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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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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하고, 얼큰한 영화다. 잘 끓인 된장국처럼 농도가 짙고, 해장술처럼 얼큰해서 보고나면 엔돌핀이 팍팍 도는 영화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관객을 배꼽 잡게 만들고, 한껏 영화에 취하게 만든다. 독립영화 장편치고 이렇게 웃긴 영화를 만난 건 실로 오랜 만이다. 1000만원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노영석 감독의 첫 작품인 <낮술>은 대박예감이 팍팍 든다. 예감은 관객 반응을 보고 직감 할 수 있었다. <낮술>은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두 번째로 관객과 만났다. 상영이 있던 날 극장 안에는 웃음이 해일이 되어 관객을 쉴 새 없이 덮쳤다. <낮술>이 만들어 놓은 웃음바다에 푹 빠진 관객들은 몸과 마음이 흠뻑 젖었을 게다.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올해의 독립영화 한 편, 노영석 감독의 <낮술>이다.

<낮술>은 반가운 영화다. 그간 우울한 몽상가라도 되는 양 독립영화가 장편 영화들은 청춘들의 성장통, 비정규직, 탈북자, 노숙자,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의 쓰라림을 노래하였다. 대부분이 그랬다. 누구하나 웃어야 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고, 웃기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이상한 불문율이었다. 현실이 심각하다고 영화마저 심각하다면, 우리는 극장에서도 눈물을 흘려야 한다. 한두 편이면 괜찮지만 나오는 영화마다 심각하고, 영화가 두통을 만들어내는 장본인들이었다니. 참 독립영화 볼 맛이 안 났다. 가뜩이나 FTA다 '미친소'다 해서 세상이 아수라장 같은데. 세상이 우리를 속여도 영화는 우리를 속이지 말고 응원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관객은 우울한 현실을 극장에서 보기 싫었는지 독립영화 극 장편을 도외시 했었다. 아닌가? 반면, <낮술>은 익숙한 이야기를 능글맞게 하는 영화다. <낮술>은 명랑 그 자체다.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인 텍스트도 없으며, 세상에 대한 저항이나 반항 혹은 고민이 등장하지 않는다. 되려, 그 고민들을 일상의 저편으로 날려버리고 우리만 남은 일상의 이편에서 한 바탕 축제를 벌인다. <낮술>은 웃음의 카니발이다.

일상이 영화가 된다. 이 영화에는 남자의 욕망, 여행, 여자, 술, 담배와 같은 일상적인 것으로 가득하다. 남자의 로망은 여자가 남자를 낚을 때 쓰는 미끼가 되기도 한다. <낮술>에는 여자를 욕망하는 남자의 소극적인 심리와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의 적극적인 심리묘사가 공존한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혁진. 혁진의 친구들은 혁진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정선으로 여행을 가자고 한다. 다음 날 정선에는 혁진 혼자 도착하고, 여기서 부터 <낮술>의 목적지 없는 로드무비는 시작된다. <낮술>은 욕망과 일상에 관한 영화이다. 혁진은 혼자 머무르던 펜션에서 혼자 놀러 온 여자를 만나고, 그녀에게 작업을 걸어볼까 생각한다. '옆방여자'는 한번 보고 눈길이 머무르는 여자다. 흰색 스웨터를 걸치고, "저기요~ 담배 한 대만 빌려주세요." 혹은 "저기요~ 저 술 한 잔만 사주세요."라고 접근해오는 여자다. 남자라면 누구나 이런 여자에 살살 녹기마련. 거기다가 장소는 한적한 산골의 펜션이다. 별로 할 일도 없고, 방에만 있으려니 별별 생각이 다 난다. 하지만 영화는 혁진의 욕망이 보기 좋게 배반당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어간다. 노영석의 웃음코드는 욕망과 배반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기대하던 상황이 어긋나면서 주인공 혁진은 비참하게 무너지고, 관객은 그 상황을 즐긴다. 옆방여자는 알고 보니 팜므파탈이었고, 버스터미널서 만난 이상한 여자는 하이쿠를 읊는 자기 멋에 취한 사람이다. 혹시나 꿈에 나타날까봐 무서운 여자. 안 되는 사람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혁진은 게이에게 겁탈당할 뻔도 하고. 참 되는 게 없는 여행이다. 여행 중 혁진은 매일 술을 먹고, 술을 먹다가 정신을 놓기도 한다. 술을 먹으면 개가 되고, 개가 된 취객을 감상하는 우리들은 그 덕에 즐거울 수도 있다. 또는 함께 술을 먹으면서 같이 웃고 떠들 수 있다. 노영석 감독의 <낮술>은 전자와 후자를 모두 포함하는 영화다. 실로 영화를 쥐고 흔들면 알코올이 뚝뚝 떨어 질만한 영화다. 영화에 취하고 싶은 자는 <낮술>을 보라. 그리하면 술에 취한 듯 웃다가 자지러질 것이다.

