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멜로 서사로 회귀한 허진호

필진 리뷰 2007. 9. 14. 11:41 Posted by woodyh98
2007.09.13


[화양연화]의 차우는 앙코르와트 사원 구멍에 무언가를 말한 후 진흙으로 막는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밥은 샬롯에게 귓속말로 말하고 샬롯은 웃는다.
그러나 [외출]의 마지막, 인수와 서영은 차 안에서 서로 소통하고 공감한다.


들어가는 말.

요컨대 허진호 감독의 세 번째 작품 [외출]은 허진호식 사랑의 전범을 뒤집는 영화다. 그는 이전 작품들, 즉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죽음을 앞둔 남자에게 새로운 사랑의 탄생을 선사하면서 완성되지 않은 사랑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알려주었고 [봄날은 간다]에서는 시간을 개입시키면서 사랑의 담론을 탈신화화 작업으로 풀어내는 놀라운 기운을 보여줬다. 그러나 [외출]은 한마디로 끔찍한 작품이다.

영화는 전반에 걸쳐 왕가위의 [화양연화_ In The Mood For Love]와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_ Lost In Translation] 두 작품 중간에 다리를 걸친 어정쩡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좀더 냉혹하게 말하자면, [외출]은 [화양연화]의 형식을 답습하고 변형시키는데 만 몰두한 영화라고 규정지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감독은 마지막 까지 고민했을지 모른다.

인수와 서영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어쩌면 이 부분만 [화양연화]로부터 자유로웠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따라서 이 비평은 [외출]이 어떤 방식으로 [화양연화]의 관습과 형식을 답습했고 어떻게 변형시켰는지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또한, 오는 10월에 개봉 예정인 허진호의 신작 [행복]과의 만남을 앞둔 시점에서 전작의 오류를 복기해보려는 목적이 있기도 하다.



 

하나. 낯선 장소

[외출]은 교통사고를 당한 불륜남녀의 배우자가 병원에서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자는 조명감독 인수(배용준 분)이고 여자는 평범한 주부인 서영(손예진 분)이다. (영화에서는 분명 서영이 자신의 입으로 살림을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영화사이트마다 그녀의 직업을 중학교 교사로 표기하고 있음은 황당한 일이다.) 그 둘은 삼척이라는, 병원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만나게 된다. 또한 피해자의 장례식이 있는 낯선 마을에도 함께 하고 있다.

[화양연화]속 차우(양조위 분)와 리첸(장만옥 분) 역시 각각 낯선 공간으로 이사를 오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두 영화의 친연성을 말하는 주장하는 것은 억지일 것이다. 공간이란 사람의 감정을 낯설게도 하고 익숙하게도 만든다. 비록 처음만난 사이일지라도 공간이 주는 의미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낯선 공간에서 만난 남녀를 지배하고 그들을 환기시키는 것은 그들이 놓여진 공간이 갖는 상징성이다.

두 영화 속 주인공이 낯선 장소에서 서로를 만난다는 것을 동질성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후에 펼쳐지는 내러티브 방식까지 감안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화양연화]의 남녀와 [외출]의 남녀는 동일한 방식으로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면서 스토리를 끌어간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카메라와 미장센, 음악까지 모두 한 패가 되어 협조하고 담합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두 영화 모두 소통불능과 거리두기를 낯선 공간 안에 집어넣음으로써 사랑의 서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둘. 소통의 부재

리첸과 차우는 각각 자신들의 배우자와 소통의 부재를 겪는 사람들이다. 영화 속 그들의 배우자는 목소리만 들려지거나 뒷모습으로 표현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외출]의 두 남녀 역시 배우자와의 오랜 시간 소통불능을 겪어온 사람들이다.

인수와 인영의 배우자들은 서로 문자메시지를 통해 교류해왔고, 대학서클에서부터 소통해온 관계였다. 그들은 사고 이전부터 수 없이 만나 밀회를 즐겨왔을 것이다. 영화는 이들의 밀회장면을 찍은 모습만 보여줄 뿐, 인수와 서영이 각자의 배우자와 행복했던 시절의 어떤 단편도 플래시백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이 배우자와 오랜 시간동안 소통의 불능을 겪어왔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소통의 불능은 거리두기로 이어진다. [화양연화]에서 리첸과 차우는 상대 배우자의 역할을 연기하면서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외출]의 인수와 서영 역시 한 동안을 감정의 절제를 통해서 수위조절을 하려 애쓴다. 병원과 모텔에서 수 없이 마주치지만 눈인사를 주고받는 정도에서 그칠 뿐이다.

