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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가능성 많이 있습니다만 하루 빨리 이 영화가 개봉되길 바라며 졸고를 올립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누구나 끼니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는 것, 하루에 몇 번씩은 화장실을 꼭 가야 하는 것 등 귀천이 없는 당연한 것들이 우리 주위에 참 많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누구나 가위를 든 미용사 앞에서는 꼼짝없이 얌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인물들의 관계와 위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는 점묘화 같은 면이 있다. 굵직한 선 사이로 촘촘히 들어선 점들이 모여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영화가 감독이 애초에 전달하려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복잡한 물건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그만의 마력이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두 남자와 한 여자를 둘러싼 우발적 살인과 그에 따른 세 사람의 관계변화를 다루고 있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내러티브가 풍성한 상징성을 갖는 것은 굵은 내러티브 사이로 촘촘히 박힌 또 다른 무엇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는 예준과 그의 친구인 재문, 그리고 그의 아내인 지숙, 이렇게 세 인물이 등장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이 영화의 화자는 예준이다. 그러나 영화는 균등하게 세 사람의 심리와 관계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 영화를 보던 간에 감상의 폭은 전혀 줄지 않는다. 특히 지숙의 위치와 그녀의 일련의 행동들은 가장 크게 관객의 심리를 파고든다. (필자는 감히 지숙이 근래 한국영화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라고 평가한다.) 그 중 필자가 주목하는 곳은 예준의 눈높이이다.



그가 그들에게 준 것


영화는 꽤 고급스러운 거실에 앉아 예준과 전화 통화를 하는 재문과 지숙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통화내용에 따르면 아마도 분에 넘치게 고급스러운 숙박을 제공한 것은 예준인 듯하다. 그렇게 재문과 지숙의 결혼식 비디오가 나오는 프롤로그를 지나면 재문과 지숙은 나란히 예준의 앞에 앉아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예준의 눈높이는 그들보다 위에 있다. 영화 속에서 예준은 그들에게 지식과 돈을 제공한다. 재문의 대사에 따르면 예준은 군대에서 재문에게 “평등”을 깨우쳐주었고, ‘철학에세이’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재문과 지숙의 아이 이름으로 ‘민중혁명’의 줄임말 ‘민혁’과 칼 맑스 아내의 이름인 ‘예니’를 주었다.



그들에게 그가 받은 것


지숙과 하룻밤을 지내고 난 다음날 아침 지숙이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예준은 밥숟가락을 내던지며 소리친다. “이것들이 누구 덕에 살고 있는데!” 예준이 그들을 먹여 살리는 꼴이 되는 동안 그가 그들에게 받은 것은 무엇일까. 외환딜러로 승승장구 하는 예준은 직장 동료들에게 비난 받고 재문에게 찾아와 위로를 받는다. 예준에게 재문은 과거에 자신이 가졌던 신념의 잔재이고 어떤 부탁이라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막말로 하자면 막 대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예준은 재문과 지숙의 아들을 죽인다. 물론 사고였지만 재문은 예준의 죄를 스스로 지고 감옥에 간다. 예준은 살인죄를 피했고 친구의 아내를 차지한다.



GIVE & TAKE


미용박람회를 위해 파리에 간 지숙은 유람선 위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미국과 프랑스가 그것을 주고 받은 사연을 말한다. 세상은 그렇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영화는 곳곳에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뿌려두고 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숙이 켜 놓은 TV에서는 한미FTA에 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재문과 지숙 사이에서 정신 나간 예준이 있던 회의실에서 예준의 동료들은 한미FTA가 가져올 GIVE&TAKE에 대해 말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 혹은 말로 주고 되로 받는 것. 이런 정치적 암시가 자연스럽게 예준과 재문, 지숙의 관계에 오버랩 된다.

지숙과 처음으로 오붓한 대화를 나누던 저녁, 예준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건 내 자리와 이름을 걸고 추진한 겁니다. 절대 번복할 수 없습니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예준에게 지숙은 말한다. “예준씨는 힘이 있어요.” 영화는 어느 순간, 힘이 있는 자들의 공평하지 않는 주고 받음에 대한 비꼼을 드러낸다. 지숙이 낯선 사내와 하룻밤을 지내고 난 후 남자가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자 지숙이 말한다. “얼마면 되나요?” 남자는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다가 지숙이 내민 돈다발을 슬그머니 받아 들고 나간다. 돈 있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게 되는 유쾌한 풍자다.



