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부산영화제에 관한 사적 기록

필진 칼럼 2008.10.06 15:06 Posted by woodyh98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건영


공항리무진 버스가 해운대에 도착한 것은 토요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영화제마다 그랬듯이 아이디카드 수령과 표를 예매하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꼭 1년 만에 다시 찾은 해운대 파빌리온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대부분의 화제작은 매진이었다. 이런 와중에 <사랑의 4중주>와 <잃어버린 노래>를 발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행운이었다. (그럼에도 팡호청의 <경박한 일상>과 양익준의 <똥파리>를 못 본 것은 못내 아쉽다.) 시간이 남아 한참을 서성이는 동안 발견한 사실은, 예년에 비해 해운대 거리를 활보하는 매체기자 수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작년만 해도 도로와 모래사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다수는 프레스카드를 목에 건 기자들이었다. 그러나 한국영화 불황 탓일까, 아니면 최진실의 죽음 여파 때문일까. 드문드문 눈에 띠는 기자들의 표정은 무거웠고, 그들에게서 전날 밤의 치열한 술자리를 떠올릴 만한 피로감은 발견되지 않았다.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달뜬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느낌이었으니, 개인적으로도 예년 같은 설렘은 없었다. 어느 해 보다 체류 일정이 짧았음에도 영화보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짬짬이 틈을 내어 기자와 평론가들, 영화인까지 적지 않은 사람을 만났으나 작년처럼 거창한 술자리는 없었다. 이유인즉 상대방들이 금요일 밤부터 ‘신나게 달린’터라 토요일마저 통음으로 지샐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깔끔하게 단장된 해운대시장의 곰장어집에서 별로 시원하지도 않은 C1소주를 연신 들이켰다. 내년 부산을 기약하면서. 다음은 이번 영화제에서 본 두 편의 영화에 대한 즉흥 리뷰이다.


[사랑의 4중주](Four Ages Of Love, 2008/러시아)


세르게이 모크리츠키 감독의 <사랑의 4중주>는 제목처럼 말랑말랑한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에 관하여 새로운 표현방법 혹은 영화언어를 모색하는 꽤나 묵직한 영화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4계절로 나뉜 에피소드로 펼쳐지는 이 영화에서 감독은 사랑이라는 보편적이고 통속적인 규정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10대들의 이야기로 시작한 영화는, 노년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이기적이지만 속 정 깊은 이야기를 거쳐, 고독에 지치고 사랑에 목마른 두 여인의 묘한 연대감을 통과한 후 마지막 에피소드에 이르는 동안 '사랑'이 아름답고 순결한 그 이름만으로 빛나는 단어가 아닐 수 도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계절에 맞춰 그려진 에피소드마다 각 계절에 부합하는 멋진 장면들이 하나씩 들어있다는 점은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영화에 활력소가 된다. 이를테면, 처음만난 남자 아이를 위해 방아쇠를 당기는 시퀀스와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고개를 맞댄 노년부부의 모습, 묘령의 여인을 쫓아가는 빨간 하이힐의 긴박감이 그것이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풍경들은 인물들의 내적 상태와 궤를 맞춰 영화의 품질을 격상시키는 데 공헌하고 있으니, 대문 형상의 기둥 아래 앉은 두 수사의 모습을 당겼다 놓기를 반복하는 트래킹 쇼트는 러시아 영화가 이뤄낸 미적 성취와 닮으려는 촬영감독 출신의 모크리츠키의 욕망을 드러낸 명장면이라 하겠다. 한편 <사랑의 4중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넘나들며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키에슬롭스키의 삼색 시리즈 속 인물들의 재등장과도 유사하다. 요컨대 <사랑의 4중주>는 러시아 영화 특유의 묵직함과 음울한 정조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영화가 아닌가 싶다.


[잃어버린 노래](Lost Song, 2008/캐나다)


로드리크 장 감독의 <잃어버린 노래>를 보고 난 후, 밖으로 나와 한참 동안 쉼 호흡을 해야 했다. 그만큼 영화는 극한의 지점까지 밀어붙이면서 관객을 힘들게 만들었다. 최소한 관객의 절반은 심적 압박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하는 듯 보였다. 그것은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들, 혹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보았을 때의 강렬한 인상에 비견될 정도였다. 그러니 영화 속에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들숨날숨을 연신 반복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을까? 영화는 엄마이자 아내인 여성의 역할이라고 당연시 여겨왔던 것들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모성애와 육아의 어려움 사이에서 고립된 엘리자베스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감독은, 시종일관 아슬아슬한 시각을 견지하면서 산후 우울증에 대한 치밀한 심리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나는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저 아이에게 언제 변고가 생길까? 라는 걱정을 해야 했다. 갓난아이와 부모를 둘러싼 숲 속 세상은 더 없이 푸르렀으되, 카메라는 쉼 없이 흔들렸고 엘리자베스의 마음은 카메라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극적으로 끝난 한 여인과 아이의 삶을 통해 감독은, 불변하는 가치관이 사라진 이 세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느낌. 그래서 인지 카메라는 상당 수 컷을 엘리자베스의 뒷모습에 할애하고 있다. 극장에 있던 50~60대 한국주부들은 엘리자베스의 내적변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천만 다행인 것은 이것이 영화! 라는 점이다. 여성들 사이에서도 격론이 벌어질 만큼의 문제적 영화를 만든 감독 로드리크 장은 현재 새 영화의 후반작업 중이라고 한다. 그의 새로운 영화가 궁금하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706
  • 11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