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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 그러게 말이다. 이 좁고 작은 나라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정말?) 수많은 영화제들이 기획되고 상영된다. 그 수많은 영화제 중 인디포럼의 차별성은 뭐가 될 수 있을까? 이미 공개된 몇몇의 인터뷰들을 참고해보자. 인디포럼 2009의 세 명의 프로그래머 중 한 명인 윤성호 감독은 "영화제가 우후죽순 생겨난 가운데, 변별력을 갖추려고 노력했다"고 답하며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한 셈"이라고 '인디포럼 2009'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올해로 14회를 맞이한 인디포럼은 다가올 29일부터 6월 5일까지 일주일 동안 ‘주먹 쥐고 일어서’를 슬로건으로, 신작 60여 편을 포함 총 70여 편의 영화가 숨 가쁘게 상영될 예정이다. 물론 이 영화제에는 '몇 분 만에 예매가 매진됐다'는 등, 눈길을 확 끄는 뉴스는 ‘당연히’ 없다. 그러나 김숙현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인디포럼은 "지금의 젊은 감독들이 현실과 영화에 대해 어떤 고민을 갖고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지는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따끈따끈한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아무리 비경쟁 독립영화 축제지만, 개‧폐막작은 모든 영화제의 '꽃‘ 아니겠는가. 그래서 만났다. 두 주먹을 '불끈'까지는 아니어도, 슬그머니 쥐게 만드는 개막작 <산책가>의 감독 김예영, <외출>의 서재경, 그리고 폐막작 <소년마부>의 박홍준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이 영화들은 이 암울하고 비열한 시대를 관통해나가는 우리들에게 수 많은 질문을 던진다.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들)‘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2, 30대 젊은 감독들이 수줍지만 재기발랄하게 당신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영화보다 먼저 만나보자!



개막작 1. <산책가>의 김예영 감독
"장애가 아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영화처럼 수줍고 맑았다. 대답 끝마다 햇살처럼 매달았던 해사한 웃음은, '착한'영화를 만든 감독답다 싶었다. 슬프지만 9학기는 요즘 대학가의 트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익대에서 애니매이션을 전공하며 9학기 째 학교를 다니고 있는 두 감독 김영근(27), 김예영(25)의 졸업작품이기도 한 <산책가>는 시각장애인의 영광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사와 각종 애니매이션 장르가 뒤섞인 작품은, 영화라는 시각적인 매체를 통해 보여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촉각적'으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횡단하며 시각적인 것에 익숙한 관객들의 감각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영화 제목을 듣고 산책에 대한 노래(散策'歌')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혹은 산책길(散策'街')라는 해석도 있었지만, 원래는 '산책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산책가 란다. "어떻게 해석해주셔도 좋아요"라는 답변 끝에는 자신들이 만든 작품이지만, 해석은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돌리는 의연함이 엿보였다. 개인사정 상 참석하지 못한 김영근 감독 대신 김예영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참고로 귀뜀하자면, 두 감독은 CC(캠퍼스 커플)이다.



개막작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어요?


좀 신기했어요(웃음). 되게 고마웠어요. 저희 작품을 알아봐주시고 개막작으로까지 선정해 주셔서 고마웠죠. 저희 작품(산책가)와 같이 상영되는 <외출>이랑 폐막작인 <소년마부>를 먼저 봤는데요, '와, 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됐어요.

'주먹쥐고 일어서'라는 인디포럼의 슬로건과 잘 어울리는 주제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해 소개 하신다면요?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한편으론 장애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저희는 장애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장애가 있든 없든 '사람은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아껴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나누고 싶었어요. 보통 사람들이 장애인은 도움을 받아야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영화에서 주인공 영광이 처럼 장애인도 자기가 사랑하는 누나를 위해 뭔가 하려고 노력하잖아요. 그런 걸 담고 싶었어요. 저희가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에이블 아트'라는 장애인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영화 주인공인 영광이도 실제 시각장애인이고 도예가를 꿈으로 갖고 있는 친구에요.

의도하신 바가 충분히 담겨진 거 같으세요?