눈높이의 변화


영화 초반, 재문과 지숙은 미국 이민을 위해 영어를 배우고 돈을 모으고 있다. 재문이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는 씬이 두 번 나오는데 비해 지숙의 눈높이는 변함이 없다. 아이가 죽고 정작 신분 상승을 하게 되는 것은 지숙이다. 일층의 작은 미용실을 하던 지숙은 미국에 다녀오고 난 후 비싼 동네에 넓은 통 유리로 된 헤어숍을 개업한다. 그 때부터 지숙은 2층 유리 안에서 밖을 내려다본다.


미국에서 돌아온, 몰라보게 달라진 아름다운 지숙이 예준에게 전화를 걸어 개업식에 와달라고 말한다. 지숙의 전화를 받고 나서 예준은 운동기계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그의 눈높이가 추락할 차례이다. 예준은 그 때부터 지숙의 가게 앞에서 지숙을 올려다본다. 재문이 출소하고 같이 떠난 바닷가에서 재문과 예준은 나란히 서있지만 재문은 바위 위에서 예준을 내려다본다. 지숙이 두 남자를 가게로 불러내 결단을 내리던 마지막 밤, 예준은 간이 침대에 누워 묶인다. 두 사람을 올려다보는 예준. 완벽한 눈높이의 변화다.



천장 모서리의 대구법


영화 후반에 천장 모서리가 세 번 나온다. 지숙이 재문을 만나러 치킨가게에 갔을 때 바퀴벌레가 통풍구를 타고 나가는 모습이 보이고, 지숙이 낯선 사내와 하룻밤을 지내고 난 후 고급스런 모텔의 천정 모서리가 나온다. 그리고 불이 나던 미용실 천장의 모서리가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이 나온다. 세 번의 천정은 경제적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높아 봤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에 휩싸이는 사각형의 모서리는 지숙과 재문의 아이 민혁이를 화장할 때와 겹쳐진다. 세 선이 만나는 모서리는 지숙과 재문, 그리고 예준의 종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같다. 지숙은 그 곳에서 세 사람이 모두 죽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여자, 그리고 어머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필자는 이 영화가 두 남자의 잘못된 우정 때문에 피해를 본 여성의 복수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아이보다 자신이 중요해서 프랑스로 날아갔던 지숙도 무고할 수 없었고 모든 비극을 끝내기 위해 그녀가 내린 선택이 다시 그들을 살게 했다고 보여진다. 에필로그에서 다시 임신을 한 지숙은 손님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가위질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편지가 도착하고 아무 말 없이 편지를 건네고 받아 드는 재문과 지숙의 행동 위로 묵묵히 가위질 소리만 들린다. 모든 인간이 미용사 앞에서 얌전한 아이가 되는 것은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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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가능성 많이 있습니다만 하루 빨리 이 영화가 개봉되길 바라며 졸고를 올립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누구나 끼니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는 것, 하루에 몇 번씩은 화장실을 꼭 가야 하는 것 등 귀천이 없는 당연한 것들이 우리 주위에 참 많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누구나 가위를 든 미용사 앞에서는 꼼짝없이 얌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인물들의 관계와 위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는 점묘화 같은 면이 있다. 굵직한 선 사이로 촘촘히 들어선 점들이 모여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영화가 감독이 애초에 전달하려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복잡한 물건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그만의 마력이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두 남자와 한 여자를 둘러싼 우발적 살인과 그에 따른 세 사람의 관계변화를 다루고 있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내러티브가 풍성한 상징성을 갖는 것은 굵은 내러티브 사이로 촘촘히 박힌 또 다른 무엇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는 예준과 그의 친구인 재문, 그리고 그의 아내인 지숙, 이렇게 세 인물이 등장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이 영화의 화자는 예준이다. 그러나 영화는 균등하게 세 사람의 심리와 관계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 영화를 보던 간에 감상의 폭은 전혀 줄지 않는다. 특히 지숙의 위치와 그녀의 일련의 행동들은 가장 크게 관객의 심리를 파고든다. (필자는 감히 지숙이 근래 한국영화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라고 평가한다.) 그 중 필자가 주목하는 곳은 예준의 눈높이이다.



