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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4

(스포일러를 언급할 영화는 아니지만 여하튼 만땅입니다.)

“[M]의 키워드는 백일몽, 일상의 기이함, 그리고 첫사랑의 감성이다”
“관객의 마음은 갈대와 같고 연애 상대와 비슷하다.”

그러니까 이 두 발언은 이명세 감독의 지향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M]이 지향하는 바와 지금, 여기 이명세 감독이 서 있는 지점. 자신만의 키워드를 밀어붙인 극단의 형식 실험과 그 안에서 관객을 끌어안고자 하는 노력들 말이다.

근질거리는 입과 손을 주체 못하고 결론부터 꺼내자면 과잉의 수사학 또는 이미지의 황홀경쯤 되겠다. <형사 Duelist>의 연장선상에서 비주얼리스트로서의 자의식을 한껏 더 뽐냈지만 영화-운동 이미지를 실험했던 그가 이번엔 빛과 어둠을 들고 나왔다.

빛과 어둠? 조명으로 먹고 들어가는 영화의 광학적인 기본 원리 아니냐고? 그렇다. 이명세는 점점 영화 근본주의자로서의 자의식을 공공히 해나가는 중이다. 강동원과 이연희, 공효진을 내세워 지극히 상업적인 홍보 전략을 취하는 이율배반적인 예술 영화를 내놓은 셈이다. 어찌됐건 1시간 50분을 취하게 만드는 잔상들이 쉽사리 떠나지 않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근데 개봉 전까지 일반 시사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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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와 이명세는 이야기 구조를 무시하고 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형사 Duelist>, 그의 최근 두 작품 모두 스무 자 사이에서 간단하게 요약 가능하다. < M >도 ‘결혼을 앞두고 첫 사랑의 기억과 마주하는 소설가 민우(강동원)의 백일몽’ 쯤 되겠다.

요약한 스토리와 달리 전통적인 문법으로 < M >을 따라잡기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격이리라. 전작 <형사 Duelist>가 이미지와 운동감을 화면으로 구현하기 위한 목표의 일환으로 조선시대 여형사 남순(하지원)과 범인 슬픈 눈(강동원)의 추적과 사랑이란 대강의 이야기를 드리워 놓은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또 어떤가. 우직한 형사(박중훈)가 말 없는 살인범(안성기)을 쫓아가는 기본 얼개 요소요소에 에피소드별 시퀀스를 채워 넣은 단순한 구조였다. 언뜻 두 영화를 떠올려 보라. 극적 감동이나 이야기의 재미보다 감탄할 만한 이미지와 장면들이 더 선명할테니.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배경으로 한 계단 살인신, 박중훈과 안성기의 철로 옆 격투신, 강동원과 하지원이 달 빛 아래 검투를 벌이던 액션신 말이다.

< M >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또 한 발짝 양보한다. 우선 이명세 감독의 미장센과 빛과 어둠을 스크린으로 투영하는 영화적 실험은 사극이었던 전작보다 진일보 했다. “빛나는 어둠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는 부담스러우리만치 200% 전달되고도 남는다. 남순과 슬픈 눈의 사랑이 생뚱맞았다는 전작과 달리 첫사랑에 기억에 미혹되는 민우의 이야기는 감정이입의 정도는 각자 다를지언정 그 감정의 연원만큼은 분명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 점에 있어 ‘친절한 명세씨’란 별명은 분명 영화와 일치한다.

이명세 감독은 “꿈에서 깨어나기 전 빛나는 어둠의 상태”를 그리고 싶었단다. < M >에서 꿈은 그 시작이요 출발이다. 민우를 쫒는 미미의 나레이션과 미스테리가 꿈인지 현실인지, 루팡바에서 미미를 만나는 것이 실제인지 환상인지는 중요치 않다. 민우는 아침이면 언제나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어 일어나고, 여지없이 어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 이건 첫사랑에 관한 ‘백일몽’이다.

이를 관객에게 체험케 하는 것은 몽환적이고 황홀한 비주얼이다. ‘빛과 어둠’을 구현하는 홍경표 촬영감독의 카메라와 최철수 조명감독의 빛은 고전 느와르 영화를 21세기에 버전업 시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야말로 매혹적이다. 또 한 낮의 거리 장면도 자신의 장기인 세트에서 처리한 이명세 감독만의 감각은 영화가 빛의 예술이라는 걸 다시 한번 인지시킬 만한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다.

