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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이마주 4주년 행사 D-1


우리 스태프들은 홍대 카페 제너럴닥터에 모여서 4주년 기념품을 만들었어요. 주로 <가족의 탄생> 예고편 필름을 가지고 크라프트 종이에 끼워서 책갈피처럼 만들었는데, 사람이 많이 모여서 두 시간이면 다 만들 줄 알았는데, 웬걸 영업시간 11시까지 다 만들지 못하고 결국 집에 가야만 했답니다. 남은 뒷일은 기념품 제작을 기획한 양석중 씨가 감당하기로 하셨어요. 그 날 저는 실연의 상처로 인해 소위 말하는 '정신줄'을 놓고 있어서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런 제 모습이 웃겼는지 연신 웃어대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기념품을 만들면서 <가족의 탄생>에 문소리 씨가 꽃을 들고 있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제가 꽃을 받고 싶다고 말하니, 양석중 씨가 꽃을 받긴 어려워도 머리에 꽃을 꽂긴 쉽다며 저를 지긋이 쳐다보시더군요. 이래저래 오가는 말들로 인해 시간이 금새 갔던 것 같아요. 저는 그날 칼질을 했는데, 왼쪽 팔이 아직도 아프네요.



네오이마주 4주년 행사 D-day

뭔가 한 것 같긴 한데, 한 것 없이 시간은 금새 당일로 다가왔어요. 아트하우스 모모에 도착해서 스태프들을 기다리는데, 양석중 씨가 가장 먼저 도착했어요. 곧 이어 강연하 씨가 도착했는데, 윗옷의 팔 부분이 망사로 된 옷을 입고 왔어요. 양석중 씨는 강연하 씨에게 어디 시상식에 갔나오느냐며 농담을 던졌어요. 곧 이어 이영 씨가 도착하고 김시원 씨도 도착을 했어요. 김시원 씨는 선물을 채플린 전집을 선물로 내놓으셨는데, 주기 전에 DVD를 다시 돌려 보시느라 잠을 못 주무셨다고 하셨어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자니 강민영씨, 편집장님, 장지혜씨, 김지희 씨도 오셔서 어느 덧 전 스태프가 다 집합이 됐어요. 6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티케팅 하는 사람들과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 어느새 영화관에 입장을 하고 네오이마주 4주년 행사를 시작하는 양석중 씨의 멘트가 시작됐어요. 곧 이어 편집장님 인사말씀도 있었어요. 편집장님 말씀이 끝나고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준비한 영화초대권 추첨이 있었는데, 제 친구가 당첨이 되서 저에게 넘어 왔어요. (득템) 우하하!


 드디어!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영화상영

저는 사실 <비브르 사비>를 보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살인을 더 좋아하나 봅니다.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지 사람들은 피를 보고 누가 죽어야 영화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비브르 사비>를 스크린으로 보는 일이 언젠가는 있으리라 믿습니다.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은 스크린에 영사되는 영화의 화면비율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영화가 넘치는 것 같아서 보는 내내 좀 피곤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결국 저는 180도 해드뱅잉을 하고 말았죠. 잠에서 깨니 누가 죽긴 죽었는데, 아무리 봐도 누가 죽은 건지 모르겠더군요. 결국 그 화가도 죽었는데, 화가가 죽은 이유보다 말을 타고 있던 사람이 내려와 파인애플을 먹는데, 그 파인애플 맛이 더 궁금하더군요. 저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에 영화관을 나와 양석중씨, 장지혜 씨와 제 그림자 같은 친구와 함께 뒤풀이 장소 세팅을 위해 '몽마르쥬'로 향했어요. 양석중 씨의 우월한 기럭지 덕분에 양석중 씨는 걷고 있지만 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뛰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그렇게 뛰고 나니 다음부터는 양석중 씨와는 함께 다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보다 더 피곤했어요.


 

뒤풀이 '몽마르쥬'

양석중 씨가 뒤풀이 장소를 물색할 때 '몽마르쥬'를 발견하고는 21세기 건물에 18세기 느낌이라고 해서 어떨까하고 궁금했는데, 몽마르쥬는 생각보다 좋은 장소였어요. 시끄럽지도 않고, 좁지도, 크지도 않아서 좋았어요. 뒤풀이 장소로 하나 둘 씩 입장을 했어요. 독자 회원분들과 기타 영화관계자분들도 오셨어요. 무비스트 서대원 편집장님과 글로만 봐왔던 민용준 기자님도 뵈었어요. 서대원 편집장님은 내년에 결혼을 하신대요. 민용준 기자님은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김성욱 선생님을 닮은 것 같았어요. 생김새나 분위기가 닮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게 귀를 기울이게 하셨어요. 필름온의 정미래 기기자님도 스크린의 장성란 기자님도 오셨고, 앗!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의 최지영 감독님도 오셨네요.  그러고 보니 <내부순환선>의 조은희 감독님은 상영회에는 오셨었는데 뒤풀이 장소까지 직행하시진 못하셨어요. 이번 상영회를 위해 애써주신 영화사 백두대간의 박상민 과장님께도 감사드릴게요.

곧 이어 스태프와 독자들이 준비한 선물을 추첨했어요. 막스 오픨스의 DVD를 노린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크로스백과 함께 독자 회원분께 돌아갔어요. 준비한 선물이 많아서 대부분은 선물을 한 두 개씩 받아갔어요. 저는 <눈부신 하루> 와 <델리카트슨 사람들>DVD를 받았어요. <델리카트슨 사람들>은 빈장원씨가 영화에 나오는 배우와 자신이 닮았다며, 꼭 보고 싶다고 하셔서 드렸어요. 대신 저는 <아무도 모른다> DVD 를 받았어요.


어떤 방문

한 참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 쯤 반가운 손님이 오셨어요. 정성일 선생님이 한 손에 케이크를 사가지고 등장하셨죠. 선생님이 반갑긴 했지만, 배가 고팠던 저는 케이크가 무척이나 반가웠답니다. 정성일 선생님이 사온 케이크는 흡사 <카페 느와르>에 나온 케이크를 연상시키게 했는데, 가운데 구멍이 뚫린 녹차 시폰 케이크였어요. 장미꽃잎이 4장 얻어져 있는데 가운데 뚫린 구멍에 딸기시럽을 부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순식간에 케이크를 싹쓸이했는데, 제가 김시원 씨한테 케이크를 떠서 먹여주려고 하는데, 케이크가 그만 제 손에 떨어졌어요. 그렇지만 김시원 씨가 곧 두 손으로 제 손을 잡고 그 케이크를 먹는데, 마치 뱀파이어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어요. 언니가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데, 케이크가 아니라 마치 피를 흡혈한 듯한 느낌이랄까. 뭔가 아름답기도 하면서 가슴이 서늘한 공포가 밀려오기도 했답니다.

자리 이동이 많아 어느덧 인디스토리 관계자 분들과 자리를 함께 했는데, 조계영 팀장님의 명으로 서상덕씨가 곽용수 대표님께 문자를 보냈어요. 대표님께 처음 보내는 문자라고 하셨는데, 문자의 내용은 네오이마주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케이크를 다들 사오더라 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곧이어 곽용수 대표님께서 케이크를 들고 등장하셨어요. 열렬한 환호 속에 등장한 대표님은 언뜻 보기에 대학생처럼 느껴졌어요. 대표님이 사 오신 케이크는 블루베리 시폰 케이크였어요. 역시 요새 케이크의 대세는 시폰인가 봐요. 그 케이크도 순식간에 없어졌어요. 조영각 서독제 집행위원장님은 해피투게더 독립영화와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자주 봤던 분인데, 얼굴과 이름을 따로 알고 있다가 매치시킨 지 얼마 되지 않은 분 중 하나입니다. <낮술>을 만드신 노영석 감독님과 얼마 전 인터뷰를 했던 <낙타는 말했다>의 조규장 감독님도 오셨어요. 프랑스 낭트에 다녀오셨다고 하네요. 언젠간 저도 프랑스에 가리라는 의지를 다졌어요.



