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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둠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빛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은 어머니와 천재들이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페드로 알모도바르


“원우랑 같이 고민하고 같이 바다로 갔으면 좋겠다“



백건영 : 전주 국제 영화제 한국 장편 경쟁에서 상영이 됐었는데, 반응이 어땠나?

최지영 : 그때 나는 길이 막혀서 관객과의 대화에는 참석을 못했고 배우 네 명이 GV를 했다. 바로 직후에 그 영화를 보셨던 분들이 블로그에 배우들과 GV를 했던 것을 상세하게 올려놓으셨더라. 처음 공개되었기 때문에 편집이나 사운드에도 미흡한 점이 많았는데 좋게들 봐주셔서 고마웠다.

일반 시사도 있었다. 그때 반응은 어땠나?

그때도 자리에 참석을 못했다. 후반 작업 중이어서 시사회 보러 온 관객들이 극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다시 작업하러 갔었다. 일반 시사 반응도 좋았다고 들었다. 두 군데서 시사를 진행했는데 중앙시네마에서 했을 때는 스텝들이 많이 오셔서 좋은 말들 많이 해주셨다.

후반작업 얘기를 했는데, 어떤 점이 맘에 안 들어서 계속 수정 한 건가?

전주에서 틀었던 게 최종본이 아니었다. 편집이나 사운드는 하는 데까지 해서 가자라는 생각이었고, 전주 다녀와서 지금까지 계속 수정을 좀 했다. 사운드 같은 경우는 큰 공간에서 틀었을 때 디테일한 부분들에 문제가 있어서 다시 수정하느라고 시간이 좀 걸렸다.

개봉 후에 또 수정할 생각이 있는지?

DVD 나올 때 할 수도 있는데...(웃음)


장편 데뷔작이다. 첫 장편이라서 부담이나 남다른 각오가 있었을 것 같다. 단편과는 달리 박지영, 김영재 등 알려진 배우들과 작업을 했는데 장단점이 있었을 텐데.

단편과 장편작업의 가장 큰 차이는 학교에서 작업을 하고, 나와서 하고의 차이 같은데... 인디스토리의 곽용수 대표님에게 이 영화 작업의 제안을 받은 게 작년 8월 말이었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었는데, 조건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12월 안에 다 찍어야 하고, 모든 과정이 방송통신위원회 규정 같은 게 있어서 제작비가 2억 5천만 원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지나고 나서는 PD님이 어려운 상황인데 좀 겁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때 당시에는 영화 찍는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단편을 찍을 때는 나에게 영감이 떠오르는 것, 내가 쓰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었는데, 기면증에 걸린 아이의 성장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그렇게 주어진 이야기를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조건 안에서 얼마만큼 뽑아낼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그것에 몰입하고 진정성을 끌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앞으로 연출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했었다. 이 경험이 모험이 되고 만약 잘 안됐을 경우 앞으로 못 찍게 되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잘해내면 스스로 많이 컸다, 라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영 선배님과 김영재 씨 같은 경우는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 특별히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쓰는 스타일이 아닌데 시나리오를 쓰고 모니터링을 할 때 주변 분들이 아, 연희는 박지영이야, 이런 식의 말들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캐스팅을 할 때도 박지영 선배님 말고는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베트남에 계신 분한테 이렇게 작은 영화를 부탁드리는 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라는 생각도 있었고, 박 선배님이 안하시면 다른 분은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흔쾌히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저도 20년 베테랑이신 분과 처음 작업을 해보는 것이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기가 세 보이는 부분도 있고 내가 제대로 준비를 못하고 급하게 들어가는 부분도 있고 해서 현장에서 휘둘려지면 어떡하나 걱정도 많이 했는데 박지영 선배님이 시나리오를 좋게 보셨다. 자신도 딸을 키우고 비슷한 연령이시니까.

처음 오셨을 때 저에게 “앞으로 이런 얘기는 더 이상 안 할 텐데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낀 부분인데 이런 부분은 이해가고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가. 40대 여자는 이렇지 않아. 제일 위험한 것은 모르는데 아는 척 하는 거야.” 그런 식의 말씀을 해주셨던 것도 많이 고마웠다. 처음에는 ‘이분이 나를 간보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좀 지나서는 ‘이 사람이 나에게 자신을 맡겼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좋았었다. 큰 어른에게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영재 씨 같은 경우는 <사랑니>에서의 이미지가 좋았다. 그런데 똑같이 하면 그분이나 저에게 좋을 게 없었다. 그래서 좀 다른 부분을 보기를 원했었다. 물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늘 그런 것, 저 사람이었어? 이런 느낌 좋았다. 사실 좀 힘든 캐릭터였다. 모든 캐릭터들은 저의 한부분이 투영되었는데 선재 캐릭터는 제가 제일 다가가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모녀의 다리 역할도 해주시면서 역할이 잘못하면 느끼할 수도 있고 그래서 노선을 타는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했었다.

