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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기


6박 7일의 피곤한 첫 프레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영화제 마감 보고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첫 단어를 쓰기까지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 흘렀고, 욕심만 앞 선 까닭에 썼다 지우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글은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의미 없는 수사로만 가득 차버리기 일쑤였고, 그 와중에 편집장님의 마감 시한 선고까지 더해지면서 매우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중단하고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고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첫 프레스 일정을 근사한 언어로 정리하고 싶은 초짜의 욕심이 4일이란 시간을 허망하게 허비해 버린 것이었다. 본디 못난 글 솜씨를 지니고 있으면서, 하루아침에 명문을 써지기를 기대한 나의 어리석은 행동이 자초한 자충수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남루한 문장력을 지니고 있지만 솔직담백한 글로나마 보는 이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내가 이 글을 쓰려 했던 본래의 목적을 상기해 보니, 일은 아주 수월해졌다. 나는 관객으로서 그리고 프레스 입장으로서 영화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하여 사적인 고백을 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영화제는 어떤 의미이며, 당신들에게 영화제가 어떤 의미인지를 되묻고, 이 화두를 통하여 일종의 선문답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그럼 먼저 고백하겠다. 나에게 영화제란 무엇인가?


영화제는 영화를 보는 곳인가? 영화에 관련된 사람을 만나는 곳인가?

영화제를 찾아다닌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4~5년 전부터 꾸준히 영화제를 돌아다니는 관객의 일원으로서 원래 나에게 영화제란, 다양한 영화를 선택해 만나 볼 수 있는 일종의 접견 장소였다. 그러니까 영화와 관련된 게스트들을 만나는 일은 부차적 차원의 일이었을 뿐, 본래의 목적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간의 기간 동안 내게 영화제는 푸짐한 만찬의 다양한 메뉴를 전시한 뷔페와 같은 곳이었다. 평소 볼 수 없는 다양한 영화들과 아직 아무도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작품을 가장 먼저 본다는 그 짜릿함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때문인지 그 때는 하루에 3~5편씩을 닥치는 대로 해치웠다. 밥보다 영화를 보는 편이 좋았으니까, 영화가 뭔지도 모르고 좋았던 시절이니까. 뜻도 의미도 모르면서 그저 새로운 장면과 새로운 형식이 나오면 두 눈이 휘둥그레져 새로운 경험에 짜릿한 오르가즘을 느끼곤 하였다. 이해보다는 감상이 내 중추신경계를 장악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누군가를 만날 시간도 좀처럼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기보다는 빨리 저 어두운 세계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기대했기 때문에.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영화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문법이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영화제에서 영화에 중독된 채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게도 좁지만 인맥이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점차 영화제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저명한 평론가 혹은 유명 감독처럼 매일 미팅 스케줄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영화제 기간 중에서 하루 정도는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영화제와 그간의 세상사는 이야기에 대하여 담소를 나누는 그런 수준이다.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프레스로 영화제를 경험하였다. 새로운 경험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영화제에서 부딪히는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만큼 영화를 보는 시간은 당연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생겼다. 영화제는 과연 영화를 보기 위한 곳인가. 아니면, 영화를 통해 영화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곳인가.

사진출처: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과연 영화제는 영화를 보기에 적당한 장소인가?


하루에 세 네 편의 영화를 보는 일이 과연 영화를 진짜 사랑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문제였다. 영화를 진짜로 좋아한다면, 오히려 하루에 세 네 편의 영화를 보는 일은 각기 영화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들이 그렇게 간단하게 잊혀질 평작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단 세계 3대 영화제(칸느-베를린-베니스)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로부터 초청되는 국내 영화들을 한 번 살펴보라. 이미 국내에서 한 차례 검증 받은 탄탄한 작품들이거나, 혹은 프로그래머의 고심 끝에 고른 역작일 것이다. 국내 영화제라고 그 고민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일단 영화제에 초청되어진 영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퀄리티를 믿고 따른다. 따라서 그 영화들이 앞서 얘기했다시피 그렇게 간단하게 기억에서 잊힐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제에서 연속으로 세 편 이상의 영화를 볼 때, 그 영화들이 가져다 준 그 강렬한 감정들은 분명 다음 영화의 기억 속 뒤안길로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기에는 분명 하루는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감상이라 함은 영화를 눈으로 보는 시간뿐만 아니라, 자신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을 완벽에 이르기까지 정리하는 내면화의 시간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때론 그냥 정말 단순한 관람으로만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그렇다고 영화제까지 와서 하루에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한다는 것은 또 너무 아쉬운 일이다. 영화를 보는 행위에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곳이 또한 영화제이다.


그렇다면,
영화제는 영화를 통해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곳인가?


