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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이마주 4주년 행사 D-1


우리 스태프들은 홍대 카페 제너럴닥터에 모여서 4주년 기념품을 만들었어요. 주로 <가족의 탄생> 예고편 필름을 가지고 크라프트 종이에 끼워서 책갈피처럼 만들었는데, 사람이 많이 모여서 두 시간이면 다 만들 줄 알았는데, 웬걸 영업시간 11시까지 다 만들지 못하고 결국 집에 가야만 했답니다. 남은 뒷일은 기념품 제작을 기획한 양석중 씨가 감당하기로 하셨어요. 그 날 저는 실연의 상처로 인해 소위 말하는 '정신줄'을 놓고 있어서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런 제 모습이 웃겼는지 연신 웃어대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기념품을 만들면서 <가족의 탄생>에 문소리 씨가 꽃을 들고 있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제가 꽃을 받고 싶다고 말하니, 양석중 씨가 꽃을 받긴 어려워도 머리에 꽃을 꽂긴 쉽다며 저를 지긋이 쳐다보시더군요. 이래저래 오가는 말들로 인해 시간이 금새 갔던 것 같아요. 저는 그날 칼질을 했는데, 왼쪽 팔이 아직도 아프네요.



네오이마주 4주년 행사 D-day

뭔가 한 것 같긴 한데, 한 것 없이 시간은 금새 당일로 다가왔어요. 아트하우스 모모에 도착해서 스태프들을 기다리는데, 양석중 씨가 가장 먼저 도착했어요. 곧 이어 강연하 씨가 도착했는데, 윗옷의 팔 부분이 망사로 된 옷을 입고 왔어요. 양석중 씨는 강연하 씨에게 어디 시상식에 갔나오느냐며 농담을 던졌어요. 곧 이어 이영 씨가 도착하고 김시원 씨도 도착을 했어요. 김시원 씨는 선물을 채플린 전집을 선물로 내놓으셨는데, 주기 전에 DVD를 다시 돌려 보시느라 잠을 못 주무셨다고 하셨어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자니 강민영씨, 편집장님, 장지혜씨, 김지희 씨도 오셔서 어느 덧 전 스태프가 다 집합이 됐어요. 6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티케팅 하는 사람들과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 어느새 영화관에 입장을 하고 네오이마주 4주년 행사를 시작하는 양석중 씨의 멘트가 시작됐어요. 곧 이어 편집장님 인사말씀도 있었어요. 편집장님 말씀이 끝나고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준비한 영화초대권 추첨이 있었는데, 제 친구가 당첨이 되서 저에게 넘어 왔어요. (득템) 우하하!


 드디어!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영화상영

저는 사실 <비브르 사비>를 보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살인을 더 좋아하나 봅니다.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지 사람들은 피를 보고 누가 죽어야 영화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비브르 사비>를 스크린으로 보는 일이 언젠가는 있으리라 믿습니다.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은 스크린에 영사되는 영화의 화면비율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영화가 넘치는 것 같아서 보는 내내 좀 피곤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결국 저는 180도 해드뱅잉을 하고 말았죠. 잠에서 깨니 누가 죽긴 죽었는데, 아무리 봐도 누가 죽은 건지 모르겠더군요. 결국 그 화가도 죽었는데, 화가가 죽은 이유보다 말을 타고 있던 사람이 내려와 파인애플을 먹는데, 그 파인애플 맛이 더 궁금하더군요. 저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에 영화관을 나와 양석중씨, 장지혜 씨와 제 그림자 같은 친구와 함께 뒤풀이 장소 세팅을 위해 '몽마르쥬'로 향했어요. 양석중 씨의 우월한 기럭지 덕분에 양석중 씨는 걷고 있지만 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뛰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그렇게 뛰고 나니 다음부터는 양석중 씨와는 함께 다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보다 더 피곤했어요.


 

뒤풀이 '몽마르쥬'

양석중 씨가 뒤풀이 장소를 물색할 때 '몽마르쥬'를 발견하고는 21세기 건물에 18세기 느낌이라고 해서 어떨까하고 궁금했는데, 몽마르쥬는 생각보다 좋은 장소였어요. 시끄럽지도 않고, 좁지도, 크지도 않아서 좋았어요. 뒤풀이 장소로 하나 둘 씩 입장을 했어요. 독자 회원분들과 기타 영화관계자분들도 오셨어요. 무비스트 서대원 편집장님과 글로만 봐왔던 민용준 기자님도 뵈었어요. 서대원 편집장님은 내년에 결혼을 하신대요. 민용준 기자님은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김성욱 선생님을 닮은 것 같았어요. 생김새나 분위기가 닮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게 귀를 기울이게 하셨어요. 필름온의 정미래 기기자님도 스크린의 장성란 기자님도 오셨고, 앗!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의 최지영 감독님도 오셨네요.  그러고 보니 <내부순환선>의 조은희 감독님은 상영회에는 오셨었는데 뒤풀이 장소까지 직행하시진 못하셨어요. 이번 상영회를 위해 애써주신 영화사 백두대간의 박상민 과장님께도 감사드릴게요.

곧 이어 스태프와 독자들이 준비한 선물을 추첨했어요. 막스 오픨스의 DVD를 노린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크로스백과 함께 독자 회원분께 돌아갔어요. 준비한 선물이 많아서 대부분은 선물을 한 두 개씩 받아갔어요. 저는 <눈부신 하루> 와 <델리카트슨 사람들>DVD를 받았어요. <델리카트슨 사람들>은 빈장원씨가 영화에 나오는 배우와 자신이 닮았다며, 꼭 보고 싶다고 하셔서 드렸어요. 대신 저는 <아무도 모른다> DVD 를 받았어요.


어떤 방문

한 참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 쯤 반가운 손님이 오셨어요. 정성일 선생님이 한 손에 케이크를 사가지고 등장하셨죠. 선생님이 반갑긴 했지만, 배가 고팠던 저는 케이크가 무척이나 반가웠답니다. 정성일 선생님이 사온 케이크는 흡사 <카페 느와르>에 나온 케이크를 연상시키게 했는데, 가운데 구멍이 뚫린 녹차 시폰 케이크였어요. 장미꽃잎이 4장 얻어져 있는데 가운데 뚫린 구멍에 딸기시럽을 부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순식간에 케이크를 싹쓸이했는데, 제가 김시원 씨한테 케이크를 떠서 먹여주려고 하는데, 케이크가 그만 제 손에 떨어졌어요. 그렇지만 김시원 씨가 곧 두 손으로 제 손을 잡고 그 케이크를 먹는데, 마치 뱀파이어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어요. 언니가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데, 케이크가 아니라 마치 피를 흡혈한 듯한 느낌이랄까. 뭔가 아름답기도 하면서 가슴이 서늘한 공포가 밀려오기도 했답니다.

자리 이동이 많아 어느덧 인디스토리 관계자 분들과 자리를 함께 했는데, 조계영 팀장님의 명으로 서상덕씨가 곽용수 대표님께 문자를 보냈어요. 대표님께 처음 보내는 문자라고 하셨는데, 문자의 내용은 네오이마주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케이크를 다들 사오더라 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곧이어 곽용수 대표님께서 케이크를 들고 등장하셨어요. 열렬한 환호 속에 등장한 대표님은 언뜻 보기에 대학생처럼 느껴졌어요. 대표님이 사 오신 케이크는 블루베리 시폰 케이크였어요. 역시 요새 케이크의 대세는 시폰인가 봐요. 그 케이크도 순식간에 없어졌어요. 조영각 서독제 집행위원장님은 해피투게더 독립영화와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자주 봤던 분인데, 얼굴과 이름을 따로 알고 있다가 매치시킨 지 얼마 되지 않은 분 중 하나입니다. <낮술>을 만드신 노영석 감독님과 얼마 전 인터뷰를 했던 <낙타는 말했다>의 조규장 감독님도 오셨어요. 프랑스 낭트에 다녀오셨다고 하네요. 언젠간 저도 프랑스에 가리라는 의지를 다졌어요.



무르익은 밤

자리를 옮겨 빈장원씨 옆에 앉게 됐어요. 빈장원씨는 '네오이마주 오프라인 판에 자기 글을 실어 줄 때도 되지 않았냐'며 글을 멋지게 쓸 테니 실어 달라고 말씀하였어요. 그래서 이번 호 독자의 글에 꼭 싣자고 주장하겠다고 했어요. 부산영화제의 <카페느와르>에 이어 역시 요즘에 <파주>를 보지 않으면 소외되는 것 같아요. 김시원 씨와 양석중 씨가 옆에서 신랄하게 난상토론을 하시더군요. 저는 <파주>를 또 보리라 마음먹었죠. 네오이마주를 안 지 세달 됐다는 문주영 독자회원도 만났어요. 이번에 수능을 치셨다고 하는데, 생명공학을 공부하다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좋은 입시 결과가 있길. 열혈독자 정용 군은 그날 아주 깜찍한 방울이 두 개 달린 모자를 쓰고 왔어요. 정용 군은 점점 제 나이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12월에 영화 촬영을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이 친구가 찍을 영화가 기대 되요. 꼭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네오이마주 세미나의 열혈참가자인 홍은화 님과 최용진 님도 여전하셨고요, 신태균 님과 최태순 님은 나란히 앉았는데도 별 감흥(?)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아이비를 닮았다는 얘기를 난생 처음 들었을 장진실 님은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답니다. 아하! 잊고 넘어갈 뻔 했어요. 눈에 띄지 않게 오랫동안 네오이마주를 응원해주신 김현희 님도 신선자 님도 복운석 님도 이도훈 님도 모두 반가웠습니다. 시간이 자정으로 접어들자 한 분 두 분, 자리를 떠났어요. 저도 같이 온 친구와 자정이 가까울 무렵 자리를 떴지만, 남아있는 분들이 아직 많았어요. 자정을 넘긴 얘기들이 더 재밌는 법. 새벽까지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 모든 걸 뒤로하고 저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마치며...

신입스태프로 9월에 들어와 10월에 오프라인 발간에, 11월에 4주년 행사를 마쳤으니 일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 쌓여가는 스태프간의 정이랄까. 무튼 4주년 네오이마주에 참석하신 독자 회원 분들과 기타 영화 관계자 분들께 감사합니다. 제 기억력의 한계로 거명하지 못한 독자분들도 많으세요. 애교로 봐주시고요,스태프 여러분 수고 많으셨어요! 끝으로 저로 인해 한층 더 발랄해질 네오이마주를 지켜봐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 네오이마주 스태프 사진과 나머지 행사사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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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hinkwise.tistory.com BlogIcon Thinkwise  수정/삭제  댓글쓰기

    ��援ш꼍��� 媛����..^^;;

    2009.11.17 10: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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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강연하

정리.사진: 박정애

 

"언젠가는 멋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감옥에서 출소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워대는 남자. 남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도 애초에 그럴 마음 조차 없는,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남자. 행색으로 봐서는 영락없는 동네 양아치 수준이지만, 어머니가 남겨준 재산으로 땅을 매입한 후 '재개발'에 목을 맬 정도로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남자.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과 맞짱 뜨다가, 홀로 애태우다 흙 속으로 묻혀갈, 단순 무식하고 거칠고 비루하지만 한편으로 가련한 중년의 사내. 바로! 이 사내가 스크린을 활보하는 영화 <낙타는 말했다>가 다음 주(11월 1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에 앞서 영화를 연출한 조규장 감독을 역시 독립영화감독인 강연하 스태프가 만났다.  

강연하(이하 '강') :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조규장(이하 '조') : 워크숍으로 준비를 했다. 영상원에서 장편영화를 찍는데, 학교에서 하는 워크숍이기 때문에 허가를 해줄지 걱정했는데, 다행이 허가를 해줘서 찍게 됐다.

강 : 처음 시나리오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누군가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동시대 정황의 반영인지 궁금하다.