혹시 박지영 씨 때문에 시나리오가 바뀐 부분이 있나?

큰 부분은 아닌데 디테일한 것 같은 경우, 예를 들면 놀이터 신에는 약간 계절감 같은 게 있어서 원우가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감기가 아니라 넘어져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오는 게 맞지 않겠냐?”라고 하셨다. 그리고 와인 바에서 친구 정아를 만나서 얘기할 때도, “내 나이쯤 되면 친구만나는 게 진짜 베스트나 꼭 가야되는 모임 아니면 친구 만날 일이 없어.” 그러셨다. 대사 같은 경우는 “이게 어떤 뉘앙스야?” 이렇게 물어보시고. 그런 면에서 디테일한 부분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순간 순간 고마웠다. 내가 아직 경험이 없으니까.

주인공 원우 역의 김예리는 오디션을 본 걸로 아는데, <푸른 강은 흘러라>를 보면서 묘한 매력을 지닌 배우라고 생각을 했다. 원우 캐릭터에 맞겠다고 생각한 이유를 함축적으로 얘기한다면?

한마디로 깡이 좋다. 예리의 경우는 <기린과 아프리카>를 촬영할 때 내가 하루 도와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쟤 참 잘한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 준비하면서 배우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오디션을 보면서 예리가 참 많이 생각이 나더라. <푸른 강은 흘러라>도 봤고, 예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 크로스가 됐다. 예리도 우리한테 연락을 해왔고, 나도 PD님께 예리를 한번 봤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그런 인연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사실 리딩하면서 배우들이 잘한다, 못 한다 잘 모른다. 그런데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라는 대사를 예리가 울면서 했을 때, 내 마음이 뭉클했다.

이제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최 감독 영화를 보면 단편에서부터 장편까지 감독의 실제 어머니가 계속 등장을 하는데, 그걸 보면서 나는 ‘최지영 감독이 자기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계속 영상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해 이것은 개인의 기록이자 추억이면서, 기억인 모든 것을 총괄하는 작업인데 <산책>과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바다 쪽으로, 한 뼘 더>까지 이것을 모녀 3부작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계속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좀 했었다. 감독의 생각을 듣고 싶다.

기록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 <비밀과 거짓말>은 모녀 얘기는 아니었으니까 삼부작까지는 아니고, 지금 사실 하나 더 모녀 얘기를 생각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훨씬 더 개인적인 것이고 어떻게 보면 더 비주류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게 정말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런 부분에서 고민되는 부분도 있다. 그 작품이 정말 만들어진다면 엄마와의 기억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제 개인적인 욕망일 수도 있다.

단편 <산책>에서는 어머니와 딸이 나오고, <비밀과 거짓말>은 모녀 얘기는 아니지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데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에서는 삼대 모녀의 이야기로 확장 된다. 단편의 어머니들이 수동적이고 고전적인 스타일이었다면 장편에서는 그 자식들이 성장을 해서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는 엄마의 모습이 나오고, 원래 어머니가 가지고 있었던 방식에서 한 단계 진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리뷰 쓴 것들을 읽어봤더니 멜로드라마, 성장 드라마 등 여러 가지 정의를 하고 있는데, 나는 <바다 쪽으로 한 뼘 더>를 ‘엄마의 성장 드라마’로 봤다. 왜냐하면 감독의 어머니가 단편부터 계속 출연하고 있지만 특히 이 작품에서 가장 대사가 많고 또 그 대사들이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성장 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의 어머니는 서여사로 지칭되는데 다른 단편에 비해 유독 대사분량을 늘린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이번 영화에도 엄마가 나와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연희 역할을 할 수는 없으니까... 할머니라도 나와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10대 딸과 엄마가 나오는 영화들, 그런 영화에서 보여 지는 엄마들의 성숙한 모습, 그러니까 너무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모습들이 싫었다. 내가 알고 있는 고등학생 키우는 엄마들은 그렇지 않은데...그 사람들도 애 키우는 법을 배우면서 같이 자라고 있는 설정이 더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대체로 할머니라는 존재는 집안에 있는 듯 없는 듯 오래된 가구처럼 있으면서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건 아니지만, 필요에 따라 특정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 서 여사의 역할도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삶이란 것에 대한 깨달음과 통찰의 말들을 나의 엄마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산책>에서 좋았던 장면 중 하나가 엄마가 전화를 안 받자 집으로 가는 기찻길 건널목에 서있는 장면이다. 단편들을 보면 인물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들에 꽤 시간을 쓰고 있는데,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에서는 제목처럼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가는 것 때문인지 집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많다.

