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인디아나 존스]와 기다림의 시간

필진 칼럼 2008. 5. 26. 11:51 Posted by woodyh98

1984년 5월의 어느 휴일, 더없이 화창하고 더웠던 그 화요일 아침.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종로 3가의 서울극장 주변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침 9시도 안 된 시간, 이미 수많은 인파가 종삼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담요와 돗자리로 무장한 채 밤을 샌 이들도 적지 않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징후는 전날 밤부터 있었다. 뉴스 앵커가 일본의 개봉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나라 영화광들도 밤샘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친구와 조조관람을 약속했기에 극장으로 달려갔다. 부리나케 도착한 극장의 줄은 그러나 이미 종로2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곧 매진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관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조조는 매진되었고 2회 표를 팔 것이라는 안내원의 말이 나오자 실망의 빛이 역력한 이들은 망연자실하거나 더러는 교묘히 접근해오는 암표상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했다. 또 어떤 커플들에게서는 매표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이것이 <인디아나 존스>가 개봉된 24년 전 그곳에 있었던 나의 기억이자 개봉당일 볼 수 있었던 극장가의 일반적 풍경이다.

실로 반가운 그러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인디아나 존스>시리즈가 19년 만에 우리 앞에 다시 찾아왔다. 왠지 모를 의무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영화를 보기 위해 이번에는 인터넷 예매시스템을 이용했고, 일찌감치 자리를 확보한 덕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나머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할 작정이냐고? 금쪽같은 지면에 『나의 인터넷 예매시스템 이용기』를 쓸 요량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라.

어쨌거나 전설의 어드벤처를 맞이한 멀티플렉스의 풍경은 낯설기만 했으니 상영관 로비에서 기다린 10분여의 시간 동안 별 감흥이 생기질 않았다. 분명 기다리고 기다린 영화였는데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작해야 20여명만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들에게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대화를 찾을 수 없었음은 당연한 일일 터. 그럼에도 상영관은 만석이었다. 대부분의 관객이 상영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입장한 것이다. 고작 한 편의 영화일 뿐이니 호들갑 떨면서 기다릴 이유가 없었을 테다. 따라서 관람분위기 또한 별다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드벤처무비를 관람하던 80년대의 극장처럼 거의 모든 관객이 하나가 되어 박수치고 비명을 지르며 환호하는 모습이 사라진 것을 오로지 첨단 CG에 익숙해진 시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영화가 지닌 고유의 특질을 오늘의 극장과 극장시스템이 제거했기 때문은 아닐까?

분명 현재의 극장메커니즘은 영화를 기다리는 즐거움을 제거해버렸다. 즉 순식간에 영화에 다가가는 현재의 발매시스템 하에서 떨리는 기다림의 시간을 맛보리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상영시간에 임박해 극장에 도착했고 별 기다림 없이 입장해 영화를 관람했다. 그렇다고 출발 전까지 영화 생각만 한 것도 아니었다. 외려 전혀 다른 일을 몇 개 처리했고 커피를 마셨으며 지독하게 건조한 책을 몇 장 읽었을 정도다. 만약 24년 전처럼 현장구매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최소한 몇 시간에 전에 도착해서 줄을 서야 했을 것이다. 지루한 기다림을 보충하기 위한 단행본이나 영화에 관한 리뷰가 실린 일간지가 손에 들려져 있었을지 모르고 그런 가운데서도 영화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을 것이다. 또 줄 선 이들 사이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그러니까 먼저 관람한 이들에게서 들은 대로라면 이 정도의 기다림은 하나도 힘들지 않거니와 오히려 당연하다는 식의 장광설과 영화에 관한 정보를 통해 배가되는 기대감 때문에 요동치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게 뻔하다.

영화관에 간다는 것은 정해진 시간 동안 한정된 공간에서 어둠 속 무리의 일원으로 공통의 체험을 얻을 기회에 동참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일지라도 혼자 보는 것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관람하는 것 사이에 현격한 감정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공간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탄식하고 환호하고 눈물지으며 감상한 영화일수록 추억의 질감은 견고해지며 당연하게도 특정영화에 대한 추억은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과 영화를 둘러싼 공간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날 관객은 예매에서 관람까지 헛된 시간이 새나가지 않도록 계획하고 실행해야 안심하는 마치 신경쇠약증 환자처럼 보인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으며 기다림이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동격으로 여기고 있다.

건축가 승효상은 “최근의 건축은 기능성만을 고집하다 보니 사람이 움직이면서 생각할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은 안 보이고 기능만 드러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이제 극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더 이상 낭만과 설렘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이런 감흥을 맛볼 요량이라면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야 한다.) 생각할 거리가 있다면 아마도 캐러멜 팝콘을 살 것이냐 일반 팝콘을 살 것이냐 혹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것이냐 엘리베이터를 탈 것이냐를 결정하는 정도일 것이다. 이미 그곳은 다수의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상영관으로써의 공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스크린으로 몇 백 명이 동시에 이용 가능한 거대한 DVD 방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극장들은 영화를 위한 어떠한 기다림이나 시간의 손실도 끼치지 않으려고 작심한 듯 입장에서 퇴장까지 정교하게 계획된 (그러나 극장의 이익이 우선하는)동선 안에서 움직이도록 관객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에는 앞선 관람자의 경험이 현장에서 전달되는 것을 봉쇄하는 기능도 포함된다. 따라서 영화가 주는 공통의 체험은 출구가 열리는 순간 휘발되고 만다. 여기에 무슨 추억이 담길 수 있다는 말인가.

<인디아나 존스>를 예매하고 관람한 후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내 머리 속이 1984년 서울극장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사라져가는 한 시대의 쓸쓸한 풍경”을 보여준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이 불현 듯 다시 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나의 희망일 뿐이고 추억의 편린일 따름이다. 어쩌면 이러한 영화관 풍경은 우리 앞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찾아오는데, 영화를 둘러싼 환경들은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변하고 있는가. 올바로 변화하고 있기는 한가? 진실로 자문해볼 때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158,895
  • 2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