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부산 바다만큼, 빛나던 영화들

필진 리뷰 2009. 10. 17. 22:19 Posted by woodyh98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연하

부산에 온 지 4일째가 되어 가는데, 매일 세 편의 영화씩을 챙겨 보느라 미처 글로 정리할 시간을 내지 못하였다. 햇살을 머금은 바다가 반짝이고 어두운 밤바다 위의 오징어 배들도 반짝이는 부산, 열심히 즐겁게 보고 있는 영화들도 흥분하리만치 반짝이는 영화들이 많다. 어제는 처음으로 하루 네 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네 편 다 형식의 새로움과 가슴이 움직이는 장면들을 발견할 수 있어 놀랐다.

김정(김소영) 감독의 <경> 과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를 쓰기에는 내게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당장 쓰고 싶어지는 영화는 지난 5월 전주영화제에서 발견한 감독 라야 마틴의 <인디펜던시아>와 로카르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탬버린, 드럼>이었다. 다음 영화까지 남은 한 시간, 짧게나마 정리하고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디펜던시아>

근원을 알 수 없는 총탄의 굉음이 들리는 가운데 어머니와 아들은 숲 속으로 도망친다. 아들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려 살아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해 이야기하며 두려워한다. 때때로 숲은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이상기후를 보이는데, 감독은 이 폭풍우를 마치 세상의 종말처럼 음산하고 폭발적으로 연출해 낸다. 그 비바람의 강도가 너무나 거세고 그 분위기를 표현해 내는데 많은 쇼트들을 할애하기 때문에, 이건 뭔가 다른 거대한 현상의 은유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어린 아들은 잠시 사라졌다가 집에 돌아와서 금빛 머리와 빛나는 몸을 가진 무서운 남자들을 보았다고 말한다. 마지막 대 폭풍이 불어 닥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어갈 때, 드디어 관객의 눈앞에 노란 머리의 백인 군인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어린 아들이 도망치자 그에게 총을 쏜다. 흑백으로 진행되던 영화는 아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리자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끝이 난다.

이제 우리는 저 폭풍우가 무엇을 은유하는지 알 수 있다. 라야 마틴은 영화 중간, 필리핀이라는 국가를 설명하는 오래된 뉴스릴 필름을 모방하여 삽입한다. 필리핀이라는 커다란 숲은 적에 의해 어두운 강점기를 겪었다. 필리핀의 영 제너레이션 (Young Generation) 라야 마틴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그 시대를 기억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 태도가 그를 진정한 영 제너레이션으로 우뚝 서게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탬버린, 드럼>

이 영화를 일컬어 ‘가난한 어른들의 초상’ 이라 부르고 싶다. 경제적으로 너무도 궁핍한 90년대의 러시아에서 중년여성 카티야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살아간다. 냉소적인 면모의 그녀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때때로 도서관의 책들을 훔쳐 기차역의 사람들에게 내다 팔고 그 돈으로 빵과 감자를 사는 것. 어느 날 그녀에게 우연처럼 ‘또 다른 가난한 어른’인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들은 사랑을 나누고 카티야의 집에서 함께 지낸다. 하지만 남자는 카티야의 비밀을 알고 난 후 그녀를 떠난다.

줄거리 나열로는 이 영화의 매력과 성취에 대해 반도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가난한 어른들은 시종일관 속내를 털어놓기 보다는 매사에 냉소적이다. 이 냉소는 비판적으로 날이 선 냉소가 아니라, 오랜 세월이 그들에게 새겨놓은 체념에 가깝다. 감독은 문어체적이고 앞뒤 문맥이 잘 맞지 않는 대사들을 인물들에게 부여하는데, 때때로 그것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직접적으로 그들의 고통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동시에 이 영화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이루어 낸다. 영화는 잔인하다. 현실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더 이상 갈 곳 없는 이 중년의 어른들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묘하게 연극적인 프레임이 인물들의 뒷모습을 따라 길게 트래킹할 때, 그들의 뒷모습은 고독하며 불안하다. 무엇보다, ‘변명하지 않는’ 카티야의 모습들이 한없이 내 마음을 울린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158,883
  • 6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