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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지난 화요일(11/18), 유난히 바람이 매섭게 불어 닥치던 그날, 시계가 오후 여섯시를 가리킬 때 즈음 공덕동엔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목도리를 질끈 두르고 코트를 잔뜩 여민 채, 흡사 멜빌 영화에라도 나오는 듯 겨울의 한기를 잔뜩 분출한 사람들이 속속들이 서부지방법원 뒷골목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 그들이 멈춘 곳은 ‘미자르’라는 지하 호프집 앞이었다. 강추위를 뚫고 호프집에 ‘도달한’ 사람들은 하나 둘 몸을 감싸던 두꺼운 겉옷을 훌훌 벗어버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을 이겨낸 그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하나, 2008년 서울독립영화제 기자회견이 있는 값진 저녁이었기 때문이다.

11월 18일 적절한 저녁 시간이었던 오후 6시, 공덕동 호프집 MIZAR(미자르)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관객들을 기다리는 서울독립영화제의 소개가 이어졌다. 해마다 12월이 오면 ‘한국에서 영화 좀 본다.’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독립영화의 축제가 바로 서울독립영화제. 2007년에는 대통령선거라는 장벽 아닌 장벽에 맞부딪혀, 예정보다 조금 이른 11월에 잔치판을 벌여야 했었던 서울독립영화제는 올해 다시 ‘12월 축제’라는 정상궤도로 진입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매년 12월에 개최되어 한 해의 독립영화를 아우르는 소중한 시선을 오랜 기간 동안 간직해왔던 영화제. 국내 경쟁 독립영화제이기도 한 서울독립영화제는 올해도 재기 넘치는 감독들의 신선한 작품을 알차게 준비해놓았다.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동안 베일에 꽁꽁 싸여있던 서울독립영화제의 얼굴, ‘개막작’이 공개되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2008년의 얼굴을 강미자 감독의 첫 장편 <푸른 강은 흘러라>에 맡겼다. <푸른 강은 흘러라>는 중국 연변에서 촬영된 연변 소년 소녀들에 대한 영화로, 청춘과 자본주의에 대한 두 가지 고민을 동시에 안겨주는 영화다. 강미자 감독은 <푸른 강은 흘러라>를 통해 ‘아이들의 숨통을 트이게 해 청춘과 자유에 대한 상상력을 펼치게 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푸른 강은 흘러라>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서울독립영화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흥미진진한 공연을 준비해두었다. 12월 11일 오후 7시, 스폰지하우스 중앙에서 개막작과 함께 공개될 개막식 행사에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영화배우 권해효와 방송인 류시현이 진행을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올해 최고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늦바람’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개막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는 영화제 기간 동안 두 개의 특별전을 준비해놓았다. 첫 번째는 ‘Sex is cinema’라는 슬로건을 걸어 영화에서 다뤄지는 성적 표현과 성의 미학에 관한 진지하고 사려 깊은 대화다. 과거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거침없이 들이닥치는 것이 영화판이라고 명명되고 있지만 막상 그것이 ‘한국’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나면 좀 더 고된 진통을 겪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한국 사회는 꽤나 오랜 시간동안 성적 자유를 누릴 공간과 기회를 박탈당해왔고, 이와 더불어 법적인 문제를 내건 싸움까지도 감행해야 했다. 감각의, 그리고 억압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이번 ‘Sex is cinema’ 특별전은 성의 표현에서 예외성을 보여준 영화들, 그리고 특히 21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영화들을 소개하고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Sex is cinema’ 특별전의 상영작 목록에는 이미 부산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었던 브리안테 멘도사 감독의 <서비스>를 포함해, 지난 한 해 동안 유수의 영화제와 관객의 러브콜을 받아온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숏버스>, 은밀하고 발칙한 영화이기도 한 장 끌로드 브리소 감독의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들2>와 함께 한국 내에서 성적 소수자에 대한 고찰을 일정 부분 이상 이끌어낸 김경묵 감독의 <얼굴 없는 것들>과 김정구 감독의 <역진화론-갈아 만든 에덴> 등이 상영된다.

두 번째는 ‘촛불 영상-재밌거나, 열받거나’ 초청작들이다. 2008년은 작년 대통령선거와 맞물려 격정의 해인 동시에 수많은 국민들이 수난을 당해야 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이 속속들이 위치했던 해였다. 2008 서울독립영화제는 많은 국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동시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와야만 했던 사건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몇 달 전 ‘거리의 촛불’을 주제로 비경쟁 작품들을 공모했다. ‘촛불 영상-재밌거나, 열받거나’ 섹션에서 소개되는 9편의 단편들은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매체이거나 혹은, 우리의 주변에 존재하는 친구, 엄마, 동생, 사촌들이 만들어낸 영상일 수도 있다. 2008년 거리의 촛불은 참여 미디어 운동을 통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나라가 가져야 하는 자질에 대한 동시다발적 질문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광화문 한 복판에서 10년 전 잊었던 첫사랑을 만나야 했고, 종로 한 구석에서 20년 전 기억 속의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야 했던 사건들은 모두 촛불에 녹아있는 것이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는 ‘재밌거나 혹은 열받거나’라는 키워드를 통해 촛불을 둘러싼 사회 전반에 대한 미디어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조율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번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시선은 바로 ‘촛불 영상-재밌거나, 열받거나’ 초청작 섹션일 것이다. ‘촛불 영상-재밌거나, 열받거나’ 초청작 섹션은 우리의 지난 현실, 그리고 현재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

이밖에 서울독립영화제의 꽃인 경쟁부문도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수많은 작품들을 밤낮 가리지 않고 가려내야 했던 김동현(서독제 사무국장), 김태일(다큐멘터리 감독), 맹수진(영화평론가), 박광수(정동진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 강릉시네마떼끄 사무국장), 이지연(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조영각(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위원들의 손에서 떠난 51편(단편 40편, 장편 11편)의 영화들은 메인 상영 시간을 거머쥐고 다시 한 번 심사를 기다린다. 2008 서울독립영화제의 본선 심사는 강성훈(조명감독), 김미례(영화감독), 김조광수(영화감독, 청년필름 대표), 장병원(영화평론가) 등의 위원들로 구성되었으며, 이들과 함께 관객들의 투표에 의해 진행되는 시상식에는 다양한 액수의 상금과 상패가 가지런히 마련되어있다.

 



2008년의 마지막, 12월의 초입이 다가온다. 올해는 그 어떤 해보다 달아오르고 쉬이 내려앉던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힌 한 해였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된 겨울의 차가운 바람은, 우리가 현실에서 숨 쉬고 있는 공간이라는 인지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날카롭다. 수많은 일들에 치여, 혹은 수많은 정치에 치여 만신창이가 되었다면 이제 그 상처를 서로 보듬기 위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때가 아니던가. 전주에서, 혹은 부산에서 놓친 ‘그럴싸한’ 한국 영화들이 궁금하다면 당신의 12월 둘째 주 일정을 비워두기를 바란다. 2008년 서울독립영화제는 12월 11일 목요일부터 19일 금요일까지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중앙시네마, 스폰지하우스 중앙)에서 9일간의 대장정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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