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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고백하건대 이 글은 작심하고 어느 영화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쓰여 졌다.)

전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나는 시나리오 한 편을 꺼내들었다. 작년에 일찌감치 초고가 완성된 바 있는 신동일 감독의 신작 시나리오다. 몇 차례 고쳐 쓰기를 거듭한 끝에 완성된 최종본이다.

서울을 출발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내 눈은 엔딩 크레딧 지점에 머물고 있었다. 부족한 잠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를 걱정했던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예상대로 이전보다 밀도감이 더해졌고 무엇보다 극적 재미가 배가되었다. 여전히 무거운 소재를 바탕으로 동시대를 겨냥하는 이야기지만 파고 들어갈수록 사람 냄새 또한 그득했다. 휴게소를 거치면서 한 번을 더 읽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저녁에, 신동일 감독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어떻게 느낌을 전달할 지를 걱정한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는 더 없이 좋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투자를 받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것이며, 이 영화가 완성되었을 때 얼마나 멋질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힘이 될 만한 이야기를 준비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신동일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 단편 [신성가족]으로 2001년 칸 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초청받았고 2006년에 장편 데뷔작 [방문자]로 시애틀 국제영화제 뉴-디렉터스 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을 만큼 외국영화계가 먼저 인정해준 감독이다. 두 번째 장편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을 보인 후 유수의 해외영화제에서 호평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식개봉을 하지 못한 상황이다. 대기업과의 합병이후 완성된 이 작품은 원래의 제작자가 여러 사정으로 회사를 떠난 후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아 아직 정식개봉을 하지 못한 상황이다.

솔직히 말해서 (신동일 자신도 잘 알고 있듯이) 신동일의 영화는 일반관객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화려한 비주얼과 말랑말랑한 로맨스와 거리를 두고 있어서가 아니다. 사회적 문제를 들고 나와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는 점에서, 계급과 자본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때론 감상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또 때론 상처를 후벼 파는 아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영화로 이야기하는 것들은 분명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한 번쯤 겪을 만한 일들이고 한없이 가벼워져만 가는 시대에 던져진 가족과 인간 본성에의 탐색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신동일의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닐까 싶다. 때문인지 외국에서의 평가와는 달리 국내에서 홀대받는 감독들 중 하나로 신동일을 꼽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다. (물론 이 부류의 대표주자는 단연 김기덕 감독이다.)
 
2008년에 들어서 그의 발걸음은 분주해졌다. 두 번째 장편을 기필코 개봉시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마음으로 응원하고 글로 힘을 보태준 덕인지 몰라도 지난 2월말 서울의 모 극장에서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개봉을 위한 ‘모니터 시사회’가 열리기도 했다. 호응도 높은 설문결과에 고무돼 신동일은 개봉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 듯 보였고 마침내 책임자로부터 9월 개봉 약속을 받아냈다. 실로 완성된 지 2년 만에 개봉하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약속이 뒤집히는 사태가 또 다시 발생하였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무기한 개봉연기라는 일방적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적인 호소와 설득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자괴감에 신동일은 빠지게 되었다.

정말로 운 나쁘게도 그의 영화는 영화상업주의의 첨병 노릇을 하는 제작자가 둥지를 튼 투자사에서 판권을 소유하고 있다. 영화를 오로지 흥행만을 목적으로 제작, 투자하는 이들의 계속된 잘못이 애꿎은 작품하나를 자칫 매장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단골처럼 호명되는 ‘미 개봉 영화들’ 중에서 신동일의 영화가 가장 늦게 개봉한다고 해도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그의 영화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4월말 인사동에서 다시 만난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연내 개봉을 위해 분투하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판권을 가져갈 뜻있는 투자자를 구할 생각까지 밝혔다. 미 개봉 영화도 개봉해야 하고 신작도 찍어야 하니 맘 쓸 일이 이만저만 아닐 그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 가득하나, 따지고 보면 이 땅에서 영화를 찍는 감독치고 돈 걱정, 개봉걱정 없이 작품에만 집중하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지금의 고난을 어쩌면 진정한 작가의 반열에 올라 천박한 제작자들 수하에 휘둘리지 않는 그 날을 위한 자양분으로 여기자고 다독였다.
 
이런 와중에 다행스러운 것은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가 다시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서울아트시네마의 5월 작가를 만나다(5월 17일, 토) 편에 초대 상영되고 열성 팬들 성원에 힘입어 DVD도 곧 출시된다는 것이다. 또 문제의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인디포럼에 초청되어 이달 31일에 관객과 한시적이나마 만나게 되었으니 아쉬운 가운데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영화와 영화감독에 관한 글을 써오면서, 영화감독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의 애환을 들으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너무도 많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고백하건대 자신의 영화가 개봉되지 못하는 것이 감독에게 얼마나 고통스런 일인지를 이토록 절실하게 지근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신동일 감독의 덕분이리라.
 
전주에 도착한 날 저녁, 예정대로 고사동의 어느 극장 앞에서 신동일 감독을 만났다. 잔뜩 굳은 얼굴로 다가온 그에게 나는 다짜고짜 “이거 너무 좋아!” “그런데 딱 한 가지, 엔딩 크레딧에 소리를 넣으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말로 그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렸다. 그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안도하는 것 같았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그리고 또 다른 자리에서도 나는 신동일과 그의 영화이야기를 해댔다. 그는 나의 후배이고 영화적 동지이며 무엇보다 좋은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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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거장 크쥐스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영화를 ‘예술’이기보다 ‘노동’이라고 정의했다. 매일 새벽, 스탭들을 데리고 촬영장에 나가야 하는 노고가 없다면 영화 예술 또한 없다는 뜻이다. 안슬기 감독은 그렇게 지난한 작업을 ‘행복하게’ 해 오고 있는 ‘선생님’ 영화감독이다. 스물아홉에 영화를 시작한 늦깎이지만, 마이너스 통장을 밑천삼아 방학을 이용해 촬영하고, 방과 후와 주말에 편집을 하는 그의 열정은 대한민국 독립영화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그런 안슬기 감독이 경쾌한 듯 진중하게 대안 가족을 응원했던 장편 데뷔작 <다섯은 너무 많아>에 이어 <나의 노래는>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희망도 없고, 가족도 붕괴된 스무 살 희철(신현호)의 일상과 분노, 희망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이 작품은 어쩌면 그의 자신 있는 카드 중 하나일지 모른다. 교사로 재직하며 살을 부대껴왔던 그 제자들, 후배들의 이야기를 흑백에 담은 이 응원가는 상업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심심할지언정 무시 못 할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차분한 목소리로 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안슬기 감독이 있다. 만약 <나의 노래는>을 보고 자신의 스무 살, 그리고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면, 이미 촬영을 마친 세 번째 장편 <지구에서 사는 법>이 벌써 궁금해 질 것이다. 비일상적인 SF적 요소와 지극히 일상적인 것의 조합이라니. “그냥 이거 안 찍으면 안 될 거 같아서요”라고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예술’하는 ‘선생님’ 안슬기 감독은 이렇게 전진하는 중이다.






편집 때문 바쁘실 텐데 시간 뺏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개봉이 다음주죠?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부산국제영화제나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들이 <나의 노래는>을 만날 기회는 있었는데요. 그 동안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웃음) 관객 반응이 열광적이고 그러진 않아서 읽기가 쉽진 않네요.

혹시 영화제 등지에서 상영된 후 인터넷에 올라오는 관객들 평은 읽어 보나요?

네, 다 읽어 봐요. <다섯은 너무 많아>를 본 관객들은 역시 그 작품을 생각하나 봐요. 제 입장에서는 영화 톤은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관객들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장편 데뷔작인 <다섯은 너무 많아>은 성공이라 부를 만큼 많은 지지를 얻어냈는데요.

전국 관객 3천 명인데 성공이라 부르기에는(웃음).

이번 영화는 경쾌하기도 하고 바로 차기작이 잡힌 상태라 한 템포 쉬어가는 느낌으로 찍은 건 아닌가 생각도 했거든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죠. 제가 큰 영화를 계속 만들었다면 모르겠는데 <다섯은 너무 많아> 경우도 소박한 영화고 전반적으로 단편도 그런 컨셉이었고요. 자꾸 <지구에서 사는 법>이랑 붙어서 얘기 되고 제작비도 거의 10배 차이가 나니까 그쪽에 무게 중심이 실리는 거 같아 그런 부분은 안타깝죠.

