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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교문을 열며]와 나의 고딩 시절

필진 리뷰 2007. 11. 19. 09:20 Posted by woodyh98


<닫힌 교문을 열며>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의 나는 <파업전야>를 ‘대수롭지 않게’ 대할 수 있는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가진 중학생이었다. 철부지 중학생이던 나에게 아주 어렵게 찾은 것이라며 <닫힌 교문을 열며>의 조악한 복사본을 건네던 운동권 출신의 한 아저씨. 나와 꽤 친한 친구였던 아저씨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상기되어있었고, 나는 의아한 눈빛을 보내며 그가 건넨 영화를 받아들었다. 이제야 필름으로 편안한 상영관에 앉아 이 영화를 관람하며 하는 이야기지만, 아저씨가 그때 나에게 주었던 <닫힌 교문을 열며>는 화질, 음향 모든 것이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최저의 상태였다. 제대로 소리도 들리지 않는 테잎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나를 보며 아저씨는 ‘그래도 이것은 정말 필요하다’라는 말을 쉴 새 없이 쏟았었다. 꼭 7년 전의 이야기이다.

한창 입시에 열을 올려야 했던 나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비평의 시선으로 가려내기에 적절한 위치에 서있지 못했다. ‘합격’이라는 선의 상위권에 속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고 때문에 오로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남아야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자연스레 예술 고등학교와 연결되어 있는 곳이었고, 매년 최고의 합격률을 자랑했던 만큼 낙오라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닫힌 교문을 열며>에서의 치열한 투쟁의 모습은 당연히 어색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정진영이라는 배우도 생소했던 나의 머릿속에 <닫힌 교문을 열며>가 주었던 의문은 ‘왜?’ 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영화의 마지막,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굳게 잠긴 교문을 열어젖히는 교사의 비장한 눈을 뒤로하며 학생들은 하나 둘씩 웃음과 눈물을 섞는다. ‘왜 저들은 스스로 교문을 열지 못하는 것일까?’, ‘도대체 어째서 학생들은 저렇게 싸워서 이겨내야만 하는 눈빛을 가진 공격적인 야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왜 선생이 학생을 저렇게 무차별적으로 억압해야만 하지?’ 그리고 <닫힌 교문을 열고>의 관람 직후 가방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면서 일어나는 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 영화가 나에게 진실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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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나는 바라던 대로 무난하게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막 올라왔을 때 합격의 기쁨을 가득 누리며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친구들과 교정을 누비며 뛰어다녔다. 하지만 입학 직후에 누린 달콤한 즐거움은 결국 1년이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회수되어져야만 했다. 만년 고등학교 1학년이고, 만년 십대로 남아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생이 그러하듯 나도 역시 이십대로 향하는 첫 발판인 대학입시를 위한 시간을 대비해야했다.

<닫힌 교문을 열며>의 주제는 성적순으로 판단되어질 수 없는 ‘노동’과 ‘교육의 괴리’에 있지만, 영화가 말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자유’다. 학생들은 대학 진학반과 취업반으로 분류되어 각자의 학교생활을 수행하며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 다름’을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들의 태도다. <닫힌 교문을 열며>는 학교 내에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노동자(혹은 조금 다른)로의 삶을 택한 학생들의 이야기에 비중을 두되 그들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갈등을 조금씩 흘려 보여준다. 대학교에서는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한 시위가 한창 진행 중이고, 간접적으로 선배들의 투쟁을 바라보는 고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자유’라는 것의 가치를 바탕으로 서로를 마주보게 된다.

학생들은 자유를 위해 싸운다. 자유의 뒤에는 차별받지 말아야 하는 신성한 ‘노동’으로의 삶이 존재하지만 일차적으로 <닫힌 교문을 열며>에서의 그들이 원하는 것은 교지의 검열에 제재를 가하는 손들을 막는 것이다. 학생을 위해, 학생에 의해서 만들어져야만 하는 교지를 정치적인 상황으로 억누르는 탄압의 기운을 느낄 때 그들은 스스로의 생존을 걸 만큼의 분노를 느낀다. 단지 ‘편파적이고 차별적인’ 기사를 써내려가지 않기 위해, 또한 한 가지만 바라보는 담론의 형성을 막기 위해 싸움을 시작하는 학생들의 눈빛에 소수의 교사들이 커다란 방어막을 세워줌으로 인해 아이들의 ‘싸움’은 세상을 향한 ‘투쟁’으로 확장된다.

