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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을 보고 나오면서 티켓을 매만졌다. 각각의 영화들에 대한 명사적인 이름은 넘겨두고, 그 영화들이 제시한 형용사적인 느낌은 잠시 증발시키고, 그저 나는 영화를 '봤다'는 동사 행위만을 기억하기로 한다. 그것은 내가 앞으로 쓸 글과 맥락을 같이 하는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나는 독립된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독립영화라고 불리는 것을 봤을 뿐이니,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나는 장기하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라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장기하 노래가 좋다. 그는 달이 차오르니 어딘가로 가자는 권유를 해준다. 비워진 달이 채워진다는 아주 기하학적인 발상, 그리고 머물러있는 곳에서 가자는 것. 빈 것에서 채워진 것으로 달의 심상이 변하는 동안 나의 동선까지 고려해주고 있다. 개인의 생활 안에 달의 움직임을 넣어주는 셈이다. 그러면 그는 어디로 가자는 것일까. 사실상 그 목적지는 말하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가자는 말은 피상적인 것이고, 실상은 내가 머물러 있는 곳을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싸구려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싸구려'를 마시는 생활을 하고 있고, '가자'는 권유를 들으니 '머물러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아가는 셈이다. 이런, 그에게 공감적인 지지를 보내는 심리적인 근거가 다 있었다.





그렇게 인간은 합의들을 했나보다. 사랑과 관심은 피상적인 언어로서 치유를 해준다. 그래서 결국에는 원초적으로 갖는 욕망과 생각들이란 공유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걸로 상처를 받는 동시에 치유를 할 요량으로 이야기들을 생성해낸다는 것. 그것들을 유려한 재능과 솟구치는 희망으로 제작한다는 것은 다시 사랑과 관심에 대한 피상적인 언어들로 돌아올런지 모른다. 아주 진솔했던 경험들은 개인의 필터링을 거쳐 스크린에 상영된다. 내 외피를 겉돌며 내 안의 불안과 마주할 것을 권유해낸다. 피상성은 그렇게 내 안으로 다가와 공유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유의 촉매제는 시련에 대한 공감형성이다. 그것은 나의 가치가 짓밟히고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들에 의해 나의 가치들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시련의 씨앗이 어디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마음에 있던가. 외적인 상황이 그 씨앗이 되는 것이라면, 그 씨앗이 '외부'에 있다는 인식을 한다는 것이 '내'가 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여기에서 독립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아주 흥미로운 개별성이다.

내적인 주관을 옹호한다는 건 그것을 억눌러버린 것과 관련지어지는 자연스런 운명일 것만 같다. 억눌러지지 않았더라면 다른 표출법에 의해 제기되었을 개별성. 그러한 흥미로운 개별성에 대한 실험들은 젊은 순환이다. 달은 차오르고 기운다. 밤도 깊어지고 날이 샌다. 독립 안에서 개별성은 은근히 공유성을 지향한다. 그래서 나는 서독제 관람 티켓을 매만지면서 그런 생각에 빠졌다. 각자의 개별성 끝에 완전한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고. 특히나 가장 무시당했던 욕구들을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고양된 의식의 영역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따라서 파괴와 야만성을 주었던 시련의 맥락은 개별의 필터링을 거치며 이겨내야 할 시련으로 거듭난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감흥은 비록 피상적이어서 곧 잊어버리는 것이라 하더라도 재생으로 수렴할 수 있는 순환구조라는 것에 이르기 까지. 어디 독립이 괴리와 유사한 뉘앙스였던가. 나는 남과 다르다고 외치는 구호 중의 하나였던가. 독립이란 정체성으로 영화를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독립된 개체로서 생각할 수 있으면 된다. 소홀하게 여겨졌던 개인을 되살리는 힘이 자신의 주관이고 독립인 셈이다.

생에 적응하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다. 그 중에서 현명하게 여겨지는 방법은 바로 자신의 갈망들을 변덕스러움, 감정, 미신 등의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혹은 그것들을 조율을 해내야 하는 것이 과거(라고 믿고 싶은 시대)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다소 맥락이 바뀌기는 했으나 여전히 내적인 관심들이 정당한 대접을 받을 것과 눌러버려야 하는 것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갈망들은 자아가 아니라 부추겨지는 충돌인 셈이다. 그게 본질이었겠나 싶은 생각에 회의가 들 즈음 떠올랐던 생각은 그 자체로서 구별하려는 잣대로 하여금 자신의 개별성들을 발견해가는 것에 의미가 있겠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배제됐던 주관성들은 다시금 고려될만큼 너무도 중요했고, 중요했던 것들은 다시금 드러날 양태를 닦고 있었던 셈이다. 건물이 지어지지 않은 땅들이 건물들에 의해 길로 만들어진 셈이다.

빛없는 어둠은 있어도 어둠없는 빛은 없다고 했다. 본능으로부터 유발된 세계에 명암의 호오가 뚜렷한 빛줄기가 형성되면 내면세계는 희미한 지각을 해내간다. 그 빛이 연약하다면 윤곽을 잡을 것이고, 강렬하다면 형태의 색채와 표면의 그늘까지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독립 안에서 개별성은 은근한 매력으로 공유된다고 서술해놓고는 조심스럽게 공유해야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싶다. 각 개인들의 방정식들은 끝내 항등식으로 수렴할 것이다. 가장 복잡다단한 것은 단순한 매커니즘이 엉키는데서 유발된다. 지엽적인 설화와 부분적인 상처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설명해낼 수 있겠다. 주관적인 상황과 독립이라는 매력이 현대인들을 설명해내는 신화요소를 담고 있을지 모르겠다. 각개가 얼마나 동의하든, 각개가 얼마나 홀로 있든, 각개가 얼마나 멀리 위치하고 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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