<낮술>은 폼 잡으면서 진지한 척하는 영화가 아니라, 스스로 웃으면서 함께 웃자고 제안하는 영화다. 여기에는 일상이 있고, 일상에서 오는 소박함이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솔직하고 소탈하며 거짓을 모른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오래두고 가까이 만나는 친구를 대하는 편안함이 생긴다. <낮술>은 다가오는 인디포럼에서도 상영된다고 하니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아마도, 가볍게 웃고 오랫동안 미소 지을 것이다. <낮술> 때문에.




1,000만원으로도 영화 만들 수 있다!


첫 상영 때 관객 반응이 폭발적이던데, 느낌이 어떤가?

표가 없어서 관객과 함께 보지는 못했다. 나중에 지인들에게 듣고서야 관객 반응을 알게 되었다. 관객들과 같이 보고 싶었는데, 보고 나면 GV때 떨릴 것 같아서 보지 않았다. 관개들이 많이 웃어줬다니 기분이 되게 좋다.


서울대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음악을 하다가 영화를 하게 되었다. 이력이 참 다양한데.

중학교 때는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도 좋아하게 되었다. 미술보다 더 오래 했던 건 음악이었다. 미대를 갔던 건, 음대를 갈 실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음악 다음으로 좋아했던 게 미술이라서 망설임 없이 미대를 지원할 수 있었다. 미술이나 음악이나 단지 표현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직접적이지만 그림을 보면 좀 더 느긋하게 생각하면서 볼 수 있다. 두 가지가 합쳐지면 영화로 표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표현 방식이 너무 좋아서 영화를 택하게 된 것 같다. 고등학교 때 "32살이 되면 영화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음악적 꿈은 못 이뤘지만 계획 했던 대로 되어서 너무 좋다.


한겨레 영화 학교 출신이다. <달콤 살벌한 연인>을 만든 손재곤 감독도 한겨레 출신인데, 어떤 과정을 공부했고, 동기들과의 관계는 어떠했나.

연출 공부를 하겠다는 욕심보다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길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한겨레에서 <낮술>에 배우로 출연한 이란희 씨도 만날 수 있었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인연을 만들어준 곳으로 기억에 남는다. 결과적으로 <낮술>을 만드는데 기여를 한 것 같다.


란희 역할로 출연한 이란희 씨는 김곡,김선 감독의 <뇌절개술>에 출연하신 분이다. 이 영화에서는 조감독으로도 참여하셨는데.

많은 부분에 도움을 주셨다. 척 보면, 굉장히 기가 드세 보이는 얼굴이지만 여성적이고 세심한 부분이 많으신 분이다. 조감독 하면서 스크립터도 그분이 해주셨고, 연극을 하신 분이라 배우들 캐스팅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게이로 출연한 분이 남편분이시다.(웃음) 또, 편한 누나라서 개인적인 고민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배우와 전 스텝들이 모두 술을 먹고 영화 촬영을 했다고?

