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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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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구원투수를 자임한 충무로의 승부사 강우석 감독이 <강철중: 공공의 적 1-1>을 들고 다시 강호로 나왔다. 지난 2006년 <한반도>로 비평적 실패를 맛본 후 와신상담해온, "한국영화 침체와 거품의 책임이 시네마서비스에 있다"며 자신이 세운 회사에 칼끝을 겨냥했을 정도로 비장한 출사표를 던진 그였다. 그로부터 1주일, 실로 오랜 만에 한국영화가 박스오피스를 점유했다는 뉴스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이 있었음에도 흥행과 작품성을 동일시해온 일부영화인들의 아전인수식 논리에 반감을 가졌던 터라, 또 관객 수로 영화를 평가하려는 언론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터라 나까지 나서서 호들갑 떨 이유는 없겠으나 소위 '봐 줘야 할' 영화목록에 <강철중>이 있었음은 인정해야겠다. 요컨대 <강철중>은 단 한 가지 이유로 필자를 만족시켰으니, 다름 아닌 정재영과 그가 연기하는 이원술이라는 인물이 그것이다.

집단적 기억을 소환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경험과 절묘하게 조우시키는 것에서 강우석의 장기는 십분 발휘되곤 했다. <투캅스>에서 <공공의 적>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던 반면 <공공의 적>의 속편 격인 <강철중>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의 제목만 놓고 본다면 주인공은 꼴통형사 강철중이어야 하고, 실제로도 강철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강철중과 대극에 놓인 이원술이라는 캐릭터이다. 그러니까 정재영이 연기하는 새로운 공공의 적 이원술은 주인공을 능가하는 카리스마를 품어내며 스스로 외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인데, 이를테면 대극의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가 충동하는 영화에서 악당의 역할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공식에 지나치게 충실함으로써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장르영화들의 경우와는 달리, 이원술은 강철중과 경찰이라는 견제세력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캐릭터임을 증명해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예로 <범죄의 재구성>에서 천호진이 연기한 '차 반장'과 <씬 시티>에서 미키 루크가 분한 거리의 파이터 '마브' 등이 외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로 꼽히지만 이 분야의 최고는 단연 <배트맨>의 '조커'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필자는 (강우석이 의도했건 안 했건) 주인공 강철중과는 별개로 이원술이라는 캐릭터를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연기한 정재영 또한 재삼 언급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영화에서 이원술에 대해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은 자신의 입으로 부르짖는 내면화된 그의 본질이다. "나는 칼질하는 깡패인데 세상은 나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며 보란 듯이 사자후를 토해내는 그의 모습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이때 본질을 숨긴 채 가공된 현실 위를 활보하는 이원술을 악마의 현신으로 탈바꿈시키는 영화적 장치는 의도적인 클로즈업과 독특한 화법이다. 즉 강철중과는 달리 (영화 포스터에도 나와 있듯이) 이원술의 지나치게 매끄러운 턱은 가까이서 보기 불편할 정도로 관객을 압도하고 있는데, 이는 거친 내면과 본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장치이자 성공한 사업가로 보이기 위한 강박적 위장술이라 하겠다. 이처럼 이원술의 내면이 정재영의 얼굴을 빌려 완벽하게 재현될 때, 대극에 있는 강철중의 추레한 현실은 극대화되고 이것이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음이다. 이원술은 강철중의 존재 이유이자 기원(起源)인 셈이다. 무성영화의 스타들이 그랬듯이 배우가 얼굴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음을 기억한다면 <강철중>의 정재영 또한 이에 뒤지지 않은 얼굴 하나로 이원술을 연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쉽게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자 정재영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재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또한 이원술은 신경질적인 얼굴만으로는 모자라다는 듯 독특한 화법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예측불허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어눌한 듯 무식한 듯 그러나 핵심만 잘라서 던지듯 내뱉는 정재영의 말투는 법보다 주먹, 말보다 칼이 앞서는 이원술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문성근과의 독대와 경찰서로 찾아가 강신일 앞에서 뿜어내던 살기는 필자로 하여금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 긴장감을 촉발시킬 정도였다.

장진 감독의 페르소나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로 일찌감치 인정받아온 정재영이지만 <거룩한 계보>와 <마이캡틴 김대출> <나의 결혼원정기> 등 그가 근작에서 맡은 캐릭터들은 다분히 인간적이고 세상사에 서툰, 악마적 이중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때문인지 <킬러들의 수다>나 <피도 눈물도 없이>의 정재영을 기억해볼 때 이제는 한 번쯤 냉혹한 인물을 연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차에 만난 이원술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강철중>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정재영의 연기만 놓고 본다면 이렇듯 생생하고 소름끼치는 그럼에도 악인으로 단정 짓기 힘든 캐릭터를 연출해낸 강우석의 능력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공공의 적>이 '강철중'이란 안티히어로를 탄생시켰다면 <강철중>은 오히려 '이원술'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어쨌거나 틀에 박힌 설경구의 연기에 식상해질 즈음 찾아온 정재영이 세공해낸 이원술은 내가 <강철중>에서 얻은 유일한 소득이다.


(추신) 적지 않은 매체들이 강철중을 일컬어 '서민형 캐릭터'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물론 마케팅사의 보도 자료에 의거했거나 기자의 판단에 따라 기술되었을 테고, 후줄근한 옷과 덥수룩한 외모에 중산층과는 먼 경찰이란 직업을 감안하자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표현이기는 하다. 그러나 강철중이 전세방에 살고 전세보증금이 궁하다는 것만으로 서민형 캐릭터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어쩌면 이것은 신흥기업 회장 이원술과의 대구를 이루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이라고 보여 지는데, 강철중 스스로가 실토했듯이 "뇌물도 받고 삥땅도 좀 친" 게다가 1편에서는 마약까지 빼돌린 부패한 경찰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서민'이라는 표현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다. 유사한 예로 '시골총각은 순박하고 어눌하며 건실하다'라던가 '장애인은 순수하고 착하다'는 식의 고정관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인물에 대한 도식화된 평가와 편견이 빚어낸 섣부른 단정은 비평적 사고에 장애가 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유의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잣대는 시선의 확장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감독의 의도마저 오인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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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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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인기는 당시로서는 세계적이었다.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4,50년대에 유행했던 B급 모험 영화의 분위기를 활용해 상당히 잘 만들어진 경쾌한 오락 영화를 만들어 냈고 이런 류의 모험 영화를 별로 접해보지 못했던 당시의 관객들은 쉴새 없이 전개되는 활극적 쾌감에 탄복했던 것.

