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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린이 영화에 돌을 던지나

필진 칼럼 2007. 9. 3. 14:59 Posted by woodyh98

2007.09.03
신태균

“어린이 영화를 어른의 시선으로 재단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얼마 전 개그맨 정종철이 했던 말이다. 나는 정종철의 저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내가 보기엔 텔레토비가 요상 야릇한 인형 탈바가지 쇼에 불과할지 몰라도 우리 조카들에게는 최고의 오락거리이다. 케이블 만화채널에서 하루 종일 틀어주는 만화 또한 내 입장에선 리모컨 두들기다 잠시 스쳐 지나며 보게 되는 영상물일 뿐이지만 우리 조카들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별천지이다.

성인의 시각에서 유치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폄하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단지 나이가 들고 몸집이 좀 커졌다 해서 그 시절의 추억들을, 그 때의 소박한 상상들을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영화가 취약한 분야인 어린이 영화와 가족 영화의 제작에 뛰어드는 이들의 출사표는 나름대로 새겨들을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 할 만하다.

해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할리우드의 3-D 애니메이션만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 한국영화가 좀더 저변을 넓히고 시장을 확고히 하기 위해선 가족 영화, 어린이 영화에 대한 수요층을 언제까지고 모른 채 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자.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들 영화를 재단해서 안 되듯이 만드는 이들 또한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수준을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 ‘이 정도만 해도 아이들이 좋아하겠지?’하는 식의 태도는 어린이 영화, 가족 영화의 시장을 확장하는 것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아동영화를 의도하고 만들었든, 혹은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아동영화로 불려지게 된 것이든 동심을 겨냥하고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조악한 완성도가 감춰질 수는 없는 법이다.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느냐고, 편견을 버리고 봐달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어렸을 적 뛰어 놀던 골목길을 성인이 되어서 다시 찾게 되었을 때, 당연히 작고 좁고 답답해 보이게 되어 있다. 이건 편견이니 뭐니 하는 말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몸도 마음도 커지고, 시야 역시 넓어져서 조악함과 엉성함이 눈에 띄는 것인데 편견이다,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받아 친다면 이건 만든 이들이 그토록 벗어 던지고 싶었다던 ‘한때의 인기에 편승해 애들 코 묻은 돈이나 뺏어가는 수준이다’라는 평가를 스스로 입증해 보이는 셈이다. 아동영화라 해서 ‘아동들만’ 봐야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또 동 시대의 아이들만이 관람 대상에 포함되는 것도 아니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자신의 시 ‘무지개’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무지개를 보고 느끼는 것과 같은 순수하고 보편적인 감수성은 아이와 어른 모두를 끌어안는다. 때문에 잘 만들어진 동화의 감동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잊혀지지 않고 시대를 뛰어 넘는 생명력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랜 세월 꾸준히 팔리는 캐릭터 상품들이 단지 탁월한 비즈니스의 결과물이라고만 생각하나?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웃집 토토로]가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를 감동시킨 작품이 아니었다면 토토로 인형이 여기저기에 진열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 [톰과 제리]는 어떻고? 내가 어린 시절에 봤던 [톰과 제리]의 그 오래된 에피소드들을, 오늘 날 내 조카들도 어린이 채널을 통해 보며 즐거워한다. 단지 모든 것을 매정한 비판의 칼날을 날리는 어른의 시선 탓으로만 돌리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들이 비평적 평가에 한없이 관대하다 해서 거기에 적당히 아첨해서는 ‘아동영화 = 방학 맞이 한철장사’라는 공식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하였는데 적당 껏 대충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리처드 도너 감독의 [구니스]에 얽힌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숨겨져 있던 해적선이 등장하고 그걸 바라보는 아이들이 일제히 놀라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인 아역배우들은 리허설 때 실물 크기의 해적선 세트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제작진은 촬영에 들어가서 해당 장면을 찍을 때가 되어서야 해적선을 보여준 것이고 난생 처음 구경하는 볼거리에 깜짝 놀란 아이들의 생생한 표정은 그대로 카메라에 담길 수 있게 되었다. 실물과 같은 해적선을 제작할 수 있는 할리우드 자본과 기술력의 승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만이 능사는 아니다. 아이들의 꿈과 진심을 담아내는 제작진의 마인드는 우리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넉넉하지 못한 조건 아래서 영화를 찍는 이들을 마냥 몰아쳐댈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나에게 지금껏 잊지 못할 섬광과도 같은 흔적을 남겨준 건 요란하게 광고를 하던 방학특선 어린이 영화들이 아니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난 좁다란 골목길 같은 영화 보단 무지개 같은 감성을 지닌 영화를 만나고 싶다.
 
내가 보고 재미있어서 조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우러나는 그런 영화를 만나고 싶다. ‘이 정도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라며 지레짐작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즐기고 싶어지는 그런 영화를 만나고 싶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야말로 흥행신기록을 세우는 것 보다, 세계 수준의 특수효과를 만들어내는 것 보다 더욱 우선시되어야 할 영화 팬들의 소망이자 영화인들의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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