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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2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우리가 최선의 도덕적 확신에 따라 행동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행동에 의해 좋은 결과가 증명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확신이 최선의 것이었음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는가? 
- 김우창


1980년 5월, 그러니까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그 해 어느 봄날, 광주에서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울에 살던 나를 비롯한 이들이 접할 수 있는 소식이라고는 오로지 신군부의 통제와 검열을 거친 지극히 제한적인 보도형태의 뉴스뿐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면, ‘광주에서 폭도들이 무기를 탈취하여 국가전복을 꾀하고 있다. 그들 뒤에서 북한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내란을 도모하고 있다. 이는 국가위기 사태이다. 조속히 진압되지 않을 경우 북괴의 도발이 우려된다. 시민들은 정부와 우리 군을 믿고 이에 동요하지 말것이며 각자 생업에 열중해주기 바란다.’ 등등. 그렇게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96년 ‘5.18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사태’로 격하되었고 광주시민들은 ‘폭도’로 둔갑되었으며, 그 결과 김대중은 내란음모 및 국가전복기도 죄로 기소되어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것이 적어도 1996년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공적역사이다. 이렇듯 광주에서 벌어진 슬픈 역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복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또한 미국의 암묵적 동의를 얻으면서 신군부의 수장이던 전두환을 대통령 직으로 밀어 올리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그 해 그 곳에 있던 광주사람들의 사적기억 또한 그러할까? 다행히도 세상이 바뀌고 역사가 새로 쓰여 지면서 더렵혀진 기록과 공적역사가 하나 둘 제 모습을 찾기에 이르렀다.


김지훈 감독이 연출한 [화려한 휴가]는 바로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비탄과 슬픔의 기록을 시민군의 시각에서 담아낸 작품이다. 앞서 공적역사와 사적기억의 이야기를 꺼냈듯이, 만약에 1996년 이전에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그 치열했던 야만과 광기의 10일 간을 시민군의 눈으로 그려냈다면, 그것은 사적기억의 산물이자 영화의 사회적 기능수호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 마땅했을 터이다. 그러나 2007년 오늘 만들어진 영화 속에 담긴 것은 공적역사도 아니요 사적기억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철저하게 기획되어 쉬이 대중의 가슴을 데우고 또 식혀버리고 마는 통속소설에 다름 아니다. 그것도 마지막으로 갈 수 록 신파로맨스로 둔갑해버리고 마는, 게다가 100억원이 소요된!


이전 영화들이 그려낸 광주는 주인공의 오늘을 구성하는 기억 속의 한 때로 혹은 그날의 사건이 인물의 현재에 미치는 영향력 정도로 또는 연대기 속에 스며든 현대사의 비중 있는 사건에 머무르곤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80년 광주를 재조명한 시도와 노력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며 광주의 아픔을 본격적으로 거론했다는 점만으로도 의의를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화려한 휴가]가 통속소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 80년 5월의 광주는 어느 순간에 너무 쉽게 보통명사가 되어버렸다. 갈기갈기 찢겨진 주검과 아비규환의 생지옥은 곱게 꽃단장한 망월동 성역으로 너무 쉽게 옮겨져 버렸다. 2007년의 광주는 처절했던 역사를 품은 민주화의 성지도 아니요, 신군부의 군화 발밑으로 잦아든 민초들의 비탄어린 탄식과 몸부림의 기억을 품은 곳은 더 이상 아니다. 이제 광주는 진부해져버렸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거론하고 입에 올리는 일조차, 80년으로부터 87년에 이르는 일련의 민주화투쟁의 역사를 언급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아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변화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거의 최초의 영화 [화려한 휴가]를 삼류신파소설로 둔갑시키기에 이르렀다. 과연 광주는 종결된 역사인가? 그날의 기억은 그들이 지지해마지 않던 이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열었던 화해의 손길 속에 다 녹아 없어져 버렸다는 말인가. 그래도 된다는 것인가?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이뤄졌다는 것인가. 따라서 필자는 영화의 완성도나 그 속에 담긴 의의를 칭찬하기에 앞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업영화로 만들었다”는 제작자나 감독의 말대로 왜 광주이야기가 이토록 축소지향적일 뿐 아니라 안락한 내러티브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영화는 광주시민과 진압군 사이에서 벌어진 피와 살육의 전쟁을 씨줄로 하고, 동생 뒷바라지에 여념 없는 택시기사와 그가 연모하는 간호사 사이에서 싹트는 연정을 날줄로 하면서 긴장과 이완을 거듭하고 있다. 오랜 시간 철저한 고증과 역사기록을 근거로 작업했음을 말해줄 정도로 당시 광주시가지를 재현해낸 세트와 소품은 사실감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기록사진과 똑같은 장면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사실적 재현을 위한 노력과 세밀한 연출력 덕에 우리는 그날 광주 금남로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정도다. 그리고 발포명령과 시민군의 무장과 결사항전에 이은 비장한 최후가 연이어지면서 5월의 광주는 그렇게 한 떨기 꽃잎처럼 떨어지고 짓밟혀져 버린다. 영화는 딱 여기까지다.

그로부터 19년이 흘러 광주의 피를 수혈 받고 호남의 정신을 이어간다던 이가 대통령이 되더니, 광주를 향해, 제 동포의 심장을 겨누어 총 쏘라고 명령한 자를 옥에서 풀어줘 버렸다. 사적으로는 자신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사지로 몰아넣은 자를 용서하고는 대화합의 장이 열렸음을 온 천하에 공표했다. 가히 이것만으로도 노벨평화상을 타고도 남을 일이다. 그렇게 도살자는 죄 사함을 받았고 여전히 전 재산 29만원으로 잘도 살고 있다.


