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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원

1. 김미례 <외박>(2009)

김미례 감독의 <외박>은 510일간 이랜드 총파업을 이끈 비정규직과 정규직 여성노동자들간의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당연히, 그들에게 돌아가야할 영화일 것이다. 이 공동체 의식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정규직과의 차별철폐를 외치는 비정규직 편에 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나서 장기 투쟁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은 낯설고도 감동적인 것이었다. 결국 정규직 지도부들의 일괄 총사표를 전제로 이들을 전원 복귀조치하게된 결말에 이르면 더욱 그러한 것이다. 영화는 초반, 막 투쟁을 위한 그녀들의 외박이 시작되는 시점의 막연한 흥분감들을 유쾌하게 스케치하며 곳곳 쉬어가는 틈을 이용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정규직 180일 일수를 넘는 자들과 넘지 못하는 자 등 각각 다른 입장에 있는 그녀들의 사적인 속내들을 질문하는 인터뷰를 인서트하며 즐거움과 그 이면의 미세한 갈등들을 긴장감있게 교차시켜 나간다. 영화는 특별히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었을 때, 이들이 투쟁(외박)을 결심하는데 있어 매일같이 결단을 해야하는 지점의 풍경을 인상깊게 보여준다. 마트에서 외박을 할 것인가,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가정으로 들어갈 것인가. 낮동안 지속되었던 공동 집회와는 또 다른 개인적 선택이 요구된다. 영화는 거의 대부분을 마트의 시멘트 바닥에 버티고 있는 여성들의 선택을 지지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고, 지금이 아니면 안될 일이라는 서슬퍼런 결단임에도 겉핧기로 보면 그녀들의 활기찬 모습 때문에 마치 그녀들이 집안을 내팽개치고 될대로 되라,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다는 오기식으로 비취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부부터 이런 모습은 점점 사라진다. 투쟁이 장기화될 기조가 보이자 민주노총 지도부의 공식적 지원선언과 대선 당시 권영길 후보를 앞세운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연대를 위한 개입이 본격화되고, 예상대로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영화엔 불가피한 폭력적 요소들이 연출된다. 팔과 팔로 짜여서 누운 채 버티고 있는 여성들의 몸 위로 경찰들의 뜯어내기(?)가 시행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성 경찰들을 동원한 모습은 웃지못할 풍경을 연출한다. 그녀들은 끌려가며 '니들은 엄마도 없냐'는 말을 반복한다. 이 지점은 혼란스럽다. 후에 면목 홈에버 매장을 점거했을 때에도 한 전경과 대화하는 신을 통해 '엄마 보고 싶어?'란 말이 얼핏 들려온다. 그녀들은 지도부가 자신들을 '아줌마'라 부르는 것이 격노하지만 집회에서는 스스로 '아줌마'들이 이렇게 나섰다라고 말한다. 나는 영화가 이 점을 지목해서 보여주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그녀들은 분명 공적 노동자로서 집회에 나왔다. 하지만 그녀들은 여전히 가정주부라는 역할에 매여있다. 이 투쟁은 민주노총 지도부들의 싸움과는 달리, 그녀들에겐 완전히 공적인 싸움이 아닌 것이다. 그녀들은 마치 이 두가지의 역할론에 대해 함께 투쟁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게다가 그녀들은 공적으로 노동자이면서 사적으로는 엄마일텐데, 이들이 결국 사회에서 불리는 말은 '아줌마'로 통일된다. 이 단어는 공적이지도 사적이지도 않은, 그 성격이 불분명한 특정 집단을 표현하는 익명성의 단어이다.


