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무덤까지 가져갈 단 한 편의 영화

필진 칼럼 2008/07/14 14:47 Posted by 우디79
백건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2008 시네바캉스’의 백미는 단연 스파게티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 특별전’일 것이다. 돈만 있으면 우주여행도 가능해진 시대에 말 타고 총질이나 해대는 웬 구닥다리 영화냐고? 자고로 싸움의 백미는 총싸움인 법. 짤막한 권총에 유독 푸른 눈을 지녔던 프랑코 네로와 총구가 긴 권총을 소지했던 신경질적인 광대뼈의 리반 클립과 궐련을 질근질근 문 채 윈체스터를 폼 나게 돌려가며 쏘아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탄생시킨 것이, 세르지오 꼬르부치에서 시작되어 그의 후예 세르지오 레오네가 꽃을 피운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면 어떤가!

이렇듯 수정주의 서부극에 B급 감성을 버무려 독특한 영화세계를 일궈온 세르지오 레오네였지만, 그가 필생의 작업으로 여겼던 영화는 전혀 다른 형식의 것이었다. 입버릇처럼 말해왔듯이, 세르지오 레오네의 위대함은 단순히 그의 영화세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즉, B급 서부극이라 불린 레오네 영화에서나 주연일 수밖에 없었던 2류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오늘날 거장으로 군림하기까지 레오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레오네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레오네의 영화, 그 중에서도 그의 유작(遺作)을 필름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시네바캉스는 절반의 만족을 안겨준 셈이라 하겠다. 이제, 물어보자. 당신을 미치게 만드는 단 한 편의 영화가 있는가? 제목만 들어도 뛰는 가슴을 주체하기 힘든 그런 영화가 있는가. 아님 당신의 가슴을 데워줄 영화가 있기는 한 것인가.

좋은 영화란 셀 수 없이 많다. 이 무수한 영화를 전부 이야기하자면 평생 걸려도 못할 일이기에 단 한편의 영화를 고르라면 누구라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테지만 내겐 그리 고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최고의 영화 한 편만 꼽아보라고 할 때 주저하지 않고 꼽을 영화가 있다는 것. 정말로, 그런 영화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이 영화에 대해서 긴 얘기가 필요 있을까? 어떤 수식어로 이 영화에 대한 찬사를 다 할 수 있을까. 70 년대에 <대부>가 있었다면, 80년대는 바로 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있다. 물론 90년대에 이르면 <좋은 친구들>로 그 계보가 이어진다.

「뉴욕 빈민가의 어느 식당, 한 소년이 화장실로 들어가 벽돌 하나를 조심스레 빼낸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채 그 구멍을 통해 옆방을 들여 다 본다. 벽 너머의 공간에서는 소녀가 발레 연습을 하고 있다. 소녀는 소년이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치 뽐내듯 발레를 계속하고, 소년이 소녀를 좋아하듯 소녀도 소년을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소년이 나쁜 길로 빠지려 하고 있음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소녀의 걱정대로 소년은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가게 되었다. 옛날 옛적 미국에서...」

1920년대 경제 대공황과 금주법시대의 뉴욕 브룩클린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소년이 범죄자로 성장하는 과정과 이젠 도피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주인공 누들스의 과거회상을 통해 인생과 사랑, 범죄와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둘도 없는 친구였던 누들스와 맥스, 그리고 연인인 데보라를 통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신의 인생 이야기가 애절한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 팬플루티스트인 게오르그 장피르의 주옥같은 선율이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이 영화는 가히 영화도 영화음악도 모두 최고 걸작 반열에 오를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세르지오 레오네가 평생 간직해온 ‘드림 프로젝트’였다. 70년대 후반 연출보다는 제작에 더 힘을 쏟았던 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만들기 위해 <대부>의 연출제안을 거절했을 정도였다.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을 통해 상당히 기묘한 스타일을 지닌 감독쯤으로 인식됐던 레오네는 이 영화를 통해 거장다운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과거, 현재, 미래를 정교하게 오가면서 진행되는 사건은 미스터리하면서도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원작은 "HOODS"라는 소설로 당초 10시간짜리 러프 컷을 수정한 레오네의 1차 편집본은 6시간짜리이고 디렉터 컷(현존하는 완전한 감독 공인판)도 229분짜리 분량으로 만들어졌으나, 흥행을 고려한 제작사가 무려 89분을 잘라낸 2시간 19분짜리 필름으로 개봉시켰으니, 결과적으로 평론가들의 악평과 흥행 참패를 겪어야 했고, 10년이 지난 후에야 감독 판이 재개봉되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명보극장 개봉 당시인데, 132분이라는 (지금으로서는)어처구니없는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충격과 매혹은 여전히 기억을 지배할 뿐 아니라 광적 지지자로까지 바꿔놓을 정도였으니, 단언컨대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단 한 편의 영화가 있다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일 것이다.

영화에는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꽤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어린 창녀의 환심을 사기위해 슈크림을 사들고 찾아간 ‘짝눈’이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을 참지 못하고 야금야금 핥다가 기어이 다 먹어치우는 장면이라든지, 보석상을 턴 맥스 일당이 훗날 안주인과 재회하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그녀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장면 등은 가히 레오네 다운 발상으로 여겨진다. 사랑하는 여인보다 손 안의 슈크림이 더 간절한 소년의 심정은 얼마나 절절하던가! 또한 출옥한 누들스가 데보라와 만나 야연을 즐기던 시퀀스도 잊을 수 없으니, 이 장면에서의 대사는 이렇다. “미치지 않기 위해선 바깥세상은 다 잊어야 했어. 하지만 그래도 잊혀 지지 않는 건, 도미니크였어. 총 맞고서 ‘나 넘어졌어.’ 라고 말하던 아이 말이야. 그리고 데보라...너!”