무르익은 밤

자리를 옮겨 빈장원씨 옆에 앉게 됐어요. 빈장원씨는 '네오이마주 오프라인 판에 자기 글을 실어 줄 때도 되지 않았냐'며 글을 멋지게 쓸 테니 실어 달라고 말씀하였어요. 그래서 이번 호 독자의 글에 꼭 싣자고 주장하겠다고 했어요. 부산영화제의 <카페느와르>에 이어 역시 요즘에 <파주>를 보지 않으면 소외되는 것 같아요. 김시원 씨와 양석중 씨가 옆에서 신랄하게 난상토론을 하시더군요. 저는 <파주>를 또 보리라 마음먹었죠. 네오이마주를 안 지 세달 됐다는 문주영 독자회원도 만났어요. 이번에 수능을 치셨다고 하는데, 생명공학을 공부하다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좋은 입시 결과가 있길. 열혈독자 정용 군은 그날 아주 깜찍한 방울이 두 개 달린 모자를 쓰고 왔어요. 정용 군은 점점 제 나이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12월에 영화 촬영을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이 친구가 찍을 영화가 기대 되요. 꼭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네오이마주 세미나의 열혈참가자인 홍은화 님과 최용진 님도 여전하셨고요, 신태균 님과 최태순 님은 나란히 앉았는데도 별 감흥(?)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아이비를 닮았다는 얘기를 난생 처음 들었을 장진실 님은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답니다. 아하! 잊고 넘어갈 뻔 했어요. 눈에 띄지 않게 오랫동안 네오이마주를 응원해주신 김현희 님도 신선자 님도 복운석 님도 이도훈 님도 모두 반가웠습니다. 시간이 자정으로 접어들자 한 분 두 분, 자리를 떠났어요. 저도 같이 온 친구와 자정이 가까울 무렵 자리를 떴지만, 남아있는 분들이 아직 많았어요. 자정을 넘긴 얘기들이 더 재밌는 법. 새벽까지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 모든 걸 뒤로하고 저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마치며...

신입스태프로 9월에 들어와 10월에 오프라인 발간에, 11월에 4주년 행사를 마쳤으니 일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 쌓여가는 스태프간의 정이랄까. 무튼 4주년 네오이마주에 참석하신 독자 회원 분들과 기타 영화 관계자 분들께 감사합니다. 제 기억력의 한계로 거명하지 못한 독자분들도 많으세요. 애교로 봐주시고요,스태프 여러분 수고 많으셨어요! 끝으로 저로 인해 한층 더 발랄해질 네오이마주를 지켜봐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 네오이마주 스태프 사진과 나머지 행사사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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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hinkwise.tistory.com BlogIcon Thinkwise  수정/삭제  댓글쓰기

    ��援ш꼍��� 媛����..^^;;

    2009.11.17 10: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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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할 것도 거창할 것도 숭고할 것도 없는 단순한 이야기에 멜로드라마가 개입하고, 시대적 배경과 도시개발의 성공적 모델로 알려진 파주라는 공간이 뒤엉키면서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가는 영화 <파주>에서, 나는 운동권 지식인의 잔상, 즉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시대의 흔적을 보았다.

수배를 피해 숨어들어간 선배의 집과 형의 교회를 거친 중식은 결혼을 통해 그녀의 집으로 들어간다. 주거불명에서 주거확실한 자로의 편입. 시국사범에서 공부방 선생을 거쳐 철대위주동자로의 위상변화. 세 명의 여자가 그와 관계했고 그를 기억하거나 사랑했으며 그에게서 떠나간다. 적어도 시작은 그렇게 보였다. 그런 그가 보험사기로 구속이 되다니. 뭔가 이상했다. 조국통일을 위해 청춘을 불사른 정치범에서 졸지에 보험금에 눈먼 잡범으로 추락한 것이다. 노무현과 김대중이라는 386의 버팀목이 사라진 시대에, 개발독재시대의 신화적 기업가가 대통령이 된 시대에, 박찬옥은 안개 자욱한 파주에서 길을 잃은 중식의 행로를 통해 여전히 정주하는 공간이 아닌 심리적 은신처를 갈망하며 존재증명에 골몰하고자 발버둥치는 운동권지식인들의 초상을 노정한다.

박찬옥이 <파주>에서 내세운 중식은 자유로운 영혼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는 철저한 은둔자인 동시에 주거지의 안온함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살아갈 운명을 타고 난 인물로 보인다. 그는 거리에서 외치는 법이 없다.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며 벌이는 투쟁이 아닌 자신의 거점을 확보한 후 그곳을 발판 삼아 일을 도모하는 전형적인 파르티잔이다. 공간을 벗어날 수 없는 자, 거리에 설 수 없는 자, 그러니까 자기 공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인물이 중식이다(그는 도로에서 커피를 팔 때도 천막 밖으로 나와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수배시절의 불안과 조심성이 몸에 밴 탓인지 몰라도, 어떻게 해서든 공간을 확보하려는 그의 생존법은 은수와의 결혼으로 이어지고 처제 은모의 연정을 싹틔우도록 기능한다. 중식의 이야기를 은모의 시점으로 볼 수밖에 이유가 여기 있다.

중식은 ‘사진 한 장으로 구원 받은 자’이다(섹스의 열락에 빠진 사이 죽은 아이에 대한 부부의 죄책감이 빚어낸 지옥도,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 크라이스트>를 보면 이해가 쉽다). 선배가 내민 아이의 사진을 보고는 안도감 섞인 울음을 토해내는 자. 그러고도 첫사랑을 은신처제공자 정도로 이야기하는 자, 솔직함을 가장한 교만이 몸에 배어있는 자가 중식이다. 온전히 몸을 던져 싸우지도 못하고 앞에서 주동하되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하고 자기사람을 지켜내지도 목숨 바쳐 사랑할 자신도 없는 그에게 (자신이 점거한) 파주로 돌아온 처제는 가장 쉬우면서도 무서운 상대였다. 따라서 그는 “언니를 사랑했다”고 말했어야 했다. 지식인의 몰락을 부채질하는 것은 자신만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믿는 순간,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달콤한 착각에 빠지는 순간, 이념과 이상의 틀 속에 현실이 침투하며 균열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식은 욕심을 부리면서 처제에게 가탁(假託)하고자 한다. 속칭 ‘남성지식인’이라 불리는 자들이 사랑과 여성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잘 보여주는, “한 번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라는 차라리 백기투항에 가까운 허망한 자백. 인물심리를 정밀하게 묘사하는 박찬옥의 빼어남이 여기에 있다(<질투는 나의 힘>의 마지막에서 편집장 한윤식을 도무지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이원상의 선택. 박성연은 애초부터 그것을 간파하고 있지 않던가). 박찬옥식 사유의 대미를 장식하는 지점, “내가 같이 있어봐서 아는데...은모는 모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마지막까지 그를 움켜쥔 자만심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공개적 반성 없이 입으로만 “용서해주세요”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속삭이는데 익숙한 자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의 재확인이다.

“왜 이런 일을 하는지”에 대한 확신마저 사라진 한 남자가 끝내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은 누군가의 사랑과 그늘이었다. 그것이 중식의 시대착오적 패착이다. 그리하여 중식에게 새겨지는 가장 더러운 인장. 즉 ‘사랑하지 못했던’ 아내의 집에서 ‘아무 것도 아닌’ 첫사랑과 함께 일을 도모하던 자에게 씌워진 ‘보험 사기범’이라는 불명예다. 조국통일과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던 운동권지식인에게 이보다 가혹한 형벌이 있을까? 사랑 없는 이념과 대의는 이토록 허약하고 속절없다. <파주>는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를 살아온 감독의 자기성찰이자, 아직도 스스로의 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식인 앞으로 배달된 고해성사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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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강연하

정리.사진: 박정애

 

"언젠가는 멋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감옥에서 출소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워대는 남자. 남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도 애초에 그럴 마음 조차 없는,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남자. 행색으로 봐서는 영락없는 동네 양아치 수준이지만, 어머니가 남겨준 재산으로 땅을 매입한 후 '재개발'에 목을 맬 정도로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남자.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과 맞짱 뜨다가, 홀로 애태우다 흙 속으로 묻혀갈, 단순 무식하고 거칠고 비루하지만 한편으로 가련한 중년의 사내. 바로! 이 사내가 스크린을 활보하는 영화 <낙타는 말했다>가 다음 주(11월 1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에 앞서 영화를 연출한 조규장 감독을 역시 독립영화감독인 강연하 스태프가 만났다.  