[화려한 휴가]는 이렇듯 모든 것이 용서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화해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믿)는 위험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그날 광주의 이야기는 더 이상 캐비닛 속에 보관된 극비문서가 아니다. 누구나 찾아보면 알 수 있고 사진과 기록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공적인 역사로 탈바꿈해버렸다. 그럼에도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부분, 이를테면 발포명령자에 대한 명확한 암시 내지는 진압군의 심리상태와 서울의 신군부의 움직임과 정치권의 무기력한 침묵 등에 대하여 좀더 분명하게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남들이 다 아는 사실을 한 번 더 언급하고 생생한 이미지로 재현해낸 공간으로써의 광주는, 공식화된 역사로 또한 법적으로 마감된 사건으로 너무 쉽게 종결지어졌기 때문이다.

요컨대 [화려한 휴가]는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영화도 아니요 당시 권력욕에 눈이 먼 자들에게 날리는 재심청구서는 더욱 아니다. 차라리 이것은 억울하게 누명쓴 힘없는 자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적어 내려간 항소이유서에 가깝다. 왜, 80년의 광주가 항소이유서가 되어야 하는가. 끝나지 않은 역사를, 마르지 않은 눈물을 억지로 훔치고 닦아내버린 김대중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가해자들이 야합한 잇속놀음의 결과다.

영화는 공포와 슬픔의 전장을 그려내고 있지만 역사의 한 줄기를 훑어 내려가 시대적 배경과 조우하기보다는 한 편의 매끈한 스펙터클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먹먹할지언정 그날 그 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혹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관하며 침묵으로 광주를 타자화시켜버린 자신의 과거를 채찍질하고 후벼 파는 가슴앓이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 드민 시선, 즉 소녀를 통해 광주를 이야기하고 광주를 통해 소녀를 바라본 그 도저한 시선이, 이 소녀에게 벌어진 일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알기는 하느냐 라는 날선 눈초리가 [화려한 휴가]에는 남아 있지 않다. 카메라는 무고한 시민이 어떻게 총을 들고 시민군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명분을 제공하려 애쓰며, 그들의 눈에 비친 진압군이 살육기계로 둔갑하는 동안 장엄하게 그러나 값싼 상업주의에 담보 잡힌 이미지들이 스크린을 뒤덮을 따름이다. 때문에 영화는 지나치게 잔인하지도 않고 쓸데없이 처절하지도 않은 대신 오히려 관객을 안심시키고도 남을 정도다.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었으되 이미지의 과잉이 뒤바꿔버린 판타지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안도감은 과거의 기록이자 박제된 역사라는 광주를 둘러싼 정치적 현실에 기인한다. ‘광주는 과거일 뿐이고 지금은 대화합의 시대가 아니냐고’ 종결지어진 역사, 투쟁의 기록은 화해와 용서로 그렇게 서둘러 봉인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영화 속 광주는 더 이상 민주화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그곳은 꽃미남 이준기와 여전히 하늘하늘한 유부녀 이요원이 아카시아 향 머금고 걷던 한적한 숲길이고, 그녀를 흠모하던 김상경의 핸들이 춤추던 마을이며, 마음 뜨거워질라치면 반드시 나타나 웃음으로 분위기를 뒤집던 두 배우, 박철민과 박원상이 공존할 만 한 순진한 날라리들의 거처일 뿐이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범재판에 선 아돌프 아이히만 Adolf Eichmann을 관찰한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는 자신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을 통해 그가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가 유태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에게 악마의 성품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생각 없이 명령에 따라 직무를 수행한 ‘사유하지 않음’때문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유하지 않음’ 이것은 60년대 월남파병 한국군에게도 적용되고 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공수부대원에게도 적용되며, 그 야만과 광기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 모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같은 맥락으로 김지훈 감독 역시 사유부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편의 영화를 만듦에 있어 그 소재와 형식의 자율성이 감독의 전권으로 보장되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적어도 유족과 광주시민들 가슴 속에서)끝나지 않은 역사를 너무 수월하게 값싼 스펙터클로 상업화시켜 종결지어버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바로 27년 전 우리가, 광주를 외면한 채 신군부의 만행에 침묵으로 일관했듯이 말이다. 이것이 쿠데타로 규정된 정권이 벌인 살육의 현장을 시민군의 입장에서 그려낸 [화려한 휴가]가 마뜩치 않은 까닭이다. 덧붙여 전두환과 당시 신군부세력은 물론이요 김대중 역시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연 80년 5월의 광주는 역사의 무대 속으로 사라져야 할 추억담에 불과한 것인가? 당신은 광주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화려한 휴가]가 그려낸 광주의 5월은, 진정 검붉은 꽃잎이 금남로를 수놓은 민주화의 물결로 넘실대는가? 영화를 보고 여러분이 판단할 일이다.

(추신) 한국영화가 무척이나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작금에 현실을 놓고 볼 때, 올 여름 한국영화의 구원투수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화려한 휴가]와 관련하여 개봉 전에 이렇듯 비판의 날을 세운 것이 못내 꺼림직 한 것은 사실이다. 울고 싶은 놈 뺨 때린 격일지는 몰라도 필자는 이 영화의 완성도와 작품성을 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80년 광주를 다룬 영화가, 그것도 2007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하필 이런 모습으로 튀어나온 것에 대한 우려와 불만을 토로한 것이며, 그 책임을 일차적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권에게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는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 [화려한 휴가]에 관한 인상비평은 영화가 개봉하면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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