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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여러 가지 진통을 겪은 후, ECC(EWHA Campus Center)는 올해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공개되었다. 이화여대의 ECC라는 건물의 착공을 둘러싸고 언제나 수많은 담론들이 쏟아졌다. ECC의 내부에 스타벅스와 교보문과와 같은 상업시설의 입점을 놓고 사람들은 찬 반 양론으로 나누어졌다. 이 담론의 뒤편에는 씨네 큐브(영화사 ‘백두대간’)에서 파생되어 개관을 기다리는 ‘아트하우스 모모’라는 극장도 있었다. 아트하우스란 이미지와 좋은 영화를 상영한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모모 또한 ECC와 같은 흐름에 놓여있었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오는 8월 초, 막 발돋움을 기다리는 ‘신생’영화관이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이화여대의 ECC 설립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찬성하는 학생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끌어안고 우여곡절 끝에 정식 개관을 기다리고 있다. 아트 하우스 모모의개관은 광화문에서 신촌 지역으로 나누어지는 새로운 예술 영화 라인의 시작인 동시에 실 소비층이 처음으로 ‘대학생’으로 두드러지는 양식을 갖춘,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극장의 사이트가 오픈하고, 지난 달 개관에 앞서 다양한 행사들을 선보이고 있는 모모에 관심을 가지는 관객과 언론들은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7월 4일 저녁, 모모는 개관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나는 인어공주>의 관객과 배급시사를 동시에 진행했다. 한창 입점이 진행 중인 한적한 ECC 건물 속 작은 극장 아트하우스 모모, 그곳을 운영하는 영화사 백두대간의 손주연 부대표를 만났다.



강민영(이하 ‘강’): 일단 극장 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처음 백두대간에서 이화여대 ECC건물에 극장을 설립한다고 했을 때, 당시에 들었던 극장의 명칭이 ‘씨네 큐브 이화’라고 들었다. 때문에 계속 ‘씨네 큐브’와 연관 지어 씨네 큐브 ‘이화’라는 이름으로 운영이 될 줄 알았는데, 중간에 ‘아트하우스 모모’라고 변경이 되어있더라.

손주연(이하 ‘손’):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씨네 큐브라는 극장이 연 몇 만의 관객을 가지고 고정적,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씨네 큐브의 브랜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씨네 큐브라는 회사가 단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흥국생명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동의를 얻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급박하게 일이 진행 되고,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아 결국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씨네 큐브에 대한 장단점이 부각 되었다. 기존 씨네 큐브는 무겁고 진지한 이미지가 강해 대학 내 작은 영화관으로서 ‘씨네 큐브’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생겼고, 젊고 밝고 친근한 느낌으로 이름을 바꾸자고 생각했다.



강: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모모’라는 단어를 떼어놓고 보았을 때, 모모는 여성성이 짙은 단어로 생각된다. 이것은 여대라는 메타성과 이어진다고도 생각되는데, 특별히 ‘모모’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있는가.

손: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는 소설이 있다. 그 소설이 이미지로 형상화 되어있지는 않지만,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희망을 가져주는 차원에서 모모라는 소설을 차용했다. 또 모먼트 오브 무비(Moment of movie)라는 말을 붙여 모모라는 줄임말로 설정하기도 했다. 모두 각자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다르고, 인생에 영향을 끼친 영화 또한 다르다. 만약 한 영화를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면 그 순간은 개인에게 엄청나게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때문에 ‘모모’라는 단어는 약어 이긴 하지만, 들었을 때 두 가지의 ‘모모’를 떠올릴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강: 모모는 138석 2개관을 가지고 있다. 극장 시설 말고도 다채로운 행사를 많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로 전시나 음악 행사와 같은 것들을 토대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씨네21에 실린 기사에서 모모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문화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것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

손: 예전에 어떤 영화를 보느냐보다 누구와 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디 워>라는 작품도 어떤 상황에서 보여 지느냐에 따라서 담론들이 달라지는 것 같다. 영화라는 컨텐츠는 예전에는 절대적인 것이었지만 이제는 수용태도, 즉 ‘나’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다른 문화적인 것들과 함께 발 맞춰 나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모모에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일반인들과 조금 다른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어떤 정치성을 띄거나 선언적 이거나의 차원이 아니라, 취향이 다른 것이고, ‘타인의 취향’들끼리 모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일 가까운 것이 책이었고, 크게 분류하자면 아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악을 듣는가에 대한 포괄적인 관심을 가졌다. 쉽게 이야기하면 크로스 오버인거다. 영화 자체만으로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영화의 차원이 낮아지기도 하고 높아지기도 해서 다른 문화와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강: 모모가 책이라는 것을 모토로 발단을 쌓았기 때문에 지난번에 있었던 르 끌레지오의 ‘발라시네’출판 기념행사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모모는 씨네 큐브와 같은 영화사 백두대간에서 운영을 하고 있는데, 혹시 운영팀을 분할해서 배치한 건가?

손: 그럴 만한 여력은 없었다. 운영을 하기 위한 경비차원에서 분리를 하면 경비는 더블이 되니까 그렇게는 못하고. 같은 머리에서 나오는 다른 생각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씨네 큐브는 고풍스럽고 문학적이고, 모모는 조금 더 트랜디 하고 시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큰 분류에서 보면 비슷한 색깔인 영화들이 될 거다. 기획 이런 것들이 모모는 액티브하게, 씨네 큐브는 보수적으로, 이런 차이 정도만 있다.



강: 그럼 프로그래머도 씨네 큐브와 동일한 프로그래머로 진행되는 건가?

손: 그렇다.



강: 씨네 큐브라는 극장을 알게 된 지 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백두대간에서 수입한 영화들을 보면 주로 유수의 영화제들을 기반으로 상영하는 것 같다. 국내에서는 부산영화제의 상영작이 좀 막강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항상 부산에서 관객 호응도가 높은 영화들을 보면 씨네 큐브에서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다(웃음). 모모에서는 특별히 2008년에 기획하는 영화제나 프로그램이 있는가?

손: 개관영화제로는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준비 중이다. 2008년 SICAFF를 중심으로 호응이 좋았던 작품이나, 해외 애니메이션 영화제 같은 곳에서 그랑프리를 탔던 작품들과 반응이 좋았던 애니메이션들을 모아서 영화제를 한다. 크게 기획된 것은 ‘라틴 아메리카를 통해서 본 유럽 배낭 여행’과 같은 주제인데, 라틴 아메리카가 상징하고 있는 여러 가지 주제를 모아 영화제를 진행 중이다. 상시로 하고 있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북 콘서트 식의 영화 상영이다. 책 읽어 주는 영화관. 저자와 만나 육성으로 자기 책을 읽는 것. 유럽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우리 나라 같은 경우는 보급화 되지 않았다. 그리고 EBS에서 몇 년 전부터 진행 중인 5분짜리 영사다큐 <지식 E>를 좋아하는데, 매주 다른 주제로 <지식 E>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이것을 보통 극장에서 광고나 예고편 시간에 상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EBS에 의뢰했다. <지식 E>에서도 주로 예술 지향적이고 소프트한 주제의 다큐를 상영하려고 한다.



강: <지식 E> 기획 같은 경우는 다른 극장들과 달리 모모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인 것 같다. 나도 <지식 E> 프로를 즐겨보지만 프로그램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매번 다른 소재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놓치기가 십상이었다.

손: 앞서 말한 것들과 <지식 E> 이외에도 일곱 가지 정도 기획 행사를 기획 중이다. 이 행사들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상시적인 것으로 한 해에 네 번 정도 큰 행사를 통해 운영할 것이다. <지식 E> 같은 경우는 모모의 가장 큰 연중행사가 될 것이다.



강: ECC(EWHA Campus Center)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처음 ECC건물을 설립한다고 했을 때, 일부 언론에서 다루는 기사들을 보니 (이대생)들의 반발이 굉장히 심한 것 같더라. 학교 자체가 상업성을 띄어 간다는 우려를 낳았는데, 현재 ECC가 완공되고 난 후 ECC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입장은 조금 수그러진 상태다. 학생들의 반대 과정에서 아트하우스 모모의 입관이 확정되었는데, 혹시 그 과정에서 아트하우스 모모의 운영에 특별히 어려움을 겪은 것이 있나.