강연하(이하 '강') :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조규장(이하 '조') : 워크숍으로 준비를 했다. 영상원에서 장편영화를 찍는데, 학교에서 하는 워크숍이기 때문에 허가를 해줄지 걱정했는데, 다행이 허가를 해줘서 찍게 됐다.

강 : 처음 시나리오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누군가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동시대 정황의 반영인지 궁금하다.

조 : 나도 시나리오가 그렇게 나올 줄 몰랐다. 원래 구상하고 있던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거기 나오는 인물이 어촌에 사는 캐릭터였다. 원양어선에서 몇 년 만에 돌아왔는데, 형제들과 부모님이 보내줬던 돈을 이미 다 써버린 상황에서 시작되는 영화다. 그런 인물을 갖고 시작했다. 그 인물과 시골 풍경에 익숙한 상황,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나온 것 같다.

강 : 원래 본인 유년시절이 지방 소도시였나.

조 : 그렇다. 충남 보령인데, 영화에는 읍내가 있지만 내가 살던 곳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은연중에 그렇게 나온 것 같다.

강 : 영화의 로케이션 장소가 인상적이다. 재개발의 풍경이나 길거리, 상가 등이 인위적인 느낌이 아니라 자연스럽다. 헌팅 할 때 로케이션 장소는 어떻게 찾았나.

조 : 시나리오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거리였다. 건물들이 높지 않고 차가 다니면서 옛날 간판들을 가지고 있는 잿빛 느낌의 공간인데, 그런 장소를 찾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림은 명확하게 머리에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서울, 경기 권을 벗어나서 찍을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 경기를 훑었다. 촬영지는 수원이다. 수원 역 근처인데 주민들한테 영화촬영에 대한 동의를 얻었다. 영화상의 공간은 다 그 공간이거나 차타고 십분 정도 가는 거리였다.

강 : 그럼 미술팀이 따로 지은 로케이션 장소는 없는 건가.

조 : 시골집의 벽을 이미지에 맞게 칠하는 선까지는 했지만, 실제로 지은 곳은 없다.

강 : 동네의 리얼리티가 잘 묻어나는 거린데, 감독으로서 그런 공간을 발견했을 때 어땠나.

조 : 참 좋았다. 그렇지만 외부 공간 말고 실내공간으로 들어가고 나면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하고는 다른 부분이 많아서 현실적인 선택 안에서 바꿀 부분은 바꾸고 그랬다.

강 : 35mm로 촬영한 영화다. 작년에 나도 35mm 작업을 처음 해보았는데, 시간과 경제적인 비용 면에서 여러모로 디지털보다는 까다로운 부분이 많더라. 이런 이유들 때문에 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이 필름의 질감과 느낌을 원하면서도 디지털로 독립장편 작업을 주로 하곤 하는데, 35mm 촬영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조 : 사실 학교를 들어간 이유 자체가 필름작업을 하고 싶어서였다. 입학할 때부터 3편 정도 필름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필름이 점점 없어지겠지만 그 느낌들을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필름이 이 영화에 어울린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디지털로 찍어도 상관없었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영화가 아니고 다른 시나리오를 썼더라도 나는 35mm를 썼을 것 같다. 필름을 고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실 졸업 이후를 생각해보면 필름으로 작업할 여건이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거리의 낮 신이나 걷는 장면 등 야외신이 많아서 아무래도 필름의 질감이 더 맞는 것 같다. 디지털로 찍으면 선명하고 밋밋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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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음악이 인상 깊더라. 남자가 돌아와서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뽕짝 같은 음악이 흐르는데, 엇박자의 리듬이 묘하고 특이하면서도 영화의 리듬감을 살려준 것 같다. 음악작업은 어떻게 한 것인가.

조 : 사실 이전에는 음악작업을 거의 안했었다. 전에 단편영화 찍을 때는 음악이 한번정도 들어가거나 그랬는데, 이번엔 음악을 적극적으로 써보려고 했다. 음악이 감정을 증폭시켜 장르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들어갔을 때 다른 느낌이 들 도록하고 싶었다. 그런 가능성들을 보고 작업을 했다. 영화전반은 탱고 풍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가이드가 될 만한 영화들을 편집과정에서 붙여보고, 다음에 영화음악 작곡 하실 분과 같이 얘기했다. 처음에 음악을 붙여야 할 부분, 거기에 맞는 음악 등을 만들고 같은 음악들을 여기저기 붙여보고 다시 작곡을 했다. 그래서 열 곡정도 만들었다. 그런 과정들을 시간을 좀 가졌다.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신 분도 가수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분인데 느낌을 잘 살려내신 것 같다. 사실 그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는데, 나와 호흡이 잘 맞는 것 같았다.

강 : 어머니 사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수염을 깎는데, 그 남자의 심정과 관련이 있는 건가.

조 : 처음에는 장례식장에서 찍으려고 했다. 가족들은 다 나와서 밥 먹고 있고 그 빈 공간에 서서 혼자서 영정사진을 보고 수염을 깎는 걸로 하려고 했는데, 장례식은 죽은 지 얼마 안되지 않았다는 얘기 같아서 집으로 옮겼다.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수염을 못 깎는다. 근데 앞부분에 캐릭터에 맞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다. 많은 설명보다는 하나의 이미지 처리로 인물의 캐릭터를 심어주는 장치였다. 내가 생각하는 캐릭터의 측면인데,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궁금하다. 인터뷰어께선 그 남자에 대해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강 :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남자 주인공이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끝까지 미워할 수 없는 지점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가장 컸던 부분이 부인하고 많이 싸우고, 섹스도 폭력적으로 하는 인물인데, 폭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진 않는다. 집을 엉망으로 만든다거나 주변의 것에 화풀이를 하는 장면들이 그런데, 그래서 이 사람이 죽일 놈으로 보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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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캐릭터 구축과 관련해서는, 갈치 파는 장애인 집에 찾아가서 부인이 쫓아내는데도 자꾸 들락날락하다가 담뱃갑 던지는 신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풀 뜯어 먹는 장면이 몇 개 있는데 그것은 배우의 애드리브인지, 아니면 시나리오에서 기획하고 들어간 건지.

조 : 시나리오에는 풀 뜯어먹는 장면이 한 번 밖에 없었다. 근데 배우가 원래는 연출자라 연출자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소가 나온다거나, 풀을 뜯어먹는 장면이 계속 나오면 이것이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치 이야기처럼 만들어지는 부분이 생긴다. 그런 부분을 얘기하면서 설정을 했다. 그렇지만 이 인물이 신파적으로 표현되기 보다는 코믹하게 살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담배를 사고 가는 길에 난초를 꺾고 가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배우의 애드리브였다. 그런 부분은 나도 좋았다.

강 : 그러면 배우가 적극적으로 자기 연기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내고 감독은 그걸 많이 수용하면서 전체적인 연기 디테일들을 만들어간 건가.

조 : 그렇다. 그 분도 연출을 하시는 분이다보니까 스태프들이 세팅하고 있을 때, 혼자서 공간들을 돌아다닌다. 그러고는 갑자기 뭘 가져와서는 '어떤가' 하고 묻는데, 그런 걸 잘 한다. 공간을 보면서 자기가 들어갈 곳이 있는지, 나올 곳이 있는지를 계속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그 공간에 자기를 맞추는 걸 찾는 건데, 그런 부분을 보면 배우를 해도 성공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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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개인적으로 수민이라는 여자아이가 영화 속에서 기억이 가장 많이 남는다. 무표정해 보이는데, 부부가 섹스하고 있을 때 소리가 들리니까 처음에는 연필깎이를 돌리고, 다음에는 라디오를 트는데, 그런 장면들의 의미를 아역배우에게는 어떻게 전달했는가.

