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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꿈을 꾼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필진 리뷰 2007. 11. 12. 15:35 Posted by woodyh98


본격적인 영화 얘기에 들어가기 앞서 풀어놓는 잡담 하나. 대략 몇 달쯤 전에 꽤나 특이한 꿈을 꾸었던 적이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꿈 자체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다. 이제는 무의식의 세계에서조차 더 이상 날지 못하고, 소년 시절의 로망인 거대 로봇도 등장하지 않게 된 이후로 내가 꾸는 꿈은 다 거기서 거기였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기껏 해봐야 ‘이번 주는 로또나 한번 긁어볼까?’하는 정도의 느낌을 던져 주는 게 전부랄까. 따지고 보면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꿈도 그냥 잠자리가 좀 뒤숭숭했네 정도로 끝낼 수 있는 그런 꿈일 뿐이었다. 하지만 꿈 자체 보다는 깨어난 직후에 남겨진 그 묘한 여운이 그날의 꿈을 아직도 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꿈 속에서 난 누군가와 함께 있었고 제법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비몽사몽 간에 어렴풋하게 의식이 깨어나고 있음을 느끼던 찰나, 꿈 속의 그녀가 내게 말한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네? 잘 가” 참 신기했다. 난 지금까지 꿈을 일종의 무의식적인 두뇌의 활동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꿈 속에서조차 이것이 무의식이고 곧 깨어날 것임을 인지하고 있다면, 거기다 그 안에 속한 허구의 캐릭터조차도 그 속성을 꿰뚫어 보고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의식일까 무의식일까? 이도 저도 아닌 시시껄렁한 몽상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꿈을 매개 삼아 겪어본 실감나는 가상 체험일까? 어쨌든 꿈 속의 그녀가 던진 저 한마디와 함께 난 눈을 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짧지만 깊게 ‘휴우’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기한 건 잠깐 동안이라도 생각을 하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 뭔가에 홀린 듯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이란 사실이다. 물론 연예인도 아니고 내가 알고 지내온 것도 아닌 생면부지의 누군가와 함께 있는 꿈을 꾼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 몇 초 동안이라도 깨어난 뒤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잽싸게 일어나서 이불 개고 씻고 출근 준비해야 할 바쁜 아침 시간에 대뜸 내뱉었던 그 짧은 한숨의 의미가 난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고 느껴볼 수도 없는 것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라고 말이다. 이명세의 [M]은 공개되는 것과 동시에 전작인 [형사, Duelist] 이어, 아니 [형사, Duelist] 보다 더욱 드센 논란을 몰고 왔다. 어떤 이는 말한다. 10분이면 될 이야기를 2시간 동안 늘려놨다고. 난 저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바이다.


다만 그 10분을 비판적인 입장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말로 [M]은 딱 10분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이야기가 설명 가능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한 남자가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린다. 잊혀진 옛 추억을 끄집어 내기 위해 희미한 기억들을 헤집는다. 그 와중에 허구인지 실제인지 모를 망상 속을 헤매게 된다. 첫사랑에 대한, 또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첫사랑을 되새기는 이야기는 쎄고 쎘다. 이미 [첫사랑]이라는 영화를 만든 적이 있는 이명세가 재차 동참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첫사랑에 대한 회고담과 판타지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첫사랑을 떠올린다는 것은 단지 옛 연인의 얼굴을 떠올린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에 [M]이 곧이곧대로 관습적인 첫사랑의 판타지를 재현시키고자 했다면 드라마 [겨울연가]가 그리했듯이 첫사랑과 꼭 닮은 누군가와 (혹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로 돌아온 옛 연인을) 조우한다는 설정을 끌고 왔으면 될 일이었다. 그것은 곧 시간을 뛰어넘어 완성되는 사랑의 신화를 뜻한다. 하지만 이명세는 그리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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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과거와 현재, 의식과 무의식, 실재와 허구 등이 어지럽게 뒤섞인 공간 속에 주인공 민우를 던져 놓고 밑도 끝도 없는 이미지 추적 게임을 벌이듯 제자리를 맴돌고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다닌다. 이것은 한편으로 봉인되어있던 과거로의 초청장임과 동시에 번뜩이는 찰나의 영감을 위해 공상의 세계를 끝없이 유영해 나가는 여행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 과정 위에는 단순히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기 위한 노력뿐 아니라 머리 속을 뱅뱅 맴도는 막연한 몽상 덩어리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한 몸부림도 함께 겹쳐지기 때문이다. 애초에 [M]은 미지의 대상에 대한 호기심 외에 민우가 봉착한 작가로서의 한계도 전제하고 있었다. 민우는 새로운 소설을 완성하고 작가적 초심을 되찾으려 고민을 하던 와중에 첫사랑의 미스터리와 마주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 행위의 중심에 자리한 것이 바로 잊혀진 첫사랑이지만 달리 보면 첫사랑이란 작가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소설을 완성하겠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다가서기 위한 열쇠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다. 즉, 민우가 찾고자 하는 것은 첫사랑과 그로 인해 촉발되었던 어떤 감정의 총체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어느 소설가의 관념 속에서 존재하는 고민과, 정돈되지 않는 자의식에의 탐구를 과연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 이야기가 머리 속에서 뱅뱅 맴돌고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다던 민우의 고민은 정말로 같은 곳을 계속해서 뱅뱅 돌고, 어둠 속을 배회하는 것으로 시각화 된다. 어렵고 난해하다며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따지고 보면 이명세가 고수하는 입장 자체는 한편으로 직접적이며 정직하기까지 하다. [M]은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비쥬얼로써 혼란에 빠진 인물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영화다. 그리고 이명세의 영상은 ‘내 마음은 저 호수처럼 맑고 잔잔하다’라고 전후 맥락을 맞춘 문법보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며 단박에 내지르는 시적 언어에 더욱 가까이 다가 서 있다. 그는 펜 대신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누군가의 내면을, 그 감정의 상태를 계속해서 환기시키며 체험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영화의 근본주의자라는 감독 본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야 없겠지만 분명 [M]은 초기영화의 원초적인 기능과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사운드와 이미지의 충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M]은 초기의 무성영화가 그리 했던 것처럼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보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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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어떤 상황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뿐 아니라 어떤 특정의 시절, 더 나아가 그 때의 감정까지도 덩어리 채 씹어 삼키듯, 되새기며 담아내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환된 것이 첫사랑이다. 첫사랑의 본질이란, 결국엔 그것이 두 번 다시 재현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머리 속에서 ‘뱅뱅 돌던’ 의식의 실마리를 찾으려 끊임 없이 같은 곳을 ‘뱅뱅 돌던’ 민우는 마침내 먼 옛날 미미의 집 앞에서 자전거를 끌며 ‘뱅뱅 돌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 내는 것으로 그 원류를 찾아낸다. 하지만 현재의 민우에게 그 때의 풍경이란 직접 개입할 수는 없는, 그저 말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몽상 속의 이미지에 불과할 따름이다. 시골 동네임을 감안하더라도 도저히 90년대 중반의 그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민우의 고향 풍경은 그의 의식 속에서 한껏 미화된 지난 기억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그러나 이명세의 1993년작 [첫사랑]을 연상시키는 세트와 조명은 그 자체로 일생에 단 한번뿐인 그 모습 그대로 박제화 되어버린 어떤 감정의 묶음을 자극하는 열쇠가 되어주고 있다. 이제 그 공간 속에는 김혜수가 연기했던 영신은 없고 유령처럼 떠도는 이연희의 미미가 들어서 있다.