그거는...(머뭇) 나중에 홍보를 하게 되면 특별히 내세울게 없을 것 같아서 여러 가지로 고민하다가, "전 스텝이 술을 먹은 영화"라고 컨셉트를 잡았다. 그래서 아예 작정하고 스텝들에게 먹이기도 했다.(웃음) 배우들에게 술을 먹였던 건, 짧은 시간 안에 자연스러운 연기를 뽑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술 먹은 상태를 찍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극 중 '옆방 여자'를 연기한 배우는 나랑 아침까지 술 마시다가 촬영에 들어가기도 했다.


영화 속에 감독님의 경험이 섞여 있는 것 같던데.

경험적인 게 섞여 있지만 조금 과장된 게 있다.(웃음) 영화 속 주인공인 혁진이 정선의 한 펜션에 머무르는데, 나도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 정선의 펜션에 간 적이 있다. 돈을 써야 그게 아까워서라도 무언가를 할 것 같았다. 눈이 엄청 오던 날이었는데, 정선을 가기위해서 기차를 탔다. 흔히들 남자라면 '옆자리에 누가 앉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나. 진짜로 누가 앉긴 했는데 조금 애매한 분이었다. 얼굴이 예쁘기는 한데 나이든 유부녀. 나는 시나리오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바깥 경치를 구경하는데, 그리고 그걸 즐기고 있는데. 자꾸 말을 거는 거다. 그 분은 자기가 서울에 살았다는 걸 강조하면서 내게 인지를 시키려고 하더라. 나는 머쓱해 하면서 "내 알겠습니다" 했지. 그 분의 캐릭터가 극중 란희 캐릭터에 약간 투영되었다. 진평역에 내려서 펜션까지 걸어간 것도 영화 속 혁진의 모습과 같다. 걸어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길이 너무 적막해서 그런지 무서운 생각이 들더라. 이런 날 산짐승이 나와서 날 죽이면 아무도 모를 건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게 영화 속에는 '호랑이 사건'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펜션에 묵을 때 옆방 여자에 대한 캐릭터를 구상하게 되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여관이나 펜션에서 혼자 있다 보면 옆방에 소리가 들리면 궁금해 하는 거.(웃음) 영화 속 많은 이야기들이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거다. 혁진이 게이에게 당하는 에피소드도 약간의 경험담이다.


한국 영화에 대한 오마쥬가 많이 보인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에서 힌트를 얻었다. <생활의 발견>을 볼 때 깔깔대면서 봤는데. '아! 이런 걸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예지원씨가 한국무용하고, 살사 춤을 추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엉뚱하면서도 생뚱맞은 상황들을 너무 좋아한다. <낮술>을 만들면서 홍상수 감독을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아마도 무의식중에 홍상수 감독에 대한 내 애정이 묻어나지 않았나 싶다. 영화 속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봄날은 간다>는 아직 보지 못했다. <구타유발자>는 낮술을 너무 좋아해서 들어간 것 같다. <구타유발자>에서 강을 끼고 삼겹살 먹는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영화를 보는 데 완전 죽겠더라. 이문식이 교수님에게 생 삼겹살 권하는데, 난 그것도 먹고 싶더라.(웃음) 사실 구타유발자는 인연 아닌 인연이다. 예전에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시를 한 적이 있다. 발표가 나던 날 확인해보니, 내 이름이 장려상에 올라와 있는 거다. 그래서 나는 붙은 줄 알았지. 헌데 작품을 보니 내 작품이랑 이름이 달라. 알고 봤더니 동명이인인 거다.(웃음) 그리고 나서 그럼 1등은 뭘까 하고 봤더니 <구타유발자>였다. 내가 떨어질 정도였으니 이 작품은 죽이겠구나 싶었지. 물론 나중에 영화를 봤더니 '야~이래서 뽑혔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감독님이 횟집 주인 역할로 잠깐 등장한다. 히치콕처럼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고 싶었나?