손: 아직도 어려움에 부딪혀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 자체가 50년대에 청소년 유해 기관, 유해 장소, 비리의 온상 등 부정적으로 규정되어 있던 것이 아직까지 법으로 규제되어 있다. 대학교는 18세 이상 성인들이기 때문에 풀렸지만, 중 고등학교는 여전히 ‘주변 50미터’ 철칙을 지키고 있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지고, 김대중 정권 이후 수출상품으로 전환되며 진흥 사업도 많이 하고 있지만, 통념상 극장을 규정하는 것이 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에서 바라보는 시선 자체도 스타벅스와 모모를 동급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극장을 규정하는 법적인 규제는 딱 두 가지인데, 상업영화관 아니면 18세 이상만 관람하는 전용 상영관이다. 예술영화 전용관이라는 엄밀한 용어도 있고 영진위에서 지원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일정 부분 학교의 상업화를 도모하는 데 있어서 학교 측의 고민과 그에 반대하는 학생 측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스타벅스와 모모를 동급으로 설정하는 건 너무 차이가 나는 두 개를 접합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예술 영화 전용관이 기타 상업 시설과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인지도가 적은 것 같다. 학생들은 대부분 영화관의 설립에 동조하는 것 같지만, 이대의 총학과 다양성 영화 상영관 사이에서 운영방식에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같다.



강: 모모에서 처음에 입관 규정을 할 때, 쉽게 말해 ‘여대’라는 것이 1차적인 소비자가 될 것이라는 걸 숙지하고 계셨을 듯하다. 이것을 고려하고 ECC 입관을 결론 내리신 것인가.

손: 처음에는 이화여대 측에서 극장의 직영운영을 결정했었다. 하지만 상황들이 만만치 않고, 유통 상례 상 불가능한 지역이라 CGV나 메가박스 같은 큰 배급사에 의존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컨설팅 의뢰를 하면서 운영에 대한 위탁을 부탁 한 거다. 백두대간 측에서는 극장 운영의 제의를 두 번 정도 거절했다. 아시다시피 과거 90년대 초반에 시네마테크 운동이 일어나면서, 극장에서 필름으로 아트영화를 보는 게 가능해진 시대에 붐이 있었지 않나. 당시에 그런 운동을 즐기고 지지하는 층이 대학생층이었다. 그때의 대학생들이 이제 3~40대가 되었는데, 그들에 비해 지금 대학생들은 판이하게 다르다. 상업영화를 지지하고 한국영화 붐을 타 한국영화를 지향하고. 그래서 20대의 초반 관객은 아트영화 관객이 거의 없다고 보았다. 일본 인디 영화는 많이 찾지만 말이다. 때문에 ECC에 입관하는 게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다른 생각도 들었다. 예술 영화 시장이 40만 정도의 시장인데, 그 중 씨네 큐브가 20만 정도의 좌점율을 소유하고 있다. 이 기회에 학교 내에 아트하우스를 성공적으로 해내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게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오갔다. 여러 가지 한국 영화 문제점의 틈새를 좁히자는 취지에서 ECC를 선택하게 되었다.



강: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경우, 소격동에서 옮길 당시 낙원상가라는 공간의 특성이 최우선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극장의 경우, 극장 입관 이전에 지역적인 특성을 상당히 고려하는 추세인데 예를 들어 하이퍼텍 나다(동숭아트홀)와 상상마당(KT&G)은 대학로와 홍대에 위치해 지역적인 관객들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광화문의 경우에 안정적인 30대 직장인 관객을 대상으로 씨네 큐브, 미로 스페이스, 스폰지와 같은 라인을 세웠다. 이제 새롭게 떠오르는 것은 신촌 일대의 곧 재개관할 필름포럼과, 아트하우스 모모인데, 모모 또한 앞서 말한 나다와 상상마당과 함께 지역적인 부분ㅇ서 차별점을 두고 운영할 것인가.

손: 신기하게도 필름포럼의 경우 곳곳을 뒤지다가 우연히 신촌에 자리 잡았는데, 어쩌다보니 모모와 함께 이대 정문과 후문에 각각 위치하게 되었다(웃음). 모모의 전략은 씨네 큐브의 ‘제 살 깎기’는 지양해야 하고, 이른바 예술영화를 외면하는 20대 초반을 공략하는 적극적 마케팅과 다채로운 영화를 상영하여 관객층을 넓히는 것이 급선무다. 아마도 모모의 경쟁상대는 스폰지나 나다의 관객들의 일부가 될 거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객발굴에 있을 것이다. 보지 않은 사람들이 보는 것, 예를 들어 공강 시간이나 휴강시간에 어쩌다 어떤 영화를 봤는데, 그게 ‘모먼트 오브 무비(모모)’가 되어서 각자에게 중요한 사건으로 작용하는 것. 씨네 큐브의 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일부 관객층의 흡수가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본다.



강: 모모가 홍보 전략으로 내세운 모모의 ‘워너 비(Wanna be)’들을 검색해보니 정이현, 이상은과 같은 작가들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요새 떠오르는 트랜드라고 해도 무방할 텐데, 완벽히 스타성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독립성과 대중성 중간에 위치해 있는 작가들이다. 워너 비들의 선정은 앞서 말한 씨네 큐브와 일반 관객의 소통을 고려하기 위한 예를 토대로 하게 된 것인지.

손: 소위 말해 ‘네가 그들을 옹호하면 너도 이 극장에 와봐라’라는 의미가 있는 30대들이다. 완전히 뜨지도 않고 아주 막 발돋움하는 사람도 아닌 전문 아티스트인데, 인디적인 느낌도 있는 분들이다. 지금 20대 초반들이 되고자 하는, 말 그대로 ‘워너 비’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엄선했다. 각개 적으로 설득을 하고 의미와 취지를 이야기를 했는데 다 긍정적으로 응해주시더라. 씨네 큐브도 대부분 좋아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워너 비들의 개인 작업을 통해 다양한 방면에서 대중과 소통하고자 할 때, 극장을 마음대로 이용하실 수 있는 ‘장’이 설정되면 서로 좋은 거니까. 관객 호응도 좋았고.





강: 요즘 블로그를 이용한 극장, 혹은 영화 홍보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예술영화극장 전용 홈페이지 ‘아트플러스’를 운영하다가 네이버에 따로 카페를 만들어서 작년부터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씨네 큐브도 모모와 함께 ‘씨네 아트’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활동 중인데, 블로그를 생성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손: 백두대간이 또 하나 새롭게 발을 내딛는 분야가 있는데, 말씀하신 씨네 아트라는 이름으로 예술 영화 전문사이트를 착공 중이다. 시장상황도 그렇고 매체들도 사실상 블록버스터에 장악되어 있는 상황이라, 일반 아트영화에 대해 충분한 논의의 장이나 리뷰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것에 대해 담론을 제기할 방법이 부족하다. 어떤 평론가가 쓰고자 해도 데스크에서 잘리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백두대간 측에서 운영하는 극장이 늘어나는 마당에, ‘우리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보자’로 결론 내렸다. 그런데 자체 컨텐츠 개발은 비용문제도 생기기 때문에 어렵고, 자리만 마련해주면 자발적 생산자들이 와서 그것에 대해 논의하는 방식을 도모해보고자 해서 인터넷을 이용하게 되었다. 조금 있으면 사이트가 오픈을 하는데,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다. 우리는 기대가 크지만.



강: 씨네아트 블로그는 팀 블로그 형식으로 몇몇의 리뷰어들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들도 자체적으로 모인 것인가?

손: 블로거를 모집했는데, 자발적으로 지원한 분들도 있고 외부 블로그를 통해서 부탁을 드린 분도 있고. 총 10분 정도를 엄선해서 뽑았다. 다들 영화, 미술, 음악 등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으니까 리뷰어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블로거에 글을 올려주고, 그 중에서 선별해 사이트에 메인에 해당하는 글을 개시 해주는 식으로 연계를 한다. 사이트보다 블로그가 먼저 오픈을 했는데, 글도 활발히 올라오고 반응도 좋다. 사이트가 정식 오픈하면 그런 곳에 목마름이 있던 네티즌들이 찾아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더불어 영화 전문 기자들과 같은 분들도 씨네 아트 사이트에 들러 예술 영화 관련 정보들을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욕심도 있다.