저희는 담으려고 노력했는데...그건 관객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면 촬영 준비 기간이 많이 걸렸을 것 같아요. 수작업이 굉장히 많은 거 같더라구요.


시나리오 들어가기 전에 사전조사만 3개월 정도 했어요. 처음에 파트너(김영근 감독)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의견이었고, 저는 감각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주제를 찾은 거죠.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하고, 그들이 가진 감각에 대해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논문도 보고, 시설 같은 곳에 인터뷰도 가고. 말씀하신 것처럼 애니매이션 작업에도 시간이 꽤 걸려서 1년 정도 만들었어요.

시각장애인과 감각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파트너(김영근 감독)이 예전부터 봉사활동을 많이 하다보니까 원래 관심이 있었어요. 저는 그 친구를 통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구요. 저희가 캠퍼스 커플인데, 만난 이후로는 꾸준히 같이 작업을 해오고 있어요(웃음).

영화 완성본을 보고 나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너무 많아요(웃음). 사전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에 대해 다루고 싶은 주제가 정말 많았어요. 시각장애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재밌는 점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나리오가 있는 작품이다 보니까, 오히려 시나리오가 제약이 많이 됐어요. 저희가 생각했던 걸 충분히 다 표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죠.

그럼 만족스러웠던 점이 있다면요?


제가 살면서 했던 작업 중 가장 큰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의미가 부여가 돼요. 무엇보다 영광이라는 재밌는 친구를 알게 돼서 지금도 잘 지내고 있어요. 남동생이 하나 생긴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아름다운 영화였는데요, 사실 영화라는 것도 시각적인 매체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영화 주인공인 영광이는 볼 수 없는. 그렇기 때문에 조금 객관적으로 보자면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세상을 아름답게만 그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감독님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약간 의도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부분도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시각장애인들을 직접 만나고, 영광이나 영광이가 다니는 학교에 가보면서 느낀 건, 분명 어려움이 있어서 그늘이 없진 않지만 항상 인생이 어두운 건 아니잖아요. 밝고, 순수하고, 꿈이 있고...이런 점들을 부각하고 싶었어요. 영상이 전체적으로 하얗거든요. 그런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한 게 있죠. 그런 단점을 말씀해주시는 분도 있는데, 저희가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할 수 없지만, 저희는 '아름답게'에 좀 집중했던 거 같아요.

영광이는 어떤 친군지 궁금해요.


첫 상영(졸업작품 상영)했을 때 영광이랑 같이 가서 봤어요. 영광는 부모님께서 낳으러 가는 도중에 사고를 당하셔서 '전맹(시력이 전혀 없는 시각장애인)'이 된 경우에요. 그런데도 인터넷도 하고,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저희가 하는 대부분의 생활을 다 하거든요. 작품을 만들 때 많이 신경 썼던 게 '앞이 안 보이는 친구들은 우리 영상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원래는 대사가 없이 영상만 보여주려고 했었는데, 영광이의 나래이션을 넣어서 스토리 전체를 들을 수 있게 만들었어요. 영광이는 나래이션을 더 멋있게 못해서 아쉽데요(웃음). 그밖에도 효과음에도 신경을 써서 상황들을 알 수 있게 했구요. 눈으로 영상을 볼 수 없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서 머릿속으로 더 재밌는 상상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이렇게 영화제에서 상영도 하지만, 전시를 함께 하기도 해요. 5월 13일부터 4일동안 아주대에서 하기도 했는데요. 산책길(지도)은 영광이가 직접 기획해서 만들고 저희가 재료를 구해주고 하면서 함께 만들었는데요, 전시 때는 그 지도를 만지면 그 부분에 해당하는 영상이 나오도록 했어요.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라도 직접 만지고 상상하면서 즐겁게 산책할 수 있도록요.

앞으로 계획이 궁금해요.


지금 당장은 <산책가>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딱히 다른 준비는 못하고 있는데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이번 작품은 저희가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사람 얘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걸 다시 우리들의 이야기로 만든다는 점에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던 거 같아요. 다음 작품을 만든다면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걸 통해서 저를 더 잘 알고 싶기도 하구요.