조 : 나도 시나리오가 그렇게 나올 줄 몰랐다. 원래 구상하고 있던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거기 나오는 인물이 어촌에 사는 캐릭터였다. 원양어선에서 몇 년 만에 돌아왔는데, 형제들과 부모님이 보내줬던 돈을 이미 다 써버린 상황에서 시작되는 영화다. 그런 인물을 갖고 시작했다. 그 인물과 시골 풍경에 익숙한 상황,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나온 것 같다.

강 : 원래 본인 유년시절이 지방 소도시였나.

조 : 그렇다. 충남 보령인데, 영화에는 읍내가 있지만 내가 살던 곳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은연중에 그렇게 나온 것 같다.

강 : 영화의 로케이션 장소가 인상적이다. 재개발의 풍경이나 길거리, 상가 등이 인위적인 느낌이 아니라 자연스럽다. 헌팅 할 때 로케이션 장소는 어떻게 찾았나.

조 : 시나리오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거리였다. 건물들이 높지 않고 차가 다니면서 옛날 간판들을 가지고 있는 잿빛 느낌의 공간인데, 그런 장소를 찾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림은 명확하게 머리에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서울, 경기 권을 벗어나서 찍을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 경기를 훑었다. 촬영지는 수원이다. 수원 역 근처인데 주민들한테 영화촬영에 대한 동의를 얻었다. 영화상의 공간은 다 그 공간이거나 차타고 십분 정도 가는 거리였다.

강 : 그럼 미술팀이 따로 지은 로케이션 장소는 없는 건가.

조 : 시골집의 벽을 이미지에 맞게 칠하는 선까지는 했지만, 실제로 지은 곳은 없다.

강 : 동네의 리얼리티가 잘 묻어나는 거린데, 감독으로서 그런 공간을 발견했을 때 어땠나.

조 : 참 좋았다. 그렇지만 외부 공간 말고 실내공간으로 들어가고 나면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하고는 다른 부분이 많아서 현실적인 선택 안에서 바꿀 부분은 바꾸고 그랬다.

강 : 35mm로 촬영한 영화다. 작년에 나도 35mm 작업을 처음 해보았는데, 시간과 경제적인 비용 면에서 여러모로 디지털보다는 까다로운 부분이 많더라. 이런 이유들 때문에 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이 필름의 질감과 느낌을 원하면서도 디지털로 독립장편 작업을 주로 하곤 하는데, 35mm 촬영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조 : 사실 학교를 들어간 이유 자체가 필름작업을 하고 싶어서였다. 입학할 때부터 3편 정도 필름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필름이 점점 없어지겠지만 그 느낌들을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필름이 이 영화에 어울린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디지털로 찍어도 상관없었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영화가 아니고 다른 시나리오를 썼더라도 나는 35mm를 썼을 것 같다. 필름을 고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실 졸업 이후를 생각해보면 필름으로 작업할 여건이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거리의 낮 신이나 걷는 장면 등 야외신이 많아서 아무래도 필름의 질감이 더 맞는 것 같다. 디지털로 찍으면 선명하고 밋밋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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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음악이 인상 깊더라. 남자가 돌아와서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뽕짝 같은 음악이 흐르는데, 엇박자의 리듬이 묘하고 특이하면서도 영화의 리듬감을 살려준 것 같다. 음악작업은 어떻게 한 것인가.

조 : 사실 이전에는 음악작업을 거의 안했었다. 전에 단편영화 찍을 때는 음악이 한번정도 들어가거나 그랬는데, 이번엔 음악을 적극적으로 써보려고 했다. 음악이 감정을 증폭시켜 장르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들어갔을 때 다른 느낌이 들 도록하고 싶었다. 그런 가능성들을 보고 작업을 했다. 영화전반은 탱고 풍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가이드가 될 만한 영화들을 편집과정에서 붙여보고, 다음에 영화음악 작곡 하실 분과 같이 얘기했다. 처음에 음악을 붙여야 할 부분, 거기에 맞는 음악 등을 만들고 같은 음악들을 여기저기 붙여보고 다시 작곡을 했다. 그래서 열 곡정도 만들었다. 그런 과정들을 시간을 좀 가졌다.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신 분도 가수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분인데 느낌을 잘 살려내신 것 같다. 사실 그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는데, 나와 호흡이 잘 맞는 것 같았다.

강 : 어머니 사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수염을 깎는데, 그 남자의 심정과 관련이 있는 건가.

조 : 처음에는 장례식장에서 찍으려고 했다. 가족들은 다 나와서 밥 먹고 있고 그 빈 공간에 서서 혼자서 영정사진을 보고 수염을 깎는 걸로 하려고 했는데, 장례식은 죽은 지 얼마 안되지 않았다는 얘기 같아서 집으로 옮겼다.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수염을 못 깎는다. 근데 앞부분에 캐릭터에 맞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다. 많은 설명보다는 하나의 이미지 처리로 인물의 캐릭터를 심어주는 장치였다. 내가 생각하는 캐릭터의 측면인데,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궁금하다. 인터뷰어께선 그 남자에 대해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강 :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남자 주인공이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끝까지 미워할 수 없는 지점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가장 컸던 부분이 부인하고 많이 싸우고, 섹스도 폭력적으로 하는 인물인데, 폭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진 않는다. 집을 엉망으로 만든다거나 주변의 것에 화풀이를 하는 장면들이 그런데, 그래서 이 사람이 죽일 놈으로 보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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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캐릭터 구축과 관련해서는, 갈치 파는 장애인 집에 찾아가서 부인이 쫓아내는데도 자꾸 들락날락하다가 담뱃갑 던지는 신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풀 뜯어 먹는 장면이 몇 개 있는데 그것은 배우의 애드리브인지, 아니면 시나리오에서 기획하고 들어간 건지.

조 : 시나리오에는 풀 뜯어먹는 장면이 한 번 밖에 없었다. 근데 배우가 원래는 연출자라 연출자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소가 나온다거나, 풀을 뜯어먹는 장면이 계속 나오면 이것이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치 이야기처럼 만들어지는 부분이 생긴다. 그런 부분을 얘기하면서 설정을 했다. 그렇지만 이 인물이 신파적으로 표현되기 보다는 코믹하게 살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담배를 사고 가는 길에 난초를 꺾고 가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배우의 애드리브였다. 그런 부분은 나도 좋았다.

강 : 그러면 배우가 적극적으로 자기 연기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내고 감독은 그걸 많이 수용하면서 전체적인 연기 디테일들을 만들어간 건가.

조 : 그렇다. 그 분도 연출을 하시는 분이다보니까 스태프들이 세팅하고 있을 때, 혼자서 공간들을 돌아다닌다. 그러고는 갑자기 뭘 가져와서는 '어떤가' 하고 묻는데, 그런 걸 잘 한다. 공간을 보면서 자기가 들어갈 곳이 있는지, 나올 곳이 있는지를 계속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그 공간에 자기를 맞추는 걸 찾는 건데, 그런 부분을 보면 배우를 해도 성공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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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개인적으로 수민이라는 여자아이가 영화 속에서 기억이 가장 많이 남는다. 무표정해 보이는데, 부부가 섹스하고 있을 때 소리가 들리니까 처음에는 연필깎이를 돌리고, 다음에는 라디오를 트는데, 그런 장면들의 의미를 아역배우에게는 어떻게 전달했는가.

조 : 나도 아역배우하고는 작업을 처음 해봤다. 주변에서 아역배우하고 연출하는 현장에 가보면 많이들 힘들어한다. 성인들에게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설명을 할 수는 없다. 성인배우들한테도 어떤 것을 설명할 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어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연기가 안 나올 땐 오히려 반대되는 얘기들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아역배우는 그런 부분이 더 많다. 개연성에 대한 설명을 하기 보단 내가 생각하고 있는 느낌을 이 아이가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고, 때론 어떤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성인배우들도 마찬가진데, 아역배우들은 연기를 너무 하려고 한다. 그런 것들을 막아내는 것이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엉뚱한 얘기들을 했다. 근데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아이가 똑똑해서 신뢰가 생겼다.

강 :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서 그런지 수민이란 아이는 좀 아이 같지 않다. 처음 시나리오 쓸 때 수민이란 아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고 싶다.

조 : 수민이란 캐릭터는 가장 적합하게 나온 인물 중 하나다. 시나리오 쓸 때 걱정된 부분은 상황이 평범하지 않아서 우울한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캐스팅을 할 때 약간 시골스럽게 생긴 수민이를 캐스팅했고, 생각보다 잘 맞았다. 어쨌든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우울한 캐릭터가 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 외에 수민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이 아이는 반응을 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어떤 장면들 사이에 아이의 반응이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을 할까 이런 고민들을 했다. 인간답게 고민하지 않은 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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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노래방에서 웃기게 노래 부르고 바로 연결되는 신이 엉덩이를 노출한 채로 섹스 신, 다음에 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 신이다. 리듬감 있게 한 컷씩 탁탁 넘어가는 재미가 상당했고 힘이 있는 편집이었다. 원래 콘티에서부터 계획한 것인가, 아니면 편집 때 새로 결정한 것인가.

조 : 둘 다 인 것 같다. 이 시퀀스가 생각보다 많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상 보면 이 여자를 만나서 많은 관계들을 갖고, 가족처럼 진전되고 그 다음에 밥 먹으면서 시간이 흐르고, 다시 시작되는 건데, 이 사람의 앞의 1부를 마무리 짓고 2부로 넘어가는 시퀀스다. 사실 의미는 있지만 중요한 시퀀스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시퀀스들을 과감하게 줄였다. 단편영화를 찍다보니 그런 시간들을 효율적으로 넘겼다.

강 : 부부생활에 대한 디테일이 영화적으로 봤을 때 강도도 세고,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패턴은 아닌 것 같다. 여자캐릭터와 부부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을 했는지 궁금하다.

조 : 그렇지는 않다. 여자가 남자보다 강한 인물이다. 남자한테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극적으로 약간 과장되어 있을 순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만나서 산다고 했을 때 부부생활이 그러지 않을까싶다. 그런 가정의 모습을 보여줄 때 어떤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했다.

강 : 상다리를 고치는 장면도 그런 과정을 생각한 건가.

조 : 그렇다. 처음엔 문을 부수는 것이었는데, 세트장이 아니니까 다시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밥상을 사다가 밥상을 부순 거다. 문짝을 부수었으면 느낌이 더 좋았을 것 같다.

강 : 남자가 일부러 직접적인 폭력행사를 하지 않은 건가. 특히 수민에게 행하는 폭력은 찾아볼 수 없고 여자한테도 마찬가지다. 때리지 않는 것이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되지 않았나.

조 : 어떤 영화관계자분이 이 영화를 보고 폭력에 관한 영화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 하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 이건 폭력에 관한 영화가 아니고, '화'에 대한 영화다. 자기가 참을 수 없는 화를 누가 있든지 없든지 드러내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직접 때렸다면 내가 생각하는 '화'라는 것은 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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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캐릭터를 죽이고 살리고는 결단이 필요 했을 텐데, 어떤 의미에서 남자의 죽음이 꼭 필요했던 건가.

조 : 시나리오를 쓰고 계속 고민했던 부분이 이 영화가 무엇에 관한 영화 인지였다. 궁극적으로 집착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그 집착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개인이나 사회에 무슨 영향을 끼치는지, 집착의 결과가 어떤 결과를 나타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가장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죽음은 어떤 것인지, 이런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죽음이 영화적으로는 순간적으로 화를 못 참은 것이다. 그것이 어떤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인데, 결과적으로 후회는 하겠지만 후회를 하면서도 욕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허탈감 같다.

강 : 영화가 좀 우울하고 과하게 신파 쪽으로 흘러가는 걸 원치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음악도 위트 있고 재밌게 했나.

조 : 그렇다. 그런 의도가 있었다.

강 : 엔딩 신에서 여자랑 수민을 보여준다. 비극적인 여성이긴 하지만 앞으로 잘 해쳐나가리라는 느낌을 준다. 남자의 마지막이라고 보다 여자들이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감독의 애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건가.