당연하게도 이런 <인디아나 존스>의 캐릭터를 빌어 만들어진 아류작들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당시 이런 식의 B급 영화들을 만들어 짭짤한 성공을 거두고는 했던 캐논 그룹의 모험 영화로는 TV 스타였던 리처드 챔벌레인을 앨런 쿼터메인이라는 캐릭터로 출연시킨 <킹 솔로몬 King Solomon's Mines, 1985>과 <쿼터메인 (Allan Quatermain And The Lost City Of Gold, 1986> 시리즈가 있었다. 샤론 스톤이 출연하기도 했던 이 영화는 물론 '인디아나 존스'같은 오리지널 캐릭터는 아닌데, 실은 앨런 쿼터메인이라는 캐릭터가 '인디아나 존스'의 선조격에 해당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앨런 쿼터메인은 영국의 모험 소설가 H. Rider Haggard의 소설에 등장했었고 이미 1910년대와 1930년대에 이미 영화화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캐릭터는 2003년의 범상한 슈퍼 히어로 블록 버스터 <젠틀맨 리그>에서는 숀 코넬리가 같은 이름의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기도 하며 2004년의 TV 방영용 영화에서는 패트릭 스웨이즈가 동일한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캐논 그룹의 영화들은 두 편 모두 국내 수입되었고 본 것 같기도 한데 거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글이 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는 했지만 어쨌든 <인디아나 존스>시리즈의 성공은 위에 서술한 <쿼터메인>같은 비교적 제대로 된 영화들 외에도 각종 B급 모험 영화의 양산으로 귀결되었고 사실 대부분은 기억 저편에 있다. 하여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모험' 컨셉은 홍콩 영화계에서도 홍콩식으로 컨버젼된 바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배우 자체가 강력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용형호제, 1985>와 <용형호제2-비응계획, 1986>이 대표적일 것이다. 두 편의 영화에서 성룡은 중국인 모험가로 분해 특유의 아크로바틱 액션을 모험 영화의 틀과 결합시킨, 자신만 가능한 액션 영화를 선보인 바 있다. 또 제목부터가 추구하는 장르를 뚜렷하게 선보이는 정소동의 <모험왕, 1995> 역시 조금 연대는 뒤쳐지지만 인디아나 존스 박사를 추종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모험왕>은 영화 자체가 논리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 졸작으로 평가받는 영화다. 이들보다 앞서 좀더 선도적인 모험-환타지 영화가 존재하는데 <위슬리전기, 1985>가 바로 그런 영화다.


국내에 출처가 불분명해 보이는 DVD로 출시된 <위슬리전기>는 이미 국내에 개봉된 적이 있는데, 이 영화 역시 홍콩 느와르와 왕조현의 팬덤 현상이 극에 달하던 시점에 뒤늦게 개봉되어 소모된 느낌이 강한 영화 중 하나다. 물론 <위슬리전기>라는 영화 자체가 그리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조금 눈높이를 낮추면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이야기 전개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일단 이 영화의 주인공 캐릭터는 당시 중화권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허관걸이 맡고 있는데, 허관걸은 <미스터 부>시리즈로 소개된 허관문의 광동어 코미디의 허씨 형제들 중 가장 스타성을 갖춘 인물로 서극 제작의 탁월한 코미디 액션 영화 시리즈인 <최가박당>의 큰 성공으로 중화권 내부에서는 커다란 인기를 끌어모은 바 있었다. 허관걸의 경우에는 '광동 코미디' 분야의 이미지가 강한 스타였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거의 지명도가 없는 편이었으며 그건 무협영화 <소오강호, 1990>의 상업적 실패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영호충으로 분했던 이 영화의 실패로 속편인 <동방불패, 1991>에는 영호충으로 이연걸이 캐스팅되게 된다.

<위슬리전기>에서 허관걸은 판타지 소설 작가인 타이틀 롤 위슬리로 분해 네팔과 이집트 그리고 홍콩을 종횡무진하며 모험 액션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데, 그 길에 왕조현과 왕조현의 오빠인 적룡이 참여하게 된다. 어쨌든 <위슬리전기>의 결말부는 당대에는 꽤 황당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의 결말이 많은 현재로서는 창의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한데, 문제는 이 영화가 당시 홍콩 영화의 강박 즉 '뭔가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빠르게만 전개해 나가는 스피드의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이 영화는 참을성 있게 캐릭터의 개연성을 설명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액션이나 볼거리를 보여주겠다는 강박이 심한 편인데, 이런 경향은 당대의 범상한 홍콩 영화들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일종의 집단 강박같은 것이었다.

물론 <위슬리전기>는 그럼에도 꽤 야심이 큰 영화이기도 한데, 이 영화는 모험 액션 영화의 틀을 지니면서도 SF 장르와의 접속을 시도하는 특이한 경향을 선보인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용이 사실은 외계의 우주선이었다는 설정은 황당할 수도 있지만 무척 재치있게 느껴지기도 한 대목이다.

그러나 <위슬리전기>는 캐릭터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편인데, 특히 부유한 집안의 장자와 동생으로 나오는 적룡과 왕조현의 경우에는 영화 속 행위의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 가령 왕조현이 사실 위슬리의 열렬한 팬으로 쉽게 호의를 보낸다던가 적룡이 '여의주'를 차지하려는 목적들은 그다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위슬리전기>는 완성도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당대의 오락 영화로서는 적절한 편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영화다.





* 태적라빈 Teddy Robin Kwan

이 영화의 연출자인 '태적라빈'이 생소해 자료를 뒤져보니 80년대 홍콩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왜소증을 지닌 인물로 등장했던 인물이었다. 이 인물은 여러 영화들에 배우로 등장하기도 했고 <위슬리전기>를 비롯해 원표와 홍금보가 등장하는 액션 모험 영화 <상하이 상하이, 1990>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분야는 <감옥풍운>, <최가박당>, <협도고비>, <흑협> 등에서 선보인 영화음악가로서의 재능이다. 현재까지도 영화의 제작자로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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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해프닝]에 대한 다른 생각

강민영이 쓴 글(당신이 걱정하는 모든 것 [해프닝])의 처음, “<해프닝>이 던지는 화두는 인간 생존, 혹은 인간존속에 대한 문제다.” 과연 그럴까? 센트럴파크에서 집단 자살사건이 벌어지는 프롤로그를 지나면 주인공 엘리엇의 생물 수업이 보여진다. 엘리엇이 학생들에게 제기하는 문제는 “왜 벌들이 사라졌을까?”이다. 학생들은 여러 가지 의견들을 말하고, 그중 엘리엇이 가장 수긍하는 대답은 “자연의 현상은 완벽히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영화는 처음부터, 그리고 제목에서부터 말하고자 바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영화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보여주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되풀이되고 있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대구법은 이 영화의 경계 혹은 진의를 강조한다.

강민영 글의 중간,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무차별적으로 식물들은 바람을 통해 특정 물질을 내뿜는다.” 과연 그럴까? 영화 내에서 식물들이 바람을 통해 특정 물질을 내뿜는다는 것은 하나의 유력한 가설일 뿐이다. 영화는 갑자기 벌들이 사라진 것처럼, 고래들이 육지로 몰려와 자살(?)을 하는 것처럼 어느 순간 인간에게도 올 지 모를 현상을 그저 보여주고 있다. “인간 생존과 인간 존속”의 문제는 인간이 설정한 화두일 뿐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려 하는 것은 동물로서의 인간에 더 가깝다.


