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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 전작전에 부쳐

필진 칼럼 2008. 5. 22. 17:28 Posted by woodyh98
배창호 감독에 관한 기억 하나. 개인적으로 배창호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박완서의 소설을 영화화한 1984년 작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이다. 이 영화는 당시 고만고만한 영화에 출연하다 <고래사냥>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미숙에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줌으로써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이끈 작품이기도 한데, 내가 유독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러니까, 영화의 엔딩에 삽입된 동요 ‘오빠 생각’ 때문이다. 당시 작곡가 정민섭씨가 실로폰 버전으로 편곡한 이 곡을 나는 한국영화 최고의 삽입음악 중 하나로 꼽을 정도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선 ‘오빠 생각’이란 동요가 워낙 흔하고 여러 버전으로 연주 노래되었기에 새로울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라스트 신에서 흐르는 이 곡을 들으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라 장담한다. 영화는 6.25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자매의 이야기를 주요소재로 삼은 가운데 60.70년대 한국사회를 지배하던 산업화 근대화의 물결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두 여인의 운명에 관여하는지를 멜로드라마 화법 안에서 풀어내고 있다. 1984년 명보극장 개봉당시 많은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던 이 영화를, 더불어 고백하자면 영화보기에 입문한 이후 나를 울린 두 번째 영화를(첫 번째는 릭키 슈로더와 존 보이트가 출연한 <챔프>이다)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어찌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기억 둘. 그날 내가 왜 더 민망스러웠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기억을 돌려 보면 2006년 늦가을 독립영화 형식으로 제작된 <길>의 시사회가 열렸던 날의 이야기다. 이날 종로의 스폰지하우스에서 만난 배창호 감독은 승승장구하던 80년대와는 거리가 먼 소탈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공개하는 당사자보다 외려 내가 더 가슴이 조마조마했을까? 그것은 고작 이 인원 앞에서 시사회를 여는 감독의 심정이 어떨까? 라는 주제넘은 생각에 마음이 영 편치 않았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걱정은 기우였을 뿐, 많지 않은 취재진에 협소하고 왜소한 상영관에서 시사회를 열어야 하는 그의 얼굴에서 초조함이나 자괴감 같은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허허로운 장인의 모습, 삼십대에 전성기를 맛본 후 인생의 맛을 알아가는 중년이 보여주는 여유로움, <길>에서 대장장이 태석이 그랬듯이 무상한 세월에 분노도 회한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지천명에 들어선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이를 먹어야 보이는 세상이 있다고 하던가.

기억 셋. 지난 1월 8일 낙원동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작 상영 후에 벌어진 기념다과회에서는 흥미로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다름 아닌 이장호 배창호 이명세 감독이 나란히 서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었는데, 이 바닥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단박에 눈치 챘겠지만 한국영화계에서 일가를 이룬 사제 삼대가 한 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1970년대 중반 하길종 감독과 더불어 한국 뉴 웨이브를 이끈 이장호 감독, 그리고 그의 조감독 출신으로 80년대 한국영화계의 기린아로 등장한 배창호 감독, 배창호의 조감독 출신이자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며 감각적 영상세계를 끊임없이 실험중인 이명세 감독이 한 자리에 모일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았을 터. 마치 장 르누아르와 루키노 비스콘티와 프랑코 제피레리가 한자리에 모인 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5월 20일(화)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선 배창호 감독 전작전이 열린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보기 힘들 특별한 행사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훗날에나 다시 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1980년대는 배창호의 시대였다. 엄격하게 따지더라도 1988년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한 이후 <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등 내놓는 영화마다 흥행했으니, 그 시절 충무로는 동아수출공사와 배창호와 안성기, 장미희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로 세 사람이면 다 되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전작을 상영하는 것과는 다른 것에 있다. 이를테면 배창호가 흥행에서 성취를 이룬 첫 번째 시기로부터 미학적 실험을 거듭했던 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또 충무로 시스템과 절연하고 독립제작 시스템을 견지해온 최근까지를 망라하는 한 감독의 족적을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란 말이다. 더불어 필자는 이번 전작전이 한국영화의 작가 또는 작가주의 담론의 특질을 규명해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인물로서의 배창호 감독의 위상을 재정립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에 관한 몇 개의 기억을 끄집어냈듯이 배창호 감독 전작전은 여러 가지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다. 영화보기에 가장 열심이었던 80년대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이고, 배창호와 안성기의 원투펀치를 재삼 맛보게 해줄 것이며, 무엇보다 비관과 신파에서 벗어나 낭만주의적 정서에 아이러니를 결합시킨 한국형 멜로드라마의 정조를 복기해 볼 수 있는, 다시없을 기회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앞서 거론했듯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스크린으로 다시 볼 수 있음 또한 사적으로 큰 즐거움이 될 듯싶다. (첨언하자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저작권자인 세경흥업 제작자가 사망한 탓에 법원에 공탁을 걸고서야 상영허가를 받아냈을 정도로 이번 특별전에서의 상영자체가 불투명했던 작품이니만큼 설렘은 배가된다)

비단 배창호 영화와 함께 80년대를 보낸 이들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젊은 세대라도 충분히 그의 영화에 매료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것은, 배창호의 영화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80년대 그의 영화 몇 편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2000년대의 배창호 영화를 예단해서는 안 된다.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상업주의와 작가주의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걸었던, 그러나 전혀 다른 이유로 너무 쉽게 잊혀졌던 배창호가 지금도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배창호와 만날 것을 강권하는 진짜 이유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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