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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감정의 슬픈 불가역성

필진 칼럼 2007.09.01 09:33 Posted by woodyh98
2007.08.31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의 한 장면. 이미 서로 다른 커플의 남편과, 아내와 사랑에 빠진 두 커플. 정민재(박용우)는 새로운 사랑에 흔들리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아내 서유나(엄정화)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괴로워한다.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다시 너한테 미치게 해줄래?”

이 대사 한마디로 서유나는, 그리고 관객은 몇가지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다. - 지금 민재는 유나에게 더 이상 미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에 대한 미안한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민재는 본인의 힘으로 다시 아내를 사랑할 수는 없는 지경에 와버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민재는 사랑의 사라짐을 유나의 책임으로 돌린다. 이미 걷잡을 수 없는 감정적 힘에 항복해버린 민재의 무력한 감정상태,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되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포기상태.

[지금 사랑..]은 두 커플의 어긋난 사랑에 대한 책임을 ‘시간’에 돌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시간은 결코 혼자서 흘러가지 않는다. 감정은 시간에 결부되어 있다. 마치 동굴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은 채 밧줄을 잡고 앞으로 더듬어 나아가는 것처럼, 감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간이 불가역한 것과 마찬가지로 감정 또한 시간과 결부된 채 불가역하다.

한때는 남부럽지 않은 닭살 커플이었던 민재-유나 또한 시간의 흐름 앞에서 ‘다시 너에게 미치게 해줘’라는 허무한 말을 읊게 되어버렸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의 방향성에 거슬러서 안간힘을 쓰며 나아가는 일은 무모하고 부질없다. 시간의 흐름은 이미 붙잡을 수 없는 것인데, 그것에 복속된 감정의 변화를 탓하는 일은 또 얼마나 무모하고 부질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감정이 시간에 종속돼 있다고 할때 우리는 늘 감정의 변화에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봄날은 간다]에서의 그 유명한 대사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상우는 납득할 수 없지만, 은수는 감정의 수동성을 이해한다. 감정의 변화는 행동과 관계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수많은 관계가 맺어지고 색바래지는 이유들 중 하나다.

그래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핵심은 ‘시간’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돌림으로써 감정의 흐름을 능동적으로 컨트롤하고자 하는 것이다. 주인공 마코토는 원하는 시점의 시간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 리프’ 란 능력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치아키라는 학교 친구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일이 부담스러워서, 그 고백 사건 이전으로 시간을 돌린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돌려도 ‘좋아하는 마음’은 바꿀 수 없다. 마코토는, 치아키와 치아키를 좋아하는 학교 후배를 맺어주려 타임리프를 되돌리는 등 좌충우돌 노력하지만, 결국 치아키가 좋아하는 것은 마코토- 순수한 진심은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 심지어는 시간조차도- 그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순수한 핵심이다. 누군가는 이 순수한 마음을 그저 나이브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 순수한 마음에 공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을 달리는..]에서도 감정에 대해서는 주체의 ‘수동성’을 인정하고 있다. 시간을 바꾸면서까지 노력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 어쩌면 [시간을..]에서도 그랬듯 한 가지를 바꾸면 연속적으로 다른 일들이 도미노현상처럼 꼬리를 물고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감정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생겨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라는 주체의 의지로 100을 채울 수 없는 감정의 특성- 그래서 언제까지나 어느정도는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감정’의 변화 앞에서 많은 설레임과 좌절이 동시에 태어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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