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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세상 어느 나라든 모두 각자의 신화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인도(India)라는 대륙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작용한다. 인도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온전한 ‘신화’의 나라라 불린다. 인도의 신화는 인도인들의 삶 속에 가장 많이 뿌리내려져 있기에 그들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특색 때문에 인도라는 땅 바깥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볼리우드(Bollywood:인도의 봄베이 'Bombay’와 미국 할리우드 ‘Hollywood'의 복합-인도 영화 시장이 할리우드만큼 넓다는 것을 의미)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의 모든 예술은 궁극적으로 신화를 통해 살아 숨 쉬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도의 영화들은 대부분의 신화적 내용을 빌려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장르의 복합인 인도 영화들만큼이나 그들이 섬기는 신, 그리고 섬겼던 과거의 신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인도는 다채로운 역사의 시간들이 존재했고, 인도의 모태종교인 힌두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이다. 때문에 인도와 인도 영화를 보다 ‘맛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고대부터 인도인들이 믿어온 신화의 주인공들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과도 같다. 필자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생소한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 인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화 속 몇 가지 신들을 소개한다.


1. 그 모든 것의 시작,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

거의 대부분의 신화가 그렇듯, 인도의 신화도 우주의 원리를 통해 생성되었다. 힌두교도 삼위일체설을 믿고 있고 이 삼위일체는 각각 창조, 유지, 파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세 가지 기능은 사실상 통합된 하나의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인도 신화에서는 각각의 기능에 서로 다른 신의 모습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브라흐마는 가장 처음에 있는 ‘창조’를 담당하는 신이다.

브라흐마의 탄생은 스스로 일어난 것이었다. 누구도 그를 창조할 권리는 없었고 또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는 하늘과 땅을 만들며 태어났다. 브라흐마는 무(無)의 상태에 있던 우주를 해체하면서 본격적으로 생물들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브라흐마에 붙은 ‘창조’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그는 마땅히 현대에도 추앙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도는 순환의 논리를 중시하기에 일단 만들어지고 난 것에 대해서는 뒤를 돌아볼 만큼의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경전에 자주 등장하던 브라흐마는 차츰 그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30배가 넘는 거대한 면적인 인도 대륙은 수많은 신들의 사원을 가지고 있지만, 브라흐마의 사원은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푸시카르(Pushkar)라는 도시에서만 찾을 수 있다. 물론 이 곳은 인도의 가장 오래된 신을 섬기는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육식을 할 수 없는 성스러운 도시이다. 그러나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이미 지나간 것보다는 그것을 유지하며 해체시키는 행위가 중요하다’라고 믿고 있다.


2. 유지의 신 비쉬누(Vishnu)

브라흐마의 일이 끝나면 그 다음인 ‘유지’와 ‘파괴’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두 가지의 시간은 각각 브라흐마를 상대적으로 약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 중 ‘유지’에 해당하는 신이 바로 비쉬누이다. 그는 브라흐마와 반대로 고대 경전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다가 이후에 인정을 받게 되는 신이다. 비쉬누는 질서를 잡고 정의를 구축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때문에 다른 신들보다 선하고 부드러운 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정적인 존재의 비쉬누에서 창조의 생각을 가진 브라흐마가 탄생했다는 설도 있지만(바라하뿌라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창조에서 유지의 순서를 믿고 있다. 인도의 많은 신들은 악마와 악한 것에 축복을 내리고 도움을 받는 행위를 했지만, 유독 비쉬누만은 그런 행동을 지양했기에 많은 인도인들은 그가 ‘참된 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3. 인도에서 가장 대중적인 파괴의 신 쉬바(Shiva)

창조와 유지의 시간이 끝나면 남은 것은 ‘파괴’와 ‘재생’이다. 이것을 담당하는 신은 쉬바로, 그는 브라흐마나 비쉬누처럼 한 가지의 성격으로 존재하지 않는 신이다. 쉬바는 자비롭고 파괴적이며, 에로틱하지만 금욕을 중시하기도 하는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인도를 여행하면 거의 모든 곳에서 쉬바의 그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인도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신이다. 그 이유는 순환의 고리에 맞게 모든 것을 ‘재창조’할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쉬바가 맡음으로 새로운 형태의 삶이 만들어진다는 힌두 사상에 있다.