그가 그들에게 준 것


영화는 꽤 고급스러운 거실에 앉아 예준과 전화 통화를 하는 재문과 지숙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통화내용에 따르면 아마도 분에 넘치게 고급스러운 숙박을 제공한 것은 예준인 듯하다. 그렇게 재문과 지숙의 결혼식 비디오가 나오는 프롤로그를 지나면 재문과 지숙은 나란히 예준의 앞에 앉아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예준의 눈높이는 그들보다 위에 있다. 영화 속에서 예준은 그들에게 지식과 돈을 제공한다. 재문의 대사에 따르면 예준은 군대에서 재문에게 “평등”을 깨우쳐주었고, ‘철학에세이’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재문과 지숙의 아이 이름으로 ‘민중혁명’의 줄임말 ‘민혁’과 칼 맑스 아내의 이름인 ‘예니’를 주었다.



그들에게 그가 받은 것


지숙과 하룻밤을 지내고 난 다음날 아침 지숙이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예준은 밥숟가락을 내던지며 소리친다. “이것들이 누구 덕에 살고 있는데!” 예준이 그들을 먹여 살리는 꼴이 되는 동안 그가 그들에게 받은 것은 무엇일까. 외환딜러로 승승장구 하는 예준은 직장 동료들에게 비난 받고 재문에게 찾아와 위로를 받는다. 예준에게 재문은 과거에 자신이 가졌던 신념의 잔재이고 어떤 부탁이라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막말로 하자면 막 대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예준은 재문과 지숙의 아들을 죽인다. 물론 사고였지만 재문은 예준의 죄를 스스로 지고 감옥에 간다. 예준은 살인죄를 피했고 친구의 아내를 차지한다.



GIVE & TAKE


미용박람회를 위해 파리에 간 지숙은 유람선 위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미국과 프랑스가 그것을 주고 받은 사연을 말한다. 세상은 그렇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영화는 곳곳에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뿌려두고 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숙이 켜 놓은 TV에서는 한미FTA에 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재문과 지숙 사이에서 정신 나간 예준이 있던 회의실에서 예준의 동료들은 한미FTA가 가져올 GIVE&TAKE에 대해 말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 혹은 말로 주고 되로 받는 것. 이런 정치적 암시가 자연스럽게 예준과 재문, 지숙의 관계에 오버랩 된다.

지숙과 처음으로 오붓한 대화를 나누던 저녁, 예준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건 내 자리와 이름을 걸고 추진한 겁니다. 절대 번복할 수 없습니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예준에게 지숙은 말한다. “예준씨는 힘이 있어요.” 영화는 어느 순간, 힘이 있는 자들의 공평하지 않는 주고 받음에 대한 비꼼을 드러낸다. 지숙이 낯선 사내와 하룻밤을 지내고 난 후 남자가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자 지숙이 말한다. “얼마면 되나요?” 남자는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다가 지숙이 내민 돈다발을 슬그머니 받아 들고 나간다. 돈 있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게 되는 유쾌한 풍자다.



눈높이의 변화


영화 초반, 재문과 지숙은 미국 이민을 위해 영어를 배우고 돈을 모으고 있다. 재문이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는 씬이 두 번 나오는데 비해 지숙의 눈높이는 변함이 없다. 아이가 죽고 정작 신분 상승을 하게 되는 것은 지숙이다. 일층의 작은 미용실을 하던 지숙은 미국에 다녀오고 난 후 비싼 동네에 넓은 통 유리로 된 헤어숍을 개업한다. 그 때부터 지숙은 2층 유리 안에서 밖을 내려다본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숙이 개업식에 예준을 초대하는 전화를 받고 나서 예준은 운동기계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그의 눈높이가 추락할 차례이다. 예준은 그 때부터 지숙의 가게 앞에서 지숙을 올려다본다. 재문이 출소하고 같이 떠난 바닷가에서 재문과 예준은 나란히 서있지만 재문은 바위 위에서 예준을 내려다본다. 지숙이 두 남자를 가게로 불러내 결단을 내리던 마지막 밤, 예준은 간이 침대에 누워 묶인다. 두 사람을 올려다보는 예준. 완벽한 눈높이의 변화다.