당신이 기대하는 어떤 것


“쇼크와 공포 효과를 제대로 활용하며 강렬하게 시작한 <해프닝>은 시간이 갈수록 미스터리의 해답에 접근하기보다는 자극적이고 반복에 불과한 자살 행위들만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권총으로 머리를 쏘거나 목을 매달고, 혹은 짐승에게 참혹하게 뜯기며 먹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첫 R등급 영화로서 그에 어울리는 폭력의 수위 조절은 성공적일지 몰라도, 이야기로 관객을 매료시켰던 샤말란의 장기는 영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특히 재앙이 벌어지기 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주인공 부부가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재확인하며 관계 회복을 맞이하는 상황은 실소를 자아낸다.”


위의 글은 『씨네21』에 실린 김종철의 글을 발췌한 것이다. 이 한 단락은 영화에 대한 확실한 요약인 동시에 성급한 오류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끝난 후 뒷자리에 앉았던 이름 모를 관객들의 대화는 이렇다. “뭐야, 이거. 호러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고 대체 이 영화의 주제가 뭐야?” “자연을 보호하자는 거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어떤 현상, 제목 그대로 “happening” 에 대한 현시일 뿐이다. 이 현상을 보고 어떤 결론에 이르던지 관객의 자유겠지만, 영화가 유보한 결론과 필연성을 덧붙이지 않고 이 영화를 이해할 순 없을까?



제1의 자연과 제2의 자연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하늘에 떠있는 구름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구름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모양을 바꾸고 하늘도 그에 따라 변하고 구름도 변한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람이다. 식물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은 자살소동의 유력한 용의자처럼 보여진다. 이 부분에서 생각할 것, 그 시선의 주체는 인간이라는 것,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심리를 투영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게오르그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제1의 자연과 제2의 자연을 정의한다. 침묵하는 제 1의 자연이 있다면,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물인 관습의 세계는 제2의 자연이다. 제1의 자연과 마찬가지로 이 제2의 자연은 단지 알려져 있는 필연성의 체계라고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필연성은 의미와는 거리가 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제2의 자연은 자신의 진정한 실체 속에서는 파악될 수가 없다. …중략… 제1의 자연에 대한 제2의 자연의 낯설음, 즉 자연에 대한 현대의 감상적인 태도는 스스로가 만든 환경이 인간에게는 이제 그들이 안주할 고향이 아니라 감옥이 되어 버렸다는 체험의 투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제1의 자연과 제2의 자연이라는 외투를 벗은 인간의 존재이다. 엘리엇과 앨마와 제스는 알 수 없는 공격에 노출된 사람들을 따라 도시를 떠나고 온갖 가설과 추론에서 벗어나 집단에서도 이탈한 후에야 죽음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 허허벌판을 헤매다 들어선 모델 하우스의 가짜 물건들은 인간들이 안심하고 즐기고 누리던 모든 것들의 실체는 허구일 뿐이라는 상징이고, 집단을 떠나 혼자 살고 있는 괴팍한 노인에게서는 무위자연의 평온함이 아니라 자신의 이기심에 갇힌 인간의 허울이 보인다.

노예를 숨겨주던 창고에 살고 있던 개구리처럼 한낱 무의미한 것의 정점, 즉 진실되고 깊은 인간의 노력도 결국에는 무위로 끝나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나 아니면 인간이 결국 무가치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제2의 자연(관습과 제도)이 만들어낸 제1의 자연과의 결계 안에서 가려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 인간의 에너지


김종철이 언급한 “특히 재앙이 벌어지기 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주인공 부부가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재확인하며 관계 회복을 맞이하는 상황은 실소를 자아낸다.”는 부분. 왜 감독은 그 부부의 관계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을까? 가족과 아이의 생존을 둘러싸고 혹자는 이 영화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우주전쟁>에 빗대기도 하지만, 나이트 샤밀란 감독은 필연성과 인과관계보다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의 관심은 <식스센스>에서 비롯된 ‘반전’에 대한 기대치를 따라잡지 못해 고군분투한다는 세간의 평을 뒤로 한 채 순수한 결정체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엘리엇은 공포에 떨고 있는 제스에게 인간이 가진 에너지에 대해 말한다. 엘리엇은 감정에 따라 색이 변하는 반지를 가지고 다니는데 영화에서 그 반지의 색깔은 어떤 암시를 전달한다.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도망칠 때 언뜻 보여지는 반지의 색깔은 파란색이고, 혼자 사는 노파가 죽고 나서 엘마와 제스를 만나러 밖으로 나가기 전 반지의 색깔은 노란색이다. 굳이 해석을 하자면 흔히 알려진 파란색의 의미는 평온함이고 노란색은 사랑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것은 의도된 트릭일 수도 있지만 샤밀란 감독이 주목한 것은 인간의 에너지다.

결국 제스의 아버지인 수학교사가 말하던 확률의 설득력과 식물 농장 주인의 가설과 엘리엇의 과학적 지식을 뒤로 하고 남는 것은 세 주인공의 에너지이다.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이 난국을 어떻게든 헤쳐나가야겠다는 의지, 죽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내뿜는 인간 감정의 에너지 말이다. 제도와 관습에서 벗어난 인간이 지닌 순수한 에너지는 인간에게 반응한다는 식물의 에너지와 동격처럼 보여지고 있다.

왜냐고 묻지 말자. 왜 주인공은 살아남았는지, 왜 동일한 사건이 또 일어나는지, 앞으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해프닝>을 보고 나서 생긴 고민이라면 더더욱 쓸데없다. 이 영화는 “왜”라는 질문을 하는 영화가 아니라,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가진 외피를 벗겨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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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흠..과연

    Tracked from 알토랑-wodlf1  삭제

    알토랑 서비스에 트랙백을 이용한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2008/06/25 14:35
  2.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Tracked from cultura scope  삭제

    두려움의 실체는 대부분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예상이 빗나가 스스로 혼란을 야기했든, 상대와의 불신으로 인해 변수가 생성되었던 간에 말이다. 두려움은 철저히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 혹은 객체와의 관계설정에 달려있다. 그에 따라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그러나 이러한 고전적인 두려움과는 약..

    2008/06/27 17:34

민용준



일단 젤리클 고양이에 대해서 궁금해한다면 당신은 뮤지컬 <캣츠>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군요. 물론 그건 T.S.엘리엇의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를 읽었기 때문이야! 라고 반박할 수 있는 사안일 수 있겠지만 이미 원작보다 유명해져 버린 뮤지컬을 먼저 염두에 둔다는 게 그리 나쁜 일은 아니겠죠?

 

사실 (인터미션 20분을 제한) 2시간 20분의 공연을 관람하고 나온다고 해도 저 물음표는 사라지지 않아요. 젤리클 고양이를 아냐고 객석을 향해 묻던 고양이들은 긴 시간 동안 젤리클 고양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젤리클 고양이가 어떤 고양이인지는 몰라도 고양이란 동물에 대한 호감 정도는 생길 거에요. 그리고 사실 젤리클 고양이가 뭘까, 라는 고민 따 따위 중요하지도 않죠. 공연을 보고 나서 굳이 저 물음표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어쩌면 젤리클 고양이에 대해서 되묻는 것이 결국 내 이름의 연유를 묻는 자문처럼 부질없는 까닭이기도 하죠. 젤리클 고양이는 말 그대로 젤리클 고양이일 뿐이거든요. 2시간 20분 동안 당신이 주목하는 무대 위의 고양이들이 바로 그들이고요.

