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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다름 아닌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 대한 이상 열기가 그것이다. 지난 7일 기자시사회 이후 언론 매체들은 거의 매일 이 영화와 관련한 소식을 앞 다투어 쏟아내면서 흥행몰이에 한껏 일조하는 분위기이고, 기자들이 입 모아 호평해댄 덕분인지 몰라도 <놈놈놈>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단적으로 ‘개봉 전 예매율이 80%를 넘어섰다’ ‘<괴물>과 같은 꼴 행보’라는 이야기부터 ‘한국영화의 구세주’라는 표현에 이르기까지 각종 홍보성 문구가 범람하고 있다. 하긴 아직 보지 못한 내 경우도 영화가 궁금한데다가 이 영화에 모티브를 제공한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The Ugly>가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되고 있는지라 두 영화의 반복과 차이를 비교하고 싶은 마음도 가득하다. 이런 가운데 각종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관련 기사를 보자면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한국영화계에 모처럼 등장한 대작오락영화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합동작전이 펼쳐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나, 거칠게 말해 이것들은 한방에 목마른 영화인들이 기획하고 영화 한 편의 흥행으로 한국영화가 부활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을 가진 언론매체의 동조가 만들어낸 신기루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2006년 하반기부터 불어 닥친 한국영화의 침체는 투자 배급사의 구조조정을 불러왔고 이런 가운데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제작자들은 몸집불리기를 지양하고 20.30억 원대의 중간규모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으며 참신한 소재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합리적 제작구조를 정착시키겠노라고 공언했다. 이는 흥행부담에서 벗어나 위험요소를 최소화하고 결과적으로 자본의 선순환구조를 이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너나할 것 없이 “영화계가 전성기 시절 통신자본 등 투자자들이 급증하며 맞은 거품을 빼야 할 시점이”며 “다시 헝그리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다들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으니, 불과 3개월 전의 이야기다. 그러나 배급사들의 속내는 조금 달랐나보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 네 편 중 <괴물>과 <태극기 휘날리며>는 쇼박스가 <왕의 남자>와 <실미도>는 시네마서비스가 배급을 담당했었다. 매년 쇼박스와 1.2위를 다투며 신경전을 벌여온 CJ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서 보자면 1,000만 영화가 한 편도 없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놈놈놈>으로 한국영화부활이라는 명분을 등에 업고 1,000만 영화배급이라는 실리도 챙기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일 터. 지난 기자시사회에서 발생한 불미스런 사건과 언론들의 ‘작심하고 띄워주기’가 거대배급사의 과욕에서 비롯된 결과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놈놈놈>의 홍보방식은 <괴물>의 그것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즉, ‘칸 국제영화제’에 기자들을 대거 대동한 것이나 칸 최초공개 이후 ‘기립박수’기사를 통해 관객과 영화인의 기대감을 고조시킨 점 또한 그러하다.

물론 자본주의산업체제하에서 자기 배급영화를 흥행시키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홍보마케팅전략을 두고 왈가왈부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더욱이 <놈놈놈>을 폄훼하거나 영화 자체에 관하여 얘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박을 향한 특정영화의 꿈이 차곡차곡 영글어가고 있는 가운데, 소외되는 영화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왜곡된 시장환경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고, 이것이 과연 영화인들이 말했던 자정노력의 결과이며 일부 영화기자들이 목매고 외쳐댔던 ‘한국영화부활의 신호탄’으로 봐야 옳은 것인지를 되묻고 싶을 따름이다.

이처럼 특정영화의 흥행을 위한 입체적 합동작전이 벌어지는 동안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같은 배급라인의 영화가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동일배급라인의 작품들 중에서 흥행성이 떨어지거나 톱스타가 없거나 제작비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개봉이 연기되거나 소규모개봉과 교차상영 등의 홀대를 받아온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이, 100억 이상의 대형영화와 톱스타를 캐스팅한 경쟁력 있는 작품들마저 <놈놈놈>의 기세에 눌려 뒤처지는 양상이다. 예컨대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맡은 김유진 감독의 블록버스터 <신기전>의 당초 개봉예정일은 8월 14일이었으나 <놈놈놈>의 흥행을 고려해 9월 추석시즌에 개봉하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하고 있고 이렇게 될 경우 정지우 감독의 <모던 보이>는 10월에나 개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1,000만 영화를 만들기 위한 배급사의 포석으로 여겨지는데, 즉 <왕의 남자>가 45일 <괴물>이 21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을 감안할 때 <놈놈놈> 역시 한달 이상의 상영기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아울러 기자시사회 이후 속속 올라오는 부정적 영화평에 원색적인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고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반대의견의 원천봉쇄 또는 신속한 반론제기가 의도적이고 기획된 것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불과 1년 전 벌어졌던 <디 워> 논란이 재현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체! 지금 우리에게 1,000만 영화가 왜 필요하고 그 숫자가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언급한 대로 거대배급사가 영화의 생사여탈권을 쥠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은 말할 수 없이 심각한 지경이다. 한국영화 살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대표적 원인으로 지목된 것 중 하나가 거대배급사의 상영관 독점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배급독점을 통한 몇몇 영화의 흥행으로 극장점유율을 높여왔으며 언론 역시 이를 한국영화 부활로 간주하고 열광하며 부추겼다는 점에서 바뀐 것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이렇듯 오로지 흥행 가능한 대작영화에 올인하는 풍토와 그 주체들이 영화시장을 지배하는 한, 한국영화의 체질개선은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덧붙여 일부 언론매체의 단발성 ‘줄서기’ 기사 생산방식도 종식되어야 할 것이니, 영화관련 종사자들의 보다 거시적이고 사려 깊은 안목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세심한 이해와 성찰 노력을 외면한 채 대작영화가 흘려보내는 가십거리와 그 꽁무니를 쫓는 데만 집착한다면, 한국영화발전에 기여하기는커녕 가시면류관을 씌워준 장본인으로 지목될 수 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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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놈놈놈 전문가 평점 모음

    Tracked from 고아라의 찌라시 블로그  삭제

    올 한해 한국 영화 최고의 기대작인 놈놈놈의 전문가 평점을 모아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오락 영화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관객들에 비해 인색합니다. 그런데 놈놈놈은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는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만만치 않은데 오히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의 대부분 엄지손을 들어주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씨네 21 20자평 박평식 모험하는 감독을 지켜보는 건 즐거워 ★★★☆ 황진미 만주 벌판에서 펼치는 호쾌한 난장. 말~달~리~자! ★★★★ 주성철 정서보다 속도로..

    2008/07/18 22:20
  2. 놈놈놈 - 천만관객은 꿈도 꾸지 마라

    Tracked from 재능세공사의 아지트 II - 열정재능연구소  삭제

    김지운 영화를 보면서 하품이 나올줄이야..ㅜㅜ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정신없이 울려퍼지는 귀를 멍하게 만드는 사운드와 질리도록 이어지는 노골적인 볼꺼리가 연신 터지고 있는데도 흥분되거나 집중되기는...

    2008/07/19 02:57

무덤까지 가져갈 단 한 편의 영화

필진 칼럼 2008/07/14 14:47 Posted by 우디79
백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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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2008 시네바캉스’의 백미는 단연 스파게티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 특별전’일 것이다. 돈만 있으면 우주여행도 가능해진 시대에 말 타고 총질이나 해대는 웬 구닥다리 영화냐고? 자고로 싸움의 백미는 총싸움인 법. 짤막한 권총에 유독 푸른 눈을 지녔던 프랑코 네로와 총구가 긴 권총을 소지했던 신경질적인 광대뼈의 리반 클립과 궐련을 질근질근 문 채 윈체스터를 폼 나게 돌려가며 쏘아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탄생시킨 것이, 세르지오 꼬르부치에서 시작되어 그의 후예 세르지오 레오네가 꽃을 피운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면 어떤가!

