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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7


[별빛속으로]를 굳이 장르로 분류하자면 ‘판타지 멜로’ 정도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판타지 장르로 규정되는 어느 영화와도 비슷하지 않다. 이 영화를 두고 이상용 평론가는 “감독의 자전적 체험에서 발로된 과거의 사연이 현재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하면서 [별빛속으로]는 황규덕 감독이 제공하는 ‘환상’이라고 말한다. 또한 김영진 평론가는 “무공해 상상력의 징표”라고 표현하면서 이 영화가 가지는 현재형의 상상력을 예찬하고 있다. 또한 필자가 아는 지인은 이 영화를 올해 발견할만한 중요한 한국영화로 꼽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직후, 아리송했다. 뭐가 좋다는 걸까. 아주 좋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엉성하다. 두 번의 반전, 내러티브가 주는 쾌감은 있다. 그렇지만 주인공 수영이 신고 있는 신발은 뭐야, 그런 캔버스화가 그때도 있었단 말이야? 김씨가 타던 오토바이는 어떻고, 삐삐의 의상하며, 어쨌거나 러브 스토리 아니야? 죽은 이들이 맺어준 사랑, 죽음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의 시험? “귀신에 홀리는 듯한 사랑”을 내세우는 이 영화에서 그 시대의 무엇을 볼 수 있다는 것일까. 죽음에서 학생들을 구해낸 교수의 능력은 또 뭐냐, 생각할수록 머릿속을 파고드는 분명치 않은 이 영화 때문에 몇일째 기분좋은 두통이 계속 되고 있다.

경계의 남자

푸른빛 날갯짓을 하는 두 마리의 나비에서 시작되는 이 영화가 주는 쾌락은 분명 판타지에 있다. 더불어 내용 전개상 두 번의 반전(?)에 따라 밝혀지는 대담한 현실과 환상의 교차, 또는 그 경계에 있는 주인공의 시점은 강한 흡입력을 갖는다. “교수님! 작가의 상상력은 현실에 대한 일루전에서 시작된다는 니체의 말이 거꾸로 적용될 수 있나요?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을 만든다’라고요.”라는 질문을 하는 주인공 수영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 현실과 환상 사이를 헤매는 인물들은 얼핏 떠올려봐도 수도 없이 많다.([수면의 과학]의 엉뚱한 몽상가 스테판, 환상을 보는 그 많은 공포영화의 캐릭터들, 그리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없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별빛속으로]의 수영이 위치한 경계가 특별한 이유는 주인공의 현실과 환상이 삶과 죽음과 겹쳐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와 같은 꿈을 꾸지만 그에게 그것은 한낱 꿈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객들에게도 그 꿈은 단지 꿈이 아니다. 영화 안에서 그 꿈은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에게 말한다. “사는 게 꼭 꿈같지? 꿈이 아니라 거짓말 같아. 거짓말.” 그에게 진실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떨어지지 않는 공

79년 9월, 한 여대생이 학교에서 투신자살을 한다. 모나미 볼펜을 색깔별로 묶어서 열심히 필기를 하고, 여자와 경험도 없는, 교련복을 잘 입고 다니는 독문과 학생 수영을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데려가던 그 여자는 노래를 부르면서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난 후, ‘죽었다고 규정된’ 그 여자가 자꾸 수영 앞에 나타난다. 여자의 지시에 따라 얻게 된 과외 아르바이트를 위해 만난 남자. 밤 열시에 테니스를 치던 그 남자는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검은 오토바이 군단의 선두를 이끌면서 사라진다.

검은 오토바이 군단은 흡사 장례행렬이나 사신의 행렬같다. 그 운동장에서 수영이 하늘로 날려 보낸 공, 떨어지지 않는다. 시간에 구멍이 뚫렸다. 이제 영화의 시공간은 삶과 죽음, 그리고 현재와 과거사이로 무한히 확장한다. 현실에서 시작한 영화는 과거로 갔다가 죽음 안의 꿈속으로 갔다가 과거의 현실로 돌아왔다가 다시 현실안의 죽음의 환상으로 이어진다. 수영과 수지가 죽어가던 밤에 수지는 당구공을 하늘로 던진다. 다시 시작되는 폭격. 공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꿈은 끝이 난다. 혹은 그들이 죽는다.

말할 수 없는 진실

수영이 과외하는 집을 처음 찾아가던 날, 하늘에서는 불꽃놀이가 벌어졌다고 라디오 방송의 아나운서가 말한다. 하늘을 감시하는 불빛으로 별을 볼 수 없던 시대, 말 한마디 잘못하면 잡혀가던 시대, 죽음의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던 시대. 진실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감독은 그 분위기를 현재형으로 확장시킨다. 시집을 낸 독문과 교수가 된 주인공이 아내에게 말할 수 없는 진실은 그 시대를 지나서도 유효한 죽음이라는 터부, 혹은 직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사고로 매몰된 아이들은 왜 수영을 찾아왔는가, 수영은 왜 그들에게 그들의 죽음을 알려주기 전에 사랑 이야기를 시작하는가. 수영은 죽음을 경험했고 그 후로 시를 쓰게 됐다. 그리고 그 때부터 그는 쭉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었다는 이야기. 그것이 그의 말할 수 없는 진실이다.

같은 이름, 다른 사람

삐삐는 왜 자신의 이름은 버리고서 안타깝게 죽어버린 연인과 같은 이름을 가진 수영을 선택했을까. 현실에서 수지를 만났을 때 수영은 무슨 얘기를 했을까. 죽은 자들이 맺어준 그들은 왜 소통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꿈에서 수영이 사랑한 수지는 현실의 수지와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수영은 왜 오빠가 죽은 방식으로 죽어있는 수지를 본 걸까. 이 영화를 추천한 친구가 말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할 때 죽은 사람들만 움직이는 게 인상적이었어. 죽은 사람들만 살아 움직이고, 살아있는 사람이 꼭 죽은 것 같잖아.” 사는 게 죽은 것과 같았던 시대. 한없이 반복되는 질문. 분명하지 않은 영화.

이 영화를 본 몇 안되는 사람들의 평은 대체로 ‘느낌이 좋다’, 또는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첫사랑, 어떤 기억, 어떤 시간, 어떤 추억, 어떤 사람, 어떤 죽음, 어떤 사랑에 대한 어떤 느낌. 호러로 홍보해놓고 속였다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감흥을 주는 영화임은 분명한 것 같다. 일단, 여기까지. 그럼 이제 나의 일루전의 현시성에 대해 말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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