그러나 이글거리는 욕망은 애초에 예견된 대로 변곡점의 등장만을 기다리는 듯 하다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서영은 횟집에서 본색을 드러내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그냥 사귈래요?” “복수하게요” 이렇듯 [화양연화]가 욕망을 연기하고 앙코르와트에 진흙으로 막았던데 반해 [외출]은 욕망을 연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현재화시킨다는 차별화를 통해서 결말을 미리 암시하고 있다.


셋. 미장센 또는 벽

[화양연화]에서의 미장센은 등장인물을 한쪽 공간에 배치시키는 의도적인 프레임 안에 있었다. 다시 말해서 등장인물 뒤에는 벽이 있었다는 말이다. 벽을 배경으로 한 미장센으로 인해 인물들의 고독은 더욱 깊게 다가왔고 이때 벽은 소통하기 힘든 대상의 은유로 사용되었다. 마찬가지로 [외출]에서도 비슷한 미장센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인수와 서영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보면 그들은 수술실 벽을 배경으로 나란히 앉아있다.

또한 식물인간인 채로 누워있는 각기 배우자들 병상에 앉아 있는 장면이 거듭나오고, 일반병동으로 옮겨진 이후에도 계속된다. 또한 피해자에게 조문을 다녀오던 날, 서영은 들판을 바라보며 통곡한다. 인수 역시 한쪽 곁에 서있을 뿐이다. 낯설고 생경한 땅, 삼척이 주는 모든 기운들은 그들을 더욱 고립되고 소통불능의 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 벽과 말 못하는 중환자와 낯선 땅이 주는 의미는 동일하게 사용된다. [화양연화]가 이러한 미장센을 통해 욕망의 연기를 가져왔다면, [외출]은 정반대로 기능하고 있다. 즉, 소통불능의 절박한 상황에서 간절한 소통의 욕망을 환기시키면서 둘의 관계를 급진전하도록 개입하는 장치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넷. 카메라 기법

[외출]이 [화양연화]의 영화작법을 차용한 흔적이 가장 농후하게 나타나는 것은 카메라 기법이다. [화양연화]에서 카메라는 편심초점_ Shallow Focus를 (두 명의 등장인물이 있는 경우 한쪽은 분명한 클로즈업을 사용하고 한쪽은 흐리게 처리하는 방식) 번갈아 사용하면서 소통의 부재와 욕망을 표현했다. 또한 남녀가 나란히 있는 장면에서도 수평적 위치를 고수하는 카메라는 인물의 심리를 대리하면서 완전한 소통의 불가능을 환기시켰다.

[외출]에서 카메라 역시 편심초점을 사용하면서 그들의 소통부재를 표현하고 있다. 인수와 서영이 가까워지기 이전까지는 계속 편심초점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들이 욕망을 실현한 이후에는 오히려 수평위치에서 촬영된 장면이 대부분이다. 이것 역시 그들의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오는 불완전한 소통을 읽게 만드는 카메라 연출방식이다.


다섯. 욕망의 연기(延期)와 사랑의 서사

[화양연화]에서 리첸과 차우는 호텔 2046호에서 함께 무협소설을 쓰며 삶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욕망을 연기하고 사랑의 서사를 탈신화화 시켜버린다. 기존 사랑의 서사가 무엇인가.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장애물을 만나지만 이를 극복하고 사랑을 완성하는 관습을 통해서 영화는 사랑의 서사를 낭만적이고 극적으로 그려왔다. 대체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멜로드라마는 이러한 서사적 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왕가위를 비롯한 몇몇 감독들은 사랑서사의 탈 신화 작업을 계속해왔다. 이것은 허진호의 이전 작품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었다. 즉 완성되지 않는 사랑, 장애에 막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주인공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영화는 사랑이 변할 수 있음을 환기시켜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완성되지 못한 사랑은 좌절된 사랑이 아닌, 연기된 사랑으로 해석될 수 있음도 일깨워주었다. 그러하기에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말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대사는 참으로 어리석은 소년의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그것은 낭만적 사랑의 신화를 믿는 순진한 청년의 질문이다. 한국영화 속 어린남자는 여자에게 부담스런 존재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당대의 사랑은 변한다. 변하기 때문에, 절정에 순간, 손에서 미끄러지기 때문에 더욱 매혹적인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떨어지는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을 가진 이들은 사랑의 변심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사랑이 목마르다고 외치고 있다.