조 : 그렇다. 그렇게 생각을 했고, 그들의 뒷모습, 등 뒤에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강 : 그때 수민도 뒤돌아보는 클로즈업이 있었는데, 수민의 얼굴이 좋았다. 엔딩 신에서 색깔이 변하는 것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인가.

조 : 그렇다. 처음부터 CG를 계획하고 찍었다.

강 : 그런 것을 '어떤 의미다'라고 하면 멋이 없지만, 그런데도 표현을 한다면 어떤 게 있을지.

조 : 남자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나. 굳이 CG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CG를 넣으면 어떤 효과가 생기고 그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을 하겠다는 예측이 가능했다. 그런 부분에서 예측을 하게 만들 것이냐, 뺄 것이냐를 고민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넣은 이유는 영화의 전반적인 질감이나 느낌을 봤을 때, 사막 같은 느낌이 들어가는 게 이 영화를 선명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제목도 '낙타는 말했다'이지 않나. 그런데 주인공은 이런 말을 했다. 영화에 소만 나오고, 주인공이 계속 풀을 뜯어먹고 그러니까 제목을 '소는 말했다'라고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웃음).

강 : 영화의 촬영적인 기법이 핸드 헬드가 많다. 그런 부분은 촬영감독과 어떤 상의를 했나.

조 : 핸드 헬드를 한 이유는 카메라가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자유로워지면 나도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중심점을 카메라로 잡고 갈 수 밖에 없는데, 그러면 움직임의 제한이 있다. 그런 제한적인 느낌이 나한테는 좋진 않은 것 같다. 카메라를 쓸 때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틸트를 한다든지 팬을 해도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단편을 찍으면서 느낀 것이 핸드 헬드를 하면 동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그런 인위적인 느낌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촬영감독이 카메라랑 붙어 있는 분이다. 몸하고 카메라가 붙어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고려했을 때 핸드 헬드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강 : 다른 촬영적인 콘셉트는 어땠는지.

조 : 색깔이나 질감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했었다. 질감은 투박하거나 거친 느낌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잘 들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반적인 앵글이나 콘티에 대해서는 크게 콘셉트를 갖고 가진 않았다.

강 : 콘티는 거의 영화촬영 들어가기 전에 계획하고 들어가는 건지 상황에 맞게 변경하는지.

조 : 일단 콘티를 다 못 그렸다. 그리다 중단됐고, 가지고 들어가긴 했는데 현장에서 공간에 맞게다 바꿨다고 보면 된다. 중국집도 원래 네 컷 정도 됐는데 카메라가 빠지면서 한 컷으로 갔다. 콘티가 없으면 자칫 시간이 미뤄가 될 수 있는데, 감독으로서 스태프들이 힘들어 할 까봐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강 : 원래 감독님 취향은 사전에 콘티를 완벽하게 짜놓고 가는 스타일인지, 현장에서 많이 바꾸는 스타일인지.

조 : 전에 단편영화 찍을 때는 콘티대로 다 찍었다. 나도 콘티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바꾸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외 같은 경우는 안 바꿔도 되는데 실내 같은 경우는 많이 바꾸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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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영화를 보면 비판적인 사회상이 있는데, 영화가 비판적인 사회상을 연출한 것이 아니라, 이 남자와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중심인 것 같다. 궁극적으로 관객이 어떻게 봐줬으면 하는가.

조 : 나는 처음부터 개인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회에 대한 부분들은 안 들어 갈 수 없겠지만, 그런 부분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들을 좋아하진 않는다. 개인에 대한 얘기라고 했을 때 그 집착이 개인에서 무엇을 남기고, 사회적으로 보면 그것이 무엇이고, 집착이 낳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 그런 부분이 핵심인 것 같다. 그 집착의 결과는 공허함일 수도 있고, 타협일 수도 있고, 그 무엇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 중에 어떤 것일 것이다.

강 : <낙타는 말했다>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투박하고 남성적인 감수성인데, 영화적으로 잘 표현된 것 같다. 수위가 높은 신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연출을 한 건가.

조 : 여배우들이 노출을 해야 하는 신들이 있다. 이미 사전에 하기로 한 것들이지만, 그런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이 먼저 긴장을 하기 때문에 감독도 긴장을 하게 된다. 여기서 내가 해야 될 일은 어떤 부분을 포기하고 가야 될지 아는 것이다. 내가 욕심을 부리면 서로 피곤해진다. 일단 배우들이 연출자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안심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계속 옆에 붙어 있었다. 나도 기본적으로 윤리적인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 있는데, 그런 장면을 찍을 땐 버릴 것은 버리고 빨리 찍는 것이 좋다. 이번 영화에서 정사 신이나 폭력 신이 힘들다고도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부부가 섹스를 하고 있는데, 뒤에 수민이 지나가는 신에서 사람들의 만류가 있었다. 도의적인 측면에서 생각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영화는 영화'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어려워하진 않았다.

강 : <낙타는 말했다>에 나오는 지방 소도시의 디테일이나 주인공 남자의 소박하고 패배자인 캐릭터가 감독님이 추구해가는 방향인건가.

조 : 나도 명확하게 말할 순 없다. 처음 단편영화 찍을 때는 패배자를 담을 생각도 안했었다. 주로 엘리트 비꼬는 방식에서 재미를 느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번 영화도 그렇고 다음에 쓰고 있는 것도 그렇고 패배자는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이다. 근데 계속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강 : 만들면서 참고로 본 영화가 있는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영향 받은 영화가 있다면.

조 : 사실 리얼리티가 강한 영화는 처음 작업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이 유럽감독들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장치나 재미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영화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리얼리티를 가지고 가는 영화를 해보자는 확신이 있었다. 어차피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이니까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강 : 원래 좋아하는 감독은 누군가.

조 : 딱히 어떤 감독을 좋아한 다기 보다 어떤 감독의 태도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루이스 브뉴엘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지고 있는 태도, 안토니오니가 가지고 있는 태도, 나도 그런 태도를 가지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자꾸 바뀌는 것 같다. 3일전의 태도와 오늘의 태도가 다르고, 앞으로도 많이 바뀔 것 같다. 어떤 감독이 가지고 있는 태도가 좋다면, 그 영화는 좋을 수밖에 없다.


강 : 영화는 맨 처음 어떻게 시작하게 되건 가.

조 : 방황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많이 헤매고 다녔다. 직장도 다니다 그만두고, 대학원도 다니다 그만뒀다.

강 : 원래 전공은 영화가 아닌가.

조 : 그렇다. 원래 전공은 인류학과고, 글도 계속 썼었다. 한 십년 가까이 썼는데, 글은 답답해서 못하겠더라. 그렇다고 주변에 영화나 예술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침 미디 액트에서 독립영화과정을 한다고 하기에 신청했다. 그때가 스물아홉이었는데,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도 영화를 계속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글 쓰는 것만 하지 말고 좀 답답하지 않은 매체를 해보자 할건데, 단편영화를 한번 찍어봤는데 재밌더라. 그래서 한 번 더 찍어봤더니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상원에 들어갔다. 결국 지금은 영화를 찍고 있고, 이렇게 됐다.

강 : 영화의 어떤 점이 가장 매력이라고 생각하는지.

조 : 나도 4~5년 밖에 안돼서 잘 모르겠다. 그런데 답답하지 않는 것 같다.

강 : 답답하지 않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조 : 시나리오만 쓰는 게 아니잖나.

조 : 그런 것도 있다. 첫째로 방에만 있지 않아도 되고 , 관계가 형성이 된다. 글을 쓰는 것이 나와 출판사와의 관계라면, 영화는 더 많은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아까 영화의 장점이라고 물었는데, 의외성이 많은 것이 좋은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는 중에도 의외성이 들어가지만 영화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현장에서 내가 의도했던 것들,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 편집하면서도 그런 것들이 개입이 된다. 이런 것들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연극이나 다른 것들은 이런 기회를 갖기 어렵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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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개봉을 앞둔 심정은 어떤가.

조 : 좀 창피하기도 하다. 완성된 게 작년 봄인데, 일 년 반전에 만든 영화를 개봉한다고 인터뷰한다는 게 좀 쑥스럽다. 어쨌든 좋다. 만든지 한참 된 영화긴 하지만 개봉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많진 않겠지만(웃음).

강 :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어떤 내용인가.

조 : 내용적으로 말을 하면, 이것과 비슷한 한 남자의 비극적인 얘기, 또 하나는 사랑 얘기도 있다. 근데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나리오 보는 사람들은 이건 사랑이 아니라 불륜이란다(웃음).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고 있다.

강 : 다음 촬영 계획은 어떻게 되나.

조 : 우선 한 달 정도 시간을 갖고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 볼 생각이다. 일단 알코올중독에 관한 얘기를 생각하고 있다. 알코올중독이라고 하니까 벌써 느낌이 비슷하다. 그렇지만 이번 영화보다 훨씬 세련되고 덜 투박하고 시골이 아닌 서울에서 찍을 것이다.

강 :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 가장 만들고 싶은, 추구하는 영화 상(像)이 있다면?

조 : 그것도 늘 바뀌더라. 만약 계속 영화를 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멋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대부>를 보면 상업영화고 독립영화이고를 떠나서 그냥 '멋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 그 정도의 멋있음. 그런 걸 하고 싶다.

강 : <낙타는 말했다>는 어떤가.

조 : 귀엽다. 멋있진 않으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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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해야 재미있다. 복잡하면 어렵다. 개그 콘서트에서 박지선은 남자를 유혹한답시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참 쉽죠잉~!”라고 끝맺는 그녀의 말에는 뼈가 있다. 박지선이 연애를 한다는 게 웃기다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유혹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라는 그녀의 말이 우습다. 박지선이라는 실재가 미인에 대한, 연애에 대한 환상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예술가들은 고정관념과 기존의 미학을 비틀어 전복의 미를 제시하기도 한다. 얼마 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던 페르난도 보테로 전을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보테로의 작품 중에는 명화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그림들이 많다. 그의 손을 거치면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여인도,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 부부의 결혼’ 속 피골이 상접한 부부도 모두 고도비만자로 변한다. 이처럼, 종종 희극과 예술은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 소재들을 활용한다.


황철민 감독의 2002년 작 <팔등신으로 고치라 굽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비웃는 영화다. 동시에 세상을 어지럽히는 모리배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저항의 예술이다.

영화는 2001년 세종대에 재직 중이던 회화과 김동우 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김동우 교수는 학교 측에 대항해 1인 시위를 벌이게 된다. 세종대는 재임용 탈락 대해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학재단이 교수 한 명을 자르는 건 참 쉽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우리는 영화 제목에 비추어 이 사건이 웃지 못 할 촌극이자, 부조리극이자, 희대의 재앙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실제로, 1999년 김동우 교수는 교정에 설치할 조각품을 제작한다. 교정에 설치하기 직전, 세종대 주명건 교수가 작품을 훑어보고는 “팔등신으로 고치라”고 말한다. 그 조각품은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동양적인 미학에 가까우며, 푸근함, 인자함, 복과 덕을 풍기는 어머니 상이었다. 그러나 이사장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나 보다. 이사장은 한복보다는 비키니가 빛나는 여인상을 원했나보다. 페르난도 보테로도 웃고 갈 일이다. 팔등신으로 고치라니!

여기까지, 영화는 희극이다. 그러나 그 이후는 재난, 재앙, 인재라고 부르는 게 맞을 법하다. 청천벽력 같은 재임용 탈락통보에 깅동우 교수의 행동은 변한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예술계 전체와 학계전체에 닥친 불행으로 받아들인다. 과거 부르주아적 예술관을 가지고 있던 한 예술인이 정치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 과정에는 서글픔이 뚝뚝 떨어진다. 김동우 교수에게 찾아온 재임용 탈락은, 우리 사회가 순수함과 그 가치를 고수하려는 강직한 학자를 아니꼽게 바라본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김동우 교수의 침묵과 시위는 서글프다.