조 : 나도 아역배우하고는 작업을 처음 해봤다. 주변에서 아역배우하고 연출하는 현장에 가보면 많이들 힘들어한다. 성인들에게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설명을 할 수는 없다. 성인배우들한테도 어떤 것을 설명할 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어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연기가 안 나올 땐 오히려 반대되는 얘기들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아역배우는 그런 부분이 더 많다. 개연성에 대한 설명을 하기 보단 내가 생각하고 있는 느낌을 이 아이가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고, 때론 어떤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성인배우들도 마찬가진데, 아역배우들은 연기를 너무 하려고 한다. 그런 것들을 막아내는 것이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엉뚱한 얘기들을 했다. 근데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아이가 똑똑해서 신뢰가 생겼다.

강 :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서 그런지 수민이란 아이는 좀 아이 같지 않다. 처음 시나리오 쓸 때 수민이란 아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고 싶다.

조 : 수민이란 캐릭터는 가장 적합하게 나온 인물 중 하나다. 시나리오 쓸 때 걱정된 부분은 상황이 평범하지 않아서 우울한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캐스팅을 할 때 약간 시골스럽게 생긴 수민이를 캐스팅했고, 생각보다 잘 맞았다. 어쨌든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우울한 캐릭터가 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 외에 수민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이 아이는 반응을 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어떤 장면들 사이에 아이의 반응이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을 할까 이런 고민들을 했다. 인간답게 고민하지 않은 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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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노래방에서 웃기게 노래 부르고 바로 연결되는 신이 엉덩이를 노출한 채로 섹스 신, 다음에 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 신이다. 리듬감 있게 한 컷씩 탁탁 넘어가는 재미가 상당했고 힘이 있는 편집이었다. 원래 콘티에서부터 계획한 것인가, 아니면 편집 때 새로 결정한 것인가.

조 : 둘 다 인 것 같다. 이 시퀀스가 생각보다 많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상 보면 이 여자를 만나서 많은 관계들을 갖고, 가족처럼 진전되고 그 다음에 밥 먹으면서 시간이 흐르고, 다시 시작되는 건데, 이 사람의 앞의 1부를 마무리 짓고 2부로 넘어가는 시퀀스다. 사실 의미는 있지만 중요한 시퀀스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시퀀스들을 과감하게 줄였다. 단편영화를 찍다보니 그런 시간들을 효율적으로 넘겼다.

강 : 부부생활에 대한 디테일이 영화적으로 봤을 때 강도도 세고,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패턴은 아닌 것 같다. 여자캐릭터와 부부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을 했는지 궁금하다.

조 : 그렇지는 않다. 여자가 남자보다 강한 인물이다. 남자한테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극적으로 약간 과장되어 있을 순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만나서 산다고 했을 때 부부생활이 그러지 않을까싶다. 그런 가정의 모습을 보여줄 때 어떤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했다.

강 : 상다리를 고치는 장면도 그런 과정을 생각한 건가.

조 : 그렇다. 처음엔 문을 부수는 것이었는데, 세트장이 아니니까 다시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밥상을 사다가 밥상을 부순 거다. 문짝을 부수었으면 느낌이 더 좋았을 것 같다.

강 : 남자가 일부러 직접적인 폭력행사를 하지 않은 건가. 특히 수민에게 행하는 폭력은 찾아볼 수 없고 여자한테도 마찬가지다. 때리지 않는 것이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되지 않았나.

조 : 어떤 영화관계자분이 이 영화를 보고 폭력에 관한 영화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 하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 이건 폭력에 관한 영화가 아니고, '화'에 대한 영화다. 자기가 참을 수 없는 화를 누가 있든지 없든지 드러내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직접 때렸다면 내가 생각하는 '화'라는 것은 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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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캐릭터를 죽이고 살리고는 결단이 필요 했을 텐데, 어떤 의미에서 남자의 죽음이 꼭 필요했던 건가.

조 : 시나리오를 쓰고 계속 고민했던 부분이 이 영화가 무엇에 관한 영화 인지였다. 궁극적으로 집착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그 집착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개인이나 사회에 무슨 영향을 끼치는지, 집착의 결과가 어떤 결과를 나타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가장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죽음은 어떤 것인지, 이런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죽음이 영화적으로는 순간적으로 화를 못 참은 것이다. 그것이 어떤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인데, 결과적으로 후회는 하겠지만 후회를 하면서도 욕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허탈감 같다.

강 : 영화가 좀 우울하고 과하게 신파 쪽으로 흘러가는 걸 원치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음악도 위트 있고 재밌게 했나.

조 : 그렇다. 그런 의도가 있었다.

강 : 엔딩 신에서 여자랑 수민을 보여준다. 비극적인 여성이긴 하지만 앞으로 잘 해쳐나가리라는 느낌을 준다. 남자의 마지막이라고 보다 여자들이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감독의 애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건가.

조 : 그렇다. 그렇게 생각을 했고, 그들의 뒷모습, 등 뒤에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강 : 그때 수민도 뒤돌아보는 클로즈업이 있었는데, 수민의 얼굴이 좋았다. 엔딩 신에서 색깔이 변하는 것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인가.

조 : 그렇다. 처음부터 CG를 계획하고 찍었다.

강 : 그런 것을 '어떤 의미다'라고 하면 멋이 없지만, 그런데도 표현을 한다면 어떤 게 있을지.

조 : 남자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나. 굳이 CG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CG를 넣으면 어떤 효과가 생기고 그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을 하겠다는 예측이 가능했다. 그런 부분에서 예측을 하게 만들 것이냐, 뺄 것이냐를 고민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넣은 이유는 영화의 전반적인 질감이나 느낌을 봤을 때, 사막 같은 느낌이 들어가는 게 이 영화를 선명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제목도 '낙타는 말했다'이지 않나. 그런데 주인공은 이런 말을 했다. 영화에 소만 나오고, 주인공이 계속 풀을 뜯어먹고 그러니까 제목을 '소는 말했다'라고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웃음).

강 : 영화의 촬영적인 기법이 핸드 헬드가 많다. 그런 부분은 촬영감독과 어떤 상의를 했나.

조 : 핸드 헬드를 한 이유는 카메라가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자유로워지면 나도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중심점을 카메라로 잡고 갈 수 밖에 없는데, 그러면 움직임의 제한이 있다. 그런 제한적인 느낌이 나한테는 좋진 않은 것 같다. 카메라를 쓸 때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틸트를 한다든지 팬을 해도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단편을 찍으면서 느낀 것이 핸드 헬드를 하면 동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그런 인위적인 느낌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촬영감독이 카메라랑 붙어 있는 분이다. 몸하고 카메라가 붙어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고려했을 때 핸드 헬드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강 : 다른 촬영적인 콘셉트는 어땠는지.

조 : 색깔이나 질감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했었다. 질감은 투박하거나 거친 느낌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잘 들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반적인 앵글이나 콘티에 대해서는 크게 콘셉트를 갖고 가진 않았다.

강 : 콘티는 거의 영화촬영 들어가기 전에 계획하고 들어가는 건지 상황에 맞게 변경하는지.

조 : 일단 콘티를 다 못 그렸다. 그리다 중단됐고, 가지고 들어가긴 했는데 현장에서 공간에 맞게다 바꿨다고 보면 된다. 중국집도 원래 네 컷 정도 됐는데 카메라가 빠지면서 한 컷으로 갔다. 콘티가 없으면 자칫 시간이 미뤄가 될 수 있는데, 감독으로서 스태프들이 힘들어 할 까봐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강 : 원래 감독님 취향은 사전에 콘티를 완벽하게 짜놓고 가는 스타일인지, 현장에서 많이 바꾸는 스타일인지.

