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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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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구원투수를 자임한 충무로의 승부사 강우석 감독이 <강철중: 공공의 적 1-1>을 들고 다시 강호로 나왔다. 지난 2006년 <한반도>로 비평적 실패를 맛본 후 와신상담해온, "한국영화 침체와 거품의 책임이 시네마서비스에 있다"며 자신이 세운 회사에 칼끝을 겨냥했을 정도로 비장한 출사표를 던진 그였다. 그로부터 1주일, 실로 오랜 만에 한국영화가 박스오피스를 점유했다는 뉴스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이 있었음에도 흥행과 작품성을 동일시해온 일부영화인들의 아전인수식 논리에 반감을 가졌던 터라, 또 관객 수로 영화를 평가하려는 언론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터라 나까지 나서서 호들갑 떨 이유는 없겠으나 소위 '봐 줘야 할' 영화목록에 <강철중>이 있었음은 인정해야겠다. 요컨대 <강철중>은 단 한 가지 이유로 필자를 만족시켰으니, 다름 아닌 정재영과 그가 연기하는 이원술이라는 인물이 그것이다.

집단적 기억을 소환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경험과 절묘하게 조우시키는 것에서 강우석의 장기는 십분 발휘되곤 했다. <투캅스>에서 <공공의 적>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던 반면 <공공의 적>의 속편 격인 <강철중>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의 제목만 놓고 본다면 주인공은 꼴통형사 강철중이어야 하고, 실제로도 강철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강철중과 대극에 놓인 이원술이라는 캐릭터이다. 그러니까 정재영이 연기하는 새로운 공공의 적 이원술은 주인공을 능가하는 카리스마를 품어내며 스스로 외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인데, 이를테면 대극의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가 충동하는 영화에서 악당의 역할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공식에 지나치게 충실함으로써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장르영화들의 경우와는 달리, 이원술은 강철중과 경찰이라는 견제세력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캐릭터임을 증명해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예로 <범죄의 재구성>에서 천호진이 연기한 '차 반장'과 <씬 시티>에서 미키 루크가 분한 거리의 파이터 '마브' 등이 외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로 꼽히지만 이 분야의 최고는 단연 <배트맨>의 '조커'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필자는 (강우석이 의도했건 안 했건) 주인공 강철중과는 별개로 이원술이라는 캐릭터를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연기한 정재영 또한 재삼 언급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영화에서 이원술에 대해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은 자신의 입으로 부르짖는 내면화된 그의 본질이다. "나는 칼질하는 깡패인데 세상은 나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며 보란 듯이 사자후를 토해내는 그의 모습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이때 본질을 숨긴 채 가공된 현실 위를 활보하는 이원술을 악마의 현신으로 탈바꿈시키는 영화적 장치는 의도적인 클로즈업과 독특한 화법이다. 즉 강철중과는 달리 (영화 포스터에도 나와 있듯이) 이원술의 지나치게 매끄러운 턱은 가까이서 보기 불편할 정도로 관객을 압도하고 있는데, 이는 거친 내면과 본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장치이자 성공한 사업가로 보이기 위한 강박적 위장술이라 하겠다. 이처럼 이원술의 내면이 정재영의 얼굴을 빌려 완벽하게 재현될 때, 대극에 있는 강철중의 추레한 현실은 극대화되고 이것이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음이다. 이원술은 강철중의 존재 이유이자 기원(起源)인 셈이다. 무성영화의 스타들이 그랬듯이 배우가 얼굴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음을 기억한다면 <강철중>의 정재영 또한 이에 뒤지지 않은 얼굴 하나로 이원술을 연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쉽게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자 정재영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재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또한 이원술은 신경질적인 얼굴만으로는 모자라다는 듯 독특한 화법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예측불허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어눌한 듯 무식한 듯 그러나 핵심만 잘라서 던지듯 내뱉는 정재영의 말투는 법보다 주먹, 말보다 칼이 앞서는 이원술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문성근과의 독대와 경찰서로 찾아가 강신일 앞에서 뿜어내던 살기는 필자로 하여금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 긴장감을 촉발시킬 정도였다.

장진 감독의 페르소나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로 일찌감치 인정받아온 정재영이지만 <거룩한 계보>와 <마이캡틴 김대출> <나의 결혼원정기> 등 그가 근작에서 맡은 캐릭터들은 다분히 인간적이고 세상사에 서툰, 악마적 이중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때문인지 <킬러들의 수다>나 <피도 눈물도 없이>의 정재영을 기억해볼 때 이제는 한 번쯤 냉혹한 인물을 연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차에 만난 이원술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강철중>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정재영의 연기만 놓고 본다면 이렇듯 생생하고 소름끼치는 그럼에도 악인으로 단정 짓기 힘든 캐릭터를 연출해낸 강우석의 능력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공공의 적>이 '강철중'이란 안티히어로를 탄생시켰다면 <강철중>은 오히려 '이원술'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어쨌거나 틀에 박힌 설경구의 연기에 식상해질 즈음 찾아온 정재영이 세공해낸 이원술은 내가 <강철중>에서 얻은 유일한 소득이다.