그럼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 M >의 구석구석을 요리조리 뜯어보자. 전작이 <지독한 사랑>과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사극으로 찍었다라면 은 ‘괴로운 남자’가 유령 소녀와의 ‘첫사랑’을 경유해 히치콕 이전의 고전 느와르로 빚어낸 백일몽이다. (여기서 이 백일몽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이 백일몽은 비주얼리스트 이명세답게 지극히도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디제시스와 조명으로 수놓은 꿈이다.

이명세 감독이 친절히 달아놓은 주석인 세 키워드를 가슴 속 깊이 받아들이고 체험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를 홀리는 비주얼이 계속 시신경을 자극하지만 가슴까지 전달되는 감흥으로 받아들일 관객들이 얼마나 될까. 확실히 < M >은 고수들의 영화이거나 영화에서 내러티브란 아무 상관없다고 솔직히 고백할 관객들의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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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첫사랑. 아무리 곱씹어 봐도 < M >은 재앙과도 같았던 흥행 실패작 <첫사랑>의 부연이거나 14년 뒤 이야기다. 기술적 업그레이드거니와 미미의 시점에서 보자면 <사랑과 영혼>과도 같다.

구닥다리 미용실, 빙글빙글 도는 자전거, 극장과 바닷가, 처음으로 손을 잡을 때의 미세한 떨림까지. 2007년 이연희의 미미는 1993년 김혜수의 영신에 다름 아니다. 순수한 소년, 소녀가 처음으로 사로잡힌 사랑이라는 감정을 잡아낸 그 떨리는 순간. 구체적 현실은 거세한 채 향수로 가득 찬 이 회상신은 어쩌면 촌스러울 정도로 정화된 정서를 세련된 영상 언어로 구현해 내는 이명세의 영화관과 맞닿아 있다.

현실을 탈색시킨 노스탤지아의 공간으로서의 플래쉬백. 학교를 찾아가 기억을 떠올린 오대수처럼 민우는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 뒷풀이에서 미미를 떠올린다. 그리고 재현되는 <첫사랑>의 오버랩. 연극반 강사는 소설가가 됐고 미대 1학년생이던 영신은 구천을 떠돌다 민우에게 찾아온 소녀 미미로 남았다.

그러니까 기억을 되새김질 하는 민우의 혼돈, 그 꿈과 현실의 경계를 관통하고자 하는 < M >의 욕망은 첫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는 셈이다. “나는 나중에 당신이 아주 많이 많이 슬퍼했으면 좋겠어”라는 미미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것이 누가 꾸는 꿈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경계를 지우고자 하는 작업에서 세 인물의 내레이션이 반복적으로 재생된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혹은 혹시 민우와 함께 있는 ‘그녀’가 민우인지 은혜인지 헷갈리게 촬영됐다고 한들 별 다른 차이가 있을까?

만약 전통적이고 단선적인 내러티브로 읽는다면 이건 결혼을 앞둔 잘나가는 남자의 불안과 강박증에 관한 아주 나이브한 보고서로 볼 수도 있다. 부유하고 아름다운 약혼녀와의 결혼이 왠지 순수했던 ‘첫사랑’의 기억을 훼손하는 것만 같은 신경쇠약 직전의 남자에 관한 이명세식 대답. 감정의 원형질의 탐구자답게 이명세가 첫사랑을 다시 불러온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화려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보고나면 허탈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알고 봤더니 결혼직전의 불안을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소설가가 창작에 매달리고, 첫사랑을 불러오고, 술을 마셔대는 이유가 <사랑과 영혼> 혹은 <천녀유혼>이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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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백일몽. 어찌됐건 이 꿈을 시각화하는 이명세의 비주얼에 대한 감각은 정말이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다. 고전 느와르의 세계에 도착한 꽃미남 강동원의 매력 또한 거부하기 힘들다. 쉴새 없이 등장하는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의 효과는 그야말로 관객들 또한 꿈꾸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고, 저속 촬영과 스톱모션 등 현대영화와 이명세 감독이 지속적으로 실험해온 기법들이 빼곡히 스크린을 채운다.