숱한 밤, 나를 갈색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휘파람 불며 브룩클린 다리 밑을 걷던 다섯 명의 소년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제 필름으로, 그것도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판본으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어찌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 http://neoimages.tistory.com/trackback/317

  1.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Tracked from Pell's seer Blog  삭제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 Synopsis 맥스, 짝눈, 팻시 등 뒷골목 죽마고우들을 자신이 죽였다는 죄책감에 35년 동안이나 시달려 온 누들스는 ‘베일리 재단’이라는 곳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받는다. 어린 시절, 누들스는 고고하고 아름다운 데보라가 춤 추는 것을 화장실 벽 틈새로 훔쳐본다. 술주정뱅이를 털려다 친해진 맥스와 누들스는 친구들과 밀수품을 빼돌려 돈을 버는 가운데 우정을 다져 나간다. 이들을 질투..

    2008/07/21 00:31

길 위에서 영화를 만나다 ①

그리고... 2008/07/14 14:41 Posted by 우디79

강민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으로 밟는 남도 땅은 뜨거웠다. 8월의 마지막 주, 서울에서 벗어나 경상남도 진주에서 아는 분과의 조우를 마치고 꼬박 두 시간이 걸려 전라남도의 땅을 밟았다. 단 한 번도 남도로 내려온 적이 없고 함께 여행을 하는 동행도 없던 터라 모든 것이 신기했다. 다만 입을 꾹 다물고 내리쬐는 햇빛을 혼자 대하기에는 약간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여름에는 습기와 고온으로 숨이 제법 막힌다는 남도의 더위.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곳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내가 사랑하는 두 영화의 모든 것이 공존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청준의 단편집을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두 편의 영화 <서편제>와 <천년학>은 전라남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굽이굽이 산길과 논밭을 걸어 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세월을 읊던 그들의 모습이 문득 눈앞을 가로막았다. 나의 등에 올려진 배낭과 카메라는 조금 무거웠지만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조이고 『선학동 나그네』, 영화 <천년학>의 배경이 된 장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십 년 인생을 풀어내는 단 하루의 저녁, <천년학>의 선자마을

보성에서 장흥으로 넘어오는 길은 험했다. 애초에 ‘걸어서 남도를 돌아다녀보자’ 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를 조롱하듯 산길에는 버스가 아니면 지나갈 수 없도록 차도가 놓여있었다. 장흥에 도착하자마자 장흥 터미널에서 <천년학>의 촬영지로 유명한 선자마을이 있는 버스를 찾았다. 선자마을은 장흥에서 약 40분을 달려 회진에 내려 다시 30분을 걸어야만 했다.

회진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남도에 내려온 지 이틀 만에 처음으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았다. 이곳에 내려와서 느낀 것은 주민들 대부분이 나이 드신 분들이라는 것과 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좀처럼 젊은이들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길의 고요를 뚫고 버스에서 나는 엔진소리를 들으며 버스 안을 훑었다. 큼지막한 버스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 진 여행객 복장을 갖춘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런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시간이 지나자 곧 고개를 돌려 당신들끼리의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버스 내에서도 역시 젊은이는 나 하나 뿐. 새삼 전형적인 시골 땅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선자마을 가는 길이 이쪽 맞나요?”
“선자마을? 선자마을은 뭣 땜시 가려고? 아가씨, 이 더운디 거까지 걸어가려고?”
“네. 제가 선자마을에 볼 일이 있는데 방향을 잘 모르겠네요.”
“이 도로를 따라 쭉 가면 선자마을이 나오긴 하는디, 걸어가기는 좀 힘들 터인데. 가다가 사람들 나오면 또 물어보구 허라구.”





회진읍의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무작정 앞으로 걷다가 지나가시는 할아버지께 길을 물었다. 도로를 따라 쭉 가기만 하면 선자마을로 향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전라남도를 여행하면서 지도 하나 가져오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지만 길을 잃을까 걱정하는 것도 잠시, 읍내에 군데군데 놓인 표지판은 ‘천년학 촬영지’로 가는 길을 너무나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선자마을로 가는 길은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멀었다. 회진읍내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마을인줄은 알았지만 찌는 듯한 남도의 더위는 매번 앞길을 가로막으려 필사적이었다. 회색 도로에는 화물을 싣고 가는 트럭들이 질주하며 지나갔고 그 위를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몇 십 년 전만해도 흙이 구르는 길로 범벅이었을 이 도로는 <천년학>의 동호가 선학동으로 가기 위해 지나갔던 발자국이 남아있는 길이다. 무미건조한 회색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커다란 고개를 넘어가니 쭈욱 뻗은 도로 한 켠에 작은 건물이 하나 보인다. 눈에 익은 소나무. 익숙한 산의 모양새. 이곳이 선자마을의 주막, 동호가 하루를 묵고 가면서 자신의 인생을 풀어낸 그 주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포구에 물이 없고 나무가 저 모양인디 학인들 날라 들것소. 하긴 지 마음에 그 시절을 잡아 놓고 학이 다시 날라들기를 기다리는, 그런 한심한 인간도 있으니께.” -<천년학> 中


<천년학>에서 동호의 아버지 유봉은 어린 송화와 동호를 물이 흐르는 선학동으로 데리고 와서 선학동의 주축을 이루는 학 산을 보여준다. 학이 날개를 펼친 채 날아오르고자 하는 모양새를 그대로 본 딴 듯한 산을 보며 어린 동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선학동에 다시 찾아온 그는 변해진 선학동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보며 오랜 애환이 묻은 선학골의 주막에서 평생 주막을 지키던 사내와 술잔을 기울인다.