그거는 의도 한 거다.(웃음) 연기를 너무 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주인공인 혁진 역할을 하려고 했었는데, 연출하면서 연기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이 힘들 것 같아서 '옆방 남자' 역할을 하려고 삭발까지 했었는데, 그 역할도 연출이랑 병행하기에는 힘들 것 같더라. 아, 연기는 정말 해보고 싶더라.(웃음)


여성캐릭터가 인상적이다. '옆방여자'는 남성을 유혹할 만한 캐릭터이다. 혁진에게 상처를 주기는 하지만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꼬시기만 하는 여자. 요즘 표현을 빌리면 "남자를 어항 안에 가두는 여자". 쉽게 말하면 남자들이 자기를 짝사랑하게 만들어놓고는 나 몰라라 하는 여자다. 예를 들어서 남자가 혼자 짝사랑하다가 마음을 접으려고 하는데 딱, 그 때 전화해서는 남자 마음을 흔드는 여자. 미워도 미워할 수가 없는 여자들이 있다. 그런 캐릭터를 한 번 그려 보고 싶었다. 영화에서 옆방 여자가 혁진에게 다가와 술 사달라고 조르는데, 혁진의 다리까지 만진다. 그러면 남자들은 "이 여자가 날 좋아하나?" 하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순진한 남자를 혹하게 하는 여자!


버스 정류장에 있는 슈퍼마켓 사장님은 현장 캐스팅인가? 할머니의 대사 리듬감이 매우 특이하다.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와 이영애에게 밥을 주시던 할머니가 생각 날 정도로 구수하고 좋더라.

허름한 슈퍼를 알아보다가 스텝들이 찾은 장소다. 처음에는 스텝이 사장님께 부탁을 하니 거절 하시는 거다. 그래서 직접 찾아갔더니 화장을 곱게 하고, 촬영할 준비를 다 하고 계시더라. 촬영하면서 너무 즐거워하셨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할머니 연기가 어색하다. 근데, 오히려 그런 정색하는 연기가 영화에 기여를 한 것 같다. 표정하나 건조한 말투로 "호랑이도 나와"라고 하는 대사가 관객에게 제대로 먹혔던 것 같다. 할머니께 너무 감사드리고, 나중에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다.


영화 속에서 텅빈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장날인줄 알고 갔는데, 시장이 텅 비어 거나, 겨울 바다의 썰렁한 풍경들이 주인공을 처량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그런 풍경을 좋아한다. 영화적으로도 공간감을 표현하기에도 좋은 것 같다. 적막함이라고 할까. 텅빈 공간을 통해서 주인공의 외로움이나 쓸쓸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낮술>은 1000만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찍은 영화다. 제작비를 어머님께서 지원했다고 하던데.

지금까지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어머니는 내가 하는 걸 늘 믿어주셨다. 영화한다고 했을 때도 외려 내게 위로를 해주시면서 천천히 하라고 하셨다. 늘 내게 위로를 주시는 분이다. 참 감사드린다.


<낮술>은 독립영화 답지 않게 웃을 수 있는 요소들이 풍부해서 좋은 영화였던 것 같다.

독립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닌데, 독립영화하면 우울한 이야기거나 생각이 많이 들어간 영화라는 느낌을 받는다. <낮술>을 통해서 독립영화도 가볍고, 웃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안 웃어줬으면 큰일 났었을 텐데. 그나마 참 다행이다.(웃음) 또, 이 돈(1000만원)가지고도 장편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주변에서 만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맘고생도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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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주영화제] 낮술의 혼곤했던 추억 '낮술'

    Tracked from 골룸에세이 2기  삭제

    낮술 마시고 취하면 애비 에미도 몰라본다더란 얘기도 있지만낮술은 은근히 흥건히 취하는 경향이 분명 있는 것 같다.뇌세포가 활발히 움직일 때 마셔서 그런건지, 아니면 태양빛이뭔가 나쁜 짓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경험상으로 분명 그렇다.언제인가 설악산에 금강굴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하산길에 있는 주막에서 오징어불고

    2008/05/1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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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6세대 영화, 삶의 본질을 말하다』를 통해 본 현대 중국과 중국영화

중국인의 맹목적 애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지난달 27일 베이징올림픽 국내 성화봉송 행사 당시 중국 유학생들이 벌인 막무가내 폭력 시위가 발단이다. 우리의 "오 필승 코리아"와 비견할 "파이팅 올림픽" 혹은 "중궈자요(中國加油)"를 외친 중국 젊은이들. 그들에겐 지금 브레이크가 없다.