전작들을 보면 단편 같은 경우도 다 칼라였어요. 이번에도 칼라 부분이 들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흑백으로 찍었는데, 이유가 있다면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여러 가지를 다 해 보고 싶은데 이번엔 흑백으로도 해 보고 싶었고요. 예산 문제도 있겠지만 캐릭터 하나를 두고 그 아이한테 집중하는 스타일을 정해 촬영감독님에게 흑백으로 가자고 했죠. 핸드헬드에, 흑백에, 클로즈업 많이 써서 인물이 보이게끔. 우리가 커버하지 못하는 색깔은 뺏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죠.

그 결정이 미학적인 건가요, 아님 예산과 관련된 부분인가요.

미학적인 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100억짜리 영화도 똑같을 거 같아요. 그 예산 안에서 어떻게 뽑아낼지는 누구나 고민하는 거 같고. 더 좋은 조명에 더 나은 환경에 좋은 배우들을 데려다가 찍고 싶겠죠. 그 안에서의 미학을 생각해야 하고 컨트롤을 해야죠. 작품도 칼라로 찍을 수 있었고 그럼 더 다큐 같은 느낌이 날 수 있었을 거예요. 오히려 전 리얼리티 보다 극적인 느낌이 나려면 인물에 집중해야 하니 흑백으로 간 거 같아요. 심하게 얘기하면 칼라로 찍었을 때 현실감이 더 있고 더 격할 수 있었지만 그냥 (흑백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었죠. 원래 세미 다큐로 가려고 했었는데 극영화로 옮기면서 흑백을 선택했어요.

영화 카메라가 희철을 바라보는 화면만 칼라로 찍었습니다. 근데 희철의 점퍼를 보면 청색, 초록색이에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다섯은 너무 많아>에서도 유달리 초록색 톤을 자주 썼다는 기억이 나는데요. 그 색을 상당히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색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선택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상하게. 전작에서도 미술 감독이 스타일이나 창틀이나 결정하는데도 초록색 분위기를……. 초록색이 붉은색 느낌은 아닌데도 차갑게 보이지 않는 안정감을 주고 블루 계열인데 따뜻한 느낌이라 선택하게 됐어요. 배우 옷 입은 것도 그렇고 버스는 섭외 환경 상(웃음).

이번에도 일반 통념과 거리가 있는 가족이 등장합니다. <다섯은 너무 많아>도 그랬지만 이번에 할머니나 아빠도 그렇고. 감독님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어떤 건가요?

(웃음) 가족을 되게 싫어하는 사람처럼 되 버려서요. 전작은 가족을 뛰쳐나와서 ‘이 사람들도 가족이 될 수 있어!’고 <나의 노래는> 그 전 단계인 거 같아요. ‘참을 수 없으면 나와, 그것도 가족이냐?’ 아니면 ‘참지 말고, 꼭 거기 있을 필요는 없잖아. 찢어져!’ 뭐 그런 느낌이 있긴 하죠.

실제로 그럴 의향이 있는 건가요? (웃음)

저의 집은 굉장히 화목합니다(웃음). 누구나 그런 생각이 있을 거 같아요. 자기 가족에 대해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가 다 있을 거고, 저한테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제 가족이나 부모를 증오하고 그런 건 아니고요. 학교에서 얘들을 봤을 때 부모에 대한 감정은 더 세요. 애를 낳아놓고 자식으로 관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그렇게 되네요(웃음). 사회적으로 보편적이고 옳다는 부분에 반감은 있는 거 같아요.

<나의 노래는> 후반부에 할머니가 교회 앞에서 희철을 돌아보는 장면은 <다섯은 너무 많아>에서 엄마가 돌아볼 때의 기괴한 느낌과 표정이 살아 있어요. 그걸 보면서 거창하게 얘기하면 프로이트의 ‘언캐니’, ‘친숙한 낯설음’을 던져준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 사람들에 대해 못 믿는 거 같아요.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나와요. 성모상이나 할머니나. 어떻게 보면 없는 ‘엄마를 찾아 달라’거든요. 엄마의 부재가 자꾸 성모상 할머니, 원래 친구였던 미나, 걔가 가니까 연주한테 넘어가고요. 그리고 새 여자가 생기고.

(희철이가) 복이 많던데요(일동 웃음)

복이 많죠(웃음). 근데 기존에 성모상이나 할머니는 범접할 수 없는 모성애잖아요. 근데 사실 그럴까 하는 거죠. 모성애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제 주변 사람들 중에는 아닌 경우도 많거든요. 자기 살기 바쁘고. 그런 경우가 있어요. 애가 학교 안 왔는데 ‘그럼 어쩌라고’ 이렇게 전화 받는 엄마들. 갑갑하죠. 애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내가 지금까지 많이 희생하면서 먹여주고 살려줬던 아이. 객관적으로 보면 해 준거 없는 거 같은데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거죠. 엄마들이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있을 거 같고 그렇게 보이는 거 같아요. 아빠도 그렇고. 왜 자꾸 그렇게 되지? 우리 어머니가 성당을 다니는데 (영화를 보고) 제일 불만이 그거에요. ‘왜 할머니가 애를 버리고 나가냐(웃음). 그러고도 성당을 다니느냐.’ 그걸 뭐라고 하더라고요. 아주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는 다르고 그런데서 페이소스가 더 느껴지는 거 같아요.

단편들을 보면 모두 가족, 결혼, 사랑 이야기에요. 실제 규범화된 관계를 재구성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어찌 보면 가족에 대한 통념을 벗어나자는 생각이 들면서 그 만큼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단편들을 다 보셨나요? 꼭 무슨 청문회 하는 느낌인데요(웃음). 그렇죠, 뭐. 저한테 뭔가 있겠죠.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 생활을 했었어요. 대학도 청주에서 무조건 서울로 가겠다고 했고. 그래서 기숙사 생활하다 자취 했고요. 근데 아버지가 교사신데 그 중간에 순환 근무 때 일부로 서울에 와서 제 자취방에 함께 살았어요. 그게 정말 싫었거든요(웃음). 단칸방에서 같이 자취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왜 그랬을까, 왜 자꾸 벗어나려고 했을까는 모르겠는데 그런 게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와서는 그 분들이 안쓰럽고 그래요. 그런데 그걸 왜라고 물어보면 다 얘기해야겠죠, 술 마시면서 밤새도록(웃음).

희철이의 영화 속 궤적을 따라가 보면 분노를 배우는 과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또 <다섯은 너무 많아>에 비해 드라마가 부족하고 심심하다는 평가도 있었는데요. 요즘 스무 살 아이들이 분노를 못 참는다고 하는데 희철이는 굉장히 잘 참으면서 분노를 풀어가거든요. 그런 건 학교 선생님으로서의 경험이 이어진 건 아닌가 싶어요. 제자들을 염두에 뒀다는 생각도 들고요.

네, 그런 학생들. 제가 폐교 문제로 이슈화 됐던 동호공고에 있다가 신림동에 있던 당곡 고등학교에 있다가 작년부터 서울산업정보학교라고 직업반 가르치는 학교로 옮겼는데, 계속 봤던 아이들이에요. 인터뷰에서도 몇 번 얘기를 했는데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게임이라든가 당장 하고 싶은 건만 하는 거죠. 차라리 랩 하는 아이들은 좀 나은데 랩은 열심히 하지만 제가 보기엔 잘 못해요. 저걸로 벌어먹고 살기도 힘들 거 같고. 고3인데. 근데 1년 내내 공부 안하고 그러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게 한심스럽다기보다 쟤들은 어떻게 살까 그런 생각을 해요. 졸업해서 찾아오는 얘들 보면 아르바이트 하는 얘들 많고, 군대 가서 말뚝 박을 거라고 하고(웃음). 그런 류의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뭐가 되고 싶었는지 그런 생각을 했었죠. 선생이니까 아주 꼰대 같은 생각을. 또 분노를 폭발하는 건 처음부터 시나리오 상에서 그렇게 잡았어요. 근데 리뷰를 받아봤더니 다 재미없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는 일이 없다, 수동적이다. 전 우겼죠. 그게 이 영화의 컨셉라고. 스토리가 있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펼쳐 보여주면서 점점 움직이다 한 번에 폭발하는 게 컨셉이라고 밀어 붙였죠.