(추신) 적지 않은 매체들이 강철중을 일컬어 '서민형 캐릭터'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물론 마케팅사의 보도 자료에 의거했거나 기자의 판단에 따라 기술되었을 테고, 후줄근한 옷과 덥수룩한 외모에 중산층과는 먼 경찰이란 직업을 감안하자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표현이기는 하다. 그러나 강철중이 전세방에 살고 전세보증금이 궁하다는 것만으로 서민형 캐릭터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어쩌면 이것은 신흥기업 회장 이원술과의 대구를 이루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이라고 보여 지는데, 강철중 스스로가 실토했듯이 "뇌물도 받고 삥땅도 좀 친" 게다가 1편에서는 마약까지 빼돌린 부패한 경찰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서민'이라는 표현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다. 유사한 예로 '시골총각은 순박하고 어눌하며 건실하다'라던가 '장애인은 순수하고 착하다'는 식의 고정관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인물에 대한 도식화된 평가와 편견이 빚어낸 섣부른 단정은 비평적 사고에 장애가 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유의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잣대는 시선의 확장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감독의 의도마저 오인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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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중과 2008 한국영화

필진 칼럼 2008/05/06 08:41 Posted by 우디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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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인터뷰
를 보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간담회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기사화 된 내용은 대동소이 했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대목은 이거다. "재미가 없잖아! 우리가 못 만들었다. 식상하다. 조연할 배우가 주인공되고 조감독할 사람들이 다 감독됐다. 제작실장급 역량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프로듀서가 됐다. 당연히 퀄러티가 떨어졌다. 제작편수가 많아진 후유증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족의 탄생' 같은 좋은 영화도 흥행이 안됐다. 총체적으로 난관이다. 언젠가 한번 겪을 일이었다. 극복해야지, 언제는 환경이 좋았나! 한 영화가 왕창 먹는 것보다 500만, 300만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

21세기 들어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멀티플렉스는 10대들과 20대들의 놀이터였다. <쉬리> 이후 '한국영화도 볼만하다'는 인식이 생기자 마자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 멀티플렉스에 10대와 20대 관객들이 줄을 섰다. <엽기적인 그녀> 같은 작품이 여름 성수기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이겨냈고,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같은 '조폭' 관련 상업 영화들이 추석과 크리스마스 시즌의 승자가 됐다. <반지의 제왕>시리즈에 열광한 관객들은 잠시 '재미'가 없어진 할리우드 영화보다 그래도 우리 이야기인 한국영화에 힘을 실어줬다. 10대들이 주머니를 쉽게 열 수 있도록 통신사들이 티켓값을 할인해 줬다. 그러자 충무로에 돈이 몰려왔다.

활황은 2006년까지였다. 여름시즌 <괴물>이 최다 관객을 동원했지만, 징후는 하반기 부터 나타났다. 비수기에도 한국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데이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청춘만화> <달콤, 살벌한 연인> 들이 연이어 정상에 올랐고 그 중간에 <연리지> 같은 영화들이 바닥을 쳤다. 바야흐로 한국영화끼리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네이버가 인터넷을 장악한 시대, 매체 환경의 대세가 관객 별점과 인터넷 매체의 기사로 완전히 교체된 것도 2006년 즈음이다. 그 해 500만을 넘긴 <미션임파서블3>와 <캐리비안의 해적2>가 외화 1, 2위를 차지했고 200-300만을 동원한 블록버스터들도 존재했지만 분명 2006년까지 한국영화가 대세였다. 어쨌건 <괴물> <왕의 남자> <타짜> <투사부일체> <미녀는 괴로워>등이 버텨냈던 2006년에 쏟아 들어져왔던 눈 먼 돈들은 2007년에 정점을 이뤘다.

그리고 2007년이 왔다. 2006년 천만 동원 영화 2편에 의해 58%를 기록했던 한국영화 점유율은 44%까지 떨어졌지만 개봉 편수는 112편까지 치솟았다. 추석이나 설날, 크리스마스를 제외한다고 해도 매 주 2편에서 1.5 편 이상의 한국영화가 경쟁했다는 뜻이다. 함량 미달의 영화들이 쏫아져나왔다. 강우석의 인터뷰를 곱씹어 보자. 일찍이 2006년 <가족의 탄생> 같은 영화들은 철저하게 외면 당했을때 부터 징후는 나타났다. 게다가 카드사들은 극장과의 뒷거래를 통해 발을 빼버렸고, 먹힐 만한 할리우드 속편들은 쏫아져 나왔다. 스크린쿼터제는 반토막이 나버렸다. 그리고 '볼거리'를 최우선하는 관객들은 <디워> 같은 영화를 그 해 최고 흥행 영화로 만들어줬다. 또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약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관객들의 기호는 또 달라졌는데 한국영화 투자사들의 눈은 그리 바뀌지 않아 보였다. 터지는 영화 몇 몇 영화와 폭삭 망하는 영화가 확실히 갈리는 사이 마케팅 비와 평균 제작비는 턱없이 올라버린 상태였다. 

위기론이 현실로 다가 온 2008년. 3월까지 개봉작은 28편, 점유율 58.3%을 유지했지만 그나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추격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월 1일까지 9편을 합치더라도 고작 37편. 여기서 작은 영화와 다큐멘터리 <내 사랑 유리에> <나비 두더지> <내부순환선> <과거는 낯선 나라다> <동거, 동락> <나의 스캔들> <어느날 그 길에서> <작별> <나의 노래는>와 인권위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2>와 OCN의 TV 영화 <전투의 매너> <색다른 동거>의 숫자는 무려 12편이나 된다. 역시나 죽을 썼던 지난해와 비교해 상황은 더 열악해 진 거다. 영화 노조가 출범한 것 2005년 말이지만 현장 인력들의 인건비가 현실화 된건 불과 얼마전이다. 보릿고개로 접어들며 마케팅비는 졸라매고 있으며 30억 이상 영화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통신자본이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아니, 앞으로의 상황만 놓고 보면 회의적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서울이 보이냐> <쇼킹 패밀리> <날라리 종부전> <방울토마토> <걸스카우트> <크로싱> <흑심모녀> <공공의 적1-1>. 6월 19일까지 개봉이 잡힌 한국 영화 목록이다. <아이언맨> <스피드 레이서> <인디아니존스 4>로 이어지는 5월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항하는 영화들이 아니라 사실 1~2년씩 묵힌 영화들(<서울이 보이냐> <날라리 종부전> <방울토마토>)일 뿐이다. 6월에 개봉하는 김선아, 나문희의 <걸 스카우트>나 차인표의 <크로싱>이 선전해 주고 <강철중:공공의 적1-1>이 대박을 터트려준다면 아마도 상반기 점유율은 40%를 넘기지 않을까 싶다.