 

젤리클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고양이의 모든 것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그들은 사람이에요. <캣츠>의 묘미는 그 지점에 있는 것이고요. 고양이 분장을 하고, 꼬리를 달고, 고양이의 네발처럼 무릎과 팔로 바닥을 기어 다니고 심지어 고양이처럼 눈을 비비거나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죠. 그 모습은 정말 고양이처럼 앙증맞거나 때론 도도하고 우아해서 놀라운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거에요. 그들은 철저하게 고양이처럼 행동합니다. <캣츠>의 가장 큰 묘미는 그 지점이라 할 수 있죠. 게다가 그들은 무대에서만 활동하지 않는단 말이죠! 공연이 시작할 때쯤, 무대 위로 슬금슬금 모여들던 고양이들에 집중하다 어느 순간 옆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고양이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될 거에요. 그들은 무대 뒤에서 등장하거나 심지어 무대 위에서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들을 쳐다보며 노래를 하기도 하죠. 심지어 당신이 운이 좋은 관객이라면 자신을 선택한 고양이와 객석을 거닐게 되는 영광(!)도 누릴 수 있을 거에요. 물론 본인에게 모든 관객의 시선이 모이는 것쯤은 감안해야죠. 하지만 그 눈길의 대부분이 분명 부러움의 시선으로 채워질 것을 염두에 둔다면 결코 나쁜 경험이라 할 수 없겠죠? 게다가 <캣츠>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넘버, ‘Memory’의 한 소절을 한국어로 부르는 팬서비스는 가히 감동적이기까지 하죠.

 

현대무용에 기초한 군무와 독무는 절제된 세련미와 함께 화려한 동선을 자랑하는 것이라 눈이 즐겁기도 하죠. <캣츠>는 연극적인 이야기 흐름보다는 화려한 안무와 흥겹고 때론 구슬픈 음악, 즉 가무로써 증명되는 뮤지컬의 묘미를 철저하게 증명하는 작품이니까요. 사실 중심인물의 교체와 함께 단막적인 형식으로 치고 빠지는 <캣츠>의 내러티브 구조는 관객에게 친절한 것이 아니에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고 그에 따라 집중하는 관객이라면 이 뮤지컬에 집중하기 힘들 가능성도 배제하긴 힘들죠. 하지만 <캣츠>는 결코 허술한 뮤지컬이 아니에요. 앞에서 말했지만 사실 <캣츠>의 이야기 구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나열되는 건 T.S.엘리엇의 시집에서 모티브를 얻었기 때문이란 사실과 무관하진 않거든요. 시집을 하나의 뮤지컬 형태로 완성함에 있어서 <캣츠>는 그 개별성의 방식을 이야기 구조로 승화시켰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동시에 그것이 무대 위를 가득 채운 스물아홉 마리 고양이들의 사연을 다채롭게 전달할 수 있는 온전한 방식이기도 하니까요.

 

무대 위를 누비는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개성이 넘쳐요. 당신이 평소에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그 취향을 다시 한번 재고해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죠. 게다가 그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인간과 다를 바가 없어요. 그들은 각각 무대 앞에 서서 관객들을 향해 자신들의 사연을 노래하곤 하죠. 그들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고, 저마다 제 성격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어요. 그 와중에 갈등과 충돌도 발생하지만 사랑과 우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펼치는 대장정의 궁극적인 주제는 고양이를 존중해달라는 정중한 부탁이에요. 이렇게 매력적인 고양이가 존중 받을만하지 않나요? 라고 묻는 그들은 용감한 낭만고양이임에 틀림없어요.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온화하며, 사나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앙증맞은 그런 고양이라고요. 뮤지컬 <캣츠>는 당신에게 지혜로운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안내서임에 틀림없어요. 평소 고양이 울음소리가 재수없다, 라는 편견을 지닌 당신이라면 한번쯤 그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어요. 적어도 이 젤리클 고양이들은 당신에게 고양이가 얼마나 매력적인 동물인지 새삼스럽게 각인시켜주는 지혜로운 고양이임에 틀림없어요.

 

젤리클 고양이란 바로 그들이에요. 존중 받을만한 지혜로운 고양이들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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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등학생이 본 고양이들의 향연 : 캣츠

    Tracked from 오선지위의 딱정벌레  삭제

    지지난주 수요일(? 맞나)에 전화가 왔다. 스팸전화로 알았다. 다음이라고 말하더니 뮤지컬 캣츠를 보겠냐는 물었다. 다음에서 추천을 받았다고 하였다. 아마도 부서가 달라 그렇게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요일 7시였지만 일단 오케이를 하였다. 메일로 자세한 내용을 보내주기로 하였다. 이것이 캣츠를 보기위한 시작이다. 전화를 끊고 내가 무슨 파워블로거라고 이런 전화를 하였을까, 아마도 장난전화일까, 그런데 왜 요구가 없지, 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하였다...

    2008/06/2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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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왜 서인영인가?
1-1. 이기적인 언니, 서인영


그녀는 이기적이다. 서인영의 작은 얼굴과 구릿빛 피부는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남녀구분 없이 모두 서인영에 열광했다. 하이힐이 유난히 어울리는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와 S라인이 빛나는 몸매는 남성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여성들은 성형수술시 서인영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녀는 모두가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이기적인 몸과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서인영은 그룹 쥬얼리 4집 앨범을 내고 ‘Superstar’라는 노래로 활동 중 ‘털기춤’을 선보여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 후 2007년 발표한 솔로 1집 앨범에서는 과도한 노출과 자극적인 댄스로 선정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2007 MBC 가요대제전’에서 물쇼를 통해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머리위로 떨어진 물 때문에 축축하게 젖은 옷과 그녀가 신은 하이힐이 성적인 코드를 유감없이 발휘해주었다. 하지만 서인영의 매력은 단순히 섹시함만이 아니었다. 대중들은 비 같은 남자가수만이 물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인영은 편견을 깨고 당당히 여가수로 물쇼를 성공했고, 찬사를 받고야 말았다. 인식의 전환이었던 것이다. 당시 무대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의 위력은 서인영의 왜소한 몸이 버텨내기에는 너무 버거워보였다. 그녀는 어깨가 내려가고 다리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도 춤을 추었다. 섹시한 컨셉과 파워풀한 무대연출을 위해서 잠시 주춤했어도 서인영은 온 몸으로 중력의 법칙을 이행하며 수직 하강하는 물의 파워를 역전하려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이 무대 위에서 서인영은 당당히 가수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실 쥬얼리 4집 앨범 활동 전까지만 해도 서인영은 쥬얼리 멤버 중 한 명으로 기억되는 존재였으며 톱스타라는 호칭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서인영은 솔로 앨범을 낼 때까지 쥬얼리의 팀 멤버였던 박정아와 이지현이 쇼 프로그램을 전전하면서 인기가도를 달릴 때까지도 묵묵히 쥬얼리 멤버로 자기 자리를 지켰다. 그녀는 스스로 준비기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강한 자가 오래 버티는 게 아니라 오래 버티는 자가 강하다는 말은 7년의 연예계 생활 끝에 스타 대열에 오른 서인영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게다. 서인영은 후자에 속하는 타입이다. 그녀는 가수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 악바리 근성을 발휘한다. 노래 연습을 위해서 솔로 앨범 발표 전 서인영은 자신의 방에 스티로폼을 붙여서 방음처리를 한 후에 발성연습부터 차근히 했다고 하며, 쥬얼리 4집 앨범을 준비하면서는 부족한 춤을 보완하기 위해서 기초스텝부터 다시 익혔다고 한다. 그간의 오랜 침묵과 노고 끝에 나온 솔로 1집 앨범은 자칫 식상한 이미지로 굳어질 위험요소도 있었다. 1집 활동 당시 섹시 컨셉을 전면에 내세우던 서인영은 채연, 이효리 등과 비교 대상이었다. 골반 뼈가 드러나는 시원스런 의상으로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던 때, 그녀는 골반 뼈를 깎은 것이 아니냐는 성형의혹을 듣기도 하였다. 서인영은 그저 황당하다면서 웃어넘길 뿐이었다.