캐릭터만 보면 감독님이 현직 선생님이니까 생생한 면도 있지만 기존에 많이 보아왔던 영화적인 캐릭터로 읽을 수도 있거든요. 온순하다 마지막에 분노를 터트리는. 그게 다큐에서 극으로 옮기면서 의도를 한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다큐도 비슷했을 거 같아요. 다큐도 이미지적인 걸 통해 편집을 했을 거 같고. 처음에는 막 사는 모습, 갈등, 그 다음에는 희망. 짜여진 대로 같을 테고 그게 전형적인 드라마트루기고요. 캐릭터나 전형성에 대해 큰 고민을 하진 않았고 바꾸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랩을 하는 친구들을 언뜻 생각하면 활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근데 희철은 그걸 배반하는 캐릭터니 재미있으면서도 왜 그런 인물을 택했을까 궁금했거든요.

랩을 잘 하는 친구도 아니고요(웃음). 동아리에서도 랩 하는 걸로 별로 유명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하고 그런 친구라. 우리가 보기에는 춤 잘 추고 랩 잘하는 친구들은 잘 보이는데, 사실 그 주변에는 안 그러면서 ‘깔짝’ 거리는 얘들도 많아요.

개인적으로는 이민을 간 민하(주민하) 역이 좋았어요. 글을 쓰신 걸 보니까 <리틀 미스 선샤인>도 언급했던데요. 올리브가 오빠 드웨인 어깨에 기대 말없이 지지해 주는. 마찬가지로 영화 이전 얘기가 있었다면 그런 위치로 민하가 희철 옆에 있었던 거 아닌가 싶은데요. 영화적으로는 이민을 가는 구조인데 너무 일찍 퇴장시킨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웃음)그랬다면 갈등이 더 생겼겠죠. 삼각관계 같은. 얘기를 많이 했는데 자꾸 부재를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처음에 편의점신 같이 (관계를)보여주고 나서는 빼자고 했었어요. 누구부터 뺄까. 점점 잃어가는 친구고 원래 없었는데 더 잃어가고 아버지처럼 오지 말아야 할 사람은 오고. 지금 생각하면 잘 한 건지 모르겠어요. 현장에서도 그랬고 관객들도 누가 더 예쁘냐고(웃음).

이민가기 전에 민하가 희철에게 보낸 문자가 압권이었어요. ‘빙신아, 나 내일 떠나’였나요?

안: 걔네들은 알고 있었을 거예요. 사실 희철이도 (민하를) 좋아하는데 남자들은 괜히 모르는 척 하잖아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아직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할 수도 없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또 그런 걸 안타깝지 않은 척 지나칠 수밖에 없고 그걸 둘 다 알고 있고 그런 거죠. 나중에 관객들이 안타까움을 느꼈으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돌려보죠. 한겨레 영화제작학교에서 영화를 배우셨죠? 어떤 계기로 영화를 하게 된건지.

원래 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따라 영화관에 많이 갔었어요. 옛날에 학생지도 같은 거 있었잖아요. 극장 관계들을 다 아니까 무조건 아버지 손잡고 들어가서 <소림사> <디어 헌터>도 보고. 그 기억이 강렬했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 한다고 하고 주말에는 집에도 안 가고 영화 보러 다니고. 그때는 야한 영화들이 유행이었어요. <먹다 남은 사과>, <여왕벌> 이런 거. 그런 거 보러 다니고 소풍날 되면 얘들이랑 영화 보러 다니고. 영화에 대한 생각은 항상 있었죠.

그럼 결혼 후에 한겨레 영화제작학교를 다닌 건가요?


네, 대학 가서 하려 했으나 시절이 하수상하야. 군대 같다 왔더니 나이를 먹고 힘들어서 직장이 있어야겠다 싶어 공부해서 임용고시 붙고 그 다음에 영화를 했죠. 스물아홉에.

예전에 작가를 만나다 때 한 얘기를 보면 교사라 대출이 편해서 영화 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은행이 투자자인 셈인가요?

그렇겠죠. 마이너스 통장이 있으니까 결국은 은행돈이죠. 아직 회수는 안 됐고요.

이번엔 회수가 될 거 같나요? 어떻게 예상하는지.

안 될 거 같은데요(웃음). 원래는 필름으로 안 가려고 했는데 부산에서 지원을 받는 바람에 여차저차 B프린트 뽑고 사운드 쪽에 돈이 들어가서요. 프리 프로덕션 포함해서 1,500만원 들었고, 나머지 후반 작업에 또 1,500만원이 들었어요. 그래서 요즘 마케팅 팀에서 외부에 얘기할 때 3,000만원 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게 그거라 이왕 싸게 가자고 했죠(웃음). 제 지분이 43% 정도 되고 나머지는 스탭들하고 배우들 지분이에요. 결국은 7천 이상 든 거죠. 제작자니까 그 수익이 나야 배우들 다 나눠주고. 제 수익이 날 수가 있나요(웃음).

역시 케이블 판권이 중요해요. EBS에도 팔아야 되고요(웃음).  교사라는 직업 때문에 방학 끝나기 전에 촬영과 편집을 마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아니에요. 자꾸 그 쪽으로 몰아가니까 그런데요, 촬영만 방학 때 하고 편집은 6~7개월에 걸쳐서 해요. 장편 3편을 했는데 세 편 다 겨울 방학 때 촬영은 마쳤는데 편집은 <다섯은 너무 많아>가 7개월, <나의 노래는>은 6개월 걸렸어요.

오해인 거네요. 방학 때는 촬영만 집중적으로 하는 건데요.

전주국제영화제 때문에요. <다섯은 너무 많아> 찍으면서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촬영은 며칠까지 하고 편집은 3월 말까지 한다. 그때는 장편 편집이 뭔지 몰랐죠(웃음). 그랬더니 전주에서 가지고 오라고 전화가 왔어요. 그때 촬영감독, 조감독하고 셋이서 4일 동안 밤을 샜어요.

한정된 시간 안에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더 찍고 싶은데 못 찍는 거? 그렇죠 뭐. 현장에서 제가 스탭들한테 뭐라 못하는 이유가 제 원죄가 많거든요. 며칠까지 끝내야 하는데 계획을 짜 놓으면 제 입장으로도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안 그러면 3월 달에 찍어야 되는데 말이 안 되는 거고. 장소도 빌리더라도 전체 틀 속에서 빌려야 하니까 더 힘을 줘야 되는데 2~3일 안에 끝내야 되니까 몰아서 이틀 안에 60컷을 찍기도 하고. 많아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다 그렇죠.


설정을 외곽지역으로 한 건데요. 실제로는 왕십리 지역에서 찍었고요. 보도 자료를 보면 모텔하나 잡아 놓고 스탭들과 부대끼며 지냈다고 소개했던데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주민들이 많이 도와 줬어요. 크게 무리 있는 촬영도 아니고 조명도 기본 조명이니까. 장소 고민을 별로 안 하고 일단 장소를 잡고 거기에 앵글이나 콘티를 맞추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요. 15일 동안 13회 차 촬영 했으니까요. 스탭들이 거의 같이 살았죠. 여관 잡아놓고 8명, 9명까지 잤으니까. 그래도 배우들은 방을 따로 줬어요. 연출부는 다 때려 넣고, 촬영, 조명팀도 다 때려 넣고. 아침에 일으켜서 찍고, 밥 먹이고 저녁때 해 지면 또 찍고.

힘든 영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데요, 계속 영화를 찍는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 안 감독님한테 영화란 무언가요.

꼭 마지막 질문 같은데요(웃음) 영화란, 꿈은, 청춘은 무엇인가요, 라고 물어 보며 힘들어요(웃음). 전 옛날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10년 전부터 준비해서 찍고 있고 소중한 건데요. 소중한 일이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거 안 찍으면 안 될 거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나 보고 영화 찍지 말라고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란 생각도 들고. 관성이라고 할까요? 산을 타는 사람한테 왜 산을 올라가느냐고 하면……. 저도 이제 10년 됐으니까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여담인데 와이프 분이 영화가 좋아, 내가 좋아라고 물은 적 없나요?

아유, 그럼 물어보기도 했죠. 안 물어보면 여자가 아니죠. “영화야, 나야?” 뭐, 이런 거.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냐? (일동 웃음). 유치원생이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도 아니고.” 그랬죠.

감독님 영화들 보면 시대가 느껴져요. 반면 치열하다든지 비장하다든지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기운은 없어 보이고요. 한편으론 생활이 비교적으로 안정적인 교사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생각해서 비장하거나 암울한 영화들은 피하고 긍정적으로 희망을 담으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싶거든요.