그렇다. 20년 전 우리가 그러했듯 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 정부는 지금 고도성장을 과시라도 하듯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베이징 서우두 공항, 세계 최대의 돔형 공연장, 항조우만 대교 등의 위용을 선전하는 중이다. 그리고 문화대혁명과 89년 천안문 사태라는 아픈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티벳 사태에 대한 국내·외의 비난 목소리를 중국 성장의 걸림돌로 인식하는 중국 젊은이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주로 천안문 사태 이후 영화를 찍어 온 중국의 6세대 감독들은 이미 영화를 통해 중국의 가치관 혼란을 비판하며 예술적 브레이크를 걸어 온 바 있다. 주선율(主旋律, 중국식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영화들을 반대하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조명해 온 이들의 작업에 비춰본다면 이번 폭력 시위는 분명 당황스런 상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자리를 차지한 자본주의와 또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 90년대 이후 중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중국 6세대 영화, 삶의 본질을 말하다』의 저자 안상혁, 한성구는 중국 6세대 감독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중국의 현재와 이상, 그리고 우리의 삶을 성찰적으로 바라보자고 권고한다.



천안문 운동에서 시작된 6세대 감독들의 뿌리

최근 영화 주간지 <씨네21>이 국내 감독과 국내,외 평론가 92명을 대상으로 1995년부터 2008년 현재까지 베스트영화 톱 10을 뽑았다. 그 결과 중국 제6세대의 기수인 지아장커(賈樟柯)의 <스틸 라이프>가 1위로 선정됐다. 중국 동시대인들의 삶을 가감 없이 그리며 세계적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지아장커가 국내외 평론가 그룹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은 것이다.

중국에는 지아장커와 같은 6세대 영화들 외에도 위에서 예를 든 주선율 영화와 <영웅> <무극>과 같은 다피엔(大作, 대작) 영화를 포함, 연말연시를 겨냥한 흥행작인 하세편(賀歲片) 영화들이 존재한다. 장이머우와 첸 카이거 감독 등 5세대 감독들이 '변절'이란 비판을 감수하며 주류 중국 영화를 접수했다면, 6세대 감독들은 정식 개봉 보다 여전히 해외영화제와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국 6세대 감독들의 특징으로 저자들은 6세대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들어 "6세대라는 명명 자체가 타당한가"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만 외연 확대가 진행 중인 6세대 감독들의 특징에 대해서는 몇 가지로 정리해 놓고 있다.

▲ 소도시 주변인들의 주인공으로 '현실로서의 삶'을 내세우며 ▲전통 미학의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답지 않지만 '진실이 아름다운 것(以眞爲美)'을 천명하고 ▲ 직선적 시간관이 지닌 억압성을 거부하며 클라이맥스도, 결말도 존재하지 않고 ▲ 5세대와 달리 감동적 드라마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으며 ▲ 롱테이크를 활용한 다큐멘터리 기법 등 이른바 '낯설게 하기' 장치를 즐기며 ▲ 아버지의 '권위'와 '중심'에 대한 해체를 주장하고 ▲ 정치적 선언이나 주장, 계몽적 기능 등 거대담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럼 6세대 감독들이란 누구인가. 저자들은 "1960년대 생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 사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 활동을 시작한 젊은 영화인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1989년 천안문 운동을 직접 경험한 세대로 상업주의 문화, 탈이념화, 탈정치화 조류 속에서 개인의 생존 체험과 불안정한 심리 상황에 관심을 갖는다"고 정의한다. 문화대혁명으로 폐쇄 당했다 다시 개교한 베이징영화학교에서 공부한 첫 세대들인 이들에게 천안문 운동은 더 없이 중요하다. "복잡한 문화현실과 불만스러운 5세대에 대한 전복으로서 등장한" 6세대 감독들은 자본주의 상업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개성적인 영화관을 드러내는 동시에 주선율 영화와 같은 주류 상업 영화를 거부한다.

