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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남루한 차림새의 뚱뚱한 중년 여성이 언덕으로 터벅터벅 올라간다. 그리고 그녀는 거대한 나무위로 꾸역꾸역 올라가 조용히 앉자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언덕 위의 나무, 그리고 한 여인을 롱 숏으로 잡은 스크린이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그도 아니라면 그저 나무를 껴안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머금는다. 대지와 자연의 향과 소리와 제대로 호흡하는 바로 이 여자의 이름이 세라핀이다.

천재 예술가의 내면, 광기, 예술 작업은 영화 소재의 끊이지 않는 원천이다. 그들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고, 그렇기에 실화의 감동이나 진정성을 전달하기에 용이하다. <세라핀>또한 다르지 않다. 20세기 초에 활동했고 주목을 받았던 프랑스의 여류화가인 '상리스의 세라핀' 세라핀 루이의 예술과 삶을 그린다.

세라핀은 처음엔 그저 청소하고 빨래하는 동네 하녀로 비춰진다. 20세기 초 프랑스는 엄연히 계급이 잔존한 시기였다. 그녀는 분명 귀족들이 업신여기는 천한 계급의 독신 여성이지만 집세를 낼 돈을 아껴 물감을 사는 흔치 않은 인물이었다. 물론 변변한 학업도, 그림 공부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런 세인들의 평가는 미술평론가이자 화상인 빌헬름 우데를 만나기 전 얘기다. 피카소와 루소 등을 발굴해온 그는 전원생활을 즐기려 들른 상리스에서 우연히 세라핀의 그림을 접하고 감동한다. 그때부터 세라핀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파리 예술계에 소개되는 성과를 이뤄낸다.

<세라핀>은 전세계적으로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동명의 화가가 어떻게 발굴되고, 어떻게 작품 활동을 이뤄냈으며, 또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를 과장된 장식이나 수사 없이 쫓아간다. 그건 이 영화가 세라핀이란 예술가를 이해하는 형식과도 같다. 말없이 자연을 응시하고 그 기운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던 세라핀. 그의 예술적 원천을 이해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카메라는 때때로 자연 속의 세라핀을 조용히 바라만 본다. 더불어 바로 그때 우리에게 세라핀의 영감을 함께 느껴보라는 듯 자연 그대로의 효과음을 들려준다. <세라핀>은 본능적이고 육감적이란 표현이 걸 맞는 세라핀의 작업을 롱 숏, 롱 테이크로 잡아내는 것만으로도 제 할일을 다 하고 있다. 거듭 말하자면, 이것은 예술가가 자연을, 세상을 바라보는 형식과 시선에 한발 짝 가까워지려는 영화적인 시선이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드라마틱한 세라핀의 삶은 담담하게 그리는 자체가 이 영화의 미덕이 되어준다. 하녀로서의 삶을 살다 우데를 만나고, 화가로 인정받고, 광기에 젖어 정신병원에 감금되기까지. 영화는 30여 년에 이르는 이 인생의 드라마틱한 여정을 강조할 생각이 전혀 없다. 물론 꽉 짜인 플롯이나 내러티브 구조가 없기에 자칫 심심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세라핀>은 어떠한 수식이 없이 세라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묘한 흥분을 일으킨다.

그러한 흥분은 후반부 세라핀의 작업이 꽃을 피울 때 두드러진다. 전쟁 후 우데와 재회한 세라핀은 그때부터 자신의 방안에 틀어박혀 그림 작업에 몰두한다. 강렬한 색체의 꽃, 나무, 야생 열매, 들풀 들이 한 폭의 캔버스에 담겨질 때 마다 세라핀의 이웃들은 감탄하고, 그러한 감흥은 스크린으로 세라핀의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한 시퀀스는 중반부까지 확인했던 세라핀의 삶의 양식과 예술적 원천이 어떻게 그림으로 전이되는가를 통해 감동을 자아낸다.

안타깝게도 세라핀은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친다. 배우 출신 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은 여전히 그것이 보편적으로 보아 왔던 예술가의 광기인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자연과 작품과 삶을 일치시켰던 세라핀의 특수성에 기인한건지, 그도 아니면 "천사들이 날 구원할 거야"라는 세라핀의 말처럼 정말 신이 구원한 것인지에 대해 어느 곳에도 방점을 찍지 않는다. 하지만 <세라핀>은 예술과 삶이 어떻게 일치하는 가에 대한 담담한 기록만으로도 충분한 영화적 가치를 확인시켜 준다. 더불어 세라핀이란 모호해 보일 수 있는 인물에 피와 살을 불어 넣은 프랑스의 중견 배우 욜랭드 모로의 연기는 할리우드의 고전적 연기와는 다른 차원에서의 매혹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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