영화의 출발이 미미이며 미미를 쫒는 저승사자가 등장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점 또한 이 백일몽의 아우라에 일조한다. 전체적으로 강렬한 조명의 콘트라스트 또한 세트와 함께 이명세 감독의 장기이자 < M >에서 방점을 찍은 부분 중 하나다. 여름날의 강렬한 빛이 도드라지는 건 어둠이 있어서고 이 빛과 어둠에 대한 강조는 현실과 꿈, 현재와 과거의 대비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도저히 세트라고 믿어지지 않는 거리신이나 과도할 정도로 어두운 민우의 집은 이러한 분위기를 북돋우는 이명세식 미장센의 결정판이다. 이건 또 ‘미스터리’의 ‘M’을 따왔다는 < M >의 맥거핀 과도 같다. 혼돈과 미스터리의 시각화는 갖가지 촬영 기법과 이 블랙 & 화이트의 강렬한 대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화려한 색감으로 운동 이미지를 극대화했던 <형사 Duelist>와 갈라지는 지점이다. 어쨌건 압도적 비주얼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기이한 일상. 과장을 좀 섞자면 민우의 절반은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바톤핑크>의 바톤핑크이자 금발 여인을 쫒아 시계탑에 오르는 <현기증>의 제임스 스튜어트다. 여기서 <바톤핑크>에서 붉은색 주조의 화면은 블랙으로 대치하고 타자기는 컴퓨터 자판으로, 또 현기증의 두 여인은 미미와 은혜로 치환하면 흥미로울 법 하다.

어쨌건 민우의 심리상태를 은유하는 과장법은 세 번에 걸쳐 반복되는 일식집 장면으로 대변된다. 원고 독촉을 하는 것이 나인지, 출판사 사장인지, 나를 괴롭히는 것이 나인지 장인인지, 여기에 내가 왔었는지 내가 꿈꾸는 것인지 민우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한 논객은 여기서 ‘장자의 꿈’을 끌어들이는 나이브하고 오독에 가까운 해석을 써내려갔지만 이 장면들은 제목도 그럴싸한 <남자는 괴로워>를 연상시킨다.

초현실주의 작풍의 그림이 걸려 있는 이 일식집 세트는 마침내 세 번째에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이중, 삼중의 화면 구도를 통해 중첩되고 반복되는 민우의 혼란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창작과 결혼직전의 불안감의 엄습은 이명세식 과장 연기법을 나름대로 소화해낸 강동원의 새로운 연기 덕에 더욱 더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연결 장면으로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블랙아웃(필름 끊김)’ 현상을 겪은 민우를 잡아냄으로서 꿈인지 현실인지의 모호함을 강조한다. 과연 민우는 미미와의 뒤늦은 추격전과 로맨스, 그리고 은혜와의 일상을 모두 공유하기는 한 걸까? 뭐, 세 사람의 꿈이어도 상관없다는 듯 영화는 흘러가지만 말이다.

역시 중요한 건 이 모든 질문에 해답은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저 우리는 비주얼리스 이명세의 전적으로 시각적인 텍스트에 초대된 손님일 뿐이다. 영상으로 느끼면 그 만일뿐. 소화불량에라도 걸릴 것 마냥 과도한 이미지의 황홀경과 형식 실험을 통해 그 혼란함과 신경증, 그리고 첫사랑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대리체험하면 되는 것이다.

촬영과 조명, 사운드의 삼위일체를 완성한 < M >은 그러나 그 끝에 도달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허무해 진다. 첫사랑에 대한 회상에 젖거나 고단한 현실을 둘러볼 여유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내러티브는 액션의 실험을 거쳐 기이한 로맨스로 마무리했던 <형사>보다 친절해졌지만 이미지의 황홀경으로 빈약한 알맹이를 가릴 수는 없어 보인다.

어차피 글 초반에 이명세는 근본주의자라고 밝힌 바 있다. <디워>가 800만 관객을 긁어 모으는 나라에서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고답적인 주장을 펼칠 생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M >은 매혹은 될지언정 감동이나 충격을 전해주는 성질의 작품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90년대 초반, 이명세의 비주얼은 리얼리즘에 경도된 충무로 지형도에서 기술적으로는 촌스러울지언정 분명 새로웠다. 그러나 갈수록 이명세의 영화에는 점점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람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이 빈약해진 자리를 차지한 화려한 ‘어떻게’가 소화불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연 이미지에의 경도와 실험이 과연 어떤 영화적인 ‘무엇을’에 복무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 말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 항상 관객이 우선이다. 우직하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연애편지를 꾸준히 쓸 뿐”이라는 이명세 감독의 발언은 어쩌면 의도된 수사이거나 순결한 근본중자의 구애일 것이다. 또 팬으로서 그의 영화에 대한 애정에는 감탄하고 차기작을 평생 기다릴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인공적인 세계에서 헤어 나올 생각이 없는 이명세 감독의 행보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기 보다는 우려의 감정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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