이렇듯 수정주의 서부극에 B급 감성을 버무려 독특한 영화세계를 일궈온 세르지오 레오네였지만, 그가 필생의 작업으로 여겼던 영화는 전혀 다른 형식의 것이었다. 입버릇처럼 말해왔듯이, 세르지오 레오네의 위대함은 단순히 그의 영화세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즉, B급 서부극이라 불린 레오네 영화에서나 주연일 수밖에 없었던 2류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오늘날 거장으로 군림하기까지 레오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레오네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레오네의 영화, 그 중에서도 그의 유작(遺作)을 필름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시네바캉스는 절반의 만족을 안겨준 셈이라 하겠다. 이제, 물어보자. 당신을 미치게 만드는 단 한 편의 영화가 있는가? 제목만 들어도 뛰는 가슴을 주체하기 힘든 그런 영화가 있는가. 아님 당신의 가슴을 데워줄 영화가 있기는 한 것인가.

좋은 영화란 셀 수 없이 많다. 이 무수한 영화를 전부 이야기하자면 평생 걸려도 못할 일이기에 단 한편의 영화를 고르라면 누구라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테지만 내겐 그리 고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최고의 영화 한 편만 꼽아보라고 할 때 주저하지 않고 꼽을 영화가 있다는 것. 정말로, 그런 영화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이 영화에 대해서 긴 얘기가 필요 있을까? 어떤 수식어로 이 영화에 대한 찬사를 다 할 수 있을까. 70 년대에 <대부>가 있었다면, 80년대는 바로 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있다. 물론 90년대에 이르면 <좋은 친구들>로 그 계보가 이어진다.

「뉴욕 빈민가의 어느 식당, 한 소년이 화장실로 들어가 벽돌 하나를 조심스레 빼낸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채 그 구멍을 통해 옆방을 들여 다 본다. 벽 너머의 공간에서는 소녀가 발레 연습을 하고 있다. 소녀는 소년이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치 뽐내듯 발레를 계속하고, 소년이 소녀를 좋아하듯 소녀도 소년을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소년이 나쁜 길로 빠지려 하고 있음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소녀의 걱정대로 소년은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가게 되었다. 옛날 옛적 미국에서...」

1920년대 경제 대공황과 금주법시대의 뉴욕 브룩클린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소년이 범죄자로 성장하는 과정과 이젠 도피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주인공 누들스의 과거회상을 통해 인생과 사랑, 범죄와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둘도 없는 친구였던 누들스와 맥스, 그리고 연인인 데보라를 통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신의 인생 이야기가 애절한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 팬플루티스트인 게오르그 장피르의 주옥같은 선율이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이 영화는 가히 영화도 영화음악도 모두 최고 걸작 반열에 오를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세르지오 레오네가 평생 간직해온 ‘드림 프로젝트’였다. 70년대 후반 연출보다는 제작에 더 힘을 쏟았던 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만들기 위해 <대부>의 연출제안을 거절했을 정도였다.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을 통해 상당히 기묘한 스타일을 지닌 감독쯤으로 인식됐던 레오네는 이 영화를 통해 거장다운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과거, 현재, 미래를 정교하게 오가면서 진행되는 사건은 미스터리하면서도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원작은 "HOODS"라는 소설로 당초 10시간짜리 러프 컷을 수정한 레오네의 1차 편집본은 6시간짜리이고 디렉터 컷(현존하는 완전한 감독 공인판)도 229분짜리 분량으로 만들어졌으나, 흥행을 고려한 제작사가 무려 89분을 잘라낸 2시간 19분짜리 필름으로 개봉시켰으니, 결과적으로 평론가들의 악평과 흥행 참패를 겪어야 했고, 10년이 지난 후에야 감독 판이 재개봉되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명보극장 개봉 당시인데, 132분이라는 (지금으로서는)어처구니없는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충격과 매혹은 여전히 기억을 지배할 뿐 아니라 광적 지지자로까지 바꿔놓을 정도였으니, 단언컨대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단 한 편의 영화가 있다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일 것이다.

영화에는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꽤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어린 창녀의 환심을 사기위해 슈크림을 사들고 찾아간 ‘짝눈’이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을 참지 못하고 야금야금 핥다가 기어이 다 먹어치우는 장면이라든지, 보석상을 턴 맥스 일당이 훗날 안주인과 재회하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그녀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장면 등은 가히 레오네 다운 발상으로 여겨진다. 사랑하는 여인보다 손 안의 슈크림이 더 간절한 소년의 심정은 얼마나 절절하던가! 또한 출옥한 누들스가 데보라와 만나 야연을 즐기던 시퀀스도 잊을 수 없으니, 이 장면에서의 대사는 이렇다. “미치지 않기 위해선 바깥세상은 다 잊어야 했어. 하지만 그래도 잊혀 지지 않는 건, 도미니크였어. 총 맞고서 ‘나 넘어졌어.’ 라고 말하던 아이 말이야. 그리고 데보라...너!”

숱한 밤, 나를 갈색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휘파람 불며 브룩클린 다리 밑을 걷던 다섯 명의 소년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제 필름으로, 그것도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판본으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어찌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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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Tracked from Pell's seer Blog  삭제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 Synopsis 맥스, 짝눈, 팻시 등 뒷골목 죽마고우들을 자신이 죽였다는 죄책감에 35년 동안이나 시달려 온 누들스는 ‘베일리 재단’이라는 곳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받는다. 어린 시절, 누들스는 고고하고 아름다운 데보라가 춤 추는 것을 화장실 벽 틈새로 훔쳐본다. 술주정뱅이를 털려다 친해진 맥스와 누들스는 친구들과 밀수품을 빼돌려 돈을 버는 가운데 우정을 다져 나간다. 이들을 질투..

    2008/07/21 00:31

영화시사회의 씁쓸함

필진 칼럼 2008/07/10 09:50 Posted by 우디79
박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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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최대 기대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시사회는 한마디 난장판이었다. 같이 보기로 한 형과 1시에 만나 점심을 먹고 2시에 영화를 보기로 한 터라 12시 50분쯤 용산에 있는 극장에 도착했다.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이 영화의 시사회를 진행한 주최 측의 정말 어이없는 행태에 대해 한마디 하고 지나가지 않을 수 없다. 여유있게 도착해서 표를 받고 식사를 하려던 나의 계획은 입구에 길게 늘어선 행렬에 의해 일찌감치 일그러졌다. 뒤쪽에 서서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줄을 보면서 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 동안 10여 미터에 불과했던 줄은 삼십 분이 지나도 거의 줄어들지 않았고 세 줄로 나누어진 줄은 점점 끼어드는 사람들로 인해 흐트러졌다. 그러기를 한 시간 가량,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앞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난 배가 고프면 성질이 포악해지는 습성이 있어 안 그래도 식사를 하지 못하고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줄을 보며 점점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표가 없습니다." 난 한 시간여를 기다려 결국 '표가 없다는 말'을 듣고 말았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음에도 신분을 확인하고 표를 배분하는 사람은 고작 두 명, 게다가 4-5명이 뒤에서 코치를 하며 참견만 할 뿐 이 아수라장이 된 시사회 현장에 책임 있는 말로서 수습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난 배가 고팠고 귀를 때리는 천장 스피커에서 울리는 영화 예고편 소리에 앙칼져있었고 더군다나 기다리는 내내 거의 100명이나 될까 한 사람들만 표를 받고 돌아서는 것을 목격한 터에 1200명 분의 표가 모두 나갔다는 '거짓말'에 냉큼 성미가 돋구어지고 말았다.