강: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다. 백두대간에서 수입하는 영화들 모두를 비용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상영하기는 무척 어렵다. 특정 영화를 언급하셔도 상관없고, 지금 현재 백두대간의 창고에 쌓여있는 영화들 중에 특별히 상영하고 싶은 영화가 있는지.

손: 93년부터 15~16년 정도 영화 일을 했는데, 초창기 백두대간 멤버였다가 상업영화 최전선에서 일을 했고, 다시 백두대간으로 돌아왔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문득, 예전 예술영화에 대한 향수가 일더라. 영화에 대한 열정이 예전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진지했었고, 옛날 같으면 충분히 개봉해도 좋을 영화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묻혀버리는 것 같다. 참 안타까운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품 중 루이 말 영화가 세 작품이 있다.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는 좋은 작품도 있었는데, 개봉타이밍을 놓치고 수익의 우려가 있어 배제되고 있는 실상이다. 극장 측은 관객을 고려하는 차원에서 일단 벽을 느낄 때가 많다. 일본 인디나 선댄스 등 요즘 기류에 부합하는 영화들도 좋지만, 고전들을 되짚어보는 것은 허리를 튼튼하게 하는 일인데, 이것들에 관심들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영화들을 중점적으로 틀고 싶은 소망도 있다.




강: 오늘 <나는 인어공주> 시사도 있고 많이 바쁘셨을 텐데, 오랜 시간 수고 많으셨다. 마지막으로 아트하우스 모모의 개관에 거는 기대, 혹은 포부와 같은 것들을 짧게 부탁드린다.

손: 우리가 성공적으로 모모의 자리를 잡으면, 대학 내의 예술영화 전용관의 설립에 관한 적극적인 추진이 있을 것이다. 실질적인 반향에 대한 기대는 어림잡기 힘들지만 일단 관심이 가고 구미가 당기는 일은 분명하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측에서도 지원을 통해 예술영화 전용관을 확대코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영화관들의 위치나 특성상 실효성을 발휘하기 힘들다. 이런 것들을 감안해서 대학 내에 세워지는 영화관인 만큼, 영화진흥위원회 그리고 관객의 기대에 맞게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는 극장이 되고 싶다.



강: 내가 처음 영화 자체를 만났던 건 소격동 시절의 아트시네마였다. 그곳에서 낙원으로 옮겨지고 그 주변을 찾다보니 씨네 큐브와 비교적 최근에 생긴 미로, 스폰지(씨네코아)등이었다. 지속적으로 특정 극장들을 편식한 셈인데, 관객의 입장에서 예술 영화 전용관이라는 극장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조금씩 약진을 하고 있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기타 등등의 문제가 많은 것 같다. 관객으로서 나에게는 그런 문제점을 비집고 ‘아트하우스 모모’라는 또 다른 예술영화 전용관이 생기는 거다. 어떻게 보면 실험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신선한 가능성으로 읽고 싶은 마음이다. 개관 후, 좋은 성과가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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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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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옛날 한국영화'에 대한 아주 안 좋은 편견이 있어서, 그러니까 7, 80년대 한국영화들이란 죄다 섹스, 섹스, 섹스만 부르짖는 촌스러운 영화들인 줄 알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까지 살던 곳은 지금은 집창촌의 폐허로 변해버린 미아리 근처로, 판자집을 겨우 면한 여인숙들과 그 여인숙을 개조해 월세를 놓았던 다 쓰러져가는 집들로 가득한 미로 골목들 사이에 있었다. 꾀죄죄한 뒷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동네 동시상영관 포스터는 언제나 옷을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기묘하고 야릇한 포즈로 서 있는 여주인공의 사진에 덕지덕지 성적인 농담의 낙서글이나 낙서그림이 그려져 있기 일쑤였다. 학교를 가기 위해 언제나 지나쳐야 했던 골목 어귀의 그 포스터들을 보면서 나는 남자들이 여체를 대하는 시선을 배웠고, 동시에 여성이라는 내 성에 대한 혐오감을 키웠다.

그건 가난한 동네, 특히 집창촌이 있던 동네에 살던 여자애에겐 당연한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어느 날 집에 찾아온 형사가 나에게 가끔 과자를 주곤 했던 어떤 언니가 살해당했고, 그게 동거하던 남자의 짓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를 해줬던 일도 있다. 아이들 교육상 안 좋다며 어떻게든 그 동네를 벗어나겠다고, 딸을 가진 엄마들은 더욱 억척같이 일을 하던 그 동네에서,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멋도 모르고 가게들이 빼곡이 들어선 골목을 누비며 놀았다. 교양있는 동네에서 섹스는 보다 음습한 짜고치는 고스톱이지만 가난한 동네에서 섹스는 노골적이기 마련이다. 머리와 눈을 '나보다는 윗쪽' 사회에 두고 있던 어린 여자아이에게 섹스와 관련된 온갖 이야기들, 특히 영화는, 그저 어른들과 관련된 일일 뿐만 아니라, 더럽고, 심지어 무서운 것이기도 했다. 섹스와 가난이 합쳐지면, 어린 여자아이에게 삶과 세상에 대한 공포는 두 배가 아니라 세 배, 네 배가 된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들도 미아리의 그 가게들이 무얼 하는 곳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 동네에 살던 다른 아이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그곳은 별로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 언니들이 드레스를 입고 깡충깡충 뛰어가는 곳이기도 했고, 공포와 위험을 알리는 보이지 않는 표지판이 깜박이는 듯 느껴지기는 곳이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알아서 공부를 했던 건, 가난한 집안의 첫째딸에 외모도 볼품이 없으면서 공부까지 못 하면 저 언니들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내 또래 남자아이들이 사춘기의 호르몬의 폭발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시상영관에 드나들며 에로영화들을 보다가 우연히 뇌에 충격을 주는 영화를 발견하고 점차 영화광이 되어가는 수순을 밟았을 그 나이에, 나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키워나갔다. 용돈이 따로 없었고 영화관에 따로 갈 돈도 없었던 데다 영화는 그렇고 그런 저질스러운 오락이라 여겼던 만큼, 내가 충무로 키드나 헐리우드 키드가 될 일은 만무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집에서 구독하던 조선일보에 실리던 영화평은 가끔씩 읽곤 했던 건,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불편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궁금증과 매혹을 느끼던 금지된 어둠의 세계를 대표해주는 것이 내게는 영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단,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을 또렷이 인지하고 있던 내게는 매혹보다는 공포와 불쾌감이 더 압도적이었지만.

2.
한국영화에 대해 저런 식의 편견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던 건 그저 하필 그런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의 특이한 비극이겠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기 위해 스크린, 섹스, 스포츠(이른바 3S 정책)를 장려했던 당시 시대상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이리라. 점심을 500원짜리 학생회관 라면으로 때우거나 선후배한테 빌붙고는 그 돈으로 비디오방에 쳐박혀 영화들을 보거나, 그 당시부터 시작된 시사회라는 것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게 얼추 94, 5년 대학 시절 때부터다. 문화원 세대인 내 윗세대들과 달리 나는 PC통신 영화동호회 세대로, 동호회 사람들과 시사회 정보를 공유해 달려가거나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상영회’라는 형식으로 카페를 빌려 누군가 어찌어찌 구해온 불법 복사판 비디오를 틀어놓고 다 함께 둘러보았다. 세상에, 영화에 누벨바그니 뉴 저먼 시네마니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저 뒷골목에서 아슬아슬한 옷을 걸친 채 야릇한 포즈로 서 있는 여자들만 보며 경멸감을 갖던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게다가 어떤 영화들은, 나이를 꽤 먹어서까지 순진함을 버리지 못했던 나보다 더 소녀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것이었다. 조악한 화질의 비디오로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처음 보았던 상영회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동호회 시솝이던 형은 누벨바그와 그 이후에 대해 40분에 가까운 설명을 했고, 나는 ‘즉석에서 저런 얘기를 저렇게 길게 할 수 있다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라움과 감탄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막상 영화를 보면서는 저게 대체 뭐냐 싶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가슴이 벅차서 창가에서 한참동안 담배를 피우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옆동네 하이텔 영화동호회의 어떤 영화소녀의 일화를 들으며 무려 ‘열등감’ 씩이나 느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내게는 그런 영화를 보며 그런 반응을 보여주는 건 양지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들이나 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던 거다.