조 : 전에 단편영화 찍을 때는 콘티대로 다 찍었다. 나도 콘티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바꾸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외 같은 경우는 안 바꿔도 되는데 실내 같은 경우는 많이 바꾸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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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영화를 보면 비판적인 사회상이 있는데, 영화가 비판적인 사회상을 연출한 것이 아니라, 이 남자와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중심인 것 같다. 궁극적으로 관객이 어떻게 봐줬으면 하는가.

조 : 나는 처음부터 개인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회에 대한 부분들은 안 들어 갈 수 없겠지만, 그런 부분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들을 좋아하진 않는다. 개인에 대한 얘기라고 했을 때 그 집착이 개인에서 무엇을 남기고, 사회적으로 보면 그것이 무엇이고, 집착이 낳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 그런 부분이 핵심인 것 같다. 그 집착의 결과는 공허함일 수도 있고, 타협일 수도 있고, 그 무엇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 중에 어떤 것일 것이다.

강 : <낙타는 말했다>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투박하고 남성적인 감수성인데, 영화적으로 잘 표현된 것 같다. 수위가 높은 신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연출을 한 건가.

조 : 여배우들이 노출을 해야 하는 신들이 있다. 이미 사전에 하기로 한 것들이지만, 그런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이 먼저 긴장을 하기 때문에 감독도 긴장을 하게 된다. 여기서 내가 해야 될 일은 어떤 부분을 포기하고 가야 될지 아는 것이다. 내가 욕심을 부리면 서로 피곤해진다. 일단 배우들이 연출자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안심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계속 옆에 붙어 있었다. 나도 기본적으로 윤리적인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 있는데, 그런 장면을 찍을 땐 버릴 것은 버리고 빨리 찍는 것이 좋다. 이번 영화에서 정사 신이나 폭력 신이 힘들다고도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부부가 섹스를 하고 있는데, 뒤에 수민이 지나가는 신에서 사람들의 만류가 있었다. 도의적인 측면에서 생각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영화는 영화'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어려워하진 않았다.

강 : <낙타는 말했다>에 나오는 지방 소도시의 디테일이나 주인공 남자의 소박하고 패배자인 캐릭터가 감독님이 추구해가는 방향인건가.

조 : 나도 명확하게 말할 순 없다. 처음 단편영화 찍을 때는 패배자를 담을 생각도 안했었다. 주로 엘리트 비꼬는 방식에서 재미를 느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번 영화도 그렇고 다음에 쓰고 있는 것도 그렇고 패배자는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이다. 근데 계속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강 : 만들면서 참고로 본 영화가 있는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영향 받은 영화가 있다면.

조 : 사실 리얼리티가 강한 영화는 처음 작업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이 유럽감독들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장치나 재미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영화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리얼리티를 가지고 가는 영화를 해보자는 확신이 있었다. 어차피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이니까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강 : 원래 좋아하는 감독은 누군가.

조 : 딱히 어떤 감독을 좋아한 다기 보다 어떤 감독의 태도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루이스 브뉴엘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지고 있는 태도, 안토니오니가 가지고 있는 태도, 나도 그런 태도를 가지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자꾸 바뀌는 것 같다. 3일전의 태도와 오늘의 태도가 다르고, 앞으로도 많이 바뀔 것 같다. 어떤 감독이 가지고 있는 태도가 좋다면, 그 영화는 좋을 수밖에 없다.


강 : 영화는 맨 처음 어떻게 시작하게 되건 가.

조 : 방황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많이 헤매고 다녔다. 직장도 다니다 그만두고, 대학원도 다니다 그만뒀다.

강 : 원래 전공은 영화가 아닌가.

조 : 그렇다. 원래 전공은 인류학과고, 글도 계속 썼었다. 한 십년 가까이 썼는데, 글은 답답해서 못하겠더라. 그렇다고 주변에 영화나 예술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침 미디 액트에서 독립영화과정을 한다고 하기에 신청했다. 그때가 스물아홉이었는데,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도 영화를 계속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글 쓰는 것만 하지 말고 좀 답답하지 않은 매체를 해보자 할건데, 단편영화를 한번 찍어봤는데 재밌더라. 그래서 한 번 더 찍어봤더니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상원에 들어갔다. 결국 지금은 영화를 찍고 있고, 이렇게 됐다.

강 : 영화의 어떤 점이 가장 매력이라고 생각하는지.

조 : 나도 4~5년 밖에 안돼서 잘 모르겠다. 그런데 답답하지 않는 것 같다.

강 : 답답하지 않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조 : 시나리오만 쓰는 게 아니잖나.

조 : 그런 것도 있다. 첫째로 방에만 있지 않아도 되고 , 관계가 형성이 된다. 글을 쓰는 것이 나와 출판사와의 관계라면, 영화는 더 많은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아까 영화의 장점이라고 물었는데, 의외성이 많은 것이 좋은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는 중에도 의외성이 들어가지만 영화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현장에서 내가 의도했던 것들,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 편집하면서도 그런 것들이 개입이 된다. 이런 것들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연극이나 다른 것들은 이런 기회를 갖기 어렵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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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개봉을 앞둔 심정은 어떤가.

조 : 좀 창피하기도 하다. 완성된 게 작년 봄인데, 일 년 반전에 만든 영화를 개봉한다고 인터뷰한다는 게 좀 쑥스럽다. 어쨌든 좋다. 만든지 한참 된 영화긴 하지만 개봉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많진 않겠지만(웃음).

강 :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어떤 내용인가.

조 : 내용적으로 말을 하면, 이것과 비슷한 한 남자의 비극적인 얘기, 또 하나는 사랑 얘기도 있다. 근데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나리오 보는 사람들은 이건 사랑이 아니라 불륜이란다(웃음).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고 있다.

강 : 다음 촬영 계획은 어떻게 되나.

조 : 우선 한 달 정도 시간을 갖고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 볼 생각이다. 일단 알코올중독에 관한 얘기를 생각하고 있다. 알코올중독이라고 하니까 벌써 느낌이 비슷하다. 그렇지만 이번 영화보다 훨씬 세련되고 덜 투박하고 시골이 아닌 서울에서 찍을 것이다.

강 :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 가장 만들고 싶은, 추구하는 영화 상(像)이 있다면?

조 : 그것도 늘 바뀌더라. 만약 계속 영화를 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멋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대부>를 보면 상업영화고 독립영화이고를 떠나서 그냥 '멋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 그 정도의 멋있음. 그런 걸 하고 싶다.

강 : <낙타는 말했다>는 어떤가.

조 : 귀엽다. 멋있진 않으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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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읽기

필진 리뷰 2009.11.11 14:18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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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원


"이선균에게는 특별히 어떤 영화를 보라고 한 건 없고 철거민이나 당시 학생운동을 그린 다큐멘터리들을 보라고 권했다. 서우의 경우도 딱히 어떤 영화의 어떤 느낌이라고 말한 건 없고, 영화에서 절친한 친구인 미애랑 계속 친하게 어울려 지내니까 <메이드 인 홍콩>(1997) 같은 영화에서 친구들이 어울리는 방식이 참조가 될 거란 얘기는 했다. 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친구들끼리 우정을 나누고 서로 살갑게 의지하는 그런 모습, 그렇게 현실을 이겨내는 힘 같은 것 말이다. 두 배우 모두에게 멜로영화를 추천한 건 없다"- 박찬옥, 씨네21과의 인터뷰 중