"책임자 오라고 하세요", 나는 이전에 담당자들의 "표가 없다는 말"을 줄을 선 사람들에게 들으란 듯이 크게 외친 다음 내친 김에 이렇게 말했다. 보통 시사회에서 30분 전에만 가도 아무런 무리 없이 표를 받고 잠시 여유를 가진다면 영화를 볼 수 있다. <강철중> 때에도 꽤 많은 사람이 왔지만 금방 표를 받았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줄이 줄어들지 않고 1시간 여가 지난 다음에야 "표가 동이 났다"는 말은 그 전에 이미 대다수의 표가 다른 곳으로 빼돌려졌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내 억측이기를 바라고 싶으나 내가 1시간여를 지켜본 결과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한 시간 전부터 기다렸는데 결국 표를 받는데 실패한 나는 보통은 이런 부대낌 자체를 꺼려서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 마련이었지만 오늘은 오기가 나서 기어코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입구로 올라가 스태프에게 항의도 해보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결국 부아가 나서 앞서 무작정 얼굴 디밀며 들어가는 인사들을 보고는 나도 그냥 밀고 들어갔다. 들어갔더니 웬걸 빈자리도 군데군데 보이고 더군다나 일본에서 원정 오신 듯한 아줌마부대들도 로열 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언론시사회에 왠 아줌마부대? 시사회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진행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여튼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시작되었다.

만주웨스턴이라고 홍보된 것과는 달리 영화는 시작부터 만주슬랩스틱 코미디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송강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아무리 웨스턴 미장센이 등장하더라도 송강호 식의 코미디가 되어버렸다. 그건 분명 매우 의도적인 연출로 보였고 주인공 역시 송강호가 분명했다. 영화는 사실 '보물지도'를 둘러싼 세 '놈'이 펼치는 추적이 주된 스토리 라인이다. 그렇지만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는 이야기 전개와 뻔해 보이는 스토리 라인은 한국식 웨스턴이라고 부르기에는 한참 모자란 것이었다. 특히 정우성의 연기는 확연히 모자라 보였고 이병헌의 마적 연기 역시 좀 지나치다 싶었다. 그나마 송강호의 연기가 중심을 잡아주지 않았으면 영화가 너무나 '불균질해’질 뻔 했다 싶었다. 영화 얘기는 여기까지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제부터인데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 하면 소위 영화의 '수직계열화'에 대한 얘기이다. '수직계열화'란 제작, 배급, 상영을 일체화 시킨 방식을 말하는데 이는 1950년대 미국에서는 이미 '불법적인 독점'으로 판정된 것이기도 하다. 당시 폭스를 비롯한 거대 스튜디오는 몇 년을 끌어온 끝에 내려진 법적 판단으로 인해 강제로 극장체인들을 매각해야 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거대 스튜디오는 배급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장악력은 여전했다.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극장에 대한 독점력이 사라진 다음, 한동안의 침체기가 있었지만 뒤이어 나타나게 될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원동력이 바로 이 시장 독점에 대한 시정조치였다는 점이다. 현재 CJ엔터테인먼트 혹은 시네마 서비스 그리고 쇼박스 등의 거대자본들은 명실상부 한국 내에서 '수직계열체'를 형성하고 있다. 배급에 집중하던 CJ는 서서히 제작에 관여하면서 배급과 함께 CGV라는 막강 극장체인을 통해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으며 다소간 누그러졌지만 시네마서비스 역시 그러하며 쇼박스의 '메가박스' 역시 마찬가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식의 구조가 가지는 가장 큰 폐해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천만 관객의 신화'를 계속 꿈꾸도록 종용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과 시장지배력을 총동원해서 단기간에 초 대박 영화를 가능하도록 하는 구조이며 반대편 그늘에 독립영화 혹은 저 예산 영화들만이 남게 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천만 관객을 열었던 시절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이런 식의 위험한 투자와 흥행대박에 대한 강박관념은 결국 한국영화의 뚜렷한 양극화로 진행되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제작비규모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고 30-50억 사이의 영화들을 여러 편 다양하게 만들어내야 할 풍토가 이번 <놈.놈.놈>을 기화로 또 거대영화-유사 할리우드 전략으로 변질되어 버리지 않을까 매우 염려스럽다. '수직계열화'의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비판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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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가 안겨준 특별한 경험

필진 칼럼 2008/07/08 12:09 Posted by 우디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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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모름지기 영화란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에 따라 컴퓨터 모니터로 DVD를 보곤 했는데, 지난 6월 말 이사를 핑계 삼아 텔레비전을 장만했다. 물론 당분간 시사회나 극장출입이 수월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제법 큰 화면에 화질 좋은 영상으로 감상해 보니 진즉에 결행치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고 또 절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였다. 어찌 알았는지 개봉예정인 <궤도>의 PREVIEW용 DVD가 도착한 것도 이때 즈음의 일이다. 텔레비전을 들여놓고도 짐정리로 보름 남짓 허비한 후에서야 제대로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특별히 김광호의 <궤도>가 인상적이면서 흥미로웠으니, 잊혀져가는 영화형식을 환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연변출신의 감독 김광호가 연출한 <궤도>는 한마디로 지독하게 느리고 지루하게 응시하다 집요하게 주시하는 영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려 3번을 시도하고서야 끝까지 보았을 정도로 감상자체가 쉽지 않은 영화였는데, 이것은 대사가 없기 때문이 아닌 너무나 단순하게 구성된 영화형식에 기인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나는 <궤도>를 카메라가 주도하는 드문 영화라고 말하고 싶고, ‘응시’에서 ‘주시’로 변화하는 영화미학을 보여주었다고 규정하고 싶다.

감독은 영화 속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카메라의 위치변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말없음으로 일관하며 끌고 가는 이 영화에서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변화하는 과정이 인물의 행동뿐 아니라 대상을 잡는 카메라의 위치로도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그다지 어렵거나 심오한 기교는 아니며 과거 무성영화시대의 감독들이 즐겨 썼던 기법이다. 하지만 그간 우리가 보아온 많은 영화들에서 이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은, 인물이나 화자의 입을 통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설명해왔고 이러한 설명을 통해 내러티브가 완성된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즉, 서사를 통해 묘사를 대치시켜온 근래의 영화형식과 비교할 때 김광호의 <궤도>는 특별한 이야기를 내놓지 않고도 시공간의 다각적인 변화 없이도 묘사만으로도 서사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할 것이다.