강우석 감독의 "총체적 난관이다" 발언이 엄살이 아닌 것이다. 지금 제작되고 있는 한국 상업영화가 5편~10편 사이라는 엄한 소문도 들려온다. 촬연현장 공개도, 크랭크인 소식도 쉽사리 찾아 볼 수 없는 지금이다. 7월 이후 기대작이자 활황이던 시기 착수된 <놈놈놈> <신기전> <모던보이> <님은 먼곳에>도 숙성된 프로젝트들이긴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이 영화들마저 무너진다면 2008년에도 보릿고개는 한층 더 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영화들이 일단 살아줘야 숨통이 트인다.

그리하여 지금은 일단 상업영화 진영만 놓고 보자면, 잘 만든 영화는 밀어주고 안일한 영화는 철저하게 외면해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작은 영화들의 게토화는 차치해 두자). 그렇다고 관객에게 읍소하는 안일한 영화를 양산해서는 또 안 된다. 진정 관객을 선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영화로 승부해야만 하는 시점인 것이다. 더불어 제작 시스템의 체계화, 마케팅비의 현실화, 러닝 개런티의 일반화, 부가판권 시장의 제고 등등 산적한 영화 산업의 문제 또한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병행해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지금 특이할 것 없는 뤽 베송표 스릴러 <테이큰>에 관객들이 몰려가는 걸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트렌드를 읽고, 기본기에 충실한 상업영화판을 다져나가야 한다. 보릿고개가 올 한 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건 자명하다. 한국 영화의 때이른 폭발세를 경계하고 산업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이미 2006~7년부터 이미 시작됐다. 지금이야말로 멀리 날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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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506]이란 영화가 잘 만들었다 혹은 그렇지 않다를 따지기 이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어찌됐든 공수창 감독은 [알포인트] 그리고 [코마]의 제작 총지휘와 에피소드 두 개를 감독했던 사람이고 그런면에서만 보자면 그는 주로 장르 영화, 그것도 호러 장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감독으로 볼 수 있다. 단지 한편의 장편과 두 편의 티비 시리즈를 만들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이 가지는 임펙트가 상당했다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의 신작 [GP506]은 그렇기 때문에 호러영화의 관점으로 읽을 여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실제로 [GP506]이 단순히 호러영화다 라고 단정지어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그랬다면 이 글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GP506]은 장르의 장단점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동시에 장르 영화의 울타리를 벗어나려고 하는 몸짓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영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GP506]이 보는 관점에 따라 또는 영화를 읽어 가는 데 어디에 포커스를 두느냐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갈라진다는 말이다. 요는 이거다. 공수창 감독이 전작 [알포인트]와 (만약 티비 미니시리즈의 에피소드 2개 그리고 제작 총지휘까지 포함하면) [코마] 때하고는 또 다른 것들을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비단 장르 영화에만 국한된 사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알포인트]와 [코마], 그리고 [GP506]은 장르의 법칙을 모두 충실히 따른 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만 그것이 노리는 효과를(또는 장르를 이용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볼 때 [GP506]은 전작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은 매우 독특하다. 바로 이 점이 [GP506]을 읽어내는 주요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적어도 '不歸'와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는 음습한 병원의 영안실을 기억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장르의 규칙을 충실히 지킨 [GP506]

[알포인트]의 주무대는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不歸의 장소였다. 이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나오는 순간 영화는 장르의 규칙안으로 깊숙히 들어가게 된다. 이른바 폐쇄 공포, 모든 호러 장르의 영화가 필수로 채용하고 있는 폐쇄 공포를 [알포인트]는 아주 적절하게 사용한 셈이다. 이로써 인물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사지로 몰리게 되고 절대 도망칠 수 없는 그 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씩 처절하게 죽어간다. 사실상 [GP506]은 그런 면에서 [알포인트]와 상당히 흡사해 보인다. 비단 군대를 소재로 삼아서 뿐만이 아니다. 인물들이 고립된 장소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점, 외부의 위협에 일치 단결하여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인물과 인물들 간의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이 점점 커지면서 서로 간의 갈등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구조는 이미 [알포인트]에서 익히 봐왔던 그런 구조다. 어떻게 보면 호러 장르의 가장 전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셈.

가령 인물들이 보여주는 서로간의 갈등은 아주 우연적인 사건에서 시작되고 이들을 공격하는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는 절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설정은 우리 나라 호러영화에서는 상당히 독특한 설정. 실제로 이런 바이러스나 세균 등의 전염을 적접적인 소재로 다룬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나라 만의 특수한 상황을 여기에 접목시킨 아이디어 또한 아주 신선한 편이다. 순수하게 장르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GP506]이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 공수창 감독은 전작부터 영화 속 인물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고 그들을 자극하는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안에서부터 무너져 가는 모습을 그리는데 꽤 탁월한 솜씨를 보여왔다. 그런 면에서 [GP506]은 공수창 감독이 가장 잘할 만한 것들로만 모아놓은 셈. 영화가 전체적으로 매끈하고 군더더기 없이 흘러간다는 점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정리해보자. [GP506]이 장르의 규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GP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절대 벗어 날 수 없다는 점(나중에 도착한 수색대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들을 공격하는 외부의 위협이 그들은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라는 점, 그리고 그들이 무너지는 것은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그들 내부에서 일어난 갈등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은 꽤 중요하다. 왜냐하면 [GP506]이 사용하고 있는 그래서 영화 전반의 구조를 책임지고 있는 장르의 규칙이 전형적이다 라는 것과 이것이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하면 애초부터 감독은 [GP506]이 장르 영화가 되는 것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는 바꿔 말하면 [GP506]을 단순히 장르 영화로 읽어낼 경우 이 영화 안에서 장르의 규칙을 충실히 따른 영화의 구조이외에는 아무 것도 읽어낼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안 좋게 말한다면 장르와 이야기가 따로 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매끈해 보이는 [GP506]의 내면에는 이러한 균열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이 영화가 가지는 한계이자 약점이기도 할 것이다.