그런가 봐요(웃음). 왜냐고 물어본다면 맞는 거 같아요. 하도 그렇게 물어봐요. 보편적인 독립영화 같지 않다, 그런 느낌은 안 든다. 그게 상업영화 같다는 소리는 아니고 무게라든가 시대상이 많이 반영된다거나, 그 중에서도 아픔이 많이 반영돼서 그런가 봐요. 제가 만든 영화중에 무거운 영화도 있어요. 단편 <사랑 아니다> 같은 경우도 그렇고 시나리오도 그런 게 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장편 두 편이나……. 그래도 <다섯은 너무 많아>보다 (<나의 노래는>이) 무겁지 않나요?

오히려 엔딩을 그다지 희망적으로 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 친구를 현실적으로 탈색시켜서 본다면 그 또래의 스무 살들이 보면 희망적으로 읽을까 싶은 거죠.

네, 지금 스무 살들이 보면 잘 모를 거 같고요. 20대 후반이 봐야 좀 느낌이 있을 거 같은데. 저게 희망일까라는 건 거짓말 하는 거 같았어요. 로또 맞은 것도 아니고 갑자기 재능을 발휘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얘들이 몇 명이나 있어요. 문제는 그걸 바라보고 매일 그걸 꿈꾸면서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준비안하고 허황된 꿈을 꾼다든지 하는 거. 연예기획사에 돈이나 갖다 바치고 그런 얘들이 태반이니까요. 방송에 잠깐 출연해도 기획사에서 돈도 못 받고. 같은 어른 입장에서 안타깝죠. 사기나 당하고. 그렇게 살지 말고 별로 달라지는 건 없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생기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 정도만 바뀌었으면 좋겠다. 걔가 나중에 빌리 엘리어트처럼 무대에서 비상하는 건 거짓말이죠. 내가 바라는 건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늦게나마 하고 싶은 걸 찾고, 언제인지 기억은 못하겠지만 카메라에 대한 생각도 있고. 그걸 사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럼 <마이 제네레이션>이 되는 거죠(일동 웃음)

조금 냉정하게 보자면 칼라 장면들이 가혹하게도 느껴졌거든요. 과연 희철이가 저 카메라로 영화를 찍을 수는 있을까 싶은.

글쎄요, 뭘 할지는 모르겠어요. 더 우여곡절이 많을 수도 있겠죠. <마이 제너레이션>처럼 돈이 없어서 팔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냥 아르바이트 하면서 하고 싶은 거 없이 살 때 보다는 나을 거 같아요. 나도 직업이 있는 선생이고 그거 때문에 남들보다 영화를 쉽게 하지만 시작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한 번 살아보자 그런 거죠. 누구는 저보고 충청도 땅 부자라고 하던데(웃음). 다 빚인데. 빚을 잘 낼 수 있는 거죠. 근데 영화 찍는 친구들 중에는 아르바이트 세 네 개씩 하는 친구도 있거든요. 그렇게 돈 모아서 영화 찍고 그런 다음에 빚 갚고. 그런 사람에 비해 전 행복한 거죠. 더 (영화를) 잘 찍어야 되고요.

안 감독님은 연출 말고도 배우를 했어도 충분했다고 봐요. 그해  <용서받지 못한 자>의 윤종빈 감독만 아니었어도 더 주목을 받았을 텐데요. <마이 제너레이션>의 실장 연기는 압권이었고 <나의 노래>에서도 연기를 했는데 그 두 편이 전부인가요?

 <마이 제너레이션>하고 단편은 부탁 받은 거 몇 편 했었어요. 들어오는 역할이 다 그런 거예요, 배 나온 경상도 국회의원. 말도 안 돼는 역할을 시켜서(웃음) 싸가지 없는 과장, 직장 상사. 이번엔 정수기 회사 사장인데 정규직으로 해 주겠다고 해 놓고 나중에 ‘쌩’까는. <마이 제너레이션>의 그 이미지가 큰 거 같아요. 불러달라고는 하죠. 멜로 연기 한 번 해 보고 싶다고(웃음).

이제 배우로서의 욕심이 슬슬 생기나 보네요(웃음) 이번에 세 번째 작품 <지구에서 사는 법>을 끝냈다고 들었어요. 후반기 개봉이라고 들었는데 그 전에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아직 편집이 안 끝나서요. 편집이 끝나봐야 알겠죠. 정식 개봉은 하반기인데 나오는 거 보고 영화제 고민은 할 거 같아요. 일단은 잘 나와야 되는데 주말만 편집을 하고 있으니까 회사 쪽에서 답답할 거예요. 게다가 <나의 노래는> 개봉까지 맞물려 있어서요.

<지구에서 사는 법>이 3억 5천이라고 들었는데요. 기존 작품 규모에 비하면 상당히 큰 규모인데 제작비가 늘어나서 피부에 확 와 닿는 게 뭔가요?

없어요. 사실 <다섯은 너무 많아>도 6~7천 들어갔거든요. 예산이 커지면 어디다 돈을 들일까 어디다 돈을 더 쓸까 생각을 해보면 그렇게 나오는데도 없어요. 게다가 촬영 회차가 더 늘어나고 진행비가 더 들어가고. 또 민망하지만 배우들 인건비도 다 주고 지분계약도 다 하고요. 그거 빠지니까 전작하고 똑같아요. 여하튼 큰 차이가 없어요. 게다가 그립 장비도 들어가고 CG도 들어가고 총도 나오고(웃음). 그 쪽에 예산이 들어가니까 나머지가 괴로운 거죠. 사실 독립영화 쪽에서 찍어도 돈이 좀 들겠다 싶은 시나리오였으니 그 돈으로 맞추려니 미치죠.

촬영 장비나 미술 쪽 얘기를 했는데 전작들하고 스타일이 확 달라질 거 같네요. 앞으로 꼭 다루고 싶은 소재나 형식이 있다면요.

 여러 가지를 해 보고 싶어요. 제가 딱 어떤 경지에 올라서 예술을 하는 사람이란 생각은 안 들고요. 딱 어떤 경지에 올라서 경지에 오른 사람이란 생각은 안 들고 여러 가지 해 보고 싶고요. 나중이 되어야지 연륜도 쌓이면서 어떤 스타일이 생길 거 같아요. 그래도 저 밑바닥에 스타일은 한 사람이니까 비슷할 텐데. 딱 한 가지는 모르겠고 여러 가지 해 보고 싶어요. 100만원 프로젝트라고 하나 있는데, 100만원 들여서 제가 격하게 촬영하고 3일 만에 촬영을 끝내는 프로젝트가 하나있고요. 호러도 생각을 해 보는데 피나 귀신, 효과음 하나도 안 나오더라도 무서울 수 있지 않을까. <큐어> 같은 느낌의. 그리고 이번 <지구에서 사는 법>이 그런 컨셉인데, <다섯은 너무 많아> 이후 해보고 싶은 게 아주 건조한 일상에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 들어오면 어떨까. 예를 들면, 장률 감독님 영화 스타일에 외계인이 서 있으면 어떻게 될까. 굉장히 건조하고 일상적으로 보이는데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 보일까. 그걸 일상적으로 보이게 할 수는 없을까. 외계인이 나오는 건조한 이야기.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느낌인데 대단히 건조한.

판타지를 일상으로 데려오는 거죠? 일상을 판타지로 데려가는 게 아니라.

네. 근데 자꾸 일상을 판타지로 데려가는 거 같아요(일동 웃음). 그런 것도 해 보고 싶고, 그래요.

마지막 질문인데 <다섯은 너무 많아>는 독립영화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나의 노래는>을 본 관객들이 이렇게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요.

희철이가 보였으면 좋겠고,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기 나이 때의 자기 생각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고요. 나도 저런 순간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어떤지, 뭐하는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와이키키 브라더스> 마지막 보면 지지고 볶고 하다가 ‘사랑밖엔 난 몰라’ 부르잖아요. 제가 ‘386세대’ 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이랑 그거 보고 나오면 짠해서 ‘우리 진짜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자’라고 하잖아요. 거기 까지는 안 올라갔지만 그런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번외 질문 하나 하자면, ‘386’ 얘기도 언급했고요. <나의 노래는>의 희철이는 이제 막 ‘88만원세대’로 진입하는 아이들인 거잖아요. 감독님의 제자들이기도 하고, 그런 친구들에게 보내는 응원가 정도로 해석을 해도 될까요?