예컨대 벙어리 귀머거리인 여자가 팔 없는 남자의 집에 머물면서 남자의 내적변화를 끌어내기 이전까지를 보여주는 카메라는 언제나 남자의 시선이 여자 위쪽에 위치하는 반면, 어느 순간엔가 카메라의 위치가 뒤바뀜을 통해서, 즉 여자가 남자를 내려다보는 신들을 통해서 여자가 남자 마음속에 자리 잡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때 인물들의 변화에 맞춰 좀 더 세밀하게 보여주고자 감독이 선택한 것은 ‘응시’와 ‘주시’이다. 그러니까 남자의 집에 머물게 된 여자를 바라보고 또 그 남자를 바라보는 둘의 시선의 시작은 ‘응시’에 가깝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은 ‘주시’로 변한다는 것이다. 막연히 바라봄에서 시작하여 감정이 담긴 시선을 던지고 관찰하는 행위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감독은 둘의 심리적 변화를 말 한마디 없이도 근거리에 놓지 않고도 살 부딪힘을 제거하고도 일궈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남녀의 심리적 단절을 물리적 거리와 위치로 치환시켜낸 영화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점철되는 가운데 사랑과 애증이 뒤범벅되는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멜로드라마를 아련한 연변의 초록 위에 펼쳐놓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비록 곰살궂은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온전한 대사하나 없을지라도 낯익은 연변의 풍광은 끝 모를 지루함을 상쇄시켜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분명 어디선가 보았을 법한 너무나 평범해서 지루하고 그럼에도 자꾸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초록과 나지막한 언덕아래의 풍경들. 그러나 이것은 관계의 단절 속에서 소통에 목말라 허우적대는 우리들의 낭만적 상상적이 그려낸 전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감독이 선택한 배경이란 겉은 연변이로되 몇몇 장면을 뺀다면 세상 어디라고 해도 무방할, 인간을 둘러싼 보편적 삶의 환경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내가 <궤도>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인물들의 내적 변화와는 무관하게 변함없는 푸름을 보여주었던 어느 마을 풍경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정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반복적 영상이 부리는 마법이라니!

덧붙여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장광설에 지쳤다면, 너무 빠르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는 영화에 식상했다면 연변에서 날아온 김광호의 <궤도>를 볼 일이다. 말 한 마디 없이도 이어지는 감정의 파동과 지루한 동어반복적 카메라 워크에 오기가 나서라도 눈 부릅뜨고 영화를 보는 희귀한 경험을 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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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왜 서인영인가?
1-1. 이기적인 언니, 서인영


그녀는 이기적이다. 서인영의 작은 얼굴과 구릿빛 피부는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남녀구분 없이 모두 서인영에 열광했다. 하이힐이 유난히 어울리는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와 S라인이 빛나는 몸매는 남성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여성들은 성형수술시 서인영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녀는 모두가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이기적인 몸과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서인영은 그룹 쥬얼리 4집 앨범을 내고 ‘Superstar’라는 노래로 활동 중 ‘털기춤’을 선보여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 후 2007년 발표한 솔로 1집 앨범에서는 과도한 노출과 자극적인 댄스로 선정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2007 MBC 가요대제전’에서 물쇼를 통해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머리위로 떨어진 물 때문에 축축하게 젖은 옷과 그녀가 신은 하이힐이 성적인 코드를 유감없이 발휘해주었다. 하지만 서인영의 매력은 단순히 섹시함만이 아니었다. 대중들은 비 같은 남자가수만이 물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인영은 편견을 깨고 당당히 여가수로 물쇼를 성공했고, 찬사를 받고야 말았다. 인식의 전환이었던 것이다. 당시 무대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의 위력은 서인영의 왜소한 몸이 버텨내기에는 너무 버거워보였다. 그녀는 어깨가 내려가고 다리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도 춤을 추었다. 섹시한 컨셉과 파워풀한 무대연출을 위해서 잠시 주춤했어도 서인영은 온 몸으로 중력의 법칙을 이행하며 수직 하강하는 물의 파워를 역전하려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이 무대 위에서 서인영은 당당히 가수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실 쥬얼리 4집 앨범 활동 전까지만 해도 서인영은 쥬얼리 멤버 중 한 명으로 기억되는 존재였으며 톱스타라는 호칭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서인영은 솔로 앨범을 낼 때까지 쥬얼리의 팀 멤버였던 박정아와 이지현이 쇼 프로그램을 전전하면서 인기가도를 달릴 때까지도 묵묵히 쥬얼리 멤버로 자기 자리를 지켰다. 그녀는 스스로 준비기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강한 자가 오래 버티는 게 아니라 오래 버티는 자가 강하다는 말은 7년의 연예계 생활 끝에 스타 대열에 오른 서인영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게다. 서인영은 후자에 속하는 타입이다. 그녀는 가수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 악바리 근성을 발휘한다. 노래 연습을 위해서 솔로 앨범 발표 전 서인영은 자신의 방에 스티로폼을 붙여서 방음처리를 한 후에 발성연습부터 차근히 했다고 하며, 쥬얼리 4집 앨범을 준비하면서는 부족한 춤을 보완하기 위해서 기초스텝부터 다시 익혔다고 한다. 그간의 오랜 침묵과 노고 끝에 나온 솔로 1집 앨범은 자칫 식상한 이미지로 굳어질 위험요소도 있었다. 1집 활동 당시 섹시 컨셉을 전면에 내세우던 서인영은 채연, 이효리 등과 비교 대상이었다. 골반 뼈가 드러나는 시원스런 의상으로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던 때, 그녀는 골반 뼈를 깎은 것이 아니냐는 성형의혹을 듣기도 하였다. 서인영은 그저 황당하다면서 웃어넘길 뿐이었다.


서인영은 섹시 여가수의 컨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여가수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고군분투한 듯하다. 블랙 앤 화이트 계열의 시크한 의상과 골반 뼈가 훤히 드러나는 시원한 의상과 앙증스럽게 튀어나온 입술을 더욱 도톰하게 보이도록 해주는 핑크 계열의 투명 루즈는 서인영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여기에 태양을 피하지 않을 것 같은 구리 빛 피부가 만들어낸 건강한 이미지는 그녀를 한국의 크리스티나 아길렐라로 만들어주었다. 서인영은 다방면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엄정화가 자신의 우상이라며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하였다. 이 말은 서인영 자신이 섹시 가수나 쥬얼리의 멤버라는 통칭보다는 ‘서인영’이라는 고유명사나 독립된 존재로 인식되길 원했다는 뜻으로 통한다. 타 연예인과의 비교를 할 때마다 ‘나는 나일 뿐이예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말이 이를 입증해준다.


서인영은 섹시한 컨셉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여성스러운 우아함이나 단아함, 귀여움 보다는 보이시하고 중성적인 매력을 앞세웠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다른 여자 연예인들보다 조금 더 파워풀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였다. 서인영은 분명 차별화를 위해서, 또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 무대에 서는 듯 했다. 어쩌면 이는 냉혹한 연예계에서 차별화를 통해서 장수를 누리고 싶은 모든 가수들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서인영은 ‘섹시 가수’가 아니라 ‘서인영’이라는 고유명사를 원했던 것이다. 이처럼 가수로서의 기본 자질인 춤과 라이브가 가능한 역량을 갖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 서인영은 데뷔 7년차 연예인으로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같은 아이돌 여가수들이 활약하는 대중가요 시장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 탑 스타의 대열에 합류했지만, 그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글에서 서인영을 다루려는 이유는 그녀의 독특한 취향 때문이다. 평소 연예인들은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연예인들은 타의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고, 시청자들도 검소하고 금욕적인 모습을 미덕으로 여겼다. 대중을 서민이라는 등식으로 놓고 봤을 때, 연예인이 일반인들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면 대중들과의 친화력이 떨어지고 대중과 연예인 사이에 거리감만 생기기 때문에 연예인들도 금욕과 절제를 미덕으로 여겼다. 적어도 방송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서인영은 각종 방송에서 명품에 대한 선호와 구두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과감하게 드러내었다. 특히나 그녀는 사치를 넘어서 구두를 수집하는 것이 자신의 취향 중 하나임을 보여주었다. <서인영의 카이스트>에서 보여준 그녀의 사치스러운 취향은 최근 극장 개봉한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과 닮았다. 뉴요커 4인방은 이 영화 속 여자들은 각자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자들이었다. 사회적으로 프로페셔널한 그녀들의 일상은 자유분방 그 자체였다. 그녀들은 종종 패션쇼 전시회에서 한 해의 패션 경향을 살펴보는가 하면, 사교계에서 남자들과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는 여자들이었다. 부엌에 신경 쓰는 보통의 여자들과는 달리 그녀들은 옷장을 더 신경 썼다. 큰 냉장고 보다는 옷장이 중요한 그녀들. <섹스 앤 더 시티>는 뉴요커로 살아가고 싶은 여성들을 보여주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화를 보여주었다. 서인영은 부분적으로 이 여성들과 닮았다는 점에서 <섹스 앤 더 시티>의 한국판이라고 불릴 만하다.



