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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영화]가 계몽하는 것

필진 리뷰 2009. 10. 17. 21:53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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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수확이라면, 타릭 살레 감독의 <메트로피아>와 박동훈 감독의 <계몽영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매표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달뜬 표정과 취소 표라도 얻어 볼 요량으로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이들의 절망마저 훈장처럼 빛을 발하던 <카페느와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선택한 영화가 <계몽영화>라면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 이는 올 부산에 걸린 355편의 영화를 다 볼 수 없을 바에야 볼 수 있을 만한 영화를 찍어서 집중 공략하는 게 심신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고, 당연히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게 선택한 <계몽영화>, 아이의 조기유학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살다 아버지의 임종에 즈음하여 귀국한 딸과 죽음 직전의 아버지가 서로의 기억 속 시간을 불러내고 과거를 소환하며 펼쳐지는 <계몽영화>는 절대로 실망스러우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연” 영화는 만족스러웠다.

2005년 단편 <전쟁영화>를 만든 바 있는 박동훈 감독은 <계몽영화>의 가족 삼대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담아낸다. 그것은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 위에 쌓아올린 중산층이라는 신기루인 동시에 우리가 해결해야할 숙제이다. 영화는 친일을 한 할아버지 정길만과 군사독재시절 낮은 포복으로 살면서 또 다른 독재자의 형상으로 군림했던 아버지 정학송과 이로 인해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딸 정태선, 이렇게 삼대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이들 가족사를 관류하는 한국사회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와 질곡의 과거사를 조심스레 진단하고 내보인다. 인물들의 플래시백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크게 세 개로 나뉘는데, 친일을 통해 입지를 다지고 부를 축재하는 할아버지의 시대, “마당에서 북한산 족두리 봉이 보이는 서교동 양옥집에” 살며 군사독재정권 하에서도 재산을 보존하고 가부장을 드높이는 아버지의 시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딸의 오늘과 가족의 초상이 그것이다.

영화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미봉에 그쳤을 때, 어두운 과거가 청산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어디선가 누군가에게로 전이되어 또 다른 상처를 입히거나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감독은 친일행위와 군사독재와 조기유학열풍으로 상징되는 인물들의 과거사를 코믹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애처로운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는데, 이때 정학송의 집안은 한국사회의 알레고리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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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계몽’이라는 단어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 혹은 군사독재정권이 내세운 깃발의 다른 이름으로 인식되어왔다. 이 영화를 보기 전 궁금했던 점 역시 단편에서 ‘포복절도할 만한 유머감각을 보여준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계몽할 것인가’였다. 사실 다방과 고궁으로 이어지는 정학송과 박유정의 데이트 장면에서 멈춘 <전쟁영화>는 코믹한 전반부와 사이렌 소리에 공포에 떠는 둘의 모습으로 전쟁이 남긴 내상을 보여준 후반부의 균형이 조화로웠음에도, 할 말을 다 못하고 헤어지는 연인의 모습처럼 아쉬웠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계몽영화>에는 주인공 격인 정학송과 정태선 외에도 정학송의 사위라는 히든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태선의 남편 성호를 처가의 그늘 아래서 살아가는 무기력하고 저항할 수 없는 소시민의 모습으로 그려내면서, 진실로 우리사회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되묻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의 뿌리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를, 그것이 낳은 비극적 가족사를 치유하기 위해서 아픈 과거 속으로 돌아가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하되, 그것을 타자화·대상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 <계몽영화>가 우리에게 ‘계몽’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품고 살아간다는 점, 어느 쪽을 드러내느냐에 따라서 선과 악이 갈리고 교양과 천박이 나뉘며 독재와 민주의 갈림길에 선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영화 속 인물을 통해 열린 결말까지 만들어냈다는 점, <계몽영화>를 칭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차마 제 민족을 수탈하지 못할 여린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목숨을 살려준 친구를 밀고한 할아버지를, 카라얀과 클래식을 탐닉하며 교양을 한껏 내세우지만 폭압적 가부장에 다름 아니었던 아버지의 삶을, 그런 아버지에게 “사과를 받아내고 싶었”을 만큼의 상처를 입었음에도 같은 상처를 강아지와 남편에게 안겼던 딸을, 그리고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단지 남의 집안일로 가볍게 넘길 수 있을까?

난 체 잰 체 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다하는 잘 만든 영화란 이런 것이다. “라면 위에 티파니 반지가 있는” 유머러스한 대사와 “그 어른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없었을 것”이라던 자조어린 시선과, 이제는 “당신 집안사람들, 참 웃겨”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엄마는 아빠와 조금 더 있다가 갈께”라며 화해와 자기치유의 첫 손길을 내미는 따스함이 어우러진 <계몽영화>에 나는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계몽영화>가 ‘개봉영화’가 되어 더 많은 사람과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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