개막작 2. <외출>의 서재경 감독.
"촛불이 의미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지로 만들어서 무화시키는 게 걱정됐어요"




"말 잘못하는데..."라고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주 앉아, 인터뷰어를 걱정시키더니 그야말로 '청산유수'였다. 그의 작품 <외출>의 상영시간은 10분 내외지만, 그 10분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반복했음을 반증하듯, 대화에서도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처럼 '작년 5월'이 그를 붙잡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작년 인디포럼은 촛불 속에 진행됐다. 그리고 1년. 인디포럼을 기획하며 수많은 출품작이 당시의 기억을 다룬 이야기로 채워지리라 예상했지만, 출품 된 500여 편의 영화중에서 그 흔적을 기록한 작품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인디포럼은 <외출>에 대해 "촛불의 기억을 불러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돋보였다"고 평했지만(물론 이 식상한 평가 뒤에는 "그 때의 기억을 재현할 때 갈 수 있는 전형적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괜찮은' 평가도 있었음을 밝힌다:D), 서재경 감독에게 '촛불'은 영화로 묶어내기 어려운 '무엇'이었다.

이 짧은 영화는 서 감독의 표현에 의하면 ‘촛불’이 아닌, 전경과 시위대의 '헤어짐에 관한 영화'다. 그 속에는 개인과 경계에 대한 고민이 녹아나 있다. 이제 막 영화를 선택하겠다고 의욕 있게, 그러나 여전히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스물 아홉의 청년에게는 너무나 아쉬운 게 많은 십분 이겠지만, 영화는 작년 5월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오히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촬영 중의 각종 에피소드들, 그리고 아직 채 정리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자신의 시선이 엉켜 부끄럽기만 한 듯 여러 차례 말을 다듬고 또 다듬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짧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영화였어요.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으실 것 같은데, 그 때 이야기를 좀 나눠주세요.


학교를 가려면 광화문을 항상 지나야 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저런 일이 있구나’정도로 생각하고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그러다 나중에 친한 사람이 한 에피소드를 얘기해 준 게 영화의 단초가 됐어요. 거리에 화장실들이 나와 있었잖아요. 그 옆에서 시위대가 공연을 하고 있는데, 전경들이 그 공연하는 사람들 옆으로 볼 일을 보러 들어가더래요. 그 얘기를 듣는데, '어?'하고 느낌이 좀 묘한 거예요. 그래서 그 이후로 거리에 나가봤어요. 처음에는 두 개의 축으로 얘기를 생각했어요. 시위를 촬영하고, 지금의 영화 완성본처럼 허구의 이야기를 붙여 넣자고. 동료들과 함께 세 대의 카메라를 돌리면서 계속 현장에 있었어요. 거리에 있으면서 저도 화장실에 가보니까 전경과 시위대가 섞여 있는 풍경을 저도 목격할 수 있었던 거죠. '아, 이게 완전히 허구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재밌었어요.

인디포럼의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에게 자신의 영화를 소개하신다면.