확실히 내 느낌이 맞았다. 매체에서 반복되는 '안개에 휩싸인 미스테리한 멜로'의 느낌은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이다. 박찬옥이 회화를 그렸다고, 멜로의 장르에 더 깊이 천착했다고 하는 평은 황폐한 공간의 프레임에 갇힌 채 안개에 휩싸이자 밀려오는 착각이다. 인터뷰 기사도 한 두 건에 그칠 정도로 박찬옥은 설명(감독의 변)을 꺼린다. 그의 영화처럼 극도로 내밀하다. 이러한 태도는 이 영화의 홍보에 대해 (거의 낚였다는 수준으로) 불만을 표출한 꽤 많은 관객들에게 오히려 아무 것도 변명하지 않는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듯 하다. 이 영화가 일반개봉을 통해 베일을 벗자, 확실한 것 하나는 봉준호식 카테고리가 박찬욱식의 이미지로 덧칠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이 박쥐로 홍보되어 있었다고 말하면 지나친가. 봉준호의 박해일이 과장된 유머를 버리고 박광수의 문성근과 그 어느 지점쯤에서 만난 것으로 느껴지는 이선균이 마치 밀양이나 박쥐에서의 송강호처럼 홍보된 것은 개봉을 위한 불가피한 전략이었나. 그렇다면 이 영화는 영리한 멜로 드라마라고 말해도 흠될 것은 없다. 하지만 그 흠될 것이 없는 일은 매체들과 평자들을 통해 어느정도 이야기 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충분친 않아보인다. 개봉관에서 곧 사라질 듯 한데 직무유기아닌가 싶다. 이 영화는 2009년에 개봉한(개봉이 가능했던) 한국영화들 중 단연코 특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내게 <파주>는 오히려 이 감독의 진작의 데뷔작 같았다. 더 잘 짜인 느낌이 아니라 부러 헐거워진 느낌이다. 7년 전과 3년 전과 현재의 서사를 느슨하게 엮은 듯한 영화의 구조는 오프닝에서 도로의 안내판을 통해 아래서 위로 슥 보여주고 마는 무심한 영화 제목의 등장과 맞물려 영화적 인과가 아닌 풍경의 재현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처음 보는 듯한 낯선 이미지들은 혼란스러웠던 80년대에 태어나(그 시절을 모르고) 2009년 현재 성인이 된 젊은 청춘들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의 풍경일 것이다. 이처럼 <파주>는 <질투는 나의 힘>보다 훨씬 비상업적이며 반드라마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80년대로 회귀한 것 같은, 그 시기의 독립 영화들의 사회 다큐멘터리적인 풍경를 담고 있다. 박찬옥은 자신의 영화의 궤도를 막 들어선 90년대로 돌려와 <파업전야>(1990)나 <그들도 우리처럼>(1990) 같은 사회 드라마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듯하다. 물론 이는 당연히 이명박 정권하의 시대가 그 시절로 역행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풍경의 유사함(전투경찰과 화염병과 최루탄의 재등장)만으로 이 영화가 탄생한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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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운동권이 곧 주류였던 386세대들의 현재, 여전히 정권에 맞서 제도권 밖에서 투쟁하는 모습을 정면에 보여준다. 사회주의 학생운동은 개발을 거부하는 철거민 대책회의로, 야학은 공부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데모의 주동자로서 늘 수배령에 쫓기는 신세인 이선균을 주로 하여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정서는 실패한 혁명에 대한 좌절감 혹은 죄의식이다. 이선균이 결혼한 운동권 선배(김보경)와 사랑을 나눌 때 아이가 죽어버리고, 파주로 들어와 밤에 떠도는 빨간 옷의 여인(향숙을 연상시키는, 심이영)과 결혼을 하지만 그녀는 원인모를 가스폭발로 사망한다. 이 사고사들은 우연적인 것이었으면서도 그 날, 그 때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이선균에게 큰 죄의식을 남긴다. 영화엔 운동권 스스로의 나르시시즘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퇴행적인 정서가 아니다. 그들은 현 시대를 향해 자신을 투영하려 한다. 현재의 탈이데올로기의 시선을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서보려 한다. <그들도 우리처럼>이 아니라,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질문한다. 어떠한 평가를 조용히 기다리는 것처럼 그들은 다소 위축되어있거나 비관적이다.

철거촌에서 벌어지는 데모의 풍경, 특히 전경이 포크레인으로 이 마지막 레지스탕스들의 거처를 내려찍는 장면같은 것은 멀티플렉스에서 보는 상업영화란 환경적 틀에 전혀 걸맞지 않는 전율을 안긴다. 이 전율은 체험으로서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사회적 사실주의의 일환이다. 하지만 멜로의 정서로 시대를 재현하려는 이 영화는 오히려 80년대를 재현할 때 할 말을 하지 못한 채 거리를 방황했던, 검열과 편집으로 대중친화적 멜로 드라마만이 남아 우리를 더 공허하게 했던 7-80년대 영화들에서 보였던 절망적 슬픔이 다른 풍경으로서 전달되기도 한다. 박찬옥은 이러한 사회에 대한 정치적 위기감을 파주, 남한의 최전선 즉 휴전선의 횡단영역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그곳을 마치 마지막 저항의 집결지처럼 묘사한 후 온통 안개로 둘러싼다. 하지만 그 누가 이 안개를 욕망에 갇힌 멜로의 불안한 정서라 운운하고 말 것인가. 비유에 비유되어 갇히는 수많은 우리의 눈들, 대중영화를 보는 우리의 뻔한 눈들은 더 이상 시선이 아니며 모험도 없다. 과거의 정치, 역사를 재현하는 문제를 사유하지 않고 어떠한 확언도 어렵다는 듯 풍경의 정서에 취하며 접어버리는 것은 그 시절의 공식적 영화화를 어떤 식으로든 꺼려하거나 두려워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니까 <파주>의 '안개'는 물질이냐 정신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내면의 심리적 문제, 실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입지의 문제. 즉 그것은 모호한 사랑의 분위기인가 80년대의 최루탄 연기인가를 우리에게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멜로가 전혀 부유하는 안개처럼 대중적 장치로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적 투쟁을 둘러싸고 있는, 참여하면서도 관찰하고 있는 서우의 불확실한 시선, 그런 그녀와의 멜로가 이선균의 원죄의식에 관련하여 작용되는 은유의 지점이 중요해진다. 우선, 이선균에게 멜로는 김보경에서 실패의 정서로, 심이영에서 죄의식의 정서로 고착되었다가 제 3의 시선인 서우의 앞에서 아주 느리게 서서히 회유한다. 이 불명확해보이는 감정은 영화의 마지막, 서우의 숙소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실상을 밝힌다. '처음부터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란 그의 고백은 혁명과 사랑의 실패, 그 과거로부터의 자의적이자 동시에 타의적인 구원으로서의 것이다. 한편 서우에게 이선균은 언니를 빼앗아간,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혈연을 앗아간 주범이면서 동시에 첫사랑과 같은 동경의 인물이다. 모순적인 감정을 보이는 그녀는 이선균을 동경하고 사랑하면서도 그를 소유할 수 없음을 불길하게 예측한다. 20대의 가장 순수했던 정신이 이미 그 시절(80년대)에 바쳐진 후 더 이상 순수함을 회복할 수 없음을 머리가 아닌 육감으로 절감한다. 그녀는 그의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대상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스스로 안다. 그렇기에 그의 곁에 머물지 않고 가장 사랑할 때 떠나간다. 박찬옥은 그 시절의, 그리고 현재까지 이 사회의 변두리 그러나 실제의 최후의 보류선에 서있는 모습의 운동권의 자화상을 2009년의, 서우의 시점을 통해 거리감을 두고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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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처음과 끝을 서우의 불명확한 시선의 이동감으로 처리함으로 그 내면을 회유하며 끝까지 이선균의 내면을 우리에게 밀착시켜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곳곳의 지점마다 386의, 이선균의 시점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충분히 불편하지 않을 만큼 개입한다. 서우가 가출하기 전 도려낸 이선균의 얼굴이 없는 결혼사진이 후에 언니가 죽고 난 후 이선균에 의해 발견된다. 서우의 눈에 불필요하게 느껴졌던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이선균이 자신이 잘려 나간 사진을 들여다보는 순간 이 땅의, 이 사회에서의 자신의 자리가 없음에 대한 회한적 정서가 깊이 파 들어 온다. 이 정체성 없음과 정처 없음의 외부인의 정서는 결국 사랑을 고백한 순간 배신당하고, 감옥에 힘없이 걸어 들어가는 처지가 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멜로는 시도자체가 불필요했던, 실패를 염두한 정서였단 말인가.

