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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파더] 우리들의 인연

필진 칼럼 2007. 9. 10. 07:57 Posted by woodyh98

2007.09.09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마이 파더]는 이미 알려진 대로, 한국출생으로 미국에 입양된 '애런 베이츠'가 친아버지를 찾는 과정을 그린다. 친아버지를 만나겠다는 설레임을 안고 한국주둔 미군에 지원까지 한 영화 속 주인공, 제임스 파커(다니엘 헤니). 하지만 자신이 아버지라며 나타난 사람은 사형을 앞둔 사형수 황남철(김영철). 모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살인범이었다는 것. 게다가 유전자 검사 결과, 그 남자는 제임스의 친부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황남철은 유전자 검사 결과 따위는 모른 채, 자신이 오로지 제임스의 친아버지라고 믿고 있다. 클럽의 말단 웨이터였던 황남철은 제임스의 임신한 어머니(아마도 이미 심한 병에 걸렸을)를 데리고 춘천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녀는 제임스를 낳고 얼마 뒤 죽었다. 그녀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녀가 낳은 아이 제임스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믿었고, 비참한 자신의 처지에서 애써 용기를 내어 아들을 만났다. 언제 사형당할지 내일을 알 수 없는 하루하루의 삶에 다시 활기가 불어왔고, 아들을 생각하며 내내 기뻤다. 유전자야 어찌됐든, 황남철에게는 제임스가 아들이었다.

애써 찾은 아버지가 실제 아버지가 아니라는 유전자 검사결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제임스에게, 검사회사에서는 재검사를 해보자며 테스트용 면봉을 건넨다. 그러나 제임스는 눈내리는 교도소 앞에서 테스트용 면봉을 버린다.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 아버지가 살인자였다는 것- 앞에서, 동시에 그가 사실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하기 힘든 아이러니. 이 상황에서 나는 제임스가 왜 유전자 재검사를 포기해버렸는지 생각해 보았다. 검사결과 그가 친아버지가 아님으로 밝혀졌음에도 그가 왜 자신을 황남철의 호적에 올리고 그를 아버지로 받아들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입양아로서 낯선 땅에서 겪었을 괴로움으로 인해, 그가 얼마나 친부모의 존재를 애타게 그리워했을지 충분히 알 수 있는데도, 친부가 아닌 황남철을 그가 어째서 마음으로 아버지로 받아들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가끔 누군가를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혈연으로 맺어진 아버지가 아닐지라도, 존경과 애정의 의미로 누군가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황남철은 그런 존경과 애정의 대상은 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애써 덮으려 한,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른 자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누구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끼치며 살아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아낌없이 주려하고, 그를 그리워하면서 살아왔으며, 그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또 미안해한다. 혈연이 아닐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인연이 아닐까. 아주 많이 양보해서, 그저 자신의 병들고 외로운 어머니를, 한 때 정말 사랑해주었던 한 남자로서의 인연이라면 어떨까.

유전자라는 것이 말끔히 밝혀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해할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다. 우리들은 흔히 그것을 인연이라고 부른다. 그것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왔다면 또 무슨 상관이겠는가. 교도소 앞에서 제임스가 버린 유전자검사용 면봉은 그런 인연을 받아들인 그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혈연'이라는 관계 또한, 어쩌면 우리들의 자만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뱃속에서 열달을 지내고 나온 일, 누군가와 유전자가 같고, 혈액형이 같고, 얼굴이 닮고, 발가락이 닮는 일. 우리는 그것을 핏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 또한 커다란 인연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내가 부모를, 자식을, 형제를 선택할 수 없듯이, 혈연 또한 나와 누군가를 연결지어주는 인연의 한 종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혈연이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하고 의미있듯, 혈연일지라도 또 혈연이 아닐지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게 되는 일은 더없이 소중하고 의미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신기한 인생.
성 테레사님의 말처럼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은 여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누이들은 같은 성을 쓰고 같은 집에서
아빠, 엄마, 누나라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며
소꿉장난하듯 재미있게 놀다가 '이제는 그만 들어와 밥먹어라아- ' 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먼저 돌아가버린 동무들처럼 느껴진다.
남은 우리들도 언젠가는 '인호야, 그만 들어와 밥먹어라아-'
하는 소릴 들으면 이 소꿉장난의 낯선 골목길을 떠날 것이다.
(최인호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중에서)

소설가 최인호 씨는 자신의 어머니와의 추억을 그린 책에서, 가족들을 '하룻밤의 인생에서 만난 소꿉친구들'로 표현한다. 천상병 시인은 인생을 '소풍'에 비유했는데 최인호 씨는 '하루의 소꿉장난'에 비유한다. 소풍이든, 소꿉장난이든 공통점은 집에 갈 때가 되면 아낌없이 앉았던 자리며, 즐거이 놀던 친구들의 손을 가벼이 탈탈 털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더없이 소중한 인연이지만 그것이 내가 정하고 원한 것이 아니기에 나의 선택 안에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내게 선물로 주어진 것이기에, 손 안에 든 유리그릇처럼 더욱 소중할지도 모른다는 것.

영화 속 제임스의 이야기와 거의 흡사한 실제 애런 베이츠 씨의 자료필름이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한편으로는 이렇게 가벼운,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질긴 인연이라는 것에 마음이 아팠고 또 먹먹해졌다. 우리는 또 어디서, 어떻게, 어떤 이름으로 질기게, 또 한없이 가볍게 만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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