‘촬영지’라는 간판이 크게 써 붙여진 선자마을 입구의 작은 주막의 뒤로 영화 속 동호가 느꼈던 황량함을 보여주는 곱게 포장된 도로가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회진읍에서 이곳으로 걸어오기를 한 시간. 고개를 숙이며 익어가는 벼들 사이로 지칠 대로 지친 나와 나의 배낭은 망설일 것도 없이 쉬어야만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멀리 마을이 보이고 마을로 가면 시원한 물 한 잔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길에서의 냉수 한 모금은 고급 음식점의 잘 차려진 식탁보다 반갑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조그맣게 보이는 마을의 모습을 한번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보고 바깥채 쉼터에 짐을 내려놓았다. 풀들만 무성한 주막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다. 누군가 살 법한 번듯한 집이라고 생각해 조심스레 창문을 닦으며 안쪽을 들여다보았지만 역시 아무도 살지 않는다. 촬영이 끝나고 발길이 뜸해졌기에 먼지가 수북하게 앉은 작은 집에 지금 숨 쉬고 있는 생물이라고는 풀들을 제외한 나와 벌레들 뿐 인 듯 했다. 마을은 멀리 있고 보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바로 왼쪽에 바다가 있고 배들도 여러 척 있었지만 배 위에 올라있는 사람도, 바다를 구경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에겐 미안하지만 거미줄을 대충 휘휘 저으며 치워버리고 배낭을 베고 먼지더미로 풀썩, 몸을 던졌다.

새벽을 꼬박 지새우던 동호의 눈빛이 떠올랐다. 동호가 가진 것이라고는 그의 인생의 굴곡을 짐작하게 하는 눈빛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남도 천지를 떠돌다가 이 작은 주막에 와서 송화의 흔적을 찾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것은 송화가 다녀갔던 곳과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몇 가지의 이야기밖에는 없었고,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술 한 잔과 묵은 김치 한 그릇이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누이 송화를 만나기 위해 그가 이곳으로 달려온 것은 아닐 것이다. 동호가 자신의 마음을 넌지시 술잔에 토해내고 있을 그 시간에 송화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몸을 바로하고 앉아 다시 주막을 둘러봤다. 한참을 누워있는 동안 주막 앞의 도로를 지나간 차는 다섯 대가 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장흥근처의 찜질방에서 물을 담아두었던 물통을 꺼내들었다. 미지근하지만 그런 것을 따지기엔 햇볕이 너무 뜨거웠다. 물을 마시다보니 문득 옆에 놓여 진 뒷간이 눈에 들어왔다. <천년학>에서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시간은 단 한번 뿐이다. 주막 주인은 밤새도록 동호와의 술자리를 마치고 이른 아침 화장실로 볼일을 보기위해 몸을 옮긴다. 그가 일을 마치고 뒷간에서 나오는 바로 그 순간 동호는 차분히 앉아서 유봉이 자신에게 남긴 북을 바로 세운다. 화장실에서 빠져나오려 했던 주인 사내는 동호의 모습을 보고 황급히 몸을 숨긴다. 동호는 북을 들고 사내는 그런 그를 바라본다. 동호가 북을 치는 순간, 논으로 바뀐 황량한 벌판에는 물이 차오르고 송화는 그의 곁에서 소리를 한다. 그리고 곧, 두 마리의 학이 함께 날아오른다.





<천년학>은 ‘소리’를 아낀다. 송화의 목소리는 <서편제>에서와 같이 여전히 애절하지만 그것 자체가 마음을 움직이지는 않는다. <서편제>를 달려온 동호와 송화의 이야기는 <천년학>에서 이어지나, 사실은 그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한을 토해내기보다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더 많이 보여준다. 송화와 동호에게 아버지였던 유봉이 가르쳐준 ‘소리’라는 것은, 반드시 지나가야 할 길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길 위에서 사랑을 노래한다. 이복누이 송화를 향한 동호의 사랑, 동호를 그리워하는 송화의 마음, 그리고 그 주변에서 그저 자신의 사랑을 태울 수밖에 없던 주막 사내의 이야기가 교차할 때 선학동에는 학이 날아든다. 태풍을 맞고 을씨년스럽게 변한 소나무도, 그리고 동호가 어깨에 짊어진 세월의 굴레 또한 학이 날아오르는 그 순간만큼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하는 바로 이 순간은 <천년학>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카메라를 한 손에 들고 한참동안 생각에 빠져 있다가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주막 뒤편을 가로지르는 오토바이는 얼마 달리지 않아 아까 보았던 주인 없는 배들이 있는 작은 방조제 앞에서 멈추었다. 커다란 배낭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이방인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아저씨의 시선을 뒤로하고 다시 한 번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급하게 걸어온 아까와는 달리 제법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주막 주변에는 코스모스도 피어있었고 잡초라고 살아 있는 것들에도 꽃이 피어있었다. 아까 내가 없애다시피 해버린 거미줄에 매달려 있었던 거미는 열심히 다시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동호가 다녀간 이후 이 작은 건물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기둥을 잡고 이따금씩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혹시 <천년학> 때문에 주막을 찾지는 않을까 기대하며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이곳에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될 수 있다면 내가 앉아있는 이곳에서 노을이 지는 것을 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별이 뜨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러나 마음은 움직였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했다. 누군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이 건물에서 발길을 쉽게 떼지 못하는 나를 본다면 아마도 ‘청승맞다’라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는 마을버스도 하루에 한두 번 들어오는 것이 전부이고 지나가는 사람조차 뜸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존재하던 그들은 선자마을의 주막을 떠난 지 이미 오래다. 겉멋만 잔뜩 들은 것처럼 나도 이 주막에서 조용히 탁주에 작은 안주를 곁들여 밤을 지새우고 싶었다. 동호처럼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도 이곳에서 풀어내버린 것일까. 오늘 내에 반드시 완도로 넘어가야 하는 나의 일정과는 달리 처음 왔던 그때처럼 발걸음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회진에서 선자마을로 넘어온 지 벌써 세 시간째. 입구에서 주저하는 나에게 회진으로 갈 예정이면 태워주겠다는 선한 인상의 아저씨가 요란한 트럭소리를 내며 나를 불렀다. 걸어왔던 길이니 다시 한 번 걸어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아저씨는 버스는 이미 끊겼고 힘든 일도 아니니 어서 타라며 재촉했다. 갈등 끝에 트럭에 오른 나에게 아저씨는 어쩐 일로 발길 뜸한 이 동네로 왔냐며 말을 걸었다. 트럭의 백미러로 학산이 어스름히 보였다.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아저씨와 대화를 하면서 덜컹거리는 트럭 뒤로 고개를 내밀어 슬그머니 다시 학산을 눈에 담았다.