서인영은 섹시 여가수의 컨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여가수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고군분투한 듯하다. 블랙 앤 화이트 계열의 시크한 의상과 골반 뼈가 훤히 드러나는 시원한 의상과 앙증스럽게 튀어나온 입술을 더욱 도톰하게 보이도록 해주는 핑크 계열의 투명 루즈는 서인영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여기에 태양을 피하지 않을 것 같은 구리 빛 피부가 만들어낸 건강한 이미지는 그녀를 한국의 크리스티나 아길렐라로 만들어주었다. 서인영은 다방면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엄정화가 자신의 우상이라며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하였다. 이 말은 서인영 자신이 섹시 가수나 쥬얼리의 멤버라는 통칭보다는 ‘서인영’이라는 고유명사나 독립된 존재로 인식되길 원했다는 뜻으로 통한다. 타 연예인과의 비교를 할 때마다 ‘나는 나일 뿐이예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말이 이를 입증해준다.


서인영은 섹시한 컨셉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여성스러운 우아함이나 단아함, 귀여움 보다는 보이시하고 중성적인 매력을 앞세웠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다른 여자 연예인들보다 조금 더 파워풀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였다. 서인영은 분명 차별화를 위해서, 또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 무대에 서는 듯 했다. 어쩌면 이는 냉혹한 연예계에서 차별화를 통해서 장수를 누리고 싶은 모든 가수들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서인영은 ‘섹시 가수’가 아니라 ‘서인영’이라는 고유명사를 원했던 것이다. 이처럼 가수로서의 기본 자질인 춤과 라이브가 가능한 역량을 갖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 서인영은 데뷔 7년차 연예인으로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같은 아이돌 여가수들이 활약하는 대중가요 시장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 탑 스타의 대열에 합류했지만, 그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글에서 서인영을 다루려는 이유는 그녀의 독특한 취향 때문이다. 평소 연예인들은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연예인들은 타의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고, 시청자들도 검소하고 금욕적인 모습을 미덕으로 여겼다. 대중을 서민이라는 등식으로 놓고 봤을 때, 연예인이 일반인들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면 대중들과의 친화력이 떨어지고 대중과 연예인 사이에 거리감만 생기기 때문에 연예인들도 금욕과 절제를 미덕으로 여겼다. 적어도 방송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서인영은 각종 방송에서 명품에 대한 선호와 구두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과감하게 드러내었다. 특히나 그녀는 사치를 넘어서 구두를 수집하는 것이 자신의 취향 중 하나임을 보여주었다. <서인영의 카이스트>에서 보여준 그녀의 사치스러운 취향은 최근 극장 개봉한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과 닮았다. 뉴요커 4인방은 이 영화 속 여자들은 각자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자들이었다. 사회적으로 프로페셔널한 그녀들의 일상은 자유분방 그 자체였다. 그녀들은 종종 패션쇼 전시회에서 한 해의 패션 경향을 살펴보는가 하면, 사교계에서 남자들과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는 여자들이었다. 부엌에 신경 쓰는 보통의 여자들과는 달리 그녀들은 옷장을 더 신경 썼다. 큰 냉장고 보다는 옷장이 중요한 그녀들. <섹스 앤 더 시티>는 뉴요커로 살아가고 싶은 여성들을 보여주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화를 보여주었다. 서인영은 부분적으로 이 여성들과 닮았다는 점에서 <섹스 앤 더 시티>의 한국판이라고 불릴 만하다.



1-2. 지금 TV는 서인영 전성시대


2008년 상반기는 서인영의 독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쥬얼리 5집 앨범이 발매되자 ‘Baby one more time’은 각종 인기가요차트 1위를 차지하였고, 양손 가락을 아래위로 만나게 하는 ET춤은 인기몰이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리고 쥬얼리 인기의 중심에는 서인영이 있었다. 서인영은 할로 컷이라는 일명 바가지 머리(혹은 쵸코송이머리, 버섯머리라고 불리는 스타일)를 유행시켰으며, 바지가 허리위로 올라가는 하이웨스트 의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길거리에는 숏커트로 짧게 자른 머리를 한 여성들과 하이웨스트 스타일의 옷을 입은 여자들로 넘쳐났고, 그녀가 입고 나온 명품 옷과 구두는 인기검색어에 올랐다. 너도 나도 서인영을 모방하고 패러디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개그 콘서트>에서도 신봉선이 ET춤을 흉내 냈다. 한편 서인영은 M-net의 오락 프로그램인 <서인영의 카이스트>에 출연하여 처음으로 단독으로 쇼 프로그램을 이끌어갔다. <서인영의 카이스트>는 서인영의 대학생활을 담은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다. 서인영은 대학에 입학한 적은 있으나 연예계 생활로 제대로 된 대학생활을 해보지 못했었다. 그런 서인영이 명문대 중 하나인 카이스트에 입학하여 수업을 듣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여느 대학생과 다름없이 시험을 보았다. 이 프로그램과 함께 서인영은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한 코너인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가상 결혼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였다. 이 프로그램역시 리얼리티를 강조한 것으로 서인영은 크라운 J와 가상결혼을 하여 신혼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인기와 서인영의 주가상승으로 <개그야 놀자>에서는 서인영-크라운 J 커플을 모방해 <우리도 결혼했어요>라는 코너를 선보였다. 서인영의 인기가 방송가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서인영은 ‘된장녀’ 인가. 서인영에 대한 비호감과 호감이 동시에 발생한 것은 그녀의 사치스러운 모습이 공개되면서 부터다. 하지만 이 논란이 곧 그녀의 인기를 증명해주는 것과 같다. <서인영의 카이스트>에도 공개된 것이지만, 그녀는 중간고사를 무사히 치르면 명품구두(서인영 식으로 말하면 ‘신상’)을 사준다는 M-net 팀장의 말에 솔깃해 선뜻 방송 출연을 승낙한다. 그런가하면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도 그녀가 명품에 집착하는 모습과 명품을 소비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방송을 탔다. <우리 결혼했어요> 방송 분 중 크라운 J가 외국에 다녀왔을 때 선물을 사오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장면이나, 비오는 날 대구에 갔던 날 구두가 젖는다고 업어 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서인영의 카이스트>에서는 향수와 패션에 관한 프로젝트 발표 수업을 위해서 향수와 명품 옷을 한 가득 사기도 했다. 대중들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된장녀’에 비유하며 처음에는 비호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서인영의 카이스트>가 회를 거듭할수록 대중들은 언제 비호감이었냐는 듯 그녀에게 호감을 보였다.


