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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영화평론가)
서울토박이라서가 아니라 내 취향에 꼭 맞는 도시는 서울 밖에 없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공기가 나쁘고 인심 사나운 교통지옥일지언정,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사는 일을 없을 것이라 다짐하곤 했다. 얼마간의 여행지라면 몰라도 서울 외에 다른 지방을 부러워해본 적이 없었으니, 문화예술 인프라에 관한한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딱 한 곳, 서울에 없는 것을 가진 부산이 부러워졌다. 서울에 없는 것이라면, 부산국제영화제? 그야 때맞춰 내려가면 그만이지. 아니면 세계최대의 백화점 신세계 센텀시티? 패리스 힐튼도 아닌 마당에 나와 무슨 상관인가. 도처에 펼쳐진 바다와 지천에 널린 횟감? 회도 바다도 모두 좋아하지만, 어디 그런 곳이 부산뿐일라고. 파리에도 있고 로마와 뉴욕에도, 서구의 웬만한 도시 마다 하나쯤은 있으며 하물며 부산에도 있는데, 서울에는 없는 것. 다름 아닌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그래서 나는 부산이 부럽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상문화도시로의 발돋움을 기획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실행시켜가고 있는 부산광역시 공무원을 가진 부산 사람이 부럽다. 역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살림을 맡고 있는 문화행정가들이 부끄럽다. 아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시네마테크가 뭐 그리 중요하기에 이렇듯 부산과 서울을 단순비교 하면서 호들갑이냐고 말할 런지 모르겠다. 시네마테크는 한 마디로 ‘영화의 집’이다. 영화를 발굴하여 보존, 복원하고 상영하는 공간으로서의 시네마테크의 시작은, 1930년대 초 유성영화 시대의 도래와 맞물린다. 즉 토키시대에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를 보존하고 이후 세대를 위한 영화 역사의 전달 임무를 지닌 시네마테크가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 알다시피 서구에서 영화는 산업에서 예술의 대상으로 종국에는 문화유산의 대상으로 변해왔다. 이때 시네마테크를 이루는 추동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시네필의 고유한 노력과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국가의 제도적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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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상징처럼 알려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ematheque Francaise)'를 보유한 프랑스의 경우, 일찌감치 영화를 문화유산으로 인정하고 고유한 지위를 부여했다. 프랑스가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에 대하여 제도적 지원을 적극 실시했다면, 미국의 경우는 시장에서 비상업적인 방식의 영화 상영을 통해 시네마테크 문화를 활성화시켰다. 예컨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재정의 90%가 문화부와 CNC(국립영화센터-우리의 영화진흥위원회 격)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미국의 대표적 시네마테크인 ‘필름포럼(Film Forum)’의 경우 이사회를 비롯해 개인, 단체, 기업 후원회원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도 서구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5월 10일 소격동 선재센터에서 개관해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는데,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정위탁’ 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현재까지, 영진위의 재정지원(임대료)과 극장활용수익을 통해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시네마테크를 가진 도시답게 파리에는 약 150개의 독립영화관과 89개의 실험영화관이 있다. 게다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필두로 ‘제오드’, ‘포럼 데 이마지’, ‘퐁피두센터’ 등에서는 고전향취 물씬 풍기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네필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것은, 파리시의 영화산업 지원정책이다. 이를테면 상업 활동이자 예술로서, 청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여가활동으로서 영화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영화산업을 행정측면에서 지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위해 파리시에서는 프랑스 국립영화연맹 등과 협력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관람 권장 행사를 벌이는 한편, 영화관 현대화 정책을 병행함으로써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분투 중이다.

파리시는 독립영화관들, 오래된 유명 영화관들, 동네 영화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프랑스 예술 및 실험영화단체와 협력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 모임인 ARP가 프랑스 및 유럽영화를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직접 '영화인들의 영화관(Le Cinema des cineastes)'을 경영하는 것도, 이러한 파리시의 적극적인 영화예술에의 지원정책에 힘입은 결과다. 정책방향과 정책적 지원주체와 형태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뿐, ‘필름 소사이어티’나 ‘시네마테크 온타리오’ 같은 북미의 시네마테크들 역시, 영화산업의 육성 및 보존을 위한 해당 시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에서 기원한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문화예술, 좁혀서 영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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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내놓은 2010년 시정 중점 과제 중 하나는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 구현’이다. 참으로 소박하고 아름다운 구호다. 연중 시청 앞 광장에서 음악회를 열고 청계천의 밤빛을 배경 삼아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놈의 서울특별시 문화행정을 총괄하는 문화국의 콘텐츠에는 ‘영화’가 쏙 빠져있다. 아니 영화‘만’ 빠져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편중된 예산편성이다. 즉,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지향하겠다는 서울의 1년 예산 가운데, ‘문화’ 분야 예산이 (일반회계를 기준으로)1.8%에 불과하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러니까 2010년 서울특별시 총예산 21조 2853억 중 문화부문 예산은 3,769억 원이고, 이 가운데 ‘문화시설 건립운영 지원’에 242억 원을 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외적으로 수도서울의 위상을 과시하기 급급한 공공프로젝트와 일회성 행사에 치중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계절스포츠 행사를 치르느라 시설물을 세우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예산을 쏟아 부을지언정, 시네마테크 하나 건립하는 데는 시가 발 벗고 나서는 법이 없으면서, 무슨 재주로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만들겠다는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화만큼 시민의 일상과 밀접한 문화예술분야가 또 어디 있다고.