(편집자 주: 강민영의 남도여행기는 다음 주 <서편제>의 촬영지로 이동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기대와 열독 바랍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 http://neoimages.tistory.com/trackback/316

장호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인기는 당시로서는 세계적이었다.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4,50년대에 유행했던 B급 모험 영화의 분위기를 활용해 상당히 잘 만들어진 경쾌한 오락 영화를 만들어 냈고 이런 류의 모험 영화를 별로 접해보지 못했던 당시의 관객들은 쉴새 없이 전개되는 활극적 쾌감에 탄복했던 것.

당연하게도 이런 <인디아나 존스>의 캐릭터를 빌어 만들어진 아류작들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당시 이런 식의 B급 영화들을 만들어 짭짤한 성공을 거두고는 했던 캐논 그룹의 모험 영화로는 TV 스타였던 리처드 챔벌레인을 앨런 쿼터메인이라는 캐릭터로 출연시킨 <킹 솔로몬 King Solomon's Mines, 1985>과 <쿼터메인 (Allan Quatermain And The Lost City Of Gold, 1986> 시리즈가 있었다. 샤론 스톤이 출연하기도 했던 이 영화는 물론 '인디아나 존스'같은 오리지널 캐릭터는 아닌데, 실은 앨런 쿼터메인이라는 캐릭터가 '인디아나 존스'의 선조격에 해당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앨런 쿼터메인은 영국의 모험 소설가 H. Rider Haggard의 소설에 등장했었고 이미 1910년대와 1930년대에 이미 영화화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캐릭터는 2003년의 범상한 슈퍼 히어로 블록 버스터 <젠틀맨 리그>에서는 숀 코넬리가 같은 이름의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기도 하며 2004년의 TV 방영용 영화에서는 패트릭 스웨이즈가 동일한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캐논 그룹의 영화들은 두 편 모두 국내 수입되었고 본 것 같기도 한데 거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글이 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는 했지만 어쨌든 <인디아나 존스>시리즈의 성공은 위에 서술한 <쿼터메인>같은 비교적 제대로 된 영화들 외에도 각종 B급 모험 영화의 양산으로 귀결되었고 사실 대부분은 기억 저편에 있다. 하여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모험' 컨셉은 홍콩 영화계에서도 홍콩식으로 컨버젼된 바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배우 자체가 강력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용형호제, 1985>와 <용형호제2-비응계획, 1986>이 대표적일 것이다. 두 편의 영화에서 성룡은 중국인 모험가로 분해 특유의 아크로바틱 액션을 모험 영화의 틀과 결합시킨, 자신만 가능한 액션 영화를 선보인 바 있다. 또 제목부터가 추구하는 장르를 뚜렷하게 선보이는 정소동의 <모험왕, 1995> 역시 조금 연대는 뒤쳐지지만 인디아나 존스 박사를 추종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모험왕>은 영화 자체가 논리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 졸작으로 평가받는 영화다. 이들보다 앞서 좀더 선도적인 모험-환타지 영화가 존재하는데 <위슬리전기, 1985>가 바로 그런 영화다.


국내에 출처가 불분명해 보이는 DVD로 출시된 <위슬리전기>는 이미 국내에 개봉된 적이 있는데, 이 영화 역시 홍콩 느와르와 왕조현의 팬덤 현상이 극에 달하던 시점에 뒤늦게 개봉되어 소모된 느낌이 강한 영화 중 하나다. 물론 <위슬리전기>라는 영화 자체가 그리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조금 눈높이를 낮추면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이야기 전개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일단 이 영화의 주인공 캐릭터는 당시 중화권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허관걸이 맡고 있는데, 허관걸은 <미스터 부>시리즈로 소개된 허관문의 광동어 코미디의 허씨 형제들 중 가장 스타성을 갖춘 인물로 서극 제작의 탁월한 코미디 액션 영화 시리즈인 <최가박당>의 큰 성공으로 중화권 내부에서는 커다란 인기를 끌어모은 바 있었다. 허관걸의 경우에는 '광동 코미디' 분야의 이미지가 강한 스타였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거의 지명도가 없는 편이었으며 그건 무협영화 <소오강호, 1990>의 상업적 실패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영호충으로 분했던 이 영화의 실패로 속편인 <동방불패, 1991>에는 영호충으로 이연걸이 캐스팅되게 된다.