네, 맞아요. 그런 거예요.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거고. 와서 나한테 “이렇게 살아요” 그럴 거 아니에요. 2학년 때 자퇴했던 한 녀석도 군대 간다고 친구 커플이랑 마누라랑 애 데리고 술 사 달라고 왔더라고요(웃음). 근데 얘들이 철이 없어요. 갈비 사주고 당구 쳐주고 맥주 사주고, 다 내가 냈네(웃음) 근데 좋잖아요. 어떻게 보면 사고치고 살 놈 아닌가도 싶은데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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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나는 한국영화의 위기상황에 대한 용어정리, 그러니까 한국영화의 위기가 아니라 영화산업의 위기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것의 원인은 무분별하게 판을 키워온 제작자를 비롯한 영화관련 집단 모두에게 있으며, 이들이 한국영화가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떨면서 위기타개의 수단으로 한국영화를 볼모잡고 있다는 얘기도 했었다. 일부 영화제작자들 중에서 영화자체에는 관심조차 없거니와 흥행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넋 나간 사람도 있다. 또 스크린 쿼터 수호를 위해서는 ‘문화다양성’을 내세우며 영화를 예술로까지 격상시키지만, 사업영역에 들어서면 흥행에 거품을 무는 이중성이 제작, 배급업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계는 더 건강해져야 하고 다양한 형식의 영화들이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문제는 재창조마저도 수월치 않다는 것에 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어 함부로 손대기 겁날 정도인 영화판을 어떻게 하면 체질 건강한 모습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까?

지난 글에서는 제작, 배급업자 집단에 초점을 맞춰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집단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선량한 감시, 전달자로서의 책무에 충실하기는커녕, 시장의 왜곡을 직시하지 못한 채 한국영화위기론의 배후로 전락해버린 언론의 책임 또한 이들과 비교해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즉 부실공사의 책임이 설계, 시공자뿐 아니라 감리자에게도 지워지듯이 부실한 날림 영화를 온전히 비판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입장에 서있었던 언론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영화산업의 부활을 이끌기 위해 영화인의 혁명적 변화 못지않게 언론의 역할 재조정이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례사비평을 날려 온 평단 역시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이번 글에서는 영화산업과 한국영화를 위한 언론매체의 역할과 책임을 거론하려 한다.

잡지나 일간지 인터넷 신문을 막론한 언론매체에게 영화만큼 매력적이고 상시 공급 가능한 콘텐츠도 드물 것이다. 매체 규모에 따라 영화전문 기자가 있는가 하면, 문화부에서 다루기도 하고, 또 더러는 연예기자가 영화를 담당하기도 한다. 매체 성격상, 사실전달에 비중을 두다보니, 기자 개인의 의견과 사고가 개입될 여지가 줄어들기 마련이고 깊이 있는 기사를 생산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인터넷으로 가면 기사재량권이 조금 더 확대되기는 하나, 2007년 초 뉴시스의 김용호기자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전달과 사적의견 개진 사이의 불균형으로 인해 품질 떨어지는 기사를 발견하게 되기 일쑤다. 이런 환경에서 거창하게 영화판을 헤집어보고 한국영화산업의 미래를 논할 여력이 없음은 자명한 일일 테다. 게다가 개별 영화로 대상을 좁히더라도, 매체 또는 기자의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관련 매체의 기자들 역시 영화산업 자장 안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거대 제작사와 배급사들이 영화매체와의 친분을 통해 우호적 기사를 유도하거나 혹은 길들이기를 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 매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영화전문지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광고지면이 늘어나면서부터 제작 또는 배급집단과 결별할 수 있는 기회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애초부터 상대가 되질 않는 싸움이었다. 매체와 제작이 나란히 가는 것이 굳이 나쁠 것만도 없고 영화매체가 영화와 싸울 일이 뭐가 있겠냐마는, 문제는 최소한의 비판적 담론조차 허용하지 않는 현실에 있다. 2007년 [디워]와 관련한 쇼박스의 <필름 2.0> 광고 철회라는 더러운 작태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인터넷 매체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아예 비참할 지경이다. 몇몇 거대 포털 사이트를 제외하고는 돈 대신 대물변제 형태의 지급조건으로 광고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거니와, 자기네 영화에 대해 비판적기사가 올려질라치면 부리나케 전화를 걸어 수정요구를 하기 일쑤다. 이처럼 비판적 기사를 쓸 수 없는 환경 하에서 건강한 영화담론이 생겨날 리 만무하다. 때문에 제 아무리 쓰레기 같은 영화라도 어떻게든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기자의 능력이고 임무요 사명감이다. 급기야 “한국영화 망하는 꼴 보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기자의 의무가 된 형국이라 하겠다. 때문인지 한국영화가 힘들다고 하면 기자들은 사심 없이 응원의 기사를 써주곤 했다. 따져보는 것은 나중 일이고 일단 죽어가는 놈 살려놓고 보자는 심정이었을 게다. 자의반 타의반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생각해보자. 언론매체가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던 한국영화위기와 부활의 사이클, 그러니까 오늘 방금 전까지 곧 죽을 것 같던 한국영화가 몇 편의 선전에 힘입어 부활의 전주곡을 울린 후, 다시 몇 편의 블록버스터가 흥행을 주도하며 쌍끌이 작전에 돌입하여 거둔 한국영화의 부활이라는 장엄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 는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 진부하다 못해 바닥패가 보이는 글로는 더 이상 한국영화 구하기에 나설 수 없다는 얘기다.

나는 한국영화산업의 위기론자들의 머릿속에 상업 장편영화만이 들어있다고 비판해왔다. 언론매체 역시 이들의 논리에 대한 고민 없이 관객에게 전달해왔다. 각 매체의 개봉작 소개는 블록버스터이거나 스타가 출연한 영화거나 아니면 스타 감독의 영화 위주로 이루어졌으며, 화제작, 문제작, 기대작이라는 단어는 스크린 숫자 앞에서 무용지물이었으니, 독립영화나 소자본 영화, 단관 개봉영화들은 관객에게 알릴 기회조차 박탈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거대제작사와 배급, 홍보사가 일치단결하여 십자포화처럼 쏟아 붓는 보도 자료와 물량공세에 굴복한 많은 언론들은 앵무새처럼 읊어대곤 했다. 이처럼 대형상업영화 위주의 보도관행과 밀어주기성 기사는 기어이 ‘좋은 영화는 반드시 관객이 알아본다.’(그러나 속뜻은 흥행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해괴한 논리를 낳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언론매체들은, 흥행대박을 주도하며 스크린의 독과점과 관객의 관람권리 박탈을 자행해온 영화자본의 시녀가 되어, 이들이 자생력이 취약한 영화시장을 거점 삼아 한국영화산업의 기형적 성장을 주도할 수 있도록 안전판이 되어준 셈이다.

독립영화인들의 숙원이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지난해 11월 개관했다. 이전과 비교하자면 셋방살이 설움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으니 더 바랄게 없겠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독립영화는 매체보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매체기사의 95%이상은 장편상업영화와 관련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양수리 종합촬영소가 파리를 날리는 시간에도 도심 어느 골목에선가 독립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작고 볼품없어 눈에 띄지 않을 뿐, 게다가 돈이 없으니 내세워 알리지 못할 뿐, 꿈틀대는 열정과 결기로 치자면 상업 장편에 뒤질 리가 있겠나. 그런데도, 평일저녁 6시 즈음이 되면 인터넷매체의 연예 면은 시사회에 참석한 여배우의 짧은 스커트와 등 파진 드레스 사진으로 도배된다. 그 많은 면을 꼭 모든 매체가 같은 사진과 내용으로 채우는 비생산적인 행위의 끝은 어디일까.

그럼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요컨대 솔직하게 보고 느낀 대로 쓰자는 얘기다. 한국영화계가 어려운 것이 진정 안타까워 되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이라면, 그럴 수 록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무조건 한국영화를 많이 보면 한국영화가 살아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서 뛰쳐나오라는 말이다. 좋은 영화는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수준미달인 영화는 그에 맞는 평가를 해주면 된다. 다만 칭찬과 비판 어느 쪽이건 해당영화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글로써 전달할 수 있다면, 비판이라고 무조건 거북하게 여길 감독과 제작자는 없으리라. 또한 무턱대고 독립영화를 좋아해주자는 말도 아니요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는 얘기도 아니다. 단지 예비관객에게 존재를 알릴 기회를, 영화에 대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알림의 장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덧붙여 언론과 영화평론가집단을 구분지어 생각하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다시 말해 영화기자나 평론가나 모두 영화전문가 혹은 비평가로 뭉뚱그려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이 평단과는 달리 관객의 마음을 읽어낸다는 아전인수식 기사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언론이 평단의 역할까지 해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던가.