[GP506]이 간과한 것

우리는 공수창 감독의 전작인 [알포인트]가 작가적 의식과 장르적 재미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또한 우리는 두 가지 요소를 융합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알포인트]가 어느정도 모범 사례를 보여주었다면 [GP506]은 안타깝게도 작가 의식 또는 장르적 재미 둘 중에 어느 하나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다. 이유는 이렇다.

인물들이 빠져 나올 수 없는 공간, GP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생태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비무장지대다. 인물들이 처음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도 비무장지대 안에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미스터리한 비무장 지대. 그러나 [GP506]에서 전염의 시작이 되었던 공간은 단지 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일 뿐이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는 상업 영화의 한계, 즉 런닝 타임이 길어지는 것 때문에 편집에서든지 아니면 최초 각본에서 배제되었을 가능성이고 또 하나는 감독이 바이러스나 전염이라는 소재에 대해 단순히 사건이 일어나는 개연성을 위해서만 필요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GP506]의 전개 과정을 보면 이 둘 중에 전자보다 후자에 무게 중심이 가는 데 영화의 전개가 바이러스의 정체나 혹은 미스터리의 땅 비무장 지대에 대한 고찰은 전혀 없으며 흡사 있더라도 간혹 나오는 전염으로 인한 인체의 변화를 단편적으로 포착하는 것(이것도 이들이 병에 걸려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만 쓰였다) 정도 외엔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바이러스에 의한 인간들의 감염과 그 피해보다는 감염된 인간들의 아비규환에 영화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 중반에 나오는 죽어 좀비가 되는 병사의 모습은 전염의 공포를 이야기하고 있다기 보다는 GP에 머물러 있는 인물들이 살아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모두 죽을 것이라는 메타포나 암시에 가깝다. 또한 폐쇄된 공간에서의 아비규환은 [GP506]에서 같은 형태로 두 번 반복(유중위의 에피소드까지 같은 범주라고 본다면 3번) 된다는 점도 감독 스스로 이 영화를 단순한 장르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GP506]이 사건을 풀어 가는데 혹은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조합해 가는 스릴러 장르의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유중위의 진술에 의한 플래시백과 노원사가 GP에 도착한 이후 수색대에 닥친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다. 유중위의 진술이 진실과 거짓의 경계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수색대에 닥친 사건들은 철저하게 진실이다. 다만 유중위의 거짓이라는 게 매우 한정된 시간과 공간 그러니까 노원사가 사건을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인 약 반나절 그리고 공간적으로 GP안에서만 통할 수 있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사건의 내막을 알 수 있게 하는 단서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순차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사건 자체가 이리저리 꼬여 있는 사건이 아닌 굉장히 쉽게 풀릴 수 있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영화 초반에 잠깐 언급 됐던 군 내부의 경직된 지휘 체계에 대한 이야기는 살짝 건드린 수준이고 군대 안에서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하극상 또한 생존의 문제 앞에서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남는 건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들의 몸부림뿐이지만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행동을 설명하기엔 이야기는 너무 급작스럽다. 질병을 숨기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하는 그들의 욕구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하극상을 선택하고 광기에 물들어 행동하게 하는 추진 동력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이는 위에도 밝혔듯 감염과 감염으로 인한 장르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 약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 이는 장르의 규칙을 표면적으로만 지킨 채 장르의 규칙이 줄 수 있는 재미와 긴장감 혹은 내러티브와 주제까지 좌우 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만 드러난 장르의 규칙만 볼 경우 감독이 말하고 싶어하던 주제는 단순한 살육극에 그치는 것이고 그렇다고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에만 치중하면 영화의 긴장감은 사라지는 것. 그러므로 [GP506]은 작가의 자의식이 치열하게 드러나 있지도, 장르 영화의 신선한 재미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GP506]은 공수창 감독이 [알포인트]와 [코마]를 만들었음에도 장르영화 전문 감독으로 남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게 한다. 이는 그가 자신의 장기를 영화의 외형에 두르는데 치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가 갖고 있는 작가적 의식, 결코 나쁘지 않다. 다만 그가 장르 영화를 계속 만들고자 한다면 그가 가진 자의식의 표출보다는 장르의 규칙을 더욱 가다듬고 세련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풀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단지 장르를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내는데 이용만 할 뿐 장르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공수창 감독과 [GP506]은 순수하게 장르가 주는 재미보다는 무거운 주제나 복잡한 이야기에 치우쳐 있는 우리 나라 (장르 영화 답지 않은)장르 영화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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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테이큰(Taken)' 스릴있고, 제대로 된 추격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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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지만, 흔히 일어나지는 않는 사건, 인신매매 일반인들이라면 자신의 가족이 납치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때 어떤 대처를 할 수 있을까? cia출신인 ‘브라이언’(리암 리슨)은 자신의 딸 '킴'(매기 그레이스)이 납치 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그 순간 즉각적인 대처를 하는 브라이언, 과연 cia출신답다. 17세 나이의 '킴'과 19세 친구 '아만다'가 파리로 여행을 가서 납치를 당하게 된다. 알바니아계 인신매매 조직은 파리로 여..