이들의 선두주자인 장위엔(張元) 감독이 <북경 녀석들>을 세상에 내놓았던 1993년까지 6세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장위엔의 <광장> <동궁서궁> 등으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고 지아장커가 1997년 <소무>를 발표한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제6세대는 중국은 물론 서방세계에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지하전영(地下電影), 독립 영화의 젊은 기수들이 중국 영화의 한 축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들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말을 빌려와 6세대 감독들이 "'아버지의 법'에 강력히 맞섬으로써 어떤 환상이나 광기의 드러남으로 표현되는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요약한다. 탈중심적인 목소리가 결국 중국 사회를 뛰어넘어 동아시아인들의 실존적 삶에 긍정을 보태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소개한 작품들 중 동시대성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6세대 감독들의 영화들을 먼저 살펴보자.



한반도 대운하의 결과를 예언하는 <스틸 라이프>

우선 2006년 베니스 영화제 금사자상을 수상한 <스틸 라이프>의 배경은 지난 2006년 완공된 샨샤(三峽)댐에 묻혀버린 펑지에 지방. 영화 속 공무원이 "물론 문제는 있죠. 2천 년 된 도시가 단 2년 만에 헐렸으니까요. 문제가 있으면 천천히 해결합시다"라고 말하는 곳이다. 주인공은 광부 한산밍과 간호사 션홍. 두 사람은 16년 전 돈을 주고 사와 자신의 딸까지 낳았지만 곧바로 헤어져야 했던 전처와 바람을 핀 남편을 만나러 각기 이 지역을 찾는다. 중국식 개발의 극단을 보여주는 샨샤댐은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아닌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잃게 했다. 담배, 술, 차, 설탕 등 중국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네 가지 필수품으로 챕터를 나눈 이 작품은 한산밍과 션홍의 여정 사이로 파괴와 개발이라는 중국 전체의 변화상을 은유한다.

데뷔작 <소무>에서 리얼리즘에 입각해 시골출신 소매치기가 소도시에서 맞는 격변기의 일상과 개방 속의 중국 관료주의를 비루하게 그렸던 지아장커는 <스틸라이프>에서 고단한 일상과 이를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 그러나도 또한 벗어날 수 없는 모순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또한 전처를 찾고자 공사 현장을 전전하는 한산밍과 주도적으로 이혼을 선택한 션홍의 엇갈리는 행보를 통해 "포기와 결정"의 문제를 제기한다.

다큐멘터리와도 같던 전반부는 비현실적인 샨샤 지방에 UFO가 날아가는 장면 등과 같은 환상을 통해 "위기와 긴장, 낭만이 현대인들의 공통적인 생존 현실"임을 반영하며 심리적인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중국의 비현실적 개발이 가져다 준 슬픔을 이겨내자는 일종의 격려이자 다독임. 어쩌면 <스틸라이프>는 우리가 맞닥뜨릴지도 모를 대운하에 대한 동시대 아시아 감독의 경고이자 충고이며 예술적 대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감시와 처벌에 저항하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뒤섞인 격변기인 현재의 중국. 6세대의 대표주자 장위엔(張元)는 여전히 관료주의 권력에 저항할 것을 부르짖고 있다. 2006년작 <아이들의 훈장>은 은유적으로 잔존한 중국 내 관료주의를 비판한다.

