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1990년 명보극장, 애타게 민공례에 대한 기억을 찾아서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중 한사람인 김태용 감독이 <우묵배미의 사랑>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설렘은 2년 전쯤 광화문의 한 극장에서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1991)을 다시 스크린으로 보던 날의 떨림과도 유사했다. 다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다니!

<우묵배미의 사랑>이 개봉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주저 없이 명보극장을 찾은 것은 1990년 4월 초 쯤의 일이다. 이미 1년 전 공중파를 통해 인기몰이를 한 드라마 [왕룽일가]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명보극장에 대한 무한신뢰 때문이었다. <깊고 푸른 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위시한 한국영화 개봉 비중이 높았던 곳도,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음향시설을 갖춘 곳도 명보극장이었기에 내게 있어 명보극장 개봉작이란 곧 볼 만한 좋은 영화를 의미했다.

장선우의 세 번째 연출작 <우묵배미의 사랑>(1990)은 서울에서 소일하다 예전에 살던 우묵배미로 다시 돌아간 배일도가 그곳에서 미싱사 민공례를 만나 벌이는 사랑과 불륜의 이야기를 회고담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박영한의 소설 『왕룽일가』에 따르면 우묵배미는 “서울시청 건너편 '삼성' 본관 앞에서 999번 입석을 타고 신촌, 수색을 거쳐 50분쯤 달려와 낭곡 종점” 근처에 있는 변두리 마을의 이름이다. 김포 부근에 위치한 소읍으로 예전에는 완연한 시골이었겠지만 지금은 연립과 빌라의 신축 분양 광고가 줄지어 나부끼고 있는,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곳이다. 다만 영화에서는 ‘우묵배기’가 구리시 너머 어디쯤 위치한 것으로 보여 지는데 이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서울의 지속적 팽창이 마침내 인근 도시까지 파고들어 난개발을 유도한 결과 생겨난 동네가 '우묵배미'이고, 영화는 그곳에 있던 원주민과 흘러들어온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난 이야기라는 점에서, 유사한 삶의 풍경을 간직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무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남편의 학대와 힘겨운 노동 속에 사는 민공례와 “아무 남정네 앞에서나 절구통만한 엉덩이를 흔들어대고 헤프게 웃음 짓는” 천박하고 거친 아내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배일도 사이의 불륜을 어떤 구원처럼 묘사하고 있다. 추레한 공간과 남루한 삶을 전경화시키고 있음에도 이들의 불륜이 한 없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배일도의 아내인 ‘새댁’의 영화 속 위상이다. 이를테면 영화 초반 배일도의 입을 빌려 존재하던 새댁이 어느 순간엔가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데, 이렇듯 돌연한 화자의 교체와 위상변화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가 배일도와 민공례가 아닌 ‘새댁’을 주목해야 하는 것과, 글의 부제를 ‘민공례’가 아닌 ‘민공례에 대한 기억’을 찾아서 라고 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민공례와 벌였던 짜릿한 불륜의 시간들, 말이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을 기억해보자. 그러니까, 민공례가 영원히 사라져버린 시점에서 마무리되는 영화는 민공례가 아닌 다른 여자와 외박을 하고 들어온 어느 날 새벽, 배일도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흥미롭지 않은가? 그녀가 없으면 못 살 것처럼 굴고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 같은 여인 민공례를 만나게 해준 우묵배미를 잊을 수 없다던 그가, 민공례가 떠난 후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들어와서는 그녀를 회상하다니. 그것도 하필 민공례와 낭만적 정사를 나누던 그러나 지금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비닐하우스 옆에서 말이다.

주목할 것은 이 영화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보기 드물게 균질적 완성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인데, 다시 말해 전통과 현대, 고상함과 비속함, 비극과 희극, 육체와 영혼, 연민과 냉소, 카니발과 일상 등 대극의 세계를 통해 당대사회와 긴장하면서 교접하는 방식을 택해온 장선우 영화의 미학이, <우묵배미의 사랑>에 이르러 정점을 찍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민공례와 새댁의 대극적 이미지를 통해 진일보된 계급투쟁의 방식을 보여주는 감독의 시선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영화의 오프닝 신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이며 수동적인 여성의 몰락과 강하고 능동적이며 억센 투사형 여성이 지배하게 될 가까운 미래에 대한 눈 밝은 예언인 동시에, 샛길로 빠질 수밖에 없는 관계에 관한 친절한 안내서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대립적 세계인 세 남녀 사이를 유영하며 그것들을 충돌시키고 화해시키는 동안 만들어내는 리얼리즘, 장선우가 장기로 사용해왔던 영화미학은 관객과의 거리를 제거하며 영화 속으로 빠져들도록 기능하고 있다. 예컨대 영화 종반 새댁에게 붙잡힌 배일도가 옷이 찢겨진 채 끌려나올 때 동네사람들이 그들을 따라가며 택시를 둘러싸던 시퀀스와, 배일도의 고향집에 당도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마당으로 모이는 시퀀스는 카니발처럼 연출되고 있는데, 이 제의(祭儀)는 가정에 안착해 일상으로 되돌아간 배일도와 생선을 발라줄 정도로 조신해진 새댁의 모습으로 이어지면서 관객의 정서적 참여를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 영화주의자임을 자처했던 장선우는 시대를 앞서가는 비평가보다 한발 앞선 시선으로 영화를 찍었고 신인보다 더 결기 넘치는 방법을 통해 시대를 담아낸 인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이 이룬 안정적이고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는 여타 그의 영화들과 비교할 때 이질적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장선우의 영화가 새로운 시기를 맞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이 영화에는 감독의 (민중을 소재로 하지 않은)다른 영화와는 달리 풍자와 조롱의 시선을 거두고 민중의 삶에 대하여 속살거리고자하는 장선우의 속내가 감지된다. 풍자와 비판이 도덕적이거나 하다못해 상상적 우월감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애초부터 우묵배미 민중의 삶은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장선우가 고달픈 민중의 삶 속에서 길어 올린 사랑과 불륜의 따뜻한 휴먼드라마이다. 동시에 그는 어느 추레한 술집 구석에 앉아 배일도와 민공례의 이야기를 엿듣거나 새댁의 악다구니를 사람 좋은 웃음으로 받아넘기기도 하고, 배일도의 외도행각을 눈감아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식인의 형상을 한 검은 뿔테의 주인집 남자, 혹시 그가 장선우의 페르소나는 아니었을까?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684
  • 03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