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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은 비평의 방패가 아니다

필진 칼럼 2008. 6. 9. 06:26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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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을 업으로 삼다보니 무수한 영화비평 유의 글을 접하게 된다. 애써 찾아내어 읽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텐데, 영화주간지부터 매일 발행되는 무가지에 이르기까지 또 더러는 인터넷에 올려 진 블로거들의 리뷰를 꼼꼼히 읽기도 한다는 말이다. 대체로 잡지나 간행물에 담긴 내용들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체험사이에서 안전한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관객의 리뷰는 철저히 주관적 체험과 감흥을 바탕으로 보다 솔직하게 쓰여 진다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아마추어의 글에서 번뜩거리는 시선과 예리한 비판이 돋보이는 글, 또는 상상을 초월하는 독특한 시각으로 읽어낸 글, 또 더러는 기성 평론가과 매체를 힐책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글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단 거창한 영화평론이 아니더라도 리뷰를 써본 사람이라면 느꼈겠지만 처음에는 전체 줄거리를 풀어내고 해설하는 정도에 머물다가 어느 정도 내공과 연륜이 더해지면 장면과 쇼트를 분절하고 해석하고는 비판적 시각을 덧붙이며 훈수두기에 나서게 된다. 사실 누군가를 누군가의 글을 누군가가 만든 영화를 비판하는 일은 칭찬하는 것보다 수월하다. 적어도 내 경우엔 칭찬이 훨씬 힘들었으니까. 게다가 칭찬일색의 심심한 글보다는 까칠한 문체의 비판적 글이 더 재미있게 읽혀지기 마련인데, 여기에 많은 이들의 동조와 지지가 더해지는 순간 글은 힘을 얻어 하나의 권력이 되기도 한다. 영화 평 꽤나 쓴다는 이들의 글에서 영화는 온데간데없이 글 솜씨만 부각되는 것도, 글쓴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까닭도 이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한 관객리뷰어와 그들의 힘은 영화담론의 생성 유포 재생산의 프로세서를 바꾸어버렸다. 많은 이들에 의해 거론되고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진다는 점에서 고무적이고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다만 문제는 일각에서 보여 지듯이 비판을 위한 비판이 횡횡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밀한 성찰 없이 배설하듯 토로해내는 비판이란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상 속빈 강정일 수밖에 없다. 모름지기 창조적 비판이란 비판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을 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영화와 감독과 배우에 대한 애정이 결여된 비판은 비난과 다르지 않으며 이는 비평의 순기능에도 역행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비판적으로 쓴 다수의 영화리뷰에서 발견되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애정이 아닌 지독한 편견과 혐오증이다. 대체로 이 부류의 사람들은 지극히 자기방어에 익숙하다. 즉 다수의 지지를 얻을 때는 우쭐거리며 제법 프로처럼 행동하지만 비판의 화살이 빗발칠 때면 ‘나는 그저 아마추어일 뿐’이라는 갑옷을 뒤집어쓰기 일쑤라는 말이다. 이미 비평의 본령과는 거리가 먼 글쓰기이며 비록 전문비평가가 아닐지라도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이의 자세가 아니라 하겠다.

내가 20대였던 시절, 선배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얘기는 “너희는 도무지 비판의식이 없어!”라는 질책이었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와 나의 친구들이 민주화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젊음을 소비했고 세상 속으로 걸어갔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무언가를 외치고 쓰고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 유형적 가치창조가 우선되고 무엇보다 인정받지 못하면 도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비판적 어조를 유지하지 못하면 도태되어 버릴 것만 같은 불안의 시대, 그러니까 자신을 알리기 위한 존재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일련의 태도와 행동이 도덕적 제약을 받지 않는 세상에 서있다는 말이다. 진본과 진실이 유폐된 시뮬라크르의 범람과 장악.

영화평론을 쓰면서 수없이 “나는 비판적인가? 지나치게 호의적 시선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가?”라는 강박에 시달렸었다. 때문에 한 때, 어떻게 해서든 비판적 시선을 놓지 않으려 애쓴 적이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건 비판이 곁들여져야 한다는 강박증에 내가 패배하는 순간, 글은 칭찬과 비판이 절묘하게 결합된 어정쩡한 형태로 완성되곤 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  「그저 볼만하지만 (비평 관용구로 표기하자면) 2% 아쉬운 영화」 가히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는 동네구멍가게 식 글쓰기요 김밥천국에 다름 아닌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앞서 말했듯이 나의 20대 시절 앞장서지 못한 과거에 대한 죄의식과 트라우마에 가까운 비판의식 결여에 대한 회복심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의 전력 때문에라도 요즘 젊은 친구들의 영화 글에서 강박적 비판이 발견되는 것은 왠지 걱정스럽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모름지기 비판 정신이란 타협 없는 지사적 순결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정확하고 냉철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비판기능이 상실된 비평은 그 소임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내부, 외부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았음을 자부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막아내는 방패로 “비판 글”을 이용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나는 충분히 고민하고 있으며 사려 깊게 생각 중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확인 시켜주기 위해 비판을 비평 무기로 동원한다는 말이다. 이때 비판은 괜한 트집 잡기나 인정투쟁으로 오인 받기 십상이다. 이러한 비판은 칭찬보다 더 위험하다.

당신은 그리고 나는 진심어린 창조적 비판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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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oonworx.egloos.com BlogIcon 문성환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하셨듯이 창조적 비평, 혹은 생산적 비판은 대상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있을 때, 애정이 없다면 이해라도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2008.06.1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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