영화는 이 '아줌마'란 단어가 불편한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사회에 설득시켜야할 불가피한 때에 스스로 사용하는(인정하는) 모순을 보여줌으로 그녀들이 사회에 처한 모순적인 위치를 그대로 드러낸다. 영화의 후반부 물대포를 맞고 농성 천막이 부숴지고 지도부가 체포되는 모습들은 앞서 보여주었던 활기찬 풍경에 담긴 이상들을 조금씩 지워나간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점차 생계유지에 지쳐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몇몇은 떠밀리듯이 돌아가지만,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정규직,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끈질긴 투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생계비 마련을 위해 물품 판매에 나서기도하면서 사측과의 협상의 시점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마침내 타결이 이뤄진다. 올림픽 매장을 점거한 지 정확히 510일만의 일이다. 정규직 지도부들의 결단을 요한 처사였다. 이 결말은 일반 관객에게 직접적인 감동을 준다기보다는, 끝까지 남아 싸운 사람들과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지도부들의 희비 교차를 보여주며 어찌 보면 차가운 현실의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치중하지 않고 보다 공공적으로 중요한 것의 가치를 믿고 선택한 자들에게만은 다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외박>은 여러 불리한 변수들 가운데서도 결국 불합리한 사측과의 투쟁을 결단했고 감당해냈던 그녀들, 공적, 사적 위치 어디에서도 온전히 자신만의 자리와 합당한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던 그녀들의 소중한 일기이며, 결국 그녀들의 공동체를 위한 영화일 것이다. 활동하는 집단에 활동적으로 참여한, 연대하는 풍경에 동일하게 연대하여 들어간 카메라는 현실의 투쟁을 지속시키는 일에 기여한다. 여기에서 영화와 현실의 구분은 무해하다. 그녀들은 이 영화를 기뻐하고, 이 영화도 그런 그녀들을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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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재훈 <호수길>(2009)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전체가 완전한 공포(현실)영화이다. 초반부, 철거가 진행되기 이전의 마을의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운 풍경을 보여주다 후반에 이르러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후 철거가 진행되면서부터의 황폐한 풍경을 보여 주지만, 내 느낌으로 이것은 대비적인 풍경이 결코 아니다. 초반부는 너무나 일상적이면서도 한적한 풍경 속에서 오히려 은밀한 암시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느리게 걸으며 이따금씩 먼산을 올려다보는, 근심을 다 헤아릴 수 없을 듯한 노인의 무표정과 골목을 밟고 뛰어다니며 서로 쫓고 쫓는 놀이에 치중하는, 근심이라고는 헤아릴 수조차 없는 어린아이들의 무동기적 흥분의 표정을 대비시킨다. 초반의 이러한 방식은 우리를 이상한 느낌으로 몰아간다. 노인의 기우뚱한 근심어린 뒷걸음과 카메라를 향해 돌진하는 어린아이들의 대단스런 앞걸음질, 완전한 정적을 연출하는 롱 테이크의 불길한 카메라와 귀를 째는듯한 비명과 이보다 더 의도가 없을 수 없는 날것의 표정에 거의 참여하는듯 이들과 마치 함께 뛰노는 듯한 정신없는 컷을 이어가는 카메라의 대비는 우리에게 지속적이고 자연적인 관찰에서 얻은 섬뜩한 지점들을 그대로 노출시킴으로 후반부 기계소리로 인한 공포감보다 외려 더 섬찟한 지점을 선사한다. 가히 일상(현실)의 스펙터클이라 불릴만한 것이다. 영화엔 낮과 밤의 이미지와 그 각각의 소리들이 대비적으로 연출된다. 낮의 빛과 밤의 어둠, 낮의 아이들의 소리와 밤의 개짓는 소리. 이것은 개발 이전과 이후 즉, 전반부와 후반부를 기이하게 연결짓는다. 전반부에서 동네의 건물을 쏘아대는 듯한 강렬한 낮의 빛은 후반부 포크레인이 철거를 위해 뿌려대는 강렬한 물줄기와 연결되고, 동네 전체를 깨어내듯 날카롭게 질러대는 아이들의 (즐겁고도 무서운)비명소리는 후반부 귀를 쨀듯한 포크레인 소리로 연결된다. 단순히 아름다움이 철거의 비극적 풍경으로 파괴되었다고 말하기에 이 두가지 이미지와 소리들은 현상적으로 사실 유사해서 약간 섬찟하다. 밤의 완전한 시각적 어둠 상태에선 저 멀리 작은 네모난 유리창문으로 비쳐 보이는 불빛이 존재한다. 이 불빛은 밤이 깊어가면서 점점 작아지거나 점차 어두워진다. 철거가 시작되면서 이 동네 주택들의 유리창은 완전히 사라진다. 빛을 반사시키던 유리가 없고, 완전히 뚫린 시멘트 창들이 그보다 더욱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며 완전한 시각적 눈멀음의 상태로 우리를 안내한다. 여기가 주택의 안인지 바깥인지 우리는 감지할 수가 없다. 어느 순간 카메라가 꽝꽝 닫히는 문의 소리들을 들려주며 이곳이 사람이 사라진 집의 내부임을 드러낸다. 순간적으로 우리는 완전한 공포에 노출된다. 언제부터 카메라가 이 안에 들어와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지금까지 느낀 어둠과 정적이란 어떤 현상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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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빛과 사람이 소멸한 밤에 자연발생적인 소리에 집중한다. 바람소리, 그리고 개짖는 소리. 개들은 한 곳에서 누군가 짖으면 여기저기서 따라 짖는다. 그들은 마치 교신하면서 서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소리로서 연대한다. 이 집단적인 짖음은 영화 전반부의 낮, 어린아이들이 놀이를 하며 질러대던 중첩된 소리들의 연결시킨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개들의 함성. 영화엔 사람들이 나오지만 그들의 행동력은 등장하지 않는다(오히려 행동력은 개들로 인해 실천된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람은 마을의 풍경의 하나로서 등장할 뿐 동네가 철거될 것을 알고는 있는지, 이들은 반대 투쟁을 했었는지조차 전혀 알길이 없다. 카메라는 '경축, 재개발'같은 플래카드만 무심하게 보여줄 뿐이다. 사람이 완전히 사라진 마을 안에 혼로 남아 마치 레지스탕스처럼 동네의 최후 풍경을 날것으로 담아내는 카메라는 완전한 매체 그대로의 느낌, 즉 사람이 없이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는 카메라의 느낌을 준다. 하지만 감독은 카메라를 세워둔 것이 아니라 늘 이 카메라와 함께 다녔다고 말했다. 즉 직접 체험한 풍경만 담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조차도 물질적인 느낌이 압도적이다. 여기엔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고도 참여하려는, 기록하면서도 연출하려는 카메라의 이중적 욕망의 경계가 그대로 노출되어있다. 시네마베리떼와 다이렉트시네마의 경계가 무너진, 아찔하면서도 통쾌한 미학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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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ondage.dwc.cc BlogIcon bondage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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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0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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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애