앞서 말했듯이 파리와 뉴욕의 시네마테크가 너무나 부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과 단순 수치로 비교할 마음은 없다. 그래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간다. 서울의 일 년 예산 중 문화부문에 배정된 것이 1.8%(3,769억 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부산은 어떨까? 부산광역시의 2010년 총예산은 7조 2,136억 원으로 서울의 1/3 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이중 문화관련 예산은 3.040억 원이고, 영화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영상센터 건립에 565억 원이, 영상중심도시 지속사업에 650억 원이 배정되어 있는 등, 그야말로 ‘영상산업도시 부산’의 면모가 예산편성에 드러나 있다(서울특별시 공식홈페이지 문화국 콘텐츠에는 ‘영화’만! 빠져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006년 4월의 어느 밤, 종로타워 바에서 ‘앱솔루트 트리오’의 리더인 피아니스트 페터 폰 빈하르트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 직업을 알아차린 그는 자신도 영화광 못지않은 애호가임을 밝히면서 대뜸 “기회가 되면 서울의 시네마테크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순간 뜨끔한 마음에서 임기응변으로 “유럽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아니지만, 서울에도 시네필의 기운이 살아있는 시네마테크가 있다”고 호기 있게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서울아트시네마 쪽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가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더라면, 무엇을 보았을 것이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수집, 보존, 복원, 연구, 상영의 공간인 우리들의 시네마테크의 뒷모습은, 오랜 벗처럼 겹으로 똬리를 튼 낡은 영사기와 만성적 재정문제라는 검은 그림자가 아닐까.

만성적자와 노후 된 설비와 제대로 된 교육 공간 하나 없이, 이 남루한 하드웨어를 몸에 가난처럼 짊어지고도 우리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8년 세월을 시네필의 성소로 버텨왔다. 그렇다고 서울아트시네마의 활동이 외국의 시네마테크에 비해 모자랄까? 천만의 말씀이다. 프로그래밍만 놓고 본다면 뉴욕의 필름포럼보다 더 낫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필름아카이브 구축과 현대식 영사시설의 구비가 급선무이긴 하나, 이처럼 기획전과 대관전을 비롯해 교육상영과 포럼, 출판에 이르기까지, 척박한 환경을 딛고 이뤄온 서울아트시네마의 성과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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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산업이면서 예술이고 문화인 동시에 유산이다. 서구의 국가들은 이미 70여 년 전 이를 인식하고는 찬란한 유산을 후대에 남겨줄 공간으로 ‘영화의 집’을 기획하여 실천에 옮겼으며, 이 노력은 각 도시와 구역을 중심으로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구 1,200만 명의 거대도시 서울특별시는, 이곳에 ‘시네마테크전용관’ 하나 없다는 사실을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서울시장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문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양동작전으로 생사여탈권을 휘두르는 야만적 작태를, 자발적으로 시작하여 문화운동을 거쳐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서울아트시네마’의 외롭고 고단한 싸움을 언제까지 외면하고 방치할 것인지를.

시네마테크 전용관에 관한 공모제가 공표될 날도 머지않았다. 어차피 이치에 맞지 않은 제도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입 아픈 일일 테니 이제는 무시하기로 하자. 설사 그렇더라도 ‘1000만 영화 관객 시대’를 질주하는 한국에서 전용관 하나 구할 수 없어 떠도는 한국 시네마테크의 현실이 여기에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알려야 한다. 2005년 4월 3일 <안녕, 용문객잔>을 끝으로 낙원동으로 이사 온 이래, 시네마테크는 다양한 경로와 방법을 통해 ‘시네마테크전용관’의 필요성을 호소해왔다. 그러나 영진위나 문화부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용관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고사하고 기본 계획조차 전무한 집단에 더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셋방살이가 고달픈 게 아니라 삶 자체를 부정하고 폄하하려는 냉소적 시선을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과 유지 발전을 위해 서울시가 나서야 할 때이다. 지금 발 벗고 나선다 해도 부산보다 10년이나 늦었다. 무엇이 두려운가.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구현’하겠다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에 걸 맞는 사업으로 ‘시네마테크전용관’ 만큼 확실한 보증수표가 또 있을라고. 시네마테크전용관이야말로 600년 고도(古都)의 문화유산 남대문과 근대화의 상징인 남산타워에 이은,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확신한다. 서울시가 앞장서서 그 일을 맡는다면, 박수치면서 애써 도울 사람은 천지에 널려있다. 왕조는 무너져도 왕조의 기록은 역사로 남듯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성취가 훗날까지 남겨질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만한 것도 없을 터. 정치적 논리를 떠나 문화예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인식을 가진 기관장의 용기와 실천이 보태진다면, 서울시민도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영화의 집’이 필요하다. 그러니 서울시가 나서라!



(추신)
하나. 시장을 시민의 손으로 뽑게 된 이래로 ‘시네마테크’를 공약으로 내세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이들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처한 건 아닌지 되물어 봐야 한다. 단합된 힘을 보여주면서 압박도 하고, 새로운 시장선거의 공약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공약이 얼마나 멋지고 매력적이면서 서울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것인지를 각인시키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둘.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일이지만) 정말로 시네마테크를 사랑한다면, ‘관객회원’들은 4,000원의 할인금액이 아닌 오히려 일반 관객보다 단돈 1,000원이라도 더 내고 영화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건 수혜자부담 원칙을 떠나 애정표현의 실질적 방법의 문제이다.ㅡ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면, 추가요금의 부담만큼 다른 혜택으로 보상해주는 방법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ㅡ나는 시네마테크 측이 과감하게 이 문제를 공론화 하고 다양한 경로로 의견수렴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당신이 진정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이고 서울아트시네마의 열혈관객이라면, 회원에 가입하고 더 많이 자주 찾는 것만큼이나 기꺼이 (특히나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지갑을 열어야 한다. 가끔씩 어디선가, 이명처럼 들려오거나 매체의 지면으로 접하던 “이 좋은 영화들을 너무 싼 값에 봐서 미안하다”는 말들은 괜한 소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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