    2008/04/16 16:22
  2. 폐쇄성과 폭력성이 극에 달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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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P506 ( 감독 공수창 / 2007 ) 알포인트의 감독이 만든 또 다른 군대영화.. '감독이 군대에 무슨 한(恨)이라도 맺혔나?' 처음 영화예고를 접했을 때부터의아했더랬다.'알포인트'라는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본 터라, 비슷한 소재를 갖고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할까, 한편으로는 궁금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군대영화

    2008/04/16 17:50
하성태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상반기 한국 장르영화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비 블러드>의 공통점은?
 
올 아카데미를 휩쓴 영화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정답은 두 영화를 연출한 코엔 형제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모두 한때 미국 독립 영화의 기수들이었다는 점이다. 작가적 고집과 안목을 갖춘 그들이 아카데미에 입성함으로써 예술적 상업 영화 감독의 이름을 공고히 한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이러한 예는 차고도 넘친다. 이건 상업적이거나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을 옹호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스릴러의 장인 알프레드 히치콕은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과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의해 재발견됐고, <죠스>와 같은 재기발랄한 장르 영화로 시작한 스필버그는 지금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거장의 자리에 올랐다.

우리 사회 최고의 순간을 추격해보자

영화 장인들이 만든 상업영화들이든 아니든, 영화는 결코 단순한 오락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학자 수잔 헤이워드는 "장르적 관습들도 '진화'하고 경제적·기술적·소비적 이유들로 변형을 겪는다, 그것들은 역설적이지만 보수적인 동시에 진보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다"고 기술한 바 있다.

장르는 제작·마케팅·소비 과정을 통과하면 세상, 그리고 관객과 조응한다. 다시 말해, 동시대의 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건 우리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1·2월 개봉해 한국 영화 흥행을 주도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추격자>는 스포츠 드라마와 스릴러라는 장르적 외피를 쓰고 있지만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충분히 기능한다. <바보><숙명>과 <GP 506> 또한 멜로와 느와르·공포라는 장르 안에서 의도였든 아니든 한국 사회의 무의식들을 품고 있다.

한국영화들이 점점 장르의 틀에 매달리고 있다. 관객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산업적인 요구임을 감안하더라도 좀 더 총체적인 시각으로 읽을 필요성을 느낀다. 각기 다른 장르지만 어떤 영화는 장르성에 포획되고, 또 어떤 영화는 작가적 인장을 찍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와 대중 사이에 흐르는 어떤 공기가 포착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 감안하고 올 해 개봉되어 관객들의 관심을 받은 우리 영화 5편을 거들떠보도록 하자.

<우생순> 감동의 외인구단, 지금 이 곳에 서있다

사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크랭크인 전부터 말들이 많았던 프로젝트다. 작가주의 를 표방했던 임순례 감독이 '아줌마'들을 주인공으로 핸드볼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중성이 검증되지 않은 감독에, '제3의 성'이라 희화화되는 인물군으로, 비주류 종목을 영화화한다고 했으니, 촬영 종반까지 투자가 마무리되지 않아 그리스 로케이션을 짧게 끝내야 했다는 말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실화'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영화가 승승장구하자 이러한 약점들은 오히려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사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스포츠 드라마의 장르성을 바탕으로 '아줌마'라는 마이너리티를 보듬은 휴먼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임순례 감독은 '오합지졸들이 결국 자신만의 감동적인 승리를 일궈낸다'는 스포츠영화의 공식을 지켜내면서도 그녀들을 '건강하게' 긍정한다. 경기 신에서조차 카메라를 너무 들이대지 않고 폭넓게 조망하는 동시에, 올림픽이 끝나면 또다시 빚더미와 비정규직의 비루한 삶으로 돌아가는 미숙을 응원하는 것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흥행이 한국 대중들의 실화 신드롬에 기댄 측면이 다분하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임순례 감독은 분명 장르 공식을 배반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발을 디디고 서서 기어이 작가적 인장을 찍어냈다.

물론 엔딩의 실제 인터뷰 화면이 '오버'라는 지적도 있지만 한국 사회 내에서 핸드볼의 위치를 감안한다면 눈물의 극대화나 현실의 환기, 두 측면 모두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가치는 소재와 캐릭터들의 생생한 묘사로 장르성을 넘어서며, 전복과 연대 그리고 생생한 현실감을 성취해냈다는 데 있다. 그것도 과거나 무국적의 공간이 아닌 지금, 이 곳을 딛고 서서 말이다.

<추격자> 전력을 다해 뛰는 당신, 그냥 버티시라

500만 관객 동원을 목전에 둔 <추격자>는 "<살인의 추억> 이후 최고의 스릴러"라는 상찬을 듣는 중이다. 비슷하게 <공공의 적>이 연쇄 살인범과 '좀 덜 나쁜 놈'의 대결이란 소재를 코미디로 풀었다면, <추격자>는 초반부터 범인 영민(하정우)의 정체를 드러낸 뒤, 이를 뒤쫓는 보도방 주인 중호(김윤석)의 피로감을 뒤쫓는다.

자기가 사지로 내몰았던 보도방 여자들 중 미진(서영희)만은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 전직 경찰이지만 지금은 이른 바 '포주'인 중호가 24시간 넘게 영민을 뒤쫓는 무의식에는 이러한 자괴감과 무력감·절망이 뒤섞여 있다.

