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은 유독 영화 관련 종사자들을 만날 일이 많았다. 이들 중에는 영화감독도 있었고 제작사 담당자도 있었고 평론가도 있었으며 웹-미디어 회사 직원과 웹 사이트의 운영자도 있었다. 만나는 이들마다 내게 던진 하나같은 질문은 “네오이마주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물어온 질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 질문만큼이나 많이 접한 이야기는 “확실한 색깔을 찾을 수 없다”는 정체성 부재에 관한 것이었다. 결국 확실한 색깔이 결여된 것은 편집방향의 문제이고 곧 편집장의 책임일 테다.
고백하자면 네오이마주는 이 공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어야 했다. 다시 말해 영화비평을 통해 한국영화계에 손톱만큼이라도 기여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했다면 그것은 정보제공에 불과한 글쓰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만 뒤지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감독과 배우의 필모그래피 나열 따위의 글과는 일찌감치 이별을 고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찌해야 한다는 것인가.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판을 건드려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데 있다.

이렇다 보니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지는 영화관련 소식 중에서 제대로 된 판 이야기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들의 능력을 넘어선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중심에 다가가긴 쉽지 않은 때문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영화진흥위원회가 내놓은 통계자료에 의존하고 통합전산망이 던져주는 관객 숫자에 기대어 점유율을 운운하며 한국영화의 위기와 부활을 외쳐대는 것은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네티즌들의 주장 속에 담긴 영화산업 전반에 관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막연한 추측과 과잉일반화의 오류에 함몰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것은 ‘관객’논리이다. 그러나 이때의 관객은 다수 관객이 아닌 ‘그날 그곳에 글쓴이와 함께 있었던 일부 관객’일 따름이다. 이는 ‘관객’을 방패막이로 내세워 자신에게 날아올지도 모르는 비판의 칼날을 피하려는 비겁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도저히 계량화시킬 수 없는 것을 일반화하고 객관적 사실로 둔갑시키고는 ‘관객’이라는 유령과 한정된 애독자의 호의를 빌려 영화를 재단하고 평가하여 기어이 한국영화산업까지 아우르는 글 한 편을 써내는 능력, 감탄만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이처럼 사실보다는 가십과 추측에 의존하여 이슈를 만들어내고 수용자 구미에 맞도록 글을 생산해온 일부 황색저널과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안전판 위에서 취향대로 재단해온 일부 블로거들의 전력은 웹 공간에 속박된 리뷰와 담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봄이면 지금보다 훨씬 간명해지고 단순하게 구성된 섹션으로의 컨텐츠 통폐합을 통해 네오이마주의 목소리를 한곳에 모으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제대로 된 깊이를 가지면서도 확실한 색깔이 드러날 때, 보다 많은 영화인들이 이곳에서 자신과 자신의 영화이야기를 논의하거나 탐독하게 될 것이다. 소리 없이 이곳을 찾아오는 많은 그림자 군단, 특히 영화제작 일선에 있는 이들의 보다 적극적인 의사표현과 활동을 권하는 바이다. 무엇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는 것 다 이루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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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이고 사려 깊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오이마주가 이러한 현재를 잘 극복하고 더 좋은 모습으로 유지될 수 있길 바랍니다.
2008.03.26 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