<위슬리전기>에서 허관걸은 판타지 소설 작가인 타이틀 롤 위슬리로 분해 네팔과 이집트 그리고 홍콩을 종횡무진하며 모험 액션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데, 그 길에 왕조현과 왕조현의 오빠인 적룡이 참여하게 된다. 어쨌든 <위슬리전기>의 결말부는 당대에는 꽤 황당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의 결말이 많은 현재로서는 창의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한데, 문제는 이 영화가 당시 홍콩 영화의 강박 즉 '뭔가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빠르게만 전개해 나가는 스피드의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이 영화는 참을성 있게 캐릭터의 개연성을 설명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액션이나 볼거리를 보여주겠다는 강박이 심한 편인데, 이런 경향은 당대의 범상한 홍콩 영화들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일종의 집단 강박같은 것이었다.

물론 <위슬리전기>는 그럼에도 꽤 야심이 큰 영화이기도 한데, 이 영화는 모험 액션 영화의 틀을 지니면서도 SF 장르와의 접속을 시도하는 특이한 경향을 선보인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용이 사실은 외계의 우주선이었다는 설정은 황당할 수도 있지만 무척 재치있게 느껴지기도 한 대목이다.

그러나 <위슬리전기>는 캐릭터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편인데, 특히 부유한 집안의 장자와 동생으로 나오는 적룡과 왕조현의 경우에는 영화 속 행위의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 가령 왕조현이 사실 위슬리의 열렬한 팬으로 쉽게 호의를 보낸다던가 적룡이 '여의주'를 차지하려는 목적들은 그다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위슬리전기>는 완성도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당대의 오락 영화로서는 적절한 편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영화다.





* 태적라빈 Teddy Robin Kwan

이 영화의 연출자인 '태적라빈'이 생소해 자료를 뒤져보니 80년대 홍콩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왜소증을 지닌 인물로 등장했던 인물이었다. 이 인물은 여러 영화들에 배우로 등장하기도 했고 <위슬리전기>를 비롯해 원표와 홍금보가 등장하는 액션 모험 영화 <상하이 상하이, 1990>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분야는 <감옥풍운>, <최가박당>, <협도고비>, <흑협> 등에서 선보인 영화음악가로서의 재능이다. 현재까지도 영화의 제작자로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 http://neoimages.tistory.com/trackback/30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와킨 피닉스는 한때 리버 피닉스의 형제로 먼저 알려졌지만 이미 그 이야기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수많은 배우들이 영화제목 앞에 '누구누구의-' 라는 형용사를 붙일 정도로 하나의 보증상표가 되었지만 내게는 와킨 피닉스가 그렇다. 배우로서의 얼굴이 만약 있다면 그는 정말 그런 얼굴이다. 에드워드 노튼이 마치 백지같은 얼굴 속에 수많은 다층적 인물을 숨기고 있어서 하나씩 카드를 뒤집어 보여준다면, 와킨 피닉스는 강한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창백한' 표정을 보여주기에 오히려 어떤 캐릭터도 그 안에서 가능하다. 특히 [글래디에이터]에서의 코모두스와 [퀼스]의 신부 역할을 맡았을 때의 와킨 피닉스의 창백한 에너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얇은 입술은 강인하면서도 불안하고 예민한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역할에 걸맞았다.

[위 오운 더 나잇]의 바비 그린 역할도 그런 역할들과 궤를 같이 한다. 아버지와 형이 모두 뉴욕 경찰의 수뇌부임에도 바비는 인기 나이트클럽의 지배인으로 자신의 길을 간다. 문제는 바비의 고용주이자 유사 아버지와도 같은 러시아 마피아 출신 사장이 마약유통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이며, 이 때문에 바비의 아버지와 형은 바비를 가운데 두고 마약소통 작전을 펼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비는 러시아 마피아 일당이 생각보다 크고 강한 조직임을 알게 되고 형이 공격을 당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형 편에 서서 경찰의 작전에 가담하게 된다.

마약을 사이에 둔 경찰과 조직의 대치는 새롭지 않은 구도지만 그 사이에서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을 꾸어대는 바비의 심리상태는 영화의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경찰쪽에 정보를 주기로 마음먹으면서 바비는 여자친구의 보호를 위해 둘은 경찰관의 보호아래 비밀리에 모텔을 전전하는데, 이 역시 마피아들이 곧 알아내고 따라붙어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어느 나라나 범죄조직 앞에서 공권력은 무기력하다손 치더라도, 아버지와 형이 경찰 수뇌인 바비의 입장에서는 화 조차 낼 수 없는 상태다. 여자친구는 서서히 지쳐가고, 바비는 다시 짐가방을 싼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속에 그들은 또다른 모텔로 장소를 옮기느라 매우 지쳐버린 상태에서 출발하지만 이 때 마피아들의 차가 따라붙고 만다.

비 속에서 보여주는 이 자동차 추격씬은 매우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에너지로 가득 찬 여느 헐리웃 범죄영화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범죄를 소탕해야 한다는 의지로 가득찬 경찰/형사와 악질적인 에너지(악당 역시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로 폭발할 듯한 상대편이 서로를 밟아죽이지 못해서 총을 쏘아대고 차를 따라붙고 도로의 사방이 자동차 폭발과 전복으로 가득 차 버리는 그런 헐리웃식 에너지가 여기에는 없다.

다만 끊을래도 끊을 수 없고, 마치 그림자 밟기처럼 끝이 없이 맴맴 도는 범죄와의 악순환에 지쳐버린 탈진의 에너지가 여기에 있다. 한순간 [살인의 추억]에서 비를 맞고 망연자실하던 송강호의 얼굴이 떠오른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져버린 바비와 그의 애인,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도록 막다른 데로 몰린 그들이 뿜어내는 지친 탈진의 에너지가 80년대의 혼란스럽고 붕 떠 있는 뉴욕의 분위기와 중첩된다. 이 자동차 추격신 전까지 영화는 액티브 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추격신이 나오기전까지 쌓아온 인물들의 심리적인 피곤과 갈등때문에, 이 추격신은 정점에서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헐리웃 영화들 속에서 자동차 추격신은 웬만한 폭발과 충돌을 동반하지 않으면 시각적인 충격조차 주기 힘든 요즘이다. 그러나 이 추격신은 그렇게 물량공세를 퍼붓지는 않는다. 다만 폭우 속에서 직접 핸들을 잡은 듯 인물들의 흔들리는 시야가 충분히 느껴지며,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성과 판단력마저 흔들리는 상황이 감각적으로 만져진다.