영화를 보다 본격적으로 보고 한국영화사에 대해 이것저것 주워듣기 시작하면서, <어우동>의 이장호와 <깊고 푸른 밤>의 배창호 같은 감독들이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사람들로 치부되는 것이 적응되지 않았다. (나중에 비디오로 본 <어우동>은 격렬한 심리적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꽤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스스로 당황했다.) <깊고 푸른 밤>이야말로 그러니까, 어린 마음에 뒷골목에서 그런 식으로 '말없이 얘기되는' 듯한 섹스영화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탓이다. 그래서인지 배창호 감독의 영화를 보겠답시고 10여 년 전에 <깊고 푸른 밤>과 <황진이>,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비디오로 챙겨보았을 때, 다른 두 작품엔 놀라고 감탄하면서도 저 <깊고 푸른 밤>만큼은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내게는 장미희의 상당히 양식화된 연기와 발성이 그저 거북살스럽기만 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여전히 순진했을 뿐 아니라 완고한 도덕율을 가지고 있던 내게, 장미희가 연기했던 제인이나 안성기가 연기한 호빈이 곱게 보일 리도 없었다. 넌 왜 그러고 사니, 이게 둘을 향한 내 반응의 고작이었다.

3.
배창호 감독의 전작을 상영할 거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오래 전 비디오로 보면서 감탄했던 <황진이>와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드디어 필름으로 볼 수 있게 됐다며 감격했다. 두 영화와 함께, 전설적인 데뷔작이라는 <꼬방동네 사람들>과, 당대 최고의 흥행작이자 배창호 감독을 80년대 최고의 흥행술사 자리에 확고하게 올려놓은 <고래사냥>을 확인하는 게 당시 내 계획이었다. <러브스토리>는 오랜만에 다시 봐야겠다 싶었고, 다른 작품들은 시간 되면 보고 아니면 말고. <깊고 푸른 밤>을 다시 볼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적도의 꽃>을 볼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황진이>는 말하자면, 그저그런 영화들만 있었고 의무감으로라도 별로 보고싶지 않다는 한국영화에 대한 내 편견을 깨준 최초의 영화였기 때문에 필름으로 꼭 봐야만 했다. 물론 제작된 연도상 <황진이>를 ‘옛날영화’로 분류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90년대 초중반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는 내게는 무조건 ‘옛날영화’로 구분되곤 한다. 사실 배창호 감독이 한창 한국영화를 주도하던 80년대는 내가 고작해야 국민학생, 중학생이던 때다. 배창호 감독은 나보다는 내 바로 윗세대의 감독이었다. <천국의 계단>과 <젊은 남자>의 개봉 사이에는 불과 3년의 텀이 있을 뿐인데도, 내게는 어쩐지 <천국의 계단>은 옛날영화, <젊은 남자>는 현대영화로 구분되는 듯 느껴지니까. <젊은 남자>와 <러브스토리>를 비디오로 처음 봤을 때, 그저 나쁘지 않구나, 그래도 옛날 감독은 어쩔 수 없나봐, 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았는가. 물론 이건 내 편견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나 버렸지만.

번역자들 사이에서는 작업이 어렵기로 악명이 자자한 모 영화제의 영화 번역을 하느라 특별전의 첫 주를 날려먹은 후, 둘째 주부터 본격적으로 배창호 감독의 영화들을 보았다. 총 17편 중 내가 본 건 11편.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360도 회전이동 샷, 컷을 하지 않고 패닝으로 시간의 흐름이나 장면전환을 하는 샷 같은 건 이제는 마치 감독의 인장처럼 느껴진다. <고래사냥>의 진정한 속편이 <고래사냥 2>보다 <안녕하세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흥미로웠고, 영화 내내 고정컷이다가 영화 말미에 가서야 단 두 컷에서 카메라가 움직인다거나 시네마스코프가 아닌 비스타비전 비율인 대신 화면의 ‘깊이감’을 활용하며 공간의 입체성을 보여주는 <황진이>의 컷들도 신비로웠다. <러브스토리>는 너무 시대를 앞질러 나온 선구적이면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영화였고, <기쁜 우리 젊은 날>은 배창호 감독보다 이명세 조감독의 터치가 더 많이 보이는 듯해서 또 재미있었다. <고래사냥>은 거의 열광을 하면서 보았는데, 특히 이미숙의 연기에 눈물을 꽤 쏟았다. <정>은 이 감독이 내 편견대로 80년대의 영화가 아니라, 계속 그 영화세계를 확장해가고 진화시켜가고 있는 ‘현재의’ 감독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그런데, 애초에 서너 편 봐야지 했던 걸 열한 편이나 보게 만든 영화, 그게 바로 <깊고 푸른 밤>이다. 정확히 하면, 비디오로 봤던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로 여겨지게 만드는, 필름으로 상영된 <깊고 푸른 밤>.

<적도의 꽃>과 <깊고 푸른 밤>을 보며 ‘건졌구나’ 싶었다. 솔직히 두 영화 모두 이제 다시 보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 건, 전적으로 내 취향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배창호 감독이 독립영화 방식으로 영화를 찍기 전까지 작품 중에서는 여전히 <황진이>와 <기쁜 우리 젊은 날>, 거기에 이번에 처음 본 <고래사냥>이 가장 좋고, 내 정서도 다소 이런 예쁘고 고운 쪽에 맞다. 그럼에도 저 두 작품이 내게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비로소 한국영화에 대한 내 편견의 두 번째 장벽이 깨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오래 전 <황진이>를 보면서 편견의 첫째 벽이 깨진 바 있지만, 이제 한국영화에서도 비열하고 계산적인 인물들이 어둠의 포스를 한껏 몸에 두른 채 쾌락과 욕망을 좇다가 추락한다는 본격적인 ‘어른영화’ 중 품격있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특히 <깊고 푸른 밤>에서의 안성기는 딱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니로를 연상시키는, 지독하게 섹시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안성기의 전신누드 씬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비슷한 시기 다른 영화에서의 안성기는 예의 그 사람좋고 순한 표정을 드러내지만, 이 영화에서만은 차갑고 비열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젊은 남자’의 매력을 선보인다. 차이나타운을 걷는 장면에서의 안성기는 <택시 드라이버>의 영문포스터 속에서 자켓 주머니에 손을 꽂고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는 로버트 드니로와 똑같다. 안성기가 연기한 백호빈이라는 캐릭터는 <젊은 남자>에서 이정재가 맡은 캐릭터인 이한의 전신인 한편, 이한보다 훨씬 비열하고 사악하다. 그러나 역시나 360도 회전이동 씬으로 표현되는, 고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 백호빈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단단하고 비열한 외피 안에 숨어있는, 순수와 선을 향한 지향과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향한 그 끝없는 욕망과 꿈이 얼마나 가련한지, 그럼에도 얼마나 절박한지, 또 이것이 궁극적으로 얼마나 피로한 것인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바로 그 씬에서 이 남자가 쥐고 있는 도덕적 딜레마를 더욱 대비시켜 드러낸다. (그는 수동적으로 딜레마에 처해있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그 딜레마와 모순을 쥐고 있다.)