천장 모서리의 대구법


영화 후반에 천장 모서리가 세 번 나온다. 지숙이 재문을 만나러 치킨가게에 갔을 때 바퀴벌레가 통풍구를 타고 나가는 모습이 보이고, 지숙이 낯선 사내와 하룻밤을 지내고 난 후 고급스런 모텔의 천정 모서리가 나온다. 그리고 불이 나던 미용실 천장의 모서리가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이 나온다. 세 번의 천정은 경제적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높아 봤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에 휩싸이는 사각형의 모서리는 지숙과 재문의 아이 민혁이를 화장할 때와 겹쳐진다. 세 선이 만나는 모서리는 지숙과 재문, 그리고 예준의 종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같다. 지숙은 그 곳에서 세 사람이 모두 죽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여자, 그리고 어머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필자는 이 영화가 두 남자의 잘못된 우정 때문에 피해를 본 여성의 복수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아이보다 자신이 중요해서 프랑스로 날아갔던 지숙도 무고할 수 없었고 모든 비극을 끝내기 위해 그녀가 내린 선택이 다시 그들을 살게 했다고 보여진다. 에필로그에서 다시 임신을 한 지숙은 손님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가위질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편지가 도착하고 아무 말 없이 편지를 건네고 받아 드는 재문과 지숙의 행동 위로 묵묵히 가위질 소리만 들린다. 모든 인간이 미용사 앞에서 얌전한 아이가 되는 것은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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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고백하건대 이 글은 작심하고 어느 영화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쓰여 졌다.)

전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나는 시나리오 한 편을 꺼내들었다. 작년에 일찌감치 초고가 완성된 바 있는 신동일 감독의 신작 시나리오다. 몇 차례 고쳐 쓰기를 거듭한 끝에 완성된 최종본이다.

서울을 출발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내 눈은 엔딩 크레딧 지점에 머물고 있었다. 부족한 잠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를 걱정했던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예상대로 이전보다 밀도감이 더해졌고 무엇보다 극적 재미가 배가되었다. 여전히 무거운 소재를 바탕으로 동시대를 겨냥하는 이야기지만 파고 들어갈수록 사람 냄새 또한 그득했다. 휴게소를 거치면서 한 번을 더 읽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저녁에, 신동일 감독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어떻게 느낌을 전달할 지를 걱정한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는 더 없이 좋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투자를 받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것이며, 이 영화가 완성되었을 때 얼마나 멋질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힘이 될 만한 이야기를 준비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신동일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 단편 [신성가족]으로 2001년 칸 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초청받았고 2006년에 장편 데뷔작 [방문자]로 시애틀 국제영화제 뉴-디렉터스 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을 만큼 외국영화계가 먼저 인정해준 감독이다. 두 번째 장편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을 보인 후 유수의 해외영화제에서 호평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식개봉을 하지 못한 상황이다. 대기업과의 합병이후 완성된 이 작품은 원래의 제작자가 여러 사정으로 회사를 떠난 후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아 아직 정식개봉을 하지 못한 상황이다.

솔직히 말해서 (신동일 자신도 잘 알고 있듯이) 신동일의 영화는 일반관객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화려한 비주얼과 말랑말랑한 로맨스와 거리를 두고 있어서가 아니다. 사회적 문제를 들고 나와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는 점에서, 계급과 자본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때론 감상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또 때론 상처를 후벼 파는 아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영화로 이야기하는 것들은 분명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한 번쯤 겪을 만한 일들이고 한없이 가벼워져만 가는 시대에 던져진 가족과 인간 본성에의 탐색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신동일의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닐까 싶다. 때문인지 외국에서의 평가와는 달리 국내에서 홀대받는 감독들 중 하나로 신동일을 꼽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다. (물론 이 부류의 대표주자는 단연 김기덕 감독이다.)
 
2008년에 들어서 그의 발걸음은 분주해졌다. 두 번째 장편을 기필코 개봉시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마음으로 응원하고 글로 힘을 보태준 덕인지 몰라도 지난 2월말 서울의 모 극장에서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개봉을 위한 ‘모니터 시사회’가 열리기도 했다. 호응도 높은 설문결과에 고무돼 신동일은 개봉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 듯 보였고 마침내 책임자로부터 9월 개봉 약속을 받아냈다. 실로 완성된 지 2년 만에 개봉하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약속이 뒤집히는 사태가 또 다시 발생하였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무기한 개봉연기라는 일방적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적인 호소와 설득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자괴감에 신동일은 빠지게 되었다.

