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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보이] 박해일만 보고 싶었다

필진 리뷰 2008. 10. 6. 14:57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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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모던 보이>를 보고 나온 직후, 뾰로롱 울리는 문자 메세지. 익숙한 번호가 내게 묻는다. '그래서 정지우, 기본은 했드나?' 나는 바로 답장을 똑똑 거리며 입력했다. '재밌는데 김혜수는 좀 아니야. 김혜수는 미스 캐스팅 같아.' 영화가 끝난 직후, 스탭롤에 묻혀가는 것은 조난실의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를 잊게 하는 것은 이해명의 잔상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오로지 박해일의 모습만 보고 싶었다.

해명은 사랑을 통해 광복을 꿈꾸고 난실은 사랑을 통해 살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고부터 각자가 목표해오던 삶을 내동댕이 칠 만큼의 파워를 얻는다. 하지만, 영화는 본질적으로 변해버린 두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변모하는 과정을 담는다. 때문에 난실은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올곧이 실행한다. 영화에서 가장 큰 변화를 끌어낸 인물은 해명이다. 시종일관 유쾌하지만 어리버리한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그의 얼굴엔 '조국'이나 '해방'과 같은 단어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일원으로 매일 근무를 충실히 하고, 어려서부터 일본인이 되고싶다고 하던 소년이었으며 일이 끝난 후엔 친한 일본인 검사와의 한 잔 술에 만족하는 남자다. 해명의 중점은 단 하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번지르르하게 치장하는데 공을 들이는 방법이 다. 젠틀하고 신남성적인 면모가 풀풀 풍기는 그의 양복 사이로 어느 날 난실이라는 여성이 손을 내민다. 난실, 혹은 로사, 혹은 나타샤를 만난 해명은 그 순간부터 자신이 제외되었던 역사 속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한다.

해명과 난실의 로맨스가 광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돌파하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모던 보이>는 적재적소에서 눈물을 자극하는 연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결코 간드러지거나 작위적이지 않다. 태극기와 일본이라는 소재를 통해 연인의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상황은 결국 피를 끓게 하는 역사가 만들어 낸 것이다. 해명은 난실을 향한 애정 하나로, 자신이 가졌던 모든 권력을 배반당하고 도둑질당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마음 속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것은 대한민국의 해방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살게 했던 것도 자신이 태어난 조국의 자유가 아니다. 경성의 지도를 펼쳐 난실과의 데이트 코스를 짜는 해명의 머릿속에는 온통 한 여자만 존재한다. 해명이 스스로 테러리스트를 자처해 천황 앞에서 태극기를 뽑았다면, 그것 역시 난실의 그림자가 해명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모던 보이>는 친일정권과 반일정권을 앞세운 독립 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영화는 해명이라는 인물을 이용해 비참한 현실과 과거를 보여주는 것 대신, 한 남자의 자각을 다룬다. 만약 이 영화가 독립열사에 대한 명백한 정보와 비장한 각오를 다짐하게 하는 것이었다면, 감칠 맛나는 박해일의 연기는 저멀리 묻혔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던 보이>는 안정적인 굴곡으로 이야기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부담없이 관객의 눈과 귀로 파고든다. 곱씹어 볼 맛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모던 보이>의 모든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동의할 수 없었던, 그리고 유일하게 옹호할 수 없었던 것은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가진 난실의 캐스팅이다. <시카고>에서의 캐서린 제타존스를 생각나게 했던 그녀의 외모는 분명 해명이 정신을 빼앗길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아리따운 외모와 매혹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난실은, 특별한 춤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남자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그러나 난실과 해명, 그러니까 김혜수와 박해일이 투 샷으로 잡히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난실이라는 인물의 캐스팅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해명이라는 인물과 난실이라는 인물, 따로 떨어져있을 때는 너무도 완벽하게 빛을 발하는 주인공들이지만, 정작 두 사람이 합쳐질 때 난실의 기류는 해명을 누른다. 이 순간만큼은 박해일의 위트도 소용이 없다. 시선이 해명에게 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산된다는 것이다. 고혹적인 여성의 역할을 하기에 여전히 김혜수는 제격이라는 평을 얻지만, <모던 보이>에서만큼은 아니었다. 그녀의 열연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박해일과 김혜수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극장을 나오면서 차라리 엄지원을 캐스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해명이 감당하기엔 난실의 무게가 너무 크다. 이건 연기력의 우위를 따지자는 말이 아니다. 독립 투사로 평생을 살아온 난실이라는 여성의 이미지를 김혜수가 연기하기엔 조금 버거운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타짜>와 같은 이미지를 바랬던 관객들은 상당수 후회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박해일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한 표를 던진다. 애초 인상 팍 쓰고 모자 꾹 눌러쓴 박해일의 이미지를 기대하고 들어갔던 나는 뜻밖에 폭소를 자아내는 그의 표정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모던'한 사내가 제법 어울리는 박해일의 연기를 보기 위해 <모던 보이>를 찾았다면 아마도 당신은 엄청난 만족을 선사받고 극장을 나섰을 것이다. 가볍지만 진부하지 않은 로맨스, 혹은 역사물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 마지 않는다. 아니, 사실 <모던 보이>를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다. 보조출연으로 단상에 오른 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개인적인 경우에는 난실 역을 맡은 김혜수, 그녀가 걸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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