4.
한국의 수많은 시네필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영화사에서 자신의 영화적 영감과 영향을 찾으면서 정작 한국영화의 과거와는 철저히 단절돼 있다. 단순히 사대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선배 영화감독들이 영화를 만들던 당시 가해진 탄압과 억압의 역사를 우리는 다시 되새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것은 그 상처의 역사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형형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욱이 이 반쪽짜리 영화 만들기의 역사는 영화를 ‘딴따라’로 취급하며 자료 보존과 정리에 있어 소홀히 했던 외적인 환경과 맞물린다. 제대로 시스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 오락거리로서 괄시받았던 영화라는 이 매체가 문화의 일부, 혹은 예술의 일부로서 재평가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역사다. 나는 이 글의 첫머리에서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곳의 분위기와 관련해 영화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첫인상을 기술했고, 이는 한국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특별한 인상에 불과하지만, 이런 특별한 인상이 가능했던,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반은 불과 20년 전 우리의 한국영화가 사고되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었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독은 고작 임권택 감독 한 명에 불과했다. 일부 평론가와 진지한 관객이 임권택 감독에게 그토록 연구를 집중하는 이유, 그리고 많은 숫자의 일반 영화팬들이 임권택 감독을 그렇게도 모질게 외면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임권택 감독은 저 상처의 역사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에서) 고스란히 증언하는 존재인 것이다. 게다가, 그 임권택 감독의 영화마저도 100편을 모두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편수의 문제가 아니라 프린트 유무의 문제에서.

배창호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펴낸 김영진의 [이장호 vs. 배창호]와 배창호 감독 자신의 [창호야 인나 그만 인나]를 읽었다. 그 책들에 의하면 ‘배창호 특별전’을 통해 재발견한 ‘현재의 감독’ 배창호는 실은 이장호 감독과 연결돼 있고, 그 이장호 감독은 다시 신상옥 감독과 연결이 돼 있다.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장호 감독이 아닌 배창호 감독의 전작전을 먼저 한 것도 전적으로 프린트 수급과 상영허가 확보라는 아주 물리적인 부분에서 이장호 감독의 영화들마저 전작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마도 여기에서 배창호 감독의 존재가 왜 특별한가, 의 이유를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배창호 감독은 80년대에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현재’의, 한국의 현대영화를 뿌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감독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배창호 감독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어쩌면 저 단절된 과거와 지금 현재 사이를 잇는 가교적 존재, 혹은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현목 감독과 이만희 감독, 이두용 감독, 신상옥 감독은 이미 과거의 감독이고, 이장호 감독 역시 과거 속으로 떠밀려진 채 다시 현재로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이명세 감독은 너무 현대적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 배창호 감독이 있다. 게다가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전편을 필름으로 보는 게 어쨌건 가능하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서 우리는 지금 동시대에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과 이미 활동을 접은 옛 배우들을 동시에 보며, 그 중 일부는 여전히 ‘젊은 배우’로 활약 중이다. 봉인된 한국의 과거영화에 대한 탐색을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겠구나, 라고, (좋아하는 감독 리스트에 배창호 감독을 추가하면서) 중얼거리게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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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탐방 네 번째이자 마지막 인터뷰는 연세대학교 영화 동아리 '프로메테우스‘이다. 지금 프로메테우스는 제 2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동아리 위기론‘이라는 말을 프로메테우스 앞에서 꺼내기에는 민망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침체기를 겪었던 프로메테우스는 06학번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한 학번 당 10명 내외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4평 남짓한 동아리방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이들은 매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주말에도 함께 극장을 서성이며 영화로 수다를 떤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선배들이 끌어주고 후배들이 선배들을 따르는 가운데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얼핏 듣기에는 여느 동아리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전통적인 동아리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 놓고 있다. 동아리와 학내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선후배간 위계구조를 무너뜨린 일은 혁신적이다. 수직구조는 수평구조로 바뀌었다. 선후배간 터울이 없어져가고 있으며, 동시에 이들은 선배들이 영화에 갑옷처럼 씌워 놓은 무거운 지식을 벗겨내고 있다. 과거 선배들은 구조주의 기호학이나 심리학에 근거해서만 영화를 분석했고 지나치게 영화 문법을 강조했다. 하지만 영화는 문법이나 제반 지식이 없어도 접근 할 수 있는 예술이다. 즉 누구나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예술이 바로 영화라는 게 프로메테우스의 생각이다. 이처럼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영화를 해석하는 획일화된 시선을 거부하고 다양한 시선을 수용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영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누구나 영화가 나누어주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지금 프로메테우스는 영화에게 다가가는 중이다. 동시에 자신들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영화를 두 손 들고 환영하고 있다. 기획 인터뷰 막바지에 이르러 아직, 영화 동아리가 건재함을 확인한다. 역시, 절망이 있기에 희망을 찾을 수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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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훈 : 각자 소개를 부탁한다.

이정은 :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06학번이다. 프로메테우스는 1학년 때부터 활동했고 2007년에 회장을 역임 했다.

김지현 : 중어중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지난 해 부터 활동했다.

안성용 : 철학과 03학번이다. 1학년 때부터 프로메테우스에서 활동했고, 전역하고 동아리에 다시 나온 지 3개월 정도 됐다.


이도훈 : 동아리 활동은 어떤 게 있나.

이정은 : 방학 때마다 동아리 회원들이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단편 영화를 만든다. 방학 때 만든 단편 영화로 1학기 초에는 상영회를 한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상영회로, 동아리 회원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직접 만든 영화를 함께 본다. 그리고 축제 때가 되면 주점을 하는데, 주점에서 영화퀴즈를 해서 동아리를 소개하고 동아리의 특색을 학교 친구들에게 알리는데 주력한다. 1학기에 큰 행사 하나로 전주국제영화제 참여가 있다. 또 학기가 끝날 때 즈음해서 다 같이 모여서 밤을 새서 영화를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방학 때는 스터디를 하는데, 주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일주일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간사를 맡아서 스터디를 한다. 예를 들어서 작년에는 감독론을 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세계를 스터디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식이다. 2학기 사업 중 가장 큰 행사는 상영회다. 이때는 동아리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부 사람들도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하지만 작년에는 상영회가 실패했다. 상영회의 목적이 불투명했던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홈커밍 비슷하게 동아리 회원의 친구나 지인을 초청해서 상영회를 했는데, 영화제 성격이 명확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홍보가 부족했던 것도 실패의 한 요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아쉬운 게 많은 영화제였다. 후회가 많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올해는 영화제를 크게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도훈 : 매주 정기적으로 하는 활동은 따로 없나.

이정은 : 매주 목요일 마다 감상상회를 한다. 학기 초에 매주 하게 될 감상회의 간사를 미리 정해놓는다. 간사가 한 편의 영화를 추천하면, 감상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미리 그 영화를 보고 와서 감상회 다 함께 토론을 한다.


이도훈 : 정은 씨가 06학번인데, 지금 활동하는 동기들은 몇 명 정도인가?

이정은 : 아홉 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이도훈 : 지현씨는 07학번이다. 동아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몇 명의 동기가 있었고 지금까지 남아서 활동하는 사람은 몇 명인가?

김지현 : 원래 동아리 신입생 모집 때는 엄청 많이 들어오지 않나. 내가 동아리에 가입했던 학기 초에는 대략 30명 넘게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1학기 때 들어온 신입생 중에 남은 사람은 4~5명이었다. 2학기 때 신입생이 많이 들어왔고, 지금까지 활동하는 사람은 모두 19명 정도다.


이도훈 : 와! 놀랍다. 이렇게 활동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르네상스가 열리고 있는 건가? 지현 씨와 정은 씨가 동아리에 들어오게 된 사연을 듣고 싶다.

이정은 :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에 장래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영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했었다. 그 때부터 대학에 가면 영화 동아리에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연세대 입학하고 나서 영화동아리를 직접 찾아 나섰고, 동아리 소개지를 보고 가입했었다.


이도훈 :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에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었나.

이정은 : 연출이나 제작은 아니지만 영화 산업에 종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이도훈 : 그럼 왜 영화과를 가지 않고, 영문과를 지원 했나.

이정은 : 영화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영화를 연출할 정도의 재능이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솔직히 영화감독은 어느 정도 재능이 있어야 되지 않나.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영화과에 지원하는 건 일종의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모험을 하기보다는 우선 대학에서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고, 그 이후에 내 갈 길을 찾아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도훈 : 지현씨도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영화를 좋아 했나?

김지현 : 고등학교 이전에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영화에 대해서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누구나 공부하는 걸 싫어하지 않나. 공부가 하기 싫을 때면 극장으로 갔다. 내게 영화와 영화가 있는 극장은 일종의 도피처였던 거다. 마침 학교 근처에 씨네큐브나 미로스페이스처럼 예술영화를 틀어주는 곳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대학입학 전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대학에 들어오면 영화 동아리에 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도훈 : 프로메테우스의 첫인상은 어땠나?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영화동아리였을 텐데.