제작 된지 10년도 훨씬 넘은 <닫힌 교문을 열며>의 이야기와 지금 시대의 학생들이 오르고 있는 가파른 언덕은 제법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그때의 상황, 그때의 현상 그리고 그때의 환경과 같이 외부적인 변화는 과거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발달되었으나 아직 그들의 ‘투쟁’이 종결되어졌다고 단정 짓기는 너무 이르다. 물론 <닫힌 교문을 열며>를 보며 눈물을 참지 못하시던 한 교사분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내가 그분들과 동시대를 살지 않았으므로, 시대적인 시간차에서 오는 이질감은 당연히 작용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닫힌 교문을 열며>의 두 번째 관람을 통해 잠시 잊고 지냈던 나의 학창시절의 기억이 아주 소량의 눈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것을 스스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잊을 수 없다. 특목고에 지원해서 어렵게 들어간 곳이기 때문에 모교에 대한 자부심은 아직까지 깊게 뿌리박혀 있지만 그곳은 더러운 사리사욕이 존재하는 엄청난 모순의 공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예술을 꿈꾸는 고등학생들이 모인 최고의 엘리트 고등학교. 나는 그 속에서 ‘자본’을 위해 ‘투쟁’하는 대다수 교사들의 사회적 흐름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술에 대한 갈망과 친구들, 그리고 나를 이끌어주셨던 소수의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은 아프고 상처받은 시간으로 함축되어 가슴 속에 앉아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은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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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의 교지는 철저히 교사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닫힌 교문을 열며>의 학생들의 상황과 대입시키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학생의 손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은 소수의 기사들뿐이었다. 교지를 움직이는 신문부는 교내 동아리 중 가장 복잡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선발되는 인재들을 ‘육성’하는 우수 집단이었고, 편집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예술이라는 것을 모토로 많은 담론을 형성해야만 했던 교지는 어느 정도 제 구실을 갖춰나간 때도 있었지만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은 채 완벽히 교사의 통제로 인해 굴러가는 허수아비와도 같았다. 신문부에 들어가 나의 실수-인지 그렇지 않은지 진상을 밝히기도 전에 내동댕이쳐져야 했던- 때문에 그곳에서의 1년의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완벽히 물러나 학교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어줍잖은 정치적 분노로 똘똘 뭉친 나를 ‘객기의 중심’이라고 불러도 그것을 부인할 만큼의 타당한 주장이 없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제서야 고백하지만)나는 학교의 시스템에 정말 가슴 깊은 짜증을 느낄 때마다 늘 퇴학의 두려움을 함께 고려해야만 했다. 어렵게 들어왔던 학교이고 적어도 졸업 후 동문을 통해 몇 가지의 안정된 삶은 보장되어있다는 생각에 선뜻 내 생각을 누구에게 꺼내 보여주기가 쉽지 않았다. 몇몇 교사들의 태도와 더불어 어째서 참교육을 생각해야하는 고등학교(그것도 예술 고등학교)가 대통령을 포함한 온갖 정치인들에게 둘러싸여 운영되어져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토로하며 작은 주장을 펼치기에 나는 한낱 ‘학생’일 뿐이었으며, 좋은 ‘인상’을 토대로 점수를 주는 사람들은 학생이 아닌 교사들이었기에 나는 학교가 아닌 바깥의 정치적 화두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광화문에서 ‘집회’라는 것에 참석했었다. 물론 나의 정치적 입장은 <파업전야>를 무심코 지나치던 중학생 때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어떻게든 응어리진 무언가를 풀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했었다.

내가 졸업한 이후 서울 예술 고등학교는 ‘붕당정치’에 열을 올렸다(혹시나 나의 모교에 근무하시는 학과 선생님들이 이 글을 발견하여 엄청난 논리를 바탕으로 비판에 비판을 가해도 그분들은 여전히 ‘옳다’는 것을 밝힌다. 다만 ‘나의 눈’으로 그들은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학생의 눈’으로). 신문과 뉴스에 이니셜로만 오르내리는 고등학교의 모습은 대번에 나의 모교라는 것을 알 수 있게끔 친절하게 보도되어지고 있었다. 나에게 모교의 추억은 사계절이 뚜렷한 아름다운 교정과 친구들, 혹은 혼자서 방랑하며 고뇌하던 예술을 위한 축배가 전부다. 수업시간에 자신의 사회적 이념을 실현시키려 노력하셨던 소수의 교사들, 그리고 학생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이 물을 가르고 벽을 쌓아올리던 학과 선생님들.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진행 되었을 또 다른 ‘신선한’ 가치논쟁들. <닫힌 교문을 열며>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고 말하는 학생들은 실제로 아무런 힘이 없다. 그리고 나도 그곳에서 그저 하나의 학생일 뿐이었다. ‘그 아이가 뭘 잘 하던데’라고 학생들을 기억하기보다는 ‘그 아이가 어느 대학에 갔더라?’로 기억되는 구성원일 뿐이었다.

내가 걸어온 고등학교 시절이 <닫힌 교문을 열며>에서의 투쟁처럼 격렬하고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 뚜렷하게 생각나 영화 앞에서 한참동안 고개를 숙였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을 우리들, 혹은 아이들의 투쟁. 여러 아이의 입시를 맡았던 과외 선생으로 역할을 수행했던 나 자신도 아이들에게 잘못된 방법으로의 행복을 추구하게 만들지는 않았나 새삼 생각해본다. 변해야만 하는 것은 아직도 명백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닫힌 교문을 열며>에서 아이들을 위해 마지막 싸움을 벌이는 배우 정진영씨의 모습과 아직도 뜨거운 스크린쿼터 논쟁에서의 정진영씨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씁쓸하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만 언제, 그리고 어떻게 변할지는 기약하기 힘든 왜곡된 진실들. ‘닫힌 교문’은 언제쯤 활짝 열릴 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가 아직 꿈을 꿀 수 있는 이유는, 억압받는 현실 속에서도 교육의 주체는 ‘교문’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교문’이 없어도 어디서든 소통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 ‘교문’을 고발하는 눈, 그것이 독립영화 혹은 영화가 가진 커다란 긍정적인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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