또한 인도인들에게 있어서 쉬바는 구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쉬바는 다른 신들과 달리 온몸이 새파란 색을 띄고 있는데 이것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세상이 창조되어지고 그에 준해 다양한 것들이 히말라야에서부터 악마와 선한 신들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대부분 인간이 살아가거나 자연의 존재를 위해 필요했던 깨끗한 물, 혹은 풍부한 나무들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세계를 녹여버릴 엄청난 양의 독이 발생했다. 생각하지 않은 일에 많은 신들은 당황했고, 독의 처리방법을 찾았으나 워낙 치명적이었기에 손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세상의 멸망을 보아야하므로 신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명상 중인 쉬바를 찾아갔다. 쉬바는 흐르고 있는 독을 버릴 곳을 찾다가 결국 한꺼번에 그것을 마셔버렸고, 쉬바의 몸에서 머무르던 독은 그의 몸을 파랗게 만들었다. 독의 성분 때문에 쉬바는 파랗게 변해버렸지만 그로 인해 세계는 다시 정상의 궤도에 들어왔고 비쉬누도 맡은 일을 원래대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파괴의 신은 ‘영웅’으로 기억되었고 많은 인도인들은 현재 그를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4. 예술의 여신 사라스와띠(Saraswati)와 풍요의 여신 락슈미(Lakshmi)

사라스와띠와 락슈미는 각각 브라흐마와 비쉬누의 배우자로 두 여신은 인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여신들이다. 사라스와띠와 락슈미는 아름다운 여신으로 묘사되어있고 가장 큰 굴레를 담당하는 배우자를 두었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많은 부분을 함께 공존하여 존재하고 있다. 사라스와띠는 브라흐마에서부터 태어난, 다시 말하면 브라흐마의 자식인 셈인데 브라흐마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배우자로 삼긴 했지만 사라스와띠는 처녀 신으로 남아있다(브라흐마의 문란한 행동에 대해서 쉬바가 벌을 내렸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브라흐마가 확실히 그녀를 배우자로 삼았는가에 대해서는 인도 내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사라스와띠로 인해 산스크리트(Sanskrit)가 창조되어졌고 그녀는 지혜의 여신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굉장한 숭배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인도의 모든 학자들은 연구나 혹은 발표에 앞서 그녀에 대한 숭배 절차부터 밟는다고 한다.

락슈미는 사라스와띠와 같은 위치에 있지만 인도에서 가장 인기 높은 여신이다. 그녀는 지혜를 상징하는 사라스와띠와는 반대로 현실적인 부와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락슈미는 힌두의 ‘결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상에 가장 부합되는 여신으로, 그녀의 배우자인 비쉬누의 내조에 힘을 쏟기로 유명하다. 락슈미는 코끼리를 데리고 다니는데 그녀는 늘 풍족하게 담겨진 금화와 활짝 핀 연꽃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이런 소재들을 통해 고대부터 지금까지 풍요의 여신으로 자리 잡은 락슈미는 비쉬누와 더불어 가장 바람직한 가정의 표본이 되기도 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인도인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5. 두 동물 신- 치유의 신 가네샤(Ganeaha), 봉사를 위해 존재하는 하누만(Hanuman)

풍요의 여신 락슈미는 코끼리와 항상 함께 했다. 쉬바의 첫 아들인 가네샤는 머리는 코끼리에 몸통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코끼리 신이다. 힌두에서 코끼리는 헌신적이고 정의를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남으로 묘사되어 락슈미의 코끼리와 가네샤는 모두 선한 이미지를 가진 동물(혹은 동물 신)이다. 가네샤는 풍요로운 금전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본래 그는 ‘치유’를 위해서 존재한다. 가네샤는 여행이나 새로운 사업, 혹은 새 집을 지을 때 숭배되어지는 신으로, 인도 상점들 대부분에서 가네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실제로 필자가 인도를 여행 할 때에도 여행자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신은 가네샤였다).

오동통한 몸에 코끼리 머리를 한 가네샤가 처음부터 동물의 형상을 하고 세상에 태어났던 것은 아니다. 이것에 관해서도 다른 신들의 탄생 신화처럼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 중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는 원래 가네샤의 머리를 떼어내고 코끼리를 이식했다는 것이다. 쉬바가 그의 배우자인 바르바띠 사이에서 낳게 된 가네샤는 아버지인 쉬바가 모르게 어머니 바르바띠와 함께 지내왔다. 어느 날 쉬바가 아내를 보러 사원으로 향했을 때, 사원을 지키던 가네샤는 자신의 아버지를 모르고 쉬바를 제지했다. 만물의 신 쉬바는 화가 나서 가네샤를 그 자리에서 베어버렸고, 소란을 듣고 달려온 바르바띠는 경악하며 쉬바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에 당황한 쉬바는 자신의 잘못을 수습하기 위해 고민을 하던 중 거대한 코끼리를 발견했고, 가네샤를 살리기 위해 쉬바는 코끼리의 머리를 그에게 붙여버렸다. 이런 유머러스한 탄생 때문인지 가네샤는 인도 신들 중 가장 거대하면서도 조그마한 쥐를 타고 다니는 등 익살스런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가네샤의 이런 행동들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힌두의 선한 사상과 인도인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어,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동물 신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누만은 가네샤보다는 하위 개념으로 주로 다른 신을 섬기는 봉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누만은 원숭이의 머리를 하고 있는 원숭이 신인데, 그에게 소원을 빌면 다른 어떤 신보다도 빨리 성취를 할 수 있다고 하여 하위 신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얻고 있는 신이다. 가네샤와 하누만, 두 동물신은 인도인들에게는 없어서 안 될 자연친화적 동물 신으로 존재하고 있다.