김지현 : 영화동아리라고 하면 영화를 많이 찍을 줄 알았다. 막상 들어와서 보니, 학기 중에는 영화를 찍지 않고 방학 때만 찍더라. 왜 좀 더 많이 찍지 않을까? 하면서 조금 아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학교생활을 해보니 동아리 생활과 학업 병행이 힘든 걸 알게 되었고, 지금처럼 방학 때 한 번 찍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도훈 : 안성용 씨는 1학년 때부터 영화동아리를 했고, 2학년 때는 영화를 하기 위해서 컴퓨터 공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했다던데.

안성용 : 영화가 좋아서 영화 동아리에 가입한 건, 두 친구와 같다. 동아리 활동하면서 내가 얻은 건 ‘나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내 스스로 영화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고, 처음에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과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최후의 비겁한 마음이 내 발목을 잡더라.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온 학교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던 거다. 학벌에 대한 미련이라고 할까. 내 나름의 고민의 결과이자 핑계라고 한다면, 영화를 하기 위해서도 인문학적인 베이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4년 동안 철학을 공부하고, 나머지 2년 동안은 연출 공부를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도훈 : 지금까지 세 분께 들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는 매우 신선했다. 한 학번에 19명이 활동한다거나, 신입생 모집 때 30명이 넘게 온다는 건 90년대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요즈음 영화동아리뿐만 아리나 대부분의 동아리가 신입생을 받지 못할 정도로 침체기라고 하던데.

이정은 : 동아리가 침체기라는 이야기는 조금 들은 것 같다. 다른 동아리 중 일부는 벌써 대가 끊겼다는 소리도 들리고. 전반적으로 동아리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친구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굳이 동아리 모임을 통해서 사람을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동아리 활동보다는 편한 친구를 만나서 어울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도훈 : 지현씨가 신입생으로 들어왔을 때도 프로메테우스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나.

김지현 : 내가 동아리에 처음 들어왔던 2007년 1학기 때만해도 동아리가 활발하게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2007년 2학기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인 원인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동아리 내 분위기가 편안해지면서 사람들이 모여든 것 같다. 보통 영화동아리라고 하면 주위에서 부담을 많이 느낀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친구들도 영화동아리라고 하면 지레 겁먹으며, 자기는 영화에 아는 게 없다며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겁내더라. 하지만 영화에 대해서 잘 몰라도 동아리에 들어와서 같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거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도훈 : 안성용 씨는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요즈음 신입생들을 바라보면 성용씨가 활동하던 때와 차이점이 보이는지.

안성용 : 일단 잘 논다. 그게 진짜 큰 변화인 것 같다. 나 때만 해도 정말 못 놀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학구적인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동아리 활동 할 때는 영화이야기도 잘 안하지, 영화도 안 봐. 술자리에서는 영화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영화이야기 할 때도 다들 재미있어 하는 것 같고, 술 마실 때는 굳이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놀더라. 개인 성향이 바뀐 건지 학교 분위기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지만, 후배들이 매우 활발하더라. 그리고 예전보다 영화에 대한 관심도 증가한 것 같다.


이도훈 : 프로메테우스 사업 중에서 영화제 관람이 있더라. 언제 생겼고, 몇 명 정도 참석하는지 궁금하다.

안성용 : 공식적인 활동은 아니지만, 영화제에 단체로 관람을 하러 가는 건 내 기수 전부터 있었다. 다른 동아리에서도 부산영화제에 때가 되면 단체로 부산에 내려가지 않나? 프로메테우스에서는 매년 부산영화제에 참석했었다. 내가 처음으로 부산영화제에 갔던 것도 선배들 덕분이었다. 요즘도 부산영화제에 내려가면 99학번 선배가 와서 단체로 콘도를 잡아주곤 한다.

김지현 :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통제가 힘들 정도로 많은 인원이 내려갔다. 마침 어린이날이 월요일이라,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나흘간이나 연휴기간이었다. 정확한 인원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30명이상의 내려갔던 것 같다. 너무 많아서 팀을 짜서 내려갈 정도였다.


이도훈 : 이야기를 듣다보니, 프로메테우스에서는 다른 영화동아리에서 볼 수 없는 극장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 같다.

이정은 : 영화 번개라고 해서 한 달에 한 두 번은 다 같이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다.

안성용 : 지현이는 친구에게 수업대출을 부탁하고 영화를 보러 간적도 있다더라. 동아리 애들끼리 수업대출 품앗이를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김지현 : 그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너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수업이랑 겹쳐서 어쩔 수 없었다.(웃음) 원래는 착실하게 수업을 듣는다. 동아리에서 영화 보러 극장에 가는 날도 수업이 없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간다.


이도훈 : 영화는 혼자서도 볼 수 있는 건데, 굳이 주말에까지 시간을 내서 다 같이 영화를 보러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이정은 : 영화 번개를 해서 동아리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갈 때는 외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같이 영화보고 나서도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목도 다진다.


이도훈 : 지현씨는 고등학교 때 공부하기 싫어서 극장에 갔다고 했었는데, 극장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겠다.

김지현 :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한동안 공부가 하기가 싫었다. 당시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제쳐두고 극장에 영화 보러 갈 때가 많았다. 그 때마다 친구들은 틀어박혀서 공부나 하고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영화가 있는 극장에 가는 일은 내게 일탈이었다. 당시 자주 갔던 극장이 씨네큐브인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씨네큐브에 가면 늘 포근한 기운을 느낀다.


이도훈 : 안성용 씨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들었다. 서울에는 씨네큐브나 스폰지 하우스,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예술 극장이 있어 영화적으로 풍성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대학에 들어와서 지방에 있으면서 보지 못했던 예술영화들을 보러 다녔을 것 같은데.

안성용 : 나는 고 3때 영화를 주말에 몰아서 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다운로드로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있던 것도 아니었고, 평일에는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영화 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주말에 극장에 가서 영화 3~4편을 보는 건 일탈이 아니라, 생명의 희망 같은 거였다. 그 시간이 내게는 오아시스 같은 거였지. 대학에 들어와서 지방에서 접할 수 없었던 예술극장들이 낯설고 새롭기는 해도 자주 가지는 않았다. 극장을 가도 친구들과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가는 게 고작이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주로 흥행작 위주였던 것 같다. 가끔씩 예술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는 했지만, 내 습관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주로 다운받아서 영화를 보거나 비디오방을 자주 이용했다.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매일 비디오방에 혼자 가서 영화를 봤다.


이도훈 : 서울에 올라와서 그 전에는 받지 못했던 못했던 영화적 혜택을 누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지는 않았나.

안성용 :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대부분의 영화 제목을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작품 이름뿐만 아니라, 감독 이름까지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늘 생각했던 게, 세상에 볼 영화는 많고 내가 안 본 영화는 너무 많다는 거다. 하지만 보지 않았다고 자책하기 보다는, 단지 아직 안 본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예술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새로움과 낯설음이 있었지만 극장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나 동경은 생기지 않았다. 물론 평소 보기 힘든 영화를 틀어주는 곳이긴 하지만, 이미 내가 뽑아놓은 봐야할 영화 목록도 많았다. 극장 말고 찾아볼 영화가 없는 것도 아니고 영화는 비디오나 DVD나 다운 받아서도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도훈 : 극장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최근 씨네필들의 영화 보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일부는 극장에서 영화를 필름이라는 원본의 상태로 봐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또 다른 씨네필들은 영화는 다운 받아서 보는 게 더 수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성용 : 서로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다운받아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워낙 단점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많으니, 나는 장점을 말하고 싶다. 극장이란 공간은 권위적인 구조를 띈다고 생각한다. 영화관 안에서 관객의 시선은 스크린의 크기에 압도된다. 관객은 정면만 봐야하고, 미장센 안에서의 취사선택의 권리를 박탈당한다. 또한 관객은 영화의 시간에 종속되기를 강요받는데, 두 시간 동안 상상력이 각자 삶의 시간 속에서 발동되지 못한다. 반면에 집에서 다운받아서 영화를 보면 극장이 만들어내는 영화의 권위적인 면들이 제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영화를 볼 때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화면을 잠시 정지 시킨 후, 그 화면의 구석구석을 분석 해 볼 수도 있고, 가끔은 중간을 건너뛰어 결말로 비약할 수도 있다. 지루한 무성영화를 볼 때는 두 배로 빨리 재생하여 영화를 정복하기도 한다. 그 순간 영화적 공간과 시간은 관객의 공간, 시간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그때 영화는 극장이란 공간의 권위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영화는 보는 방식에 따라서 감상이 달라진다.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거랑, 집에서 볼 때의 가장 큰 차이는 공간이다. 즉 영화를 둘러싼 공간에 따라서 관객의 감상이 달라 질 수도 있다는 거다. 또 영화가 디지털로 계속 복제되다보면 순수하게 영화 그 자체만 남지 않을까. 영화를 영화의 가능성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작가고, 그 다음이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 관객에게 한쪽으로만 감상 방법을 몰아가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영화 보는 방법이 다양해지면 다양해질수록 영화 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생길 거고, 디지털로 복제되는 영화 미학에 대해서도 논의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도훈 : 그럼 UCC 보듯이 영화를 본다는 말인가. 걱정이 되는 건, 시간이 지나면 영화도 싸이월드나 네이버, 유투브에 올라오는 UCC처럼 쉽게 보고 잊어버리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거다. 이미 일부 영화 사이트에서는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고, 웹상에서 바로 영화를 재생해서 볼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있다.