광고의 핵심은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상품을 구매하도록 소비자를 부추기는 것에 있다. 남이 모두 가진 제품을 가지지 못했을 때 느끼는 결핍은, 가진 자들과 섞일 수 없으리라는 소외불안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하여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 광고의 속성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이가 본 영화를 자신만 보지 못했을 때의 느끼는 소외감, 그것을 본 자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되리라고 느끼는 불안감을 촉진시키는 것이 영화홍보 전략의 중요한 키워드라면, 언론까지 나서서 동조하여 붐을 일으켜주고 장단에 춤출 이유가 없다. 언론매체는 영화의 개봉사실과 영화에 대한 평을 솔직하게 전달하면 그만이다. 되도 않는 이슈 따위까지 친절하게 기사화함으로써 홍보도우미로 전락해버린 일부 매체와 질 낮은 기자야 말로 한국영화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고쳐나가야 한다. 한국영화에 상업 장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관객에게 알려주어야 하며, 그것들에서 지금껏 한국영화산업의 무수한 인재가 배출되었음을 언급해주어야 한다.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좋은 영화가 많은 관객과 만날 기회를 고루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이 영화를 고를 수 있도록, 언론이 중심을 지켜야 한다. 적어도 언론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배급, 홍보사의 나팔수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직하게 쓰고 홍보성 기사와 일정거리를 유지함과 동시에 영화의 선택권을 관객에게 돌려주자. 선입견 없이 온전히 자유롭게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풍토만 언론이 조성해주어도 한국영화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해질 것이다. 모름지기 언론이 당연히 맡아야 할 중차대한 역할이 있는데, 왜 그것을 포기하고 애써 독배를 받으려하는가.



(추신) 속된 말로 “일이 점점 커지고”있다. 당초 2편에 나누어 끝내려고 했던 것부터가 착오였다. 손을 대면 댈 수 록 많은 분야가 튀어나온다. 어쩔 수 없이 뿌리 뽑기로 했다. 이제는 3편에서 끝이 난다는 보장을 못하겠다. 어느 개그맨 말대로 “그래! 가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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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제 생각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독을 품는 사람과 뱉는 사람......”

참, 섬뜩한 말이다. 그런데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딱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서 사랑의 상처를 입어 독을 품은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그 독을 내뿜게 되어 있다는 얘기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인디스페이스에서 (2월 22일)개봉한 독립장편 영화 [내부순환선_Inner Circle Line]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진흥위원회지원작에 선정된 지 무려 4년, 로테르담 영화제를 시작으로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를 돌고 돌아 드디어 개봉하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와 연출, 편집을 도맡은 조은희 감독을 만났다.

(편집자 주: 인터뷰 내용 중 캐릭터에 관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설명한다. [내부순환선]의 주요인물은, 여자영주(양은용) 남자영주(배용근) 진(정유미) 현(장소연) 이렇게 4명이다.)




백건영(이하 백): 개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는데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조은희(이하 조): 사실 한달 전에는 굉장히 떨렸거든요. 완성한지도 오래됐고, 영화 개시한지 3년이나 되고. 마침내 이런 기회가 와서요. 무엇보다 떨린 건, 사실 한국에선 전주영화제 외에 공개된 적이 없어서 반응이 궁금했어요. 어떤 얘기를 들을까 좀 무섭기도 했고. (웃음) 한 달 동안 홍보팀이랑 준비하고 쇼-케이스도 하면서 긴장이 많이 풀려서..지금은 좀 담담해요.


백: 쇼-케이스가 있었는데, 반응이 어땠는지요.

조: 기대 외로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쇼-케이스 하기 전에 어느 기자분이 “동성애와 이성애를 아우르는 사랑 얘기다.” 이런 기사를 써주셨더라고요. 개인적 바람으로는 동성애자 분들이 많이 참석해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이 있었는데 그런 동호회나 사이트에서 이 기사를 많이 퍼 가셔서 광고도 되고, 예상보다 많이 오셨더라고요. 끝나고 질의응답 할 때 남/녀 관객 차이가 있는 거 같았어요. 굳이 나눌 필요는 없지만...질문하는 방식이나 그런 게 약간 차이가 있더라고요.


백: 예를 들면 어떤 거죠?

조: 남자관객들이 감정이입을 잘 못하시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몇몇 분이 남자 캐릭터에 대해 질문하시더라고요. 2년간 영화제 돌면서 남자캐릭터에 관한 이런 얘기를 들은 게 처음이어서요. 기관사 영주를 소외시킨 느낌이 든다. 거세된 남자 혹은 기운이 없고 힘이 없는 남자 같다. 고 말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볼 수 있겠구나. 굳이 의도된 게 아닌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그게 맞을 수도 있고. 한국 남자 관객들이 이런 질문 해온 게 신선했어요. 스스로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백: 실질적인 데뷔인 셈이데. 1년간 한국에서 촬영하시고, 1년간 미국에서 후반작업. 그리고 해외영화제 순회. 졸업 작품이 글로벌프로젝트가 되어 버렸어요(웃음). 오래 걸린 가장 큰 이유가 뭐죠?

조: 후반작업비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영진위에서 제작지원을 했는데 그게 벌써 2004년이에요. 마지막 자막 올라갈 때 2004년 영진위 제작 지원작. 이렇게 나오는데 이게 무슨 대작도 아니고.(웃음) 2004년 연말에 펀딩이 돼서 개시를 2005년 연초에 했어요. 사실 이게 2005년 프로젝트라고 보시는 게 맞는데요. 아직 학생신분이니까 어떻게든 학교에 있는 기재로 후반작업을 하자. 몇 년이 걸리든 하겠거니. 하고 의지를 가지고 돌아갔는데...그게 만만치 않더라고요. 제가 단편만 생각했지, 장편영화의 방대한 분량 등은 상상을 못했어요. 일단 후반작업 예산이 없었고. 학교기재를 쓰면 되지만, 기재가 아무리 훌륭해도, 장편영화 퀄리티를 끌어올리려면, 기재보다는 누가 하느냐 문제거든요. 사운드 믹싱이나 색 보정을 누가하느냐가 중요한건데... 저 혼자 작업을 2005년 여름까지 하다가 거기서 더 이상 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사용한 음악이 많으니 음악도 다 사야하고...전문적이고 비즈니스적인 부분을 제가 할 능력이 안 되더라고요. 좀 애매하던 차에 뉴욕에 있던 어느 단체의 워크숍에 제가 참석하면서 후반작업 도와주는 프로듀서를 만나 투자받고 필요한 일들 다 지원받았죠. 2005년 연말까지는 영화 마무리를 했고 영화제는 2006, 2007년 돌기 시작했죠.


백: 개봉을 거의 포기할 수 도 있는 긴 시간인데...

조: 아니요. 전주영화제가 2006년 5월초였는데요. 그때 처음 생긴 게 한국영화의 흐름 부분에 틀었던 영화 중에 CGV개봉영화 지원상을 주기로 했거든요. 막 기대를 했죠. 그때 이창재 감독님의 [사이에서]가 수상했거든요. 그분이 또 시카고대학 선배세요. 한국이 미국보다 시장도 작고 독립영화 규모도 작고해서 좀 만만하게 봤었죠. 그러다가 2006년 말, 곽용수대표님 뵙고, 2007년 영진위에서 아트플러스 개봉작지원도 있었고. 지원받은 시점은 2007년 여름이었는데,,,여기서도 개봉하는 작품들도 계속 있고 해서 스케줄이 미뤄지다 보니 이제 서야 개봉하게 된 거죠.


백: 월드프리미어가 노트르담 영화제였는데...2005년에 개봉했던 거보다 지금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동성애코드 때문인데, 그동안에 [후회하지 않아] 등 다양한 동성애 영화들이 꽤 나왔고. 사회도 많이 변했고요, 3년간이 문화, 정서적으로 다가가는데 숙성의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백: 기자시사회 때 장소연씨 제외하고 모든 배우가 참석했고 2006년 전주에서도 양은용 씨 빼고는 다 온 걸로 기억하는데, 배우들과 친목이 돈독하신 거 같아요. 비법이 있나요?