영화 속에서 다루어지는 상식의 위반은 유머가 아니라 공포로 변한다. 예컨대 새우깡에 새우가 없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꼭 1년 전 새우깡에서 쥐머리가 나왔을 때, 대중은 웃기보다는 벌벌 떨었다. 불신지옥이라고 했나? 이제는 그 말이 바뀌어야 한다. 맹신지옥이다. 중앙대에서 진중권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사실, 홍익대에서 진중권의 강의를 들을 수 없다는 오늘의 사실, 황지우 총장이 외압에 밀려 한예종을 떠났던 엊그제의 사실. 과거의 고통은 과거로 끝나지 않고 암세포처럼 증식해서 현재의 재앙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팔등신으로 고치라 굽쇼?>는 타임머신처럼 봉인된 과거를 풀어 놓는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 영화는 현 사립대학의 과거이면서도, 다가올 대학들의 묵시록적인 비전이기도 하다. 전국 대학 곳곳에서는 시장경쟁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학생들과 교수들은 흡사 어깨에 단두대를 짊어진 양 위태롭게 생활하고 있다. 여차하면 적법한 절차도 없이 서슬퍼런 칼날을 떨어뜨릴 기세다. 진중권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하고, 이에 반발한 30여명의 학생들이 총장실에 빨간 딱지를 붙였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더 끔찍한 일도 있었다. 8월 말, 부산대에서 70명의 비정규교수들이 무더기로 해촉했던 가히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은, 비정규교수노조의 반발이 거세지자 부산대에서는 해촉 된 70명 모두에게 이번 학기에 5시간미만의 수업을 배정하는 걸로 일단락 지었다. 부산대 사건의 결과를 제쳐두고서 보더라도, 학문의 전당에서 신자유주의식 경쟁법칙과 그리고 정치적 놀음이 벌어진다는 일은 아이러니에 가깝다. 학문의 길은 멀기만 한데, 정치와 돈은 왜 이리 가까이 온 걸까.

상식을 비웃는 작태들은 가진 자들의 유머로 전락하고 있다. 그들은 학문의 장을 정치의 장으로, 또 경제의 장으로, 끝내는 사교의 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들의 마법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에 의기양양해 한다. 가진 자들은 늘 가진 자들끼리 웃는다. 신자유주의식 유머란 권력을 마법처럼 휘두르는 자들이 만들어 내는 그들만의 개그 콘서트다.

교수가 강단에 서는 것은 일반상식이다. 학교라는 울타리는 사제지간의 상호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어제의 스승은 내일의 스승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건 공포다. 우리의 믿음을 배신하는 공포. 다른 말로 신자유주의식 공포.



윤성호 : 지금 원래 저희가 많이 와요. 그런데 오늘 조금 조촐하게 됐는데 그건 영화랑 상관 없는거구요. 좋은 소식이 있다면 충무로 영화제가 한창인데 거기보다 관객이 많고, 화면상태도 양호한 편이고(웃음). 일단 세 분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박찬경 : 안녕하세요, 박찬경입니다.
황철민 : 영화 만든 황철민입니다.
김동우 : 김동우입니다.

윤성호 : 제가 추가로 소개드리자면 황철민 감독님은 방금 보신 <팔등신으로 고치라굽쇼?> 다큐를 만드셨고, 전에 <프락치>라든지 다른 극영화도 만드셨고, 이전에 조중동 프레임이 없을 때도 <옥천전투>같은 안티조선 다큐를 만드셨어요. 독립영화의 선배시기도 하고. 김동우 교수님은 소개 안 해도 충분히 영화에서 보셨을테고. 박찬경 선생님은 설치미술가시고 한예종에서 강의하고 계시는데요, 요새 문화예술에 대해 권력이나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많이 개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언도 많이 하고 계시고 한예종 친구들을 응원하고 계셔서 특별히 초대했습니다. 영화에 대해서 일단 저희가 충분히 얘기를 나누고 관객에게 마이크를 돌릴께요. 감독님 오랜만에 영화를 보셨을텐데 소회나 그간의 경과를 얘기해주세요.

황철민 : 0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했구요. 몇 년 동안 전교조 선생님들, 해직된 많은 교수님들을 위해서도 상영됐었고 여기저기서 상영이 많이 됐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상영이 안됐다가 오늘 다시 보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고요. 이 영화를 만든 다음에 2편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면 희망 없이 끝이 났거든요. 막연한 희망만 있고 끝이 났는데 사실 저희가 승리를 했었어요. 했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여기 나오는 굉장히 이상한 이사장님은 교육부에서 해고를 시켰고, 너무 많은 비리가 드러나서. 학교를 떠나셨고. 여기에서 엄청나게 상처를 안고 투쟁을 하셨던 김동우 선생님은 복직을 하셨고, 저도 그 덕에 같이 복직을 했었어요. 이야기는 해피엔드로 끝나는 거 같았었는데요. 한국사회에서 이런 투쟁이 해피엔드가 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걸 담은 영화로 2편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했는데, 그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MB정부 들어서고 1년이 지나니까 임시이사가 파견됐는데, 주명건 이사의 하수인으로 임시이사가 들어와서 총장님도 그 분의 하수인, 교무위원도 그쪽으로 배치되고. 1년 만에 다시 원상복귀 했습니다. 이제 2편을 찍으면 승리의 편이 아니라 고난의 편 2편이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김동우 : 이 영화에 본의 아니게 주인공 역을 하게 됐는데 4년을 싸웠죠. 2002년도에 시작해서 4년 만에 학교에 교육부 감사가 나오고 이사장이 쫓겨나고 민주적인 임시이사들이 들어오면서 저희가 복직이 됐습니다. 저와 더불어 과거에 더 옛날에 부당하게 해직 당했던 분들까지 6명이 복직을 했어요. 황철민 선생님은 이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말하자면 학교에서 해고나 쫓겨난 게 아니고 본인 스스로가 이 학교에서 교수를 한다는 것에 대한 지식인으로 양심의 고백으로 스스로 떠났기 때문에 해직교수는 아니죠. 자발적으로 사표를 냈기 때문에. 이분이 돌아올 수 있는 길은 우리는 억울하게 쫓겨났기 때문에 원상복귀지만 이 분은 사표를 내서 다시 돌아온다는 방식이나 절차가 그랬는데 그 당시에는 총장님이나 학교 교무위원 임시이사에 계신 분들이 특별채용으로 다시 모시자. 다시 재임용되는 절차를 해서 황철민 선생님도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참 작은 승리감을 가졌던 게 4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에 완전히 다시 거꾸로 가는 세상이 돼서 황 선생님 말씀대로, 과거의 주명건 이사장이 얼굴은 안보이지만 그 사람의 하수인이 다시 학교를 장악하고 총장이나 교무위원을 바꾸고. 이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상태로 갔습니다. 어쩌면 제가 또 쫓겨날지 몰라요. 2편을 만들면 더 고난의 영화가 되겠죠. 한국의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어떻게 이렇게 옳고 그름이 바뀌는지 어리둥절하고, 교육부에서 2년 전부터 세종대는 정상화하겠다고 해서 굉장히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바뀌니 정책이 바뀌고 비리로 쫓겨났던 재단 이사장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 우리 세종대 뿐 아니라 상지대, 조선대 등 기타 많은 대학이 또 이러한 반복을 하게 됐어요. 솔직히 아마 1년 전에 이 영화를 했으면 우리는 신나게 이야기를 할텐데. 아주 옛날처럼 고압적으로 교수들의 사상까지 통제하고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우리같이 비판적인 사람들을 위협적으로 대하고. 하여간 더 큰 발전을 위해 역사가 잠시 거꾸로 갈 수 있겠구나, 거꾸로 간 것의 몇 배 더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2편을 만든다면 주인공이 아니고 조연정도 하고 싶습니다.

윤성호 : 말씀 들으니까 생각나는데 저희가 월례포럼 기획하면서 2월에 튼 작품이 <박통진리교 뻑큐멘터리>라고 박정희를 숭배하는 이야기였는데, 그것도 8년 전 얘기였어요. 그것도 몇 년 전에 틀었으면 재밌었을텐데. 그분들이 지금 다 주역이어서요. 그래도 그렇게 보는 재미도 있더라구요. 이 영화가 어쩌면 사학재단 비리 얘기 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권력이 개입하는 얘기기도 해서 싱크로율이 이만큼 높을 때가 없을 것 같아요. 박찬경 선생님이 관련 포럼도 참여하고 계셔서 관련된 소감을 여쭤볼께요.

박찬경 : 영화 재밌게 봤습니다. 다들 아실 거 같은데요, 영화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야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것 같고 영화 뿐 아니라 한예종으로 대표됩니다만, 한예종 이외에도 미술, 출판 등 전방위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눈에 띄게는 ‘인디’자 붙는 것은 다 감사를 한다던가, 예산지원을 중단한다던가, 이런 식으로 활동을 차단하거나 주요 인물을 교체하거나. 인디음악 하는 사람들 인디레이블 지원 사업이라는 게 있는데 그런 것도 다 없어지고, 미술 쪽에서는 공간들이 없어지구요. 미술은 독립공간이라고 안하고 대안공간이라고 보통 써요. 만약 미술에서도 독립이라는 말을 썼으면 벌써 없어졌을텐데, 대안이라는 말을 써서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런 일들이 정권 바뀌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가장 큰 문제는 한국 문화의 변화라는 것이 그냥 진보에서 보수로 변하는 게 아니라 10여 년간 축적된 현장의 역량을 고갈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아까 영화에서 봤을 때 김동우 선생님이 조각계 공헌한 일이 없어서 그런 사유로 얘기했다는 장면을 봤는데, 그런것처럼 행패에 가까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문화행정이라고 하는 게 실종됐죠. 잘못된 것도 물론이지만 행정 자체가 실종되는 걸 매일같이 새로운 사건을 통해 겪고 있습니다. 능력도 없고 관심도 없고 권력을 행사하는데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는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대학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재등장하고 있는 것이 굉장히 우려스럽고. 저는 가끔 문화전쟁이라는 말을 쓰지만 문화전쟁의 시기가 온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성호 : 이 자리에는 한예종 비상대책위원회 학생들이 초청 돼 있는데요 다큐를 보면서 사실은 저희가 왜 이렇게 반복될까 개탄할 것만이 아니라 타산지석으로 삼아 예․복습해야 할 거 같아요. 어떻게 싸움을 할 지. 그래서 아까 나온 말씀 중에 작은 승리를 사실 했었는데, 학교에서 문화예술에서 얻은 작은 승리들이 왜 긴 승리로 이어지지 않을까를 짚어봐야 할 거 같은데요.

황철민 : 안타까운 일인데 충분히 긴 승리가 될 수 있었어요. 예를 든다면 세종대가 굉장히 좋은 조건이었거든요. 다시 얘기하면 한국 사학의 대부분의 문제는 설립자들이 학교를 자기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이를 통해서 사업을 하겠다는 의식이 많고 이걸 놓지 않으려는 게 심했는데, 세종대의 경우는 설립자가 나중에 진짜 악덕 설립자가 얼마나 사회악이고 패륜인가 하는 걸 몸으로 절실히 느꼈어요. 주명건 이사장이 학교에서만 패륜 짓을 한 게 아니라 설립자, 형제들에게도 했어요. 세종대를 사회에 환원한다, 저런 자식에게 학교를 주느니 환원하겠다고 생각도 했다고 했어요. 굉장히 조건이 좋았죠. 그때가 참여정부 시절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참여정부는 그런 뜻을 실현시킬 준비가 안돼있었어요. 좀 삼천포인데, 설명드리자면 평택 대추리 땅 십분의 1이 세종대 땅이에요. 참여정부 때 미군기지를 평택에 짓기 위해서 그 땅을 국유화해야 했는데 그 때 세종대 이사장이 비리를 저질러서 짤리는 상황이었죠. 다시 돌아올 구멍을 열어줄테니 땅 파는데 싸인해라, 이래서 싸인을 하죠. 그리고 그 당시에 이사장 이하 이사들이 그 당시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는 학교를 떠나야 하는데 자유이사라는 명목으로 몇 명이 남았어요.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세종대학교가 다시 과거 비리 이사장의 수중으로 떨어지죠. 정책적인 부분이니까 정확히 짚고 넘어가면 참여정부에서 그렇게 하게끔 했던거죠. 제가 보기에는 참여정부에 있었던 분들이 나쁜 분은 아니었겠죠. 저는 한국의 대학이 갖고 있는 가치와 의미를 그분들이 잘 모르지 않았나. 한국에 있어서 정치적 민주주의의 중요성만큼 사학, 대학이 가진 중요성을 그분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지 않았나 해요.


