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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들에게는 두 명의 여성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다고 한다. <줄 앤 짐>의 잔느 모로와 《장미빛 인생》, 《사랑의 찬가》의 에디트 피아프가 그들이다. 올리비에 다한 감독의 영화 <라비앙 로즈>는 그 중 피아프에 주목한다. 아니, 차라리 <라비앙 로즈>는, 두말할 나위 없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에, 피아프를 위한, 피아프에 의한 영화라고 말해야 옳다. 영화를 본 이에겐 그보다 더한 수식이라도 아낌이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젊은’ 소설가 김애란의 두 번째 소설집의 출간소식과 함께 이런 글귀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 김애란이다.” 어느 누구는 또 이렇게 말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두가 김애란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 표현에서 ‘김애란’을 ‘에디트 피아프’로 고쳐 적는다 해도 전혀 무방하리라. 바로 앞에 한 단락을 추가한다면, “영화를 본 이라면”이라는 단락 하나만 추가한다면? “‘영화를 본 이라면,’ 모두가 에디트 피아프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 말에 ‘공감’하지 않을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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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오프닝은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인 1959년 미국의 어느 공연무대다. 하필이면 그 곳, 그 시간대에서 영화는 두 시간 동안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무대 위에 선 피아프의 얼굴이 심상찮다. 무언가 잔뜩 경계하는,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초점 없이 치켜뜬 눈빛으로 흡사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검정색 원피스 드레스를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은 차라리 ‘검은 고양이’ 똑 그 자체다. 그녀의 두 눈꺼풀이 무너져내려있다. 빈약한 어휘력을 가진 나로서는, 안타깝게도, 이렇게 밖에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하던 피아프가 무대 위에서 그만 덜컹 쓰러져 내린다. 피아프가 ‘쓰러진다’. 그리고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태엽인형의 멜로디 소리와 함께, 채 열 살도 안돼 보이는 어린 피아프가 ‘거리의 가수’인 엄마와 거리를 전전하는 과거로 서서히 점프한다.

프랑스 파리의 어느 빈민가 출생, 어머니로부터의 방기, 친할머니가 경영하는 매음굴에서 머물던 몇 년 동안 눈의 염증으로 시력을 잃을 뻔 했던 경험, 서커스 단원이었던 아버지와의 유랑 생활, 에디트의 재능을 인정하고 발굴해준 은인이었던 르쁠리(제라르 드빠르디유)의 살해 혐의, 한 번의 큰 교통사고, 두 번의 결혼과 이혼,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이브 몽땅으로부터의 배신, 갑작스런 비행기 사고로 송두리째 빼앗긴, 세계 미들급 권투 챔피언 막셀과의 짧았지만 격렬했던 그녀의 마지막 사랑, 그리고 마약과 술로 점철된 이후의 삶까지, 그야말로 피아프의 인생은, 비유하자면, ‘쓰러짐’ 그 자체의 역사다.

얼마 전 개봉했던, 제인 오스틴의 한 때를 다룬 영화 <비커밍 제인>이 그녀의 창작의 원천을 실패한 연애 ― 실패한 사랑 ― 에서 찾았던 것과 흡사하게, <라비앙 로즈> 역시 피아프의 불운했던 사랑 ― 특히, 마지막이자 평생의 연인이었던 막셀의 죽음이라는 결정적 사건 ― 을 그녀의 음악 위에 겹쳐놓는다. 피아프가 막셀의 죽음을 전해들은 바로 그 순간 자신의 집은, 감독의 마법 같은 연출로, 어느새 그녀가 노래하는 무대로 제 옷을 갈아입는다.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인 《장미빛 인생》(라비앙 로즈)은 실제로 이브 몽땅을 만나 사랑에 빠진 피아프가 불과 15분 만에 만든 곡이다. 또, 그녀를 찾아 미국까지 찾아온 프랑스 잡지의 어느 여기자가 여자들에게, 소녀들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피아프는 차례대로 한결같이 대답한다. “사랑하세요”, “사랑하세요”, “사랑하세요”.

은인이었던 르쁠리의 죽음 이후 살인혐의로 하루아침에 몰락한 피아프가, 스승 레이몽 아소의 도움에 힘입어 설 수 있었던 재기무대. 그 자리에서 피아프의 노래에 관객들은 닫혔던 마음을 열고 그녀를 향해, 정확히는 그녀의 노래에 미소 지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62년. 그녀의 마지막 무대였던 올림피아 공연에서 피아프의 노래는 다시 한 번 관객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피아프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를 부르고 있다. 마이크 앞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후회하지 않아》를 노래하는 피아프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영화 전편에서 전곡을 들을 수 있는 건 이 곡을 부를 때뿐이다. 왜일까. 왜 하필 이 곡일까. “난 후회하지 않아요. 삶의 고통도 상처도 지나고 나면 그 뿐.” 나는 이렇게 들린다. “고통도, 상처에도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피아프의 노래를 듣고 있는 관객들은 예전처럼 변함없이 미소 짓고 있다.

하지만 이때의 미소는 예전 재기무대에서 피아프가 보았던 그 미소와는 질감이 다른 인상을 가져다준다. 관객들의 미소에는 마치 시간의 숙성으로 인해 묵혀진, 서글픔이랄까, 그 어떤 감정이 덧대어져있다. 아마도 공연장의 관객들은 피아프의 노래에서 피아프 자신의 서사/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피아프가 이렇게 노래하고 있지 않던가. “난 후회하지 않아요. 삶의 고통도 상처도 지나고 나면 그 뿐.” 피아프는 또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 제대로 살았는걸요.” 난 피아프의 이 말들이 마치 “고통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지금 나는 행복한 걸요”라고 들리는 ‘착각’에 빠진다.

빛이 공존하는 어둠 ― 빛이 있는 어둠(!) ― 을 좋아한다는, 바로 이전 장면에서 피아프가 인터뷰 때 했던 말이 연상된다. 그녀의 마지막 올림피아 공연무대에서 볼 수 있었던, 그녀의 노래에 공명된 관객들의 미소가 예전과 존재론적 위상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다. 예전 어느 무대에서 노래하던 중 악화된 건강으로 숨이 가빠 올라 도망치듯 대기실로 피신했던 피아프가 다시 무대로 복귀해서는 그 상황에서조차, “난 괜찮아요. 이렇게 멀쩡한걸요. 저기 내가 또 쓰러질 걸 기대하고 서 있는 기자 분, 기사 좀 잘 써줘요. 나 아무 문제없다고요”라고, 그 순간에조차 역설적으로 농을 던지던 피아프의 모습도 떠오른다. 마지막 공연에서 관객들의 미소가 그저 단순한 미소로 느껴지지 않았던 건 아마도 이러한 이유들에서였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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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any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 영화를 시사회로 봤네요.영화 자체보다...에디트 피아프의 의 일생을 보고 있노라니..참 가슴한켠이 찡하면서 벅차올랐어요.열정적으로 살아온 그녀의 짧은 일생...
    아름다웠어요.마지막으로 울려퍼지는 난 후회하지 않아...이 곡...화니 핑크에서 듣고 참 좋아했던 곡이기도 한데...실연의 상처를 가진이에게 회망과 용기를 주는것 같아요.

    2007.12.03 22:35
  2. Favicon of http://anex.egloos.com/ BlogIcon 아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엮고 갑니다^^

    2008.08.3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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