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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밤과 낮>을 보면서 ‘일상성’ 혹은 ‘일상적인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센세이셔널했던 그의 최초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어김없이 그의 영화들에 따라붙었던 레테르가 ‘일상’ 아니었던가.

<밤과 낮> 역시 실제 경험했던 홍상수 개인의 어떤 일상적 인상으로부터 시작된 영화라 한다. 영화제 참석차 뉴욕에 갔을 때, 머물던 호텔 밖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다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게 됐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그 때 그의 머리를 스친 아이디어가 <밤과 낮>의 시작이었다는데, 홍상수는 그 당시 갑자기 뭔가가 이상했었다고 술회한다. 다름 아닌즉, 뉴욕이 밤이었을 시간에 서울은 낮이었을 거라는 점이다. 즉 밤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되는 순간이었다는 점이다.(밤과 낮, 그 ‘대립물의 일치’!) 다시 말해 통념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간 개념에 균열이 발생한 순간을 목격했었다는 것이다.

철학자 칸트가 말했었다. ‘시간’(time)과 ‘공간’(space)은 인간의 감성(sensibility)이 세계를 인식하는 데 최소한의 그리고 절대적인 형식이라고. 인간의 인식은 그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말이다. 그 인식은 너무나 절대적인 것이라 인간의 일상적 자아는 그 존재를 쉬이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매일 들이 마시고 내쉬는 공기의 존재감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쉽게 망각해버리고 만다. 그런데 그 절대적인 선험적 형식 중 하나인 시간과 관련한 인간의 통념이 일순간 뒤틀려버렸다는 것이다. 그 순간, 시간이 홍상수에게 말을 건넸을 것이다. 그 때 그것, 시간의 존재는 홍상수에게 기이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홍상수의 이 개인적 일화 속에 그의 영화적 세계관이 정확히 함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의 가감 없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어느 평자가 말했듯이, 엄밀히 말해 홍상수의 영화 속에 고정된 의미란 없다. 그저 이 세계 속에 무심히 혹은 심드렁허니 던져져 있는 현상들 그 자체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그의 영화를 보고 무언가의 의미를 ‘재단’하는 것은 일종의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의 영화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홍상수는 우리 삶의 다종 다기한 양태들을 심판자의 시선이 아닌 ‘관조자’의 시선으로 멀뚱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홍상수의 이 관조자적 시선 속에서 세계의 여러 양태들은 뚜렷한 인과관계 내지는 맥락 없이 그저 ‘충돌’한다. 이질적인 것들의 맹렬한 충돌. 하지만 그것을 통해 홍상수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 다시 한번 말하건대 ― (고정된)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우연적인 것’ 혹은 ‘우발성’이다. 우연적인 것은 딱히 뭐라 개념화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다만 ‘그저 거기에 그렇게 있음’(being there)일 뿐이다. 하지만 이 우연적인 것들이 그야말로 우발적으로 ‘충돌’할 경우 어떤 ‘낯선 것’이, 개념화할 수 없는 어떤 이질적인 것이, 심지어는 섬뜩한 어떤 것이 스멀스멀 배어나온다. 홍상수의 영화가 따분하고 재미없을 지라도 ― 충분히 그러할진대 ―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에 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 속에 왜 자꾸 느닷없이 ‘동물’이 출현하겠는가. <해변의 여인>의 개는 무엇인가. <밤과 낮>의 돼지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또 왜 홍상수의 인물들은 느닷없이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갑자기 버럭 화를 내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홍상수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리 보아도 정상인의 태도라고 보아주려야 줄 수가 없다. 맥락도 없이 등장하는 흑인식 인사법은 또 왠 것이란 말인가.