'헤어짐을 전제로 한 만남'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이 만남 때문에 헤어짐의 순간이 무력하다고 해야할까, 그 뒷모습의 무력함을 생각했어요. 기본적 정서는 슬픈거죠. 당시에 폭발했던 문제지만, 계속적으로 있어왔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안에 굉장히 많은 균열들이 있죠. 영화 속 주인공은 한국적 상황에서 일종의 대리자라고 생각해요. 시위대와 전경이 일 대 일로 대응되는 관계도 아니죠. 참 힘든 작업이었던 게, 이 영화가 지금의 상황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거였어요. 제가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나 고민이 되죠. 저는 영화에서 다룬 시위에 대해 ‘촛불’이라는 단어는 일단 사용안하기로 했어요. 그게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 문제를 일종의 이미지로 만들어서 무화시키는 게 될까봐요. 촛불의 이미지가 강력해서 다른 얘기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사실 시위 안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층위가 존재했고(보수와 진보, 기독교와 반기독교 등 굉장히 다양한), 그만큼 다 미묘하게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어쨌든 촛불은 이걸 하나로 만드는 이미지잖아요. 그런 이미지화를 피하고 싶었어요. 이 극영화는 굉장히 짧은 소극인데, 시위에 담긴 균열들을 다 담기에는 형식적인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 자신에 대한 정리도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어서 영화가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퀄리티 면에서 아쉬운 느낌이 많이 들어요. 디지털로 촬영했는데, 촬영 중에 분명히 찍은 데이터가 사라지기도 하고. 그래서 툭툭 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 보면 화장실 안의 또 다른 공간이 있잖아요. '절대 열지 마시오'라고 적힌. 그 공간은 일종의 영화적 판타지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다시 대치해야 하는 상황이죠. 시위대와 전경이라는 이분법적 대치를 비롯해서, 개인적으로 느끼게 되는 수많은 모순들을 맞이할 거라는 점에서 효과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의 촬영에 있어서 (데이터가 사라지는) 아쉬움이 있었죠.

개막작 선정 소식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고,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있어요. 이 부담감엔 여러 가지가 포함 돼 있어요. 기본적으로 이렇게 말을 해야 할 일들이 있고(웃음), 앞에 말했다시피 작품에 대한 아쉬움도 있죠. 저는 시위에 관련된 작품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현장에 카메라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좀 의아했어요.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시위가 함의하고 있는 여러 층위들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촛불을 영상에 담지 않겠다고 생각하거나 전경을 주인공으로 한 것도 그런 이유였던 거 같아요. 촛불에 대해 얘기할 때 거의 대부분 촛불 쪽에서 접근하게 되잖아요. 저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저 또한 전경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효과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촬영하면서 시위대와 전경의 틈바구니에 항상 있었어요. 중간적 입장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어느 한 쪽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그 사이에 있는 게 가장 첨예한 순간을 목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쉬움이 없을 수 없겠지만, ‘아, 이건 내가 찍었지만 좋았다’라고 생각하시는 점이 있다면요.


카메라가 계속 화장실 안에 머물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화장실 밖 유리창으로 넘어가요. 결국 그 순간을 위해서 앞의 이야기들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다시 이 전경은 익명의 존재가 되는거죠. 그 장면에서 유리창에 균열만 가 있는데, NG예요. 사실 박살내는 게 원래 시나리오였어요. 뻥 뚫리고 공간의 경계가 없어지는거죠. 근데 현실적 여건을 말씀드리면 깨진 유리창을 만들려면 돈이 들기 때문에(웃음). 완전히 박살난 건 아니지만 그 역시 일종의 균열이잖아요. 그냥 이걸 살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내내 긴장감이 드는데, 확 풀어지는 재밌는 장면이 있었어요. 시위대가 나가서 팽팽하던 화장실의 긴장감에서 놓여진 전경이 안심하고 있는데, 다시 깃발을 가지러 들어오는 장면이요. 재밌었어요.


잘 표현이 안 된 것 같아요. 슬픈거 같아요. 화장실에서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타인들이 자기가 입고 있는 옷, 상황 때문에 긴장하는 거잖아요. 원래는 더 정치적 색채가 짙었어요. 가편집본을 여러 번 만들었는데, 마지막 장면에 이순신 동상이 있는 사거리에서 카메라 줌을 땡기면 청와대가 보여요. 그걸 넣을까 하다가 너무 노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의 매력이 떨어지는 거 같더라구요. 아쉬운 점이 많지만, 지금이 저한테는 최선인 것 같아요. 영화의 전체적인 분량은 짧은데 시위 촬영 분량을 다 짤라내긴 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어요.

촬영하면서 재밌었던 에피소드 있었나요?