주인공 세 살배기 사내 아이 판칭칭은 군인 아버지에 의해 사설 유치원에 맡겨진다. 수백 명이 단체 생활을 하는 이곳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규율이 존재한다. 구령에 따라 대변을 보고, 식사 전 반드시 소변을 봐야 하며, 잠들기 전엔 꼭 엉덩이를 씻어야 하는 이곳, 무시무시하다. 아이들을 전쟁 포로를 다루듯 하는 유치원의 지상 목표는 질서요, 규율이다.

누가 뭐래도 영화의 유치원은 사회주의, 관료주의 중국의 은유일 것이다. "유치원을 떠나는 게 좋은 거라 생각하지 마. 사실 여긴 너의 일생 중 가장 행복하고 걱정 없는 시절이란다"라고 말하는 선생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아이들에게 빨강 꽃을 나눠 준다. 아마도 장위엔의 교과서는 '원형감옥'의 철학자 미셀 푸코가 지은 『감시와 처벌』 아니었을까. 규율에 대한 훈련은 처벌과 보상, 이 두 가지가 병행된다고 했던 푸코 말이다. 결국 선생에게 빨강 꽃을 얻으려다 포기한 아이가 유치원을 탈출해도 갈 곳은 없으며, 유일한 안식처는 달콤한 꿈 속 뿐이란 결말은 더없이 비관적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보기에 좋다"는 뜻의 '看上去很美'. 장위엔은 시대 배경을 분명히 했던 왕숴의 동명 소설과 달리, 의도적으로 시대를 흐리게 해 놓았다. 그러니까 인간이 존재하는 언제, 어디서나 이러한 권력시스템의 문제는 상존한다는 의도인 셈이다. 정치에 민감함 베를린과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 영화에 상을 수여한 것도 단순히 중국 정치상황을 빗대서 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변방 몽고와 티벳

6세대 감독들의 관심은 중국의 변방에도 닿아 있다. 내몽고 유목민 여인의 삶을 조명한 <투야의 결혼>과 중국의 서부, 티베트 칭장 고원의 영양 밀렵꾼과 순찰대원이 서로 죽고 죽였던 실제 사건을 다룬 <커커시리>가 그 두 작품이다.

2007년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투야의 결혼>은 몽고지방에서 태어난 왕취엔난(王全案)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를 여주인공 투야의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이야기는 대초원에서 우물을 파다 불구가 된 남편과 두 아이를 봉양해야 하는 투야가 두 번째 남편을 만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커커시리'는 중국의 서부 칭장고원에 위치한 자연보호구역을 지칭하는, '아름다운 청산, 아름다운 소녀'라는 의미의 티베트어. 이 지역은 1985년 이전까지 100만마리 이상의 티베트 영양이 서식하고 있었지만 모피의 수요 증가와 가격 폭등으로 밀렵이 성행, 현재 2만 마리 정도 밖에 영양이 남지 않았다고 한다. 루추안(陸川) 감독의 <커커시리>는 베이징에서 영양 자연보호구역 순찰대를 취재하러 온 기자의 눈을 통해 이 지역에서 일어난 실화를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낸다.



투야의 눈물나는 삶의 역정을 그리는 <투야의 결혼>은 "광활한 대지로 카메라를 돌리"면서도 "개혁개방의 기운과 부딪혀 진통을 겪고 있는 내몽고인의 일상을"을 그려낸다. 거친 일상의 고통을 이겨내는 삶을 순환을 그리는 이 작품에 저자들은 거대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됐던 역사적 사실을 전제로 "투야는 현재 중국에 사는 몽고인으로, 반신불수의 바터는 그 위상과 기능을 상실한 몽고에 대한 향수"로 환원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반면 "자연과 국가, 사회적 의무 등을 강조하면서도 전체 속에서의 죽음의 의미와 반영웅적 개인을 강조"하는 <커커시리>는 현재의 티벳 사태에 대한 전조로 읽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작품이 "국가나 종교 등에 의해 만들어진 상징에 의해 개인의 생존의 문제가 가려지고 주변화 되고 있는 것"을 재현한다고 말한다. 이 전언은 고스란히 작금의 중국 정부에게 돌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종교적 탄압 외에도 지하자원과 지정학적 위치 등을 이유로 티벳 민중의 피를 보고야 말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는 중국 정부에게 말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비판적 성찰