조: 제가 영화 찍고 나서요. 촬영을 하고 나서도 완성이 1년 걸린 데다 첫 상영은 전주에서 2006년 4월에 했고요. 그런 점에서 배우들에게 미안했어요. 전주에서 틀고 한국에서 아무데서도 튼 적이 없거든요. 그게 마음에 걸리고 죄송스러웠죠. 기회만 생기면 항상 모시죠. 배우들도 고생했으니. 왜 한국에서 기회가 없지?(웃음) 이런 질문도 스스로들 하고. 쇼-케이스 때도 다들 반가워하면서 오셨고요. 배우들도 계속 관심이 있으시고. 특별히 친목을 도모했다기보다...그런 죄송스런 마음에 기회만 생기면 오셨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드리곤 했는데, 다행히 기쁜 마음으로 오시네요.


차상윤(이하 차): 연령대가 비슷하신 거 같아요. 배우들과 감독님이 (웃음)

조: 사실은 저보다 오빠예요 (웃음) 남자 영주(배용근) 여자 영주(양은용)는 모두 오빠 언니고, 유미씨랑 소연씨는 동생이고...나이 대는 또래죠. 비슷하죠. 제가 딱 중간이네요 (웃음)


백: 그 사이 양은용씨는 독립영화계에서는 스타급 배우로 올라섰어요. 당시 캐스팅 과정을 간단하게 얘기해주세요.

조: 영진위 지원을 받을 당시, 일단 광고를 냈어요. <씨네 21>이랑 <필름메이커>에..그 당시에 캐스팅 디렉터를 소개받았고요. 최철웅씨라고...인디스토리나 다른 상업영화도 하시는 분인데요. 주연배우 두 명 은용씨랑 용근씨는 그분이 소개해주셨고. 소연씨랑 유미씨는 오디션 오셔서 제가 뽑았어요.




 

백: 본격적으로 [내부순환선] 얘기를 시작해보죠. 자전적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셨는데...살짝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조: 물론 영화가 픽션이지만 저의 심리상태나 그 영화를 기획하게 된 그 시기 몇 년 동안.....저만의 러브스토리. 그때 겪었던 인간관계가 조금씩 드러나 있죠. 영주라는 사람이 한명이라면 그걸 두 명으로 쪼개는 거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되었고요. 학교 주변에 게이친구들이 많았어요. 시카고 예술학교가 교수, 학생들, 특히 영화과 학생들 중 게이 학생들이 많았어요. 공부하고 영화작업하고 그러면서 그들의 사랑방식이 헤테로섹슈얼이랑 굉장히 다르더라는 걸 느꼈죠.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특히 레즈비언은 남자 게이에 비해 인구가 생물학적으로 굉장히 적어요. 그래서인지 그들이 사랑에 빠지면 집착이 굉장하더라고요. 그런 것을 결합시켜 ‘진’이라는 인물이 탄생했는데, 주변에 있는 친구가 모델이 된 경우예요. 지나고 보니까 더 열정적으로 묘사했어야 하지 않았나. 굉장히 부드럽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레즈비언 캐릭터를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생겨요.


백: 세 번을 봤는데...스토리가 비선형적일 뿐만 아니라 의도적이라 할 만큼 불균질적인데, 왜 이렇게 만드셨어요?

조: 학풍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은 게...시카고 예술학교가 미술학교이기도 하고 영화, 이쪽 전공이 굉장히 아방가르드하고 실험적인 영화를 많이 선호해요. 내러티브 영화를 타도하는 과의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근데 저는 한국에서 영화를 공부했다보니 그 내러티브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을 접목하고 싶었어요. 다만 제가 일반 스토리, 내러티브. 그런 것에서 잘 매력을 못 느끼는 거 같아요. 극영화적인 것과 회화적이고 실험적인 걸 접목시키자. 어떻게 보면 일부러 쉽게 할 수 있는 얘기를 어렵게 하거나, 이미지를 불연속적으로 삽입하는 시도 같은 거요. 장편데뷔작을 찍으며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고, 일종의 시도이기도 했고요. 디지털 매체라는 게 필름보다는 자유롭잖아요. 촬영을 카메라 두 대로 오픈 되게 좀 즉흥적으로 찍고 편집할 때 붙여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보자. 그래서 편집할 때 좀 고생을 했죠. 많이 찍어놓은 영상들을 편집하면서 처음에 의도치 않았던 그런 이미지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게 다 들어가다 보니까 의욕이 앞서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백: 여자 영주의 대사 중에서 “상처 받아 독을 품게 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독을 내 뱉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하필 왜 독인가요? 왜 그렇게 센 대사를 쓰게 되었는지.

조: 글쎄요. 사랑은 동전의 양면처럼... 사랑에 빠지면...아시잖아요.(웃음) 굉장히 부드러운데 한번 돌아서면 증오의 힘이 강하잖아요. 애증. 극단적인 상처. 거부당한 경험. 그런 증오가 독이 될 수 있겠구나. 저는 증오의 다른 말이 독인 거 같아요. 증오 = 독 =상처 이렇게 할 수도 있고요. 내가 누구한테 상처를 받으면 꼭 나중에 의도치 않더라도 나중에 나도 모르게 주고 쏘고 발사하는, 그런 악순환이 되는 거 같아요, 경험을 해보고 주위를 보니까요.(웃음) 가령 영화 속 여자 영주의 경우도, 그런 것에 시니컬한 상태다 보니 “세상에는 독을 먹는 사람과 주는 사람 둘이 있는 거 같아요.” 라고 말하잖아요.


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독을 마시고 나면, 해독작용이란 걸 필요로 하고, 상처받을 것을 감수하고 다시 사랑을 하게 되잖아요. 처음에는 영화를 보면서는 감독이 사랑에 대해 굉장히 안 좋은 기억이 있나보다. 그러다가 몇 번 더 보니 사랑예찬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생뚱맞은 얘기인데,,,영화를 세 번 보다보니까 극중 소품인 베개가 짝이 안 맞아요. (일동 웃음) 현이 방의 베개도 그렇고, 여자 영주 방의 베개도 무늬와 색이 서로 달라요.


조: 설마 제가 의도했다고요? (크게 웃음)


백: 그래서 만나보면 묻고 싶었어요. 관계가 어긋날 것임을 암시한 것인지...자꾸 강박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제가 홍보용 DVD를 다시 보게 된 이유는 순전히 베개 때문이었을지도 몰라요.

조: 일단 미술감독님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네요. (웃음)


백: 남자 영주와 현, 여자영주와 바의 남자 시퀀스는 시점 쇼트가 분명한 반면, 여자 영주와 진, 남자 영주와 진, 여자영주와 남자 영주 시퀀스는 3자 시점 숏이 많은데, 어떤 의미죠?

조: 제 영화에 클로즈업이 많고. 인물 하나하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많이 보이셨을 거예요. 근데 영화가 좀 시끄러워요. 음악도 많고 지하철도 나오고. 그런데, 몇 군데는 좀 빠져서 조용하게 보여주고 싶은 포인트가 있었어요. 그 부분 때문에 지적해주신 거 같은데요. 일단은 처음에 진하고 남자 영주가 커피숍 가서 대화하는 장면을 (클로즈업 하지 않고) 쭉 가고. 술 취해서 진을 업고 갔다가 성적요구를 거부당한 다음에 담배피면서 원하는 거 줄 거 없다 하면서 “영주, 영주, 영주” 할 때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 없겠다고 생각해서. 별 변화 없이 소리 없이 던져주었던 부분 같아요.


백: 말씀 들으면서 의문이 풀리는데 영화를 보면서 제가 제일 좋았던 장면이, 남자영주와 여자 영주 그리고 바텐더까지 데킬라를 부딪치는 장면이 좋았어요. 음악도 청명한 테크노 음악이 삽입되었고요.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고나 할까요.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지만 영주가 칼로 남자를 찌르는 것, 유치하다고 하긴 그렇고...

조: 좀 생뚱맞죠?


백: 예, 약간 그랬는데...이 시퀀스는 어떤 의미로 넣은 건지.