극영화를 하루 동안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 전에 화장실을 되게 많이 알아보러 다녔어요. 생각보다 마땅히 찍을 만한 장소가 없었어요.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마음이 급해져서 친구한테 스쿠터를 빌려서 타고 나갔는데(원래는 잘 타지 않아요), 친구가 사고 난다고 걱정하는거예요. 괜찮다고 안심시키고 난 후 3분 만에 사고가 났어요. 쇄골뼈가 뿌러졌죠. 그것도 코메딘게 제가 서울대 병원 앞에서 사고가 났어요. 그데 넘어진 바로 옆에 119 구급요원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쉬고 있었거든요. 재밌는 에피소드라고 하긴 뭐하지만, 중간에 그런 몸 문제 때문에 촬영도 늦어지고...지금 쇄골뼈가 약간 튀어나왔어요(웃음). 그리고 제가 영화보면서도 웃겼던 건 전경 복장 자세히 보셨어요? 실제 지금 전경들이 입는 복장하고 차이가 좀 있을 거예요. 요즘 세련되게 바뀌었는데 그걸 제가 연락할 수 있는 곳에서는 대여가 안되는거예요. 어쩔 수 없이 지금과 좀 차이가 있는 복장을 빌렸어요. 나중에 화장실에서 밖으로 나가기 전에 헬멧을 쓰잖아요. 뒷모습에서 카메라가 들어가면 다스베이더 같은, 그런 느낌이 나더라구요(웃음). 중간에 스타워즈 음악이라도 넣어야 하나...웃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는 관객들의 몫이지만 그래도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다 싶은 바람이 있으시다면요.


참 어려운 질문인데요. 헤어짐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결국 그거 때문에 만든거니까요. 이렇게 양자의 대립에 대해 다른 영화들을 봤을 때, 명확히 화해라고 인식되는 순간이나 혹은 그 정도의 뉘앙스를 보이게 되는데 저는 거기서 이야기를 화해시키는 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집단이 아닌, 개인의 차원에서 이야기를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헤어질 때의 무력감이라고 해야할까요. 전경과 시위대 모두가 느끼는 무력감이죠. ‘아, 저새끼 나가면 또 봐야겠지’라는. 뻔히 알면서 둘 다 화장실을 나가야 해요. 어쩔 수 없이. 화해의 느낌을 내고 싶지 않았어요. 절대 평화롭게 볼 일을 본 게 아니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영화를 만들고 싶죠. 그러고 싶은데, 워낙에 힘든일이니까요. 일단 지금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는데 중편영화를 하나 만들어야 해요. 주제는 비밀입니다(웃음). 대단한 건 아니구요, 지금 너무 후져서 스탭들한테 욕 먹고 있어요. 걱정이죠.



폐막작 <소년 마부>의 박홍준 감독
“제게 영화는 보여지지 않은 것에 대해 보여주고, 같이 소통하는 거예요”




소년은 '마부'다. 포장'마차'를 끄는. 원래 그 마차는 소년의 아버지 것이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누워있는 지금, 소년은 그 마차의 마부가 돼야했다. 그러나 소년이 만나는 세상은 아버지가 몸에 불을 질러야 했을 만큼 녹록하지가 않다. 박홍준 감독은 그렇게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넘치지 않게, 신중하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절차적으로 얄팍하게 성취한 민주화와 압축적 산업화에 여전히 취해 있는 세상은, 아직까지도 엄연히 존재하는 누군가의 가난과 불평등에 대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작년 3월에도 떡볶이 노점을 하던 전 모 씨는 몸에 불이라도 붙여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얘기하려고 했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회자되지 않았다.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박홍준 감독은 자신이 갖고 있는 최선을 다해 보여주려 애쓴다. 그의 카메라를 통해 그 불편한 죽음은 따뜻한 배려의 옷을 입었다.

'진정성'이라는 수사가 실체도 없이 너무도 쉽게 쓰이는 시대지만, 박홍준 감독과 대화하는 내내 그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겸손했고, 그래서 아름다웠다. 그냥 잊혀지고 마는 사회적 약자의 무수한 죽음 중 하나를 또렷이 상기시키면서도, 영화적 미학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 재능 있고 욕심 많은 감독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인디포럼 폐막작으로 선정됐다는 얘기를 듣고 어떠셨어요?