1-2. 지금 TV는 서인영 전성시대


2008년 상반기는 서인영의 독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쥬얼리 5집 앨범이 발매되자 ‘Baby one more time’은 각종 인기가요차트 1위를 차지하였고, 양손 가락을 아래위로 만나게 하는 ET춤은 인기몰이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리고 쥬얼리 인기의 중심에는 서인영이 있었다. 서인영은 할로 컷이라는 일명 바가지 머리(혹은 쵸코송이머리, 버섯머리라고 불리는 스타일)를 유행시켰으며, 바지가 허리위로 올라가는 하이웨스트 의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길거리에는 숏커트로 짧게 자른 머리를 한 여성들과 하이웨스트 스타일의 옷을 입은 여자들로 넘쳐났고, 그녀가 입고 나온 명품 옷과 구두는 인기검색어에 올랐다. 너도 나도 서인영을 모방하고 패러디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개그 콘서트>에서도 신봉선이 ET춤을 흉내 냈다. 한편 서인영은 M-net의 오락 프로그램인 <서인영의 카이스트>에 출연하여 처음으로 단독으로 쇼 프로그램을 이끌어갔다. <서인영의 카이스트>는 서인영의 대학생활을 담은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다. 서인영은 대학에 입학한 적은 있으나 연예계 생활로 제대로 된 대학생활을 해보지 못했었다. 그런 서인영이 명문대 중 하나인 카이스트에 입학하여 수업을 듣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여느 대학생과 다름없이 시험을 보았다. 이 프로그램과 함께 서인영은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한 코너인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가상 결혼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였다. 이 프로그램역시 리얼리티를 강조한 것으로 서인영은 크라운 J와 가상결혼을 하여 신혼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인기와 서인영의 주가상승으로 <개그야 놀자>에서는 서인영-크라운 J 커플을 모방해 <우리도 결혼했어요>라는 코너를 선보였다. 서인영의 인기가 방송가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서인영은 ‘된장녀’ 인가. 서인영에 대한 비호감과 호감이 동시에 발생한 것은 그녀의 사치스러운 모습이 공개되면서 부터다. 하지만 이 논란이 곧 그녀의 인기를 증명해주는 것과 같다. <서인영의 카이스트>에도 공개된 것이지만, 그녀는 중간고사를 무사히 치르면 명품구두(서인영 식으로 말하면 ‘신상’)을 사준다는 M-net 팀장의 말에 솔깃해 선뜻 방송 출연을 승낙한다. 그런가하면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도 그녀가 명품에 집착하는 모습과 명품을 소비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방송을 탔다. <우리 결혼했어요> 방송 분 중 크라운 J가 외국에 다녀왔을 때 선물을 사오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장면이나, 비오는 날 대구에 갔던 날 구두가 젖는다고 업어 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서인영의 카이스트>에서는 향수와 패션에 관한 프로젝트 발표 수업을 위해서 향수와 명품 옷을 한 가득 사기도 했다. 대중들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된장녀’에 비유하며 처음에는 비호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서인영의 카이스트>가 회를 거듭할수록 대중들은 언제 비호감이었냐는 듯 그녀에게 호감을 보였다.


서인영은 슈어홀릭(shoe-aholic)이었다. 마돈나는 “섹스보다 마놀로 블라닉이 좋다”고 말했고, 근래 대표적인 슈어홀릭 의 대명사인 <색스 앤 더 시티>의 캐리는 다이아몬드보다 구두를 더 좋아했다. 길거리에서 강도를 마주쳤을 때 캐리는 핸드백과 반지는 모두 가져가도 좋으니, 구두만은 가져가지 말라고 애걸복걸한다. 이들은 구두애호를 넘어서 구두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서인영의 카이스트>에서 서인영은 백화점 명품관에 신상품 구두가 들어오면 누구보다도 빨리 가서 보고, 마음에 들면 사는 버릇이 있다. 직원들에게 신상이 들어오면 연락해 달라고 당부하는 서인영은 분명 슈어홀릭이다. <서인영의 카이스트>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그녀의 집에는 신발장을 가득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라 현관에 나란히 나열된 구두가 있었다. 서인영이 소장한 명품 구두만 해도 100여 켤레에 이른다고 한다. 시청자를 놀라게 한 것은 그녀의 신발이 대부분 명품이며, 실제로 구두를 구입하는 장면에서 175만원이라는(이 구두는 크리스찬 루부탱 제품이다) 구두 가격이 공개되어, 그 높은 액수와 구두의 브랜드가 이슈가 되었다. 그녀는 압구정의 한 의류 매장에서도 명품 한정판이 들어왔다는 소리에 솜사탕을 본 아이마냥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철없는 모습을 미워해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서인영의 순수함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이 뒷받침 될 때 가능한 말이다. 돈 없으면 애호나 중독도 불가능한 세상이 자본주의이다. 그녀의 인기가 상승하자 각종 매체에서는 서인영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한 케이블에 방송에서는 그녀가 자주 애용하는 압구정 의류매장, 서인영이 손톱 정릴 받고 발 마사지를 받는 네일숍, 구릿 빛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선탠을 하는 피부 관리소를 탐방 취재하였다. 가히 서인영이 대세인 세상이다.


오늘날 여성들을 사회에서 일정한 위치를 원하며 프로페셔널을 추구한다. 사회로 진출한 여성들은 사회적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남들과 다름을 추구한다. 그녀들은 남들보다 특별해 보기이기 위해서 외모를 가꾸는 일에 충실했다. 가히 외모지상주의다. 성형외과가 때 아닌 성황을 이루고, 백화점 명품관의 상품들은 불티나게 팔린다. 덩달아 명품을 카피한 ‘짝퉁’들도 동대문이나 남대문을 중심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이는 중산층에 대한 한국인이 욕망과 함께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대중심리를 보여준다.


