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내 인생에 엎질러진 영화 <피고인>

필진 칼럼 2009.10.06 16:19 Posted by woodyh98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건영

한 작은 술집에서 강간 사건이 일어난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라’(조디 포스터)는 동거하던 남자와 싸운 뒤 친구를 만나러 술집에 갔다가 게임 룸에서 3명의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한다. 사건을 맡게 된 지방검사 ‘캐서린’(켈리 맥길리스)은 현장 조사 결과 두 명을 체포한다. 하지만 캐서린은 사라가 폭행을 당할 당시 술을 마신 상태인데다가 마리화나를 소지하고 있었음을 알고 변호인 측의 협상을 받아들여 피의자들에게 단순폭행 혐의만 적용한다. 사라는 이에 분노하고, 끝까지 싸울 결심을 한다. 사라에게 유대감을 갖게 된 캐서린은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을 법정에 세우면서 법정 공방적은 정점으로 치닫게 되는데, 이 과정 동안 영화는 법의 언어/ 집단문화/ 일상적 규범과 습속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이며 이를 통해 여성 피해자를 고립시키는지를 밀도감 넘치게 고발한다. 조디 포스터에게 첫 번째 오스카트로피를 안겨준 영화 <피고인 Accused>(1989)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특정한 경험을 통해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다. 또한 어떤 것을 경험하거나 배우면 그것을 다른 상황에도 적용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한 현상을 ‘일반화’라고 한다. 예컨대 어떤 여자가 3-4번 정도 애인에게 버림 받았다고 하면 그 여자의 의식 속에는 남자들은 다 도둑놈, 늑대라는 가치관이 형성될 것이다(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에서 남자에 대한 불신이 뼛속까지 사무친 죄수 김지미의 경우를 보라). 물론 세상 남자들이 다 나쁘진 않지만 그 여성은 자신이 경험한 일부의 남자들의 특성을 전체 남자들의 특성으로 확대해석하는 오류를 범한 것일 따름이다.

사라는 집단강간 당한 직후 병원으로 옮겨지는데, 그곳에서 생리주기, 마지막 성관계, 성병여부, 마약복용 여부, 등을 질문 받는다. 또한 담당검사인 캐서린은 그녀의 야한 옷차림과 선정적인 춤을 추었다는 증인들의 말이 법정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하고는 변호사측과 협상을 한다. 이제부터 영화는 사라의 삶의 배경과 학력과 취향을 거론함과 동시에 남성주의 법률제도와 야합하는 여성검사의 행동을 통해서 일반화의 오류가 얼마나 세상 속에 만연되어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게 된다. 이때 감독이 사용하는 도구는 사라의 생활방식이다. 이를테면 검사 캐서린으로 하여금 사라의 피해사실에 대한 진실성을 의문하도록 만듦으로써, 즉 피해여성이 이중소외를 느끼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편견 가득한 세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라는 술로 마음을 진정시키거나 마리화나를 피운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것도 모자라 마약 파는 남자친구와 동거하는 등 사생활에서 전혀 신뢰를 줄 수 없는 상황으로 가득한 여자이다. 그녀의 증언이 신빙성을 의심받기 십상인 것은 이러한 생활 방식에 기인한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생활 태도가 범죄행위에 대한 증언의 진실성을 결정짓는 척도가 될 수 있을까? 과연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예컨대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속 안보국 책임자의 발언을 보자. “알코올중독자가 증언을 하면, 살인범도 무죄가 되고, 창녀가 피해자면 강간범이 무죄가 된다.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가난하고 못 배우고 저급한 일에 종사하는 이들의 말은 믿을 게 못된다니. 사라를 강간한 2명의 범죄자는 분명한 범죄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당사지인 사라 외에는 증인이 없다는 점과 사라의 사생활의 결함을 이용해 과실 치상이라는 낮은 형량을 받게 된다. 이는 사라가 강간을 당한 직후 병원에서 실시한 각종 검사자료라는 확실한 물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덮어씌워진 일반화의 오류가 그것을 무력화 시킬 만큼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사회적 편견의 피해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자기주장에 힘을 싣지 못하기 마련이다. 사라 역시 자신이 부당하게 취급받는 것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스스로 몸을 사리는 데 익숙한 여성일 뿐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피해자의 사생활과 과거전력이 범죄사실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에도, 사회의 인식은 일반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한편 배운 자 편에 서기 일쑤이다. 음반 매장에서 마주친 사건당일 정황을 잘 아는 자의 조롱과 언어폭력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음반매장에서 만난 남자는 사라의 차 열쇠를 보고는 SEXY SADI 라며 한껏 조롱한다. 이 단어는 그녀의 자동차 번호판에 표기된 SXY SADI의 패러디이다. 그는 이를 ‘섹시한 피학성욕자’라는 의미로 고의 오역함으로써, 그녀에게 범죄유발 책임을 전가하고, 사건의 전말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라는 자신의 차로 남자의 밴을 들이받게 되는데,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강간범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과는 무관하게, 현장에서 강간을 선동하고 환호하며 부도덕하게 지켜본 이들에 대해서 선전포고를 상징한다. 즉 직접적 가해당사자를 넘어서는 사회 전체의 편견과 불합리한 판단기준을 향해서 차를 돌진하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자 영화의 극적인 분수령을 만들어내는 명장면이다.