12월 10일, 바로! 한 해의 독립영화를 정리하는 서울독립영화제의 개막식이 있는 날이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앙시네마 앞엔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중앙시네마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번 서독제에 장, 단편 경쟁부분에 오른 몇몇 감독들을 볼 수 있었는데, <호수길>의 정재훈 감독, <노동자의 태양>의 늘샘 감독, <외박>의 김미례 감독 등 이들의 표정에서 영화제가 시작 된다는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네오이마주 4주년 상영회 때도 찾아주신 정성일 평론가,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한상준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안정숙 前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 특별전의 주인공인 장률 감독, 한국독립다큐멘터리의 전설 김동원 감독, 단편초청 <개를 키워봐서 알아요>의 이우정 감독, 독립영화계의 얼굴 배우 이채은씨도 볼 수 있었다.

7시가 조금 넘어 개막 공연이 시작됐다. 이번 개막 공연은 불나방쏘세지스타클럽, 일명 불쏘클이 맡아주었다. 불쏘클의 리더 조까를로스는 자신들은 얼터너티브 라틴댄스음악을 한다고 했는데 계속 산으로 가고 있다고 말해 좌중을 폭소로 몰아 넣었다. 나는 불쏘클을 이름만 들었지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초등학교 이후로 본 적도, 연주한 기억도 없는 트라이앵글과 아코디언 등의 악기들을 사용해 멋진 공연을 펼쳐 주었다. 공연 후 앵콜까지 이어졌는데, 앵콜 곡명이 '시실리아'였다. 신파적 분위기로 시작해서 코믹으로 갔다가 드라마로 끝나는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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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클의 앵콜 공연까지 끝나고 올해로 9년 째 사회를 맡고 있다는 권해효 씨와 올해로 6년 째 사회를 맡게 된 류시현 씨의 인사가 이어졌다. 함께 진행을 한 횟수가 많아서 그런지 두 분의 호흡은 죽이 잘 맞았다. 무대를 정리하는 동안 권해효 씨와 류시현 씨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사람들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곧이어 임창재 이사장님의 개막선언이 있었는데,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낸 애환이 개막선언을 뒤로 하게 만들었다. 임창재 이사장님의 개막 선언에 이어 내빈인사와 감독 소개가 이어졌다. 이번 영화제에 네오이마주의 강연하 스태프의 <수진들에게> 또한 단편경쟁부분에 이름을 올려 영화제를 더욱 설레게 했다.

이어진 조영각 집행위원장님의 개막작 소개. 조영각 집행위원장님은 <반두비>에 이어, <친구 사이?>까지 18세 관람불가를 어이없게 받자 이번엔 작심하고 18세 관람불가영화를 만들어보고자 기획을 했다고 한다. 개막작인 <원 나잇 스탠드>의 세 가지 에피소드를 만든 민용근, 이유림, 장훈 감독의 인사도 이어졌다. 민용근 감독은 주제가 '원 나잇'이라 정말 원 나잇을 해봐야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못해보고 영화를 만들게 찍게 됐다고 말해 실소를 자아냈다. 두 번째 에피소드를 만든 이유림 감독은 개막일 전날, 밤 10시에 서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DV카메라를 연결해 <달이 차기 전에>라는 영화를 봤다고 한다. 개막식 날 자신의 영화를 보기 전에 반드시 봐야만 할 것 같은 영화라고 해서 도대체 이유림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었기에 그런 것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장훈 감독은 이번 프로젝트로 인해 합법적으로 야동을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감독들의 인사도 끝나고 드디어 개막작인 <원 나잇 스탠드>를 상영했다. 세 편 모두 원 나잇의 주제를 담고 영화적 장 내에서 각자의 개성을 표출했다(개막작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김시원 스태프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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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작이다. 이번 인디스페이스에서 서울독립영화제가 마지막일 것이라고 한다. 갈수록 독립영화계를 조여 오는 압력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영화제의 슬로건이 '치고, 달리자' 일까. 힘들 때 일수록 십시일반의 자세로 같이 해쳐나가자는 취지인 것 같다. 개막 영상 속의 ' 너는 치고, 나는 달린다.' 라는 말이 리듬감 있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자 그럼 다 같이 외쳐 보자, '치고, 달려!'