정말로 운 나쁘게도 그의 영화는 영화상업주의의 첨병 노릇을 하는 제작자가 둥지를 튼 투자사에서 판권을 소유하고 있다. 영화를 오로지 흥행만을 목적으로 제작, 투자하는 이들의 계속된 잘못이 애꿎은 작품하나를 자칫 매장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단골처럼 호명되는 ‘미 개봉 영화들’ 중에서 신동일의 영화가 가장 늦게 개봉한다고 해도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그의 영화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4월말 인사동에서 다시 만난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연내 개봉을 위해 분투하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판권을 가져갈 뜻있는 투자자를 구할 생각까지 밝혔다. 미 개봉 영화도 개봉해야 하고 신작도 찍어야 하니 맘 쓸 일이 이만저만 아닐 그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 가득하나, 따지고 보면 이 땅에서 영화를 찍는 감독치고 돈 걱정, 개봉걱정 없이 작품에만 집중하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지금의 고난을 어쩌면 진정한 작가의 반열에 올라 천박한 제작자들 수하에 휘둘리지 않는 그 날을 위한 자양분으로 여기자고 다독였다.
 
이런 와중에 다행스러운 것은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가 다시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서울아트시네마의 5월 작가를 만나다(5월 17일, 토) 편에 초대 상영되고 열성 팬들 성원에 힘입어 DVD도 곧 출시된다는 것이다. 또 문제의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인디포럼에 초청되어 이달 31일에 관객과 한시적이나마 만나게 되었으니 아쉬운 가운데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영화와 영화감독에 관한 글을 써오면서, 영화감독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의 애환을 들으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너무도 많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고백하건대 자신의 영화가 개봉되지 못하는 것이 감독에게 얼마나 고통스런 일인지를 이토록 절실하게 지근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신동일 감독의 덕분이리라.
 
전주에 도착한 날 저녁, 예정대로 고사동의 어느 극장 앞에서 신동일 감독을 만났다. 잔뜩 굳은 얼굴로 다가온 그에게 나는 다짜고짜 “이거 너무 좋아!” “그런데 딱 한 가지, 엔딩 크레딧에 소리를 넣으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말로 그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렸다. 그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안도하는 것 같았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그리고 또 다른 자리에서도 나는 신동일과 그의 영화이야기를 해댔다. 그는 나의 후배이고 영화적 동지이며 무엇보다 좋은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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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폐인들이 인공호흡한 <방문자>, DVD 출시로 살아날까?


부산에 사는 대학생 김혜정씨(22세)는 소위 드라마 폐인이다. 지난 8월 종영한 KBS 2TV <경성 스캔들>의 매력덩어리 ‘선우완’에 푹 빠졌고, 이를 연기한 강지환이란 배우까지 사모하게 됐다. 그 이후 그의 출세작 <굳세어라 금순이>를 시작으로 그의 출연작을 하나 둘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해결할 수 없는 궁금증이 생겼다. 포털이 알려준 그의 영화 데뷔작 <방문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온갖 고전들이 컬렉션 되어 있다는 IT 강국 대한민국의 ‘어둠의 경로’에도 지환 오빠의 <방문자>는 알현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는 거야? 아니 2006년 가을에 버젓이 극장 개봉도 했고, 인터뷰 기사도 한 두 개가 아니고, 무슨무슨 국제영화제 수상작이라는데. 도대체 왜, 왜, 왜 볼 수가 없는 거야!


지환 오빠의 데뷔작을 보여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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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주부 ‘thebest’님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동방신기’, ‘슈퍼주니어’에 열광하는 10대들에 비하면 한참 늦었지만 그래도 늦게 시작한 ‘팬질’이 무서운 법. 혜정씨의 경로와 비슷하게 공식 팬클럽도 가입하고, 드라마 페인들이 모인다는 DC 인사이드 강지환 갤러리 ‘키쑤갤’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한 가지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어엿하게 주연으로 성장한 강지환의 데뷔작이 DVD로 출시되지 않았다는 미스터리 말이다. 순수하게 영화를 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의문으로 발전했고, 순수한 욕구가 결국 실천을 불러왔다. 지금껏 볼 수 없었다면 우리가 직접 행동에 나서면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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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 ‘thebest’님은 갤러리에 <방문자>를 보고 싶다는 게시 글을 올렸다. 반응은 나름 폭발적이었다. 공감을 표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고, 함께 해보자는 응원군도 생겼다. 그래서 모인 것이 혜정씨와 닉네임 ‘thebest’와 ‘모던땐수’ 3인방.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을까, 보고 싶다에 그쳤었는데 이러다가 평생 못 볼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고 학생의 본분(?)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시간을 활용했죠.”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수준이던 막내 혜정씨가 이 사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 이유다.