얘기를 들으니까 그런 것 같다.(웃음) <산책>같은 경우는 그런 이미지들이 많이 있었다. 이 아이가 집에 있을 때는 어떻고, 밖에 있을 때는 어떻고, 집에 오는 길에는 어떻다. 내 경우도 학교에서는 즐겁다가도 집에 오면서 점점 표정이 굳어지는 그런 경험이 있었다. 어떤 갑갑함 같은 것. 전체적으로 그런 길의 느낌들이 <산책>에 있다. 길이라는 게 끝도 없고 가는 게 정처도 없고 가다보면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만나고 그런 게 사는 거 아니겠어? 그런 느낌들이 있었다.

지금 사는 곳이 혹시? 한옥인가.

남양주에 살고 있는데, 한옥은 아니다. 그냥 일반 주택이다.

영화에 나오는 그런 구조는 아니겠다. 영화에서 마당이 있는 집이 나오는데. 단편에서도 그렇고 집들이 다 현대식 구조가 아니다.

그건 나의 로망이다. 아파트를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지금도 늘 땅 사서 집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대목을 배워서 10년에 걸쳐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데(웃음) 그냥 그런 집들이 좋다. 그 자체에 이야기가 있는 것 같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그런 얘기들이 좋다. 아파트 같은 경우는 잠깐 살아봤는데 너무 너무 싫었다. 대부분 사람들의 집이 점점 아파트가 되어 가는데 골목이란 단어도 없어질 것 같고, 마당이란 단어도 없어질 것 같다. 뜰이란 단어도 그렇고. 초등학생들이 이 단어를 알까? 그런 것들이 슬프다고 생각했었다. <비밀과 거짓말>과 <바다 쪽으로...>는 암사동에 있는 집인데, 그곳은 개발제한구역이어서 집들이 그냥 남아있는데, 나는 그 동네가 좋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지키고 싶은 공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카메라 테크닉의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예를 들면, 원우가 빌딩 옥상 모서리에 앉아있는, 위태로운 아이의 모습 같은 장면은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장면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더라. 영상 테크닉을 애써서 피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콘티 짤 때는 이동하거나, 포커스는 어떻게 하거나 등등, 이런 거 생각하는데, 막상 현장 가서 찍을 때는 그런 것들이 너무 이상하다.

이상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평소에는 화장을 안 하는데 진하게 화장을 한 듯한 그런 느낌이다. 나도 <매트릭스>같은 영화도 좋아하는데 보는 것으로써 좋아하는 것이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마치 너무 예쁜 여배우를 볼 때는 예쁜 것만 보느라고 연기에 대해서는 생각이 안 든다는 그런 느낌 있잖나. 영화도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싶다. 장면이 너무 예쁘고 현란하다 보면 거기에 빠져들어서 인물한테 몰입이 안 되고 인물의 감정을 놓치는 게 아닌가. 나는 인물이 잘 보이는 그러니까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원우라는 아이, 연희라는 사람한테 몰입이 돼서 따라가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배제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미국(텍사스)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쪽에 연고가 있었나? 어떤 공부를 했나.

연고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연출 전공을 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영상원에서 공부를 마쳤더라. 미국과 한국의 영화교육, 어떤 차이점이 있나?