여섯. 신화로의 회귀 규명과 배용준

그러나 [외출]에서 허진호는 전작에서 보여준 탈신화화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마지막까지 고집하던 방식을 영화 엔딩에 이르면 슬그머니 내려놓으면서 항복을 하고 만다. 그렇다면 사랑의 담론을 풀어내는 방식이 탈 신화에서 신화서사로 회귀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감독만이 알 수 있는 일이겠으나, 명백한 것은 주인공인 배용준을 배제하고 이 숙제를 풀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배용준이라는 연기자는 영화와는 썩 적합지 않은 인물이다. 대사와 동선에서 영화배우보다는 탤런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라기보다는 스타에 가까운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부드럽고 달콤한 미소와는 거리가 먼 내면의 연기가 필요했던 이 영화에서, 사랑과 증오와 분노와 욕망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기에는 각인된 그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는 흔적은 곳곳에 보이지만 오히려 감정의 과잉을 낳으면서 내러티브가 엉성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또한 이유 없이 롱 테이크로 처리해야 하는 장면이 많아지면서 단발로 튀어나오는 어정쩡한 대사의 반복은 감정의 연결고리가 끊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지나치게 긴 호흡을 감당하기에는 배용준과 손예진의 연기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아니 애초에 캐스팅미스라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게다가 많지 않은 대사들 중 결정적 대사들을 의미 없는 장면에서 심각하게 쏟아냄으로써 스스로 스포일러를 유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서울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강변을 걷던 장면을 보자. 여기서 서영은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라고 말하면서 마치 둘의 관계가 씁쓸하게 끝날 것처럼 암시하지만, 봄이 오고 화분을 산 그녀는 인수에게 화초를 건네는 장면에서 “이거 죽이면 안 돼요” 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인수에게 있음을 전달함과 동시에 둘의 관계가 허망하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만들고 있다.

아마도 배용준의 팬들은 인수가 두 번 씩이나 같은 아픔을 겪게 되길 원치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인수와 서영이 최종승자가 되어 서영의 말대로 달콤한 복수극에 성공하기를 원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95%를 지배한 드라마구조를 한 순간에 뒤집는 엔딩 신은 어떤 이유로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것이 허진호식 사랑의 담론이라면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출]은 강원도 삼척이라는 바닷가의 외진 병원과 모텔을 오가면서 변두리가 보여주는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 불륜의 배우자를 둔 남녀의 사랑을 표현함에 있어 첫사랑의 떨림 같은 순수함을 배가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오히려 도회지보다는 변두리의 정경이 설득력 있을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의 재현방식을 통해서 21세기 코드를 풀어내려 했다는 것은 전혀 허진호 답지 않거니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영화의 배경은 갓등이 있는 오래된 모텔의 객실, 메모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1980년대 인테리어 방식을 차용한 ‘자전거도둑’이라는 카페, 죽서루 근방의 횟집 등이 주 무대이지만 그들의 화법은 80년대 대학미팅에서 오가던 대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묻고 대답하고 다시 같은 질문을 상대에게 묻는 반복질문 방식을 도입하면서 마치 사랑에 눈뜬 초심자처럼 인물들을 포장시켜 놓는 것이다. 체로키 지프로 이동하고 핸드폰으로 소통하는 시대를 사는 그들에게 가슴 떨리는 사랑을 빙자한 어설픈 화법은 영화를 완전히 망쳐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대사가 없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영화이다. 분명, 대사가 불필요한 영화였다.

나가는 말.

낭만적 사랑이던 불륜의 사랑이던 금기된 사랑이던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허진호는 [봄날은 간다]를 통해서 ‘낭만적 사랑은 허구’라고 외쳤다. 그런 그가, 전작의 상처를 이기고 새로운 외출을 시도한 [외출]속 주인공을 통해서 ‘이런 사랑도 있다’라고 설파한다.


 봄 눈
      정 호 승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랑아


하지만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을 애써 정당화하려는 우를 범해버렸다. 어차피 극복될 수밖에 없는 장애요소로 인수의 장인을 등장시키고, 아내를 병상에서 일으켜 세우며 서영의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낸다. 게다가 영화의 영어제목(April snow)처럼 4월에 눈을 내리게 하더니, 그 둘을 다시 강원도행 지프 속으로 밀어 넣는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다. 장애와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의 완성을 이루기에는 그들의 처한 현실이 너무도 절박했고 소통의 필요성과 욕망의 해갈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것은 거의 없었다. 둘만 잘 하면 그만인 환경 아니었던가. [외출]은 갖은 카메라 기법을 동원해 한껏 긴 호흡으로 감정의 순간을 포착하려 애쓴 것 말고는 도무지 생각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배용준에게 치중된 장면 위로 의미 없는 대사가 흩날리는 ‘이발소 그림’ 같은 영화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허진호 감독의 차기작품을 기대하는 것은 [봄날은 간다]에서 보여준 사랑의 담론이 한 귀퉁이서나마 여전히 가쁜 숨을 내뱉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뿐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158,883
  • 6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