영화는 오토바이에 올라 타 파주의 끝, 군사분계선을 앞두고 있는 철조망을 횡단하며 불안하고도 쓸쓸한 눈동자를 한 서우를 오래도록 보여준다. 그야말로, 부산영화제에서 김정과 정성일의 영화와 함께 보았다면 더 없이 흥분했을 장면이다. 김정의 <경>이란 영화에서 동생을 찾아 나섰으나 실패한 양은용의 자동차안에서 멈춘 카메라, 그 안에서 국가를 떠나 아시아 하이웨이로 들어서는 자동차의 긴 행렬, 그리고 정성일의 <카페 느와르>에서의 마지막 장면, 요조의 오토바이가 그녀의 밝은 표정과 함께 경쾌하게 질주하던 신이 각각 역방향에서 겹쳐온다. <파주>의 엔딩은 <경>의 엔딩에서의 정서와 닮아있다. 하지만 박찬옥은 그 정서의 대상을 철조망 너머로서 분명하게 상정하고 있다. 넘을 수 없어 빙빙 돌고 있다. 그 철조망은 이선균의 감옥을 확장한 2009년의 것이다. 멜로는 완벽하게 정서적으로 갇혔다. 이제 명백해졌다. <파주>의 안개는 물질이다.

p.s 이 영화에서 <밀양>을 거론하는 것은 좀 성급한 처사로 보인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가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것, 그 후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파국의 드라마,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있는 교회가 등장하고, 죄와 감옥이 등장하고, 면회장면이 등장하여 성경구절을 읊조리는 것. 이러한 틀에 가까운 요소들 말고 그 어떤 주제가 유사하단 말인가. 이창동 영화의 정서에 그 어떤 정치가, 그 어떤 투쟁의 결과로서의 입지가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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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구치의 50년대 영화에 대해

필진 리뷰 2009.11.11 14:08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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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원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에서 주관하는 넥스트플러스 영화 축제의 일환으로 필름포럼에서 미조구치 겐지 특별전을 진행 중이다. 서구의 평자들, 특히 프랑스의 까이에 뒤 시네마의 동시대 필진들에 의해 발굴된 미조구치의 영화들을 생소한 채 보았다. 사실 오래 충분히 이야기 된 작가이기도 하기에 많이 뒤늦은 감으로 따라가보듯이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들의 무엇이 그 시대의 그들을 흥분하게 했을까. 나는 그들의 글이나 유명하다는 노엘 버치의 분석을 사실 직접 읽어보진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들이 카메라 움직임, 인물, 프레임 이 셋의 연속적인 구성을 순수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무성영화시기를 거친 감독들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고유의 영화적 감각이기도 하다. 미조구치의 영화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 2009년 현재 서울의 한 작은 지하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나의 앞에서 여전히 상영(screening)되고 있었다. 이 상영은 기술적인 상영의 과정이 아니라 그로부터 발생된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적인 이야기가 발생된다.


영화적이란 말은 초기 영화의 순수성을 내포한 말이다. 이는 말하지 않는 침묵으로서의 이야기로서 시적인 영상을 뜻한다. 이 함축된 영상은 이야기를 말이 아닌 정서로서 우리에게 전달한다. 미조구치는 자취(흔적)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단절과 연속 즉, 닫히고 열리는 문으로, 갇히고 해방되는 카메라 움직임으로,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페이드 인/아웃으로, 그것의 느린 디졸브로 참혹한 전후의 사회상 위에 위태롭고 불완전하게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상황을 겹쳐 그려낸다. 미조구치는 정지한 풍경을 기점으로 돌아 큰 원을 그리면서 비극을 불교의 사상으로 회유한다. 이 원운동은 관념적인 것이고 역사적, 사회적 비극 속에 처한 인간에게서 움직이지 않는 그 내면의 무엇을 발견, 관찰하려는 탐색이다. 이는 카메라에게 부여된 철학적, 논리적, 윤리적, 도덕적 증명이 결코 아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과 인간으로서 만나려는, 사물과 인간이 마치 일치되려는, 관계적으로 말해 면(3차원)과 선(2차원)으로부터 점(1차원)으로 회귀하려는 것이고 정서적인 방황으로부터 해탈하려는 것이다. 즉 현세의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지옥에서 내세의 추상적인 세계로 초월하려는, 왔다가 사라지려는 회귀 운동이다. 미조구치의 카메라 움직임은 관조적이며 인물들은 유령적이고 프레임은 끊임없이 외화면을 의식한다. 이것은 쇼트와 쇼트를 거의 나누지 않으려는 듯한 원 신 원 컷, 디졸브의 잦은 사용, 사라졌다 다른 존재로 재발견되곤 하는 인물들의 등,퇴장 방식, 외화면에서부터 시작하여 외화면으로 사라지는 소리의 연출방식 등에서 그러하다. 즉 미조구치에게 내화면은 외화면의 순수한 현전이다.