세 사람은 강지환의 소속사에 전화도 걸어보고, 영화진흥위원회 DVD 제작지원프로그램도 알아보고, DVD 판권을 가지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에도 문의를 했다. 오로지 오빠의 데뷔작을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단, 지환 오빠에게는 비밀로 하고 싶었다. 일이 성사된다면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선물’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처음엔 희망도 안 보이고 막막했어요. 고민 끝에 CJ 측에 이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했는데 ‘준비 중이다. 하지만 아직은 출시할 생각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더라고요.” 혜정씨를 비롯한 3인방은 좌절하지 않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이라 공식팬클럽의 힘을 빌리기도 쉽지 않았다. 제작진에게 수소문도 해 보고 계속해서 CJ 구매판권 담당자를 귀찮게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생각 없다’던 CJ측이 ‘팬들을 위해 500매 정도는 선구매를 단서로 제작할 용의가 있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마니아 드라마였던 <경성스캔들>도 팬들의 성화에 KBS측이 1,000장 DVD를 발매한 전력도 있었다. 희망이 보였다. 그러는 사이 ‘방문자DVD 카페(http://cafe.daum.net/hostnguest)도 새로 열었다. 고맙게도 강지환의 일본, 중국 팬들도 문의를 해오기 시작했다. ‘서플먼트에 지환 오빠 코멘터리는 꼭 들어가야 되는데’ 하는 욕심 아닌 욕심도 생겼다. 근데 다른 독립 영화 DVD도 이렇게 어렵게 출시되는 거야?


왜 <방문자>는 ‘방문자’ 취급도 못 받았나


2006년 11월 15일 개봉한 <방문자>는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5주간 상영, 단관 개봉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관
객 점유율과 입소문을 타고 2번에 걸쳐 연장 상영되는 기염을 토했던 작품.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미 호평을 받은 뒤, 베를린 국제영화제를 필두로 시드니, 홍콩 등 20개 가까운 국, 내외 영화제에서 소개됐고 특히 시애틀영화제에서는 뉴디렉터스 경쟁 부문 최고 신인감독-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방문자>는 시니컬한 ‘386’ 영화과 시간강사 호준(김재록)이 반듯한 외모에 모범생인 열혈 ‘신앙 청년’ 계상(강지환)을 만나 변모해 가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 베를린에서 신동일 감독을 일컬어 ‘한국의 우디 알렌’이라 칭할 정도로 독창적인 유머감각을 인정받으며 해외영화제의 잇따른 러브콜을 받았다. 당시 정치적인 감각과 깊이 있는 캐릭터탐구, 상업영화를 뛰어넘는 전개방식으로 언론의 조명과 함께 독립 영화의 수작이란 평가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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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제외한 전세계 모든 대륙에서 소개된 작품을 우리는 왜 지금 볼 수 없을까. 호준을 연기한 김재록 씨가 “사실 촬영 당시만 해도 이 작품이 극장에 개봉할 줄은 몰랐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방문자>는 독립영화 방식으로 촬영됐다.


이후 뒤늦게 작품의 가치를 인정한 당시 LJ필름은 후반 작업 중 제작사로, 그 이후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 배급사로 합류하게 됐다. 그러나 CJ와의 제휴관계가 끝난 LJ필름은 프라임엔터테인먼트로 합병됐고, 그 사이 <방문자>는 CJ엔터테인먼트의 관심밖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친부모를 떠난 아이가 여러 부모에게 입양되면서 서자취급을 받게 된 셈이다.


그 사이 2006년 이미 완성된 신동일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자 프라임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또한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되어 허문영 프로그래머로부터 ‘드물게 포스트 80년대를 사유하는 감독의 놀라운 영화이자 <방문자>를 뛰어넘는 성취’라는 취지의 평가를 얻어냈다.