커리큘럼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 것 같다. 미국은 굉장히 몇 년을 계속 답습하는 것? 그래서 늘 이 과목은 이 과목에 대해서 첫째 줄, 둘째 줄, 셋째 줄은 계속 똑같은 레퍼런스와 그런 식의 과제물로 진행되는 부분이 있는데, 영상원은 같은 영화 연출이라고 해도 어떤 강사, 어떤 감독님이 오시느냐에 따라서 차이들이 많이 난다.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미국 애들이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웃음) 처음에는 어떤 과든지 한국 아이들이 앞서 나간다. 게다가 똑똑하고 성실한데, 아마도 남의 나라 와서 잘해야 한다는 그런 것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이라도 실수 하는 걸 두려워한다. 반면 미국 아이들은 계속 뭔가를 저지른다. “쟤는 학부 때 뭐했기에 아직도 저러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것에서 뭔가를 깨달아서 다음 과정에서는 뭔가가 튀어나오는 걸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연출을 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나?

이것만 하고 있다.(웃음) 이제 또 새로운 시나리오를 쓸 거다.

영화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영화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당연하다는 것은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건가?

그런 것 보다는 어렸을 때 아버지랑 같이 영화를 많이 봤다. TV에서 하는 영화도 많이 보고, 영화 얘기 하는 거나 영화배우나 영화감독을 외우는 걸 되게 좋아했었고, 다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중학교를 가니까 좀 다른 거다. 그리고 결정적이라고 해야 되나? 중학교 1학년 때 <마지막 황제>를 단체 관람 했었는데, 성안에 갇혀 있는 부이가, 밖에서 사람들이 행진하는 소리 때문에 마당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귀에 진동을 통해 느끼는 장면이 있다. 이때 카메라가 담장을 넘어가면서 사람을 비추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 쇼크를 받았다. 이때부터 영화에 대한 생각을 막연히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프란시스 코폴라의 <드라큘라>를 보면서,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소재, 같은 캐릭터인데 풀어내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자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에는 여러 가지 분야가 있는데 연출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전에는 그저 만드는 작업을 좋아했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좋아했는데, 그런 것보다 영화 만들기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이랑 공동 작업을 하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보다 훨씬 힘들고 어렵더라. 처음 영화를 만든 게 99년 한겨례 문화센터 6개월 영화 연출 과정인데, 사람들과 같이 작업을 하는 게 마냥 재밌지는 않더라. 그 때 좀 고민이 됐다. ‘이렇게 사람들하고 계속 부딪혀야 하나.’ ‘사람들 생각이 이렇게 다 다른데 과연 재밌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영화를 찍는 일이라는 게 각 부서의 장들이 있고 그들과 얘기를 하는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 힘들 일은 아니다. 또 내가 그걸 그렇게 싫어하거나 못하는 건 또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감독의 파워가 전지전능한 면이 있었던 반면 산업화 분업화되면서, 영화가 감독의 것이 아닌 제작자의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는데, 연출자 입장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불만도 있을 것 같다.

어떤 느낌이냐면 내가 마린보이가 된 느낌? 내가 저 바다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딱 오니까 채가는 느낌. 그런 게 있어서 다소 아쉽기도 하다.

올 해 <워낭소리>가 사상 초유의 히트를 했다. 독립 영화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굉장히 높아진 게 사실인데, <낮술> <똥파리> 같은 후속작의 성적도 나쁘지 않다. 이런 흐름에 최 감독의 영화가 뛰어 든 셈인데 흥행에 대한 부담은 없는지?
솔직히 별로 없다. 내가 욕심 부려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안 달 복달해 봤자 바뀌는 게 아니면 그냥 진인사대천명 같은 느낌으로 기다리는 거다. 나는 목숨을 걸고 찍었다. 관객들이 많이 찾아와주시고 공감해주시고 칭찬해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이 큰 데, 그 장을 내가 다 만들 수는 없잖나?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 놔도, 그게 좋은 진열장에 있고 큰 마트 안에 있지 않는 한, 사람들이 쉽게 선택을 할 수 없잖은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감수해야 되고, 한 편으로는 이게 연극이 아니니 DVD로도 나올 거고, 매체로 계속 남는 거면, 사람들이 몇 주 안에 못 보더라도 계속 어딘가에서 계속 나올 거라고 믿는다.