영화의 결론은 바비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매우 교훈적일 수 있는 선택이지만, 아무튼 모두가 '범인은 독 안에 든 쥐' 라고 하며 손을 털고 나왔을 때 바비가 끝내 자신의 손으로 상대편을 처단하는 모습은 인간의 '피폐한 밑바닥'을 보여준다.

와킨 피닉스는 매우 안정적이고 꾸준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지만, [위 오운 더 나잇]은 [앙코르]에 못지 않게, 그의 고유한 얼굴이 매우 가까이 드러난 영화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 http://neoimages.tistory.com/trackback/294

김숙현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내게는 '옛날 한국영화'에 대한 아주 안 좋은 편견이 있어서, 그러니까 7, 80년대 한국영화들이란 죄다 섹스, 섹스, 섹스만 부르짖는 촌스러운 영화들인 줄 알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까지 살던 곳은 지금은 집창촌의 폐허로 변해버린 미아리 근처로, 판자집을 겨우 면한 여인숙들과 그 여인숙을 개조해 월세를 놓았던 다 쓰러져가는 집들로 가득한 미로 골목들 사이에 있었다. 꾀죄죄한 뒷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동네 동시상영관 포스터는 언제나 옷을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기묘하고 야릇한 포즈로 서 있는 여주인공의 사진에 덕지덕지 성적인 농담의 낙서글이나 낙서그림이 그려져 있기 일쑤였다. 학교를 가기 위해 언제나 지나쳐야 했던 골목 어귀의 그 포스터들을 보면서 나는 남자들이 여체를 대하는 시선을 배웠고, 동시에 여성이라는 내 성에 대한 혐오감을 키웠다.

그건 가난한 동네, 특히 집창촌이 있던 동네에 살던 여자애에겐 당연한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어느 날 집에 찾아온 형사가 나에게 가끔 과자를 주곤 했던 어떤 언니가 살해당했고, 그게 동거하던 남자의 짓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를 해줬던 일도 있다. 아이들 교육상 안 좋다며 어떻게든 그 동네를 벗어나겠다고, 딸을 가진 엄마들은 더욱 억척같이 일을 하던 그 동네에서,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멋도 모르고 가게들이 빼곡이 들어선 골목을 누비며 놀았다. 교양있는 동네에서 섹스는 보다 음습한 짜고치는 고스톱이지만 가난한 동네에서 섹스는 노골적이기 마련이다. 머리와 눈을 '나보다는 윗쪽' 사회에 두고 있던 어린 여자아이에게 섹스와 관련된 온갖 이야기들, 특히 영화는, 그저 어른들과 관련된 일일 뿐만 아니라, 더럽고, 심지어 무서운 것이기도 했다. 섹스와 가난이 합쳐지면, 어린 여자아이에게 삶과 세상에 대한 공포는 두 배가 아니라 세 배, 네 배가 된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들도 미아리의 그 가게들이 무얼 하는 곳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 동네에 살던 다른 아이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그곳은 별로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 언니들이 드레스를 입고 깡충깡충 뛰어가는 곳이기도 했고, 공포와 위험을 알리는 보이지 않는 표지판이 깜박이는 듯 느껴지기는 곳이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알아서 공부를 했던 건, 가난한 집안의 첫째딸에 외모도 볼품이 없으면서 공부까지 못 하면 저 언니들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내 또래 남자아이들이 사춘기의 호르몬의 폭발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시상영관에 드나들며 에로영화들을 보다가 우연히 뇌에 충격을 주는 영화를 발견하고 점차 영화광이 되어가는 수순을 밟았을 그 나이에, 나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키워나갔다. 용돈이 따로 없었고 영화관에 따로 갈 돈도 없었던 데다 영화는 그렇고 그런 저질스러운 오락이라 여겼던 만큼, 내가 충무로 키드나 헐리우드 키드가 될 일은 만무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집에서 구독하던 조선일보에 실리던 영화평은 가끔씩 읽곤 했던 건,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불편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궁금증과 매혹을 느끼던 금지된 어둠의 세계를 대표해주는 것이 내게는 영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단,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을 또렷이 인지하고 있던 내게는 매혹보다는 공포와 불쾌감이 더 압도적이었지만.

2.
한국영화에 대해 저런 식의 편견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던 건 그저 하필 그런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의 특이한 비극이겠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기 위해 스크린, 섹스, 스포츠(이른바 3S 정책)를 장려했던 당시 시대상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이리라. 점심을 500원짜리 학생회관 라면으로 때우거나 선후배한테 빌붙고는 그 돈으로 비디오방에 쳐박혀 영화들을 보거나, 그 당시부터 시작된 시사회라는 것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게 얼추 94, 5년 대학 시절 때부터다. 문화원 세대인 내 윗세대들과 달리 나는 PC통신 영화동호회 세대로, 동호회 사람들과 시사회 정보를 공유해 달려가거나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상영회’라는 형식으로 카페를 빌려 누군가 어찌어찌 구해온 불법 복사판 비디오를 틀어놓고 다 함께 둘러보았다. 세상에, 영화에 누벨바그니 뉴 저먼 시네마니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저 뒷골목에서 아슬아슬한 옷을 걸친 채 야릇한 포즈로 서 있는 여자들만 보며 경멸감을 갖던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게다가 어떤 영화들은, 나이를 꽤 먹어서까지 순진함을 버리지 못했던 나보다 더 소녀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것이었다. 조악한 화질의 비디오로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처음 보았던 상영회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동호회 시솝이던 형은 누벨바그와 그 이후에 대해 40분에 가까운 설명을 했고, 나는 ‘즉석에서 저런 얘기를 저렇게 길게 할 수 있다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라움과 감탄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막상 영화를 보면서는 저게 대체 뭐냐 싶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가슴이 벅차서 창가에서 한참동안 담배를 피우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옆동네 하이텔 영화동호회의 어떤 영화소녀의 일화를 들으며 무려 ‘열등감’ 씩이나 느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내게는 그런 영화를 보며 그런 반응을 보여주는 건 양지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들이나 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던 거다.

