 일으킨 미국 내 무협 액션에 대한 열광은 타란티노의 <킬빌>로 방점을 찍었고, 지극히 미국적 장르인 3D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가 나오는 지금에 이르렀다. 미국 내에서 B급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던 홍콩 무협물이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 의해 미국식으로 재창조되는 순간을 맞은 것이다.

물론 이건 명백히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을 노린 포석이기도 하다. <닌자 어세신>의 액션 연기를 위해 몸만들기에 한창이라는 정지훈이 여러 인터뷰에서 <스피드 레이서>의 캐스팅이 할리우드가 아시아 시장을 염두에 캐스팅이란 걸 솔직히 인정한 것도 시사적이다. 돈 되는 시장과 소재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할리우드의 영민함이 이제 성룡, 이연걸을 대체할 인물들을 찾고 있는 셈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런드리 워리어>의 장동건,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전지현, <G. I 조>의 이병헌은 아시아 시장을 위한 포석인 동시에 '액션'을 소화해야 하는 캐릭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연기하고 있다. 그 '액션'이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친숙해진 중화권의 '무협' 액션이 될 거란 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지점이다.

'무협의 제왕'들, '여의봉 원정대'로 중국 떠돌다

서론이 길었다. 이러한 산업적인 배경을 메모리에 입력하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영화의 오프닝, 손오공으로 분한 이연걸이 천상에서 하늘을 날며 병사들과 싸움을 벌인다. 다소 튀는 CG로 덧칠된 천상을 배경으로 <서유기>의 간략한 스토리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성룡의 영어 내레이션이 깔린다.

뒤이은 타이틀 시퀀스. 주인공 소년 제이슨(마이클 안가리노)의 방에 붙여진 옛 홍콩 영화들의 포스터를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취권2>에 출연했던 무술감독이자 배우인 유가량, <킬빌2>에서 우마 서먼의 스승이었던 유가휘, '외팔이' 와우와 이소룡 등이 차례로 스쳐가고 음악 또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그 때 그 노래다. 그러니까 <포비든 킹덤>은 홍콩식 무협물에 애정을 바치는 판타지물이라는 걸 시작부터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내용은 마니아들이 아닌 가족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여의봉 원정대'랄까. 쿵푸 영화 마니아인 '고딩' 제이슨(마이클 안가라노)이 차이나타운의 한 가게에서 여의봉을 발견한 뒤 빨려들어 간 곳은 미지의 '포비든 킹덤'. 손오공이 라이벌 제이드 장군(예성)의 저주로 봉인되어 있는 <서유기>의 세계다.

정신을 차린 제이슨은 무술의 절대고수 루얀(성룡)과 란(이연걸)을 만나 자신이 500년 전 봉인된 손오공의 저주를 풀 예언의 인물임을 알게 되고 곧 수련에 들어간다. 이후 제이슨과 두 사부, 그리고 제이드 장군에게 부모를 잃은 골든 스패로우(유역비)가 함께 떠나는 여정과 제이드 장군과의 대립, 로맨스 등이 적절히 녹아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