단편이나 장편을 살펴보면 ‘병’이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항상 스며들어 있다.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건 아닌가? 기면증도 일종의 짧은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나와 엄마와의 극적인 화해 지점이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을 때였다. 사람들은 모녀사이가 좋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내가 유학 갈 당시 엄마가 병원에서 입원해 혼수상태에 빠지셨는데, 그 때 왜 난 쉽게 되는 게 없을까. 왜 꼭 뭔가를 힘들게 선택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뭔가의 갑갑함 때문에 유학을 선택했었던 건데, 막상 가서 보니 엄마 걱정, 집 걱정이 들었던 거다. <산책>의 경우 미국에서 먼저 시나리오를 쓰고 여기 와서 많이 각색 했다. 죽음이라는 게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언젠가는 한 번은 꼭 오게 되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산책>을 보면 극적이지 않은 극적인 장면 즉 ‘엄마가 칼을 들고 잡상인을 내쫒는 장면’이 있다. 엄마가 가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습인데 감독에게 엄마란 존재는 어떤 건가?

...........가디언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하건 남들이 뭐라고 해도 항상 내 편인 사람.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에서 보면 원우가 “비밀과 거짓말 중에서 뭐가 더 나쁜 거냐”고 묻는다. 뭐가 더 나쁘다고 생각하나?

(웃음) .......글쎄 옛날에는 거짓말이 더 나쁘다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비밀과 거짓말> 찍을 때도 그랬고, 그 비밀과 그 거짓말에 진심이 있느냐 없느냐. 그러니까 무엇을 위한 거짓말과 비밀이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절대적으로 이게 더 낫다 라고는 못 할 것 같다.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에서 원우가 앓고 있는 기면증이란 병 자체가 영화 전체를 굉장히 로맨틱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원우가 기면증이 아닌 다른 병이었다면 굉장히 신파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기면증이 위험하긴 하지만 장면 장면을 굉장히 낭만적으로 만들어 낸다. 게다가 애초에 기면증이란 소재를 시나리오 쓸 때부터 생각한 게 아니라고 했는데, 기면증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나?

케이스 스터디를 하는 동안, 기면 센터 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기면증 관련 카페에 올라와 있는 사연을 보고 내가 마치 환자인 냥 정모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 만나면서 이런 병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조심스러워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고, 그래서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기면증을 앓고 계신 지금은 한 30대가 되신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도 이 병에 대하여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늘 게으르고 나태한 아이로 인식되고 체벌 받다가 그런 상태로 군대까지 다녀왔는데, 그게 알고 보니 병이라니까. 그 동안 자기가 너무 불쌍해지더란다. ‘난 못 난 애가 아니었는데, 단지 그냥 병이 있었을 뿐인데. 난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다.’ 이렇게 자기 위로가 된다는 거다. 혹은 기면증을 앓고 있는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어떤 정도의 고통을 겪는지 몰라서 정모에 참석하고, 단 하루만이라도 내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엄마들을 보면서 연희의 마음이 저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기면증을 앓고 있는 당사자들은 심적 고통이 엄청나거든. 기면증 때문에 전날 최대한 잠을 많이 자둔다거나, 약도 중독성이 강해서 4알 이상 먹으면 위험한데, 그런 약을 4알 이상씩 먹어야 할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분은 운전을 하다가 깨어보니까 사람을 치고 30킬로를 달려갔는데, 도저히 기억이 안 나더란다. 그 때 그 분은 자신이 살인병기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감옥에도 다녀오고, 그나마 병 때문에 감형은 받았지만. 그런걸 보면 이게 낭만적일 수는 없는 거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내가 만드는 것이 다큐가 아닌 이상 그걸 일일이 다 보여 줄 수 없는 거고. 다만 자신들이 병을 받아들이는 그런 과정들이 영화 속 원우한테는 드라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대해 주변 지인들에게 ‘성장영화고 바다가고 끝나.’ 이렇게 말했더니, ‘뻔하구나~’ 하더라. 그런데, 그곳은 아무나 갈 수는 있지만 원우는 가기 힘든 곳인 거다.

우연치 않게 피디님이 공부 좀 하라며 주신 책이 있다. 함민복 작가님의 『눈물은 왜 짠가』라는 소설인데, 소제목에 딱 ‘바다 쪽으로 한 뼘 더’가 있더라. 그 때가 때마침 제목을 고민하던 때였고, 어떻게 성장 영화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또 마침 시나리오의 마지막을 “아이가 한 뼘 더 자라있다.” 라고 써놨거든. 왠지 ‘한 뼘 더’란 단어와 ‘바다’가 매치되면서 ‘이거 좋다!’ 라고 했다. 보통 한국 영화들이 다섯 글자 세 글자인데, 이건 귀에 쏙 안 들어오니까. 곽 대표님도 ‘바꿨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냥 <바다쪽으로 한 뼘 더>로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게 됐는데, 지금은 오히려 제목 예쁘다고 많이 말씀해줘서 기분이 좋다.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다큐멘터리로 찍어도 충분할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다큐멘터리를 해보고 싶은 신 생각은 없나?