아직 미개봉 상태인 이 작품은 2007년 한 해 홍콩, 시애틀, 멜버른, 카를로비 바리, 시카고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 소개되었다. 해외 관객들은 볼 수 있지만 정작 국내 관객들은 볼 수 없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방문자>는 프랑스 주트로페필름(Zootropefilm)에 수출되어 올 12월에 프랑스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극장에서 놓친 작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


그렇다면 강지환의 팬이 아닌 일반 관객들도 <방문자>의 DVD를 볼 수 있는 걸까. 실무를 맡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 측 한 관계자는 “꾸준히 준비를 해오고 있었으나 출시 여건이 안 되서 늦어진 것뿐이다. 검토를 해오던 차에 팬들이 먼저 요청을 해 왔고 원하는 분들이 많다고 해 출시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12월 초가 되면 (출시 여부가) 확정될 것 같다”라는 입장을 조심스레 밝혔다.


하지만 팬들의 말은 조금 다르다. “수소문 끝에 먼저 담당 이사님하고 통화를 했어요. 출시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며 확답을 해줬지만 출장 중이던 실무자가 돌아오니 차일피일 미루고 또 달라지더군요.” 그래서 혜정씨 3인방이 제안한 것이 바로 영화 DVD로는 이례가 없던 ‘500장 선구매’ 출시다.


뒤늦게 카페 개설과 DVD 출시 관련 소식을 접하게 된 신동일 감독은 “강지환 씨의 팬들이 이렇게 나서 준 것이 대해 고마울 따름이다. 사실 <방문자>가 외국에서 상영 될 때마다 관객들로부터 DVD로도 다시 보고 싶다는 바람을 많이 들었다. 다양성 영화들이 더 넓게 관객과 소통할 수 없는, 얼핏 화려한 규모지만 실상은 척박한 국내 영화 시장이 안타까울 따름이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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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불법 다운로드 때문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2차 부가판권 시장. 그 첫 번째 희생양도 물론 독립 영화, 작은 영화들이다. 단관 혹은 조촐한 규모로 짧게 극장 상영을 마쳤더라도 DVD 출시가 쉽지 않은 상태라 뒤늦게 개별 작품을 발견한 관객들이라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요원해 지고 있다. 


“10명의 관객이라도 작품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관계를 원한다”는 <괜찮아, 울지마>의 민병훈 감독이 지난 8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거대 배급사에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영화인들을 꼬집으며, “다양성이 인정되는 좋은 영화는 DVD 2만 장 정도를 보급”하고구민회관이나 공공, 학교도서관 같은 시설에 “판권을 해결해 무료로 틀 수 있게끔 하라”는 대안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DVD 숍은커녕 케이블 채널에서도 볼 수 없는 허망한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인 셈이다.  곧 개봉을 앞둔 독립 장편 <은하해방전선>의 윤성호 감독이 “극장 개봉도 중요하지만 1만 명 정도 동원을 해서 케이블이든 DVD든 인터넷이든 많이들 볼 수 있는 통로가 열렸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표현한 것도 작금과 같은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에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가 국가인권위와 함께 마련한 ‘영화로 인권 보기, 인권으로 영화보기’ 강좌가 열렸다. 수소문 끝에 <방문자>의 일부 장면을 확보, 수강생들과 함께 본 경북대 법학과 김두식 교수는 강의 중 “다양한 종교들 속에서 어떻게 상호 존중하며 기본권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설명하는데 <방문자>만큼 적합한 영화가 없었다. 국제 영화제 수상작을 이런 식으로 구해 봐야 하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천만 관객 시대, ‘빈익빈 부익부’로 치달아가는 영화판이지만 작은 영화, 다양한 영화에 대한 수요는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결국 ‘영화는 산업’이라는 미명하에 흥행성을 최우선 척도로 내세우며 점점 할리우드를 닮아가려고 하는 영화계 내부에 있다. 지환 오빠의 데뷔작을 보고 싶다는 순수한 이유로 시작한 ‘혜정씨 3인방’의 노력이 의미 있고 특별한 이유도 작금의 영화계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계를 자극할 수 있는 하는 가장 큰 동인은 바로 작고 다양한 영화를 성원해주는 관객들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독립 영화는 독립 영화고, 내용이 어려운 내용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관심도 없고 봐도 그만 좋은 거면 보는 거였죠. 하지만 이제는 작은 영화도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독립 영화의 조용한 방문자인 ‘혜정씨 3인방’의 활약이 더 이상 불필요할 때. 그때야 말로 우리 영화계의 건강성이 회복되고 작은 영화들이 존중받는 ‘그 날’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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