6. 신들의 화신(化神) 람(Ram)과 크리쉬나(Krishna)

힌두 사상에서 화신(化神)의 개념은 매우 높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원론을 믿는 힌두에서 화신이라는 존재는 또 다른 신의 모습으로, 신으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모습을 바꾸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화신 사상의 경우 위에서 말했던 모든 신들이 포함되는 것이지만 유지의 신인 비쉬누에게 편중되어있다. 우여곡절 많은 세상사를 유지하고 바로 잡기 위해서 비쉬누는 다양한 모습을 취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비쉬누의 화신 람과 크리쉬나는 각각 완벽한 남성적 인간과 여성적 인간을 뜻한다. 람은 강력하고 정열적이며 위엄을 잃지 않는 한 국가의 ‘왕’의 자질을 갖춘 남성이다(그에게서 일부다처제가 생겼다는 추측도 있다). 람은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다소 옳지 않은 면모도 보여주었던 화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도의 반 이상을 할당하고 있는 북인도 문화권에서는 굉장한 신임을 얻고 있다. 이에 반해 크리쉬나는 순종적인 사랑과 신성한 믿음을 가진 아름다움으로 묘사된다. 람이 파괴적인 성향의 남성이라면 크리쉬나는 온화하고 그것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성향의 여성성을 가진 화신으로 존재한다. 현재 인도의 비쉬누를 기리는 많은 의식에서 사실상 비쉬누보다 더 자주 말해지는 신이 바로 크리쉬나이다. 고대에는 본래 힌두의 작은 종파로 시작한 크리쉬나이지만, 그는 가장 인격화된 화신이라고 여겨져,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7.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파괴의 여신, 깔리(Kali)

깔리는 본래 쉬바의 배우자 중 하나이지만, 인도 신화에서 거의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를 굳히는 여신이다. 깔리는 두르가(Durga)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기도 하는데, 그녀의 ‘악함’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깔리는 전형적인 힌두의 팜므-파탈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모든 신, 특히 남신들을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신들이 온화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는 반면 깔리는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 주로 악마를 물리치는 강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깔리이지만 그녀의 파괴성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그녀를 찾아가곤 했다. 다른 여신들처럼 깔리는 가사를 돌보지도 않고 특출한 아름다움, 그리고 온화함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인도에서 깔리는, 전통 힌두 사상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자국 내의 여성 단체들의 지속적인 추종을 받아왔다.


8. 정화와 맺음의 상징, 강가(Ganga)

인도의 동부 바라나시(Varanasi)는 힌두교 7개 성지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이다. 인도 전역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갠지즈강이 흐르는 바라나시에서 여생을 끝내고 싶다는 이유로 이곳까지 찾아온다. 24시간 내내 갠지즈강에는 장작이 타오르고 많은 사람들이 재로 변해 강물에 던져진다. 이 성스러운 강을 총괄하는 신은 강가이다. 그녀는 그리 높지 않은 신으로 바라나시 곳곳에 조그마한 사당을 가지고 있는 정도이지만, 모든 힌두교인들의 삶의 맺음으로 존재한다. 강가는 바라나시를 흐르는 갠지즈강의 다른 이름이다. 때문에 그녀를 만나 그녀로 인해 윤회의 고리를 끊기 위해 늘 바라나시의 강가는 붐빈다.


다양한 신화, 그리고 신화에서 파생된 영화

인도에 처음 영화가 소개된 것은 1896년 봄베이(지금의 뭄바이)에서 상영된 뤼미에르의 영화였다. 수년 후 다다사헵 팔케(Dadasaheb Phalke)가 처음으로 <라자 하리샨드라>를 소개한 것이 인도인의 손으로 처음 만든 작품이었고, 이후 인도 영화는 상승세를 타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에서는 영화상영이나 제작이 성행하지 않았고 서구 사회에 ‘인도’라는 존재는 미지의 세계로 불러졌으므로 수많은 열강들이 인도를 찾았다.