최근에 한예종 사태와 함께 진중권 교수가 중대에서 쫓겨났어요. 너무 안타까워요. 우리나라 몇 안 되는 훌륭한 지성인이고 지식인이고, 교수가 되도 진짜 당연한 분인데도 저는 오랫동안 교수가 못 되는 게 희안하다고 생각하고. 박노자 같은 분은 왜 한국에서 교수가 못되고 노르웨이 가 있나. 멋진 사람인데 저 분은 왜 강사일까, 이런 생각 많이 하게 되는데. 여러분들이 잘 모르실꺼에요. 우리나라에서 대학 교수가 되려면 사상검증을 통과해야 하거든요. 그분들은 사상검증에 통과 못해서 교수 못되는거에요. 우리나라 대학교의 99%가 소위 얘기하는 보수 우익 대학교들이에요. 여러분들 한 번 생각해보세요. 다니는 대학들이 사상적으로 볼 때 어디에 서 있는가. 우익이 나쁘고 좌익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다 의미가 있습니다. 한 사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99%가 치우쳐져 있어요. 그러다보니 유감스럽게도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이 생기는 게 우연히 생길 수밖에 없어요. 보수 우익 이런데는 조직적으로 재생산되는데 비해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람들은 우연히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이게 한국사회 문제점이고. 정말 괜찮은 교수들은 교수가 될 수 없어요. 제가 임용시 에피소드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사실 20대 초반에 독일로 유학을 갔다가 30대 후반에 돌아왔어요. 유학을 오래 한 편인데, 행운이라고 얘기 할 만큼 쉽게 임용이 됐어요. 아마 그 분들이 절 잘 몰라서 그랬을 거 같은데. 그 때 면접 하면서 설립자분이 그러더라구요. 생긴 게 착하게 생겨서 뽑는다(웃음). 자세히 보면 착합니다. 착하게 생겼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말 잘 듣게 생겼고 절대 학교에 반항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얘기하면 사상검증을 한거에요. 저나 김동우 선생님은 그분들이 눈이 어두워서 잘못 해서 뽑힌 교수들이에요. 이렇게 해서 교수가 되는 사람들이 5~10% 아닌가 싶어요. 그나마 상아탑에서의 양심을 대변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 주변에 그런 교수님 있으면 굉장히 귀하게 생각해야 해요. 진중권 교수처럼 아주 분명한 이런 분들은 우리나라에서 절대 교수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교수가 될 수 없는 분들을 교수로 만들 수 있는 대학이 세종대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 정책하는 분들이 잘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성을 다 놓치지 않았나 싶어요.

윤성호 : 감히 거칠게 요약하면 저희가 민주화 정부라고 생각하는 시절부터 이런 문제가 잉태돼 있었고, 확실히 뿌리 못 뽑은 게 아쉬운 거 같고. 말씀하신 것 중에 와 닿았던 게 대부분이 보수우익 대학교잖아요. 저도 한예종 전문사 나왔는데, 여기는 보수우익 학교라고 생각했어요. 플랭카드에 각고의 노력으로 글로벌 리더가 되자(웃음) 이런 것도 있고. 이 정권이 되게 좋아할만한 학굔데. 우연히 진보지식인이 되버린 박찬경 교수님도 왜 우리가 어떤 기회를 놓치고 왔을까, 대안 같은 거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릴께요.

박찬경 :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잘 찾아서 해야 할 거 같습니다. 힘들어요, 지치고. 한 20년 싸웠으면 됐지 또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다른 방법이 없는 거 같아요. 새로운 대안과 방법은 다 나온 거 같구요. 일종의 제로그라운드라고 해야 하나. 개개인에게 묻는 거 같아요. 뭐할래, 뭐 할 수 있을까.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고 거기서 연대하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문화예술은 한 10년 동안 각자 작업하느라고 바빴잖아요. 그간 좋은 환경에서 작업한거죠. 각자 바빴던 것이 있는데 이젠 좀 자기 예술만 하지 말고 주변의 다른 것들과 손잡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윤성호 : 아까 잠시 진중권 교수 얘기가 나왔는데, 그분이 한예종에서 외래교수 했는데 지금 나온 조치로는 마땅히 받아야 할 강사료를 다 환수하라고 판정이 나왔을거에요. 한예종에서, 많은 예술의 기관장, 단체에 대해 눈에 보이고 혹은 보이지 않는 탄압이 있는데, 제가 자꾸 예를 한예종으로 드는 건 한예종이 후안무치하고 첨예해서 그런가봐요. 한예종이 장기화되면서 약간 잠잠해진 느낌이 있어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김동우 교수님도 투쟁하셨는데 본인한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임에도 싸움들이 조금씩 지칠 때가 있었을 거 같아요. 화면에서는 학생들이 도움이 됐는데, 그런 노하우, 경험을 들려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김동우 : 글쎄 저는 부끄럽게도 세종대학에 오기 전에는 지금 생각하면 예술은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너무 강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순수한 예술지상주의적 사고를 오랫동안 가졌던 거 같은데 예술이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이용이 된다던지, 오랫동안 서양의 역사에서 보면 종교의 도구가 되는 예술을 많이 봐왔고, 그러면서도 예술은 발전해 왔지만. 저는 사회의식, 정치의식이 없다시피 한 그런 무색무취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진보·보수 ·좌·우 등등의 논리에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고, 사실 지금도 저는 그 말을 별로 적극적으로 사용안합니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는데 굳이 그런 프레임으로 대는가. 무엇이 민주적이냐,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얘기하는데 경우에 따라 좌다 진보다 이런 식으로 정치적 색을 입히는 게 우리 한국사회가 아닌가. 제가 재임용에 부당하게 탈락했다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이 엄청 상한거죠. 어쨌든 돌을 갖고 애를 써서 내 나름대로 만들었고, 그것을 평가하는 건 보는 사람의 자유죠. 좋게 보는 사람도 있고, 여자가 뚱뚱하고 정말 그렇게 보는 건 그 사람의 자윤데. 그걸 만든 사람에게 자기 권력을 이용해서 강압적으로 고치라고 할 때, 참 정말 난감했어요.


그리고 사실 교수가 뒤늦게 됐죠. 저는 외국생활 오래 하다가 40대 후반에 엉겁결에 그 당시 IMF오고 하니까. 그 전에는 전업 작가로 작품이 그런대로 판매가 돼서 생활을 했는데, 97년도에 작품이 팔리지도 않고. 유학을 했지만 대학교수는 생각 안 하고 유학을 했어요. 저는 대학만 두 번 다녔지 대학원 다닌 적도 없습니다. 예술가의 길과 교육자의 길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늦은 나이에 경제적 상황에 의해 대학에 와서 오자마자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 분노를 느꼈고. 아주 단순한 얘기에요. 어떻게 예술가에게 이런 부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선택을 했죠. 이 작품을 고쳐서 ‘이사장님 아닌 게 아니라 짜리몽땅하고 답답하네요, 제가 실력이 모자라서 그렇습니다’라고 말하고, 좀 더 날씬하게 고쳐서 그분의 기분을 좋게 해드리고, 학교에 편안하게 있는 길과, 내가 예술가의 자존심을 갖고 이걸 끝가지 주장해서 불이익을 감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몇날 몇일 했습니다. 불현듯 내 자신에 대해서 내가 왜 이런 걸 갖고 고민하나, 내가 언제 교수였다고, 교수 자리에 연연하면서 내 작품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가 그런 생각에 크레인 불러서 손 하나 안대고 작품을 갖다 놨죠. 그 다음날 불려가고 시련이 오고, 결국 쫓겨나는 상황이 됐을 때 제 나름대로 두 가지 길이죠. 조용히 작업하면서 산속에 파묻혀서 작가로 살아가느냐. 근데 황 선생님 옆에 계셔서 싸울 수 있는 용기도 주시고 했지만 어쨌든 제 자신이 좌우, 진보 보수 떠나서 이건 말이 안되는거다 한 번 붙자. 속된 얘기로 한 번 붙여서 머리가 깨지도록 붙자. 아주 점잖은 방법으로 1인 시위를 택했고, 1인 시위가 제가 3년 반을 했는데 매일 그 자리에 서서 저는 무슨 생각을 했겠어요. 제가 예술가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됐고 많은 학생들이 큰 힘이 됐고. 그래서 지금은 이 영화를 보고 즐거운 마음이 아니라고 했지만, 저는 믿습니다. 역사의 진행이 결코 거꾸로만 가지 않는다. 제 인생에서 이 영화를 찍었던 몇 달은 굉장히 행복했던 시간이고. 그리고 황철민 선생이 스승의 날 학생들 앞에서 해주시는 얘기, 우리 둘이 희망을 만들 수 없지만 방향은 우리가 보여줄 수 있다고 한 훌륭한 말씀. 그건 아직도 저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성호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학생들과의 연대를 여쭤봤는데 학생들이 큰 힘은 안됐던 거 같습니다(웃음). 농담이구요. 질문을 마이크를 관객에서 넘길께요. 질문, 지지, 의문점을 물어도 좋으니까요 손 들면 마이크가 갈겁니다.

황철민 : 제가 덧붙여 추가로 말씀드릴게요. 이 싸움하면서 느꼈던 건, 싸움하면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공부하면 떠오르는 게 손자병법 시작해서 쭉 있는데 적을 알아야 싸움을 이긴다는 게 있는데 우리가 적을 알기 어렵죠, 사실. 학교에서 촬영금지 가처분 신청도 내고, 출입금지도 내고 어떤 분들은 이 영화 보면서 너무 일방적이다, 한쪽편만 나온다 이사장, 교무처장 인터뷰 따서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야 다큐 아니냐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이런 영화를 찍는데 인터뷰를 해줄 이사장이, 그렇게 상식적인 이사장이면 이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겠죠. 한국사회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얘기하는 상식이 있고, 옳은 것이 뭔지 다 아는데 그런 방법이 주어지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믿는 방법대로 가야 하거든요. 제 생각에는 결국 여러분들이 싸워서 이기려고 한다면 의지가 무진장 중요해요. 김동우 선생님은 의지가 있으셨고, 그 전에 투쟁하진 않으셨지만, 한번 붙으면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가 있으셨어요. 어느 날 저에게 전화를 하셨어요. 내가 이렇게 됐다, 사정을 얘기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만나서 까페에서 선생님하고 얘기를 해봤어요. 제가 얘기 하면서 파악하려고 했던 건 이분이 의지가 있으신가, 몇 일 싸우다가 쪽팔려서 못하겠다, 교수가 이런 거 해도 되냐, 김동우 선생님 1인 시위 할 때 총장이 불러서 교수가 노동자같이 이게 뭡니까, 이래서 김 선생님이 내가 석공이지 무슨 교수였냐 하셨다고 하는데, 많은 분들이 투쟁에서 좌절하는 건 그런 사소한 거 같아요. 근데 이 분은 성질이 있으시더라구요. 한번 붙으면 포기할 분이 아니더라구요. 선생님 하신다면 제가 영화 찍는 사람이니까 다큐 만들어서 다큐로 투쟁의 종자돈 만들어봅시다, 라고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막연했어요. 그냥 붙어보자, 더럽고 치사하니까 우리도 자존심 있는데 그렇게 한 번 붙은거에요. 근데 싸우다 보니까 그 적이 무진장 크고 무섭고 강했는데 붙어보니까 서서히 적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아주 강고해 보이는 적이지만 서서히 적 내부의 균열이 보여요. 여러분들이 차돌을 보면 안 깨질 거 같잖아요. 그것도 아마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거기도 균열이 있을거예요. 결국에는 그 균열을 찾아내는 힘은 의지고, 여러분들이 한 번 붙어보겠다고 훅하고 달려드는 자세가 필요하다는거죠. 결국에는 세종대 싸움은 김동우 선생님 혼자 이긴 것도 아니고 도와주신 분들의 힘만으로 된 것도 아니에요. 적의 내부 균열에 의해 무너진거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여러분이 누굴 상대로 싸우던지 그 적에도 균열이, 약점이 있어요. 그 약점은 그냥 드러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정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덤빌때 드러납니다. 여기도 나오지만 설립자 내부의 균열에 의해 세종대 싸움을 이기기 된거에요. 이사장을 고발할 수 있는 그런 자료를 어디서 얻겠어요. 비리의 자료는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거지 외부사람이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죠. 근데 내부에 균열이 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거죠. 경우에 따라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거죠.

