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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8 극장들, 이렇게 친절해도 되는 걸까? (27)
백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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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그러니까 1980년대 초반, 신한은행이 반포에 첫 영업점을 개설했을 때의 일인데, 이 지점 은행원들이 어찌나 친절했던지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세상일이 다 그렇듯 과유불급이라, 이 친절함이 문제에 봉착했다는 얘기다. 국내 유수의 여성단체 회장이 이 지점에 처음 방문해서 본 광경, 즉 손님이 들어올 때 마다 전 행원이 일어나 머리를 90도로 조아리면서 “어서 오세요”를 외치는 모습은 낯설음을 넘어 거부감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소위 유명인사라는 나 같은 사람도 과도한 친절에 적은 돈은 감히 예금할 엄두가 나질 않는데, 서민들이야 오죽하겠느냐”고 적당한 친절을 은행장에게 주문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뜬금없이 은행이야기를 꺼낸 것은 서비스업의 과잉친절이 때론 부담스럽다 못해 짜증까지 유발할 경우가 많음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극장에 관한 이야기다.

얼마 전 꼭 봐야 할 영화가 있어 멀티플렉스를 찾았던 적이 있다. 길이 막혀 상영시간에 임박해서 허겁지겁 도착하고 말았는데, 문제는 매표창구에서 벌어졌다. 다름 아닌 매표직원이 표를 쥐고는 갖은 설명을 해대는 바람에 하마터면 영화의 시작을 놓칠 뻔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찌감치 도착하지 못한 나의 책임도 크지만) 촉박한 시간을 감안해 조금 빨리 처리했더라면 상영관까지 달리기를 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멀티플렉스가 이 땅에 들어 온지 10여 년이 되었다. 강남의 대기업 극장체인을 중심으로 시작된 것이 이제는 유서 깊은 강북의 극장들까지 옷을 갈아입는 지경에 이르렀다. 멀티플렉스가 보여준 이전 시대 극장들과의 확연한 차이점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서비스의 질적 향상에 있다. 단관 개봉시절, 매표소 직원을 비롯한 극장 종사자들은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 멀티플렉스 직원들은 조직적으로 훈련된 서비스정신을 바탕으로 웃음을 얼굴에서 지우지 않는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가장 큰 덕목은 친절일 테니까 말이다. 비단 서비스업 뿐 아니라 모든 상행위 종사자가 친절해야 함은 당연한 일일 터. 다만 도가 지나쳐서 서비스 받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안겨줄 정도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옥외 매표소가 있는 강북의 몇 군데 극장을 제외하고 멀티플렉스 매표직원의 친절함은 도가 지나칠 정도이니 인터넷으로 예매하여 자동발매기를 이용하지 않는 바에는 누구라도 다음과 같은 상황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이다.

관람할 영화와 시간을 선택한 후 매표소 앞에 서는 순간, 당신은 꼼짝없는 매표소 직원의 서비스 대상으로 포획 된다. 이제 그녀는 당신에게 원하는 좌석위치를 물어보고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확인 한 후 발매할 것이다.

“OO카드나 OO포인트 카드, OO멤버십 카드, 저희 극장회원카드 갖고 계신 거 있으신가요?” (꼭 대답해야 다음 이야기가 이어진다.) “<비스티 보이즈> 오늘 1회 11시 30분 영화 맞으신가요?” (대답하자. 바로!) “보시는 화면에서 황색 표시된 곳이 가능한 좌석인데, 이쪽 어떠십니까?” (난 맨 뒤에서 보고 싶다. 무례한 녀석들의 발길질로부터 안전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 소리와 잡담에서도 비교적 평온한 자리, 맨 뒷자리를 달라)

이제 영화표가 발매기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표는 아직 그녀의 손에 있질 않은가. 그러므로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

“구매하신 좌석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4관 1회 11시 30분 영화 <비스티 보이즈>구요. 좌석은 R열의 왼쪽에서 세 번째 줄입니다. 또 다른 궁금한 점 있으십니까? 즐거운 영화관람 되십시오.” (네! 라고 반드시 대답하자)

그렇다고 이것으로 끝인가? 아직 더 남아 있다. 극장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팔락팔락 손가락을 흔든 후 색연필로 입장권에 하트 무늬를 그리는 퍼포먼스가 끝나야 비로소 자유로운 몸이 된다. 그제야 상영관으로 향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서비스를 끝내면 아쉬울 터. 상영관 입구에서 다시 한 번 유사한 절차를 거치고서야 나의 좌석을 찾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물론 고마운 일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이토록 친절하다니, 아무리 서비스업이라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서비스에 익숙지 못한 탓인지 몰라도 억지스러운 미소와 몸놀림으로 과잉친절을 베푸는 매표소 직원이 부담스럽다고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장광설을 견뎌야 하는 시간은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는지. 게다가 상영 5분전이나 상영시간 임박해 겨우 도착해서 숨 가쁘게 표를 끊는 경우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앞서 내가 경험한 사례도 이와 비슷하다. 던져도 좋고 날려도 좋으니 표를 빨리 건네줬으면 좋으련만, 세상에! 저 긴 멘트를 다 듣고서야 겨우 표를 받을 수 있다니. 융통성이란 이럴 때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단어일 것이다. 친절도 원칙도 복무규정도 결국은 관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간절하게 바라는 나의 주문, 조금 덜 친절해도 좋으니 입장만이라도 빨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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