서인영은 슈어홀릭(shoe-aholic)이었다. 마돈나는 “섹스보다 마놀로 블라닉이 좋다”고 말했고, 근래 대표적인 슈어홀릭 의 대명사인 <색스 앤 더 시티>의 캐리는 다이아몬드보다 구두를 더 좋아했다. 길거리에서 강도를 마주쳤을 때 캐리는 핸드백과 반지는 모두 가져가도 좋으니, 구두만은 가져가지 말라고 애걸복걸한다. 이들은 구두애호를 넘어서 구두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서인영의 카이스트>에서 서인영은 백화점 명품관에 신상품 구두가 들어오면 누구보다도 빨리 가서 보고, 마음에 들면 사는 버릇이 있다. 직원들에게 신상이 들어오면 연락해 달라고 당부하는 서인영은 분명 슈어홀릭이다. <서인영의 카이스트>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그녀의 집에는 신발장을 가득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라 현관에 나란히 나열된 구두가 있었다. 서인영이 소장한 명품 구두만 해도 100여 켤레에 이른다고 한다. 시청자를 놀라게 한 것은 그녀의 신발이 대부분 명품이며, 실제로 구두를 구입하는 장면에서 175만원이라는(이 구두는 크리스찬 루부탱 제품이다) 구두 가격이 공개되어, 그 높은 액수와 구두의 브랜드가 이슈가 되었다. 그녀는 압구정의 한 의류 매장에서도 명품 한정판이 들어왔다는 소리에 솜사탕을 본 아이마냥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철없는 모습을 미워해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서인영의 순수함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이 뒷받침 될 때 가능한 말이다. 돈 없으면 애호나 중독도 불가능한 세상이 자본주의이다. 그녀의 인기가 상승하자 각종 매체에서는 서인영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한 케이블에 방송에서는 그녀가 자주 애용하는 압구정 의류매장, 서인영이 손톱 정릴 받고 발 마사지를 받는 네일숍, 구릿 빛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선탠을 하는 피부 관리소를 탐방 취재하였다. 가히 서인영이 대세인 세상이다.


오늘날 여성들을 사회에서 일정한 위치를 원하며 프로페셔널을 추구한다. 사회로 진출한 여성들은 사회적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남들과 다름을 추구한다. 그녀들은 남들보다 특별해 보기이기 위해서 외모를 가꾸는 일에 충실했다. 가히 외모지상주의다. 성형외과가 때 아닌 성황을 이루고, 백화점 명품관의 상품들은 불티나게 팔린다. 덩달아 명품을 카피한 ‘짝퉁’들도 동대문이나 남대문을 중심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이는 중산층에 대한 한국인이 욕망과 함께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대중심리를 보여준다.


서인영이 TV에서 보여주는 모습 중 하나는 그녀의 사치취향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서인영의 취향을 통해서 한국인의 중산층, 혹은 상류층의 욕망과 컴플렉스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물론 이 글에서 서인영의 취향인 구두. 구두를 통해서 계급 분포에 따른 취향을 분석할 여지는 없다. 계급분포에 따라서 선호하는 브랜드가 다를 수 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하층민들일수록 소비행위는 필요기능을 따른다. 하지만 부르주아 층으로 갈수록 소비는 필요기능에 가까운 필요 취향 보다는 사치 취향을 고려한다. 서인영이 구두에 집착하는 것은 신고 다닐 신발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사치 취향에 가깝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치 취향은 일종의 구별짓기다. 구별짓기는 타자와 나를 다르게 하고 싶은 욕구로, 서인영은 패션을 통해서 타자와 자신을 구별한다. 한편 <서인영의 카이스트>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생활공간과 생활패턴을 서인영의 주거 공간 및 생활방식과 대조하여 보여준다. 연예인과 평범한 대학생들의 삶을 비교 대조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리얼리티의 핵심이듯이 이를 분석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⑵ <서인영의 카이스트>의 낯선 매력.
2-1. 학생 서인영 되기


서인영도 면접을 봐야했다. M-net에서는 서인영의 대학생활을 찍기 위해서 여러 대학을 돌아다닌다. 서인영은 순천향대 의대와 한양대 같은 여러 대학에 면접을 보지만, 고된 학업을 병행해야한다는 교수들의 지적과 기초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한다. 서인영은 눈물을 삼켜야 했고, 사회에서 성공했지만 대학은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그녀는 카이스트 면접에 합격하여 명예학생으로 입학한다. 카이스트에서는 서인영의 창의성과 열정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카이스트에 들어가기 위해서 입학본부장과 간단한 면접을 치러야 했다. 입학본부장은 중간고사에서 2개 과목 이상 낙제를 하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입학본부장은 카이스트 입학 조건으로 학교 홍보를 부탁한다. KAIST는 일종의 구두 계약을 통해서 서인영의 입학을 허락한다. 학교는 서인영의 이미지를 빌려오고, 서인영은 학교생활을 통해서 그간 얻지 못했던 학력자본(그녀에게는 대학졸업 증서가 없었는데, 사회에서는 각종 자격증이나 학력증서를 통해서 그 사람의 능력을 가늠하곤 한다)을 얻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학교와 서인영이 각자 주고받는 윈-윈 게임으로 학교와 서인영은 결과적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얻었게 된다.