하지만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당시의 인도는 문화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다. 인도는 영국과의 잦은 접촉으로 인해 영화의 기술적인 면들을 배울 수 있게 되었지만 한계는 존재했다. 영국의 식민 정치로 인해 인도는 영화나 기타 예술에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었다. 때문에 사람에서 신이 되는 줄거리를 가진 팔케의 <라자 하리샨드라>를 시작으로 인도 영화는 서구 열강의 눈을 피해 환상적이고 현실도피적인 ‘신화’의 세계에서 이야기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후에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 인도에서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50년대 인도가 낳은 세계적 거장인 사트야짓 레이(Satyajit Ray)의 등장은 인도 내에서 시네마의 운동을 일으켰다. 사트야짓 레이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도 영화의 ‘신화적 이야기’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인도의 가난과 냉정함, 그리고 노동 착취 등을 소재로 했다. 레이는 세계 영화사에 걸작으로 남는 <아푸 3부작>을 통해 인도 영화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었다. 레이가 추구하고 이룩해놓은 뉴 시네마는 인도 영화의 전혀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진품’들이었다. 그러나 레이의 영화는 오랜 시간 묵혀있던 인도의 신화적 사상을 토대로 한 영화들만큼 인도 서민들에게 ‘일상적 재미’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1970년대를 지나 80년대 인도 영화계의 침체기를 보내고 90년대 초반부터 인도에서는 본래의 상업 영화들을 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해서 ‘마살라(Masala-힌두어로 양념)’영화의 탄생이 이루어졌다.

로맨스, 액션, 악인 그리고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이 마살라 영화는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영화 안에 한꺼번에 녹아있다. 주로 마살라 영화에는 내러티브와는 관계없이 음악과 춤이 복잡스레 엮여진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 이 장면들은 대부분 앞뒤의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세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반 이상이 정신없는 ‘뮤지컬’ 형식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독특한 인도의 영화에서 그들이 살아왔던 땅에 대한 신화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소개한 사라스와띠와 같은 음악을 사랑하는 예술의 신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인도 신화 속 신들은 노래와 춤을 쉬지 않는다. 인도의 신들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며 자신을 알리고 표현한다. 힌두경전에 기록된 신들의 형형색색의 끊임없는 표현의 방식으로 볼 때, 지금까지 흘러온 인도의 영화들은 신들에 대한 일종의 ‘경배’와 같은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도 영화, 그러니까 마살라 영화의 전체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인도 신화는 기본적으로 ‘유쾌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힌두 사상이 명상과 참된 인간의 본질을 끌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주된 것이라면 그 이면에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단순한 진리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신화 속 인도의 이야기는 늘 권선징악의 형태로 존재한다. 누군가 죽거나 크게 아파도 결국에는 모든 것이 ‘정의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늘 선한 것이 승리하고 악한 것은 고개를 떨군다. 그러나 힌두에서는 ‘불의’도 처절한 응징을 받거나 그것에 상응하는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악한 것도 각자의 사정과 삶이 있으며 그것을 존중해주는 것도 일종의 ‘참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쉬누와 같은 극소수의 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힌두 신들은 악마와도 곧잘 어울리며 가끔씩 서로를 감싸주곤 한다. 이런 ‘모두가 즐겁다’는 정신은 인도 영화들의 줄거리를 가늠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고 마살라 영화에서는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소재이다.

쉬바신의 108가지 동작으로부터 시작해 전통 무용이 생겨났고 그에 대응하는 노래가 생겨났다. 그리고 노래는 어머니의 강인 ‘갠지즈’를 타고 흘러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박혔다. 필자는 인도에서 머무는 동안 다양한 영화들을 수집하면서 한 인도 친구에게 정치적으로 어둡거나 심오한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는 슬쩍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우리가 살면서 가장 기쁨을 누리는 수단이다. 굳이 그곳에서 우리의 일상과 똑같은 어두운 것을 발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도는 잘 짜여진 영화의 세트장이다. 그리고 인도 영화는 ‘진정한’ 판타지이다. 최근의 인도 영화 시장은 사트야짓 레이를 잇는 신예 감독들의 깊은 눈망울로 인해 조금씩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라는 대륙의 마살라 영화는, 늘 그랬던 것처럼 변해가는 인도와는 별개로 여전히 우리에게 영화의 판타지를 선물할 것이다. 인더스 문명이 있기 전부터 내려온 그들의 신화와 영화의 결합은 ‘살아있는 역사’나 다름이 없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피오나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셔요~~^^

    2008.04.2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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