윤성호 : 이 부분은 잘라서 편집해서 UCC로 회자가 돼야 할 거 같아요. 한예종 처음 시위할 때 학생들이 유인촌이 오니까 자기도 모르게 깍듯하게 인사하게 되잖아요. 근데 학생들도 점점 더 단단해지는 거 같더라구요. 그런 게 희망의 증거인거 같구요. 마이크 넘기겠습니다. 여담으로 한예종 만큼 인연있는 학교가 세종대거든요. 학교에 있는 예수님 상 보면서 신해철 닮았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오늘 봐도 닮은 거 같아요.

관객 1 : 작업에 관한 감독님의 연출의도를 좀 더 여쭤보고 싶은데요. 우선 사학재단이 자본과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해서 한예종이 적당한 비유는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여담이지만 제 친구가 건설회사 사장인데 이번에 4대강 수주를 받았어요. 1200억을 벌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친구는 그 돈을 벌어서 지방대 만 명 정도 되는 데를 인수해서 이사장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왜 그러냐 했더니 이사장을 해서 만 명 정도 인수하면 6개월마다 400억이 자기 통장으로 들어오는데, 그걸 갖고 다른 사업을 할꺼다, 하던데 결국 그런 사학재단이 자본의 문제와 밀접할 수밖에 없는데. 제가 보면서 작품을 보면서 궁금했던 건 결국 재단의 비리를 밝히는 데 있어서 김동우 교수님 같은 경우도 학자이자 예술가이지만 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자나 계급의식도 많이 생겼을 거 같더라구요. 전반적이고 구조적인 얘기를 작업에서 확장시킬 수 있었는데 결말에서 이렇게 훌륭하신 분, 양심적인 분으로 얘기를 축소시켰던 점에 대해서 의아했던 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연출자의 의지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작품 전반에 대한 연출도 그런 갈등이 있으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황철민 : 프로파간다를 하려면 교활해야 해요. 저는 이 작품을 하면서 관객에서 전달해야 하는 정보가 뭔가 생각했어요. 그 정보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떤 정보는 의식의 차원에서 전달해야 하고 어떤 정보는 무의식 차원에서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관객과의 만남이라는 것은 두 가지의 전달방법이 조화롭게 됐을 때, 이게 결국 음식을 한다면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관객에게 충분히 정보를 전달했어요. 이성적으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했구요, 제가 관객들이 구체적으로 주제라는 측면에서 전달받게 하는 부분들은 축소를 시켰죠. 지금 얘기하신데로. 감성적인 부분으로 축소를 시킨거에요. 근데 이 안에서 자세히 본 관객이라면 한국사회, 한국사학의 문제가 뭔가에 대해서 이론적인 부분들은 접수를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끝까지 갔을 경우에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니지만, 흥행에 더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요. 메시지가 강한 영화일수록 저는 감성적인 부분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실 관객들이 영화관에 오는 건 뭔가 보기 위해 오는거라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는데 볼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지죠. 가장 쉽게 만드는 방법은 돈인거죠. 우리가 헐리웃 영화를 보면 기분 좋은 게 무진장 많은 돈이 투자가 됐고, 돈이 만드는 게 관객을 즐겁게 하는데 이런 영화는 그런걸 만들 수 없는 상황이고 담을 수 있는 내용이 제한 돼 있기 때문에 결국 다른 방법, 딱딱한 이야기만 전달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제가 할 수 있는 사소한 부분들을 통해서 관객을 통해 서비스 하는, 서비스 정신이 저는 좀 많아요. 독립영화하기엔 좀 아까운데(웃음). 이 영화를 보시면 음악이 죽여준다고 생각하실텐데. 이 음악은 김동우 선생님이 음악을 하셨습니다. 저는 굉장히 좋았구요. 그동안 음악을 담당해주는 분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김동우 선생님이 음악을 해주셨어요. 굉장히 감성적인 음악을 골라주셨고. 전체적으로 딱딱함과 물렁물렁함이 잘 조화를 이룬 작품이 아닌가 하는 자화자찬을 하곤 합니다(웃음). 죄송합니다.

윤성호 : 저도 독립영화 진행하기엔 좀 아깝죠(웃음). 제가 이 영화를 2002년에 봤습니다. 이때 제가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는데 저는 완벽한 작품 이런 건 아니겠지만. 이 작품을 경로로 해서 맑스의 저작을 읽어본 적 없다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걸 처음 느꼈던 거 같아요. 싸워야 할 처지가 돼 보니 노동자를 이해한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저에겐 그런 정도의 경로가 됐던 거 같습니다. 다른 질문.

관객 2 : 저 역시 예술대학을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학교에 존경할만한 교수님이 안 계셔서 실망을 많이 한 학생이었어요. 김동우 교수님께 질문하고 싶은데, 영화 초반에 소위 브루주아 예술가라고 감독님이 말씀하시는데 이런 과정을 겪으시면서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동안 쌓아 오신 게 쉽게 바뀔 거 같지 않거든요. 어떤 생각의 변화 과정, 이런 걸 겪으셨는지.


김동우 : 아침 9시에 학생들 등교할 때 점심시간 까지 기본 두 시간, 서비스로 한 시간 더 서있기도 하고(웃음). 저는 많은 타자들의 시선에 노출돼 있죠. 그들이 나를 보고 내가 그들을 바라보죠. 그러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죠. 가장 서글픈 건 동료교수였던 사람들조차도 나를 정문에서 피하기 위해서 다른 데를 보고 지나간다던지, 정문 앞에 영화 속에 나오지만 자동차 진입하는데 바로 그 앞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후문으로 다닌 사람도 있다고 하더만, 그래도 그 사람은 양심적이죠. 후문으로 다니면서 내 앞을 도저히 지날 수 없었다, 옆에 서줄 용기가 없었다는 분도 있었는데. 저는 잠시 차단기가 올라가면서 차가 서 있는 몇 초 사이에 다양한 인간 군상을 감상하게 돼요. 그 사람들과 나 사이에 차라는 공간적 차이는 있지만, 억지로 외면하려고 애쓰고, 열 명 중 한 명 정도가 눈인사를 고개를 살짝. 제가 이런 얘기를 드리는 건 지금 생각해보면 전 주명건씨가 고마워요. 이 세상을 보는 바른 시야를 갖게 해 준 거 같기도 하고, 잠시나마 세종대의 민주화를 4년 동안 좋은 선생님들 다시 모시고 민주적인 운영을 한 달 전까지 할 수 있었던 거. 질문의 답변이 빗나간 거 같지만. 그래요. 많은 철학책을 봐서가 아니라, 그런 당장 뜨거운 걸 만졌을 때 그야말로 ‘앗, 뜨거’ 하고 손을 놓는 동물적 반사작용에 의해서 저는 싸웠을 뿐이에요. 그 얘긴 봉변을 당하면 아까 맑스 얘기 나왔지만 그 얘기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해요.


무슨 얘기냐면 고난이 왔을 때 의식이 생기고, 그 의식이 행동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있겠죠. 누가 때리면 ‘아파요’ 혹은 ‘왜 때려’ 둘 증의 하나죠. 저항이냐 복종이냐. 저는 맑스처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쫓겨나고 보니 뒤늦게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해서 맞다고 생각했는데 한참있다 보니까 그건 반대의 경우도 되는거거든요.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거에요. 맑스가 살아있다면 당신 얘기도 맞지만 그 논리를 거꾸로 내가 무슨 생각하느냐가 내 존재를 규정하는거지, 교수 혹은 노동자라는 사회적 신분을 갖고 사람을 규정할 수 없다. 결국 존재가 아니라 의식이다라는 생각이 드는거죠. 많은 교수들이 해직 당했지만 저처럼 싸우진 않거든요. 다 아픔을 느끼지만 덤비지 않았거든요. 제가 1년 동안 안식년으로 나가있다가 들어 온지 10일 정도 됐는데. 한예종을 얼핏 알고 있는데. 정권이 바뀌고 나서 무식한 장관이 와서 횡포를 부리고 그런 정도 아는데. 훌륭한 교수님 많으시죠. 학생들이 필요하다면 따로 만나서 제 나름대로의 투쟁에 대해 필요한 말씀을 드리겠지만. 제가 한 가지만 얘기하자면 나와의 싸움인거거든요. 물론 적과 싸우지만 그 적이 사실은 보이지도 않고 세종대와 싸우지만 세종대가 어디 보입니까. 세종대가 어딨어요. 건물이 있죠. 저와 세종대 싸움은 사실 저와 대한민국과의 싸움이에요. 조중동, 사법부, 학교에 들어오지 못하게 가처분 신청해서 재판하고 명예훼손으로 대법원까지 가고 그런 일을 당하면서 저는 투사가 됐고. 솔직히 저는 이 싸움이 길었으면 분신 했을겁니다. 머릿속으로 와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이 없는 내 마지막 저항의 모습은 무엇이냐. 극단적인 게 아니라 나의 미래의 모습을 그렸었는데. 예를 들어 싸우다가 국회의원이 만나주겠다고 하면 9시부터 오전에 서는 걸 국회의원 약속 때문에 못하고 일보고 밤 9시에도 와서 섰어요. 자랑 같지만 누가 보든 안보든 나는 선다. 밤에 와서 서면 누가 봐요. 수위 밖에 없어요. 깜깜한 밤이에요. 그 때 내가 와서 섰을 때 난 이긴다. 여러분들이 싸울 때 물론 도와주는 분도 있죠. 도와주는 분들 믿고 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열정이 있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생기는거죠.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이간질을 하고 김 교수 문제 있어 쫓겨난다고 할 때 너희들 가라 그랬어요. 나는 혼자 거꾸로 서서라도 돌아온다, 너희들 가라. 하여간 투쟁을 할 때는 나와의 싸움이고 하다보면 여러 연대 단체에서 도움을 줄 때는 눈물겹게 고맙죠. 그러나 내 스스로가 얼마나 이 싸움에 주역이 되느냐가 이게 가장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성호 : 저희가 2월에 월례비행 처음 시작했을 때 경희대 이택광 교수가 왔는데, 그 이후로 한 번에 교수 3명 모셔놓고 하니까 3교대 강의 하는 거 같네요(웃음). 저희가 시간도 됐고, 광고 드릴께요. 주최한 인디포럼도 독립영화의 가장 오래된 커뮤니틴데 저희도 비슷한 고난을 겪고 있어요. 매년 1000만원을 지원받았었는데 그걸 이번에 당연히 짜르더라구요. 저희 뿐만 아니라 이런 데가 많아서 저희가 사실은 분노 보다는 실소가 나오는, 웃긴 거 거든요. 저희가 9월 12일 토요일에 인디포럼 채무파티를 할거에요. 올해 인디포럼 행사를 하고 채무가 있는데 영진위에서 지원금 들어오면 갚는건데 그게 없어져서 천만원이 빚이 됐거든요. ‘그렇다면 십시일반’ 할건데(웃음). 그런 식으로 즐거운 액션을 하려고 하구요. 작은 승리들이 큰 승리가 되도록 땅을 다졌으면 좋았을텐데, 충무로 활력연구소 같은 소중한 미디어센터가 관료주의에 밀려날 때 그 때 확실히 버르장머리를 고쳐놨으면 좋았을텐데, 미리미리 연대하지 않은 것들이 아쉬운 시절같고. 교수님이 주명건에게 고맙다고 했는데, 월례포럼이 매번 MB 요정론으로 끝나요(웃음) 예술이 정치에 관심 안 가지면 정치가 얼마나 예술에 많은 간섭을 하는지 깨닫게 되는 요즘인데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듣겠습니다.