이 밖에 저자들은 위의 네 편을 포함, 모두 24편의 6세대 감독들의 영화를 소개하며 '일상성과 방황 그리고 환상' '금기와 전복, 그리고 불편함' '순례와 해탈' 등 다소 철학적인 6가지의 소제목으로 분류해 놓았다. 그러나 겁먹을 건 없다. 6세대 감독들의 영화들이 모두 다 무겁고 어려운 것만은 아니며, 저자들의 설명을 따라 가다보면 저절로 호기심이 생길 테니.

<빨간 버스>의 경우 문화혁명 시기부터 현재까지 40여 년 동안 한 여인이 겪은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다. 한국에서도 일찌감치 소개된 <귀신이 온다>는 <붉은 수수밭>의 배우 출신 지앙원(姜文)의 연출작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항일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우화 같은 드라마다. 또한 권총을 잃어버린 소도시 경찰관을 주인공으로 삼은 루추안의 <사라진 총>은 여전히 국가와 권력에 대해 탐구하지만 소재는 여느 상업영화만큼이나 친숙하다. 실직 노동자와 창녀의 보듬음을 그린 노동자 출신 시인 감독 왕차오(王朝)의 <안양의 고아>는 산업화가 낳은 타자들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동성애를 주제로 삼은 장위엔의 <동궁, 서궁>과 다이스지에(戴思杰)의 <식물학자의 딸>, 상하이의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택했지만 작가주의에 가까운 몽환적 백일몽과 일본인과의 낭만적인 로맨스로 갈리는 로우예(婁燁)의 <슈주>와 장이바이(張一白)의 <상하이의 밤>까지. 이렇게 중국 6세대 영화는 한마디로 단정 짓기에는 힘들지언정 분명 동시대성을 잃지 않는 힘과 함께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고 있다.

"관습적인 것이 아무런 비판 없이 향수된다면, 새로운 것은 혐오감을 가지고 비판되어진다."

저자들이 언급한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말이다. "반항과 반역 , 금기에의 도전"을 통해 중국의 주류 가치관을 부정하고 있는 6세대 감독들. 하지만 그들은 "삶의 질서에 놓인 부정성"을 표출했을지언정 삶이 지닌 "진정성에 대한 성찰"은 놓지 않았다.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는 그들의 영화를 다시금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급속도로 자본주의와 민족주의를 찬양하고 있는 중국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대중적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중국 6세대 감독들은 점점 더 할리우드 산업과 닮아가며 동시대성과 비판정신을 잃어 가고 있는 한국 영화계와 우리 관객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가까운 이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화'라는 민족주의에 함몰되고 있는 중국 젊은 세대들이 무협과 코미디 일색으로 현실을 지우는 주류 다이엔 영화보다 6세대 감독들을 응원해야하지 않을까. <중국 6세대 영화, 삶의 본질을 말하다>는 이들 6세대 감독들에 대한 친절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 줄 것이다.




P.S 1 <중국 6세대 영화, 삶의 본질을 말하다> 안상혁, 한성구 지음 -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56쪽, 15,000원

P.S 2 이 책에 소개된 영화들 중 <귀신이 온다>, <스틸 라이프>, <투야의 결혼> 등을 제외하고 정식개봉된 작품이 적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 외에 <수쥬>가 비디오 출시 되었으며, <커커시리>, <상하이의 밤>, <아이들의 훈장> 등이 환경영화제와 CJ 중국영화제, 그리고 KBS 명화극장에서 소개됐다. 이 영화들을 직접 보기 위해서는 아마존이나 부둑이하게 어둠의 경로를 이용해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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