어쨌든 영화제는 영화에 관계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영화 하나로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든 것은 이번 취재 활동 덕분이다. 첫 프레스 활동에 욕심만 앞서 각기 다양한 측면에서 영화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한 적이 있었다. 비록 그 결과는 수월하게 이루지 못하였지만, 내가 이 취재를 통하여 알게 된 사실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전주국제영화제라는 이름 안에 하나로 모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영화를 만들고 이를 영화제 측에 출품한 감독 및 출연진들과 프로그래머의 선정에 따라 초빙된 영화와 관련된 게스트들이 이 축제를 더욱 화려하게 밝혀주면, 이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환호해주며 열광하는 열정적인 관객들이 있다. 또한 이 둘 사이의 만남을 뒤에서 도와 줄 봉사자들과 영화제 스태프들의 노고가 곳곳에서 서려있으며, 이러한 뜨거운 만남을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홍보할 사명을 지닌 언론도 존재한다. 대체로 영화제를 움직이는 주체는 이러한 4개 집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제 프레스 카드를 부여받고, 또 ‘네오이마주 스태프’라는 직함을 부여받고 처음 참여하게 된 영화제에서 무엇보다도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진 경험은 기존의 영화제 측에서 부여한 만남의 기회를 뛰어넘어 자발적으로 각기의 주체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에 내가 관객의 입장으로 영화제를 참가했을 때는 영화제 측이 준비한 행사를 통해서만 게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상대자라고 해봐야 그 좁디좁은 인간관계 안에서 뿐이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일정은 사뭇 흥미로웠다. 영화제 첫 날부터, 나는 이번 영화제 두 개 부문의 수상에 빛나는 <반두비>의 신동일 감독과 기타 스태프 분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기회를 가졌다. 당시 호기 어린 목소리의 현장 스태프들이 보여준 이번 영화에 대한 자신감은 두 개 부문의 수상을 능히 짐작하고 남을 정도로 당당했다. 내가 이 긴 글을 쓰면서 고작 영화제에서 현장 스태프 분들과 술을 먹은 자랑을 하려는 의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영화 저널과 현장이 제대로 소통할 기회가 대체로 이런 곳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사오오 취기를 달래러 자리를 파하고 떠나는 분위기 속에서 현장 스태프들과 기자들 간의 이야기는 깊어져 갔다. 여기서 그것을 모두 밝힐 수 없지만, 초짜인 나에게는 정말 뼈와 살이 되는 중요한 얘기도 상당수 오고갔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영화 산업의 종사자 사이의 간극을 밀착시켜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영화제이다. 저널과 저널 사이의 유대도 보통과 다르게 영화제에서는 더욱 강해진다. 또한 관객과 저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밀착되어 같은 극장에서 동시에 숨 쉬어 그 온기를 그대로 전달한다. 비단 이것은 저널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감독과 관객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고, 영화제 스태프들은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같은 산업에 연을 맺고 있으면서도 상당히 접점을 가지기 힘든 집단들이다. 따지고 보면, 현장과 비평 간의 괴리는 상당히 멀고도 멀다. 하지만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이들이 하나로 묶이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꽤나 의미 있는 일이다. 비평과 현장이 완전한 이해를 전제로 함께 일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런 자리를 통하여 서로를 알아보려는 노력은 필요할 것이다.



영화제를 즐기는 방법

이것이 단지 프레스 카드의 권능은 아니다. 영화제를 찾는 누구나가 이룰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방법을 이제야 터득했을 뿐이다.

먼저, 영화제에 와서 너무 많은 영화를 보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는 하루에 한 두 편이면 충분하다. 그것을 가슴에 새기기에도 벅차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기를 추천한다. 그 사람이 일면식 없는 낮선 관객이더라도 상관없다. 그 역시도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설령 그들이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라도 영화제가 그대들을 하나로 묶어 줄 것이다.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그것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영화제에서 감독을 만날 기회는 의외로 많다. 영화제를 직접 찾을 정도의 열정이라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걸어올 낮선 이를 외면할 이유가 없다. 영화제는 영화를 전시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즐기는 축제의 역할도 가지고 있다. 즐기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과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함께 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화는 숙제가 아니다. 많이 본다고 누군가가 당신을 칭찬해주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본 또 다른 누군가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영화제를 즐기는 진짜 방법이 될 것이다.

끝으로 딱 한 가지만을 더 전하자면, 이 모든 경험을 글로서 정리하자. 표현되지 않는 즐거움은 즐거움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이를 언어로 내뱉으면 당시에 이 즐거움을 향유하게 되지만, 글로서 남기면 이 즐거움은 향기로 흡착되어 오래도록 남게 된다. 이상하게도 어렵게 시작된 글이었지만, 그 끝은 상당히 홀가분하다. 이것으로써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초짜 영화애호가의 어떤 단상을 마친다. 그렇다면, 이제는 당신 차례이다. 당신에게 영화제는 어떤 의미인지를 한 번 생각해보자. 조만간 새로운 영화제가 다가오기 전에 꼭 답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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