(사진제공: 서울독립영화제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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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_박성배

공중파에서 방송되는 내레이션의 친절함에 익숙하기 때문일까. 영화는 인디펜던트 다큐 특유의 불편함으로 첫 시작부터 한 남자가 언성을 높인다. 어딘가 이해관계가 심하게 어긋나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서 대화의 내용은 뒷전이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먼저 뇌리에 박힌다. 이 시작이 앞으로 진행 될 이야기의 전체적인 톤을 설정한다.

사건의 발단이 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미신고자 385명의 처우에 대한 뉴스가 보도된다. “사망하였거나 행불되었으나 당국에 보상받지 못한 이들에 대해 5.18 기념재단과 유족회는 본인이나 가족이 연락해 올 경우 명예회복과 5차 보상을 돕겠다”고 한다. 하지만 뉴스에서 보도된 것과는 달리 실제 5.18 관련 단체들은 행방불명자들을 인정하는데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명단에서 자신 아들의 이름을 찾은 위사요씨는 안도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명단에 이름이 올라갔다고 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형 집행 정지.” 자료에 있는 그의 마지막 기록은 여기까지다. 그 후 그가 행방불명 된 상태다. 그러나 그의 실종은 5.18 운동 관련으로 인정되지 않고, 행불자 가족회는 기각된 사유와 관계 공무원 및 경찰 조사에 대해 열람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심사위원들의 신원이나 심의에 대해서는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원인도 모른 채 “안 된다.”라고만 하니 이 억울함을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팽팽한 접전 속에서 현장의 말투를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감독이 인물의 간단한 정보를 밝히는 것 이외에 자막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불가피하게 생기는 가치 개입을 막기 위함이다. 관객으로서 나는, 유족회들이 정의하는 ‘광주 민주화 항쟁의 시기와 관련이 없는’ 철저한 방관자이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행불자들의 상황을 대변하려는 김정길 회장과는 달리 5.18 관련 단체들은 격분해 있다. “5.18이 자선단체도 아니고, 그 당시 행불자면 다 5.18운동 관련 행불자인가?!”

광주는 특별한 곳이다. 그것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국민이 가슴속으로 조의를 표하고 있을 것이다. 국가 유공자들의 보상금으로 세워진 5.18 기념재단. 어쩌면 그 곳에 들어오려는 민주화 운동 시기에 행방불명된 피해자들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5.18 기념재단을 비롯한 단체들의 지나친 피해의식은 오월정신을 변질시키고 있다.

왜 그렇게 명예회복을 원하는 행방불명자 가족회를 적대시하는가? 감독은 이 물음에서 민주화 운동 이후 방향을 잃은 광주의 고착된 시민의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건드리면 맞아 죽을 것 같아 모두가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서 관용의 자세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지켜나가야 한다. 5.18로 희생된 그들의 가족과 자신의 인생에 떳떳하기 위해 민주화의 기상을 더욱 드높여야만 한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의 고착된 태도와 숭고한 오월정신은 부조화를 이룬다. “광주인이라면 다 알죠~? 518 대리운전!” 명쾌한 결말이다! (관객심사단_ 황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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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워봐서 알아요]_이우정

필름의 입자 속으로 부서지는 햇살이 포근하다. 그 속에서 한 여선생이 어린 소녀를 바라보고 있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 머리카락을 스치며 돌아보는 아이는 그녀를 보며 미소 짓는다.

영화는 두 자매를 주축으로 다른 이야기가 진행된다. 초등학교 교사인 다은은 맡은 반 학생인 아영에게서 유독 눈을 뗄 수가 없다. 아영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난 이후로, 그녀는 남자친구와의 관계에도 싫증이 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한편, 다은의 동생 유은은 남자친구와의 이른 이별 후 공중에 붕 떠 버린 상태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른다. 답답한 마음에 채팅으로 만난 남자와 모텔에 가 보기도 하지만,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난다.