영화를 보다 본격적으로 보고 한국영화사에 대해 이것저것 주워듣기 시작하면서, <어우동>의 이장호와 <깊고 푸른 밤>의 배창호 같은 감독들이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사람들로 치부되는 것이 적응되지 않았다. (나중에 비디오로 본 <어우동>은 격렬한 심리적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꽤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스스로 당황했다.) <깊고 푸른 밤>이야말로 그러니까, 어린 마음에 뒷골목에서 그런 식으로 '말없이 얘기되는' 듯한 섹스영화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탓이다. 그래서인지 배창호 감독의 영화를 보겠답시고 10여 년 전에 <깊고 푸른 밤>과 <황진이>,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비디오로 챙겨보았을 때, 다른 두 작품엔 놀라고 감탄하면서도 저 <깊고 푸른 밤>만큼은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내게는 장미희의 상당히 양식화된 연기와 발성이 그저 거북살스럽기만 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여전히 순진했을 뿐 아니라 완고한 도덕율을 가지고 있던 내게, 장미희가 연기했던 제인이나 안성기가 연기한 호빈이 곱게 보일 리도 없었다. 넌 왜 그러고 사니, 이게 둘을 향한 내 반응의 고작이었다.

3.
배창호 감독의 전작을 상영할 거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오래 전 비디오로 보면서 감탄했던 <황진이>와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드디어 필름으로 볼 수 있게 됐다며 감격했다. 두 영화와 함께, 전설적인 데뷔작이라는 <꼬방동네 사람들>과, 당대 최고의 흥행작이자 배창호 감독을 80년대 최고의 흥행술사 자리에 확고하게 올려놓은 <고래사냥>을 확인하는 게 당시 내 계획이었다. <러브스토리>는 오랜만에 다시 봐야겠다 싶었고, 다른 작품들은 시간 되면 보고 아니면 말고. <깊고 푸른 밤>을 다시 볼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적도의 꽃>을 볼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황진이>는 말하자면, 그저그런 영화들만 있었고 의무감으로라도 별로 보고싶지 않다는 한국영화에 대한 내 편견을 깨준 최초의 영화였기 때문에 필름으로 꼭 봐야만 했다. 물론 제작된 연도상 <황진이>를 ‘옛날영화’로 분류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90년대 초중반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는 내게는 무조건 ‘옛날영화’로 구분되곤 한다. 사실 배창호 감독이 한창 한국영화를 주도하던 80년대는 내가 고작해야 국민학생, 중학생이던 때다. 배창호 감독은 나보다는 내 바로 윗세대의 감독이었다. <천국의 계단>과 <젊은 남자>의 개봉 사이에는 불과 3년의 텀이 있을 뿐인데도, 내게는 어쩐지 <천국의 계단>은 옛날영화, <젊은 남자>는 현대영화로 구분되는 듯 느껴지니까. <젊은 남자>와 <러브스토리>를 비디오로 처음 봤을 때, 그저 나쁘지 않구나, 그래도 옛날 감독은 어쩔 수 없나봐, 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았는가. 물론 이건 내 편견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나 버렸지만.

번역자들 사이에서는 작업이 어렵기로 악명이 자자한 모 영화제의 영화 번역을 하느라 특별전의 첫 주를 날려먹은 후, 둘째 주부터 본격적으로 배창호 감독의 영화들을 보았다. 총 17편 중 내가 본 건 11편.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360도 회전이동 샷, 컷을 하지 않고 패닝으로 시간의 흐름이나 장면전환을 하는 샷 같은 건 이제는 마치 감독의 인장처럼 느껴진다. <고래사냥>의 진정한 속편이 <고래사냥 2>보다 <안녕하세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흥미로웠고, 영화 내내 고정컷이다가 영화 말미에 가서야 단 두 컷에서 카메라가 움직인다거나 시네마스코프가 아닌 비스타비전 비율인 대신 화면의 ‘깊이감’을 활용하며 공간의 입체성을 보여주는 <황진이>의 컷들도 신비로웠다. <러브스토리>는 너무 시대를 앞질러 나온 선구적이면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영화였고, <기쁜 우리 젊은 날>은 배창호 감독보다 이명세 조감독의 터치가 더 많이 보이는 듯해서 또 재미있었다. <고래사냥>은 거의 열광을 하면서 보았는데, 특히 이미숙의 연기에 눈물을 꽤 쏟았다. <정>은 이 감독이 내 편견대로 80년대의 영화가 아니라, 계속 그 영화세계를 확장해가고 진화시켜가고 있는 ‘현재의’ 감독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그런데, 애초에 서너 편 봐야지 했던 걸 열한 편이나 보게 만든 영화, 그게 바로 <깊고 푸른 밤>이다. 정확히 하면, 비디오로 봤던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로 여겨지게 만드는, 필름으로 상영된 <깊고 푸른 밤>.

