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빈장원


엄마는 돼지저금통이 동전으로 가득차면, 그때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진과 빈에게서 떠난다. 자매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방법으로 돼지저금통을 채우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엄마를 태운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철든 언니 진은 엄마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내, 엄마를 기다리는 것을 체념한다. 나무없는 산에 버려진 자매는 그렇게 독립적으로 커간다. 나무조차 없는 산의 황폐한 결핍처럼 배고픔에 떨며 누구도 돌보지 않는 어린 소녀들은 점점 주변에서 멀어진다. 그들은 멀쩡하게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고 고모도 있지만, 온전히 자라지 못한 어른들은 그들을 쉽게 외면한다. 어린 나무는 물과 거름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양분을 내려 잎과 열매를 소생시켜야 한다. <나무없는 산>은 그렇게 가족과 사회에서 버려진 어린 나무에 관한 싸늘한 이야기이다. 더불어 결핍을 스스로 채워야 하는 여린 자매들에 대한 풍경이다.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맡겨지지만 사실 언니 진은 이미 대부분의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한다. 어머니나 고모, 그 누구에게서도 보통의 부모의 자리를 찾을 수 없다. 결핍은 그들에게 어쩔 수 없이 쌓여만 가는 고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은 그 결핍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자매는 사람에게서뿐 아니라 공간에서도 멀어져 간다. 차가 많고 아파트가 높았던 도시에서 골목과 시장통으로 반복되었던 소도시를 거쳐 자매는 소음도 없고 친구마저 없는 시골로 오게 된다. 돼지저금통이 동전으로 채워져 갈수록 자매는 그들이 익숙했던 공간들을 비워야만 한다. 그렇게 결핍은 계속해서 <나무없는 산>에서 반복된다. 흙과 자갈로 쌓여 올라간 산 모양의 구릉에서 자매는 앙상한 나무가지를 심는다. 이것은 슬픈 상징이다. 이렇게 영화는 그들이 돼지저금통을 채우는 것만큼 애처롭고 안타까운 장면들이 이어진다.

더이상 자매를 키우기가 힘들다고 판단한 고모는 엄마한테 편지가 왔다면서 자매에게 편지를 직접 읽어준다. 하지만 진은 잔인하게도 그것이 고모가 자신들을 키우기 싫어서 일부러 적은 것임을 단번에 눈치챈다. 어리지만 이미 진은 세상 슬픔을 뼛속 깊이 안고 있다. 그리고선 엉엉 운다. 그러나 진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은 스스로 울음을 그쳐야 하며 매일같이 기다리던 엄마를 잊기 시작한 것처럼 그녀의 기억속에서 고모와의 짧은 기억도 잊어야 한다. 그것이 가혹하다할지라도. 어른들은 그렇게 아무 도움없이 그들에게서 하나 둘씩 멀어지며 사라지는 것이다.

어른들에게서 위로받지 못한 자매에게 영화는 기적과도 같은 마지막 순간을 선물한다. 기적이라고 해서 자매에게 표면적으로 무언가가 바뀌었다거나 행운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들을 받아들인 할머니, 할아버지 또한 그들에게 자상하게 손을 뻗기도 하지만 실은 그들을 위로하는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들에게 찾아온 기적은 바로 그들을 둘러싼 '자연'이다. '자연'은 자매의 모습처럼 소리없이 다가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자매곁에서 따스함을 베푼다. 시골에 오기전까지 주변 소음들을 생생히 포착해 냈던 영화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고요해진다. 그전까지의 소리의 울림이 진을 더 고립되고 결핍되어 보이게 함에 비해서 소음없는 고요한 시골의 풍경은 그런 결핍들을 잊게 만든다. 가와세 나오미의 <너를 보내는 숲>처럼 자연은 어쩌면 진과 빈에게 치유의 공간으로 상징되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명하게도 김소영 감독은 자연친화적인 자매의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도시아이의 시골살이와도 같은 뭇 상업영화의 쉬운 길로 빠지지 않는다. 그냥 원래 존재했던 자연의 공간에 아픔을 가졌지만 그것을 표현할 줄 모르는 소녀를 풀어 놓음으로써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끔 만든다.

<나무없는 산>은 김소영 감독의 전작인 <방황의 날들>의 연장선에 놓인 작품이다. 타국에서 스스로 적응해야 하는 소녀의 이야기는 비록 외국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낯선 공간들을 거치며 말없이 그 상황을 이겨내어 가는 진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사실적인 연기도 두 작품 모두에서 부각되는 특징이다. 과연 그들에게 연기 지도같은 걸 하기는 했을까, 의심이 될 정도로 아이들은 평소에 하듯 말하고 행동한다. 공간은 분명 한국인데, 소녀의 모습과 이야기들은 다르덴 형제의 작품처럼 생생해서 그 전까지의 한국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생경함을 느끼게 해준다. 감히 이 작품에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런 생경함이 기분좋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핍된 소녀들의 모습을 꾸밈이 전혀 없는 화면 속에 이야기와 느낌만으로 표현하는 <나무없는 산>은 싸늘한 풍경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보는 마음은 이상하게 흐뭇해지는 빼어난 작품임에 분명하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158,883
  • 6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