이 영화는 금단의 영역이 없다. 아영은 성적인 본능을 숨기지 않는다. 그 어린아이 특유의 천진함에 어른들은 할 말을 잃는다. 유은의 전 남자친구는 소파에 누워있는 다은에게 시선이 간다. 쓰러져 있던 유은은 자신을 깨운 언니의 남자친구에게 달려들어 키스를 한다. 아영은 화장실 창문에서 낯선 아저씨를 쳐다본다. 그리고 가장 강력해 보이는 영화의 메인 에피소드인 여선생과 여제자의 관계는 보는 것만으로도 야한 기분에 휩싸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발밑에 본능을 숨겨놓고 있다. 어느 날 내가 밟고 있던 것의 존재를 의식하게 될 때, 누구나 다은의 심정이 될 수 있다. 애들같이… 개를 키워 보지 않아도 그쯤은 알 수 있다. (관객심사단_ 황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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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_조태희


눈물 없는 이별. <조율>은 한 여자가 이별을 말하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별선언을 하는 여자치고는 그 표정이 너무 평온하다. 사뭇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통속소설의 공식을 깨달은 표정이다. 여자는 독백으로 과거 애인과 얽힌 추억을 풀어놓는다. 그녀가 기억하는 건 기승전결이 있는 서사가 아니라 이미지의 편린들이다. 끈적끈적한 여름, 건반이 망가진 피아노, <시네마 천국>의 메인테마, 그리고 첫 사랑은 나눴던 날 달뜬 애인의 얼굴과 그날의 창밖으로 떨어지던 빗방울과 낙엽들까지. 여자는 낙엽을 그러모으듯 지난날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녀에게 사랑은 동적인 것이 아니라 정적인 것에 가깝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연출이다. 9분 동안 이어지는 여자의 독백을 원 씬 원 컷으로 찍었다. 한 번의 호흡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카메라는 자연스레 빛의 변화를 잡아내게 된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실내는, 감귤 빛에서 짙은 녹색 계열로 바뀐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해사한 빛에 감싸인 여자의 화사한 얼굴이 드러난다. 그때의 여자 얼굴은, 베르메르의 회화에 소녀들에 버금갈 만큼 청초하다. 가만히 보면 원목가구로 구성된 실내장식과, 창에서 쏟아지는 햇살, 그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여자의 옷과 얼굴은 베르메르의 회화를 쏙 빼닮았다. 분명 영화 제목 ‘조율’은 이별을 말하는 여인의 감정변화뿐만 아니라 빛을 '조율‘하는 카메라의 기교를 뜻할 것이다. (관객심사단_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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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_김조광수

서로의 애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 버스에서 동행하는 석이와 어느 여자. 각자의 애인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같은 목적지로 향한다. 같은 공간에서 상반되는 장면이 연출되는 두 남녀의 모습이 보인다. 사랑이란 동일한 감정임에도 동성애와 이성애가 나타내는 심리적인 표현 방식은 서로 다르다. 여자는 애인을 만나 음식을 먹여주기도 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있었지만 석이의 모습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적고 있다. 석이는 관계를 적는 난에 애인이라고 써놓고도 무척 후회하는 듯, 면회 신청서 한 장을 더 요구한다. 하지만, 신청서가 얼마 남지 않은 이유로 거절당하고, 석이는 애인이란 단어를 가로로 두 줄을 그어 놓고 뒷면에 남아있는 글씨체까지 까맣게 지운다. 애인이지만, ‘애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동성애 커플이다.

그들은 호칭의 문제뿐 아니라, 동성애 커플로 커밍아웃하는 과정에서도 큰 충격과 변화의 과정을 맞이한다. 거리에서 다른 연인들처럼 손을 잡고 길을 걷거나, 사람들 앞에서 연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민수와 석이. ‘친구사이’라고 생각했던 석이와 아들의 관계를 알게 되는 민수 어머니. 또한, 남자친구가 게이라고 고백하며, 자신이 남자가 아닌 것이 슬퍼하는 여자. 그 앞에서 자신은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석이. 상반되는 그들의 이해관계는 극으로 치닫는다.

“당신은 두 눈을 가졌지만, 만약 외눈박이들이 사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다수의 이성애자로 구성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적 소수자들의 모습을 되짚어 생각하는 물음이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모두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엄마, 난 남자가 좋아요. 그래도 난 웃을게요. 남들보다 조금은 힘들겠죠.”라고 말하는 민수의 고백처럼, 이 영화는 성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결국 인간 대 인간의 사랑으로 갈등을 이겨냈다. (관객심사단_ 박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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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_백현진

각자의 에피소드에서 하나같이 곤란함에 처한 인물들. 누군가를 린치하는 꿈에 시달린다. 본인 또한 현실에서 린치 당한다(박해일). 뭐든 쉽게 되는 대로 생각하는 경솔한 세상에 "왜들 이러시는 거예요?"라고 묻는다(엄지원).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는 식으로 철저히 분리된 세상. 다름과 같음이 공존한다는 확신으로 그 세상을 버틴다(류승범). 정말로 용서했다는 데도 믿지 않는 세상에 성난 목소리로 자신을 변호한다(문소리).