상당히 놀랐어요. 부담도 됐구요. 사실 개‧폐막작이라는 게 영화제의 성격을 드러낸다고 보통 생각하잖아요. 그랬을 때 제 영화가 인디포럼의 성격에 맞는건지, 혹시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됐죠.

'주먹 쥐고 일어서'라는 이번 인디포럼 슬로건과 굉장히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슬로건 보고서 '아, 혹시 그래서 선정하셨는가‘하는 생각은 했어요. 제가 그런 의도로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슬로건에 맞다는 생각은 들었어요(웃음).

아직 영화를 보지 관객들에게 감독님 영화를 소개하신다면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세요?


간단히 얘기하자면, '살아남은 자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 고민을 나누고 싶었어요. 특히 사회에서 보듬어 주지 않으면 자생력이 떨어지는 어린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런 부분에 집중해서 영화에서 최대한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영화에서 소년의 가족 이야기를 취재하는 피디가, 어쩌면 감독님을 얘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상 질문인데요(웃음). 원래 처음 만들려고 했던 영화는 복수극이었어요. 더 정치적이었고, 주인공은 용역 철거반원이었죠. 다행히도 <똥파리>가 나왔죠(웃음). 그에 비해 제가 생각했던 영화는 너무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노점상 하시던 분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는 대한 얘기를 접했어요. 작년 3월이었는데 떡볶이 노점 하시던 전영걸씨라는 분이었어요. 다행히 부인께서 옆에 계셔서 불을 잘 꺼서 중화상만 입고 목숨은 건지셨어요. 그 동영상을 포털에서 봤는데, 뭐랄까...아직도 '진행형 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서울 디자인 거리라고 지금 한참 바뀌고 있는 게 가시화 되는 시기였어요. 전국노점상연합회도 찾아가 인터뷰하고, 사무처장님도 뵙고 하는 과정에서 반성을 했어요. 반성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이걸 우리가 더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영수라는 인물의 설정은 방송국 피디는 아니고, 독립다큐 단체에 있는 거라고 설정했어요. 내가 제대로 알거나 접근하려는 노력도 없으면서, 그냥 무작정 찾아가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식, 그런 거 많잖아요. 제가 꼭 그랬다기 보다는, 저도 그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인물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 속에서 피디의 등장은 소년에게 아버지의 분신을 떠올리게 하는, 그래서 소년을 더 힘들게 하는 역할로 배치한 거예요.


영화 촬영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배우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원래 지금 배우보다 더 어린 고등학생을 원했어요. 제가 켄 로치 영화를 좋아해요. 혹시 <스윗 식스틴>이란 영화 보셨어요? 거기 나오는 남자주인공을 되게 좋아하는데 그런 얼굴, 그런 나이대를 원했었어요. 생각처럼 쉽지가 않더라구요. 실제 일반인을 캐스팅을 하기도 그렇고 해서 계속 여러사람을 만나보고 하는 중에 다행히도 그 친구(소년 역 한주완)을 만나게 됐어요. 예대 영화과 다니는 학생인데 다행이도 처음 영화를 찍는 친구였어요. 연기도 연기지만, 어떤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찾았기 때문에 주인공 캐스팅이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그래도 제일 어려웠던 건 아파트 앞에서 노점을 벌여서 촬영해야 했던 거예요. 부녀회장님 허락도 받고 했는데도 두 번 정도 구청 관계자가 왔었어요. 한 번은 영화촬영인 걸 모르는 주민 분이 신고해서였고, 한 번은 구청 단속차가 지나가면서 본 거예요. 물론 영화촬영이라고 설명드리고 허락받았다고도 말씀드려서 잘 넘어갔죠(웃음).


감독님의 영화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예요?