서인영이 TV에서 보여주는 모습 중 하나는 그녀의 사치취향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서인영의 취향을 통해서 한국인의 중산층, 혹은 상류층의 욕망과 컴플렉스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물론 이 글에서 서인영의 취향인 구두. 구두를 통해서 계급 분포에 따른 취향을 분석할 여지는 없다. 계급분포에 따라서 선호하는 브랜드가 다를 수 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하층민들일수록 소비행위는 필요기능을 따른다. 하지만 부르주아 층으로 갈수록 소비는 필요기능에 가까운 필요 취향 보다는 사치 취향을 고려한다. 서인영이 구두에 집착하는 것은 신고 다닐 신발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사치 취향에 가깝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치 취향은 일종의 구별짓기다. 구별짓기는 타자와 나를 다르게 하고 싶은 욕구로, 서인영은 패션을 통해서 타자와 자신을 구별한다. 한편 <서인영의 카이스트>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생활공간과 생활패턴을 서인영의 주거 공간 및 생활방식과 대조하여 보여준다. 연예인과 평범한 대학생들의 삶을 비교 대조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리얼리티의 핵심이듯이 이를 분석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⑵ <서인영의 카이스트>의 낯선 매력.
2-1. 학생 서인영 되기


서인영도 면접을 봐야했다. M-net에서는 서인영의 대학생활을 찍기 위해서 여러 대학을 돌아다닌다. 서인영은 순천향대 의대와 한양대 같은 여러 대학에 면접을 보지만, 고된 학업을 병행해야한다는 교수들의 지적과 기초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한다. 서인영은 눈물을 삼켜야 했고, 사회에서 성공했지만 대학은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그녀는 카이스트 면접에 합격하여 명예학생으로 입학한다. 카이스트에서는 서인영의 창의성과 열정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카이스트에 들어가기 위해서 입학본부장과 간단한 면접을 치러야 했다. 입학본부장은 중간고사에서 2개 과목 이상 낙제를 하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입학본부장은 카이스트 입학 조건으로 학교 홍보를 부탁한다. KAIST는 일종의 구두 계약을 통해서 서인영의 입학을 허락한다. 학교는 서인영의 이미지를 빌려오고, 서인영은 학교생활을 통해서 그간 얻지 못했던 학력자본(그녀에게는 대학졸업 증서가 없었는데, 사회에서는 각종 자격증이나 학력증서를 통해서 그 사람의 능력을 가늠하곤 한다)을 얻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학교와 서인영이 각자 주고받는 윈-윈 게임으로 학교와 서인영은 결과적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얻었게 된다.


명문대 중 하나인, 그리고 공과대학 중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카이스트에서 서인영은 연예인이 아닌 학생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녀가 수강한 수업은 신소재 과학, 디자인 프로젝트, 영어 회화, 화학 실험 총 4개의 과목이다. 신소재 과학 수업에서 서인영은 매번 지각을 해서 교수에게 핀잔을 듣는가하면, 원어민 교수가 진행하는 영어 회화 시간에는 교수와 눈이 마주 치지 않기 위해서 고개를 숙이곤 하였다. 새벽 늦게까지 진행되는 빡빡한 스케줄로 지칠 대로 지친 서인영에게 오전 9시 수업은 늘 무리한 강행군이었으며, 기초가 잡히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 카이스트 학생들과 함께 영화 회화 수업을 듣는 일은 그녀에게는 고역이었다. 방송 초반 노골적인 학벌에 대한 권위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연예인 서인영의 위치와 카이스트 학생과 교수들과의 거리감은 확실히 드러났다. 또한 서인영은 동아리 활동을 위해 응원 동아리에 가입할 때도 까다로운 면접을 거쳐야만 했다. 서인영은 새로운 구성원들을 만나고 소속감을 얻는 절차가 필요했다. 이는 연예인이라는 사회적 신분에서 학생이라는 사회적 신분의 전환을 의미한다. 서인영은 교수와 학생의 관계, 학생들과의 친분 관계, 동아리 생활에서 선후배 관계를 익혀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서인영은 7년이 넘는 사회생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종종 약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교수의 권위 앞에서 기가 죽는가 하면 동아리 선배가 군기를 잡는 순간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듯 했다. 가수로서 서인영은 무대 위에서 관중들을 바라보는 위치였고, 관중이나 시청자들의 시선은 서인영에게 집중되었지만 교실에서는 그 위치가 역전되었다. 서인영은 늘 교수를 바라보아야했고, 교수들은 강단에 서서 서인영을 바라보았다. 교수라는 위치가 가지고 있는 권위와 힘은 서인영을 늘 압도했다. 하지만 서인영은 특유의 당돌함으로 이를 대처해 나간다. 신소재 공학과 교수와 일대일 면접에서 서인영은 재기발랄한 말투로 교수의 영어 발음이 조금 엉터리라며 비아냥거리는가 하면 면접 시간에 지각하고서도 특유의 애교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학교의 수직적인 위계구조를 서인영은 당돌함으로 대처해 나가는데, 대중들은 서인영이 두 개의 장(연예계와 학교)에서 겪게 되는 아노미 현상을 관람한다. 서인영은 역할갈등으로 혼란을 겪기도 한다. 영어 시험이 있던 날, 서인영은 전날 새벽 4시까지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느라 아침 시험에 지각을 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그간에 쌓였던 감정을 폭발한다. 무리한 스케줄을 강요했던 매니저에 대한 원망과 무작정 학교에 입학을 하고 무작정 시험을 치라고 강요하는 제작진에게 속상한 감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학생이라면 누구나 시험을 봐야했다. 서인영은 이런 장면에서 연예인과 학생사이에서 발생하는 역할갈등을 겪는다. 역할 갈등의 모습은 일상 곳곳에서 나타난다. 서인영은 시험을 보기 위해서 방송대기 시간에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공부를 하는가 하면 뮤직 비디오 촬영 현장에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출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송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서인영은 학교를 낯선 장소로 생각하기 보다는 스스로 ‘우리 학교’라는 호명을 통해서 학교생활에 적응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카이스트 학생으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소속감을 얻게 된다.


<서인영의 카이스트>는 서인영이 연예계에서는 7년차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학교에서는 약자일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위치를 역전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연예인에 대한 환생이 깨어지는 순간이 발생했다. 서인영이 약한 모습은 시청자에게는 연예인이 평범한 학생의 위치로 전락하는 볼거리를 제공했다. 교수들은 수업시간에 시험과 출석을 통해서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고, 반면 학생인 서인영은 교수들의 요구에 수긍하면서도 자신의 주장과 개성을 정면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교수와 서인영간에는 보이지 않는 권력 투쟁이 발생한다. 작은 교실 안을 보여주는 카메라는 학생과 교수간의 권력 투쟁의 공간이다. 방송은 일상에서 다분히 일어나는 알력 관계를 재미나게 풀어나간다.


한편 이 방송의 핵심은 연예계 생활을 통해서 일반인 친구들을 사귀지 못했던 서인영의 대인관계를 확장시켜주는 데 중점을 둔다. 서인영은 자칭 ‘서인영 크루’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사귄다. 친구들은 서인영의 과제를 도와주는가 하면, 서인영의 부진한 학업을 위해서 과외 선생이 되어주기도 한다. 한편 동아리 활동이나 방과 후에 삼삼오오 모여서 여가 활동을 함께 즐기면서 연예인과 학생들이 어우러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두 영역에서 활동하는 서인영과 학생들이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설정이 곧 이 방송의 기본 설정이었다. 서인영에 대한 경외와 동경의 사그라질 때, 대중들이 연예인에게 품고 있던 환상은 깨어진다. 그녀의 신분이 방송인에서 학생으로 바뀌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그 간에 연예인에 대해서 품고 있던 환상이 깨어지고, 깨어진 환상의 빈틈으로 ‘학생 서인영’, ‘일반인 서인영’이라는 이미지가 대신 자리 잡는다. <서인영의 카이스트>의 인기의 일등공신은 가깝고 친근한 서인영이라는 이미지가 일등 공신이었다.