그 곤란함 앞에서 보는 이 또한 난처하다. 인물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신은 망각의 명수라며 소스라치게 외치는 문소리는 대체 지금 통화 중인 엄마와 어떤 사건을 겪은 것인지 알기 어렵다. 이 영화에서 서사는 안중에도 없다. 그러곤 대뜸 인물들의 얼굴로 바투 다가가는 카메라. 시선을 최대한 카메라에 고정한 인물들의 눈가가 점점 촉촉해진다. 번역되기 어려운 표정. 그 위로 타이틀 'The End'가 뜬다.

영화는 부러 슬픔의 맥락을 결여한 것처럼 보인다. 왜 하필 그 자리에 우리를 앉혀놓고는 난해함을 굳이 체험하게 하느냐고 따져보자. 그때 영화는 반문한다. "이해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박해일) 더 자세히는, "이해하기가 그렇게 쉬워요?" 엄지원의 말이다. 그녀는 책을 읽다가 도저히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자백하는 투에 가깝다.

이해하기란 단번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해하는 덴 다들 능통하다. 그러나 그게 단지 이해한 척이라면? 무지라는 구멍을 메우기 위해 자신을 속인 것은 아닐까? 모르는 상태는 견딜 수 없이 불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빠르게 봉합하고는 마치 모든 걸 완료한 양 돌아보지 않는다. 영화는 두 번째 관람을 전제로 한 듯 시작한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느긋해지자. 거푸 상상하고 생각하자. 그때 비로소 열릴 영화다. (관객심사단_ 정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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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물건 좋은

    2011.08.10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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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목) 제 35회 서울독립영화제가 시작된다. 독립영화계 최대의 축제이자 한 해를 결산하는 서울독립영화제를 목전에 두고 관객심사단(단장 이도훈)에서 초청작에 관한 8편의 프리뷰를 보내왔다. 먼저 읽고 관심 있는 영화를 찜해두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영도다리]_전수일

주인공 인화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피붙이 없이 부산에서 자라났다. 그녀는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어린 미혼모다. 곧 산통이 온몸으로 퍼져오지만,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줄 사람은 없다. 그녀는 홀로 영도다리 위를 걸어가지만, 산통은 점점 심해져 가고 그대로 쓰러진다.

세상에 아직 꽃을 피워보지 못한, 19살의 소녀. 그렇기에 축복을 받아야 할 아기의 탄생은 그녀의 삶의 무게를 더하는 환영을 받지 못할 존재다. 인화는 결국 입양센터에 아기를 보내기로 하고 간직하고 있던 탯줄마저 버린다. 그녀가 아기 엄마임을 증명하듯, 가슴에서 모유가 새어 나오지만, 어린 나이에 ‘미혼모’라는 수식어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름이다.

또한, 인화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폭력, 학대, 죽음 등에 대해 회피하거나 방관적이다. 유독 그녀가 유심히 지켜보는 어느 꼬마가 있다. 대화를 주고받는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만, 담배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동질감을 소통한다.

따듯한 가족애를 느껴보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낸 인화에게 과거를 떠올리는 시점이 찾아온다. 그녀는 우연히 바닷가에 빠진 시신을 찾는 인부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검은 그물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신발을 보고 멈춰 선다. 그 신발을 보고 어린 시절 어머니와 헤어졌던 슬픈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산통의 표식이 된 수술자국과 핸드폰 사진에 찍힌 아기의 얼굴을 보고 죄책감에 빠져든다. 그 뒤로 인화는 입양센터로 아기를 찾기 위해 나선다.


아기를 향한 인화의 모성애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녀는 입양센터의 직원에게 아기를 돌려달라고 막무가내로 말하지만, 절차의 문제 때문에 어렵다며 거절당한다. 몇 번이고 찾아가 아기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직원은 냉정하게 뿌리친다. 결국, 인화는 맥주병으로 직원의 머리에 내리치며 위협하듯, 아기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말한다.

아기가 있는 프랑스로 찾아가는 그녀. 낯선 나라의 어느 마을 어귀에서 양부모의 집을 찾는다. 아기의 집에 도착한 그녀는 파란 눈의 여인에게 “I came..."이란, 미처 끝나지 않은 문장을 반복한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동안의 모든 아픔을 흘려보내듯, 아이를 향한 그녀의 간절한 마음은 모성애라는 초월적인 힘을 보여준다.

