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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장원



실망의 감정은 단지 실수였을뿐

적당히 흥미롭고, 조금은 따분했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참은 멍한 기분었다. <방문자>를 본 후에 경험했던 활화산처럼 피어오르던 감정의 폭발이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는 없었다. 난 신동일의 2번째 작품이 데뷔작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단정지었다. 이내 내 자신을 쓰다듬었다. 이건 <방문자>와는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 영화가 완전히 다르잖아. 그러니까 그다지 실망할 필요는 없는거야. 그리고 슬며시 꿈틀거리지만 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었던 실망의 감정이 다른 영화에서 느꼈던 실망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품이 정말 맘에 들지 않아서 느끼는 실망의 감정이 아니라 뭔가 나의 기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아쉬움이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전혀 아닌데도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난 이 작품을 다시 한번 봐야했다. 정확히 10여달이 지난 후, 난 처음 본 후에 느꼈던 내 실망의 감정이 실망이 아니라 실수였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지닌 감독에게 난 속아 넘어갔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내가 그렇게 감동적으로 보았던 <방문자>와 전혀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난 이내 생각을 180도 돌려 이 작품을 논해야 했다. 이 작품이 가지는 다중적인 플롯에 대해서, 그리고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사회의 계급과 관계를 보여준 작가의 의도에 대해서 난 힘든 고뇌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종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난 이토록 자아를 이데올로기적 무형체의 흐름으로 이입시키는 작품이 또 있었나 찾아보았다. 그런 다음에야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가지는 비상하리만치 아름다운 매혹에 정신없이 빠져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묘한 관계와 이동할 수 없는 계급

신성한 결혼식이 끝나고 부부 재문과 지숙은 친구들과 단체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재문은 지숙보다 그의 오른쪽에 서있는 친구 예준에 더 붙어 서 있다. 좀 의심이 된다 싶더니, 화면은 지숙을 가려 놓은채 재문과 예준의 행복한 얼굴을 비춘다. 아내보다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는 없는것처럼 재문 역시 예준을 지숙보다도 더 사랑할 수는 없다. 그런데 재문은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의 태어난 것을 예준에게 알릴 때, 지숙이 파리에 가 있을 때 잡에 방문한 그를 바라볼 때 재문의 표정은 어딘 가 모르게 예준을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영화는 그 이상 선을 넘지 않는다. 모든걸 예측하고 상상해야 하며, 절대로 결론짓지 않아야 한다. 그것만이 이 영화를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숙은 그런 관객의 내면 속에 자리잡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들의 관계를 질투하지만 과하게 표현하지 않으며 뭐라고 자기 스스로 결론 짓지도 않는다. 그냥 바라볼 뿐이다. 이 묘한 관계는 몇 번이나 엎어지고 회복되지만 끝내 파탄의 국면을 맞이하고 만다. 아기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 재문은 기꺼이 예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이것은 좀 급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죄까지 뒤덮은 재문은 심하게 떨고 있지만 난 그 초점에서 예준을 향한 눈빛이 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멍하고 혼란스러워 보였다. 물론 사건 전후를 따져봤을 때 그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전에 예준을 향한 재문의 눈빛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였다. 뭔가 그(예준)를 위함이라기 보다는, 그(예준)에게 받은 것들을 보상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행한 것처럼 보여졌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재문이 사랑한 사람은 지숙이 맞다. 그리고 또 다시 난 지숙을 만나기 전부터 예준과 재문 사이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심해 보았다. 도통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복잡한 지점들이 산재되어 있다. 이런 지점들이 이 영화를 더 신비롭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닐까?