영신이 그토록 가슴 설레며 바라보았던 연극연출가 창욱 역의 송영창은 세상에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중년 사내가 되어 돌아왔다. 그때의 사람들은 떠나고 없거나 이미 변해버렸건만 무의식의 와중에 오롯이 남아있는 풍경만큼은 오래 전 지나쳐온 감정들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두 번 다시 재현될 수가 없는 것이다. 소녀에서 숙녀가 되어가던 [첫사랑]의 영신은 ‘우앙’하며 터져 나오는 울음과 함께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그 시절을 지나쳐 갈 수 있었지만 이미 성인이 되었고 자의식과의 끝없는 싸움이라는 숙명을 안고 살아가야 할 소설가 민우는 아쉬움 속에서 그 시절을 곱씹을 수 밖에 없다. 미미가 울며 불며 소리쳐도 그것은 꿈 속의 공허한 외침이며 현재를 상처 내서라도 기억되고 싶은 과거의 넋두리에 불과할 뿐이다. 분명 이명세가 화두로 꺼내 올린 첫사랑은 단 10분이면 모든 설명이 끝나는 유아기적 판타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건과 감정이 남기는 여운이란 시간과 외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첫사랑]이 그러했듯, [M] 또한 찰나의 감정이 지니는 영속성을 담고자 하는 영화이다. [첫사랑]에서 이명세는 봄날의 목련꽃처럼 져버린 그때 그 시절에의 아쉬움을 영원할 수 없기에 더욱 소중한 유한성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냈었다.


이제 그 업그레이드 확장판이라 할 수 있을 [M]에 이르러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감정들을 마치 주술처럼, 화면 위로 불러내려 한다. 중요한 건 첫사랑과 그에 얽힌 체험만이 아니다. 그 순간에 느꼈을 단 한번의 감정, 그리고 그 이후에 남겨져 있다가 부지불식 간에 떠올라 송곳처럼 마음 속을 헤집고 삐쳐나올 그리움이야말로 [M]을 휘감고 있는 미스터리의 실체인 것이다. 어떤 대상 너머에 있는, 잡을 수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말로썬 제대로 설명조차 되지 않을 그 무엇인가를 담아내려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야심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소설 속에 첫사랑을 (정확히는 그 첫사랑의 이미지를) 등장시키고 더 나아가 소통까지 하려 드는 주인공 민우는 분명 영화를 만드는 감독 이명세의 분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에게 영화는 일종의 노스탤지어이며 자신만의 이상한 나라를 향해 떠날 수 있게 하는 요술봉이다. 무엇보다 그에게 영화란 그리움에 지친 어느 몽상가에게 허락된 유일한 휴식과 만남의 공간이다. 어느 멋진 날에 내가 꾸었던 꿈과 그 꿈에서 깨어나며 내쉬었던 깊은 한숨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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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oulco.tistory.com BlogIcon 지성의 전당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존재한다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

    2019.02.05 17:2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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