조: 쇼-케이스 때도 이 질문을 받았는데, 왜 생뚱맞게 칼로 난자하는 장면이 있느냐. 하시더라고요. 영화상에서 사실 다른 캐릭터들은 심리상태가 어떻고, 원하는 게 어떤지 분명한 편이에요. 남자영주, 진, 현 모두 그렇게 설명이 가능한데요. 여자 영주는 시나리오 상이나, 영화를 볼 때나 별 설명이 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우울해보이고 기운이 없고 룸메이트가 있는데 받아주지 못하고. 환상, 판타지로 보실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찌르기 직전에 환상으로 넘어갈 때 카페에서 여자영주가 헤어스타일도 다르고, 여자영주라는 애는 과거에 저런 일이 있었고, 그런 증오심이 있는 애구나. 완전히 그 순간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거죠. 여자영주라는 애의 머릿속에. 사전 설명 없이 넣었다 빼서 당황하는 분들이 꽤 되셨는데 여자 영주라는 애가 어떻구나. 심리가 어떤 상태다. 그런 걸 설명하려는 장면이랄까요. 그런 걸 함축한 거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백: 배우들 입장에서 내면의 아픔을 연기해야 하는데.. 어떤 감독들은 배우에게 연기하지 말라고 주문하기도 한다고 얘기를 해요.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주문하는 그런 게 있나요?

조: 리허설 때. 본 촬영 들어가기 전에... 집에서 며칠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개인의 과거. 상처받은 경험. 연애경험. 그런 것들을 얘기했어요. 어떤 장면의 연기연습 보다 자기가 생각하는 캐릭터 구축하기. 실제 경험. 놀란 게 여자 영주 역의 양은용씨 같은 경우는 유사한 아픔이 있는 얘기도 나눴고. 그런 것들이 나중에 캐릭터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었죠. 막상 현장에 가서는 다 아는 상태로 오니까 제가 집중한거는...디테일한거죠. 손은 어떻게 놀리고 표정은 어떻게 하고. 그런 것들. 특히 현이 마지막에 남자친구한테 차일 때, 긴 롱테이크. 거기서 배우가 힘들어했어요. 거기서는 구체적으로 주문했어요. “만약 당신이 남자친구가 이런 상황에서 헤어지자고 했다면, 나 같으면 과거에 싫고 좋았고 이 무수한 기억들이 플래시백같이 막 스쳐지나갈 것 같다.” 그걸 한번 생각해봐라. 그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져 줬어요.


백: 현이 남자영주에게 절교를 통보받는 장면...이 딱 3분짜리 클로즈업 롱 테이크 더라고요.

조: 재보셨어요?(웃음)


백: 네. 그랬는데...전반적으로 지상에서 조금 떠 있는, 환상성으로 가득 찬 영화가 이 시퀀스에서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느낌을 받았어요. 남자영주가 그 동안에 저 얘기가하고 싶었을 텐데 진짜로 남자 영주가 그리워하고 있던 대상은 진이었는데, 다른 세계에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죠. 그걸 3분 동안이나 그것도 데뷔작에서! 찍을 수 있었다는 게 놀라웠죠. 이 영화를 누구에게 추천을 한다고 했을 때, 단 하나의 장면을 꼽는다면 이 장면이거든요. 그것이 촬영기법이나 고생 뭐 그런 게 아니라. 그 환상에서 현실로 넘어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좋았어요.

남자영주, 여자영주가 모두 폐쇄된 공간에 있잖아요. 한 사람은 기관사고, 한 사람은 클럽 디제이고요. 그리고 둘 다 그 공간에서 나오면 현실적인 압박에 시달리는 거 같아요. 남자는 현의 애정공세 육체공세에...


조: 육체공세? (큰 웃음) 잘 보신 거 같아요. 듣고 보니 그런 거 같아요.


백: 여자영주 같은 경우는 진의 애정공세가 두드러지고요. 처음 잠자리를 요구하기 전에도 집착하는 장면들이 보이잖아요. 이 사람들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잖아요. 두 영주 모두 대답은 똑같거든요. 남자 영주는 현에게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얘기했고요. 여자 영주도 진에게 "넌 소중한 친구야." 라고 관계를 분명하게 하거든요. 그게 따지고 보면 과거에 상처받은 사람들이어서, 그런 강박적인 얘기가 나온 거 아닌가. 그래서 감독님이 지독한 상처를 받았나 보다..이렇게까지 뱅글뱅글 돌아서 끌어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구나.

조: 정신분석. 심리상담 받는다는 느낌이 갑자기드네요 (웃음)


백: 한편으로는 희망을 찾아 가려는 욕구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조: 저도 막 정리가 되는 거 같아요. 편집장님 말씀 들으면서, 간단히 말하면 이 영화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딱 두 장면에 담겨있어요. 그것도 사실이죠. 헤어날 수 없는 사랑의 지긋지긋함. 아까 언급하신 현의 그 3분간의 롱테이크와 새가 부활하는 장면. 두 장면이요. 이렇게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어떻게든 그렇게 살아가요. 살아가지만 현의 표정을 오래 보여주는 이유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하잖아요. 내가 현일 수도 있었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영주의 뒷모습인 순간일수도 있고. 현의 저 애처로운 표정을 보면서 관객들이 느끼기를. 그건 단순하게 하나에요. 우리가 꼭 상처를 줘야 하나. 나를 사랑한 사람에게. 그런 게 영화를 구성하는 커다란 주제였던 거 같아요. 현의 모습. 그 모습이 과거의 여자 영주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관객들이 보면서 맞아 여자 영주도 앞에서 그렇지. 여자영주 모습이 현의 모습과 겹치는구나. 새의 부활은 그런 많은 아픔들... 새가 가지고 있는 단순한 상징들. 모든 아픔,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상처, 집착들이 담겨 있어요. 사실 이 영화는 굉장히 희망적인 영화에요(웃음) 사람들이 답답하고 비관적으로 보시지만. 그 두 장면에 다 들어있는 거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요. 사랑, 상처, 희망. 얘기들인 거죠.


백: 독립장편디지털 지원 작품인데, 총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죠?

조: 5천만 원에서 6천만 원 정도 들었던 거 같아요.


백: 예산 때문에 안타까웠던 게 있다면요?

조: 이거 공개하면 기분 나빠할 스탭들도 있을 텐데(민망 웃음)..근데 사실 감독의 잘못이라 말해도 돼요.(웃음) 그때 굉장히 스케줄에 쫓겼어요. 미술, 의상 그 부분을 제대로 제가 컨트롤하지 못했어요. 사실 제가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안 쫓겼을 텐데. 무조건 1월에 찍어야 한다. 저는 이걸 갖고 학교에 갔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강박이 있었죠. 무조건 거기에 맞춘다. 하고 들어갔는데. 사실 디테일 측면에서 미술, 의상 부분도 디테일한 부분이잖아요. 디제이고 레즈비언 기타리스트다보니 스탭들이 의욕을 많이 부렸죠. 화려하고 개성 넘치고 알록달록하고 그런 쪽으로 컨셉을 잡아가는데, 사실은 실제 여자 디제이들이 화려하고 연예인 같고 그러지 않거든요. 힙합바지입고 되게 수수하고. 근데 그런 부분에서 선입관이나 의욕이 넘쳤는데, 제가 조율을 하지 못했어요. 프리작업의 타이트한 스케줄 때문에, 체크 시간이 부족했고요. 미술 같은 것도 이를테면 집 내부 벽지며 바닥이며 식탁...사실 이런 게 리얼리티나 디테일 부분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미술감독에게 맡겼죠. 현장에 가서 침대 시트 색깔도 알고. 암튼 스케줄이 빡빡해서 좀 버거웠죠. 나중에 붙여놓고 보니까 튀는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배경이 클럽이고 집도 클럽 같고, 의상도 굉장히 화려하고. 그런 부분들이 좀 아쉽죠. 나쁘진 않지만...리얼리즘이 강한 영화도 아니고, 그걸 중요하게 본다면 중요한 부분인데 좀 아쉬워요.


백: 지하철 찍을 때 ...협조가 잘 됐어요?

조: 협조가 순조로웠어요. 제가 대학원생 신분이기도 하고,,,프로듀서가 영상원 학생이기도 하고...무조건 학생영화라고 해서 무료로 장소협조 받고 무난히 촬영했죠. (웃음)


백: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학생은...

조: 왕입니다.(웃음)





백: 200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얘기하신 내용 중에 “영화는 회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면서 “ 프랑스, 폴란드 등 답답하지만 아름다운 유럽영화들처럼 시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부분이 있는데요. 회화적이라는 게 어떤 건지, 예를 들어 [내부순환선]에서는 어떻게 표현됐는지 궁금해요.

조: 영화의 기본적인 순수한 요소들 있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