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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필진 칼럼 2008. 6. 9. 06:24 Posted by woodyh98
강민영(편집스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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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며칠간 무섭게 쏟아지는 빗줄기. 아이러니하게도 빗줄기는 뜨거운 낮 시간을 피해 차가운 밤 시간에만 집중적으로 퍼부었다. 이렇게 시원히 비가 곤두박질치는 것은 아마 이틀째일 것이다. 이틀 동안 하필이면 퇴근시간, 하필이면 하루를 마감하려고 준비하는 바로 그 시간에 비가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펼치고 우비를 입고 종종걸음을 한다. 광화문 앞 사거리는 폭우를 피해 빌딩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집으로 갈지 아니면 남아있을지를 고민하는 발걸음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런 복잡함과 더불어 빗소리에 숨어 세종로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나의 조그마한 발자국 소리는 작은 영화제가 한창인 인디스페이스 앞에서 멈춘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부상자를 내고 가장 긴장감 넘치는 대치 상황을 보였던 지난 주말, 나는 애인과 함께 시청으로 향했다. 집회는 새벽까지 이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은 새벽이 지나도록 자리를 뜨지 않았다. 시청에서 모여 작은 공연을 나누던 인파는 여느 때처럼 소공동을 돌아 광화문으로 향했다. 시민들은 경찰차로 막혀있는 광화문에서 빠져나와 안국동 쪽으로 향했다. 물론 그곳도 차단되어 있었지만 더 이상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밤이 깊어갈 수록 차들은 뜸해지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서있는 곳을 지키고 서있었다. 모두가 피곤한 눈빛으로, 혹은 감정적인 욕설을 토해내며 진남색 경찰복을 반짝이는 앳된 얼굴의 전경들과 마주하고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주말이 끝나갈 때 즈음에야 집으로 돌아온 나를 어머니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불러 세웠다. 그날 저녁, 그날 새벽의 일은 어머니도 이미 알고 계셨을 거라 생각했다. 물에 젖고 배터리도 없어서 근 하루를 잠만 자야했던 내 핸드폰을 켜자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로 녹음된 음성 메시지가 가득히 쌓여있었다. 그리고 힘든 월요일이 밝았다.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정신없는 강의 행진에 몸을 맡겼다. 지난 주말은 ‘어쩌면’ 잊혀 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기분이 묘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일순간 공중에 떠버린 나의 일상을 굳건히 잡아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은 2일자 한겨레신문이었다. 입을 틀어막고 고통스러워하는 애인과 나의 모습이 지면에 여과 없이 실린 사진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날 아침, 신문을 보았던 지인들은 하나같이 ‘다치지 않았느냐’라는 말을 쏟아냈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그렇게 힘들고 쓰라렸냐는 물음에 갑자기 사라진 나의 주말이 생각났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 전에 낯익은 얼굴들과 대화, 혹은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물었다. 조금씩 파리해진 얼굴들. 그들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젖어있었다.

수업을 마치면 시간표를 확인한 뒤 극장으로 향한다. 대부분의 수업은 다섯 시를 전후해서 끝나기 때문에 내가 선호하는 극장 어디를 가도 대충 상영시간은 맞는 편이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배창호 특별전’이 막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이제 막 ‘인디포럼’이 편대비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멀티플렉스에 들러 블록버스터 영화를 한 편 보았던 나는 다음 날인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배창호의 <길>을 보지 못했기에 서울아트시네마에 들러야 했고, 인디포럼의 국내 신작들에 대한 기대감도 증폭되어 <길> 이후의 시간을 인디포럼에 가는 것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늘 그렇듯 안정적인 일요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잠시 산책을 하거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거나 데면데면 인사를 하는, 그런 평소의 일요일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혹 광화문에서 새벽까지 가두행진을 하더라도, 영화를 볼 여력은 충분히 남아있을 것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6월을 시작하는 새벽, 촛불 집회에 참석한 이후 다음 날은 한참을 일어날 수 없었다.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이 든 나는 무의식적으로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을 뿐이다. 물론 현장에 늦게까지 있던 애인도 마찬가지였다. 정오가 넘도록 베개를 부여잡고 방구석을 뒹굴다가 이따금씩 뉴스와 인터넷을 뒤지며 지난밤의 상황을 되새김질 했다. 그리고 또다시 잠이 들었다. 도저히 극장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감기는 눈꺼풀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다시 일어난 시간은 오후 다섯 시. 이미 인디포럼의 상영이 한창일 시간이었다.

난생처음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에 정지 페달을 밟았다. 궁금한 영화들을 보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할 일이 많았는데, 담고 싶은 것들도 마음속에 가득히 차 있었는데 그것을 풀어낼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5월의 마지막 날 저녁, 세종로 앞에서 눈물을 떨구던 친구가 생각났다. 6월의 첫 날 새벽, 오타 가득한 문자로 다급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던 극장 친구와의 대화, 조심하라던 친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제대로 보내졌는지 조차 확인할 정신이 없었던 복닥거리는 문자함의 텍스트들을 가만히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말로 표현하기 조차 힘든 폭력과 감정의 곡선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지난 새벽,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눴던가. 시청 앞에서 하얀 온기를 내뿜던 친구는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 같다고 말했다. ‘이 상황에서 영화를 떠올리는 것은 웃기지?’라고 묻는 그녀에게, 나는 어색한 말투로 ‘그것도 투쟁, 그것도 대화’라고 말을 건넸다. 클로즈업으로 잡힌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지나간다. 스산해진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아본다. 그들은 멀어진지 오래다. 그리고 나도 그 곳을 지나온 지 오래다.

월요일, 연일 퍼붓는 비로 인해 몸을 숨기고 가까스로 찾아간 인디스페이스에서 <국내 신작> 부분 섹션을 보며 눈을 찌푸리기도 하고 노영석 감독의 <낮술>을 보며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았다. 두 번의 관람 기회를 놓친 <낮술>을 기분 좋게 바라보고 극장을 나섰을 때, 나는 또 한 번 엄청난 괴리감을 느껴야 했다. 누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방패를 들기 싫다던 그 아이, 그 아이의 목소리가 문득 생각났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을지로 3가의 중앙차선을 가로질러 가는 경찰차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기 어딘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부서로 복귀하는 그 아이의 눈빛이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고 있던 치마에 한가득 물을 머금으며, 그리고 발이 진흙탕에 빠지는 것도 모른 채 멀어져가는 경찰차를 바라보았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낮술>의 감독에게 서투른 문자를 보냈다. 기다리던 영화를 드디어 보았다는 행복감에 젖어 보낼 수 있는 당연한 문자가 어쩌면 이리도 멀게 느껴질까. 한없이 쏟아지는 빗소리가 야속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몸을 숨기며 극장에 가고, 영화를 본 이후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와 오늘도 어김없이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앞에 발걸음을 멈춘다. 최근에 완고를 마친 시나리오 속 한 장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얼마나 비겁한 인간인가. 하지만 현실이 영화와 중첩되기를 갈망하는 나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흥건히 젖은 차도가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계속, 나와 친구들은 물기 가득한 이 차도를 밟고 광화문을 바라봐야만 한다. 어제에는 옳았던 영화가, 어째서 오늘에는 보장되지 못하는 걸까. 시청과 집 앞으로 이어지는 2호선의 간극,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허하기만 하다. 잠이 들기 전이면 자꾸만 그 곳에 무언가를 놔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목이 마르다. 입 안이 텁텁하다. 어쩌면 그 곳에 나의 영화, 그리고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두고 온 것만 같아 자꾸만 가방 안을 열어 확인한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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