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장원
역시 신동일이었다. 어쩌면 홍보된 것처럼 이주노동자와 여고생의 로맨스라는 말랑말랑하고도 얄팍한 소재주의의 노선을 따라갔다면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과연 의미를 찾을 수는 있었을까? 누군가는 선정적이며 확 끌리는 것들을 기대했겠지만 감독은 철저하게 그들의 기대를 배반하며 자신이 그동안 닦아왔던 노선을 확장시킨다. 그것이 바로 감독의 힘이고 그를 혹은 그의 영화를 애타게 기다렸던 관객이 받을 수 있는 감흥이다. 그래서 신동일의 세번째 영화 <반두비>는 혼란스럽고 불만가득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꼭 봐야할 작품이다. 누구도 말 못하지만 누군가는 말하여야만 하는 이야기를 용기있게 감독은 풀어내었고 소재주의에 함몰될 수 있는 유혹을 당당히 떨쳐 내고 자신의 말을 분명히 한다. 그와 같은 노선을 달리는 관객은 그의 열렬한 응원자가 되어 함께 행동하며 그처럼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우리들이 분출하고 싶은 감정들을 무수히 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일 감독은 전작에서 보여진 것과 같이 '관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소수종교를 믿으며 전쟁을 거부하는 청년과 사회적으로 타락한 대학강사의 관계를 그리는 데뷔작 <방문자>에서나 부인보다도 더 강렬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남자와 그의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보면 그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데 있어서 상당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번째 작품 <반두비>도 예외일 수 없다. 그의 장기를 십분 살려 민서와 카림이라는 인물의 '관계맺음'을 그리고 있다. 그가 보여주는 인물들의 '관계'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서로가 그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임을 각인시켜준다. 어떤 여고생이 말도 피부도 다른 외국인 노동자를 좋아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의 영화 안에서는 불가능은 곧 가능이 되고, 소수자의 시선이 곧 다수의 생각이 된다. <방문자>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감옥에서의 면회장면이 등장하는데, 두 장면 모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인물들의 관계가 이제는 서로에게 한쪽 구석을 채워주는 관계로 발전했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 장면은 이 영화에서 엔딩장면만큼 값지고 감동적인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감독은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부터 세심하게 매만져 왔던 '계급'에 관한 문제도 인물들의 '관계맺음' 못지않게 이 영화에서 부각시키고 있다. 달콤하며 씁쓸함 가득한 상류사회로의 진입 욕망을 그렸던 전작과 달리 이 영화에서의 상류사회의 모습은 모순, 그 자체이다. 상류사회의 모습은 다층적으로 표현되는데 부패한 정치인, 타락한 교사, 외국인 노동자를 부려먹는 공장 사장등을 통해서 변주된다. 하지만 하나같이 제대로 된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며 정치적,사회적 시선에 두 눈을 치켜 뜨고 마주선다. 그것을 모두 아우르는 감독의 시선은, 물론 인물을 묘사하는 것처럼 따스하고 온화한 배려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감독은 불온함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소녀의 모습을 통해 '계급'이 생김으로써 파기되는 모순덩어리의 모습 역시도 세밀하게 관찰해 낸다.

뉴타운 건설의 페해를 말하는 술주정뱅이나 시급 3500원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아르바이트생 모두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이다. 하지만 시대는 억울함을 받아줄만큼의 포용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갖지 못한 자를 가진자의 테두리에서 더 멀리 내쫒을 뿐이다. 수많은 노동자들, 이주민들을 그 테두리 밖으로 내쫒은 것은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 아닐까? 힘없다고 소리내어 말하지 못했던 우리 때문은 아닐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MB정권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어린 소녀를 통해서 보여주는 <반두비>는 정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분명 웃음지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민서가 카림이 전에 만들어주었던 방글라데시 음식을 먹으며 슬며시 웃음지은 그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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