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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뜨거운 것이 좋아>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는 바로 권칠인 감독의 전작 <싱글즈>다. 스물아홉 살 동갑내기 친구 나난(장진영)과 동미(엄정화)의 사랑과 일, 우정을 감칠맛 나는 나레이션과 생활밀착형 에피소드로 채워 넣었던 <싱글즈>는 20대 여성 관객들의 지지와 공감을 얻어낸 바 있다. 그로부터 시간은 4년이 흘렀고, 29살의 나난과 동미는 데뷔도 못한 스물일곱 살 시나리오 작가 아미(김민희), 잘나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40대 초반 싱글맘 영미(이미숙), 그리고 집안의 실질적인 살림꾼(?)이자 이제 막 사랑에 눈뜬 ‘고딩’ 강애(안소희)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 심리적 외연을 넓혔다.



<싱글즈>의 장점을 이어받아 <뜨거운 것이 좋아>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속내 혹은 수다를 까칠하거나 비루하지 않게 그리면서도 최대한 대중성을 고려한 바운더리 안에서 현실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하여 “여자가 들켜야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바람과 주름살, 그리고 속마음이다. 그런데 그걸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을 들켰을 때” 보다 당혹스러운 순간을 없을 것이라는 아미의 나레이션은 <뜨거운 것이 좋아>의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멋들어지게 함축한다.

영미는 여자는 결혼보다, 연애보다 일로 잘나가야 한다는 신조를 지녔지만 ‘쿨’한 연하남 경수(윤희석)과의 ‘원나잇 스탠드’를 마다할 생각이 없고, 아미는 잠깐 바람을 핀 가난한 뮤지션 애인 원석(김흥수)를 정리하고 소개팅에서 만난 안정된 회계사 승원(김성수)와의 연애를 시작하며, 강애는 3년 된 ‘남친’ 호재(김범)보다 단짝친구 미란(조은지)와의 연습 키스가 더 끌리는 중이다. 티켓 구매의 주도권을 쥔 여성 관객들을 유혹하자는 포석임에 틀림없고, 또 그 기대에 부응하기에 충분할 만큼 말랑말랑하면서 공감을 자아내는 에피소드를 고루 배치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해피엔딩이 불가능한 걸까?”라고 묻는 이 언니들은 인생이 다 그런 듯이 선택의 순간을 지혜롭게 넘기게 해 줄 “심판관”들이 필요하다. 조기에 폐경기를 맞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냉정함을 잠시 잃는 영미, 두 남자 사이에서 자신을 찾고자 노력하는 아미, 끌리는 감정이 당혹스러운 강애는 정상(?)적인 현대 가족답게 연대보다 각개돌파를 시도한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이 게임이 끝나면 행복할까’ 라고 자문하지만 결국 ‘다시 시작이다’를 외칠 정도의 여유는 부여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싱글맘’을 선택한 동미의 리믹스 버전이자 이른 선배 겪이 될 영미나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 오느냐고 하소연하는 20대 아미나 10대지만 자신만의 고민으로 충만한 강애나 고민의 무게는 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파격적이지도 않다. 다만 자잘한 선택으로 이뤄지는 지금, 현재의 삶의 단면들을 펼쳐내 보이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것이 좋아>는 무겁지 않지만 일정정도 동시대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느냐고 귀엽게 봐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20, 30년대와 장르의 틀 속으로 질주하고 있는 현재 한국 영화의 지형도에서 봤을 때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이 무게를 가지기에 영미의 에피소드는 과한 판타지가 개입되어 있고, 강애의 경우는 아무리 여고생들 사이에 ‘레즈’ 코드가 다반사라 할지라도 단막극 에피소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미숙과 같은 매력적인 외모와 능력이라면 가능하지 않느냐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디테일한 감정의 묘사가 생략되어 있기에 중년 여성의 욕망을 적절히 버무리지 않았느냐는 의혹의 시선이 제기된다 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그녀의 고민을 진정으로 나누기에 묘사의 톤이 가볍단 얘기다. 성장통의 일부라 넘어갈 수 있을 강애의 에피소드는 20대 이상 관객들이 미소 지으며 바라볼 수 있는 딱 그 정도 수위에 멈춰 선다.

역시 방점이 찍히는 것은 나레이션의 주인인 아미 쪽이다. 17번을 퇴짜 맞은 시나리오 작가라는 설정은 게을러 보이지만 일과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미의 감정변화는 무릎을 딱 치며 ‘맞아, 맞아’를 연발할 만큼 사실적이라 나머지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다만 남자친구의 미국행 제의를 거절하는 후반부는 <싱글즈>의 나난과 판박일 뿐 아니라 ‘일에 성공한 여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일반적 주장의 동어반복이라 신선함이 덜 하다. 주인공이 속물이 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심리는 관객을 의식한 배려일까, 제작진의 생각일까.
싱글맘을 택한 동미와 아빠가 되어주겠다는 나난의 다소 파격적인 선택으로 리얼리티 논란을 일으켰던 <싱글즈>에서 장진영과 엄정화의 앙상블과 솔직한 연기는 빛을 발한 바 있다.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는 그 몫을 김민희가 담당한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굿바이 솔로>에서 재발견된 김민희는 하이톤의 갈라지는 발성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섬세하고, 때로는 털털한 20대 여성의 심리를 가감 없이 표현한다. 특히 발군의 술주정과 ‘흡연’ 금단현상 연기는 과연 그가 새침한 부잣집 공주 이미지로 어필했던 김민희가 맞나 싶을 정도다. 더불어 이미숙은 여전히 묵직하고, ‘만두’ 소희양은 뚱한 표정만으로도 귀엽고 또래 여고생으로 보일 정도다.

보너스 하나. 흥미롭게도 <뜨거운 것이 좋아>는 비슷한 시기 개봉하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대척점에 서 있지만 그리 얄밉지는 않은 소품 드라마다. 팍팍한 마이너리티의 삶과 ‘아줌마성’을 응원하지는 않더라도 고민에 빠진 ‘그녀’들에게 솔직함을 잃지 말라며 등을 토닥이는 것을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소중하다고 할까? 편안한 대중영화 속에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는 권칠인 감독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제스추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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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rd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념좀........ 결말을 말해버리면 어떻게합니까..

    2008.01.0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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