2-2. 서인영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연예인도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분명 톱스타라면 보통 사람들과는 남다른 귀족적인 생활 방식을 할 거라는 환상이 지배적이다. <서인영의 카이스트>는 그런 대중들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방송 초반에는 서인영과 학생들의 생활방식을 비교 대조함으로서 거리감과 이질감을 형성했다. 방송 초기에 서인영은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카이스트 기숙사를 방문한다. 서인영은 기숙사라는 공동체 생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여학생들이 수다를 떨다가 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말에 놀라고, 방 마다 욕실이 없고 공동으로 샤워장이나 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말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5평 남짓한 2인 실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서인영은 공동체 생활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동아리 활동 중에도 서인영은 작은 일에서 학생들과 갈등을 겪는다. 응원단 연습시간마다 서인영은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나타난다. 10cm를 넘나드는 굽의 높이는 볼 때마다 아찔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응원단 연습은 격렬한 동작이 많기 때문에 단원들은 늘 운동화를 신고 연습을 해왔으며, 심지어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여자들의 경우에는 화장도 금기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서인영은 평소 무대를 고려하여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연습을 해왔으며, 화장도 연예인으로서는 필수였다. 생활 방식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이해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영은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그녀의 집은 강남의 한 빌라로 입구에서부터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건물 앞에는 경비원이 있고, 집 근처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 법한 전형적인 강남 상류층의 주거공간이다. 서인영의 집은 앞서 보여주었던 학생들의 주거공간과는 사뭇 다르다. 현관에는 서인영이 모아두었던 구두가 100여 켤레 진열되어 있고, 집안에는 그녀만의 의상실이 따로 있다. 기숙사와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욕실이었다. 집안에서 가장 신경 쓰는 곳이 욕실이라고 말하는 서인영의 욕실은 문이 따로 없이 오픈된 공간으로 리모델링하였다. 먼지 하나 없어 보이는 백색의 욕실은 일반 가정의 욕실과는 달리 넓은 것이 특징이었으며, 그녀는 청결을 위해서 3벌의 목욕 가운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주거공간은 사회적 신분과 직결된다. 카이스트 기숙사가 곧 ‘카이스트’를 상징 할 수 있듯이 서인영의 개인 생활공간도 ‘서인영’이라는 이미지 혹은 사회적 신분과 직결된다. 기숙사는 감시의 공간인 동시에 훈육의 장소이다. 카이스트 학생들만 출입할 수 있는 이 공간은 감옥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공동체 생활을 위한 규칙과 질서가 갖추어진 공간이다. 이 공간은 외부와 폐쇄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카이스트를 외부와 구별함으로서 학생들에게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부여하고, 동시에 외부와 차별화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편 서인영의 집 역시 폐쇄적이지만 이 폐쇄성은 철저히 서인영 개인을 위한 기능을 한다. 늘 대중들에게 노출되어 살아가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서인영에게는 자신의 집이 유일한 안식처로 작용한다. 그녀는 휴식을 위해 욕실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침대는 킹사이즈를 선호한다. 하지만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은 그녀의 패션 감각이다. 한 방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수많은 옷들과 신발장을 채우고도 남는 화려한 구두들. 방송 당시 서인영의 집을 방문한 남자들은 서인영의 의상실과 구두를 보고 기겁을 한다. 성性차에 의한 놀라움일수도 있지만, 일반인들이 가정에 의상실을 따로 가지는 경우는 드물 수가 있다. 이런 장면의 비교 대조를 통해서 이 방송은 일종의 계급을 구분 짓고 있으며, 그 차이를 통해서 호기심과 관음증을 유발한다.



⑶ 사치취향의 파급력
3-1. 구두애호에서 구두 중독으로


기독교 의식이 강한 서구사회에서는 금욕이 미덕이지만, 부르주아들은 사치를 통해서 자신의 경제력이나 문화력을 과시한다. 이런 풍조는 뉴요커들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된 <섹스 앤더 시티>에서 볼 수 있으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한편 한국 소설 중에서도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쓴 정이현은 명품을 즐기고 남성을 경제력으로 판단하는 여성의 심리를 묘사했다. 이 소설은 性 이나 연애마저도 상품이 되어가는 현대 사회를 묘사한다. 동시에 여자들은 핸드백이나 명품으로 자신의 신분 가치를 상승시킨다. 사치가 미덕은 아니지만 사치는, 한 사람의 경제력과 문화적 자본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로 작용한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자들은 프라다 가방을 가지고 싶어 하고 마놀로 블라닉의 구두를 신고 싶어 한다. 서인영 역시 명품 옷과 구두에 대한 애호를 보이는데, 서인영의 구두에 대한 중독을 통해서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서인영의 사회적 위치인 연예인이라는 지위와 그녀의 생활 방식은 대중들로 하여금 그녀가 상층계급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여기에 그녀가 주로 활동하는 지역이 압구정과 강남이라고 했을 때 그녀가 상류층 혹은 부르주아라는 이미지로 굳어진다. 평소 연예인들은 각종 시상식에서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의 드레스로 자신의 미를 뽐냄으로써 과시욕을 드러낸다. 대중들은 연예인들이 입고 나온 브랜드와 그 브랜드와의 조화로 연예인들을 평가한다. 오늘날 외모지상주의에서는 한 사람의 외모나 몸매뿐만 아니라 옷이나 장신구가 한 사람의 기호나 지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슈어홀릭은 공연이나 예술관람 보다도 구두에 더 열광하는 구두애호가, 구두수집가, 구두광을 일컫는 말이다. 전설적인 슈어홀릭이라면, 3000여 켤레의 구두를 모았다고 알려진 마르코스 필리핀 전(前)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 여사가 있다.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후 이멜다는 발의 쾌락을 민생(民生)보다 더 중요시한 죄로 기소되기도 했다. “구두를 모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외쳐온 그녀는 2001년 자신의 구두를 모아 구두박물관을 개관했다. 머라이어 캐리도 구두 한 켤레로 버텨야 했던 어린 시절 기억 때문에 보이는 대로 구두를 구입, 1000여켤레 정도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슈어홀릭은 여성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평설이다. 영화평론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심영섭은 성적인 욕망, 허영심 등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두가 페르소나(가면)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구두를 신는 것 자체에 신데렐라에 대한 여성심리가 작용 한 것으로 분석한다. 한편 이규혜 교수(한양대 의류학과)는 “사회적·성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 옷이지만 사회적 상황 때문에 원하는 대로 입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억압을 신발로 표출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는 높은 하이힐이 여성의 성적 욕망의 분출이라는 심리학적인 분석도 분분하다. 하지만 슈어홀릭이나 쇼핑을 즐기는 쇼퍼홀릭(Shopaholic)을 단순히 심리적인 요인의 작용으로 해석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여성들이 쇼퍼홀릭이나 슈어홀릭의 성향이 있다면, 남성들도 자동차나 오토바이, 지퍼 라이터, 조립식 완구 등에 강한 집착을 보이기 때문이다. 슈어홀릭을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이상심리로 분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슈어홀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유욕과 소유욕을 통한 자기 과시의 한 현상에 가깝다. 예술이나 문화 분야에서 애호의 수준을 넘어서 중독의 단계에 이르면 물적인 욕구가 강해지고 점유욕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서 명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고흐와 모네의 그림의 원본을 살 수는 없어 화집을 소하는 걸로 욕구 충족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읽지도 않을 양장본 문학 전집을 소장하려고 하고, 영화 애호가들 중 일부는 한정판 디브이디를 책장 한 가득 채워 넣기도 한다. 사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각종 필름 카메라나 단종 된 카메라를 고물상을 뒤져 구입하거나, DSLR 카메라를 구비하고 다량의 렌즈를 갖추어 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슈어홀릭도 일종의 중독이나 소유욕의 심리적 현상으로 분석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런 소유욕은 사회적 현상, 사회구조와 관련이 있다. 소유욕은 취향에서 비롯된다. 취향은 필요기능이 아닌 사치기능으로 작용하여 타자와 나를 구분하는 기호가 된다.