<적도의 꽃>과 <깊고 푸른 밤>을 보며 ‘건졌구나’ 싶었다. 솔직히 두 영화 모두 이제 다시 보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 건, 전적으로 내 취향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배창호 감독이 독립영화 방식으로 영화를 찍기 전까지 작품 중에서는 여전히 <황진이>와 <기쁜 우리 젊은 날>, 거기에 이번에 처음 본 <고래사냥>이 가장 좋고, 내 정서도 다소 이런 예쁘고 고운 쪽에 맞다. 그럼에도 저 두 작품이 내게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비로소 한국영화에 대한 내 편견의 두 번째 장벽이 깨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오래 전 <황진이>를 보면서 편견의 첫째 벽이 깨진 바 있지만, 이제 한국영화에서도 비열하고 계산적인 인물들이 어둠의 포스를 한껏 몸에 두른 채 쾌락과 욕망을 좇다가 추락한다는 본격적인 ‘어른영화’ 중 품격있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특히 <깊고 푸른 밤>에서의 안성기는 딱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니로를 연상시키는, 지독하게 섹시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안성기의 전신누드 씬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비슷한 시기 다른 영화에서의 안성기는 예의 그 사람좋고 순한 표정을 드러내지만, 이 영화에서만은 차갑고 비열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젊은 남자’의 매력을 선보인다. 차이나타운을 걷는 장면에서의 안성기는 <택시 드라이버>의 영문포스터 속에서 자켓 주머니에 손을 꽂고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는 로버트 드니로와 똑같다. 안성기가 연기한 백호빈이라는 캐릭터는 <젊은 남자>에서 이정재가 맡은 캐릭터인 이한의 전신인 한편, 이한보다 훨씬 비열하고 사악하다. 그러나 역시나 360도 회전이동 씬으로 표현되는, 고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 백호빈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단단하고 비열한 외피 안에 숨어있는, 순수와 선을 향한 지향과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향한 그 끝없는 욕망과 꿈이 얼마나 가련한지, 그럼에도 얼마나 절박한지, 또 이것이 궁극적으로 얼마나 피로한 것인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바로 그 씬에서 이 남자가 쥐고 있는 도덕적 딜레마를 더욱 대비시켜 드러낸다. (그는 수동적으로 딜레마에 처해있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그 딜레마와 모순을 쥐고 있다.)




4.
한국의 수많은 시네필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영화사에서 자신의 영화적 영감과 영향을 찾으면서 정작 한국영화의 과거와는 철저히 단절돼 있다. 단순히 사대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선배 영화감독들이 영화를 만들던 당시 가해진 탄압과 억압의 역사를 우리는 다시 되새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것은 그 상처의 역사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형형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욱이 이 반쪽짜리 영화 만들기의 역사는 영화를 ‘딴따라’로 취급하며 자료 보존과 정리에 있어 소홀히 했던 외적인 환경과 맞물린다. 제대로 시스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 오락거리로서 괄시받았던 영화라는 이 매체가 문화의 일부, 혹은 예술의 일부로서 재평가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역사다. 나는 이 글의 첫머리에서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곳의 분위기와 관련해 영화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첫인상을 기술했고, 이는 한국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특별한 인상에 불과하지만, 이런 특별한 인상이 가능했던,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반은 불과 20년 전 우리의 한국영화가 사고되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었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독은 고작 임권택 감독 한 명에 불과했다. 일부 평론가와 진지한 관객이 임권택 감독에게 그토록 연구를 집중하는 이유, 그리고 많은 숫자의 일반 영화팬들이 임권택 감독을 그렇게도 모질게 외면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임권택 감독은 저 상처의 역사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에서) 고스란히 증언하는 존재인 것이다. 게다가, 그 임권택 감독의 영화마저도 100편을 모두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편수의 문제가 아니라 프린트 유무의 문제에서.

배창호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펴낸 김영진의 [이장호 vs. 배창호]와 배창호 감독 자신의 [창호야 인나 그만 인나]를 읽었다. 그 책들에 의하면 ‘배창호 특별전’을 통해 재발견한 ‘현재의 감독’ 배창호는 실은 이장호 감독과 연결돼 있고, 그 이장호 감독은 다시 신상옥 감독과 연결이 돼 있다.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장호 감독이 아닌 배창호 감독의 전작전을 먼저 한 것도 전적으로 프린트 수급과 상영허가 확보라는 아주 물리적인 부분에서 이장호 감독의 영화들마저 전작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마도 여기에서 배창호 감독의 존재가 왜 특별한가, 의 이유를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배창호 감독은 80년대에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현재’의, 한국의 현대영화를 뿌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감독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배창호 감독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어쩌면 저 단절된 과거와 지금 현재 사이를 잇는 가교적 존재, 혹은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현목 감독과 이만희 감독, 이두용 감독, 신상옥 감독은 이미 과거의 감독이고, 이장호 감독 역시 과거 속으로 떠밀려진 채 다시 현재로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이명세 감독은 너무 현대적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 배창호 감독이 있다. 게다가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전편을 필름으로 보는 게 어쨌건 가능하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서 우리는 지금 동시대에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과 이미 활동을 접은 옛 배우들을 동시에 보며, 그 중 일부는 여전히 ‘젊은 배우’로 활약 중이다. 봉인된 한국의 과거영화에 대한 탐색을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겠구나, 라고, (좋아하는 감독 리스트에 배창호 감독을 추가하면서) 중얼거리게 된 이유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 http://neoimages.tistory.com/trackback/290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우디79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306)
필진 리뷰 (153)
필진 칼럼 (93)
사람과 사람들 (30)
문화와 세상 엿보기 (7)
그리고... (21)

[Flash] http://neoimages.tistory.com/attachment/ik020000000001.swf

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