명문대 중 하나인, 그리고 공과대학 중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카이스트에서 서인영은 연예인이 아닌 학생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녀가 수강한 수업은 신소재 과학, 디자인 프로젝트, 영어 회화, 화학 실험 총 4개의 과목이다. 신소재 과학 수업에서 서인영은 매번 지각을 해서 교수에게 핀잔을 듣는가하면, 원어민 교수가 진행하는 영어 회화 시간에는 교수와 눈이 마주 치지 않기 위해서 고개를 숙이곤 하였다. 새벽 늦게까지 진행되는 빡빡한 스케줄로 지칠 대로 지친 서인영에게 오전 9시 수업은 늘 무리한 강행군이었으며, 기초가 잡히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 카이스트 학생들과 함께 영화 회화 수업을 듣는 일은 그녀에게는 고역이었다. 방송 초반 노골적인 학벌에 대한 권위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연예인 서인영의 위치와 카이스트 학생과 교수들과의 거리감은 확실히 드러났다. 또한 서인영은 동아리 활동을 위해 응원 동아리에 가입할 때도 까다로운 면접을 거쳐야만 했다. 서인영은 새로운 구성원들을 만나고 소속감을 얻는 절차가 필요했다. 이는 연예인이라는 사회적 신분에서 학생이라는 사회적 신분의 전환을 의미한다. 서인영은 교수와 학생의 관계, 학생들과의 친분 관계, 동아리 생활에서 선후배 관계를 익혀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서인영은 7년이 넘는 사회생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종종 약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교수의 권위 앞에서 기가 죽는가 하면 동아리 선배가 군기를 잡는 순간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듯 했다. 가수로서 서인영은 무대 위에서 관중들을 바라보는 위치였고, 관중이나 시청자들의 시선은 서인영에게 집중되었지만 교실에서는 그 위치가 역전되었다. 서인영은 늘 교수를 바라보아야했고, 교수들은 강단에 서서 서인영을 바라보았다. 교수라는 위치가 가지고 있는 권위와 힘은 서인영을 늘 압도했다. 하지만 서인영은 특유의 당돌함으로 이를 대처해 나간다. 신소재 공학과 교수와 일대일 면접에서 서인영은 재기발랄한 말투로 교수의 영어 발음이 조금 엉터리라며 비아냥거리는가 하면 면접 시간에 지각하고서도 특유의 애교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학교의 수직적인 위계구조를 서인영은 당돌함으로 대처해 나가는데, 대중들은 서인영이 두 개의 장(연예계와 학교)에서 겪게 되는 아노미 현상을 관람한다. 서인영은 역할갈등으로 혼란을 겪기도 한다. 영어 시험이 있던 날, 서인영은 전날 새벽 4시까지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느라 아침 시험에 지각을 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그간에 쌓였던 감정을 폭발한다. 무리한 스케줄을 강요했던 매니저에 대한 원망과 무작정 학교에 입학을 하고 무작정 시험을 치라고 강요하는 제작진에게 속상한 감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학생이라면 누구나 시험을 봐야했다. 서인영은 이런 장면에서 연예인과 학생사이에서 발생하는 역할갈등을 겪는다. 역할 갈등의 모습은 일상 곳곳에서 나타난다. 서인영은 시험을 보기 위해서 방송대기 시간에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공부를 하는가 하면 뮤직 비디오 촬영 현장에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출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송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서인영은 학교를 낯선 장소로 생각하기 보다는 스스로 ‘우리 학교’라는 호명을 통해서 학교생활에 적응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카이스트 학생으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소속감을 얻게 된다.


<서인영의 카이스트>는 서인영이 연예계에서는 7년차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학교에서는 약자일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위치를 역전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연예인에 대한 환생이 깨어지는 순간이 발생했다. 서인영이 약한 모습은 시청자에게는 연예인이 평범한 학생의 위치로 전락하는 볼거리를 제공했다. 교수들은 수업시간에 시험과 출석을 통해서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고, 반면 학생인 서인영은 교수들의 요구에 수긍하면서도 자신의 주장과 개성을 정면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교수와 서인영간에는 보이지 않는 권력 투쟁이 발생한다. 작은 교실 안을 보여주는 카메라는 학생과 교수간의 권력 투쟁의 공간이다. 방송은 일상에서 다분히 일어나는 알력 관계를 재미나게 풀어나간다.


한편 이 방송의 핵심은 연예계 생활을 통해서 일반인 친구들을 사귀지 못했던 서인영의 대인관계를 확장시켜주는 데 중점을 둔다. 서인영은 자칭 ‘서인영 크루’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사귄다. 친구들은 서인영의 과제를 도와주는가 하면, 서인영의 부진한 학업을 위해서 과외 선생이 되어주기도 한다. 한편 동아리 활동이나 방과 후에 삼삼오오 모여서 여가 활동을 함께 즐기면서 연예인과 학생들이 어우러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두 영역에서 활동하는 서인영과 학생들이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설정이 곧 이 방송의 기본 설정이었다. 서인영에 대한 경외와 동경의 사그라질 때, 대중들이 연예인에게 품고 있던 환상은 깨어진다. 그녀의 신분이 방송인에서 학생으로 바뀌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그 간에 연예인에 대해서 품고 있던 환상이 깨어지고, 깨어진 환상의 빈틈으로 ‘학생 서인영’, ‘일반인 서인영’이라는 이미지가 대신 자리 잡는다. <서인영의 카이스트>의 인기의 일등공신은 가깝고 친근한 서인영이라는 이미지가 일등 공신이었다.



2-2. 서인영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연예인도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분명 톱스타라면 보통 사람들과는 남다른 귀족적인 생활 방식을 할 거라는 환상이 지배적이다. <서인영의 카이스트>는 그런 대중들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방송 초반에는 서인영과 학생들의 생활방식을 비교 대조함으로서 거리감과 이질감을 형성했다. 방송 초기에 서인영은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카이스트 기숙사를 방문한다. 서인영은 기숙사라는 공동체 생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여학생들이 수다를 떨다가 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말에 놀라고, 방 마다 욕실이 없고 공동으로 샤워장이나 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말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5평 남짓한 2인 실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서인영은 공동체 생활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동아리 활동 중에도 서인영은 작은 일에서 학생들과 갈등을 겪는다. 응원단 연습시간마다 서인영은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나타난다. 10cm를 넘나드는 굽의 높이는 볼 때마다 아찔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응원단 연습은 격렬한 동작이 많기 때문에 단원들은 늘 운동화를 신고 연습을 해왔으며, 심지어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여자들의 경우에는 화장도 금기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서인영은 평소 무대를 고려하여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연습을 해왔으며, 화장도 연예인으로서는 필수였다. 생활 방식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이해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영은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그녀의 집은 강남의 한 빌라로 입구에서부터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건물 앞에는 경비원이 있고, 집 근처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 법한 전형적인 강남 상류층의 주거공간이다. 서인영의 집은 앞서 보여주었던 학생들의 주거공간과는 사뭇 다르다. 현관에는 서인영이 모아두었던 구두가 100여 켤레 진열되어 있고, 집안에는 그녀만의 의상실이 따로 있다. 기숙사와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욕실이었다. 집안에서 가장 신경 쓰는 곳이 욕실이라고 말하는 서인영의 욕실은 문이 따로 없이 오픈된 공간으로 리모델링하였다. 먼지 하나 없어 보이는 백색의 욕실은 일반 가정의 욕실과는 달리 넓은 것이 특징이었으며, 그녀는 청결을 위해서 3벌의 목욕 가운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주거공간은 사회적 신분과 직결된다. 카이스트 기숙사가 곧 ‘카이스트’를 상징 할 수 있듯이 서인영의 개인 생활공간도 ‘서인영’이라는 이미지 혹은 사회적 신분과 직결된다. 기숙사는 감시의 공간인 동시에 훈육의 장소이다. 카이스트 학생들만 출입할 수 있는 이 공간은 감옥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공동체 생활을 위한 규칙과 질서가 갖추어진 공간이다. 이 공간은 외부와 폐쇄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카이스트를 외부와 구별함으로서 학생들에게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부여하고, 동시에 외부와 차별화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편 서인영의 집 역시 폐쇄적이지만 이 폐쇄성은 철저히 서인영 개인을 위한 기능을 한다. 늘 대중들에게 노출되어 살아가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서인영에게는 자신의 집이 유일한 안식처로 작용한다. 그녀는 휴식을 위해 욕실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침대는 킹사이즈를 선호한다. 하지만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은 그녀의 패션 감각이다. 한 방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수많은 옷들과 신발장을 채우고도 남는 화려한 구두들. 방송 당시 서인영의 집을 방문한 남자들은 서인영의 의상실과 구두를 보고 기겁을 한다. 성性차에 의한 놀라움일수도 있지만, 일반인들이 가정에 의상실을 따로 가지는 경우는 드물 수가 있다. 이런 장면의 비교 대조를 통해서 이 방송은 일종의 계급을 구분 짓고 있으며, 그 차이를 통해서 호기심과 관음증을 유발한다.



