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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4

네 개의 발바닥, 누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처용처럼 관객은 잠시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 사이 자명종이 울리면 두 개는 창쪽으로 돌아눕고 두 개는 침대 밖으로 빠져나간다. 엄마는 출근 준비, 딸은 등교 준비로 분주한 아침. 기영은 그들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다. 명예퇴직을 당하고 백수로 살고 있는 기영 가족의 소개를 발로 대신하는 첫 시퀀스에서 관객은 기영의 아내와 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볼 틈이 없다. 이 영화는 그렇게 반쪽의 이야기만을 보여주고 있다. 첫 시퀀스에서 관객이 기영의 얼굴과 표정만을 인지하게 되는 것처럼 아내와 어머니가 부재하는 이 영화 안에는 ‘인생은 놀이’라고 생각하는 감독을 닮은 남성들의 고충이 판타지가 되어 관객들을 자극한다.

'개길 때는 요령껏,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아라.'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쯤 된다. 은행에서 일하다 쫓겨난 기영은 주식으로 퇴직금을 모두 날리고, 아내에게 하루에 만원씩 용돈을 받아,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형의 사무실에서 내기 바둑을 두면서, 딸의 친목도모를 위해 눈치껏 집을 비워주는 요령을 부릴 줄 아는 백수이다. 영화는 위의 모토에 충실한 기영을 중심으로 20년 전 해체된 밴드의 재결성을 다루고 있다. 물론 단순한 옛 밴드의 재결성이 아니다. 바로 지금 시대의 홍대클럽에 먹힐만한 현재형이 되어 컴백한다.

일상을 파고드는 균열


20년 전, 3년 연속 대학가요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해체된 락밴드 활화산. 리더였던 상우의 장례식장에서 밴드 멤버인 기영과 성욱, 혁수가 만났다. 이제부터 이야기는 뻔하고 단순하다. 음악을 저버리지 않았던 단 한명의 친구인 상우의 갑작스런 죽음과 그의 유품인 기타는 친구들의 일상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 선생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아내를 만나 먹고 살 걱정이 없는 기영은 다시 밴드를 하자고 친구들을 조르기 시작한다. 사뭇 귀여운 기영의 시위는 친구들의 일상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캐나다에 처와 아이들을 보내놓고 중고차를 팔면서 학비를 대는 혁수와 낮에는 택배,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빡세게 살아가고 있는 성욱은 가족을 벗어나 자신의 욕망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한다.

일상을 점령하는 판타지의 쾌락


연습실에서 연주를 시작한 그들의 일상은 음악으로 점철되어 간다. 사무실에서, 오토바이 위에서 연주 삼매경에 빠지기 일쑤인 그들의 일상에 생기가 넘치고, 그 생기는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특히 드럼을 치는 혁수를 맡은 배우 김상호 특유의 표정과 스랩스틱에 가까운 몸연기와 무뚝뚝함을 가장하고 허를 찌르는 엉뚱한 베이시스트 성욱을 맡은 김윤석의 연기는 철없는 중년 기영에 맞춰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나름 완벽한 기타, 베이스, 드럼이 있지만 죽은 상우의 보컬자리가 골치다. 여기에 꼭 맞춘 것처럼 상우의 아들 현준이 가담한다. 이 영화가 어떤 현실의 단면과 판타지를 조합해놓은 것이라면, 현준의 존재는 완벽하게 판타스틱하다. 훌륭한 외모와 출중한 실력을 겸비한 현준은 그 매끈한 매력으로 영화 속 소녀들을 사로잡고,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여기에 귀를 즐겁게 하는 흥겨운 음악은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버지여, 짐을 벗어라


“오빠 딸은 좋겠다. 아빠가 밴드하니까. 우리 아빠는 아무것도 안하고 술만 마셔.”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영에게 클럽소녀가 말한다. 밴드를 한다고 했더니 “당신이 왜?”냐고 묻는 아내에게 성욱은 말한다. “하고 싶으니까.” 활화산의 첫 단독 공연 전날 아빠가 밴드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기영에게 딸은 말한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낫잖아.”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에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해왔을까, 혹은 우리의 아버지들은 자식을 위해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을까. 일단 이 영화에서 아버지들은 짐을 벗어놓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의 모습은 철저히 반쪽의 얼굴이다.

잘난 아이의 넘치는 뒷바라지를 위해 밤낮으로 고된 노동을 하는 성욱이나 캐나다에서 바람이 난 것으로 추정되는 아내에게 이혼통보를 받는 혁수는 피해자로 보여진다. 울분을 삭히지 못하는 혁수를 위한 그들의 눈물의 연주와 캐나다행을 포기하고 빈 공간에 돌아온 혁수와 그들이 벌이는 아카펠라식 공연은 감정의 고조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인 역할을 해낸다. 그러나 관객은 갑자기 포기선언을 한 성욱의 아내의 기가 막힐 내면과 아들과 딸 중 유난히 아들만 챙기는 혁수의 아내를 볼 기회가 없다.

응석부려도 괜찮아


남성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이 영화가 남성 판타지를 그리고 있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치한 근거를 들자면 왜 혁수는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너바나 등등을 아들에게만 전수하고 싶어 하는가 혹은 죽은 상우의 자식과 성욱의 아이들은 왜 딸이 아니라 아들들일까, 현준의 어머니는 왜 부재중인가, 그러면서 밴드에게 환호하고 쫓아다니는 빠순이들은 왜 언제나 여자들인가. 그리고 셋 중 가장 호의적인 가족을 가진 기영의 자식은 왜 아들이 아니라 딸일까.

남성중심으로 전수되는 영역과 그것의 틀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상반된 남성적 욕망의 혼합된 투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까. 밴드를 재결성하는 주축이 되는, 가장 팔자가 좋아 보이는 기영이 내세우는 무기는 ‘요령’이다. 그 요령이란 바로 가장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응석이다.

즐거운 영화, 즐겨라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중년남성들의 판타스틱한 부활. 음악을 사랑하던 친구의 죽음이 엮어준 이들의 사연이 대중 앞에 낱낱이 밝혀지는 마지막 공연은 ‘라이브 공연’과 ‘조개구이’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그 공간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기영과 성욱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다수의 엑스트라들을 불러 모은다. 환호하는 기영의 아내와 딸, 뒤늦게 나타나 아이들을 챙기는 성욱의 아내, 타국에 있는 아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뮤지션의 명단을 전수하는 혁수, 고인이 된 친구가 남긴 유작 ‘즐거운 인생’을 부르는 동안 그들의 갈등은 봉합되는 것처럼 보인다.

서서히 뒤로 빠지는 카메라. 환호성은 멀어지고 고달픈 인생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기영이 쓴 “때론 힘들지만, 후회하지 않아”라는 ‘즐거운 인생’의 가사를 보고 “나는 매일 힘들고, 매일 후회해!”라고 일침을 가하는 기영의 처가 환호하고 일단 아버지들이 즐거우니 그걸로 된 거다. 그것으로 관객도 충분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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