‘하루에 두 번씩 영도다리 끄덕끄덕..’영도다리 노래의 한 구절이다. 영도다리는 사람들의 한과 슬픔,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역사의 상징물이라고 한다. 이 영화 속에도 지역성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역사성도 나타낸다. 영도다리는 주인공 인화를 통해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이다. 그녀의 과거가 슬프고 외로웠다면, 앞으로 만들어갈 현재와 미래는 아이를 찾게 되면서 변화하는 그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성인이 되어버린 그녀의 제2의 인생 여정을 상상하게끔 하는 작품이다. (관객심사단_ 박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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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_신수원

음악과 영화가 만났다. <레인보우>는 음악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감독 지망생의 이야기다. 주부인 그녀는 홍대 인디밴드와 자신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시나리오의 키워드를 잡는다. 이 영화는 음악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의 음악영화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음악의 열정과 그 열정을 불식시키는 못난 상업영화계를 대차 대조해 보인다.

취재차 방문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여자가 주목한 것은 무대 아래다.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 미친 듯 춤추는 사람들, 화장실 줄을 서며 몸 흔드는 사람들 등. 모두가 서 있는 곳이 무대다. 취재차 만난 인디밴드 '레인보우'도 스스로 무대를 만들 줄 안다. 그들은 관람객이 없으면 없는 대로 공연한다. 연습 공간은 따로 없다. 구경꾼 없는 길 위에서도 연습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편의 근사한 공연이다. 좋아하는 것을 행하는 주체적인 이 모습은 실로 마음을 흔든다.

그러나 상업영화계는 정반대다. 상업적인 영화 전선에 있는 한 시나리오는 영화사의 영향 아래 놓인다. 상업영화사는 대중의 시선을 끌 만한 이야기 소재, 장르, 구조를 요구한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돈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조건으로 만들어지는 시나리오는 기계적이다. 갈등 지점이 명확해야 하고 주인공은 중산층이어야 하며 장르는 판타지같이 예외적이면 곤란하다. 이 획일적인 기본기에 충실해야 하는 영화계는 저 음악의 현장과는 다분히 다르다. 무대의 주인공은 이윤 창출을 보장하는 대중성이다. '사람이야기'가 우선인 여자는 퇴출당한다. 돈과 교환되지 못하는 한 무대에 설 자격은 없다.

대립하는 두 개의 국면에서 영화는 스스로 태도의 차이를 보인다. 페스티벌의 현장에서 관객의 모습은 종종 캠코터의 화질로 대체된다. '레인보우'의 길거리 연습 장면도 여자가 들고 찍은 날것 그대로이다. 그들에 대한 애정이 오롯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것은 여자가 지향하는 것에 대한 영화의 지지이기도 하다. 여자의 환상을 꾸짖는 PD 또한 여자의 시선으로 화면에 담긴다. 그러나 이때 PD는 여자를 내려다보는 자의 위치에 서 있다. 올려 보는 카메라 앞에서 그녀의 '거지같은 상상'을 매도할 때 상업영화계의 위압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결국 여자의 이야기는 상업영화사를 관두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녀의 다음 목적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영화는 '꾸준히 걷기'라는 태도를 마침표로 정한다. 그 행보의 방향은 영화가 긍정한 인디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고 꾸준히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인간적인 열기가 그들의 서사일 것이다. 영화 <레인보우>는 열정의 이미지를 단지 소비하지 않는다. 뜨거운 현장에서 삶의 태도를 성찰한다. 신나고 든든한 영화다. (관객심사단_ 정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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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기원]_김응수

김응수 감독의 보폭이 넓어졌다. 히말라야로 향하는 여정을 다룬 <천상고원>(2006)은 한 개인의 내면을 깊게 응시하는 작품이었다. 곧이어 1986년 전방입소 반대 시위에 관한 다큐멘터리 <과거는 낯선 나라다>(2007)로 386세대의 부채의식을 다룬 바 있다. 개인에서 세대로 이야기 범위는 넓어졌지만, 감독은 일관된 화두를 던졌다. 두 영화의 공통분모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간다는 것. 부재한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현대사다. 감독의 발자취를 고려해본다면 신작 <물의 기원>은 숙명에 가까운 영화다. 이 작품에서 개인, 세대, 역사는 한 자리에서 조우한다. 마치 예정된 순서인 양. 작품의 모티브를 얻은 사연도 기구하다. 김응수는 고향인 충주댐을 산책하던 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 중 사망한 고 김중배씨의 무덤을 발견했다. 감독은 죽은 자 앞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체감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장면마다 죄의식과 회한 그리고 1965년 6.3사태를 영화화하겠다는 한 예술가의 사명감이 감돈다. 그러나 현대사를 다룬 작품이라고 해서 기록과 증언에 충실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영화는 연극과 신화의 형식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한 극영화다.