안성용 :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영화 산업이 돌아가는 기반만 마련된다면, 인터넷으로 영화를 즐기는 수용층이 많아질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터넷이 충족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극장이 채워 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명화를 책으로 본다고 해서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명화가 책으로 인쇄되어 나온다고, 루브르 박물관이 없어져야 된다는 건 아닌 것과 같다. 오히려 책으로 볼 때 박물관에서 실제로 그림을 감상했을 때 보지 못했던 부분도 볼 수 있다. 단지 명화의 원본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깨어야 한다는 거다. 원본에 권위를 주는 게 결국 전시형태인데,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도 박물관적인 공간이다. 오히려 UCC가 더 보편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모나리자의 권위를 희석시킬 때 모나리자라는 그림 자체의 미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영화도 원본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벗겨내면 영화 매체라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영화의 미를 가로 막는 안개가 많이 끼어있는 것 같다.


이도훈 : 전통적인 영화 감상과는 반대되는 재미난 의견이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지현 : 나도 찾기 힘들고 극장에 걸리지 않는 영화에 한해서 다운받아서 영화를 본다. 하지만 영화의 본질 안에는 극장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왕가위의 <화양연화>를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서 본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나서 후회 막심했다. 극장에서 <아비정전>을 봤을 때 느꼈던 왕가위 감독 영화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감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는 단순 영상물이 아니라, 극장과 합쳐질 때 완성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도훈 : 나 역시 영화는 주변적인 요소들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날 나의 컨디션과 극장안의 관객들의 상태 등의 외부요인들이 한 데 어우러져서 한편의 영화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가끔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앞 사람의 머리도 스크린에 포함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정은씨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정은 : 다운 받아서 영화를 보면 간편하고 편리하긴 한데, 영화를 제대로 보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집에서 영화를 볼 때면 일시정지를 눌러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2시간 동안 영화에 모든 걸 쏟는 게 아니다. 영화를 볼 환경도 극장과 비교해서 그리 좋지 않다. 극장은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오로지 스크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도훈 : 극장이라는 공간은 영화를 함께 보는 곳이다. 프로메테우스의 감상회역시 영화를 함께 보는데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타 영화동아리의 세미나와 달리 학구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들었다.

이정은 : 프로메테우스는 타 학교 영화동아리와 비교했을 때 감상회나 세미나 활동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냥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영화에 대해서 토론을 하거나 가볍게 이야기하는 정도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감상회를 단순히 가볍다고 볼 수 없다. 우리는 감상회를 통해서 저마다 다른 영화에 대한 태도나, 한 편에 영화를 보고 느끼는 서로 다른 감정을 교환 한다. 옛날 같았으면 한 편의 영화를 두고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만 해서 소외당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감상회가 무게감을 빼버리면서 다양한 친구들이 쉽게 영화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회 이슈나 논쟁거리를 가지고 토론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한편의 영화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듣고, 문제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감상회의 장점인 것 같다.

김지현 : 프로메테우스 감상회의 장점은 아는 게 많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 같은 경우만 해도 영화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고, 철학과 인문학에 관련된 소양이 부족하지만 감상회 때는 편안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 감상회가 가볍고 명랑한 분위기로 진행되어서 신입생들이 감상회에 대한 중압감을 느끼지 않고,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감상회가 가벼운 쪽으로만 흐르는 건 아니다. 때로는 선배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영화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들을 배우기도 한다.



 

이도훈 : 선배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이정은 :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줬던 것 같다. 05학번 같은 경우는 소수의 인원인데도 열정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였다. 특히 04학번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05학번 선배들을 보면서 “아 우리도 저렇게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특히 선배들이 감상회를 하는 방법을 보면서 우리가 감상회를 운영할 때 선배들이 하던 방식과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또 프로메테우스는 늦깎이 신입생이 많았다. 뒤늦게 동아리에 가입한 고학번들은 동아리 내에서 선후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처럼 선후배간에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같이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저절로 생겼던 것 같다.


이도훈 : 성용씨는 복학하면서 영화 세미나를 부활시켰다고 하던데.

안성용 : 세미나를 부활시켰다기보다는 늘 방학 때 하던 세미나를 학기 중으로 앞당긴 거다.


이도훈 : 원래 학기 중에는 세미나가 없었나?

이정은 : 대가 끊겼던 것 같다. 세미나가 2005년도 까지는 있었다고 하던데, 내가 들어왔을 때는 선배들끼리만 했던 것 같다. 나는 세미나가 있는지 몰랐다.

안성용 : 사실, 우리 때는 아예 없었거든. 내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세미나를 했던 것 같다.


이도훈 : 성용씨가 복학하면서 세미나를 부활시킨 이유가 궁금하다.

안성용 : 내가 1학년일 때 동아리에서 최고 학번은 98학번과 99학번이었다. 당시 군대를 가지 않으면 최고 학번은 01학번이었는데, 군대를 갔다 온 선배들이 동아리에 다시 나오면서 연령대의 폭이 넓어지더라. 동아리 문화에서 남자들이 군대를 가는 건, 연령대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다. 특히 감상회 할 때 고학번들이 후배들이 알지 못하는 걸 이것저것 가르쳐줘서 좋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선배들이 권위적인 것도 있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걸 후배들에게 가르쳐주려 하고, 선배들 스스로 자기가 선배라는 걸 드러내놓고 티를 내는 것 같았다. 내가 복학생이 되고, 고학번의 위치가 되었지만 정작 내 위치는 과거 선배들과는 다른 것 같다. 과거와 현재 동아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더 이상 선배들이 권위적이지 않다는 거다. 학교나 동아리의분위기가 바뀐 건지, 내가 바뀐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 자신이 권위적이고 꼰대 같은 선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미나는 내가 후배들과 어울릴 방법을 찾다가 동아리에 제안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복학해서 동아리에 처음 왔을 때, 후배들과 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나도 학업 때문에 바쁘고, 후배들 입장에서 생각하니 나랑 놀기에는 그들 스스로 아쉬워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노는 것 보다 영화에 대해서 같이 공부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스터디를 하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열정 있는 후배들이 많아서 무리 없이 스터디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도훈 : 나 역시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선배들과 충돌하는 일이 많았다. 예를 들어서 내가 한국 영화에 대한 세미나를 하면서 김기덕을 발표하는데, 선배들은 김기덕을 모르거나 싫어하는 거다. 특히 98, 99학번은 장선우 이야기만 하더라. 90년대에 장선우는 잘나가는 감독이었지만, 당시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잊혀져가던 존재였다. 김기덕을 지지하는 나와 장선우를 여전히! 지지하는 선배들 사이의 충돌은 선후배간의 단절로 느껴지더라. 선배들이 뒤에서 팔짱끼고 앉아서는 꼰대처럼 후배들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데, 동아리의 고질적인 문제는 선후배간의 수직적인 위계서열인 것 같다. 반면에 요즘의 프로메테우스는 타 동아리와 달리 선후배간의 위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좋은 쪽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성용 : 확실히 그렇다. 나와 07학번의 사이를 나랑 99학번 사이와 비교해보면 선배들에게서 권위적인 모습이 사라진 걸 느낄 수 있다. 단순히 나랑 내 동기들이 변한 것 같지는 않고, 문화 자체가 바뀐 것 같다.