그렇다고 영화는 그가 개과천선할 여지를 마지막까지 조금도 내비치지 않는다. 한국이란 시스템이 낳은 기형적인 산물은 '사이코패스' 영민이 아니라 폭력적이고 천민자본주의 시스템에 길들여진 중호일테니.

'범인이 누구일까'보다 '범인을 중호의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냐'를 쫓아가는 <추격자>의 서스펜스는 바로 미진의 생사 여부에서 발생한다. 틈틈이 그녀의 탈출기를 관전시키던 나홍진 감독은 미진이 영민의 손으로 무참히 살해당하는 순간을 생생히 중계한다.

이전 희생자들이 죽음은 건너뛰었건만 미진만은 슬로우모션과 클로즈업 기법을 사용, 흩날리는 피를 친절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관객 모두가 살기를 바랐던" 미진의 죽음은 관객들의 공분을 일으키려는 나홍진 감독의 철저한 계산인 셈이다.

현실에서 뒤이어 터진 안양 초등학생 살해범과의 비교는 너무나도 게으르고 우연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미진의 무참한 죽음을 재현하면서까지 리얼리티와 분노를 요구하는 <추격자>의 방식에서 강력범죄와 '사회적' 죽음에 부지불식간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를 본다.

많은 관객들과 글쟁이들이 그 장면의 윤리성을 제기했지만 그럼에도 500만 가까운 관객들이 <추격자>를 찾는 이유는, 그러한 강력범죄를 대리 경험하고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마치 미국 관객들이 이러저러한 영화와 드라마로 9·11 테러를 소비하는 것과 비슷하게.

<추격자>가 품은 한국 사회의 공기는 오물 세례를 받는 서울시장이나 경찰의 무능함에 있지 않다. 우리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아무리 '중호'처럼 전력을 다해 뛰는 자가 있더라도 죽고 말 거라는 절망감이 그 요체다. 그리고 나홍진 감독은 관객들에게 사이코패스들은 어떤 심리적 원인도 없고 지켜줄 시스템도 낡았으니 그저 "버티시라"고 충고하려는 듯 하다. 그게 바로 미진이 죽어야했던 이유일 것이다. 

<바보> 구질구질한 뒷골목은 어디로 가고...

시작부터 <바보>는 젊은 독자들이 열광한 강풀의 동명 원작 만화와 경쟁해야 할 운명이었다. 원작 만화 <바보>는 20대 중후반 독자들이라면 동네에 한 명씩은 있었던 '바보' 형이나 친구를 아련한 추억의 시공간과 우리 동네로 불러낸 뒤, 지금은 사라져가는 가치인 그의 순수함을 본받자고 권유하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바보 승룡(차태현)이의 순수함에 감화된 첫사랑 지호(하지원)는 손을 놓았던 피아노를 치러 다시 외국으로 향하고, 뒷골목 인생이었던 친구 상수(박희순)과 애인 희영(박그리나)은 자영업자와 일자리(비정규직인지 정규직인지는 확실치 않지만)를 얻어 새출발을 도모하고, 고등학생인 동생 지인은 장애인 오빠의 진심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바보>는 희생의 멜로드라마다. 그러나 영화에서 바보 승룡이가 첫사랑을, 동생을, 친구를 위해 희생하고 떠나가는 궤적을 그리는 동안, 원작에 등장하는, 술파는 카페 여급 희영과 상수의 이야기는 대폭 줄였다.

구질구질한 인생사가 녹아든 상수와 희영의 어두운 이야기는 얼개만을 남겨둔 채, 차태현과 하지원, 두 선남선녀가 연기한 승룡이와 지호의 애틋한 감정에 치우쳤다. 원작 <바보>가 지닌 감동의 폭이 영화 <바보> 속에서는 오히려 반 토막이 나버렸다.

영화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 지닌 의미를 중시해 동생 지인의 감정선을 세부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어찌보면 '바보'의 희생과 죽음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었던 '바보'들의 격리와도 같은 과정으로 보인다. 원작의 애잔함과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과감히 버리고, 또 급작스런 영화적인 결말을 대신해, 오빠를 이해하는 동생과 그를 아끼는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결말을 그렸다면 영화 <바보>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변모했을까?

<숙명> 너무 게으른 인생투정... 꽃미남이라도 안 괜찮아



<숙명>은 송승헌과 권상우가 없었다면 완성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두 한류 스타의 출연으로 투자를 보장받았을 이 영화는 <파이란>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애, 그 참을수 없을 가벼움>을 연출했던 김해곤 감독의 작품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시대착오이다.

사실 느와르, 갱스터 장르는 사회에 기생하는 악과 그 안에서 바둥거리는 주인공들을 비장미로 버무려낸 장르다. 구조적으로 거의 신화화된 장르이면서 우리에게는 <스카페이스>보다 <영웅본색>류로 친숙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숙명>은 진짜 그러한 신화화되고 장르화된 길을 어설프게 밟으려고 한다.

심히 삐걱거리는 건 현실적인 대사들과 지극히 전형적인 타입의 캐릭터들이 부딪칠 때다. 김해곤 감독표 생생한 '대사빨'은 철중 역의 권상우가 욕을 입에 달고 나와도 체화되지 않은 상태이며, 오히려 돋보이는 건 무시무시한 '자학의 달인' 도완역의 조연 김인권이다.

한껏 멋을 낸 송승헌의 내레이션이 공허해 보이는 건 이 영화가 꼭 2008년이 아니어도 괜찮을 만큼 우정·배신·파멸이라는 장르의 공식을 '수박 겉핥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폭' 회사의 네 친구가 끝내 막다른 제 갈 길을 간다는 수컷들의 인정투쟁기 <숙명>은 그 만큼 시대착오적이다. 아무리 ‘나쁜놈’ 철중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는 상황이 아파트 건설 건이라고 치더라도, 이건 다 <우아한 세계> <짝패> <비열한 거리> 등이 써먹은 소재다. 미안하지만 '꽃미남이지만 괜찮아'라고 하기엔 <숙명>을 보는 우리의 감수성은 훨씬 더 성숙해 있다는 걸 염두에 두시길.

