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매체는 기본적으로 환상적이다’라고 말할 때, 이 환상의 세계를 인식하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극중 인물들에게 관객 자신의 욕망을 대리시킨다고 하더라도, 인물의 현실적 묘사가 없다면 그들의 판타지를 관람자에게 감정이입 시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정년퇴임을 앞둔 만년부장이 젊은 시절의 꿈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와 샐러리맨의 애환을 두루 버무려낸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박영훈 감독은 독특한 소재에 걸맞도록 배우의 이미지 조합을 장기로 삼아온 전력이 있는데, 이를테면 [중독]에서 이얼을 주인공의 형으로 캐스팅한 것이나 [댄서의 순정]에서 개그맨 김기수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것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때론 소재와 배우에 대한 지나친 의존 때문에 재현방법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는 것. 말하자면, 전작 [댄서의 순정]에서는 문근영의 이미지를 너무 안일하게 소비해버렸고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경우는 백윤식에게 지나치게 기댐으로써 드라마적 잔가지를 늘려버렸다는 것이다.
샐러리맨이 나오고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의 친분과 갈등 같은 자잘한 에피소드를 기업 내에서 펼쳐낸다고 해서, 그것이 이 시대의 직장인의 삶과 애환을 말한다고 할 수는 없을 터이다.
예컨대 사람 좋은 상사가 이끄는 루저에 가까운 부서원들(만년과장과 인사부에서 온 여직원-인사부에서 총무부로의 발령은 분명히 좌천이다-과 일 외적인 것에 더 관심 많은 이들)이 주변부에서 중심을 욕망하는 방법의 비현실성, 가족적 분위기라기보다는 공과 사가 실종된 조직과 직장인이라 보기 힘든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떠나는 자의 등 뒤에 비수를 꽂는 것을 기업의 비정함으로 상징화하려는 시도는, 기업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밖에는 설명하기 힘들어 보인다.

때문에 극중 인물들이 샐러리맨의 애환과 뒤늦은 꿈 찾기의 경계에서 우왕좌왕하는 동안, 영화가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것도 이렇듯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을 선택한 감독에게 혐의를 둘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조 전무의 방과 총무부 사무실의 분위기를 차별화함으로 해서 현실과 판타지를 확연히 구분지은 것은 애초부터 현실과 거리가 먼 영화라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런데도 우리시대의 샐러리맨에게 힘을 불어 넣기를 바란다니...
박준규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백윤식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과도하게 넓음으로 인해 다른 인물들과의 간극을 메우기에 역부족인 아쉬움, 결국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소재주의에 빠져 현실계를 무시해버린 영화의 상투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데서 멈출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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