내게 영화는 그냥 내러티브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화를 보는데 다 가짜로 보이더라. 모조리 만들어진 상황, 꽉꽉 짜인 상황 이런 것들이 답답하더라. 그런데 또 다시 어느 순간 다큐조차도 감독의 의도에 의해서 편집되고, 그게 진짜 다큐인가 기록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더라. 그래서 이게 꼭 다 진짜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럴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들면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만들어진 얘기니까 진짜 같이 다가 올 수 있는 것을 더 많이 고민 했다. 유학 가서 처음 한 수업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수업이었거든. 엄마가 계속 영화에 나오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미션을 주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다. 엄마는 맨 날 집에만 계시고 단조롭잖나. 특별한 외출을 하던 가, 딸을 위해 특별히 무언가를 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그런 것들이 엄마에게 살면서 이런 것들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산책>의 경우에도 그런 마음이었다. 엄마가 병원에 있었을 때, ‘내가 만약 의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고, 영화감독이라는 게 참 쓸데없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누군가를 살려 낼 수 도 없고, 변호사처럼 누구를 도와 줄 수 도 없고. 이제는 영화감독 딸이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를 가디언이라고 했는데, 그럼 감독에게 영화는 뭘까?

영화는 영화다.(웃음) 어떤 분이 그러더라. 너무 신기하다고, 어떻게 다른 일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이 쭉 영화감독 할 생각 만 했는지. 그렇다고 빨리 시작한 것도 아니고. 정말 영화가 너무너무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내가 되어가는 과정?’ 그런 생각도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내가 무슨 애기를 하고 싶은지 그런 거에 대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그것을 위한 도구인 것도 같고. 하나하나 만들어질 때마다 좋더라.

영화감독으로서의 삶은 만족하나? 생활인으로서 말이다.

생활인의 입장으로는........음....... 이걸로는 생활이 안 된다.

나이가 삼십대 중반을 향하고 있다.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잡은 친구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고, 자기 회의도 빠질 수 있잖나. 뒤늦게 영화를 공부하고 싶고, 감독이 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 말해 달라.

나는 편집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다. 사실 드라마 한 편 편집 아르바이트 한 수입이, 영화연출 수입보다 더 많았다. 이것도 몇 번 하니까 내가 이걸 계속 할 건가. 이러다가 시나리오 쓸 시간도 없고 영화도 못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더라. 또 사람들이 그러더라. 감 떨어지기 전에 빨리해라. 요즘은 그래서 드라마는 이제 좀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쪽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으면 영화 쪽 사람들이 저를 안 찾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시더라. “영화감독은 경마장의 말처럼 딱 차단하고 앞만 봐야 돼. 그런 사람한테 연출을 믿고 맡길 수 있지. 쟤는 연출 안 해도 이거 저거해서 잘 먹고 살 수 있으면 목숨 걸고 안 찍기 때문에 그런 얘한테는 맡기지 않는다.”고. 이제는 드라마 편집은 이제 그만하고, 최소한의 비용은 (저축 같은 건 차치하고) 영어 가르치는 걸로 충당하려고 한다. 편집 자체는 재미있는데, 못 찍은 영상이나 못 쓴 대본을 보면 내가 우울해지니까. ‘내가 찍어도 내가 써도 이것보다 더 잘하는데........’

몇 일전에 학보사 기자랑 인터뷰가 있었다. 끝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래서, “빨리 그만두라고” (일동 웃음) 그랬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러시면 어떻게 해요.” 근데 그게 쉽지가 않고. 그게 너무 늦은 나이에 돌아서기에는 온 길도 아깝고 가야할 길도 너무 멀고, 특히 우리나라는 나이에 대한 커트라인이 너무 많으니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나의 20대가 정말 찬란했나 싶더라. 내가 만든 영화가 깊이가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데, 리뷰 보면 사람들이 너무 쉽게 얘기하니까. 나는 부드럽게 끌고 갈려고 말을 깎고 또 깎고 깎아서 겨우 바다로 데리고 왔는데, 한편으로는 어쩌면 영화는 내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연출자는 그런 과정을 모두 다 합쳐서 같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이 모든 게 연출자가 감수해야 하지만, 한 가지 바램이라면, 단편 영화 제목처럼, 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이 만든 영화에 관한 리뷰는 다 읽어보나?