관계성과 함께 이 영화를 종단하는 또 하나의 흐름은 계급성이다. 정치적인 성향이 다분한 감독의 특징이 이번 작품에도 때론 노골적으로, 그리고 전반적으로 깔려있다. 재문과 지숙은 서민층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동네 미용실을 하는 지숙과, 공항 레스토랑의 요리사로 일하는 재문은 우리가 볼 때 지극히 평범하다. 그들이 서로 혹은 따로 자신의 계급에서 한단계 도약하려는 욕망을 보여준다. 'chef'가 되려고 하는 'cook' 재문은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려 한다. 그것은 정말로 'chef'가 되려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이민을 도우려하는 예준은 재문에게 넌 'chef'가 아니라 'cook'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애초부터 재문에게는 계급 상승 도약의 희망이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당연히 그것은 실패하고 만다. 지숙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이민계획이 실패하고 아이까지 잃자, 지숙은 또한번 예준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간다. 유학 후 다시 돌아와 강남에 큰 테라스가 있는 미용실을 오픈하며 상류 사회의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니 재문과 지숙은 허상의 욕망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을 소비하고 점점 더 본질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재문'이라는 인물로 인해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재문은 '허상의 욕망'을 대표한다. 그가 가지는 부와 명예, 지식과 능력은 보기에 좋지만, 허울뿐이고 주변 사람을 괴롭힌다. 그 욕망을 맛보는 순간, 혼란스러운 굴에 빠지게 되며 그 곳에서 다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달아도 삼킬 수는 없는 것, 영화는 그것이 무엇인지 은유한다.



대립적인 인물의 지속적인 등장

<방문자>의 호준과 계상은 이 작품의 예준과 재문으로 변주된다. 그들의 관계나 특징은 정확히 이 작품으로 지속되는데, 그것은 몇 가지로 알 수 있다. 타락한 지식인을 대표하는 호준은 감정에 휩싸이는 법이 없다. 자신의 말을 분명히 하고 지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적잖이 퇴폐적이다. 순수 영혼을 대표하는 계상은 재문으로 이어진다. 그는 순전히 착한 마음을 지녔으며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관한 마음도 일관적이다. 그것이 무엇을 바라건 그렇지 않건. 전작에서 인물들이 티격태격 대립되고 갈등한 것에 비해서 이번 작품에서는 갈등이 별로 보여지지 않는다. 인물 속의 대립 속에서 감화되었던 호준과 계상과 달리, 예준과 계상은 이미 그런 사이로 시작되며 오히려 역으로 관계가 악화된다. 이런 지속되고 변주된 인물을 보는 것은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친구 이상의 관계는 여전하며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사건의 발전 양식은 반대이기에 흥미롭다. 그러므로 신동일 감독은 인물과 인물의 관계에서 자유롭게 그들을 서로 맺고 흔들며 돌이켜 보이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것은 앞으로 계속될 그의 영화에서 확장되고 또다시 변주될 것이다.



타고도 용서할 수 없는 욕망

다시 되돌아 온 재문과 지숙은 그들의 옷에 맞는 한적한 미용실에서 다시 삶을 살아간다. 허황된 욕망을 불로 태워버린 지숙은 선택은 현명했던 것일까? 하지만 모든 것이 재로 타 날아가 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그렇게도 그들을 흔들어 놓았던 허상의 욕망 '예준'은 어디로 갔을까? 영화는 예준의 흔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들에게 편지가 배달됨을 끝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편지는 누구에게 온 것일까? '나의 친구, 그의 아내'라는 제목이 문뜩, 그리고 불현듯 생각나게 하는 결말이다. 그들의 욕망은 타고 없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그 누구에게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 난 확실했다. 타고도 용서할 수 없는 욕망. 다시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와 평범한 본래의 옷을 입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욕망은 끝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용서할 수, 용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난 이 위대한 감독의 연출 앞에서 이렇게 깊이 영화에 대해 고민하고 흔적을 남기려는 감독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감독의 그러한 치밀한 고민의 흔적이 온전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시대의 놓여진 깊은 사회 문제와 온전치 못한 기운들을 모든 사람이 방관한 채 다른 기류들로 편승할 때, 감독은 뚝심있게 자신의 할 말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범하게 건드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내가 깨달았던 실수는 이런 연유인 듯 하다. <방문자>가 겨울을 배경으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의 기온'을 가지는 작품이라면, 이번 작품은 대부분 여름을 배경으로 찍었는데도 '영하의 기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느꼈던 두 영화의 이질감은 곧, 기온의 차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물, 관계, 이야기의 흐름과 감독의 성향을 미루어 봤을 때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속았다고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2번 이상은 봐야하며, 3번 이상은 생각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론 이 영화에는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스산한 감정의 동요가 조용히 스며드는 느낌이다. 좀 더 오래 이 느낌이 전해질 것 같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라는 기묘한 영화제목처럼 규정할 수 없는 감정들이 천천히 스며들어 그것들이 내 안에서 잠전되는 데에는 아마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난 감독의 3번째 작품 <반두비>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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