한편 지방검사 캐서린은 사라의 사건을 다루면서 폴리바게닝(Plea bargaining)을 통해 타협을 감행한다. 폴리바게닝이란, 검찰과 변호사측이 타협을 통해 법정의 심리를 생략하고 판사가 바로 판결을 내리게 되는 유죄 협상제도이다. 영화에서 피의자 측 변호사는 2급 강간으로 하거나 1급 상해치상을 적용하자고 한다. 처음에는 1급 강간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맞서던 캐서린도 결국 보신주의로 돌아서면서 이에 동조하게 된다. 이 제도에 대한 장단점을 논하는 건 법학자들이나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의 몫일 테지만, ‘범죄와의 타협과 형량의 절충이란 것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생각쯤은 품어 봐도 좋을 것이다. 미국 특유의 사법제도 중 하나인 이 제도는 몇 년 전 국내에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기도 하다. 영화 속 피해여성 사라와 여검사 머피와의 만남과 관계의 변화는 사뭇 감동적이다. 사라와의 만남과정에서 그녀는 변화하고 강해지면서 사라와 함께 싸워나간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을 연결해 주는 게 객관과 이성, 중립을 가장한 남성의 언어(법)가 아닌 별자리와 사주라는 감정과 직관의 여성언어라는 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극장에서 처음 보았을 때로부터 비디오로 재 관람하기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던 궁금증은, 영화의 제목인 <피고인>이란 표현은 적절한가. ‘영화 속 주인공은 피해자이고, 피고인은 가해자를 지칭하는 말인데, 어째서 가해자를 영화제목으로 삼았을까’라는 것이었다. 영화 제목인 ‘피고인’ 이란 법률 용어의 정의는 형사사건에 관하여 형사책임을 져야 할 자로 공소(公訴)가 제기된 자, 또는 제기된 것으로 취급된 자이다. 이때 누가 피고인이 되는가에 관하여 기소장에 피고인으로 기재된 자에 한한다는 설(표시설)과, 피고인으로서 실제로 행동한 자도 포함한다는 설(행위설)이 있다. 그렇다면 영화 제목은 왜 ‘피고인’인가, 혹은 피고인이어야 하는가. 혹자는 영화 속에 보여 지는 남성중심의 사회와 불합리한 편견으로 인해 사라가 오히려 궁지에 몰리는 현실의 모순을 빗대어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사라의 사건은 한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를 상대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투쟁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단편적 해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분명 사라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영화 속에서 만나고 생각해야 하는 대상은 사라를 강간하는 범인들과 그들을 선동하고 격려하는 남성들, 피해자를 일반화시켜 비하하고 무시하는 사회구성원들과 남성중심의 법률제도이다.

요컨대 <피고인>은 사라라는 여성의 집단강간 사건을 다루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요 그녀를 범한 강간범의 사실관계를 입증하는 과정을 담은 법정드라마는 더더욱 아니다. 감독은 사라의 사건의 시작에서 결말까지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벌어지는 모순과 편견에 따른 2차적 인권침해 등, 이 모든 것들을 당대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긴다. 결국 감독은 이 모든 것들을 영화라는 법정에다 세우고는 관객이라는 배심원에게 판결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피고인>으로 표기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오히려 적절한 표기방식인 셈이 아닌가.

남성중심 사회에서 강간 범죄는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신분, 행동거지, 유발요인 등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일쑤다. 예컨대 ‘어떻게 남자를 믿고 그럴 수 있느냐, 혹은 야한 옷차림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니냐? 따라서 여자의 처신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이러한 사회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평소에 이성 관계나 생활방식이 매우 자유분방한 여자, 게다가 사건 당일에도 스스로 함정을 팠다고 비난 받을 수 있을 만큼 통념상 동정이 가지 않는 여자를 피해자로 등장시킨 점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영화가 발언하는 것은 단호하다. 즉 강간당하는 순간에 분명히 “NO!”라고 소리치며 거부 의사를 밝힌 이상 이 여자의 인권은 존중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불합리한 사회규범과 왜곡된 가치관을 향해 날리는 묵직한 한 방이다. 강간은 결코 ‘순결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강제와 폭력으로부터 보호 받아야 하는 ‘기본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명백하게 밝힌 것이다. 이것이 <피고인>을 단순히 여성영화 범주에 머물지 않도록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린 동력이자,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있는 단 하나의 이유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휴~  수정/삭제  댓글쓰기

    볼만한 영화 찾다가 우연히 들어왔습니다.
    오래전에 절 몹시 화나게 하고 무력하게 느끼게 했던 영화, 그야말로 문제작이었던..
    정말 웃긴건 저때가 참 오래전인데 지금도 그닥 나아진게 없네요.
    어떤 것을 잘못 만들고, 잘못하기는 쉽지만, 바로잡기란 정말 어려운것 같습니다.
    그나마 대놓고 말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게 달라진거라면 그렇달까.
    참.. 씁쓸합니다..

    2009.10.13 14:43
  2. 헤헤a  수정/삭제  댓글쓰기

    검색을 통해 들어왔는데 피고인의 영화에 대해 저의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퍼갑니다:)

    2009.12.19 21:07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628
  • 29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