김지현 : 그 문제는 동아리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친구들 중에도 동아리 활동을 하는 애들이 많다. 그 친구들이 모여서 ‘어떤 선배가 재수 없다, 걔는 너무 권위적이다, 너무 가르치려든다’며 뒷담화 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런데 우리 영화 동아리에서는 선후배 사이가 멘토 같아 보일 때가 있다. 후배들이 선배들을 따라 하고 싶어 하고, 선배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흠모하기도 하고, 본받고 싶어 할 때도 있다.

이정은 : 나 같은 경우는 동아리의 전통을 몰라서 황당할 때가 있었다. 동아리에 들어왔을 때 주변에서 동아리에서는 후배들이 선배를 챙기는 거라는 소리를 하더라. 그 말이 정말 이해가 안 되더라. 선배라면 후배들보다 동아리 분위기도 잘 알 테고, 익숙한 사람들도 많을 테니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고 동아리에 금방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선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배들이 신입생 환영회 끝나면 선배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더라. 이건 대부분의 동아리들이 고쳐야 할 고질적인 병인 것 같다. 나는 그냥 다 같이 모여서 편하게 생활하는 동아리 문화가 되었으면 한다.

안성용 : 지금 프로메테우스에서 활동하는 03학번은 나를 제외하고 세 명이 더 있다. 이 세 명은 군대를 갔다 와서 동아리에 새로 가입한 사람들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이다. 재미있는 건, 형들이 자기보다 어린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더라. 그걸 보면서 권위적인 동아리 문화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이나 학번 같이 수직적인 질서를 조장하는 요소들이 없어지면 동아리 인원도 늘어나고, 기대 이상으로 얻는 게 많을 거라고 본다. 그러다보면 동아리 침체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도훈 : 지현 씨가 세 분 중 가장 어린데, 올해 신입생을 처음으로 맞이한 느낌이 어떤가.

김지현 : 무지 뿌듯하다.(웃음) 솔직히 말하면 07학번 대부분이 영화에 대해서 잘 몰라서 1학년 때 2학년이 될 생각만 하면 불안했다. 선배가 되면 후배들을 이끌어줘야 하는데, 정작 영화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던 거다. 그래서 친구들과 영화 공부도 해보려고 애써봤지만 영화라는 게 순식간에 쌓을 수 있는 교양은 아니지 않나. 올해 신입생들이 들어왔을 때 기뻤던 건, 08학번 중에 영화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여러 분야로 박식한 친구들이 많았다. 정말 똘똘한 친구들이 많더라. (웃음) 되려 07학번이 08학번에게 배우는 게 있을 정도다. 선배라고 해서 무작정 후배들에게 가르쳐줄 필요는 없지 않나. 그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듣다가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다. 그냥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서로 모르는 걸 일깨워 주는 소통구조가 생길 때 권위라는 게 사그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도훈 : 사실 가벼운 세미나도 좋고, 재미있는 세미나도 좋다. 하지만 가벼운 게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깊이 있는 세미나를 해보고 싶을 때는 없었나?

안성용 : 아쉬운 건 많지. 요즘은 1, 2학년 때부터 너무 바빠 보이더라. 이제 영화에 대해서 머리 싸매고 공부할 시기는 지난 것 같다. 영화 공부하기에는 너무 바쁜 시대지 않나. 사실 나는 별로 바쁘지 않은데(웃음), 다른 사람들은 바쁘게 살더라. 나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고, 평소에 공부하는 인문학이 영화와 연계되는 부분이 많더라. 특히 인문학 공부는 영화 보는 시선과 연결되는 게 참 많다. 평소 영화 비평이나 영화 이론서를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어떤 책을 봐도 영화 책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문학만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사회학 지식으로 영화를 분석할 수 있고, 최근 <아이언 맨>은 공대생들이 좋아할 영화지 않나. 영화를 좋아하고 관심만 있다면 자기 전공을 살려서 영화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인문학적인 지식으로 읽어내는 방법이 관습처럼 굳은 것 같은데, 영화라는 게 인문학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기술적인 면도 있고 산업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아리에서도 영화 문법이나 영화사만 가르쳐주기보다는 다양한 방법이나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방법을 향상해 나가야 한다. 동아리가 영화에 대해서 한 가지 시선만 강요하기 보다는 각자의 관심사에서 영화가 어떻게 읽혀질 수 있는지를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이론만 공부하는 건 좁은 공부일지도 모른다.

이정은 : 나 역시 동아리에 가입할 때 깊이 있는 세미나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기 위해서는 시간도 맞춰야하고, 또 아무리 스터디를 한다고 해도 동아리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 깊게 공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의 감상회는 깊이가 있다기보다는 수박 겉핥기식이다. 조금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토론했으면 하는 욕심은 분명히 있다.

김지현 : 워낙 바닥에 깔린 게 없어서 지금으로도 만족한다.(웃음) 그래도 가끔은 아쉬운 게 있다. 감상회가 끝나고 나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조금 더 깊이 있게 파고들었으면 하는 미련이 남더라. 이 문제는 프로메테우스가 차차 극복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이도훈 : 민감한 질문을 하나 하려고 한다.(머뭇) 프로메테우스는 축제 때 주점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영화동아리 정체성이 주점과는 별개지 않나. 왜 상영회나 공개 세미나 같은 사업을 하지 않고 주점을 했는지.

김지현 : 올해 회장과 축제를 함께 기획하면서 상영회를 해보자고 제안을 했었다. 주점을 하되 스크린을 설치해서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는 분위기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하지만 축제를 준비할 시간도 촉박했고, 가장 큰 문제는 상영회를 하려고 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내년에는 08학번들이 상영회를 해줬으면 한다. 사실 주점에서 영화 퀴즈를 한다고 동아리 정체성이 드러나는 건 아니다. 주점을 하고, 거기서 영화 퀴즈를 한다는 것이 구색 맞추고 생색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이정은 : 축제 때 주점을 한다고 해서 동아리의 정체성이 훼손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점을 하면 동아리 회원들끼리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축제 때 대부분의 동아리가 하는 일인데 굳이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우리가 게으르고 노력을 덜 해서 동아리 특색을 살리지 못했다는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영화 동아리라고 해서 축제 때 꼭 상영회를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축제 때가 아니라도 상영회를 하고 있다. 다른 동아리처럼 프로메테우스도 축제 때만큼은 회원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MT나 야유회를 가는 것처럼 축제를 즐긴다는 생각으로 활용하면 되지 않나.

안성용 : 도훈 씨의 지적은 영화 동아리에 대한 오해인 것 같다. 동아리 외부 사람들이 보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 일들인데, 내부에서 바라보면 항상 문제가 되더라. 예를 들어서 복싱 동아리가 축제 때 복싱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영화 동아리도 피차일반이다. 축제라고 해서 영화 동아리만의 정체성을 찾아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실 다른 동아리는 아주 독특한 취미활동을 위해서 만들어진 경우지만, 오늘날 영화 보는 일은 아주 일상적인 게 되었다. 유독 영화 동아리만 정체성 문제에 시달리는 건, 동아리 내부에서 영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다른 동아리는 저마다의 특색이 있지만 영화는 딱히 정체성이라고 할 게 없는데도 말이다.


이도훈 : 이야기가 조금 무거워졌나?(웃음)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개인 취향을 물어보고 싶다. 다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인데, 자기만의 클래식이라고 할 영화가 있나? 특별히 좋아하는 고전영화나 선호하는 작가가 있다면?

안성용 : 좋아하는 영화는 많다. 타란티노에서부터 다르덴 형제까지.


이도훈 : 그 영화들도 이제는 영화애호가들 사이에는 교양으로 취급받고 있지 않나? 아니면 일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