사실 요즘 기자들이 쓴 리뷰는 별로 안 궁금하다. 몇 개 읽어보니까 보도자료 그런 것 썼더라. 이게 도대체 본 거야 만 거야 그런 것도 있고 (웃음) 근대 요즘 전주 다녀오고 일반 시사회를 하니까. 블로그 같은 곳을 보면 영화 공부한 사람이 어떻게 봤는지 되게 궁금하더라. 내가 특별하고 대단한 얘기를 한 건 아니니까.


당신이 좋아하는 감독이 있다면?

클린틴 이스트우드를 너무 좋아한다. 어쩜 그렇게 뭐 하나 못 만드는 부분이 없는지 놀랍다. 영화감독이라는 게 이런 저런 경험하면서 인생 경험이 있어야지 풍부하게 얘기를 할 수 있잖나. 그리고 또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한다. <산책>에서 엄마가 칼 질 하는 거는 <오하이오>에 나왔던 장면이거든. 그 장면 너무 좋았고, <산책> 찍을 때, 멀쩡한 딸은 못하는데 좀 모자란 엄마는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까. ‘아! 그 장면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니까 잘 맞더라. 사람 사는 얘기에 대하여 지루하지 않게 사람들에 대하여 꾸준하게 어떤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또, 영화가 끝났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이 아니고, 열린 부분도 있고. 그런 부분을 보면서 나도 저런 대가가 되고 싶다.

닮고 싶은 한국 감독은 없나?

옛날엔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동경심이 없다고 할까. 옛날에 영화를 하기 전에는 감독들이 전부 마스터로 보였는데, 막상 학교 들어가서 그랬던 분들에게 배우니까 이제는 감독이라는 부분보다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해졌다. 이제 그래서 인간적인 부분이 먼저 보이더라. 그리고 영화라는 작업 자체가 감독이 혼자 잘났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은 담고 싶은 감독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면서 현장을 잘 이끌어나가는 감독님을 보면, 저런 걸 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감독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솔직히 어떤 느낌이 드나?

솔직히 어색하다.


어색하다는 건 자격의 문제인가.


“입봉하니까 기분이 어때? 장편 만드니까 기분이 어때?”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난 그냥 예전처럼 작업을 하는 것이고, 다만 작업이 좀 길어지고 얘기가 좀 길어졌을 뿐이다. 그런 느낌일 뿐. ‘감독이야!’ 그런 자부심은 별로 없다. 극장에서 개봉하고 TV에서 예고편도 하니까 이제 좀 그런 느낌이 들 긴 한다. 사실 단편 만든 때는 좀 불편했다. 그 때는 아직 학생이고, 그게 직업에 대한 호칭이니까 조금 불편하더라. 그리고 현장에서는 그냥 포지션의 느낌이다. 지금은 약간 아직 내가 직업란에 ‘감독’이라는 걸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일 할 땐 그렇게 쓸 수 있겠는데, 감독이란 직업이 연속적인 일이 아니니까. 쉬는 기간에는 ‘내가 아직도 감독인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그런 것에 대한 어색한 부분이 있어서, 한 세편은 해야지 감독이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 작품에 대한 힌트 좀 주실 수 있으신가?

다음번은 아들과 아버지........ (웃음) 글 쓰는 사람이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뭔가에 한 번 꽂힐 때가 있잖나. 두 가지를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는데, 둘 다 실제 있었던 얘기고, 둘 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끝으로 관객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예 노골적으로 관객들에게 제 영화를 이렇게 봐주세요. 그렇게 말해주면 더 좋겠다.


원우라는 아이가 연희라는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도 성장을 하고, 자신이 가진 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이랑 잘 지내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 그 과정에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전사를 알면 알수록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인물들이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묘사하고 인물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하여 관객들이 더 인물에 더 몰입을 하고, 그것을 통해 ‘저 여자 배우가 기면증을 연기하고 있구나.’ 그런 것이 아니라. ‘쟤 어떡하면 좋아’ 그렇게 하면서 원우랑 같이 고민하고 같이 바다로 갔으면 좋겠다.






일시: 2009년 5월 21일 오후 5시
장소: 인디스토리 사무실
진행: 백건영 편집장
사진, 녹취 정리: 이영 선임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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