<GP 506> 장르의 미로에서 길을 잃은 분단 미스테리



공수창 감독의 <알 포인트>는 가장 뛰어난 한국산 호러 영화 중 한 편이다. '손에 피를 묻힌 자,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는 경고는 베트남이란 한정된 공간과 우리 아버지들이 피를 묻혔던 공통의 원죄의식을 불러일으키며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알 포인트>와 함께 공수창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하얀전쟁>까지 포함해 '밀리터리 3부작'이라 부를 수 있는 <GP 506>은 비무장지대의 최전방 경계초소 GP(Guard Post)를 배경으로, 공포의 동인을 귀신이 아닌 원인 모를 바이러스로 치환했다. 21명의 소대원이 죽어나간 그 자리에 당도한 또 다른 21명의 소대원들. 그들이 목도한 믿지 못할 상황이라는 점은 전작과 닮았지만 말이다.

폐쇄성과 원죄의식을 장르와 역사에 버무려냈던 전작과 달리 <GP 506>은 일단 중반까지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나"에 대한 미스터리 구조에 매달린다. 무리수를 둔 반전과 이중의 회상 장면은 수사 담당 노 원사(천호진)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이유를 대더라도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이러한 섬세한 장치들이 '분단이 낳은 정체모를 바이러스'가 빚은 참극이라는 주제의식과 조화를 이루었나 하는 대목은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그건 우리를 불안하게 했던 '타자'와 그로 인한 심리적 동요가 선명했던 <알 포인트>와 달리 <GP 506>의 지향점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은유하는 바가 분단이 빚어내는 피로감과 상처들이라는 건 짐작 가능하지만 <GP 506>은 그걸 친절히 설명해 주지 않을 뿐 더러 의도적인지 편집상 실수인지 모호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중립적인 노 원사를 통해 그걸 덮어두기 위해 모두 다 희생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니까 '남북군사'문제는 어디까지나 은폐되어야 하고, 그것으로 평화를 유지해야 된다는 기이한 서사 구조. <알 포인트>의 명백한 역사와 달리 공수창 감독이 고민했을 지점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영화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점들이 <GP 506>을 갸우뚱하게 만든다. 만약 예산이 적은 B급 영화였다면 분단의 상처로 발생한 좀비들이 비무장지대를 넘어오는 전복적인 결말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같은 비극일지라도 오경필 중사만은 살려두었던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영화는 그렇게 현실은 반영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진정 행복한 순간은 궁지에 몰려 자살을 기도한 미숙의 남편이 살아남아 병상에서 눈물을 흘릴 때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미숙은 승부던지기에 실패한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리라'는 긍정과 부정의 변증법.

다소간의 판타지라고 추궁할 관객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한국영화들은 너무나도 '죽음'을 비장하게, 그리고 손쉬운 선택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걸 너무나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건 장르 법칙과 상관없는 문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제외하고 장르가 다른 네 편의 영화 모두 주요 인물들이 죽어나갔다.

어쩌면 한국 사회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반증일지 모른다. 비약하자면 생계형 혹은 사회적 죽음과 맞먹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는 뜻일 수 있단 얘기다. 그걸 장르 영화들은 장르 법칙이란 허울에 숨어서 반영하고 있는지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관객들은 현실을 비정하게 직시한 영화들도, 말랑말랑하기 만한 로맨틱 코미디도 외면하고 있는 중이다. 조폭코미디를 봐도 웃다가 꼭  번쯤은 울어줘야 하고, 비극적인 결말에도 적잖이 길들여져 있다.

상위 몇 퍼센트를 제외하곤 우리가 꼭 그렇게 불안정하게 혹은 감정의 진폭이 큰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영화는 그렇게 현실은 반영하는 중이다. '다이내믹 코리아'에서도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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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 총선은 20대의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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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총선은 20대의 승리입니다!!!!!운동권이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어댔지만20대는 국민성공시대 개막을 위해 한나라당을 선택하였고 이로서 운동권들은 극소수 중의 극소수임이 드러났습니다.저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들은 강하지 않습니다.운동권의 폭정에 신음하면서도 저들에게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던 분들은이번 선거결과를 보고 용기를 내 진리를 실현하고 정의의 심판을 내려주십시오.운동권의 실체가 드러난 만큼 이제 더이상 두려워하거나 주저할 ...

    2008/04/10 16:20
백건영


아시는 분도 있겠으나, 모 라디오에서 매주 토요일 생방송을 하고 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그 주의 주요한 이슈를 나름 자세하게 다루는 것을 포함해 한주의 영화계 소식을 묶어 소개하는 시간인데, 첫 방송을 시작한 작년 7월 이후 어떤 경우에서도 심형래와 관련한 소식을 방송에서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럴 가치도 못 느끼거니와 뭘 하던 나와 무관한 인물이라 생각해서이기도 하고, 별 시덥지않은 성과를 마치 조국광복이라도 이뤄낸 양 호들갑 떠는 언론의 죽 장단에 나까지 끼어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방송에서 심형래 이야기를 하고야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떡밥에 걸리고 만 것인가. 발단은 이렇다.