 

영화가 길어요(웃음). 보충촬영까지 17일 정도 필름으로 촬영했는데, 긴 시간이었죠. 물론 제 욕심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었어요. 제가 이렇게도 찍고 싶고, 저렇게도 찍고 싶고...여러 가지 많이 해보고 싶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시간적 제약 때문에 많이 못해서 아쉬웠죠. 무엇보다 배우들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못했던 게 아쉽고 미안해요. 더 좋은 연기를 끌어낼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시간이 없으니까 빨라하자’ 이런 게 몇 번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물 맞는 장면이요. 살수차를 동원했었는데, 물에 밀려서 나가 떨어지는 걸 찍고 싶었어요. 그런데 배우가 위험할까봐 걱정되기도 했고, 그 날 촬영분량이 많아서 재촬영을 못했던 게 아쉬웠던 거 같아요. 배우에게도 미안하고. 뭐, 결국 보충촬영을 다시 하긴 했어요.

다른 분들 작품(개‧폐막작) 보셨다구 들었어요. 어떻게 보셨어요?


재밌었어요. <외출> 같은 경우는 반대의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물론 제가 시위자인 티는 안내니까(웃음) 전경들은 몰랐겠지만, 종로 쪽에서 화장실을 갔는데 전경들이 있더라구요. 속으로 좀...그 때 생각이 났어요.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그 순간의 긴장감 같은 것들이 좋았구요. <산책가> 같은 경우는 두 번을 봤어요. 장면 장면이 새로웠어요. 재기발랄하고 상상력이 대단하신 거 같았어요. 느낌들이 좋았어요.

감독님 영화 대사 중에 노점상 아저씨가 소년에게 "나 목숨 걸고 하는 거야"라는 대사가 있잖아요. 감독님에게 영화도 그런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영화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건가요.


글쎄요. 원래 전공은 전혀 다른 거였어요. 법학 전공 했어요. 공부는 안했구요(웃음). 내가 법을 하지 않으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영화가 생각났어요. 영화를 워낙 좋아했어요. 특히 켄 로치 영화를 보고 '나도 하면 좋겠다' 생각만 하다가 뒤늦게 시작했죠. 지금 34살이예요. 다니던 회사도 있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한예종)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어요. 저한테 영화는 보여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보여주는 거고, 말할 수 있고, 같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목숨까지 되면 변질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도 영화하고 있다는 핑계로 부모님이나 가족 등 내팽겨치고 있는 게 많아서(웃음).


목숨까진 아닌 거 같아요. 그렇게 되면 영화를 하는 게 변질될 거 같아요.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서 하게 된 일이니까요. <소년 마부> 준비할 때 두 사건(07년 10월 고양시청 노점상인 고 이근재씨의 자살과 작년 3월 전영걸 씨 분신자살 시도)를 보니까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자식이 두 명씩 있었어요. 무엇보다 이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누가 케어할 수 있을까...이런 거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싶었어요. 평상시에도 가족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소년 마부>라는 제목이 되게 인상적이에요. 제목만으로는 연상하기 힘든 영화 내용이었어요.


말 나오는 영화 아니냐고, 지도교수님은 제목으로 먹고 들어간다고 얘긴 하셨는데(웃음). 제목을 고민하던 차에, 마차잖아요. 포장마차니까. 실제 노점상 하시는 분들도 포장마차라고 안 부르고 마차라고 부르거든요. 마차를 끄는 사람이니까, 끄는 사람은 마부니까. 그래서 원래는 ‘마부’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게 베를린 영화젠가 은곰상 받았던 한국영화가 있더라구요(웃음)

영화의 결론이 명확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감독님의 의도인가요?


잘 안됐던 부분이라는 생각은 드는데요, 제가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주고 싶진 않았어요. 사실 그래서 영화가 심삼한 측면도 있죠. 좀 떨어져서 바라보고 싶었어요. 주인공 소년이 고등학교 2학년 설정인데,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다시 학교를 다닌다거나, 노점상 회원들이 모아준 돈을 갖고 아버지를 대신 해 포장마차를 한다던가, 동생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가 하는 등등이요. 근데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론을 열어놓고 싶었죠. 결론이 중요하지는 않고 상황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애매하게 느껴지는 건 제 부족한 역량 때문이겠죠.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쓴 건 아닌데,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에 대한 장편을 준비하고 있어요. 블랙코미디로요(웃음)



인터뷰, 기사: 장일호
교열: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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