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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이것도 보여줄 수 있다'라는 가능성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의 전령사인 헤르메스를 발목에 날개가 달린 신으로 묘사해 놓았다. 등 혹은 어깨죽지에 날개가 달린 것이 아니라 발목에 날개를 그려넣은 까닭은 헤르메스의 동적인 움직임을 더욱 강조한다. 과거 신화의 주인공은 제우스였는데, 제우스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은 천둥과 번개를 이용한 물리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헤르메스로 대표되는 전달꾼이 있었기 때문이다. 헤르메스를 전령사로서 기능하게 하는 힘, 즉 전령사로서의 설득력을 갖게 하는 것은 제우스의 힘에서 기인한다. 마찬가지로 제우스의 힘을 유지시키는 것 또한 전령사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권력과 통신이 일인에게 집중되고 하나의 망을 통해 파급됐다는 과거 정치 구조를 은유한 것과 같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헤르메스가 있다. 그것은 절대적인 권력을 분산해준다. 1인에게 부여되는 권력은 같지 않다. 얼마나 더 접근성이 뛰어난 통신망이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디지털을 통해 생성해낸 텍스트는 그것이 비공개가 아닌 이상 최소한의 접근성을 허용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힘을 가진다. 여기에서 중요한 방점이 하나 찍혀야 한다.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없는가. 전자의 경우는 '아고라'와 '광장' 등을 통한 정치 활동은 이 힘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과거에도 존재하던 방식의 소통이 새로운 매체를 타고 원활해진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디지털 상에서 당장의 힘을 발휘할 것을 목표하지 않으나, 이 힘이란 것은 질량불변의 것이어서 어느 방식으로든 새어나오게 돼 있기 때문에 문화적인 영역에서 발휘된다.

디지털을 통한 활동은 주로 웹을 통해 하이퍼 링크를 타고 이뤄지는데, 하이퍼 링크의 기본 성질은 동질성 혹은 유사성에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동질성이라거나 유사성이란 것 자체에서 체계성이나 논리성이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 페이지에서는 중대하게 다뤄질 수 있어도, 링크를 타고 들어간 다른 페이지에서는 단지 한 구절로 기록돼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을 목적에 맞지 않는 '쓰레기 정보' 혹은 '정보 바다의 범람'이라고 부르는 관점이 있고, 디지털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정보들을 잘 분류해내어야 한다고 권장한다. '올바르게'라는 말에 적힌 말에 대해 우리는 좀 생각해봐야 한다. 이 말을 '효율적으로' 라는 말로 바꿔 쓰일 때 더욱 분명하게 의미가 전달된다.

효율적인 방법과 체계적인 논리가 권장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디지털을 효율과 논리로서만 대하던가. 그보다는 검색창에 친 한 가지 키워드를 통해 상관관계가 상이한 것들이 하나로 엮여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때, 그것이 더 큰 정보를 제공하거나 발상의 전개를 도운 경험은 없었을까. 논리성과 체계성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생산해내거나 수집하는 과정에서는 핵심내용으로 수렴될 수 있는 자료들만을 필요로 한다. 그 밖에 검증하거나 논증하기 어려운 자료들은 쳐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해당 텍스트 자체의 힘은 강력하게 길러주지만, 너무도 예각화를 시킨 나머지 채택되지 못한 다른 자료들과의 연계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추측이나 직관, 그리고 '말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나' 느껴지는 것으로 이어낼 수 있는 것을 '갖다붙이기'라고 하여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해버리기도 한다.

이제 '그것이 무엇이든, 얼마나 멀리 있든' 상관없는 세계가 펼쳐졌다. 논리성과 체계성은 필요조건으로 삼고, 그것의 지배력에서 자유로워져도 괜찮은 것이다. 저 멀리에 무엇이 있다고 상상했으면 그것과 관련된 키워드를 통해 상상한 그 이상을 볼 수 있다. 이 확장은 단순 탐험의 차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키워드 하나로 확장된 세계를 경험하고서는 다른 키워드를 발견하기도 하고 발명해내기도 한다. 한 가지 키워드로서 추려낼 수 있는 키워드는 무한으로 발산하는 것이다. 두뇌 속에서는 키워드를 조합해낸다. 고로 이 세계의 화두는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묻는 게 아니라, 연결시켰으면 이제 뭘 볼 것이고 뭘 만들어낼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24시티>를 감독한 지아장커는 CinDi2008 관객토크에서 매체의 자유로움이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낀 에너지를 표현과정에서 역동적으로 풀어냈다는 의미다. 디지털은 우리 현실에 조합을 통해 나온 경우의 수 대부분을 등장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결과로 세상에 보여질 텍스트는 분명 필연성을 갖고 있으나, 일일이 논증해내기 보다는 그 바탕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디지털을 통한 창작, 소통과정을 통해 보다 다양한 것들이, 이전에는 차마 보여지지 못했던 것들이 영상과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아울러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 당신이 볼 세상은 양적으로 얼마나 커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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