홍상수는 그 상호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로부터 발생하는 기이한 정체불명의 쾌감을 즐기는 일종의 페티쉬스트인 것이다. 지독하리만치 일관되게 말이다. 정말이지 홍상수는 그의 첫 영화부터 이러한 우연적인 일상성의 ‘반복’을 줄기차게 이야기해 왔다. 그러니까 ‘일상적인 것의 반복’. 그런데 그게 무엇이든 반복되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권태’로워지고 만다. 나를 포함한 그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 중 일부가 그의 영화가 보기 싫어졌다면 어쩌면, 정작 그의 영화가 권태롭게 느껴져서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홍상수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인생의 ‘구조’만큼은 변함이 없는 것이라고.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될 뿐이라고. 그러니 권태로운 것이라고. 하지만 이 때 일상은, 일상의 반복은, 자세히 뜯어보면 결코 같지가 않다고. 아니, 같을 수가 없다고. 쉬울 수도, 쉽지 않을 수도 있는 말이다.

<밤과 낮>이 일상의 사소한 결들을 담는 ‘일기체’ 형식으로 짜여있는 것이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홍상수는 말했다. “형식이 일기체기 때문에 진행에는 딱 부러지는 논리적 이유가 없다. 완전히 감으로 갔는데, <밤과 낮>을 후다닥 나오는 대로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다른 때보다 정말 빨리 썼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필경 일침을 가했을 것이다. 플롯에 ‘개연성’(probability)이 없지 않느냐고. 자신의 영화 작업과 관련해서는 또 이렇게 말했다. “감독으로서는 어떤 타입의 인물을 찾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을 잡아놓으면 그런 인물의 행동 같은 게 나한테 온다. 내가 짜내는 게 아니라.” 그는 자신의 ‘감’을 믿는 혹은 믿고 싶어 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밤과 낮>을 보면서 다시 한번 든 생각이 있다. 다시는 그의 영화를 보지 않겠노라고. 그의 영화를 보면서 자꾸 ‘자기모멸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자꾸 ‘인간적인 것’에 대한 혐오감 내지는 거부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건 사실 어쩌면 다름 아닌 내 안에 있는 속물근성일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홍상수의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나의 저열하기 짝이 없는 어떤 숨겨진 일면을 보기가 두려워지는 것일 수 있겠다.

<해변의 여인>은 그런 면에서 좀 다른 영화였다. 자기모멸감이 그 영화에서만큼은 귀엽고 애처롭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밤과 낮>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렇고 그럴 뿐인 인간 행동 양태를 그럼에도 ‘귀엽게’ ‘낙천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평가를 주위에서 듣는다. 하지만 나는 <밤과 낮>이 극도로 권태스러웠다.

‘반복의 반복’은 물론 의문의 여지없이 권태로울 것이다. 그렇다면 ‘차이의 반복’, 다시 말해 차이를 내재한 반복은 어떠할까. 권태롭지 않을까? 그것이 권태롭지 않다고 결코 말할 수 있을까?

<밤과 낮>의 극중 인물인, 대마초를 피우다 검거 위협에 직면한 40대 화가 성남(김영호)은 파리로 도피, 유학생 유정(박은혜)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향한 자신의 에로티시즘의 욕구를 분출한다. 그 사이에 잠시 스치듯, 유정과 같은 미술학교를 다니는 유학생 지혜(정지혜)와도 얼굴을 대면한다. 지혜와는 딱 그뿐이다. 그리고는 서울에 있는 아내(황수정)의, 아이를 가졌다는 ‘거짓말’에 귀국, 아내와 재회한다. 그런데 정작 그는 아내와의 잠자리에서 지혜와 재혼해있는 자신의 모습 ― 하다못해 유정도 아닌 ― 을 꿈꾼다. 왜? 그녀를 성적으로 ‘취하지’ 않아서? 혹은 못해서?

<밤과 낮>에서 영호의 여자는 줄곧 바뀐다. 그러니까 나는, 권태롭지 않기 위해 바뀌어지는 여자들 속에서, 즉 차이의 반복 속에서 또 다시 더 극심한 권태로움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 권태로움이 권태스러워서 홍상수의 영화들에 거부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홍상수의 다음 영화들을 계속 보게 될 것 같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니, 그마저도, 아, 권태스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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