⑶ 사치취향의 파급력
3-1. 구두애호에서 구두 중독으로


기독교 의식이 강한 서구사회에서는 금욕이 미덕이지만, 부르주아들은 사치를 통해서 자신의 경제력이나 문화력을 과시한다. 이런 풍조는 뉴요커들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된 <섹스 앤더 시티>에서 볼 수 있으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한편 한국 소설 중에서도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쓴 정이현은 명품을 즐기고 남성을 경제력으로 판단하는 여성의 심리를 묘사했다. 이 소설은 性 이나 연애마저도 상품이 되어가는 현대 사회를 묘사한다. 동시에 여자들은 핸드백이나 명품으로 자신의 신분 가치를 상승시킨다. 사치가 미덕은 아니지만 사치는, 한 사람의 경제력과 문화적 자본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로 작용한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자들은 프라다 가방을 가지고 싶어 하고 마놀로 블라닉의 구두를 신고 싶어 한다. 서인영 역시 명품 옷과 구두에 대한 애호를 보이는데, 서인영의 구두에 대한 중독을 통해서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서인영의 사회적 위치인 연예인이라는 지위와 그녀의 생활 방식은 대중들로 하여금 그녀가 상층계급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여기에 그녀가 주로 활동하는 지역이 압구정과 강남이라고 했을 때 그녀가 상류층 혹은 부르주아라는 이미지로 굳어진다. 평소 연예인들은 각종 시상식에서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의 드레스로 자신의 미를 뽐냄으로써 과시욕을 드러낸다. 대중들은 연예인들이 입고 나온 브랜드와 그 브랜드와의 조화로 연예인들을 평가한다. 오늘날 외모지상주의에서는 한 사람의 외모나 몸매뿐만 아니라 옷이나 장신구가 한 사람의 기호나 지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슈어홀릭은 공연이나 예술관람 보다도 구두에 더 열광하는 구두애호가, 구두수집가, 구두광을 일컫는 말이다. 전설적인 슈어홀릭이라면, 3000여 켤레의 구두를 모았다고 알려진 마르코스 필리핀 전(前)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 여사가 있다.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후 이멜다는 발의 쾌락을 민생(民生)보다 더 중요시한 죄로 기소되기도 했다. “구두를 모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외쳐온 그녀는 2001년 자신의 구두를 모아 구두박물관을 개관했다. 머라이어 캐리도 구두 한 켤레로 버텨야 했던 어린 시절 기억 때문에 보이는 대로 구두를 구입, 1000여켤레 정도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슈어홀릭은 여성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평설이다. 영화평론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심영섭은 성적인 욕망, 허영심 등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두가 페르소나(가면)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구두를 신는 것 자체에 신데렐라에 대한 여성심리가 작용 한 것으로 분석한다. 한편 이규혜 교수(한양대 의류학과)는 “사회적·성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 옷이지만 사회적 상황 때문에 원하는 대로 입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억압을 신발로 표출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는 높은 하이힐이 여성의 성적 욕망의 분출이라는 심리학적인 분석도 분분하다. 하지만 슈어홀릭이나 쇼핑을 즐기는 쇼퍼홀릭(Shopaholic)을 단순히 심리적인 요인의 작용으로 해석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여성들이 쇼퍼홀릭이나 슈어홀릭의 성향이 있다면, 남성들도 자동차나 오토바이, 지퍼 라이터, 조립식 완구 등에 강한 집착을 보이기 때문이다. 슈어홀릭을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이상심리로 분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슈어홀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유욕과 소유욕을 통한 자기 과시의 한 현상에 가깝다. 예술이나 문화 분야에서 애호의 수준을 넘어서 중독의 단계에 이르면 물적인 욕구가 강해지고 점유욕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서 명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고흐와 모네의 그림의 원본을 살 수는 없어 화집을 소하는 걸로 욕구 충족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읽지도 않을 양장본 문학 전집을 소장하려고 하고, 영화 애호가들 중 일부는 한정판 디브이디를 책장 한 가득 채워 넣기도 한다. 사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각종 필름 카메라나 단종 된 카메라를 고물상을 뒤져 구입하거나, DSLR 카메라를 구비하고 다량의 렌즈를 갖추어 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슈어홀릭도 일종의 중독이나 소유욕의 심리적 현상으로 분석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런 소유욕은 사회적 현상, 사회구조와 관련이 있다. 소유욕은 취향에서 비롯된다. 취향은 필요기능이 아닌 사치기능으로 작용하여 타자와 나를 구분하는 기호가 된다.


서인영은 자신의 구두를 “애기들”이라고 부른다. 비 오는 날에는 비에 젖을 까봐 걱정하고, 혹시나 구두에 흙이 들어갈지도 모른 곳에서는 까치발로 걷기 일쑤다. 그녀에게 구두는 자신의 얼굴과도 같다. 서인영의 사회적인 위치는 연예인으로 그녀는 남들보다 다름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 다름은 곧장 그녀를 화려하게 빛내주는 의상과 장신구, 헤어스타일과 같은 패션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된다. 그녀가 옷을 입는 것의 의미는 단순한 의복의 기능만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의상은 유행과 트렌드와 관계를 맺고 있다. 곧 그녀가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것은 무대 위에 서야하는 연예인으로서의 사회적 의식이자 행위이다. 또한 그녀가 특별히 유행에 민감한 이유는 타 연예인들과 차별화를 위해서다. 남들보다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답게 보이려고 하는 것은 여자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식상하면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냉혹한 연예계의 생존 법칙상 남들보다 더 특별하게 보여야 하는 부담감도 작용한다. 대중의 관심이 서인영을 거듭나게 하고, 서인영은 대중의 관심을 명품과 맞교환하는 행위를 한다. 사회는 엄연히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서인영은 대중과의 관계의 매개물로 패션을 선택한 것이다.



3-2. 희소성의 은밀한 매력과 대중 사회의 유행.

상품의 희소성에는 일종의 특권이 내포되어 있다. 모두가 원하고 갈망하지만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을 경우 상품에는 희소가치 생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능력, 혹은 문화적 능력에 따라서 희소 자원을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서 경매장에서 예술 작품을 고르고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은 문화적인 취향과 안목을 소유하고 있어야함은 물론 예술 작품을 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서민들이나 민중계급일 경우에는 생활에 필수적인 상품만을 구매할 수 있지만, 중류층에서는 필수적인 것뿐만 아니라 아늑하며, 편안한 또한 말끔한 인테리어나 또는 유행하고 있는 독창적인 옷을 찾는다. 상류층의 경우에는 박물관에 전시될 법한 회화를 소유할 능력도 있다. 이런 희소자원의 소유는 결국 상류층의 특권이다.


‘서인영의 구두’는 모든 사람이 신을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