미조구치의 말기인 50년대는 그의 영화 세계를 완성 지을만한 걸작들로 채워져 있다. 미조구치는 50년대의 사실주의적인 풍경과 정서적인 드라마를 빈틈없이 연출해내는 데 있어 거의 모든 작에서 예외가 없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의 영화는 시대적 배경을 불문하고 마을의 부감 쇼트로 시작하여 부감으로 마친다. 영화의 존재적 출처인 듯 하늘로부터 하강하여 다시 하늘로 상승한다. 그런 다음, 일본의 전통 연극을 의식하듯 인물들의 등/퇴장의 기점, 방향, 루트, 시간을 충실히 묘사한다. 그들은 출현한 곳으로 사라지는데 그 과정을 보면 긴 골목길의 소실점에서부터 출발하여 긴 시간에 걸쳐 걸어나와 문(발)과 문(발)을 넘나들고, 방과 방을 옮겨가며 그 각각의 공간에서 외면과 내면을 연기한다. 미조구치는 안과 바깥을 화면 안에서 나누는 프레이밍을 선보인다. 그것은 가옥의 문 안에서 바깥으로 보이는 긴 거리의 골목길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가옥 내의 방을 칸막이로서 나누어 보여주는 방식에서 그러하다. 그는 한 공간을 이중의 공간으로 만들어 여기와 저기 즉 다시 말해 내부적 상황과 외부적 상황, 드라마와 현실, 혹은 현실과 도피, 현세와 내세를 입체적으로 명시한다. 인물들은 거의 실시간적인 조명을 받으며 일종의 카메라 테스트를 거치는 듯 연기한다. 그들은 마치 외면과 내면의 방을 넘나들 듯 행동으로서 출현해서 심적으로 고백하고는 다시 행동으로서 떠나간다. 한 인물과 사건에 부여된 긴 신들은 거의 느린 페이드 인 혹은 아웃, 디졸브를 통해 겹쳐진다. 중요한 것은 이 겹치는 장면의 화면의 구도이다. 사라지는 화면의 구도가 이어지는 화면의 구도와 일치한다. 인물이 있었던 자리에 다른 인물 혹은 사물이 배치되어 있다. 왔다가 사라진 존재의 운동감은, 이 영화를 지켜본 관객으로서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으로서 화면엔 정지된 흔적, 혹은 미세한 떨림, 즉 수면의 파동, 미닫이 문 운동의 잔감, 혹은 외화면의 잔향(소리)만이 맴돌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 각각의 공간에서 결핍되어있는 요소들을 이 이중 공간의 드나듦의 과정으로서의 네러티브를 통해 역설적으로 채워 나간다. 이 드나듦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결코 동일한 출신(혈연, 가족)이 아닌 각기 다른 출처의 인연들이다. 이 인연은 인간적이고 살가우며 온정이 있다. 폭력적이고 극악 무도한 위정자, 그 비극의 역사와 정치 아래서 인간들은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서 만나 온기를 나눈다. 그들은 사실 이상적으로 표면화된, 매끈한 성격의 구조를 하고 있다. 미조구치의 인물은 복합적인, 내밀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 몸은, 게이샤의 치장은, 예쁨과 추함은, 늙음과 젊음은 도구적인 것이고, 역사와 정치의 시대적 반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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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구치의 50년대 영화에서 전후의 고아들이라 불릴만한 떠도는 인물들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원자화된 인간들의 풍경의 일부일 것이다. 이것은 <산쇼다유(1954)>에서 가장 극적이다. <산쇼다유>는 가장 전통적인 가치를 설득하는 영화로 영화의 엔딩에서의 어머니의 대사(아버지의 길을 따랐기에 너가 나를 만날 수 있었다)를 통해 그것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앞서도 언급했듯 미조구치는 무성영화의 자산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고 있음을 50년대에까지 의식적으로 보여준다. 시대극이라고 불릴만한 <우게츠 이야기(1953)>와 <산쇼다유>는 한밤중의 강물을 특별히 빼어나게 묘사한 작품으로, 강물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비극을 통해 인연, 삶, 운명으로서의 강물, 즉 깊이를 알 수 없이 고요한 표면의 잔잔한 파동만을 일으키고 있는 검은 물로 가득찬 까마득한 풍경을 연출한다(여담이지만 이 두 영화는 물 위의 도시,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강물은 신화적인 기원으로부터 떠남/이별을 상징한다. 이것은 신체적인 분리의 지점이자 정신적인 방황의 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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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구치는 이 시대극에서 무르나우의 무성영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자연의 묘사를 통해 인간의 정서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자연주의적인 시선을 노출한다. <우게츠 이야기>에서 겐주로나 도베이가 마을을 떠나고 방황하는 여정의 트레블링, 밤의 강물에 띄워진 배, 그 배 위의 인물들의 부유한 상태, 산쇼다유에서 남매가 인신매매단에 의해 부모와 생이별을 하는, 인물의 인연의 거리는 벌어지고 그 사이를 검은 물로서 채우는 까마득한 비극의 장면, 여동생을 죽음을 묘사한 강물의 미세한 파동의 움직임을 오래도록 응시하는 장면들이 그러하다. 이는 표현주의적인 무성영화, 즉 프레임, 조명, 무대의 극적인 장치들을 동원하여 미장센에 대한 의식이 돋보이는 영화들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미조구치는 물리적인 수평과 수직 즉, 양적인 길이와 깊이를 가지고 질적인, 정신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이같은 미조구치의 정신적인 위기감은 그의 자전적인 무대이기도 한 매춘가의 풍경을 보여줄 때 보다 직접적으로 연출된다. 매춘거리의 사실적인 풍경을 그려낸 <게이샤(1953)>나 <적선지대(1956)>에서 미조구치는 상대적으로 미학적 형식의 장치보다는 유곽 내부의 가장 치부스러운 삶의 부분을 드러내며 그 맨 상태의 낯을 화장과 기모노와 술과 음식과 음악과 노래로서 연출한다. 그러면서 그는 좀 더 사적이고 내면적인 공간으로 들어와 그들의 결핍된 가족관계를 드러내며 같은 '핏줄'이 아닌 같은 '처지'에 속한 자들끼리의 연대를 만들어낸다. 그는 매춘이라는 사회적이고 성윤리적인, 도덕적인 현상을 일본의 전통 가옥과 황폐한 전후의 거리처럼 환경적인 처지로 만든다. 그는 그것을 한 번 들어섰을 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적인 구조물로 여긴다. <게이샤>에서 나이 든 매춘부와 젊은 무희가 겪는 정신적 위기, 그리고 선대가 후대를 위해 희생함으로 맺어지는 연대감은 그들을 또다시 매춘의 거리로 힘차게 전진하게 만들면서 인간적인 위기의 시대를 남다른 방식으로 극복한다. 그의 운명론적인 시각은 첫 컬러 영화인 화려한 색체감과 빼어난 미장센이 돋보이는, 가장 모던한 양식을 가진 <양귀비(1955)>같은 영화에서는 보다 형식적으로 설명된다. 이 영화의 첫 시퀀스는 상당히 인상적인데, 궁궐의 긴 복도의 끝에서부터 사선으로 걸어들어오는 신하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그런 다음 창가 앞에 앉아있는 늙은 현종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양귀비의 목상을 앞에 두고 관찰하고 있다. 여기까지 이 신하들의 좁혀오는 운동감과 정지한 현종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이어 현종의 공간 왼쪽 편에서 아까 그 신하들이 등장해 명령을 전달하고 현종은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나서 이 신하들은 아까 그 출현한 방향(왼편)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이제야 현종이 창가앞에서 고심하며 앉아있거나 양귀비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의 정황이 설명된다. 그 현종의 방안의 묘사는 신하의 등장과 사라짐의 실시간 운동으로 둘러싸여진 것으로 운명적인 처지, 즉 비극의 처지를 설명한다. 미조구치는 비극의 시대에 서글픈 처지에 몰린 인간의 순수한 감정들을 이와같이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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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구치의 유작이 된 <적선지대>는 미조구치 영화중에서 가장 형식적인 의식이 없는, 리얼리즘계열의 영화라 불릴만한데 이 영화의 엔딩은 흡사 브뉘엘의 자연주의를 닮고 있어서 꽤나 충격적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거의 이전까지의 초월성, 관념성을 배제하려 한다. 돈으로 성을 사는 남자를 소위 말해 '등쳐먹고' 자립하여 나간 매춘부의 빈 자리에 심부름을 하던 젊은 소녀가 들어선다. 미조구치는 유곽을 늘 열린 구조로 보여준다. 이 가옥은 개방적이면서 동시에 유동적이다. 강물 위의 배가 인물들의 정신적 방황을 유출한다면 이 열려있는, 결코 영업이 정지되지 않는, 망할 듯 망하지 않는 매춘의 유곽은 육체적인 방황을 안착시키고 직업적으로 귀화시킨 후 정신적이고 인간적인 정서를 이 구조와 별개로서 취급한다. 하지만 <적선지대>의 풍경은 이전의 미조구치의 세계관을 일정부분 부정하고 있다. 오랜 기간 매춘에 몸담아온 늙은 매춘부들의 현실이 여과없이 보여진다. 이들은 남들과 같은 안정적인 결혼생활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쓸쓸하고 적적한 마음을 서로 부대껴가며 살아간다. 라디오에선 매춘금지법이 곧 통과될 것이란 보도가 들리고 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빚에 쪼들리는 신세에 더 큰 생계의 부담을 느낀다. 이들은 어려운 와중에서도 돈을 쪼개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추운 시절을 근근히 버텨나간다.


미조구치는 이 영화에서 <우게츠 이야기>에서 정점을 이룬,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시선을 사회적 리얼리즘의 시선과 거의 충돌시킨다. 이 마주침의 영역에서 도피하거나, 초월하거나, 아름다운 죽음을 그려내며 내세로의 진전을 꾀한 이전의 아름다운, 시적인 카메라와는 달리 이 영화의 엔딩에선 거리에 막 화장을 하고 나선, 조금은 수줍은, 그러나 미세하게 흥분한 홍조의 얼굴과 두려움에 찬 눈동자를 한 소녀를 기이한 일본 전통 음악과 함께 매치시키며 우리를 사실적인 혼란에 빠뜨린다. 그녀는 거리로 나선 것도, 도피의 길로 들어선 것도, 또 다른 세계에 들어선 것도, 죽음의 미학을 실천한 것도 아니다. 지금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대와 현실의 경계선에 서서 카메라 바깥의 거리를 보고 있다. 그 곳은 미조구치가 단 한번도 염두하지 않았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영역의, 금기시된 곳이다. 미조구치는 새로운 운명론에 처한 세대를 막 보여주고는 너무 성급히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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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0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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