황철민 : 좀 늦었지만 이 자리에 우리 투쟁의 동지들이 와 계시는데요. 우리 투쟁의 리더역을 하셨던 분이세요. 우리가 승리한 다음에 사실은 재단 사무국장이 되셨어요. 그래서 지난 4년동안 민주적인 학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본때를 보이신 분인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대기발령을 받으셨거든요. 지금 다시 야인이 되신 분인데 우리 사무국장님 잠깐 인사해주시죠. 앞으로 우리 투쟁의 중심이 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은아라구요, 학생과의 연대를 얘기했는데 김동우 선생님 투쟁하는 내내 같이 투쟁했던 제자입니다. 이런 분들이 없었으면 어쨌든 지금 완전 끝난 승리는 아지니만 이런 승리도 이뤄내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고맙게 생각합니다.

김동우 : 제가 음악을 참 좋아하는데. 배경음악을 편안하게 아무 때나 듣고 싶은 음악을 듣다가, 영화에 음악이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처음 느끼면서 영화가 하나의 언어라는 걸 느꼈어요. 장면 장면에 음악이라는 게 사전이 없는 언어인거죠. 왜 이 장면에 이 음악이 들어가야 하는가. 그리고 기조적으로 전체적으로 처량하잖아요. 교수가 쫓겨나서 서 있고, 너무 신파적으로 흐르기도 그렇고. 나름대로 제 의도가 있습니다. 음악이 가진 문학적 요소가 있는데 제일 마지막 곡 에디트 삐아프가 부르는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라는 게 엔딩에 이 영화가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들 즈음에느 복직 꿈에도 못꿨어요. 솔직히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말이 안되니까 싸우는거지. 무슨 힘이 있다고 그 거대한 조직을 이기겠어요. 마지막에 어떤 음악을 할까 고민하다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에디트 삐아프 이 노래 가사가 과거의 내가 행복했던 슬펐던 다 잊고 제로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거거든요. 활기참, 미래에 대한 꿈의 느낌도 있지만 좋다, 난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겠다 하는 희망으로 이 음악을 썼거든요. 한예종 학생들이 민주적 투쟁을 하고 계신 거 같은데 우리 제로에서 다시 시작합시다.


글: 이도훈
녹취: 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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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각하의 만수무강>,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뉴스페이퍼맨>


요즘 버스를 타고 거리를 지나다 보면 지하철역을 끼고 있는 사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는 플래카드가 있다. “드디어 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렸습니다!”라는, 다소 격양된 느낌이 드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그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벌써 3개월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그 3개월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플래카드는 이제 좀처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에는 갖가지 정치적 담론, 때때로 코미디에 가까운 수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탈모 걱정 끝’, ‘열흘 간 10kg 감량’ 따위의 ‘선정적인’ 광고가 잔뜩 기를 펴고 있는 바로 그 공간에 어떤 이들은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 여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종로구 한복판에 큼직하고 푸른 색깔로 선정적 문구가 적어져 있는 플래카드 옆에 누군가 아주 작은 글씨로 ‘죄송합니다’라고 쓰여진 천 조각을 슬며시 붙여놓은 것이 눈에 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되어지지 않는 자신감들이 한 군데 모여져 아이러니한 광경을 선사한다. ‘24시간 노래방 도우미 대기’와 같은 3류 광고보다 훨씬 자극적이다.

7월 22일, 미디어법은 수많은 의혹과 문제 제기 속에서도 굳건하고 치밀하게 통과 선언을 외쳤다. 한나라당은 수개월 전부터 미디어법을 새로 개정해 시행해야만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외치며 결국 해당 사안을 국회 표결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 그들은 보기 좋게 대승을 거두었으며, 투표에 관한 온갖 부정행위에 대한 명확한 증거 자료에 대한 모든 것들을 부정했다. 미디어법이 개정되면 수 천, 수 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져 민생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하던 그들. 하지만 서민을 위한 정치를 몸소 실천해야만 한다고 말하던 그들이 민생과 동떨어진 미디어법에 목숨 거는 것은 결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다. 말장난으로 시작된 ‘뉴라이트’가 어느새 대한민국 보수언론의 중축이 되어 폭풍처럼 밀려온 것을 재현이라도 하듯 그들은 정식 법률안이 아닌 미디어법을 개정해 ‘비민주’를 ‘법’이라는 잣대로 짓밟아버리겠다는 흑심이 숨겨져 있다. 미디어법을 강제로 통과시키기 무섭게 그들은 말을 바꾼다. “서민이라고 무조건 보호해줘야 합니까?” 텔레비전 앞에 앉아 수박을 우걱우걱 깨물던 친구가 냉큼 한 마디를 던진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재밌게도 지난 달 말 상영회를 가졌던 인디포럼 월례비행 7월의 프로그램은 ‘미디어’에 관련된 것이었다. 7월 월례비행은 미디어의 진실과 거짓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세 개의 단편을 연달아 상영했으며, 이 날 상영된 단편은 정승구 감독의 <이제는 말 할 수 있다>와 김경만 감독의 <각하의 만수무강>, 그리고 김은경 감독의 <뉴스페이퍼맨-어느 신문지국장의 죽음>이었다. 세편의 영화 모두 미디어법에 관한 ‘국회 전쟁’이 있기 전에 프로그래밍된 것이었지만, 흥미롭게도 그 시기가 정확히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이 날 차례로 상영되었던 세 단편들 모두 미디어 자체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나의 극과 두 개의 다큐멘터리로 구성된 각각의 단편들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관점에서 언론에 대한 냉혹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세 가지 단편 중 유일한 극영화였던 <이제는 말 할 수 있다>는 ‘대박’을 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신입피디의 이야기이다. 피디는 우연히 춤을 추는 개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카메라맨과 함께 이 신기한 개를 취재하기 위해 급하게 제보자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그들을 맞는 것은 ‘진짜로’ 춤을 추는 개가 아니라, 평범한 개를 ‘가짜로’ 춤추게 만드는 호들갑스러운 주인이다. 그리고 피디는 자신과 비슷한 취재를 하기 위해 제보자의 집을 방문한 신사적인 풍채의 한 신문기자를 만난다. 개가 제대로 춤을 추지 않자 피디는 안달 내며 어서 개를 춤추게 해보라고 화를 내지만, 그런 피디를 지켜보고 있던 신문기자는 개가 춤을 추든 춤을 추지 않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현 대통령의 취임 시기와 전 대통령의 직무 기간 등을 꼼꼼히 따지던 신문기자는 다음 날 그가 취재한 개와는 전혀 상관없는 기사를 일반화하고, 춤추지 않는 개에 당황한 피디는 살아남기 위한 묘안을 생각해낸다.



극영화인 <이제는 말 할 수 있다>는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그러나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되는)를 통해 현실의 미디어를 풍자한다. <이제는 말 할 수 있다>가 재치 있는 구성을 통해 살짝 뒤로 떨어져 미디어를 비판한 작품이었다면, 이에 연달아 상영된 <각하의 만수무강>과 <뉴스페이퍼맨>은 우리가 간과한 현실 그대로를 정확하고 강렬하게 파고든 다큐멘터리들이다. 이미 많은 영화제와 매체를 통해 소개된 바 있는 김경만 감독의 <각하의 만수무강>은, 한국의 초대 대통령, 그리고 초대에서부터 3대까지 대통령직을 맡았던 이승만에 관한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2009년 현재의 상황, 현재의 기억, 그리고 현재의 논점에서 역행해 1960년대 과거의 이야기를 제기하는 이 영화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던 언론 통제에 관한 문제를 환기시킨다. <각하의 만수무강>은 축하와 찬양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승만에 관한 수 십 가지 ‘사실’영상들을 편집해 과거 한국 국민을 선동하던 ‘대한늬우스’의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절대 지도자로 군림하며 절대 복종을 신념 삼았던 이승만의 모습은 1960년대와 2009년 현재의 간극을 뛰어넘어 편집되어진 장면과 전환되는 이야기들을 통해 철저하게 풍자되고 무너져 내린다. <각하의 만수무강>은 과거로 자꾸만 역행하는 현 세태를 비판하기 위한 영화일 뿐 아니라, 과거를 잊어가고 과거에 대한 모든 사실관계를 외면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일침을 가하는 영화다.



애초에 극영화로 제작되었으나 이후 다큐멘터리로 행로를 바꾼 <뉴스페이퍼맨>은 우연히 어떤 기사를 읽고 호기심에 잠겼던 김은경 감독의 개인적인 생각에서부터 출발한 영화다. 2006년 겨울, 그녀는 동아일보의 지국장이었던 한 남자가 신용불량으로 인해 자살을 택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접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거대 언론을 자처하는 세 신문사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뉴스페이퍼맨>은 동아일보의 갈현지국장이었던 고 박정수씨의 죽음에서 시작되어 침착하고 차분하게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큰 여론을 담당하는 ‘신문’에 관한 이야기를 건넨다. <뉴스페이퍼맨>은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일방적이고도 강압적인 마케팅을 명령하던 본사의 횡포에 떠밀려 지국장을 그만 두었던 사람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영화는 신문 판매 시장의 실제 운영이 얼마나 추악하고 공감할 수 없는 수법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묘사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쫓겨나야만 했던 전 지국장들의 아픔을 놓치지 않는다. <뉴스페이퍼맨>은 독립영화, 그리고 다큐멘터리만이 폭로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장점을 여과 없이 표출하고 고발해낸다.

십 수 년에 이어 아직까지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심슨 가족’이라는 폭스사의 시리즈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 심슨 가족은 때때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표현으로 미국의 몇 기관으로부터 방영 제재를 받았던 적이 있었지만, 심슨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미국, 그리고 세계 각국의 세태를 비판하기 위한 안성맞춤인 도구로 존재하기 때문에 심슨 시리즈를 증오하거나 기피하는 ‘어른들’은 별로 없다. 심슨 가족에는 심슨을 괴롭히고 심슨이 사는 동네인 스프링필드를 궁지에 몰아넣는 악덕 회장 몬티 번즈가 등장한다. 그는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스프링필드 주민들을 증오한다. 주민들은 몬티 번즈가 그릇된 행동으로 여론의 미움을 사기 때문에 그를 미워하고 그가 없어지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심슨 가족 중 세 편의 에피소드에서 몬티 번즈의 ‘미디어 길들이기’ 전략이 능수능란하게 전개되는 것이 풍자적으로 나오는데, 미디어와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번즈 사장이 벌이는 수법은 혀를 내두를 만큼 황당한 것이다. 죽은 척 위장해 자신을 순교자로 떠받들게 만들고 종종 거대 자본으로 스프링필드의 모든 미디어를 사들여 자신에 대한 착하고 아름다운 광고를 내보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또한 그는 ‘멍청하고 둔한’ 심슨을 이용해 티끌만큼의 자선사업을 계획하여 모든 수익금을 빼돌리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몬티 번즈의 ‘미디어 통합 계획’이 문득 생각나 심슨가족의 일부 시즌을 재관람하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심슨가족이 ‘현실’이 아닌 ‘허구’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설정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점점 발 디딜 곳을 잃어가는 작금의 사회는, 이제 심슨 가족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더 이상 그저 ‘만화’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수의 목을 조여 온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결말은 늘 선이 이기고 악이 패한다는 설정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희망을 거는 사람 자체를 바보취급하게 되는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에게 그런 희망은 사치로 전락했을 뿐일까. 전국의 88만원 세대가 사회의 진통을 낳는 대한민국의 이데올로그들을 등지고 ‘스펙 쌓기’에만 치중하고 있을 때, 그들은 국민의 눈과 입을 닫아 소통 자체를 불허하는 광경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부와 대기업이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방송과 신문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조종하는 세상, 생각만 해도 끔찍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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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예 그 일을 사랑

    2012.08.2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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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인터뷰가 많이 잡혀 있는 것 같던데, 시트콤 촬영하랴 영화 홍보하랴 바쁘겠다.