1부라고 할 수 있는 전반부에서 두 남녀가 대화를 나눈다. 여자는 남자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말한다. 남자는 1965년, 그때 그 사건을 회상한다. 헌데 두 사람의 표정은 석고 가면을 씌워 놓은 듯 얼어붙어 있다.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시선 처리와 독백식의 대사는 다분히 연극적이다. 이런 모던한 연출은 장 마리 스타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작품들만큼이나 급진적이다. 2부로 이어지면서 영화는 신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한 남자가 30년 전 어머니가 그렸던 그림 속 숲을 찾아 떠난다. 전설에 의하면 평범한 남자가 나타나 파괴자를 물리친다는 곳이다. 초목이 우거진 숲, 거기서 먹이를 찾는 승냥이마냥 떠도는 남자, 그리고 남자를 무심히 쳐다보는 카메라. 어딘지 모르게 아핏차풍 위라세타쿤의 영화 <열대병>과 닮은 데가 있다.

곧이어 남자의 고행이 시작된다. 남자는 ‘순수’를 찾는 방랑자다. 그가 떠나온 세상은 오염된 곳이다. 오염의 주범은 과거 친일행적을 일삼고 지금은 호의호식하는 자들, 무소불위의 힘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시민들의 지도자다. 반면 자연은 세계로부터의 도피처이자 마지막 남은 비상구이며 순수의 마지노선이다. 남자는 원류로의 회귀하듯 강을 끼고 있는 숲으로 들어간다. 충주 댐에 고인 물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평온함을 간직한 곳이며, 숲은 모든 생명이 약동하는 장소다. 그러나 숲은 남자를 거부한다. 그는 길을 잃고 한 자리를 맴돈다. 동물들은 그에게 적대적이다. 그는 상처를 입는다. 남자는 맹수에게 다리를 물려 거동이 힘들어지고 새에게 눈을 공격 받아 앞을 보기 힘들어진다. 그의 몸에 난 생채기는 인간의 만행에 대해 자연이 주는 응보의 결과물이다. 남자가 다리를 절룩거리는 것은 피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던 예수의 육신, 새에게 눈이 찔려 일그러진 남자의 얼굴은 코카서스 바위에 묶여 독수리의 공격을 받던 프로메테우스의 육신과 진배없다. 희생 없이 구원도 없다는 걸, 영화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물의 기원>은 숭고한 희생을 그리는 영화임에 틀림없을 거다. (관객심사단_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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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예 그 일을 사랑

    2012.08.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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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 저녁, 명동의 ‘시네마 호프’에서는 2009서울독립영화제 사전 감독모임이 열렸다. 한 해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독립영화 최대의 축제의 서막을 알리고자 만들어진 이날 행사에 출품 감독과 독립영화인들이 총집합한 것. 다만 한국독립영화협회 인근에서 열렸던 예년 모임과는 달리 장소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술과 출품작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던 이전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했다고나 할까.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운영자 선정 공모’가 공시되었다. 그러니까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지정위탁 형태로 3년 째 맡아 운영하던 전용관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것인데, 2008년부터 국정감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지적받아 온 특정단체 지원 방식의 개선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사업수행 성과를 1년 단위로 평가한 후 매 1년 계약기간의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서울아트시네마 공모제 논란 때도 언급했듯이, 절대로 오해하면 안 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즉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은, 영진위의 정책입안을 통해 지원을 시작한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립영화인들의 꾸준한 노력과 활발한 활동의 결실로 얻어낸 것이었고 그래서 ‘지정위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는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번 공모제의 (독립영화진영을 배제하려는 불을 보듯 빤한) 의도는,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지원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사례가 있어 정부, 감사원 및 지원기관으로부터 주위, 경고 또는 제재를 받은 단체(법인 등)」 이라고 명시된 ‘지원신청의 제한’ 항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1년간 독립영화진영은 숱한 감사와 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한 독립영화인은 감사원에 11차례나 불려갔을 정도로 독립영화협회와 산하단체를 향한 십자포화는 그칠 줄 몰랐다. 이렇게 볼 때 감사 과정에서 티끌이라도 드러난 단체는 전용관사업자로 선정되기 쉽지 않을 것이므로 오랫동안 독립영화계에 떠돌던 이야기가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은 듯하여 가슴 답답하다.

2009년은 <워낭소리>가 사상초유의 관객을 동원했고 <똥파리>와 <낮술>이 소기의 흥행을 거두는 등, 그 어느 해보다 많은 독립영화가 관객과 만난 한 해였다. 그러나 독립영화계가 거둔 놀라운 성과 이면의 그림자 또한 짙고 어두웠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 더욱 마음이 가는 것은 이 때문인가 보다. 예년에 비해 담담한 표정의ㅡ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ㅡ집행위원들과 조영각 집행위원장의 거뭇한 수염에서, 올 한해 지친 발걸음을 힘겹게 떼며 걸어온 독립영화계의 진짜배기 모습이 보인다. 2009서울독립영화제의 개막이 아직 보름가량 남았지만 이미 시작된 거나 진배없다. 참으로 힘든 한 해였겠지만 그래도 부탁한다. 힘내서 꿋꿋하게 ‘치고 달리자’ 독립영화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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