3월 11일 한국수출보험공사는 문화수출보험의 1호 수혜자로 심형래 감독의 차기작 [라스트 갓파더]를 선정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문화수출보험이란 수출계약이 체결된 영화의 투자와 대출거래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수출보험공사가 보전해주는 제도이다. 요컨대 수출된 영화가 국내흥행과 부가판권시장까지 포함해 손실을 입었을 경우 계약범위 내에서 이를 보상해준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각에서는 [라스트 갓파더]의 흥행과 수출가능성은 물론이고 완성 자체를 의심하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필자는 심형래가 감독과 주연을 맡게 될 차기작의 스토리와 흥행가능성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 투자와 제작은커녕 초상권 합의도 얻지 못한 단계의 영화에 대한 논점으로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이번 협약이 보편타당한 절차에 의해 적법하게 이루어졌느냐는 것이다.

작년 12월 6일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이에 체결된 문화수출보험의 내부규정을 살펴보자. 문화수출보험에는 영화-투자형, 대출형과 영화펀드형의 2가지 구분이 있다. [라스트 갓파더]의 경우는 영화-투자형에 해당되며 투자형 보험의 지원대상은 ‘총 제작비 예산액 80억 원 이내 3년 이내 극장상영용 영화로 수출이 계획된 영화를 대상’으로 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또 펀드형의 경우도 출자금 총액이 100억원 이내의 펀드에 한하여 지원대상이 될 수 있다. 이때 손실보전 한도는 투자형은 제작비의 70%이고 대출형은 90% 이내이다. 그런데, 심형래 측이 밝힌 대로라면 [라스트 갓파더]의 총제작비 예정액인 200억 원은 자격요건을 초과하는 금액이다. 때문에 80억원 이내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로 한정시킨 보험의 수혜자로 200억원(물론 제작이 완료되지도 않았으므로 얼마가 들어갈지 알 수 없다)짜리 영화를 선정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번 수출보험 수혜자 선정과 협약은 영화계 역시 실용주의, 실적주의의 자장 안에 편입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이 영화가 시나리오조차 만들어지지 않았음에도 “어쨌든 그런 사람(대부를) 컨택해서 한국 코미디를 접목 한다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고, 한국 코미디가 먹힐 수 있다고 확인이 됐고, 그런 것 자체가 한국수출보험공사가 하기엔 상당히 타당하지 않나 했다”며 수출보험공사 직원이 밝힌 선정사유가 반증해주고 있다. 추상적인데다가 설득력이 없는 선정근거가 아닌가? 대부와 한국코미디의 결합이 가지는 의미가 대체 무얼 말하는지, 한국코미디가 먹힐 수 있다고 확인이 됐다니, 무엇에 근거했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시나리오 없이 투자를 받는 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는 한 번이라도 제작자나 투자자를 만나본 적이 있는 영화인이라면 너무나 잘 알 것이다. 게다가 투자위축으로 인해 시나리오뿐 아니라 배우캐스팅 단계까지 가도 투자가 쉽지 않은 게 요즘 한국영화계 현실이다. 설사 투자가 성사되더라도 필요시점에 맞춰 자금수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컨대 [우리 생의 최고의 순간]은 언론시사회 전날에야 제작비 투자가 끝났고 이런 자금부족으로 인해 해외로케이션의 대부분을 포기하거나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문화수출보험은 이처럼 얼어붙은 투자환경에 활력을 주고자 만들어진 상품이다. 일부 언론에서 “영화업계는 이 같은 문화수출보험이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영화에 활력을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으로는 괜찮은 시나리오가 있더라도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에서다.”라고 언급하는 것도 문화수출보험의 설립 취지와 목적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수출보험공사는 시나리오조차 없는 영화와 손을 잡을 태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결과적으로 이번 계약은 한국영화발전과 수출촉진을 위한 공공재의 성격보다는 투자 받기 어려운 특정영화에 물꼬를 터주는 보증서의 역할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필자가 앞서간다고 난리칠 집단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번 협약은 말 그대로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양해각서)이다. 본 계약 이전단계의 절차일 뿐 아직 확정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앞서 이번 협약과 관련해 [라스트 갓파더]의 완성도나 흥행여부는 관심이 없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그러니까 이번 협약의 경우 부실한 시나리오가 나오거나 여타의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 한 계약으로 이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1호 수혜자와 관련한 선정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보험공사의 공신력 실추를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본 계약으로 이어지도록 누구보다 수출보험공사가 팔 걷어붙이고 나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문화수출보험의 첫 수혜자라는 1호 계약이 가지는 상징성에 밀려 설립취지가 훼손되고 왜곡될까 걱정스럽다.

모름지기 제도란 합목적성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오로지 미국시장이 갖는 의미와 수출가능성이라는 불확정성에 의존하여 통상적인 영화제작관행에 배치되고 내부규정에도 어긋나는 대상을 1호로 선정했다는 것은, 그 시작부터 파행을 예감케 한다. 한국영화 발전과 수출촉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공상품이 투자자를 불러 모으는 미끼에 그친다면 없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말 그대로 좋은 시나리오로도 자금을 구하기 힘든 영화, 국제경쟁력이 충분한 80억~100억 내외 영화의 지원책으로 만들어진 공적 보험 상품을 시나리오도 없는 영화와 덥석 손잡았다는 것에 대해 수출보험공사는 납득할 만한 심사과정과 기준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말이다.

(덧붙임)  영화-투자형  보험약관에 기재된 바에 의하면 문화수출보험 지원대상 영화의 "총제작비"라 함은, 영화의 기획, 제작, 상영, 배급, 유통, 판매 등을 위해 소요되는 자금의 총합계로, 본 예고편, 광고홍보물 제작비용, 매체광고비용, 홍보비 등과 프린트비, 입회비, 배급진행비, 발송비, 번역료, 자막비 등의 국내외 배급비용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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