그렇게 바쁜 편은 아니다. 오늘 인터뷰가 좀 몰려있는 편이지만, 시간이 지나니 괜찮은 것 같다. <태희혜교지현이>도 이번 달 23, 24, 25일이 마지막 녹화다. 영화는 상미언니(남상미)가 워낙 신경을 쓰고 있어서 많이 바쁘다. 나는 뭐 상미언니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다.(웃음)

촬영은 어땠나? 맡은 역할이 그렇다보니 고생도 많았다고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고생한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려웠던 점은 전 작품보다 연기력이 많이 요구되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더 많이 신경 쓰고, 고민도 많이 했다. 촬영 때 고생스러웠던 기억은 접신 장면에서였는데, 촬영에 몰입하다가 기절하면서 머리를 부딪쳐 의식을 잃기도 했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스탭들이 얘기해주면서 많이 걱정해줬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이 작품은 내가 하기에는 연기적으로 어려운 작품이겠구나 싶었다. 근데 왠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이 역할을 하게 되면 후회가 될 것 같았다. 욕심이 났다.

쉽지 않은 캐릭터다. 부담스러운 부분도 많았을 텐데.

솔직히 부담이 많이 됐다. 캐릭터에 대한 이유는 아니고 인물의 중요도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소진은 중심이 되는 역할이고 핵심적인 인물인데, 여기서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들한테 죄송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부담이 됐고, 더 열심히 했다.

소진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나? 영화 외적으로 어떤 설정을 뒀나?

소진은 뭔가 알 수 없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그냥 평범한 아이다. 특별할 것도 없고 유별난 것도 없는 그냥 아이 그 자체다. 하지만 어른들이 멋대로 판단하면서 소진을 괴롭힌다. 원래 어떤 대상을 특별한 시각으로 판단하면, 그 대상도 판단에 맞게 변하게 된다. 그래서 소진이도 그렇게 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변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된 믿음과 판단 때문에 그렇게 변화되도록 강요당한 거다. 결국 어른들의 희생양이다.

이용주 감독이 특별히 요구한 부분이나 포인트를 집어준 부분이 있나?

촬영 전보다는 촬영을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감독님은 너무 강한 걸 원하지는 않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강한 장면들이 많아서 임팩트를 살려서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접신 장면에서도 좀 강한 표정과 과감한 행동으로 연기해야겠다 싶었다. 근데 감독님은 그걸 원하지 않았고, 강렬함보다는 위엄 있는 모습을 요구했다. 접신 장면에서도 위엄 있는 모습을 통해 진짜 신처럼 보이길 원했다. 작두 위의 모습에서도 강하고 광적인 모습보다는 주위를 압도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을 표현했다.

대사를 많이 쓰지 않고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특히 접신 장면처럼 표정이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촬영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작두 위에 올라가는 장면에서 얼굴 표정을 찍을 때였다. 처음에는 좀 센 표정으로 눈도 막 째려보고 이런 걸 예상했는데, 감독님은 좀 다른 스타일을 원해서 테이크도 여러 번 갔었다. 개인적으로는 좀 강하게 표현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근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감독님 말도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이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 잘 표현된 것 같다.



 

시나리오로만 읽었을 때랑 완성된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은 어떻게 다르던가?

전체적으로 잘 구현된 것 같다. 아쉬운 점은, 창문에서 입을 크게 벌리는 장면이랑 끝에 슬프게 우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시나리오 때도 그렇고 찍을 당시에도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근데 아쉽게도 우는 장면이 편집됐다.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는데 편집이 돼서 많이 아쉬웠다.

영화의 뒷부분이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더라. 편집이 많이 돼서 그런가?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도 그렇고 뒷부분이 많이 아쉽다는 얘기를 하더라. 개인적으로 속상한 건, 연기가 좋고 장면의 느낌도 좋았는데 끝에 가서 편집되는 경우들이 생긴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는 연기자의 욕심이겠지만.(웃음)

촬영 내내 음산한 분위기를 위해 우울한 기분을 유지하느라 힘들었겠다.

반대다. 우리 촬영장은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우울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영화지만, 촬영 당시에만 심각하지 그 외에는 너무 화기애애했다.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촬영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불신지옥>이 기존의 공포영화와 비교해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기존의 공포영화은 피나 귀신, 쿵쿵거리는 사운드 같은 것들로 공포를 만든다. 근데 우리 영화는 현실에서 있을 법한 공포를 다룬다. 예를 들면 9시 뉴스 같은데서 나오는 사건 같은 거다. 잘 알지 못하는 낯선 동네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이야기, 평범한 동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건들을 이야기로 담았다. 그런 사건들을 영화로 옮긴 느낌이다. 현실적이면서도 기괴한 이야기로, 여기에 심리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요소를 담았다. 그래서 더 무서운 영화가 됐다.

공교롭게도 <헨젤과 그레텔> 이후 연속으로 공포영화 출연이다.

<헨젤과 그레텔> 이후 연속으로 출연해서 이미지가 굳어질까 살짝 걱정도 했지만, 역할에 욕심이 나서 다른 부분을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 무조건 놓치고 싶지 않았다. 두 편 하고 나니 다음 영화에서는 밝고 희망찬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지금 방영 중인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에서처럼 밝은 역할?

근데 시트콤에서는 특별히 밝은 캐릭터라기보다 그냥 평범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다. 특별히 어떤 연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캐릭터였으면 좋겠다.

근데 생각해보면 <헨젤과 그레텔>이나 <불신지옥>이나 캐릭터의 이미지가 비슷한 면이 있다. 연약한 이미지가 공포와 맞물려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촬영하고 생각해보니까 <헨젤과 그레텔>의 영희나 <불신지옥>의 소진에 공통점이 있더라. 둘 다 어른들에 의해서 희생당하는 캐릭터라는 점이다. 또 둘 다 아픔을 혼자 지니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공통점이 많은 캐릭터다.

시트콤 작업을 병행하느라 힘든 점은 없었고?

왔다 갔다 하면서 촬영했다. 근데 영화 스케줄은 드라마랑은 달라서 잠깐씩만 하는 편이라 시간적으로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또 시트콤도 고정된 스케줄이 있어서 크게 문제는 없었다. 일주일 분량을 3일에 다 찍으니까. 게다가 신도 많지 않아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하루에 5,6개 신이 있을 때는 오후 2시에 시작해서 밤 11시 정도에 끝나곤 했다. 거의 대사만 맞으면 오케이가 나와서.(웃음) 그것보다는 두 작품을 같이 하느라 학교를 많이 빠진 게 안타깝다. 특히 시험 기간이랑 겹쳐서 많이 힘들었다.

요즘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지 않나?

요즘은 한국예술종합학교나 독립영화에서도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온다. 좋은 시나리오도 많아서 욕심이 나는데, 시트콤도 마무리 해야 하고 학교도 가야하고 해서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안타깝다.

시나리오를 받고 출연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일단 엄마랑 얘기를 많이 한다. 엄마는 어떤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우선 내 의견을 많이 물어본다. 이런 작품이 들어왔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다. 시나리오를 통해 하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를 정해도 고민되는 부분이 있으면, 주변에 있는 영화 작업을 하는 사람들한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성격을 바꾸려고 연기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는 배우가 됐다.

연기 덕분에 성격은 많이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말도 잘 못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두려워하고 그랬는데, 요새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탈이다.(웃음) 또 연기는 계속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학생인데도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연기가 나에겐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대신해서 지금 해야 되는 것이 연기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더 많이 배워서 더 잘하고 싶다.

드라마나 영화, 최근에 시트콤까지 활동 영역이 다양하다. 어떤 작업이 특히 마음에 드나?

다 재미있지만, 드라마하고 영화가 좀 더 맞는 것 같다. 시트콤을 찍으면서 느낀 건데, 시트콤은 나랑은 잘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웃음) 내가 하던 연기 방식과 시트콤에서 해야 하는 연기 방식에 차이가 있다. 특히 초반에는 적응하는데 많이 힘들었다. 순발력도 필요하고 기존에 하던 연기 호흡하고도 많이 달랐다. 진행 속도도 빠르다. 시트콤 초기에는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어도 주어진 역할이 크지 않다보니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점 때문에 혼자 힘들어하고 그랬다.

연기 좀 해볼까 싶어도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는?

그게 또 하다 보니 습관이 되기도 하더라.(웃음)




 

아직 학생 신분이라 연기를 하면서 학교도 다니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근데 작품 없을 때나 시간이 날 때는 친구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많다. 학교에 있을 때만큼은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학교생활도 충실하게 하는 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에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니까 안타깝다. 공부 대신이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하게 된다. 공부도 소홀하게 하고 싶지 않다.

쉴 때는 주로 뭐하면서 지내나?

평범하다. 책도 읽고, 컴퓨터도 하고, 친구들 만나서 놀러 다니고.(웃음) 뭐 특별한 것은 없다.

그래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러면 조금 불편하지 않나?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들 많이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게 힘든 부분은 없다.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할 건 다 하고 있다.(웃음) 놀러 다니고 그래도 많이 알아보지 않더라.(웃음) 그냥 알아봐도 자연스럽게 대하는 편이라 나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연기자라는 이유로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다.

아역으로 시작한 배우들은 나중에 그 이미지를 깨야 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까지는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아역에서 성인배우로 잘 넘어가려면 학생 때 너무 많은 작품을 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작품에 비슷한 캐릭터로 출연하면 이미지가 굳어질 수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 휴식기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바심 내지 않고 여유를 갖고 연기하고 학교도 다니고 할 생각이다.

처음 나왔을 때, 제 2의 문근영이라는 소리도 있었다. 제 2의 누가 된다는 건 아무래도 별로겠지?

특별히 누구랑 비교되는 게 싫었다는 건 아니고, 그런 표현 자체가 별로 좋은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 2의 누구보다는 심은경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싸이코패스를 해보고 싶다. 굉장히 순해 보이고 그런 일을 저지를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이중적으로 변해서 악한 얼굴을 보이고 하는 그런 캐릭터도 매력 있을 것 같다. 내면의 악을 끌어내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얼굴을 하고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강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옛날에 영화감독이 꿈이라고 했는데, 아직도 그 꿈은 유효한가?

물론이다. 아직까지 꿈에 대한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 나름대로 책도 많이 보고, 글도 많이 써보고 있다. 나중에 유학 가서 영화 연출 공부도 해보고 싶다.

연출하는 영화에 직접 연기도 할 생각인가?

연출하면서 연기를 같이 하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만약 연출을 하게 된다면 연출에만 전념하고 싶다.

다음 작품으로 계획 중인 것이 있나?

아직까지는 없다. 올해 상반기에는 영화나 시트콤을 하느라 학교를 많이 빼먹어서 잠시 쉬면서 공부에 신경을 쓸 생각이다. 친구들하고 어울릴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당분간은 휴식을 겸해서 학교생활에 충실할 생각이다.

심은경에게 <불신지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적인 부분이나 연기적인 부분에서 한 층 성숙하게 만든 작품이다. 특히 연기적으로는 여러 부분으로 자극을 줘 한 단계 올라가게 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 전 작품들보다 더 열심히 한 작품이라 애착이 많이 간다.




 

글_ 김도형 기자(무비스트)
사진_ 박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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