서인영은 자신의 구두를 “애기들”이라고 부른다. 비 오는 날에는 비에 젖을 까봐 걱정하고, 혹시나 구두에 흙이 들어갈지도 모른 곳에서는 까치발로 걷기 일쑤다. 그녀에게 구두는 자신의 얼굴과도 같다. 서인영의 사회적인 위치는 연예인으로 그녀는 남들보다 다름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 다름은 곧장 그녀를 화려하게 빛내주는 의상과 장신구, 헤어스타일과 같은 패션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된다. 그녀가 옷을 입는 것의 의미는 단순한 의복의 기능만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의상은 유행과 트렌드와 관계를 맺고 있다. 곧 그녀가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것은 무대 위에 서야하는 연예인으로서의 사회적 의식이자 행위이다. 또한 그녀가 특별히 유행에 민감한 이유는 타 연예인들과 차별화를 위해서다. 남들보다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답게 보이려고 하는 것은 여자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식상하면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냉혹한 연예계의 생존 법칙상 남들보다 더 특별하게 보여야 하는 부담감도 작용한다. 대중의 관심이 서인영을 거듭나게 하고, 서인영은 대중의 관심을 명품과 맞교환하는 행위를 한다. 사회는 엄연히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서인영은 대중과의 관계의 매개물로 패션을 선택한 것이다.



3-2. 희소성의 은밀한 매력과 대중 사회의 유행.

상품의 희소성에는 일종의 특권이 내포되어 있다. 모두가 원하고 갈망하지만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을 경우 상품에는 희소가치 생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능력, 혹은 문화적 능력에 따라서 희소 자원을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서 경매장에서 예술 작품을 고르고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은 문화적인 취향과 안목을 소유하고 있어야함은 물론 예술 작품을 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서민들이나 민중계급일 경우에는 생활에 필수적인 상품만을 구매할 수 있지만, 중류층에서는 필수적인 것뿐만 아니라 아늑하며, 편안한 또한 말끔한 인테리어나 또는 유행하고 있는 독창적인 옷을 찾는다. 상류층의 경우에는 박물관에 전시될 법한 회화를 소유할 능력도 있다. 이런 희소자원의 소유는 결국 상류층의 특권이다.


‘서인영의 구두’는 모든 사람이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아니라, 서인영이 신는 구두라는 칭호가 따라 붙는다. 서민들이 서인영이 방송에 신고 출연하는 마놀로 블라닉이나 크리스찬 루부탱의 구두를 신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와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로마네 콩티를 마실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처럼 서인영의 구두는 기성 구두처럼 대량 복제되는 제품이 아니라 특정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한정판으로 판매되어 소수의 사람만이 전유할 수 있다. 희소가치가 있는 한정 문화 상품에는 계급의식이 내재화되기 마련이다. 예술작품이나 특정 문화 상품의 소유는 단순히 소유자의 사유재산의 풍부함 뿐만 아니라 훌륭한 취향을 증언해주기도 하기 때문에, 그러한 물건을 소유할 만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소유 자체가 정통성을 보증해주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나타나게 된다. 부르디외는 이런 경제적 또는 문화적 상품을 획득하기 위한 구별짓기가 곧 투쟁으로 이어진다고 말하는데, 이는 한정된 자본이나 상품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부르디외는 “문화적 상품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은 동시에 구별된 또는 구별하는 상품이나 실천의 형태로 적절한 구별기호를 획득하고, 이러한 변별적 속성들의 구별원리를 보전 또는 전복하기 위한 상징적 투쟁과 분리할 수 없다.”고 한다. 상류층의 희소자원과 문화 상품의 획득은 곧 상류층이라는 ‘기호’를 얻는 행위이다.


상류층의 사치에 가까운 소비를 통해서 중류층과 서민층은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한다. 중류층이나 서민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상류층의 아비투스가 작용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상류층의 아비투스는 동일 계급 간 비슷한 소비패턴과 생활양식을 습득하도록 하고, 이는 실천행동으로 옮겨진다. 상류층은 자신들이 가정이나 학교 혹은 각자가 소속한 그룹에서 획득한 생활방식 때문에 사치취향을 획득하고, 이는 사치스런 생활로 연결된다. 중류층이나 서민들이 백화점이나 기성복을 소비한다면, 상류층은 백화점 명품관이나 압구정 옷가게에서 옷을 구비할 능력이 있고, 그들은 이런 소비성향을 실천으로 옮긴다. 상류층과 중류층 그리고 서민층의 생활방식과 문화향유의 차이가 곧 구별짓기로 이어져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조성한다.


하지만 상류층의 취향이나 문화자원의 획득은 서민층의 문화적 동경과 추종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서인영의 명품 구두나 패션 감각은 유행을 이끌어내고, 이는 대중들의 ‘서인영 따라하기’ 혹은 연예인을 모방하는 현상들을 조장한다. 민중계급은 값비싼 제품을 소비할 수 없을 경우에 상대적으로 값싼 대체품을 소비하려고 한다. 이는 박탈감이 상류층의 생활 방식을 승인하고 모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부르디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중계급의 생활양식은 위스키나 회화작품, 샴페인이나 음악회, 항해여행이나 미술전람회, 철갑상어요리나 골동품 같은 사치재가 없는 만큼이나 이러한 재화에 대한 수많은 값싼 대체재가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고 말하였다. 그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서민층이나 중류층의 상대적 박탈감과 이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한 서민층의 행동을 설명한다. “샴페인 대신 ‘발포성 와인’, 진짜가죽 대신 ‘모조가죽’, 회화 대신 조잡한 착색 석판화가 그것인데, 이런 것은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재화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이는 제2단계에서의 박탈을 나타내주는 지표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 자신의 목적을 설정하려는 바로 그 의도의 박탈은 대량으로 보급되는 문화상품(간단하고 반복적인 구조로 인해 수동적이고 공허한 참여를 일으키는 음악, 문화를 대량생산하는 기술자들이 TV시청자를 위해 고안하는 오락프로, 그리고 특히 필적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비전적이거나 ‘초인적’ 기술의 달인의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에 승인된 단절을 수립하는 스포츠 흥행 등)에 의해서 보다 은근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박탈에 대한 승인과 결합된다.”


‘서인영의 구두’에 열광 속에는 대중들이 박탈감과 승인이 동시에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서인영의 카이스트>에서 나타난 초반의 시청자들의 비호감은 일종의 박탈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중들은 서인영을 ‘된장녀’로 분류하여 그녀를 비난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비난은 호감으로 전환한다. 이는 서인영의 구두를 곧 유행으로 인식하고 이 유행을 쫓는 것이 상류층과 비슷해질 수 있다는 대중들의 사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